-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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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이 필요했다. 열대 우림 지역도 아닌데 시시때때로 스콜처럼 비가 내린다. 계속 되는 비에 햇볕을 못봐서인지 개들도 나도 생기를 잃었다. 역시 식물이나 동물이나 광합성이 필요하다. 비가 내린 후 모처럼 해가 떴다. 앞뒤 생각도 없이 뛰어나간 마당에 발이 빠졌다. 서해안 갯벌 같았다. 후회는 늦었다. 이미 개들은 문을 여는 순간 튀어나왔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온 몸에 진흙을 뒤집어쓰고 나니 원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정체성을 잃은 채 그들은 누렁이가 되어 있었다. 나와 개들이 뛰는 모습은 마치 눈밭에서 좋아라 뛰는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리의 모양새는 진흙에서 열심히 구르다 나온, 갓 훈련을 마친 해병대 대원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햇볕을 쐬며 흙과 풀을 밟는 기분은 달리 무엇과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너무 너무 좋았다.
며칠간 돌아보지 못한 사이 국화는 봉우리 하나 남김없이 활짝 꽃을 피웠다. 다알리아는 예쁘게 꽃은 피웠지만 물에 약한지 예쁘다고 만지는데 줄기가 툭툭 떨어져 나갔다. 무른 곳이 떨어져 나가며 대머리 아저씨 소갈머리 없는 것처럼 뻥 뚫려 버렸다. 보기야 안 좋았지만 어쩔 수 있으랴 싶은 마음으로 죽은 곳을 떼어내 버렸다. 마당을 자세히 살펴보니 잔디 사이에 퍼진 토끼풀, 괭이 밥, 그리고 이름 모르는 작은 꽃들이 노랑, 하양 형형색색으로 피어있다. 흙이 젖은 뒤 건조되며 올라오는 흙 내음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부드러웠다. 흙을 상대로 하는 육체적 노동은 나에게 마음의 평화와 행복감을 준다. 무엇보다도 하루가 편안해지며 마음에 위안이 되어진다. 잔디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잡초가 또 부쩍 자랐다. 그 잡초에게는 비가 비료인지 비만 오고 나면 쑥쑥 올라온다. 올라온 대롱 끝에 씨들이 다닥다닥 붙어 바람을 기다린다. 나는 호미질을 하여 뿌리까지 모질게 뽑아낸다. 다시는 못 자라게 말이다. 잡초를 뽑을 때 나는 항상 나의 부정적인 생각이나 나의 게으름을 뽑아내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 그러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풀들의 세계에서는 활동력 있고 정열적으로 퍼져나가며 자리를 확장해 나가는 잡초는 성공의 삶이 아닌가 보다. 사람들은 잡초를 제거하고 싶어 안달하고 잡초들은 악착같이 번식하려 안달이다. ‘이런 모진 것들’ 하고 파내지만 한편으로는 ‘이것도 생명인데’ 하는 마음 또한 앞선다.
어릴 적 망가진 어른 밥숟가락 하나에 흙만 있으면 해질 때까지 놀았던 나였다. 흙만 있으면 방앗간 주인도 되었고 떡도 만들었다. 또한 두꺼비 집 건설현장 소장이 되어 수없이 많은 집을 지었다 허물었다 했었다. 흙은 나에게 여러 분야에 간접 직업인의 경험을 쌓게 해줬다. 흙을 만지니 어릴 적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가 만지는 이 흙들은 누군가의 생명이 원위치로 돌아간 한 줌의 흙일까? 그래서 흙을 만지면 그들의 숨결이 있어 푸근해 지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싫증도 슬슬 나고 오금쟁이도 저렸다. 호미 한 자루 쥐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보았다. 맑게 갠 파란 하늘을 보니 갑자기 ‘나는 자연인이다’ 하고 두 팔을 올리고 소리치고 싶었다. 어느 광고에서인가 비슷하게 곰이 했던 모습이 기억이 났다. 자연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조금은 둔해 보이지만 곰처럼 단순한 삶을 만들고 살고 싶다. 단순하다고 해서 동물들처럼 먹고 자고하는 일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번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속에서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쓰는 생활을 말한다. 알차게 쓰는 시간하니 며칠 전 70세에 같이 다도를 공부하는 분을 인터뷰를 한 일이 떠올랐다. 그분은 나름 평생 일을 안 하고 전업주부로 본인의 취미 생활만 하셨다고 했다. 아마 여자들이 많이 원하는 로망 같은 삶일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 만약 삶을 40대?로 돌려놓아 준다고 요정이 와서 속삭이면 다시 젊음을 돌려받으시겠어요” 그 분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받지”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다시 그 나이로 가면 무얼 하고 사시고 싶으냐는 질문에 “ 내 이름 석 자를 세상에 남기고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인생을 사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없으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분은 “허송세월을 하지 마라. 시간을 돈 만큼 아끼고 쓸 때만 써라” 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먼저 할 중요한 일이 있어도 하기 쉬운 중요하지 않은 일부터 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또한 새로운 결심은 내일로 미루는 일 역시 고치고 싶은 나의 버릇이었다. 사람 관계에 있어서는 우선순위를 나름 정리 하고 사는 편이다. 그런데 일에 있어서는 아직 정해 놓은 우선순위를 지키지 못하고 하루를 보내는 일이 허다하다.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눈 후, 일할 때와 쉴 때를 구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허송으로 시간이 지나면 그분처럼 나중에 내가 후회할 시간이 될 것 같아 요즘은 알차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 그리고 내일은 없다 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직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나의 마당은 엉망진창이다. 나무 둥지 밑에 붙어 온 머윗대는 몇 번이나 잘라 나물을 해 먹었는데도 또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으로 산발을 하고 비에 쓰러져 있다. 손바닥만한 텃밭엔 배추 13포기 모종과 무 열 개, 쪽파, 대파가 심어져 있다. 어느새 쪽파는 제법 모양을 내고 ‘나 쪽파요’ 하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배추는 여린 모종 잎을 심어 이제 겨우 일어서려 하는데 방울이가 입을 댄다. 평소에 양배추와 오이를 좋아하던 저들의 개코에 딱 걸린 것이다. 먹겠다고 눈치를 보는 그녀와 한 판 승부가 이루어졌다. 하도 빨라 잡기도 어려웠다. 겨우 잡은 방울이를 안아 올려 눈을 마주치고 야단을 치려고했다. 요즘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훈련이었다. 나는 내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로 예쁘다기만 하고 키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나도 저들도 힘들어졌다. 헤어지는 것 보다 같이 오래 살려면 서로에게 아픔이 있어야 했다. 요즘은 많이 야단맞고 갇히고 한다. 그런데 오늘 또 무너졌다.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방울이는 야단을 맞으면 눈을 지지 감으면서 몸이 경직되는 증상이 있다. 그런데 안아 올린 얼굴에는 진흙투성이에다 몸은 빳빳하게 굳어있다. 그런 방울이가 눈을 쳐다보며 묻는 것 같았다. “하루 중 언제가 행복해요?” “나는 아침에 내가 할 일을 해 냈을 때가 가장 행복해. 큰 일이 아닌 것 같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마당에서 식물을 돌보아 주고 산책으로 동물을 돌보아 주고 커피 한잔을 마실 때가 가장 행복하다. 너는?” “저는 제가 가고 싶은 곳까지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뛰어야만 만족하고 행복해요.” ‘만족과 행복’은 조금만 노력하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시라는 것은 어떤 대상(바람, 나무, 하늘, 사물 등)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를 잘듣고 그것을
옮기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도 한참동안을 나무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구름이 나에게 무엇을 건네는지를
귀기울였던 적이 있습니다.
누님은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눌때에도 사랑하는 동물들과 함께할 때에도 그들의 스토리를 잘듣고
캐치해주는 탈렌트가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풀들의 이야기, 땅들의 이야기, 멍멍이들의 이야기가 쑥쑥 잘나오는것 같습니다.
여행, 이사, 연구원 웨버, 개인 일등으로 인해서 많이 바쁘셨죠.
누님의 글을 통해서도 시간을 쪼개어 쓰셨던 그 일상들이 스쳐 지나가는것 같습니다.
싸부님의 말씀대로 누님의 원초적인 욕망(?)으로 복귀할 때가 이제는 된것 같습니다.
훠이~
훌쩍 뛰세요.
그까이꺼~

은주 언니~ ^^
안녕~, 잘 지내져.. ^^
저번?에 집짓고 있다 하시더니.. 추카~추카~ 해여^^
저두.. 요즘.. 주택을 꾸미고 있는데여..
우선 천장고가 높아.. 코가 뻥 뚫리는 느낌이구여..
창 너머 보이는 자연그대로의 모습에.. 여유가.. 절로 생기더라구여..ㅋ
집주인은.. 할 일만 늘었다구.. 불평 아닌 불평을.. 하시는데여..
말씀은 기케 하셔두.. 표정에서.. 은근히 즐기시는 모습.. 참 보기 좋더라구여..
언니의 글에서두.. 그거이 느껴져여.. 헤헤 ^^
두 번째 호오~ 사진..
언니와 그?그녀?.. 하나루 느껴져여.. Good fit ! ^^

머리가 띵해지는 말이네요.
시간을 쓸 때만 써라!!! 저에겐 '가슴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라'는 말로 들려요. '이것을 해서 내가 행복하고 즐거운가'가 모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삶이 아닐까요?
언니네 집..마당의 정경들이 눈앞에 살아서 움직여요. 이게 삶이 글이 되는 건가요? 저도 흙과 친구하고 식물들과 동무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게 내 가슴이 원하는 일인데...
다음 언니의 멍멍이 이야기가 궁금해요. 애들 이야기나 멍멍이 이야기나 모두 사람사는 한 모습이고 다 개성이 있고 그속에서 하나가 되고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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