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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사랑의 유람선’ 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유람선 안에서의 로맨틱한 풍경도 기억에 남았었지만, 무엇보다 배를 타고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장면이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나도 어른이 되어서 꼭 저런 배를 타고 여행을 다니리라는.
어른이 되었지만 그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흔살 여름 휴가기간에 모치즈키 도시타카의 ‘보물지도’ 책을 읽고 10년 이내의 꿈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기분좋게 한적이 있다. 그때에도 내용중 하나로 크루즈 유람선으로 여행하는 풍광을 넣었었다.
요원하던 꿈이 2010년 여름 이루어졌다. 말로만 듣던 크루즈 유람선을 드디어 타게된 것이다. 궁금하였다. 어떻게 생겼을까, 배멀미는 하지않을까 등등 여러 상상속에서.
탑승후 배의 구석구석을 탐색하던중 가장 나의 눈길을 끌게한 것은 갑판위에 있는 수영장 이었다. 지중해 바다 한가운데를 떠다니는 크루즈 배에서의 수영장이라? 어떻게 보면 언밸런스(unbalance) 같기도 하였지만 묘한 끌림의 자극을 나에게 보내고 있었다. 나는 원숭이 띠이다. 그래서인지 체질적으로 물을 그렇게 가까이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이것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 시작 되었다.
“우와, 배위에 수영장이라. 신기하다.”
“나도 외국인들처럼 사각팬티 수영복 입고 뜨거운 태양아래 썬탠을 한번 즐겨봐.”
“우람한 체격(?)에 개구리 헤엄이지만 남들 눈치 안보고 폼나게 날개짓도 해볼껴.”
과감한 선택으로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에구에구 이게뭐야. 짠맛 이었다. 그렇다. 바닷물을 그대로 이용해 수영장 안에 물을 채운 것이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바다위에 또다른 바다를 만들어 수영을 즐기게 한다는 것.
크루즈에 있는 동안 거의 매일 수영을 즐기었다. 아마도 그리스 여행에서 가장 기억나는 점이 무엇 이었냐고 누군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이 수영을 즐긴 것이었다는 답변을 할 것이다.
참 자유로웠다. 수영을 하면서. 물에 두둥실 떠있으면서. 한정된 공간이지만 아무도 터치를 하지않는 곳에서.
참 행복하였다. 물에 들어가 있는 시간 참으로 행복하였다. 그냥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행복의 찬미를 노래하는 것 같았다.
해방감을 느끼었다. 평소에 긴장을 많이하는 내가, 평소에 사고의 틀에 박혀있는 내가, 평소에 아집으로 뭉쳐져 있는 내가 이시간 만큼은 해방 되었다는 느낌을 가지었다.
적막감을 느끼었다. 헤엄을 치는 다른 사람들 속에서의 작은 자맥질 이었지만 조용한 바다위에서의 멈춰짐, 시간의 멈춰짐, 우주의 멈춰짐, 사고의 멈춰짐을 경험 하였다.
무소유를 느끼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딸랑 사각 수영복 하나 걸쳐 입고, 물에서의 행위를 하고 있는 동안 무엇하나 가진것 없이 놓아 버렸다.
그러했다. 놓아버림의 체험을 하였다.
수영중 물을 잡을려고 움켜 쥐어 보았지만, 그 물은 금새 손에서 빠져나와 본연의 성질의 형태로 돌아갔다.
숨을 들이마시고 아무런 몸짓없이 나를 물에 그냥 풍덩 던져 놓으니 물은 나를 받아 주었고, 그 흐름에 맡겨 이리로 저리로 움직이게 하였다.
이런거구나. 자유라는 것이, 해방감이라는 것이, 벗어버린 다는 것이.
머리로 이성적으로 책으로 익혔던 지식이 이제사 몸으로 깨닫고 체득이 되었다.
그렇구나. 이런 것이구나. 참자유라는 것이.
파아란 바다 한가운데서 구름이 지나간다. 하늘이 지나간다. 시간이 지나간다.
그런데 그 지나감은 나를 중심이 아닌 세상의 중심에서 움직여진다.
공간속에서의 나라는 존재.
티끌만한 그 존재가 살기위해 투쟁을 하고 목표를 위해 아둥거리며 발악을 떤다.
왜그럴까.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면 안될까. 그냥 되는대로 살면 안되는 것일까.
무엇이 그리 두려운 것일까. 무엇에 그리 쫓기는 것일까. 무엇이 그리 되고싶고 무엇이 그리 하고싶은 것일까.
불쌍한 중생의 한사람일 수밖에 없지만 나는 남과는 무언가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손에서 물이 빠져나가듯 하나의 몽상이 아닐까.
나는 끝없는 집착속에서 살았다. 나, 가족, 직장, 사람간의 관계속에서 조바심을 가지고 살았다. 그것을 나는 이 물이란 공간에서 해소하였다. 대리만족을 하였다. 충만함을 느꼈다.
물이라는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사람을 띄우게 하는 이 액체의 존재 안에서, 나는 어머니 자궁속의 양수라는 태고의 시간으로 되돌아갔다.
그랬다. 아직은 미성숙한 아직은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그 시간의 과거속으로.
하지만 물에서 나오니 어느덧 현실이라는 벽이 마주쳐왔다. 다시 몽상에서 현실로 돌아가는 신데렐라가 되어 있었다. 입맛을 다셨다. 그 깨달음은 한순간 이었다. 다시 본래의 나란 다시 돌아가고 싶지않은 나란 모습으로 되돌아 와있었다. 좋다 말았다. 동상이몽(同床異夢). 그 깨달음의 연속성을 위해 나는 다시 끈을 잡고 걸어간다. 세상, 출세, 성공을 위해 다시 가야한다. 언제쯤 나는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자유로워질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물에서의 기억, 물에서의 편린(片鱗), 물에서의 감정. 속세에 있는 나이지만 그때의 느낌, 시간, 공간은 나에게 강력한 앵커링(Anchoring) - 하나의 심리 상태를 어떠한 특정한 심리 상태로 닻을 내려 주는 것 - 으로 자리를 잡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되새김질할 때 집착에서 떠나있음을 느낄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잠시지만. 그 잠시의 시간이 계속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그 잠시의 여백이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 것인가. 아등바등 거리며 살아가는 이 세상속에서 말이다.
세상 가득 고요한 새벽이라는 시간에 이 글을 쓰는 동안 해우소(解憂所)의 역할을 하는 체험을 하였다. 놓아 버리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집착에서 떠나버리는.
나는 집착이 강하다. 대상에 대한 사물에 대한 내가 마음을 준 사람에 대한 소유가 강하다. 그것을 놓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것을 떠나버리면 어떻게 될까. 내가 없어질까. 내가 허전할까. 내가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있을까.
주먹을 쥐어본다. 주먹을 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소유할려고 하는 의미.
주먹을 펴본다. 그렇다면 주먹을 편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어 버린다는 의미일까.
시간을 움켜 잡는다고 가는 시간이 정지 되어질수 있을까.
깨달음은 한순간이다. 주먹을 잡고 편다는 것.
주먹을 잡으면 실제로 꽉차 있다는 느낌을 당신은 받는가. 무언가 충만함을 느끼는가.
반대로 주먹을 펴고 손가락을 벌려보자. 손바닥의 손금은 살아온 세상 앞으로의 살아갈 세상 역사의 장이다. 그공간에서 주어진 혹은 노력으로써 그 지문을 형성해 나간다.
손가락 사이에서는 시간이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간다. 세상이 지나간다.
그런데 지나간다고 내가 없어지나. 그냥 지나가게 놓아두면 안될까.
그냥 지나가라.
물을 밟는다고 물이 없어지나. 물이 소멸되나.
물은 그냥 그대로 지나가게 놓아둔다.
놓아 둔다는 의미. 그냥 놓아 둔다는 의미. 이것이 오늘 새벽 나에게 주어진 깨달음이다.
힘이들 때 쥐었던 손을 펴서 벌린 손가락을 본다. 비워있다. 하지만 나는 두렵다.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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