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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타는 모양이다. 액면상만 멋있는 秋男. 이유없이 기운이 쳐지고 작은것에 예민해지며 생각의 늪에 빠진다. 이런 상황에서 거래처를 방문할 때는 나자신을 더욱 추슬러야 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강단에선 강사의 몸짓, 표정, 어투, 내용, 액션이 어떻게 전달 되느냐에 따라 참석자들의 그날 일진과 매출 분위기가 좌우될수 있기 때문이다. 세일즈맨들도 마찬가지이다. 고객을 만날 때 어제 저녘 아무리 남편과 맞짱을 떠서 심기가 불편함에도 스마일로 표정을 지어야 하는 숙명이 그들인 것이다. 나자신 영업부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선배 한분이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바람이 가득든 풍선과 바람이 빠진 풍선 어느것이 보기 좋으냐.”
“당연히 바람이 가득든 풍선이죠.”
“영업을 하는 사람은 고객을 만날시 항상 이 바람이 가득든 빵빵한 풍선과 같아야 한다. 그리고 그 느낌을 전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 바람이 가득든 풍선. 이것이 세일즈맨들의 기본자세인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첫만남과 첫인상의 이미지를 가볍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초두 효과(Primacy Effect)로 명명 하였고, 말콤 글래드웰은 <블링크(Blink)> 저서를 통해 첫 2초의 힘을 강조 하였다. 찰나의 순간에 우리는 그사람에 대해서 나름의 판단을 하고 선입견이 될지언정 각자의 마음속에 각인을 시킨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인 프레임의 모습으로 되어, 사람에 대한 잘못된 판단 일지언정 그 잔상은 오래도록 남는다. 그래서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웃음과 당당한 모습으로 오늘도 포탄과 총알이 쏟아지는 실제의 전쟁터에, 워커끈을 질끈 동여매고 총알을 장전한채 당당하게 현장으로 나아간다.
그런면에서 그녀는 빛나 보였다. 얼굴 가득 천진난만한 웃음을 띤 모습으로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들어 주는 그녀. 전화 또는 대면상 밝고 힘찬 목소리로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워 주고, 때로는 애교있는 목소리로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그녀. 자화자찬이지만 자신의 이런 행위로 동성의 상대방에게 질투의 눈총을 받는다는 그녀. 그런 그녀와 아침 조회를 마치고 식사를 함께 하였다.
“사무실을 조금더 큰곳으로 옮길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나는 그녀의 이같은 말에 적잖이 놀랐지만 겉으로는 표정관리를 하여야 했다. 그도 그럴것이 오늘 아침 상황만을 놓고 본다면 그녀의 말은 타탕성이 떨어지는 내용이었기 때문 이었다. 사업한지 1년이 넘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인원이 모아지다가 현재는 조직이 깨져 여섯명의 카운셀러만 출근하는 사무실. 덕분에 오늘도 조금은 썰렁한 분위기가 연출이 되어졌었다. 그런데 이같은 적지않은 공간을 다시 이전을 하여 넓히겠다는 그녀의 복안은 어찌보면 철모르는 아이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차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전 건에 대해서?”
어떻게 말을 해주어야 하나. 공감어린 찬성표를 던져야 하나, 아니면 사장님 지금 제정신 이신가요 라는 현실적인 피드백을 해주어야 하나.
“지난주 주말에 설악산을 다녀왔어요. 제가 다니고 있는 절의 스님께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봉정암(鳳頂庵)을 한번 다녀오라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 절에 가서 빌면 사람들의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하는 참 용한 절이래요. 그래서 준비도 없이 다녀왔는데 저 진짜 죽을뻔 했어요. 평소 등산을 하지않는 저에게 해발 일천미터가 넘는 산은 정말로...”
어쩐지 그녀는 오늘 행동거지가 많이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다리를 절뚝 거리고 알이 배여 계단을 내려가지도 못하던 그녀. 그랬었구나. 산에 다녀오셔서 그랬구나. 갸냘퍼 보이는 새다리(?)로 험한 그곳을 다녀왔다니 대견해 보였다.
“머리털 나고 그렇게 높은 산은 처음 가봤어요. 기껏해야 동네 앞산을 산보삼아 평소 올랐던 저인데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중도에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지만 그럴수도 없었죠. 함께한 일행을 제가 차로 모시고 왔기 때문에 운전을 해야 했거든요.”
나는 그녀의 그런 말에 오도가도 못하면서 어쩔수 없이 엉거주춤 걸음을 옮겼을 그런 모습이 연상되어 절로 웃음이 나왔다.
“탈진 상태에서 앞에 인도를 하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얼마나 가면 되느냐고요. 그사람 말이 아직도 멀었답니다. 나는 그말에 기운이 더욱 빠져 산의 정상으로 가는 비법이 있느냐고 다시 물었죠. 그사람 말이 쉬엄 쉬엄 천천히 가라고 합디다. 그래서 저는 옆에 사람과 이야기도 하면서 맞추어 갔는데 맨뒤로 쳐지며 더 지치는 거예요. 저는 생각을 바꿔 봤습니다. 이왕 올라가는 것 내식대로 빨리 한번 가봐야 겠다고. 그러자 사람들이 그러면 금새 지쳐서 큰일 난다고 만류를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힘든 발걸음을 일부러 빨리 재촉해 보았고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어디선지 모르게 주어진 힘에서 갑자기 풀린 다리에 기운이 생기고 생기가 솟아 나더라구요.”
나는 그녀의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에 심취가 되어갔다. 그럴수가 있나라는 의심을 품고서.
“저는 평소에도 빨리 빨리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이예요. 그래서 남들처럼 5년, 10년의 장기계획을 잘세우지 못해요. 대신 저의 지론은 멀리 내다보기 보다는 오늘 주어진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하자 즉, 오늘 하루 정말 열심히 살자는 주의죠. 산을 타는 것도 그래요. 남들이 산은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저에게는 맞지를 않았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저는 빨리 움직이는 것을 좋아 하였고 그렇게 가다보니 어느덧 일행의 선두에 서있더군요. 놀라는 그들의 표정. 그렇게 올라가면 안된다고 하였지만 저는 결국 정상에 다다랐어요. 저의 방식대로 빨리 걷다보니 더 집중이 되더라구요.”
역설적인 그녀의 말에 나는 식사를 하면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나도 산행을 좋아하는 입장이기에 그녀의 말이 선뜻 받아 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기를 산은 인생과 같아서 급하게 서두르면 쉽게 지치게 되는데, 오히려 그녀는 자신의 패턴으로 올라갔더니 수월 했다고. 허참~
“제가 벌여 놓은 사업도 그래요. 영업 매니저에게 어떻게 하면 성공을 할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천천히 조급하게 생각말고 하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말이 오히려 답답했어요. 또한 남들은 제가 투잡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것이 편해요. 하나보다는 두가지를 하는 것이 시너지가 되거든요.”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동화가 되어갔다. 그러면서 작은 깨우침이 있었다. 아!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스타일이 있는거구나. 이렇게 하면 된다는 통계와 툴은 있지만 인생에 있어서 정석은 없는거구나. 살아가는 방식, 산행을 하는 방식, 사업을 하는 방식, 일처리 방식, 글쓰기 방식 등에서 자신만의 방식이 있는거구나. 그래서 자신이 가진 신념이나 사상이나 조언을 타인에게 함부로 강요할수 없다는 거구나. 구본형 싸부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지. ‘사람은 생긴대로 살아야해. 그래서 우리의 수업은 각자가 그 생긴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찾는 과정이야.’
조금은 가볍게만 보이던 그녀가 태산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패턴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든 자신의 기질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행동하였던 것이다.
스님이 언급 하셨던 절에 드디어 도착해 정말로 천근만근(千斤萬斤)인 다리로 108배를 올리며 그녀는 한가지 소원을 간절히 빌었다. 고3 수험생 딸의 대학 입학을 기원하는 대신, 자신의 사업장에 오십명의 출근 인원을 염원 했다는 그녀. 그러면서 이어지는 그녀의 또다른 이야기.
“이차장님은 제가 아무 어려움없이 자랐다고 생각하시죠?”
속내가 들킨 듯 갑자기 가슴이 뜨끔해졌다. 사실 그러하였다. 사십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공주병의 말투와 조금은 철없어 보이는 행위가 곱게만 살아 왔겠구나 라는 느낌이 들게 하였던 것이다.
“남들도 그렇게 이야기해요. 평소 쇼핑을 좋아하기에 백화점을 들락거리는 저를 보면 신랑 잘만나서 저렇게 사는거라고 수군대기도 하죠. 하지만 저 그렇게 쉽게 살지를 않았어요. 이십대 초반 눈이 맞아 군대간 그이를 기다리다가 연애 육년만에 결혼을 하였는데, 친정도 그러하고 시댁도 형편이 넉넉지 않아 지금까지 일절 한푼의 도움도 받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이십년 전에 월세 5만원으로 처음 단칸방 신혼 살림을 시작했죠. 무엇하나 갖춰진게 없었어요.”
월세 5만원? 나도 그러하였다. 봉천11동 남들이 말하는 달동네 지하 8평 방에서 우리의 서울 생활은 시작 되었다. 장롱과 TV를 들여 놓고 두사람이 바닥에 누우니 꽉차 보이는 방. 그래서 나는 우스개 소리로 조회시 이런 사례를 들곤 한다.
“제가 결혼 초기에 와이프랑 왜 꼭 붙어 잤는지 아십니까?”
“사랑하기 때문 아니예요. 시절이 좋을 때 잖아요.”
“사랑 NO. 눈에 찌짐이 붙여서 NO. 너무 좋아하니까 NO. 방이 좁다보니 두사람이 누우면 게임 오버였습니다. 사랑이라기 보다는 어쩔수없이(?) 붙어잘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죠.“
비만 오면 벽지며 바닥에 곰팡이가 슬어 축축했던 원룸.
장모님이 비싸게 사주신 나무 돗자리를 말리기 위해 양달에 늘어 놓자 누군가 가져가 황담함을 겪었던 그시절
평수를 넓혀 이사를 갈시에 쓰레기가 더나왔다며 비닐봉투 값을 내라고 윽박지르던 주인집 할머니.
그녀도 그런 생활고를 겪었었구나. 포시랍게만 느껴지던 그녀가 그랬었구나.
“남편 월급이 빤하기에 은행 대출 등을 빌려 멋모르게 사업을 시작하였죠. 그러다 망해서 빚을 1억까지 지기도 하였어요. 암담하였죠. 하지만 누구에게 돈을 빌릴 처지도 아니었기에 제힘으로 일어설 수밖에 없어 정말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꼭두 새벽부터 나와 힘든 시절임에도 종업원들에게 먼저 다가가 안녕하세요 라고 밝게 인사로 하루를 시작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 덕분에 지금은 제힘으로 빚을 다갚게 되었고요.”
뜻밖의 이런 말을 듣다보니 그녀의 모습 뒤로 후광까지 느껴졌다. 그렇구나. 그렇게 밝은 그녀에게도 이런 남모르는 아픔이 있었구나. 역시 사람은 겉모습 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런 저이기에 이제 딱 1년만 이 사업에 전력투구를 다시 할려고 해요. 남들처럼 10년 20년이 아닌 딱 1년만. 그래도 안되면 어쩔수 없죠. 정말 힘든 곳을 올라가 부처님께 빌었으니 오십명은 만들어 주실 것이고, 그렇기에 현재 사무실로는 그 인원을 감당할수 없어 큰 평수로 미리 이전을 할려는 거예요. 남들은 다 반대를 하지만 제식대로 후회없이 한번 해볼렵니다.”
누가 뭐라하든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가 부러웠다. 내가 해줄 일이 없을까 하여 돌아오는 가운데 핸드폰을 열고 다음의 격려 문자를 보내니 답장이 왔다.
“봉황이 부처님의 이마로 사라졌다하여 붙여진 봉정암. 진실한 마음으로 그곳에서 불공을 드린 사장님의 소원은 꼭 성취될 겁니다.”
“네. 고맙습니다. 차장님이 염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저는 꼭 성공할 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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