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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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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5일 10시 05분 등록

가장 강렬한 Story, 사람! / [10-4 컬럼]  

병원이 위치한 청량리는 재미있는 곳이다. 소위 ‘588’이라고 불리우는 집창촌이 병원 바로 옆에 있다. 재개발 예정지역으로 동네는 낙후되어 있고, 거리는 지저분하다. 사무실 건너 편, 집창촌의 아가씨와의 거리는 7m 정도 될까? 야근 시에는 아주 도움이 된다. 눈이 오는 겨울에도 비키니 차림으로 있기 때문에 절대로 졸릴 일이 없다. 밤이 되면 어디선가 상처를 입은 부랑자들이 응급실로 오고, 실려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있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과거에는 조폭들이 칼싸움을 벌이고 오는 일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금요일 오후, 동네의 깡패가 진료를 왔다. 청송교도소에서 몇 년 동안 살다 나오신 자칭 대단하신 분이다. 13년 전, 자신의 청력검사 진료기록을 내놓으라고 진료실에서 소동을 피우다가, 결국, 원무팀에서 상담을 하게 되었다. 개인의 의료기록은 법정 보존연한이 10년이다. 의료기록이 없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이지만, 다행히 이 깡패의 의료기록은 아직 보관 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챠트에 깡패가 원하는 청력검사 기록지가 붙어있지 않았다. 그 기록을 가지고 보험사로부터 돈을 받아낼 요량이었는데, 검사기록이 없다고 하자 뿔 딱지가 있는 대로 난 것이었다.  

“야, 이 개쉐이..OOO 같은 OOOO 놈아, 왜 안 줘? 너 한번 죽어볼래? 이런 쉽새이.. OOOO 같은 OOO놈아, 연장 갖고 와서 OOO를 OOO 해줄까? ”  

한 문장의 70%가 욕으로 시작되어 욕으로 끝났다. 고등학교 시절, 좀 놀던 애들의 대사 이후,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욕 문장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응대하던 직원도, 나도 질려버렸다.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안전관리팀 경비도 그런 깡패에겐 소용이 없다. 다행히 조폭 수준의 몸과 외모를 지닌 해결사 직원이 한명 있어서 급한 불은 껐지만, 원무팀 근무는 늘 초긴장 상태의 정신상태를 요구한다.  

지난 주, 안락사의 의미를 고민하게 했던 할머니는 결국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상태가 나빠졌지만, 가족들이 생명연장을 위한 적극적인 치료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의사의 말을 전하자, ‘딸이 웃더라’며, ‘그런 가족은 정말 처음 봤다.’는 담당직원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윙윙 거린다.

병원에 부정적인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정년 퇴직하신 산부인과의 K 교수님은 3대에 걸쳐 산모를 받으신 분이었다. 그 교수님께 진료를 받고 출산한 여자아이가 자라 다시 그 교수님께 아이를 출산을 했다고 해서 병원에서 직원들끼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련의 시절 사용하던 군대 후레쉬로, 30년이 넘게 진료를 계속하는 소아청소년과 교수님은 지금도 근무 중이시다. 그 뿐인가! 새끼줄로 꼬은 계란 두줄을 들고 수술을 해주신 외과 교수님을 방문하여 완치의 고마움을 전하는 시골아주머니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정겨움을 전해준다.  

삶과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는 의료 현장은 인간의 생노병사가 순환되는 곳이기에 인간 내면세계의 진실까지 여과없이 보여준다.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박경철의 ‘아름다운 동행’을 읽어 본 사람들은, 의료현장이 얼마나 강렬한 이야기가 존재하는 곳인지 깨닫게 된다. 희귀질환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애절한 사연과 눈물 그리고 묵묵히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들의 숭고한 일터인 의료현장은 말 그대로 거대한 이야기가 숨 쉬는 곳이다. 투병과정이 문학과 방송의 단골소재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군상! 이곳에서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 드러난다. 인간관계와 돈이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가식없는 원초적인 얼굴로 나타난다. 또한 그렇기에 돈만으로는 인간이 살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접하면서 나는 어떤 강렬한 느낌에 매료당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기획팀에 근무할 때에는 사무실에 앉아서 ‘~카더라’ 식의 얘기를 듣는 수동적인 수신자에 그쳤지만, 이제는 바로 코 앞에서 목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변에 알리는 적극적인 송신자의 역할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 역할이 싫지 않았다. 아마도 강렬한 스토리, 사람의 매력에 끌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의료기관은‘이야기 수집가 (Story Collecter)’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리고 전염된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널리 전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는 참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보가 가르치는 사실이고 머리를 채우는 도표라면, 이야기는 가슴을 채우는 우화고 움직이는 행동이 된다. 상품의 사용후기가 물품구매의 기준이 되고, UCC 가 마케팅 수단이 되는 것도 결국 ‘이야기의 힘’ 때문 아닌가? 이야기는 광고, 홍보, 브랜드 마케팅을 위한 전방위적 도구가 되어, 효과적인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고객의 마음속에 포지셔닝 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병원을 찾는 고객들에게 의료기관의 사명을 재조명하면서, 역사의 뿌리를 뒤져 가치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고, 작가적 상상력으로 버무려, 의료서비스에 담아내야 하는 역할을 요구받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생명을 존중하는 숭고한 설립정신과 의료철학을 영혼과 개성이 담긴 이야기에 담아, 차별화되고 매력적인 스토리로 고객들에게 다가갈 때, 그 믿음은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로 이어질 것이다.

어쩌면,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존중되어야 하는 의료계야 말로, 감성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스토리텔링이 꽃 필수 있는 최적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은 사람이다. 사람이가장 강렬한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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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10.25 10:20:11 *.42.252.67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 즉, 병원이나 학교의 아이들이나

모두 사랑의 결핍 장소인 것만 같아.

어느새 훈훈한 이야기를 지닌 의사의 이야기도 정년을 앞 둔

오래된 의사에게서 찾아 볼 수 있고, 가요의 가슴 울리는

노래 가사도 오래 전에 나온 노래들이 전부인 것 같아.

돈과 유행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진 세상은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건조하고 황량하기만 하다.

주위에서 사람 살아가는 모습으로 힘을 얻고

노래 가사에 위로를 받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리워.

황금 들판으로 넘실대던 풍성한 들판은 어느새

텅 비어 버렸다. 자꾸 살아가며 기운을 잃는 것은

텅빈 가슴에 채워 줄 따뜻한 스토리가 없어져 가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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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10.25 17:35:35 *.10.44.47
의료현장의 이야기 수집가!
오빠의 그 이야기가 온 국민의 귀와 눈과 가슴을 즐겁게 해 줄 그날이 머지 않았네요. 
느껴져요. 키보드를 타고 손끝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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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10.26 01:36:53 *.129.207.200
병원 24시, 이야기 같네요. 앞의 깡패는 참 무식해요. 요즘 깡패 저렇게 무식하지 않은데...오히려 일반인 보다 더 조심스러운 것 같더라고요.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참 여러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중에는 어머니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이 있지요. 어머니라고 하면 이를 갈아요. 모범생인데, 어머님때문에 월급 차압당하고, 회사에서도 짤리고...저희 어머니야, 자식에게 물불 가리지 않지만, 이런 사람도 있더라고요. 핏줄도 똑같은 핏줄이 아닌 것 같아요. 정말 부모 잘 만나고, 자식 잘 자라는 것은 복이라는 생각듭니다. 

형 이야기,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네요. 현장감도 있구요. 의사들의 현장이야기는 많지만, 형이 이야기하면 보다 객관적이고, 다른 시각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사람에게 치여서, 고단하시겠지만, 매일 이야기꺼리가 있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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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7 16:11:54 *.230.26.16
오빠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의 설립이념에 온 맘으로 공감하고 또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내 힘을 보탤 수 있는 곳,
그 곳에서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제가 왜 오빠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는지 아시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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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7 22:00:51 *.186.57.58
터미널. 장례식장. 병원. 학교.
때가 되면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그리고 또  때가 되면 떠나가는 곳.
저마다의 살아 온 이야기들이 있고, 가슴아픈 사연들이 함께 하는 곳,
누구나 한 번쯤은 가봤거나, 꼭 가게 되는 곳.
결혼식장처럼 화려하게 꾸며진 이야기보다도..
더 진솔하고, 꾸밈없는 곳.
서초동 새벽 꽃시장 생각이 나네요.
가끔씩 힘들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찾으라던 선배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를 비쳐보기도 하고, 삶의 의미를 묻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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