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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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가 간혹 찾아온다. 화가가 붓을 들 수 없고, 글쓰는 자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글을 쓸 수가 없다. 학자는 연구 진척이 안되 논문을 쓸 수 없고 악상이 떠오르지 않은 음악가는 술만 마셔댈 수밖에 없는 정신의 휴지기를 맞곤 한다. 그리고 이런 재앙은 일시적인 슬럼프로 짧게는 몇 일, 길게는 몇 달을 머물다 사라지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10년 20년 계속되어 그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지식 노동자나 예술가 같은 창의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영감과 번뜩임이 생명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어느날 재앙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찾아올 수 있다. 일생동안 이런 날을 만나지 않은 자는 행운이리라. 그 축복받은 자는 평생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운 나쁘게도 그런 저주의 날이 찾아와 버리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고, 빨리 그 재앙의 날이 지나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왜 이런 정신의 림보(limbo)상태가 찾아오는 것인가? 그들의 의지와 상반되는 그런 비극을 맞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식 노동자나 예술가가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정신의 제자리걸음만 계속 반복하는 이런 림보의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가 두 번째 걸음을 내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두 번째 생각으로 나가지 못하고 처음 생각에만 계속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창의성이 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첫 번째 생각만 계속 되어서는 얕은 물에서만 고기를 잡는 어부와 같이 된다. 대어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사고의 진전 없이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그대는 이런 림보상태를 경험한 적이 없는가? 그렇다면 그대의 운명에 감사하라. 그러나 이런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그것도 오랜 기간 동안 그런 지옥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두 번째 걸음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 힘이 혹시라도 자신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지를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나는 오랜 기간 동안 이런 제자리걸음 상태를 지속하고 있었다. 내가 원한 건 뛰어 나가 달리는 일이었지만, 내 의지와는 정반대로, 나는 늘 신발끈만 묶는 마라톤 선수같이 출발선에서 지지부진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한두발 내딛으면 거기서 또 신발끈을 매만지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첫 번째 단계에만 머물고 있었다.
왜 나는 첫 번째 발걸음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인가? 어쩌다가 억지로 한발을 떼도 그 이후 역시 또 머뭇거리며 거기서 다시 제자리걸음이다. 도무지 경기에 참여할 수가 없다. 나는 왜 이런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던 것인가? 창의성을 요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이런 제자리걸음은 죽음과도 같은 상태이다. 깊이 몰입하지 못하는 그는, 절대 창조물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로 인한 고통은 일반인이 상상하는 이상이다.
원래 그림을 그리지 못한 사람이었다면, 자신이 그림을 그려내지 못한다 해도 별로 슬플 이유가 없다. 원래부터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예술가는 자신의 그런 상태를 고통과 절망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다. 혹시 그가 고도의 정신 에너지로 작품을 제작한 적이 있다면 그의 현재는 참으로 비극적일 것이다. 그의 정신은 이미 사망 상태를 맞았다고 스스로 절망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갈지 모른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한 인간은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어가야 한다고 니체는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낙타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해야 한다’를 생각하며, 짐을 싣도록 자신의 등을 내어준다. 인내심이 강한 낙타는 무릎을 꿇고 자신이 견딜 수 있을 만치 등을 내어준다, 그리고 잔뜩 짐을 싣고 사막을 통과한다. 반면 사자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고 싶다’ 혹은 ‘나는~ 할 것이다’라고 외치며 스스로 사냥하는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 당연히 낙타가 아닌 사자로 살아가야 한다. 낙타에서 사자가 되는 것이 정신의 첫 번째 변화 즉 최초 진화이다. 그러다가 사자는 어린아이가 된다. 두 번째 진화이다. 아이는 순진무구하고, 쉽게 망각하며, 늘 새로운 출발을 한다. 매사가 놀이이고 그들은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이다. 아이는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다. 어린아이가 될 때 비로소 인간 정신은 최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너희가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 성경 가르침이 여기서도 적용된다.
나는, 두 번째 발을 내딛지 못하는 나의 비극이 환경과 노화의 결과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왜 나만 환경이나 노화의 영향을 받는지를 니체의 가르침을 보며 생각하게 되었다. 왜 나는 예전에는 잘하던 것을 지금은 하지 못하는가?
내가 두 번째 걸음을 내딛지 못했던 것은 '~해야한다‘는 의무감에 의해 낙타의 삶으로 전락해버린 탓임을 보게 되었다. ~해야한다는 의무감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그에 반대하는 힘이 내부에서 올라올 수가 있다. 정신 에너지가 강한자 일수록 이런 반대되는 힘도 아주 크다. 따라서 그 숙주는 ’해야함‘과 ’하기싫음‘의 내부 전쟁을 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스스로 지쳐간다. 놀이가 아닌 일이 기본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어느 시점에 진화가 아닌 추락을 해버렸던 것이다. 오래전, 내가 창의적인 생산물을 만들어 내던 그때는 ’해야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지 않을 수 없어서‘ 그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취미가 생각하기‘라고 말할 정도로 깊이 생각하고 넓게 생각하는 날을 즐기며 살았었다. 그 사고실험의 깊이가 내게 창의성을 가져다 주었고, 매일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처럼, 내 연구 결과는 늘 새롭고 아름다웠었다. 그때 나는 의무감에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즐기면서 그 사고실험들을 해내고 있었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사냥하는 사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운명조차 내게 그 어떤 강요도 하지 못하던 날들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을 그냥 하는‘ 단순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날은 사자가 되었다가 다른 날은 어린아이가 되었다가 또 다른 날은 사자가 되었다가를 반복하며 나는 내 삶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본의 아니게 한순간 쉬게 되었다. 그 쉼에 불안을 느낀 나는 빨리 그때처럼 생각하고 일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서두르게 했으나, 불안 초조만 느꼈을 뿐 그 속으로 들어가질 못했다. 의무를 느끼면 느낄수록 알지 못하는 힘이 나를 가로막고 있는듯했다. 전쟁이 시작되었고, 즐거움이 사라져 버린 그곳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열매를 볼 수 없는 잡초만 보이는 사막같은 상태를 오랫동안 견뎌야만 했었다.
원인은 노화나 환경 탓이 아니었다. 나의 의무감이 나를 막아서게 했고, 즐기지 못한 나는 무엇에서도 기쁨을 만들어내지 못해, 아무리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악순환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과도한 의무감이 준 결과였다.
그런 내게 필요한건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넘어설 수 있는 ‘하고 싶은 이유’와 ‘그냥 즐기기’이다. 내가 왜 이일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해야한다’는 생각만으론 두 번째 걸음을 내딛을 수 없음으로 보았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이유’를 찾지 못한다 해도 그냥 놀이하듯 하는 아이가 된다면 쉽게 진행해 나갈 것이다. 아이는 매일 새 출발을 하고,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가 되어 모든 것을 놀이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아이는 지치지도 않고 아이가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의무의 늪에서 나와, 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어린아이의 순수를 회복하는 일이 내게 절실하다.
그렇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서는,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고 니체가 말해다.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예술가, 학자, 작가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야만 한다.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선 자신을 긍정해야 하고, 혹 불행했던 지난날과도 화해해야 하며, 낙타로서 지나온 자신의 사막조차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들이 될 때 그는 비로소 사자에서 아이가 되어 진정한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그의 생각은 두 번째 단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자기를 수용하고, 적을 용서하며, 운명을 사랑할 때 비로소 그는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어린아이로 진화하는 인지의 전환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니체의 ‘초인정신’이 가르쳐준, 니힐리즘(Nihillism)을 넘어설 수 있을 정신의 ‘영원회귀’ 방법이다.


갱숙에게는 어린 아이와 숙녀와 어머니의 열정이 가득하면서도 무쇠와 같은 강인함으로 자신만이 지니는 철통 같은 힘이 있지... . 그대만의 길로 행복해 지길 바래.
성경의 구절과 또 니체의 주장을 인용할 때, 확실하게 몇 장 몇 쪽 등을 기입해 두면 나중에 글 다듬을 때도 좋고, 독자도 객관적인 지식으로 인지하게 되지. 그렇게 하면 어떨까 하며 읽었어.
홍시를 좋아하시는 엄마에게 오빠가 대봉을 보내왔다. 감의 색갈이 참 곱고 탐스러워 예쁘다. 제 스스로 풍성하고 아름다운 결실된 까닭인가 보다. 계속 열공하길. ^-^*
요즘 제가 뭐를 해야한다에 사로잡혀 앞으로 못나가고 있어,
그동안 좋아한..어린왕자의 삽화를 베껴그리고 있습니다.
어린왕자의 이웃별은 아주 작더군요. 작은 세계에 사는 사람들. 왜 그 혹성들이 작았는지 그리면서 알게되었습니다. 지구에 살고 계신 경숙님. 많은 꽃을 사랑하고, 많은 별을 사랑하고, 많은 우물을 사랑하고, 많은 여우를 사랑하시길. 지구에는 다행히도 꽃과 별과 우물과 여우와... 비행사가 아주 많아요.
경숙님이 별이 아주 커다란 별이 되어 여러사람이 어울려 살길 기도합니다. 아이는 그 누구하고도 친구를 잘 하나니까..... 물론 저하고도 친구 해주셔야 해요. 매주 월요일에 칼럼이 올라올 때가 되면 '나는 2시간 전부터 흥분합니다'라는 그런 기다림을 갖고 싶습니다.

커다란 별이 되어 여러사람들과 어울려 살려면 우선 자신부터 바로서야 겠지요
내가 흔들리는데 친구가 무슨 소용이 되며 내가 진정 누구의 친구가 될수있을까요?
혹자는 바로서는 데 친구가 도움이 되더라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주변 사람땜에 더 흔들리기도 하지 않습니까?
저만 그런가요?.
어린아이의 친구란 그냥 놀기위한 동무 아닐까요
이 나이에 놀기위한 동무를 트럭으로 갖는거 미친*입니다
게다가 편가르기 하는 아이놀이 ~~ 으악입니다요
단 한명이라도 대화가 되고 역지사지 할수있는 사람하고는 피를 나누는 관계가 만들어 지겠지요
제 생각입니다
저는 피를 나누는 동지가 되고 싶지 깔깔거리는 동무가 필요하지도 되고 싶지도 않아요
자신의 감정해소를 위해 깔깔거린후 돌아서면 공허해 지는 관계 살면서 억으로 억수로 겪었습니다
언제 한번 만나 역지사지 테마로 토의해봐요~~^,^ 그거되면 동지부터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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