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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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하기 싫은 주
칼럼을 쓰는 것을 이번 주는 포기하려고 했다. 여행 전 여름쯤에 그런 때가 있었고 이번이 두 번째이다. 복합적인 이유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에너지가 없다. 마음을 쓸 수가 없고 나눌 열정이 식어버린 듯하다. 왜 이런 것일까? 책을 읽으며 하나의 주제를 잡고 칼럼으로 연결할 때는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었던듯하다. 아니 그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책을 쓰겠다는 생각이, 그 욕심이, 어떤 테마를 가지고 책 한권을 완성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막아서는 것 같다.
“이번 주는 건너뛰자” 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편한가? 뒤척인다. 그런데도 무슨 말을 쓸지 도대체 아이디어가 없다. ‘무기력’을 주제로 글을 쓰려니 내가 무기력해져 버린듯하다. 차라리 ‘자발성’을 하겠다고 할 걸 그랬나? 헛웃음이 나온다.
이번 주를 건너뛰면 다음 주도 또 그리될 것 같아 일어나 노트북을 연다.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런데 손가락 끝으로 만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심장 깊은 곳에서 애정을 퍼올리듯 한자 한자 써내려가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 나의 심장은 얼음처럼 차가워져 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건 글 쓰는 자의 자세가 아니다. 이렇게 쓴다면 쓰레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한주 떼우기 위해 이런 날림 글을 쓰고 있어야 하는가?
무기력? 이것도 무기력의 한 종류인가? 무기력을 주제로 책을 쓰겠다고 선언하니 신이 내게 그 상태를 허락한 것인가? 아무런 의욕이 없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이다. 냉소적인 웃음만 나온다. 스스로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정말이지 나 하나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무기력의 상태에 빠지면 슬픔과 분노조차도 느끼지 못한다고 데이비드 호킨스는 말했다. 무기력에 빠진 환자가 울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치유가 시작된다고 그가 말했었지. 슬픔의 감정도 없는 나는 화도 나지 않는다. 그냥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변명할 기운도 바꿀 의욕도 실날같은 희망도 없다.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잠만 자고 싶다. 완벽한 무기력상태이다.
화려한 말속의 빈 수레를 보았고, 얼굴 가득한 미소를 흘리면서 돌아서는 그 얼굴이 악마처럼 변하는 것도 보았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인가? 그래서 내가 이리 식어버린 것인가? 인간에 대한 희망 상실이 나로 하여금 그들에 대한 애정을 가져가 버린 것 같고, 그로 인해 내 마음을 열어야 하는 글을 쓰기 싫어지게 만든 듯하다. 이제 그들에게 “왜 그러니?” 라는 말조차도 하기 싫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을 뿐이다.
이제 나는 내가 글을 쓸 대상이 누구인지부터 설정해야 한다. 이 무서운 무기력에서 야기된 무능력의 상태를 탈피하려면 대상과 목표를 정해야 할 것 같다. 10도 정도의 미지근한 온도로는 부패만 일어날 것이다. 100도가 되어야 비로소 물이 끓고, 200도가 넘어야만 죽는 세균도 있다. 정신의 치명적인 독소, 무기력의 상태를 벗어나려면 심장의 온도를 높여야만 함을 나는 본능적으로 느낀다.
컬럼을 써야한다는 숙제가 없었다면 나는 이런 상태로 몇일이고 몇주고 지났을 것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이런 상태가 지나갔거나,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로 그 상태에서 빠져나왔거나 그리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숙제를 해야 하므로 억지로라도 그 상태에서 나와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으므로 가능한 빨리 그 상태로부터 탈출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나의 무기력 상태를 진단해야 했고, 그 이유가 ‘애정 상실에서 오는 냉소’가 한 이유임을 알았다. 여기서 탈피하려면 다시 온도를 높여야 하고, 온도 높이기 위해선 열정을 되찾아야 함을 느꼈다.
나의 열정의 근원은 무엇인가? 사람에게 희망을 걸었는가? 그래서 그들의 흔들림에 따라 함께 흔들리고 있는가? 변하기 쉽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에게 이제 희망을 걸지 말라. 차라리 사명을 보아라. 글을 써야 하는 사명을 바라보고 나아감이 훨씬 안전하다.
나의 열정을 앗아가는 뱀파이어가 사방에 가득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고 목적지까지 갈수 있을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함을 배운 한주간이다. 에너지를 빼앗기는 순간 무기력의 상태로 빠져들 것이고 그때부터는 일이 어려워진다. 삼투압 작용을 생각해보자. 언제나 농도가 약한 쪽에서 높은 쪽으로 빨려 들어가기 마련이다. 나의 사명이 뱀파이어들보다 더 크고, 내 심장이 더 뜨거우며, 나의 이유가 그들보다 더 명확하다면 정신력의 삼투압작용에 의해 나의 열기를 뺏기는 불행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로부터 오히려 흘러들어올 것이다. 그러므로 늘 나의 열정을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를 스스로 만들어 두어야 한다. 이번 일을 통해 그게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알듯하다. 늘 끓고 있는 물, 항상 타고 있는 횃불, 언제나 살아있는 화산이 되는 길뿐이다. 나의 뜨거움이 세상을 구원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지켜나갈 것이다. '그들보다 농도가 더 진해야 하고 온도가 더 높아야만 한다.' 숙제하기 싫은 한주간 동안 배운 교훈이다. 다음 주에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질병 같아요. 이런 날이 올 때면 저는 방바닥에 붙은 낙지 같다는 표현을
쓰거든요. 무언가 해야 하는데 바닥에 붙은 빨판이 좀처럼 내 마음대로
떨어지지가 않잖아요. 이럴 때 정말 난감하거든요,.
언니의 책에서 이런 무기력증에서 빠져 나오는 열정의 방법이 있다면
나는 바로 읽고 실행해보고 싶어요.
저는 한비야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작가인데
그녀의 글의 힘이 나를 무언가 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녀가 비빔국수를 좋아한다는 글을 읽으면 며칠을 비빔국수만 해 먹기도 해요.
단순 무식하게 따라해 보게 만드는 그녀의 글은 저에게 처방전같이 느껴져요.
진짜 나 같은 독자가 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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