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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8일 16시 36분 등록
화장실 사진 보완.jpg

추운 겨울 새벽. 갑자기 배가 아프다. 참아본다. 안되겠다. 화장실에 가야 되겠다. 그런데 혼자 가기에는 너무 무서워 곤하게 자고 있는 누나를 깨웠다.

“누나야, 화장실 같이 가자.”

예상된 결과 였지만 코를 드르렁 거리며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어떡하지. 그렇다고 오강에 큰 볼일을 볼수는 없는법.

체육복에다 두툼한 오버를 껴입고 집 뒤편에 있는 화장실로 향한다.

도둑인줄 알고 멍멍이가 짖었다. 이놈아 주인도 못알아 보냐.

신발 한짝을 힘껏 던져 본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달님도 잠에 취해 있어 불빛 하나 없는 집 뒷간 가는 길은 왜그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드디어 도착. 빨간색 전등을 켠다. 그제사 어슴프레 실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 하였다.

안정된 자리를 잡고 문을 잠궈 보지만 무서운 마음이 더욱 들어 엉성한 포즈로 문고리를 손으로 꼭 잡고 있는다.

바람 소리가 이상하다. 꼭 이럴땐 귀신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몽달 귀신, 처녀 귀신 별별 이야기가 생각이 다난다.

밑에서 무언가 올라올 것 같다.

파란 종이 줄까. 빨간 종이 줄까. 머리카락이 쭈뼛해 진다.

밑을 흘낏 내려다 보았다. 까마득한 심연속에 보이지 않는 절벽이 느껴진다.

빨리 나갔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볼일은 진행중 이다.

갑자기 식은땀이 났다. 심장은 콩닥 콩닥 거린다. 누군가 문을 열어 제낄 것 같다.

문고리를 쥐고 있는 팔에 괜히 무거운 힘줄이 드리워 진다.

공염불로 끝나겠지만 다시는 저녘에 이것저것 아무것이나 주워 먹지 않으리라 작정을 해본다.

드디어 볼일을 끝냈다. 서둘러 매달린 신문지를 여러장 찢어 해결을 한다.

문을 열고 나오니 스산한 찬바람이 한번더 몸을 감싼다.

줄행랑을 치듯 방안으로 들어서니 그제사 긴장감이 가셨다. 휴~

얄미운 누나는 아무것도 모른채 잠만 자고 있다.

저것도 누나라고 우이씨~

 

머리털 나고 첫 유럽 여행.

이런. 웬일로 괜찮다 했더니만 여정중 드디어 갑자기 배에 살살 신호가 오기 시작 하였다. 참아야해. 여기는 이역만리 타지야. 참아야 되느니라.

이런 나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배는 정상적인 신진대사에 의해 위험 신호로써 경고를 계속 보낸다. 앵앵~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던가. 도저히 안되어 지하 화장실 마크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입구로 들어가려는 찰나. 코쟁이 한사람이 나를 잡는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돈을 달라는 눈치이다.

이런 젠장~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사방 천지에 널린게 화장실 인데. 나참 어이가 없다.

그렇다고 고국에서 처럼 막무가내로 떼를 쓸수도 없고.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찾아 보았다. 아뿔싸. 땡전 한푼 없다.

평소에 금전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나의 스타일이 빛나는 현장 이었다.

찰나의 순간에 해결방법을 찾기위한 수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1. 주인장에게 손짓 발짓으로 설명 및 하소연을 해서 양해를 구한다.

2. 앞뒤 가릴 것 없이 무작정 뛰어 들어가 급한 불을 먼저 끈다.

3. 뒷사람에게 돈을 빌린다.

4. 아무 생각없이 하늘이 노랗다.

그런 가운데 다행히 하느님이 보우하사 동행한 일행을 만났다. 쾌지나 칭칭 나네~

뭐라 설명도 없이 급한 마음에 동전을 뺏다시피 해서 주인장 손에 던져주고 쾌속으로 들어간다. 평소에 이런 스피드와 집중력 이라면 하지못할 일이 없을 터인데.

볼일을 끝내고 나오니 세상 모든 것이 내것같고 아름답게 보인다.

여유작작한 마음. 이국적인 풍경이 그제사 눈에 들어왔다.

조금전과는 달리 오 솔레미오♫ 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렇지. 세상은 역시 아름다워.

그런데 너무 인심이 야박하다. 화장실 입장시에도 돈을 받다니. 나참.

 

지하철 출근길. 기다리던 전동차가 들어왔다. 비좁은 곳을 뚫고 들어가 다행히 빈자리가 보이길래 날랜 몸으로 자리를 나꿔 채었다. 일진이 좋은 것 같다.

두세 코스가 지났을까. 웬일로 그냥 지나가나 했더니 그분의 노크가 시작 되었다. 우짜노. 어제 새벽까지 과음한 것이 그대로 조건반사가 되어 나올려고 하는 모양이다. 참 지랄 같은 위장이다. 꼭 술을 먹은 다음날 아침이면 볼일을 보았는데도 이렇게 그분이 연이어 찾아 오곤 하니.

강한 정신력을 다시금 되새기며 아랫배에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야속한 내부 장기는 계속 소리를 내며 반응을 하고 있다. 꾸룩 꾸룩. 안돼. 내가 어떻게 차지한 좌석인데. 거기다 여기서 하차하면 지각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나의 인내심도 도가 넘어간다. 어쩔수 없다. 일단 급한 불을 먼저 꺼야한다. 아무 역이나 내렸다. 화장실이 어디에 있더라. 계단을 뛰어 올라가 본다.

이런, 한참을 가야 한다. 평소와는 달리 가는 길이 천리길 이다. 그렇다고 뛰지도 못하고. 양복 정장에 신사 체면이 있지. 드디어 발견.

어라 휴지가 없다. 주머니를 뒤졌다. 다행히 500원짜리 동전 하나 발견. 베토벤 교향곡 환희의 송가가 절로 나온다.

나같은 사람이 많은지 문앞마다 사람들이 장사진이다. 줄을 잘서야 한다. 까딱 잘못하면 진짜 대형 사태가 난다.

단군신화 웅녀의 정신으로 기다리고 있건만 이런 옆줄에 사람이 먼저 들어갔다. 우이씨~

앞에 사람이 나올 기미가 없다. 다급한 마음에 문을 두드려 본다. 나의 신호에 똑똑으로 화답하는 그놈의 메시지.

그게 아니고 빨리 나오라고 이사람아. 몸이 비비 꼬인다. 한기가 밀려온다. 욕이 절로 나온다.

마인드 콘트롤을 하면서 헛둘 헛둘 임산부처럼 라마즈 호흡법으로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차원이 다른 세상의 그곳으로 들어갔다.

광명(光明) 이다.

 

‘뒷간과 처가는 멀리 있을수록 좋다’ 라는 속담이 무색해 지듯 화장실은 이제 우리의 가까운 문화 공간의 하나로 변하고 있다. 푸세식에서 수세식으로 거기다 비데에 여유를 즐길수 있는 사색의 쉼터로 까지.

친하다는 것은 편리 하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일부러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통해 새로운 느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지.

 

p.s

: 마트에 화장지를 사러 갔다가 흔하게 보아왔던 하얀색이 아닌 무표백 제품을 샀다. 원초적 본능이 팍팍 느껴지는
  누리끼리한 색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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