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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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톡!’, 유리창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사람과 개들을 구분하는 것은 투명한 유리 한 장이 전부였다.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눈에는 사랑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에 우리들은 왜 이렇게 예뻐만 보이는 걸까? 나도 그들을 살펴 찬찬히 보았다. 눈 두 개, 귀 두 개, 콧구멍 두 개, 입 하나 다 똑같았다. 단지 다른 것을 찾자면 그들은 네발 중 두 발로 걸었고 꼬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아~, 그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꼬리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틀림이 없다. 꼬리가 퇴화되어 우리 보다 진화되었다고 하지만 결국 그들은 꼬리의 매력과 털의 부드러움을 부러워하고 있음이 틀림이 없다. 나는 꼬리를 쳐보려고 했지만 나의 소심한 성격에 어느새 꼬리는 엉덩이 사이에 들어가 숨어 있었다.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늘 나의 소심한 성격이 장애가 되었다.
나는 한 장의 서류와 함께 이곳에 남겨진지 벌써 몇 달이 되었다. ‘이름: 스노우 볼, 출생: 미국 남부 플로리다, 생년 월일: 1993년 11월 15일, 성별: M’… 그나마 길에 버려지지 않고 동물병원에 남겨져 다행이었지만 그렇다고 나를 버려두고 간 사람들을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매일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띵똥~’ 도어벨 소리가 울리면 모든 나의 친구들은 벌떡 일어나 변신을 한다. 언제 잤냐는듯 벌떡 일어나 눈에 별을 쏟으며 꼬리를 치기 시작한다. 어디 그뿐인가 고양이도 아니면서 목에서 ‘갸르릉’ 소리를 내며 혀를 빼물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귀여운 척까지 한다. 사람들에게 발탁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내렸다. 친구들은 녹아내린 그들의 마음과 뺨을 샅샅이 핥으며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는 사랑을 쏟아 부었다. 그러면 간호사는 이때다 싶어 친절하게 우리의 견종과 몸값을 흥정하며 열을 올린다. 그렇게 친절했던 간호사는 사람들이 나가고 조용해 지면 돌돌 말은 신문지로 엉덩이를 강타하며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치곤 했다. 사실 그녀의 매일 반복되는 전화 대답과 설명이 나는 더 피곤한대도 말이다.
이미 나는 못생기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간호사의 사랑도 더 이상 받지 못했다. 성격도 다른 친구들처럼 활발하지 못해서 늘 구석에 동그랗게 몸을 말아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도대체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었다. 친구들은 재롱에 재주까지 부리고 외모 역시 뛰어났다. 사람들의 품에 안겨 세상밖으로 나간 친구들은 거의 외모가 주된 선택 사유였다. 나의 이런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나는 친구들과 잘 지내지도 못했다. 친구들은 당나귀같이 바짝 서있는 내 두 귀를 물어 뜯고, 안테나처럼 서있는 나의 꼬리도 물어 뜯었다. 자신없는 외모에 몸에 흉터까지 나자 나는 더욱 삶의 의욕을 잃어갔다. 밥을 먹으러 일어나기도 전에 다른 친구들이 와락 덤벼들어 다 먹어치워버려 끼니를 놓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렇게 나는 마음의 병도 육체적 병도 깊어갔다. 잘 걷지도 못하고 꼬리도 치지 못하는 나는 더 이상 개도 아니었다.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168시간, 즉 일주일 뿐이었다. 이 시간 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나의 ‘죽음’으로 몰아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얼마 전 우연히 간호사가 개들을 살피는 손님에게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법적으로 6개월간 가정에 입양이 되지 않는 친구들은 안락사를 시켜요. 사료값과 예방접종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예요. 그리고 수컷은 그 중에서도 인기가 없어 안락사의 우선순위가 되곤하지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우리도 어쩔 수가 없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멎어 버리는 것 같았다. 계산을 해 보니 내가 이곳에서 공짜밥을 얻어 먹은 지가 거의 육 개월 게다가 내 배에는 담배 꽁초만한 고추가 덜렁 달려 있었다. 바짝 엎드려 수컷이 아닌 척도 해보았지만 이내 소변을 볼 때 뒤쪽 다리가 번쩍 들어 올려졌다. 나는 숫놈이었다.
시계만 바라보았다. 이곳 생활이 즐겁지도 아니 사는 것이 재미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가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생각은 나에게 살고 싶다는 욕구에 에너지를 실어 주었다. 후회와 반성의 시간이 이어졌다. 나도 저들처럼 노력했어야 했다. 사람들의 눈에 들게 애교도 부리고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변화’하려 노력하지 않고 이제와 후회를 해본들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그냥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었다. 마냥 무기력해지는 내 몸과 마음을 어떻게 하면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시계의 초침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남은 나의 생에 다시 오지 않을 시간임을 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일요일 오후였다. 도어벨 소리가 들렸다. 나도 일어나서 최선을 다해 꼬리치며 시선을 끌어야 했다. 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평소에 내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때문에 생긴 건강의 악신호였다. 나는 웅그리고 앉아 커다란 나의 눈으로 두 남자 아이와 그들의 엄마로 보이는 동양 여자를 쳐다 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몸짓이었다. 그때 다른 친구들을 다 지나쳐 구석에 있는 내가 그녀의 손에 들려졌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손의 따뜻한 온기에 기대에 나는 ‘희망’이란 단어를 생각했다. ‘제발 나를 데려가 주세요~’. 간절한 나의 기도의 소리가 그녀의 가슴에 전달되기를 바랬다. 그 수선스러운 간호사는 나에 대해 설명을 했다. “병약하고 약간의 자폐증상이 있는 개이고 안락사가 일주일 남은 개이니 잘 생각하세요.”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하나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다른 곳에 한 눈을 팔지 않고 오로지 나만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사연이 있는 듯 했다. 간호사는 아주 호의를 베풀듯 말을 했다. “예방 접종비만 주세요. 개는 선물이고요.” 그 개에게 관심을 처음으로 보인 당신이 그 개의 인연인 것 같다며 말이다. 그녀는 말 없이 나를 안고 계산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그 갇힌 세상으로부터 나를 데리고 나왔다.
세상은 눈이 부시도록 환했다. 길에다 살포시 나를 내려 놓고는 “이리와봐” 했지만 이미 굳은 나의 다리는 걸음을 뗄 수 없었다. “괜찮아, 천천히 다리에 힘을 기르면 되는거야.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두 아이들과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그녀는 나의 집을 박스로 만들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나를 쳐다보며 이름을 짓기 시작했다. 까만 과자 두 개 사이에 하얀 크림이 발라져 있는 것 같아 보이니 ‘오리오’란 과자 이름으로 내 새 이름이 만들어졌다. ‘오리오’, 이제 내가 다시 살아갈 세상에 달콤한 과자의 이름으로 내 인생은 다시 살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극적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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