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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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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0일 09시 26분 등록

톡톡톡!’, 유리창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사람과 개들을 구분하는 것은 투명한 유리 한 장이 전부였다.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눈에는 사랑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에 우리들은 왜 이렇게 예뻐만 보이는 걸까? 나도 그들을 살펴 찬찬히 보았다. 눈 두 개, 귀 두 개, 콧구멍 두 개, 입 하나 다 똑같았다. 단지 다른 것을 찾자면 그들은 네발 중 두 발로 걸었고 꼬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 그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꼬리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틀림이 없다. 꼬리가 퇴화되어 우리 보다 진화되었다고 하지만 결국 그들은 꼬리의 매력과 털의 부드러움을 부러워하고 있음이 틀림이 없다. 나는 꼬리를 쳐보려고 했지만 나의 소심한 성격에 어느새 꼬리는 엉덩이 사이에 들어가 숨어 있었다.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늘 나의 소심한 성격이 장애가 되었다.

 

나는 한 장의 서류와 함께 이곳에 남겨진지 벌써 몇 달이 되었다. ‘이름: 스노우 볼, 출생: 미국 남부 플로리다, 생년 월일: 1993 11 15, 성별: M’… 그나마 길에 버려지지 않고 동물병원에 남겨져 다행이었지만 그렇다고 나를 버려두고 간 사람들을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매일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띵똥~’ 도어벨 소리가 울리면 모든 나의 친구들은 벌떡 일어나 변신을 한다. 언제 잤냐는듯 벌떡 일어나 눈에 별을 쏟으며 꼬리를 치기 시작한다. 어디 그뿐인가 고양이도 아니면서 목에서 갸르릉소리를 내며 혀를 빼물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귀여운 척까지 한다. 사람들에게 발탁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내렸다. 친구들은 녹아내린 그들의 마음과 뺨을 샅샅이 핥으며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는 사랑을 쏟아 부었다. 그러면 간호사는 이때다 싶어 친절하게 우리의 견종과 몸값을 흥정하며 열을 올린다. 그렇게 친절했던 간호사는 사람들이 나가고 조용해 지면 돌돌 말은 신문지로 엉덩이를 강타하며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치곤 했다. 사실 그녀의 매일 반복되는 전화 대답과 설명이 나는 더 피곤한대도 말이다.

 

이미 나는 못생기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간호사의 사랑도 더 이상 받지 못했다. 성격도 다른 친구들처럼 활발하지 못해서 늘 구석에 동그랗게 몸을 말아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도대체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었다. 친구들은 재롱에 재주까지 부리고 외모 역시 뛰어났다. 사람들의 품에 안겨 세상밖으로 나간 친구들은 거의 외모가 주된 선택 사유였다. 나의 이런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나는 친구들과 잘 지내지도 못했다. 친구들은 당나귀같이 바짝 서있는 내 두 귀를 물어 뜯고, 안테나처럼 서있는 나의 꼬리도 물어 뜯었다. 자신없는 외모에 몸에 흉터까지 나자 나는 더욱 삶의 의욕을 잃어갔다. 밥을 먹으러 일어나기도 전에 다른 친구들이 와락 덤벼들어 다 먹어치워버려 끼니를 놓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렇게 나는 마음의 병도 육체적 병도 깊어갔다. 잘 걷지도 못하고 꼬리도 치지 못하는 나는 더 이상 개도 아니었다.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168시간, 즉 일주일 뿐이었다. 이 시간 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나의 죽음으로 몰아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얼마 전 우연히 간호사가 개들을 살피는 손님에게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법적으로 6개월간 가정에 입양이 되지 않는 친구들은 안락사를 시켜요. 사료값과 예방접종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예요. 그리고 수컷은 그 중에서도 인기가 없어 안락사의 우선순위가 되곤하지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우리도 어쩔 수가 없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멎어 버리는 것 같았다. 계산을 해 보니 내가 이곳에서 공짜밥을 얻어 먹은 지가 거의 육 개월 게다가 내 배에는 담배 꽁초만한 고추가 덜렁 달려 있었다. 바짝 엎드려 수컷이 아닌 척도 해보았지만 이내 소변을 볼 때 뒤쪽 다리가 번쩍 들어 올려졌다. 나는 숫놈이었다.

 

시계만 바라보았다. 이곳 생활이 즐겁지도 아니 사는 것이 재미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가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생각은 나에게 살고 싶다는 욕구에 에너지를 실어 주었다. 후회와 반성의 시간이 이어졌다. 나도 저들처럼 노력했어야 했다. 사람들의 눈에 들게 애교도 부리고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변화하려 노력하지 않고 이제와 후회를 해본들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그냥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었다. 마냥 무기력해지는 내 몸과 마음을 어떻게 하면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시계의 초침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남은 나의 생에 다시 오지 않을 시간임을 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일요일 오후였다. 도어벨 소리가 들렸다. 나도 일어나서 최선을 다해 꼬리치며 시선을 끌어야 했다. 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평소에 내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때문에 생긴 건강의 악신호였다. 나는 웅그리고 앉아 커다란 나의 눈으로 두 남자 아이와 그들의 엄마로 보이는 동양 여자를 쳐다 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몸짓이었다. 그때 다른 친구들을 다 지나쳐 구석에 있는 내가 그녀의 손에 들려졌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손의 따뜻한 온기에 기대에 나는 희망이란 단어를 생각했다. ‘제발 나를 데려가 주세요~’. 간절한 나의 기도의 소리가 그녀의 가슴에 전달되기를 바랬다. 그 수선스러운 간호사는 나에 대해 설명을 했다. “병약하고 약간의 자폐증상이 있는 개이고 안락사가 일주일 남은 개이니 잘 생각하세요.”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하나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다른 곳에 한 눈을 팔지 않고 오로지 나만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사연이 있는 듯 했다. 간호사는 아주 호의를 베풀듯 말을 했다. “예방 접종비만 주세요. 개는 선물이고요.” 그 개에게 관심을 처음으로 보인 당신이 그 개의 인연인 것 같다며 말이다. 그녀는 말 없이 나를 안고 계산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그 갇힌 세상으로부터 나를 데리고 나왔다.

 

세상은 눈이 부시도록 환했다. 길에다 살포시 나를 내려 놓고는 이리와봐했지만 이미 굳은 나의 다리는 걸음을 뗄 수 없었다. “괜찮아, 천천히 다리에 힘을 기르면 되는거야.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두 아이들과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그녀는 나의 집을 박스로 만들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나를 쳐다보며 이름을 짓기 시작했다. 까만 과자 두 개 사이에 하얀 크림이 발라져 있는 것 같아 보이니 오리오란 과자 이름으로 내 새 이름이 만들어졌다. ‘오리오’, 이제 내가 다시 살아갈 세상에 달콤한 과자의 이름으로 내 인생은 다시 살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극적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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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0 09:41:00 *.230.26.16
언니, 이번 칼럼 진짜 좋은데요!
오리오와 언니의 극적인 만남, 그것을 오리오의 시각으로 풀어낸 것도 좋구요.
앞으로 이렇게 글이 전개되는군요. ㅎㅎ 

음, 한가지 첨부하자면 오리오가 바라본 '그녀'가 좀더 생동감있게 표현된다면...
왜 그녀는 하고많은 강아지들 중에서 그녀석을 선택했을까요? 
궁금, 궁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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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12.20 10:15:47 *.42.252.67
나의 눈에 비춰졌던 '사연'이었겠지.
난 늘 첫 강아지 지나와의 기억을 아픔으로 가지고 있었잖아.
그래서 늘 치와와에게  눈이 갔어.
첫 강아지가 치와와였고  오리오도 치와와란 점이 빠져있구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궁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앞으로 전개되는 글은 밝고 쾌할하게 나갈 예정이야.
가발새발체 그리고 화려한 댓글체로....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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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12.20 12:49:32 *.236.3.241
고뇌하는 오리오의 모습, 장난꾸러기 오리오에게 이런
 아픔이 있었네요.  오리오의 독백을 읽으니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개에게 애정이 뭉클 솟네요 ^^

개의 수명이 15년정도니까 97년생인 오리오는 이미 중년을 거쳐
환갑을 넘긴 나이겠지요. 희망이라는 키워드에 황혼의 개가 발견한
새로운 새상을 덧붙여 보여줄만한 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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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12.23 10:32:37 *.42.252.67
어머 어머 우리 오리오 나이를 내가 왜 이렇게 늘렸을까
우리 오리오 나이는 2003년 생 7살이야.ㅋㅋ
환갑이라니 ....아마 중장년기 쯤 되었을거야.
중년의 애환을 그려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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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12.21 02:14:06 *.40.25.24
다들 첫문장이 감각적이고, 세련스러운데요. '톡톡톡'

오리오. 근 1년 동안 들으니, 만나고 싶네요.

누나야 말로 소설을 써야할 것 같은데요. 개의 시점만으로 서술하면, 한계가 있으니까요. 개와 개의 주인, 그의 가족들의 시선을 바꾸어가면서 서로 관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이미 이런 소설들이 몇 개 있습니다. 최근,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도 각장마다 시점이 다르지요.

개의 이야기를 했으면, 개 주인의 시점으로 와서 다음 이야기를 하면 연결도 자연스러워 보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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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12.23 10:33:16 *.42.252.67
만날 날이 오겠지..... 기다려 아꼈다 봐야 더 소중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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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2010.12.21 06:44:41 *.168.224.196
"잘 걷지도 못하고 꼬리도 치지 못하는 나는 더 이상 개도 아니었다. "
이 구절을 읽는 데 어찌나 마음이 짠 하던지 오리오라는 개 이야기가 아니라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기운없는 노인의 심정같다고나 할까.
오리오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마구마구 일어나는 글이에요.
이제는 오리오를 선택한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그녀와의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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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12.23 10:34:44 *.42.252.67
그래? 오~ 혹심이 일었다하니 다행이야.
밍밍한 글이 되면 안 되는데.......
어려운 작업임은 틀림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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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10.12.22 20:45:40 *.160.33.21

좋은데. 
가만 있어봐.  이놈 저놈 섞을 게 아니라 , 계속 오리오의 시선으로 장편이 되면 어떨까 ?   
오리오의 눈에  비친 사람들,  전혀 다른 기준으로 평가되는 인간 군상의 삶을 재미있게,  폭소와 눈물로  이끌어 보삼.
소설과 수필 사이로 유유히 걸어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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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12.23 10:36:40 *.42.252.67
오리오의 시선으로 장편이요?
아아~ 점점 어려워지네요.
네. 걸어 보겠습니다.
흐흑 , 그런데 걷는 길에 왜 눈물이 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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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12.23 12:59:53 *.30.254.21
무지 좋다..
전문적 이야기꾼의 삘이 나는 걸?

오리오의 시선만으로 이야기 꾸리기 한계가 있으면
다른 친구의 시선도 넣어서 다른 식으로
4인 4색..아니 5견 5색? 이렇게? ㅎㅎ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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