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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3일 21시 22분 등록

  로고.jpg   심스홈 이야기 19



 욕실 드레싱 1

 오래된 습관


욕실의 영어 이름 ‘bathroom’ 은 까마득한 옛날, 로마인들이 영국의 Bath 지역을 점령했을 때 세운 온천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욕실의 또 다른 이름, 프랑스에서 화장실을 가리키는 투왈렛 toilette 은 (영국과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토일렛 toilet 으로 바뀌었다) 원래 몸을 치장하는 모든 행동을 총칭하는 단어였다.


투왈렛 toilette, 여기엔 조금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술과 패션의 도시로 명성이 자자한 지금의 파리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경이지만 오래 전 물이 귀했던 시절, 일반 가정은 물론이거니와 그 유명한 베르사이유 궁에도 화장실이 없었단다. 대신 나무로 만든 의자 몸체 한 가운데 구멍을 뚫고, 그 안에 구리나 자기로 된 그릇을 넣어 제작한 ‘구멍난 의자’라고 불리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이동식 요강을 썼다는데.. 뚫린 의자에는 오래 앉아 있기 편하도록 벨벳으로 쿠션을 만들어서 놓고, 몸체에는 세심하게 조각을 새겨 넣어 정말 변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호사스럽기 그지없었단다. 게다가 왕이 볼일을 마치면 레이스나 양모, 부드러운 면을 겹쳐 만든 최고급 천을 휴지 대용으로 사용했다는데.. 음.. 흠.. 근거는 좀 희미해 보이나 작은 장식용 천을 의미하는 트왈 toile 에서 기인했다는 투왈렛 toilette 에 얽힌 변천 과정에, 설득력을 높이는 얘기가 아닐까 짐작되어진다.


모든 면에서 섬세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 했던 18세기 로코코 시대 여성들은 매일 두 번의 투왈렛을 가졌다고 한다. 첫 번째는 잠자리에서 일어난 여인이 제일 처음 비밀스럽게 하는 볼일을 포함한 세수하는 일과, 자신을 좀 더 아름답게 보이고자하는 여성들의 변신 시간인 두 번째 투왈렛, 화장하는 일이었다.


투왈렛은 당시 여성들에게 필수적이면서 중요한 의무였고, 투왈렛이 얼마나 중요했던지 집 안에 투왈렛 만을 위한 작은 방이 생긴 것도 이 무렵부터라고 한다. 다양한 기능으로 무장한 지금의 욕실은 이렇게 한 공간에서 화장과 생리적인 볼일 등을 모두 해결한 지혜로운 옛 어르신들의 오랜 습관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


이렇게 기본적인 볼일을 보는 용무에서부터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고, 옷을 입는 것뿐 아니라 목욕을 하고, 이를 닦는 것까지.. 오늘날 욕실에서 행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모두 투왈렛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투왈렛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당시 모든 사람들의 미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인 동시에 하나의 생활 습관이었다.



내게도 오래된 욕실 습관이 하나 있다. 욕실 문을 열자마자 나의 시선이 가장 먼저 꽂히는 곳은 바로 수건걸이, 재경 몇회 동문회, 무슨 산악회, 창립 몇주년 기념.. 이라고 새겨진 면을 뒤집어, 글씨가 보이지 않게 수건을 다시 걸어 놓는 일이다.


우리 집은 물론이거니와 여느 집 욕실을 보아도 어느 기념회나 모임에서 받은 글씨가 새겨진 수건을 세면 수건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맘 같아서는 오프 화이트 컬러와 뉴트럴 컬러 계열의 타올을 톤온톤으로 비치해 호텔 욕실처럼 세련되게 꾸미고 싶은 맘이 굴뚝이지만.. 엄마는 ‘창고에 쌓인 게 타올인데 뭐하러 돈 주고 아깝게 사냐, 보기에만 그럴 듯하면 뭐하냐, 깨끗하게 쓰는 게 더 중요하지. 너나 가서 그렇게 해 놓고 살아라’ 하시며 단칼에 자르신다. 허걱.. 정말이지 무어라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내 머리 속에는 욕실 풍경 하나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몸을 푹 담글 수 있는 깊숙한 욕조, 디자인이 둥글어서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세면대, 세면대 아래 짜 넣은 원목 수납장, 워시렛 변기로 구성된, 그리 특별한 건 없지만 실속 있고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 공간.. 오프 화이트 컬러나 베이지 계열로 배색을 맞춘 타일, 프레임이 독특한 거울, 갓이 예쁜 브라켓 조명, 욕실 용품은 양질의 것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정확하게 갖추고 있고, 뽀송뽀송하지만 너무 깔끔 떨지 않은, 무엇보다 글자 구경을 할 수 없는 무지 타올이 걸려있어, 모든 것이 정해진 자리를 갖고 정갈하게 정리된 욕실의 모습이다.



욕실은 거실처럼 자주 노출되는 공간이 아니라서 홈 드레싱에서도 맨 나중으로 밀리는 게 다반사고, 여러모로 소홀히 다루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사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투왈렛 시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우리에게 욕실이라는 공간은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소중한 공간인데 말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예전부터 옷 잘 입는 사람보다는 집을 잘 꾸미고 사는 사람들에게 더 애정이 갔다. 그래선지 욕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잘 관리하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신뢰가 간다. 공간을 꾸미는 게 일인지라 여느 집 욕실에 배치되어 있는 집기와 다양한 소품들을 볼 때마다 참 흥미롭다. 남의 집 욕실을 본다는 것이 마치 그 집 사람들의 내밀한 속을 보는 것 같아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느끼고 배우는 게 참 많다. 공간은 확실히 사람을 닮는 것 같다. 나는 욕실 그게 꼭 집주인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욕실을 가지고 별걸 다 생각한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집이라는 공간은 가족의 성격, 오래된 습관까지도 짐작케 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이 글을 쓰면서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 쓴 <신화의 힘>에서 읽은 인상 깊은 구절 하나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옛 전통을 가꾸는 유일한 방법은 시대의 상황에 맞게 그것을 쇄신하는 길 뿐..’


당장 멋진 타올을 구비하는 일은 어쩔 수 없더라도, 발전된 욕실 드레싱을 위해 내 상황과 필요에 맞게 활용하는 괜한(?) 노력에 스스로 위안을 얻고 있다. 타인의 집 욕실을 사용하게 될 때도 옥의 티가 확 들어오면 살짝 바꿔놓곤 하는데.. 암튼.. 징크스 같은 건 아닌데.. 내 눈에 걸려들었는데 이걸 하지 않으면 왠지 찜찜함을 지울 수 없다.^^


시대에 따라 아름다움의 기준은 달라지고 있지만 우리 엄마께서 늘 강조(?)하시는 것처럼 외양과 내면, 안팎이 조화를 이루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IP *.40.2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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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1.13 22:36:24 *.10.44.47
아..그런 욕실 저도 갖고 싶어요.
역시 돈을 많이 벌어야하는 거겠죠? ㅋㅋ

까짓거 돈이야 그리 많을 필요 있겠냐구..
안 굶어 죽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허세를 부리곤 했었는데...
조~ 위 꿈의 욕실앞에선 영 자신이 없어지는걸요.

음...이 빈약한 소신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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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9 09:30:44 *.40.227.17

미옥님~

지름신이.. 잠시?.. ^^

혹여.. '토일렛' 이란 영화 보셨나여..
영화에 욕실? 화장실?이.. 나오는데여.. 그와 비슷한 분위기에..
거울과 조명만.. 살짝 손보는 정도면.. 저는 편할 거이 같아여..   
'카모메 식당' '안경' 두.. 같은 감독님이 만든 영화인데여.. 왕팬..^^

저두.. 생활하는 사람이다 보니..
누구나처럼.. 내가 사는 집.. 잘 꾸미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구..
지름신의 유혹을 받을 때면.. 화~악 지르거나.. 꾹! 참거나.. 그림만 그리는 실정.. ^^ 
다만 여건상.. 대리만족?으로 해결?하는 거이가..  좀.. 헤헤^^

마니 춥져.. 감기 조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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