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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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야기(2)
1
“사장님 잠깐 좀 나와 보실래요.”
휴대폰을 통해 들리는 김군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여자를 업었다. 보기보다 몸이 가볍다. 이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 출입문을 여니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맞았다. 어찌 된 일인가. 글쎄요. 크게 다친 건 아닌 것 같은데. 우선 응급처치를 해야겠어요. 안방에 여자를 눕히자 어머니가 여자의 손을 바삐 주무른다. 얼굴에 핏기가 없구만. 술 먹은 건 아닌 것 같고.
“저… 괜찮아요.”
발을 주무르던 어머니의 손길이 부끄러웠는지 정신을 차린 여자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정신이 좀 드세요. 갑자기 쓰러졌는데 아픈 데는 없으세요?”
“감사합니다. 잠시 누워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쯧쯧. 젊은 아가씨가 빈혈이 있나 보네.”
119는 돌려 보내는 게 좋겠다던 여자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얼굴이 참 곱네. 아는 아가씬감. 여자를 유심히 살피던 어머니는 나와 여자를 번갈아 훑으며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웃을 때 왼쪽 입술이 위로 말리는 게 꼭 외할머니를 닮았구나. 아뇨… 조세핀을 닮았네요. 무의식 중에 나오려는 말을 입언저리에서 막았다. 지난 10년간 그녀는 충분히 힘들었다. 자네는 들어가 쉬게.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잖나. 이 처자는 내가 잘 돌볼게. 알겠습니다. 주무세요. 안방 문을 닫고 나오는데 뜻밖의 소동 때문인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조용히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에 입김이 절로 났다. 이 밤이 쉬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2
“방역당국의 구제역 예방백신 접종과 지속적인 방역활동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이 좀처럼 진정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제는 국내 최대 축산지역인 충남 홍성군에서도 2건의 구제역 발생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현재까지 구제역 발생 지역은 전체 축산지역 중 50%에 달해 시급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온 나라가 구제역 때문에 난리구먼. 장사하는데 지장은 없겠지.”
“편의점이야 공산품 파는 덴데요.”
헤드라인 뉴스로 오른 구제역이 아침밥상의 서두가 되었다.
“그나저나 그 아가씨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없어져 버렸어. 사람 인심이 그게 아닌데. 자네도 못 봤지.”
“안 다쳐서 다행이죠. 가끔 저희 가게에 들르는 사람이에요.”
“그 색시 어땨.”
“어떠냐뇨. 헤헤. 제 나이가 몇인데.”
“나라 법에 몇 살 이상 터울은 시집장개도 못 간다고 하던가. 이 동네 사나 본데 다음에는 전화번호라도 알아 둬.”
“어머니 꿈 깨세요.”
“내 아들이라 그런 게 아니고 난 자네를 잘 알아. 병원 들어가기 전만해도 누구보다 똑똑한 사내였다는 거 내가 보장혀. 진작 간 애비를 닮아 호방하고 힘이 넘쳤지. 나 죽고 나면 자네 혼자여. 남자가 끈 떨어지면 남는 건 추접뿐이여.”
어머니는 흥분하면 사투리가 심해진다. 그 사투리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최후를 풀고 내 이야기까지 이어지면 끝이 꼭 이렇다. 그녀의 화법에는 슬픔을 증폭하는 힘이 있다. 덕분에 애써 억눌렀던 감정들이 삐죽이 튀어 나왔다. 나는 이국 땅에 다시 태어나 왜 이 모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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