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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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견생
나는 진돗개의 송곳니에서 내 몸뚱이를 빼내려고 몸부림 쳤다. 엔지를 부르는 나의 울음은 동네를 울렸다. 그녀는 벌써 마당에서 호미자루를 그 몹쓸 개에게 던지며 나를 향해 뛰어 오고 있었다.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그녀의 품에 안기는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통증이 밀려왔다. 하얀 몸에 번진 피와 밖으로 나온 살점을 보고도 엔지는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녀는 나를 품에 안고 운전을 했다. 그녀의 몸의 진동이 내게로 전해져 오며 상처보다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괜찮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불쌍해하며 병원에 갔다.
마취에서 깨어날 때 투명한 유리 밖으로 엔지의 얼굴이 보였다. 웃고 있었다. 빼어문 내 혀에 끊임없이 물을 축여주는 그녀의 손길이 따뜻하다. 이틀을 꼬박 마주보고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불행한 시간 뒤에 오는 행복감이었다. 병원 문을 나와 돌아오는 길, 나는 그 몹쓸 개를 내 눈으로 다시 보고 말았다. 내 몸 속에서 피가 거꾸로 흐르고 갈기털이 솟구쳤다. 순간의 분노는 나의 배 표면에 피로 붉게 물이 들었다. 결국 분노해야 나만이 나빠짐을 알면서도 말이다. 어리석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대로 흘러가듯 그 몹쓸 개도 가던 길을 유유히 가버렸다.
엔지는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힘을 내야 했다. 끓여주는 죽을 누워서라도 받아 먹었다. 그것이 그녀를 가장 안심시키고 웃게 하는 일이었다. 이불에 싸 안고 비 오는 세상을 보여준다. 비 내리는 밤에는 비를 향해 울었고 달 뜬 밤에는 달을 향해 울었다. 비와 달로부터는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벌어진 내 입에서는 울음과 함께 진돗개의 비린내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아직 살아있었다.
나는 복종을 모르고 세상을 살았다. 사나워도 내 보다 몸집이 커도 나는 바닥에 배를 보이고 눕는 일을 하지 않고 살았다. 그것이 나답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 몹쓸 개에게 바닥에 누워 배를 보여 주었다면 이런 불행한 일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때로는 타협도 물러설 줄도 알았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행동이 세상을 잘 사는 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는 부러지고 말았다. 세상에는 사납고 무례하고 힘센 것들이 판을 친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맞섰다. 그런 내 생각이 오늘 내 몸뚱이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이미 지나간 시간의 후회는 소용이 없다. 하지만 엔지의 고통과 나의 아픔에 후회하고 있다. 엔지의 시간은 모든 것이 멈춰 버렸다. 오로지 초 하나 켜 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그녀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나는 살아서 그녀의 고통의 시간을 기쁨으로 전환시켜 주어야 했다. 그것만이 그녀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엔지가 웃으며 ‘오리오, 꼬리 꼬리 꼬리’ 할 때 내가 꼬리를 살랑살랑 쳐주면 그녀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기쁘게 웃었다. 그러나 꼬리 한 번 그녀에게 쳐줄 수 없는 나는 개도 아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구해 낸 사람이 엔지이다. 나는 다시 한번 엔지의 긍정의 에너지를 받으며 힘겹게 숨을 쉬고 있다.
살은 괴사해 들어가 나의 신경까지 손상을 시켜버렸다. 나는 앞으로 걸어간다고 걸어가지만, 몸은 옆으로 가고 있다. 물을 한 번 마시려면 여러 번 흔들리는 목을 가눠야 했다. 살면서 가장 쉬웠던 일들이 가장 어려워졌다. 기본적인 먹고 싸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임을 새삼 느끼고 있다. 삶은’ 똥’이다. 먹지 못한 일주일 나는 싸지도 못했다. 결국 똥은 살아서 먹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비틀거리는 뒷다리에 힘을 주고 똥을 쌌다. 엔지는 내가 싼 똥을 보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됐어” ‘똥’은 하루하루를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의 흔적이었다.
나의 온 몸에 기운을 눈에 모았다. 엔지와 나는 눈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 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 썩어가는 몸뚱이를 보지 않고 살아있는 내 눈을 보고 ‘희망’을 잃지 않았다. 엔지와 나는 ‘사랑’이란 주파수를 눈에 맞추고 대지에서 뿜어내는 봄의 소리에 기울였다.
이 옷만 벗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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