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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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봄이다. / [2-4-2 컬럼]
[7기, 양경수님 사진]
1.
대지는 꽃을 통해 웃는다. 누구의 말이었더라? ㅎㅎ 내 기억력을 어찌 탓할까?
길가에 펼쳐진 들풀을 보며, 대지의 웃음을 마음껏 탐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나타났다. 길남파 영입대상 1순위라던, 이른바 ‘깔치’(님) 였다. 시꺼먼 안경과 모자, 시원한 외모에서 그녀만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이 꽃 이름이 뭔지 알아요? 너무 이쁘죠? 이건 개불알 꽃이구요..이건.OO 꽃이에요 예쁘지요?’
작은 들풀의 이름을 잘 아는 여인이었다. 갑자기 그녀가 묙이의 어깨를 잡으며 나직하게 시를 낭송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이었다. 구연하는 사람같은 낭낭한 목소리, 나이를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 알고 보니, 14권의 동화를 낸 작가란다. 꽃과 시,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처음 보는 존재였지만, 난 내 소중한 넘버 뜨리를 양보하기로 했다. 물론, 그녀가 그것을 받아들일지 좋아할지는 상관없이 말이다.
[예쁜 선형이, 마법사 묙이, 맨 오른쪽 그녀가, 깔치님..]
2
학고재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삼국유사를 쓴 고운기에 대한 얘기,
김용규 님에 대한 얘기, 책을 통한 삶의 혁명,
사부님의 말씀이 바람을 타고 연구원들의 머릿속으로 옮겨 다녔다.
김용규 선생님이 문자로 보내준 시를 소개하겠다는 멘트와 함께, 7기 샤샤의 시 낭송이 이어졌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 대추 한 알 / 장석주 -
[대추 한알] 은,
시가 무엇인지,
우리가 왜 시에 열광해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사부님이 김용규 님과의 만남을 7기의 미션으로 정해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7기 연구원들을 위해, 저런 시를 보내주는 분이라니...
갑자기 그의 책이 몹시 궁금해졌다.
3.
봄내음 물씬나는 산채비빔밥과 간장게장은 이번 여행, 최고의 별미였다.
상큼한 봄나물에 든든해진 배를 쓰다듬으며, 상현이 딸 세영이를 안고 걸었다. 저질 체력으로 낑낑대며, 허청 허청 길을 올라가는데, 한 순간 세찬 바람이 불었다. 아이의 긴 머리가 이리저리 흩날리더니 얼굴을 덮었다. 아이는 내 품에 포옥 안기며, 나지막히 속삭였다.
바.람.이 얼.굴.을 가.려.요.
아...이런....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재치있고 사랑스러운 표현은, 늘 나를 매료시킨다.
햇살은 반짝이는데, 바람은 경쾌하다.
그 갸날프고 앳된 목소리에서 저토록 훌륭한 시가 나오다니!
우리는 문제의 근원을 묻지 않고, 눈앞을 가리키는 장애물만 비키라 하는데, 여섯 살 세영이가 얼굴을 가리는 것은 바람이라고 알려준다. ‘뭐지? 이 정체모를 부끄러움은?’
세영아!
너는 봄이다
[소설가 상현이의 첫째 딸, 세영이. 엄마 닮아(?ㅎㅎ) 이쁘다. / 훈훈한 훈 님 사진]
4.
연구원의 밤이 끝나고, 사부님의 꼬임에 빠진 우리는, 그 새벽에 진평왕릉으로 갔다.
안동소주로 추위를 달래고, 왕릉에 올라가 역사를 만들고, 새벽길을 걸어왔다. 1기 문요한 선배가, "연구원 생활을 1년을 하고 나니, 무엇이 바뀌었느냐?"고 물었다. 쉽게 대답을 못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말문이 막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대답이 올라왔다.
‘질문이 통합되는 느낌’
세상에 대해, 질문이 많았던 나는 늘 산만했다.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 하며 이리저리 휩쓸리기만 했지, 실질적인 단 한놈에게 집중하지 못했다. 그건 나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다. 달이 아름답다고 해서, 흘러가는 구름이 미울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종의 내 기질이다. (이번 주 컬럼을 안 올리고, 여행후기를 쓰는 것만 봐도 그렇다니깐..참!!)
그런데 연구원 1년차 과정이, 산만하게 분산되었던 다채로운 질문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있었다. 아직도 정확한 나의 실체가 잡히지는 않지만, 오롯이 나에게로 모아지는 느낌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5.
하느님 보시기에 어긋남이 없도록 살아라...
세상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들...
인간의 삶, 사람의 삶..
그래도 살아가는 거구나..
그래서 사랑하는 거구나..
7기 장례식을 보며, 메모한 기록... 장례식 퍼포먼스는 연구원 과정의 핵심이다.
그 과정에 함께하기 위해 우리는 서울에서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이곳에 왔다. 자신의 장례식, 미래의 장례식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앞당겨 체험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미래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기억하는 삶’ 으로 가도록 안내한다.
그래, 죽음을 기억하여, 삶이 기뻐하는 삶으로!
6.
밤 11시, 7기 막내들의 재롱잔치가 열렸다.
그 바쁜 와중에 어찌 한복까지 준비할 생각을 했는지 생각할수록 기특하다.
한복을 곱게 입고, 뚜둥~ 뚱 가야금 반주에 맞추어 커리큘럼을 개사한 ‘달 타령’을 즐겼다.
대선배들 앞에서 처음 하는 공연이라, 그들의 긴장과 정성을 함께 느낄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1년 전, 어성천에서 노래를 하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한복과 기모노(?)까지 등장한 공연]
여행 후, 일상으로 돌아왔다.
반가이 맞아주는 집과 직장이 던져주는 수많은 일감들에 기뻐하며,
일 속에 포~옥 파묻혀, 며칠 지내다 보니, 다시 마음이 바쁘다.
벌써 몸이 경직된다.
‘위대한 탄생’ 에서 할배멘토 김태원이 그랬다.
“긴장하면 지는거다. 설레여야 이긴다.”
그렇다. 무대에서는 긴장하면 진다.
사람이 못되면, 한 마리 동물로 살면 그만이다.
(이미 유끼 1명은 미리부터 동물컬럼을 쓰고 있자나!ㅎㅎ)
그러나 동물이 되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무대를 장악하지 못하면 바보다.
자신의 무대에서 긴장하면 진다.
설렘으로 주어진 무대를 장악하고 싶다.
같이 함 설레보자.
그것이 이 봄에,
우리가 해야 할 다짐이다.
파이팅이다.
진정한 여행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수 없을 때
그대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나짐 히크메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