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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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름 나를 많이 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나를 알아가는 작업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였다.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왠지 모를 안도감을 가지기도 하면서 내면의 세계를 파고들어가는 만큼 거기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스스로, 집단으로 할 수 있는 작업들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현재 나를 힘들게 하는 부분들의 원인이 되는 이유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 어느 시점에 겪게 된 일들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큰 사건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것만 잘 풀어내어 준다면, 잘 해소시켜 준다면 내가 급성장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걸 찾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보다 직접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껴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담을 받아도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를 맴도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나였다. 어찌 보면 과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이었다. 상담선생님이 나의 기질적인 부분과 그것이 활용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말을 해주고 칭찬을 해주어도 그건 내 얘기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씩은 좋은 재능을 타고 난다 하더라도 나의 재능은 어딘가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보시곤 선생님은 열등감의 화신이라는 말까지 하셨다. 나를 자극하는 말을 하셔서 당연히 화가 날 법한 상황인데도 난 그저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때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나라는 객체와 주체는 서로 분리되어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세계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 둘을 하나로 모으는 게 먼저였다. 날 보호하고 싶었고, 나에게도 재능이 존재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2]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만나 그것들을 극복하는 경험을 통해 내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런 과정들을 거치고 싶지 않았다. 나를 한 번에 바닥까지 내려가게 할 수 있는 큰 사건을 겪어 그것을 통해 바닥을 치고 힘껏 위로 올라와 새로운 나로 거듭나게 되길 바랬다. 하지만 작은 몇몇 사건들이 한꺼번에 나에게 다가왔을 때 나는 그 사건들을 바라볼 힘도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힘조차도 없다고 느꼈고 다른 이들이 그저 나의 손을 알아서 잡아주기를 원했다. 내 안에 힘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과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답이 과거에 있다고, 내가 이미 저지른 행동들을 수정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수없이 나를 자책하며 과거에 나를 묶어두고 있었다.
그 당시 자책하는 것도 내가 선택한 일이기는 했지만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쳐둔 채 나를 가장 피폐하게 만드는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나를 도와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방법은 그저 신에게만 매달리는 것이었다. 답이 거기서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신의 의중을 알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그것을 찾는데 온통 관심을 쏟기도 했었다. 정작 나를 들여다봐야 할 순간에 열쇠를 내 손에 꼭 쥔 채로 나는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쯤이였을까 드라마 치료 워크샾에서 외로운 나를 만나게 되었다.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었다. 나를 너무 삶에서 제치고 있어서, 나를 너무 돌보지 않아서 외로운 나를 말이다. 눈물이 났다. 안 되는 모든 이유는 나에게 있고, 잘 되는 이유는 모두 상황이 좋아서 그렇게 됐다고 넘기는 나도 보였다. 작은 여러 사건들을 통해 미비하게나마 성장을 하고 있었음에도 너무 큰 것들을 바라고 있었기에 그런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이다.
[3] 다시 생각해 본다. 정말 아무도 없었던 것일까? 내가 손 내밀면 다가와줄 누군가가 단 한명도 없었던 것일까? 어쩌면 모든 문제를 혼자 쥐고 앉아 있으려고만 했던 나의 고집으로 인해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기대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기에 그들을 믿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인해 나에게 다가왔던 수많은 조력자들을 나는 외면하고 있었나보다. 내 기대로, 내 못난 마음으로, 내 고집으로 가려졌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그렇다면 재능은? 너는 어떤 재능을 바라고 있는 건데? 이 또한 지나친 기대가 나를 누르고 있었다. 재능이라 함은 남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와~하는 감탄사가 나오는 것이여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니 웬만한 것은 재능이라 감히 이름 붙일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남들이 나에게 칭찬을 할 때도 뭐 이런 건 다 하는 건데 라는 생각을 했고 상대적으로 가진 게 없는 내가 부끄럽다고 여기기도 했었다.
모험적인 여행은 성취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성취하기 위한 노력,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발견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듯하다. 영웅이 애써 찾아다니고 위기를 넘기면서 얻어내 신적(神的)인 권능을 처음부터 영웅의 내부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 영웅은, 우리 모두가 내장하고 있되 오직 우리가 이 존재를 발견하고 육화(肉化)시킬 때를 기다리는 신의 창조적, 구원적 이미지의 상징이다. 라고 캠벨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영웅의 존재를 발견하여 깨워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 여정은 내 내면만을 열심히 파고든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이것과 더불어 세상과 부딪치면서 얻게 되는 경험이 녹아들어야만 내 안의 영웅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영웅을 찾기 위한 길로 들어섰다.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라. 얼마나 많은 조력자들이 보이는지. 혼자 가는 길이 아니기에 외롭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이다.
당신도 함께 가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