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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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하겠다고 삶의 문턱을 넘은 이상 어느 정도의 시련은 각오하고 있었다. 꼭두각시처럼 줄에 묶여 시간을 고스란히 저당 잡힌 대가로 받던 월급, 그것이 단 한 푼도 들어오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회사라는 큰 우산 밑이 답답하다고 나왔으니 비가 오면 옷이 젖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알뜰살뜰 살면 남편 월급으로 저축은 못해도 생활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무소유한 삶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풍요로워진 몸과 마음의 여유만큼 금전적 자유와 여유는 바람 빠진 풍선마냥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생활은 현실이고 현실에서 돈은 막강한 권력자다. 해결책은 두 가지. 더 벌든가, 더 줄이든가. 미궁을 헤치고 나오는데 필요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에 또렷한 글씨가 보인다. ‘생활비를 먹어 치우는 용을 죽여라’
올해 1월부터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가계 소득의 반 이상이 줄었으니 지출 항목을 명확히 파악해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 예전에는 대략적인 수입과 지출 내역만 알고 있었지 매달 항목을 분석하지는 않았다. 다달이 들어가는 적금도 있었고 매월 적자는 아니니 얼마간은 모으고 있는 거라 위안했었다. 1월 말, 월말 결산을 하고 나니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다. 알뜰주부 흉내 내며 한 달을 아등바등 살았는데 남편 월급보다 자그마치 100만원이나 지출이 많았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눈에 불을 켜고 생활비 먹는 용을 찾았다.
친정 아버지는 항상 그러셨다. 먹고 공부하는데 쓰는 돈 빼고는 다 아끼라고. 그렇게 보니 첫 번째 퇴출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은 작년 8월부터 테니스 개인 레슨을 받고 있었다. 일주일에 나흘, 아침에 20분씩 받는 강습 비용이 17만원. 맞벌이 할 때야 ‘건강을 위해 그 정도쯤이야’ 할 수 있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네 식구가 먹고 살아야 하지 않은가? 처음에는 지나가는 말로 남편에게 한 마디씩 했다. ‘생활비가 부족하다.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척하면 척, 알아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알면서 모르는 체 하는 건지, 정말 못 알아듣는 것인지 남편은 일주일에 엿새를 테니스 빠져 살았다. 급기야 직장에서 테니스 동호회 회장을 맡더니 집에 오면 세계적인 스타의 경기 동영상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결국 성질 급한 내가 폭발했다. ‘테니스 쳐서 올림픽 나갈 거야? 6개월 레슨 받았으면 취미로 치기에 충분한 것 아냐? 우리 형편에 17만 원짜리 테니스 레슨은 오버 아냐? 어린 애도 아니고 그만큼 말했으면 알아듣고 알아서 그만 둬야 할 것 아냐?’ 차곡차곡 쌓인 감정을 실어 남편에게 펀치를 날렸다.
남편은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고 자랐다. 어른이 되어 자립한 이후 그는 자신의 취미 생활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사회적 성공이나 금전적 여유에 대한 갈망은 그에게 없다. 회사는 생계의 수단이고 취미 생활에서 자아를 실현한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정악대금을 부는 낭만가였다. 겨울에 스키장에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섰더니 최신 스키복을 입고 스키세트를 들고 나타났다. 결혼을 하고 나니 볼링공과 신발 세트를 신혼집으로 들고 왔다. 얼마 후 골프를 시작하더니 필드에 나가고 싶어 안달하며 수 차례 골프 클럽을 바꾸어댔다. 취미로 드럼을 시작하고 나더니 드럼 세트를 집에 들여놓고 싶어했다. 나는 그런 그가 잘 이해 되지 않았다. 그런 물건들은 빌려 쓰면 되지 않은가? 언젠가 친정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 ‘돈이 있으면 밍크 코트 입은 사람이 부럽지 않지만,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밍크 코트를 사서 입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인 거다.’ 남편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직장을 얻어 제일 먼저 한 일이 월급을 담보로 대출받아 지하 셋방을 탈출할 전세자금을 마련하는 것이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도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남편은 ‘내가 뭐 그리 큰 돈을 쓰는 것처럼 말하느냐’고 성을 냈지만 나도 물러설 수 없다. 남편과 나는 얼마간 냉랭한 시간을 보냈고 남편은 더 이상 레슨을 받지 않았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없으니 보험이나 저축도 지출이나 다름없다. 작은 아이 가지면서 큰 맘 먹고 계약한 50만 원짜리 변액 보험이 애물단지다. 더구나 아파트 중도금 납입하면서 2년 가까이 납입 중지를 해놓았더니 기존 금액에서 운영 수수료가 빠져 남은 돈이 원금에 못 미쳤다. 그도 몰랐는지, 나를 속인 건지, 이야기해주었는데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지, 운영 수수료율이 20%나 되었다. 수익률은 10%대인데 수수료가 20%니 원금이 남아 있을 리가 있나. 설상가상으로 담당 플래너가 회사를 옮기며 나는 버림받은 고객이 되었다. 그러다 모 교육에서 만난 지인이 그 보험사 플래너로 자리를 옮기면서 상품을 리모델링했다. 납입액과 사망보험금을 줄여 수수료율을 낮추었다. 그러다 결국 최근 적지 않은 돈을 손해를 보면서 해지하고 말았다. 생활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지출하는 보험료는 저축이 아니라 매달 갚아야 하는 빚처럼 무겁다.
아이들 학원비도 가만히 들여다보니 거품이 많이 끼어있다. 큰 아이는 국어, 수학, 한문, 사회 네 과목의 학습지를 하고 있다. 그 중 한문을 중단하고 매일 배달되는 어린이 신문을 활용해 공부하기로 했다. 매달 책을 선별해 보내주는 도서 서비스도 중단을 요청했다. 아이들 독서지도는 내가 직접 하면 된다. 스포츠센터에서 하던 줄넘기와 댄스도 다음 달부터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근처 공원에서 같이 걷고 줄넘기를 하면 된다. 내친김에 여섯 살 때부터 다니던 미술학원도 그만 다니기로 했다. 오래 다녀 실증을 내고 있던 참이었고 이제 교과목에 집중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교육비에서 줄인 금액이 25만원. 그 동안 엄마가 해야 할 아이 교육을 돈으로 해결하려 했다. 앞으로는 함께 배우고 커나가는 즐거움을 서로 만끽하고 싶다.
지금까지 퇴출시킨 소비 항목의 총액이 90만원이 넘는다. 이 정도면 되었을까? 이번 달은 가계부가 흑자로 돌아서겠구나 싶은 순간, 누군가 손을 벌린다. 큰 조카가 대학에 입학하고, 자동차 세금이 부과되고, 2주 간격으로 여행을 다녀올 일이 생기고, 부모님 생신이 돌아온다. 5월은 어린이 날, 어버이 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과연 우리 가족의 생활비는 얼마까지 줄어들 수 있을까? 줄인 교육비만큼, 저축 금액만큼 나중에 후회하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혹시 어느 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시 직장으로 향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지는 않을까?
놀랄 만한 권능을 가진 막강한 영웅은 바로 우리들 개개인이다. 거울에 비추어볼 수 있는 육체 자체로서가 아니라, 우리들에 내재하는 왕으로서다. – 조셉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중에서
나는 생활비를 먹어 치우는 용에 맞서 싸우는 여전사다. 이것은 간소한 삶을 위한 실험이며 의례다. 시련을 견디기 위한 비법이며 귀환을 위한 준비다. 나는 놀랄 만한 권능을 가진 막강한 영웅이다. 나는 이 전쟁에서 이겨 영웅이 될 것이다. 나는 얼마나 큰 용을 몇 마리나 없앨 수 있을까? 용을 죽인 대가로 어떤 보물을 들고 귀환하게 될까? 그리고 나의 보물은 누구에게 어떻게 쓰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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