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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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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8일 07시 38분 등록

일주일이 넘었다. 잠잠하던 삶의 고민들이 일시에 침범해 오고 그것들 사이에서 허우적거린다.

잘 가던 길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어린애처럼 걸음이 엉키더니 제 걸음을 찾지 못한다.

"보이스 비 엠비셔스"하며 스스로 달래보지만 쉽지가 않다.

인생이 살아가고 싶은 대로 살아질지도 의문이고, 살아지지 않았을 때 감내하여야 하는 많은 것들이 나를 두렵게 한다.

수급은 지루하게 이루지지만 상실은 삽시간에 이루어진다. 여태껏 마음 다스리며 쌓아온 것은 걱정과 두려움에게 너무 쉽게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삼국유사를 읽는다. 역사 속 인물들은 역경을 이겨내는 이야기로 나를 구원할 거라 기대하며  단서를 발견해보려고 애쓴다. 역시나 처음부터 기대에 부응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곰과 호랑이가 있고, 하늘님은 이들에게 백일 동안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 인고의 시간을 보내라 한다. 하늘님의 얼굴과 사부님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나는 곰과 호랑이의 어디쯤에 나를 이입시킨다. 곰은 햇빛을 보고 싶고, 벌통을 빨고 싶고, 뭔가를 물어 뜯고 싶었겠지만 이것을 견디어 내고 드디어 신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전율을 맛본다. 호랑이는 고기 맛을 잊지 못해 뛰쳐나가고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호랑이는 오늘도 직장에서 바둥거리는 나의 친구들이요 나는 신의 약속된 미래를 위해 오늘도 마늘과 쑥을 뜯고 있는 곰이라는 위안을 얻는다.

더 나아가 이 느낌을 확실히 해두고 싶다.

곰이 맞이하였던 그 아침을 상상해 본다. 효과가 있다. 필이 온다.

어둠을 견디고 이긴 자만의 아침, 고난의 길고 긴 어둠을 깨치고 곰이 맞이한 희열과 전율에 찬 아침을 생각한다. 나는 동굴의 고치 속에서 벗어나 환한 대낮 하늘로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나방이 될 것이다. 오랫동안 마음 속 지녀온 희망들이 다시 대들보처럼 버티어 선다.

단군 신화가 이런 자기성취적 혹은 영웅적 스토리의 요소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더불어 이런 것을 읽어 낼 수 있는 안목이 나에게 생기다니, 흐뭇하다. 연구원 생활이 그냥 가는 것은 아니구나, 스스로 감탄한다.

 

그렇게 전개되던 삼국유사는 조신이 판을 뒤엎는다.

승려 조신은 강릉태수의 딸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그는 여러 번 낙산사의 부처님 앞에 나아가 그녀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그 딸은 다른 곳으로 출가해 버렸고 기대가 무너진 조신은 이룰 수 없이 된 사랑 때문에 부처 앞에서 원망하여 울다 잠이 든다.

그런데 그의 꿈 속에 간절히 바라던 그녀가 나타나서 원하는 삶을 산다.  하지만 꿈 속의 삶은 곤궁하고 자식들에게는 조식조차 대지 못하여 큰 아이는 굶어 죽고, 딸 자식은 걸식하다 개에 물려 병들어 죽는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헤어질 것을 청하고 가족은 결국 해체 되고 마는 이야기 이다. 한단지몽(邯鄲之夢)의 세상살이요,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인생이니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의 배움은 역으로 흐른다. 계속되었던 나의 고민에 조신의 이야기가 틈입하더니 엉뚱한 지점에 이른다. 가난하니 죽도 밥도 아니구나. 더욱 욕심 내어 아내와 자식을 위해 돈을 벌어두어야 하고, 꿈도 좋지만 속세의 의지를 한층 더 강화하여 현실에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라고 이야기한다. 단군의 동굴에서 막 벗어난 나는 다시 플라톤의 동굴 속으로 깊이 처박히는 느낌이다.

같은 이야기를 사이에 두고 조신은 부처님의 큰 뜻을 이해했고, 나는 현실의 무게 앞에 속세의 의지를 강화한다.

 

단군신화와 조신설화는 매일 반복되어 일어나는 내 안에 있는 전쟁의 실체이다. 우군과 적군이 명확이 구분되지만 그것들의 실체는 희미하다. 우군의 힘을 명확이 정의할 수 없는 것은 공격할 힘을 떨어뜨리고 적군의 실체가 희미한 것은 그를 베어낼 수 없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매일 같이 벌어지는 마음 속 전쟁은 게릴라전처럼 일시적일 수도 있지만 이번처럼 백병전으로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마음은 이래 저래 상처다. 어쩔 때는 고운기 선생님의 말처럼 "백성의 입장에서야 누구의 백성이 된들 무슨 상관이랴? 더욱이 넘쳐나는 새로운 힘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 백성의 삶이 윤택해진다면...." 하는 말처럼 내 맘속의 전쟁도 어느 쪽으로든 우열이 확연히 갈라져 그것에 그냥 충실해 지고 싶다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렇듯 베이고, 베는 전쟁의 싸움터에서 나는 어디쯤에 서있는가? 우습게도 나는 우군을 응원하고 있는듯하지만 동시에 적군에게 끊임없이 식량을 공급해주는 배후세력이기도 하다. 어느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몰라 두 세력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 하고 있는 모사꾼처럼.

 

 

IP *.1.2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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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08 07:40:39 *.1.215.72
가정의 달을 맞아 오월 초가 버겁네요.
2박 3일 처가 식구들과 가족 여행입니다.
가는 곳이 인터넷이 안된다하여....간밤이 어찌 갔는지 모르겠군요. 
미리 올리고 여행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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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8 13:07:35 *.166.205.131
밤새고 여행을? 대단하신 훈형!
단군신화와 조신설화의 대비가 실감나네요~
그냥 단군신화를 잡고 쭉 가세요! 충분히 잘가고 계신겁니다!
후방의 적군 보급로는 땡칠이들이 끊겠습니다!
걱정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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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11 06:55:42 *.219.84.74
땡7이들과는 시작과 더불어 천군만마와 함께 하는 느낌이었지.
외로웠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대의 격려와 응원이 세삼 그것을 확인하게 한다.
나는 믿는다. 너의 마음을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경수도 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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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5.08 20:11:03 *.10.44.47
이번주 저랑 같은 전쟁을 치르셨군요.  ^^

가만히 생각해봤어요.
사람 되고픈 마음을 접고 동굴을 뛰쳐나간 들
마음이 흡족할 만큼의 먹이를 구할 수 있기는 한 걸까?

꿈을 믿어보겠다는 거..
평생 이슬만 먹고 살겠다는 다짐일 리 없겠지요.
기왕이면 내가 기쁜 일을 통해 처자식, 저는 夫자식을 호강시켜보고 싶다는 바램 아닐까요?  ^^
넘 노골적이었나? ㅎㅎ

이번주 제가 내린 결론은
꿈을 지키되 조급해 하지 말자! 였습니다. 
만약 단군 신화의 곰에게 자기 하나만 목을 빼고 기다리는 딸린 식구가 있었다면 그녀는 어떻게 했을까?
100일이 아니라 200일, 300일이 걸려도 좋으니 하루에 몇시간은 동굴 밖으로 나가
식구들 먹거리를 마련해주고 오면 아니되겠냐고...하느님께 청해보지 않았을까요?
만약 곰에게 이런 청을 받았담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

암 걱정없이 '꿈'만을 따를 수 있는 복받은 환경의 소유자들만 꿈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건
아무래도 넘 비관적인 세계관인 거 같아서...적어도 저는 확실히 거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결국 제 세상은 '제 생각대로' 풀리기 마련일테니까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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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11 07:00:28 *.219.84.74
얼마 오지 않은 길인데도 너무 많은 것들을 원하고 있는 나. 후훗!
천천히 가겠습니다. 시시각각 살피는 것도 조금은 놓아보려고 합니다.
일주일 단위의 느낌과 배움을 그때 그때 잘 엮어보아야겠지요.
그리고 50번의 반복이 끝나면 얼마만큼 왔는지 돌아 보겠습니다.

생각과 내공은 앝은데 깊은 인생을 부러워만 해서야....
묙선배! 겁나게 응원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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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8 22:24:09 *.109.54.76
형님 너무 고생이 많으세요. 힘내시구요!

정말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은 것 같아요.
나를 베는 녀석, 나를 위로하는 녀석 등 수 많은 자아가 서로 자기들이 잘났다고 아우성을 치지요.
그 속에 꿋꿋하게 중심을 잡으며 환하게 빛나는 그 녀석을 찾고자 합니다.

정말 한 선배의 말씀처럼 의도하지 말고 주어진 그대로를 수용하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아요 형님.
힘내세요 형님! 전화 드릴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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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11 07:04:40 *.219.84.74
고생이랄 것 까지야...그냥 동분서주했지.

가시나무 노래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지. 그것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질 뭔가를 찾아야 할텐데
그런것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만.
경인이가 이야기 해주는 '꿋꿓게게 중심을 잡으며 환하게 빛나는 녀석이...'
너무 늦지 않게 인생 길에 마중해주었으면 하는 욕심과 바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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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08:25:35 *.160.33.89
견딤은 3가지를 포함한다.   가난, 고독, 비존재감 
그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동굴 속의 곰이다. 
가난하고 고독하고 비존재감 속으로 상징되는 10년  동굴 생활이 지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지게 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세상 하나 .  그때 밥과 존재가  화해하여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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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11 07:07:02 *.219.84.74
사부님!!

먼 길을 조급하게 가려는 욕심 때문인듯합니다.
열심히 발을 놀려도 한 없이 제자리 걸음을 걷는 기분입니다.

견디어 내는 것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겠습니다.
주신 말씀 행간을 살펴가며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엄청,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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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09:24:35 *.75.194.69
아... 사부님의 글들 뒤로 계속해서 희망의 빛줄기를 따라서 제가 댓글을 달게 되네요.. 
훈 오라버니 가족 여행은 어떠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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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11 07:11:58 *.219.84.74
'몸 따로 마음 따로' 하는 것이 싫어서 다 잊고 가족들과 재미있게 놀았지.
특히 휴양림에서 새벽녘 혼자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졸졸졸 흘러가는 타임라인....새벽이 아침이 되는 산속의 느낌.
캠벨이, 소로가 받은 숲속 새벽의 느낌도 비슷했으리라 생각하고 뒷짐지고 느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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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05.09 10:36:35 *.23.188.173
마늘을 집어 먹던 친구가 한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마늘먹고 사람되려고."
왜 갑자기 이야기가 떠오르는 지 알 수 없지만
오라버니의 글이 우리가 함께 안고 있는 것들을 대변해주는 듯 합니다.
고민인 줄도 모르고 안고 있던 것들을 오라버니의 글이 알려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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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11 07:14:23 *.219.84.74
혼자서 온전히 책임져야할 무언가가 있어서 너무 진지해 지는 삶이 약간 싫다.
조금 덜 무겁고 그래서 조금은 가벼운 그런 생의 시간들이었으면 하는 바램.
고민도 아닌 것을 혼자 껴 안고 끙끙대는 것 같아 부끄럽다.

루미야, 할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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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5.09 14:28:50 *.236.3.241
조신이 꿈속에서나마 속세의 욕망을 잡고 뒹굴지 않았더라면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ㅎㅎ 우군이든 적군이든 한쪽만 있으면
갈등이 벌어지지 않을텐데, 그 둘이 끊임없이 양쪽 귀에다
대고 속삭이는 바람에 입산하지 않아도 도를 닦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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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11 07:17:56 *.219.84.74
선배님! 방가요!!!

맹자 이루편의 말씀으로 느낌을 대신합니다.

"유종신지우 무일조지환(有終身之優 無一朝之患)"
군자는 어떻게 살지를 평생을 걸쳐 하지만,
소인처럼 하루짜리 근심들로 평생을 살지는 않는다.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건너뛰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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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5.09 17:31:40 *.35.19.58
우리 훈오라버니가 고민이 많으시구나.
저도 조신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오던데 항상 삶이란 것이 그렇게 비극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남의 꿈을 사서 행운을 거머쥐기도 하고, 마늘 먹고 기다리며 꿈을 이루기도 하고 그런게 인생이겠죠.
해피엔딩인 삶을 위해 오늘도 걸어갑시다. 기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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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11 07:21:05 *.219.84.74
재경이가 걸어간 좋은 인생이 먼 훗날 '재경설화'로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기를
그대가 보내 준 격려에 쓸데없는 걱정들을 보고 있는 무거운 책으로 꾹~~~~~~눌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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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05.17 06:45:30 *.69.13.86
훈오라버니 글의 첫머리는 왠지 무거웠는데, 그래도 글을 쓰며 그 무거움이 조금 걷힌것 같아 마무리로 접어들면서 왠지모를 안도의 한숨..^^ 여행은 즐거우셨는지?? 뒷짐지고 숲속을 거니는 오라버니 상상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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