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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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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9일 02시 44분 등록

 어떤 일이든 할 때면 잘 해야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게 된다. 특히 상담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는 단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나의 머릿속은 바빠지곤 했었다. 어디서 상담을 하거나 상담시연이라도 하려고 하면 머릿속이 전자동으로 돌아가 버려 상대방의 말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런 반응을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이렇게 반응해 주면 될까? 자기 탐색을 할 수 있는 질문을 해줘야 하는데, 어떻게 해줘야 하지?’ 이런 생각들로 가득차 버리니 말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함에도 그것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지난주에 코칭시연 스터디를 하는데 코치 역할을 맡게 되었다. 복잡해지는 머릿속, 거기다 코치이가 말을 너무 장황하게 하니 더욱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난감해져가고 질문을 하게 되도 내 말에 내가 꼬이는 상황이 돼버렸다. 교수님이 좋은 질문을 만들어서 하려고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질문을 해보라고 하신다. 그러니 조금은 수월하게 질문이 나간다. 얼마간의 시연 끝에 이어지는 피드백들, 내 생각에 너무 몰입 되 정말로 집중해야 될 코치이에게 집중을 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코치이에게 도움이 돼 줘야 한다는 생각을 너무 강하게 가지고 있다 보니 좋은 질문을 해줘야 된다는 생각에 눌리게 돼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을 하니 교수님은 왜 해줘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냐고 하신다. 말을 해야로 바꾸니 도움은 일방적으로 가는 게 아니라고 그 안에서 코치도 받는 것이라고 하신다. 말로는 이해가 간다.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도, 코치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안에서 서로 주고 받는 것도, 나를 비워야 하는 것도 머리로는 알겠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와 닿지가 않았다.

 드라마 수퍼비전이 있는 날 또 같은 것에 걸리고 만다. 선생님은 집요하다 느낄 정도로 물어보신다. 이런 저런 탐색을 하다 보니 내담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긴 했지만 거기엔 내 욕심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향력 있는 상담자가 되고 싶었다. 내담자가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영향력 있는 상담자 말이다. 내 말을 들으시더니 선생님은 영향력이 없어야 하는 게 상담자라며 나에게 대뜸 진로를 잘못 선택했네 하신다. ‘허걱’하는 마음과 함께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 간다. 지금 내가 상담공부하겠다고 여기다 투자한 시간이 얼마인데 진로를 잘못 선택했다니 괜히 선생님이 원망스러워 진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심층상담이랑 내가 가려고 하는 커리어쪽은 다르잖아 영향력을 주려고 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라고 하며 어떻게는 그 상황을 합리화하려고 하는 내가 보인다. 그래도 마음은 여전히 찝찝하다. 정말 내가 잘못 선택했냐고 재차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만 그러진 못하겠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 보신 후 다시 이어지는 질문들... 영향력이 없어야 된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면 가질수록 -그것이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내담자는 튕겨져 나갈 수 밖에 없다. 그건 그 사람을 믿어주는 것이 아니니깐. 상담에서 내담자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믿어주어야 하는데 내가 영향력을 주려고 한다는 것은 그것을 철저히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명목 하에 내 능력을 키우려고 하는데 만 집중할 뿐 내담자를 믿는 마음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건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제야 상담자의 마음을 비워내야 한다는 것이 왜 필요한지 마음으로 조금 이해가 되었다. 내 영향력으로 인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그로 인한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 사람이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씨앗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치 만화 속에서 마술을 부리는 사람처럼 내가 요술봉으로 그 사람을 몇 번 탁탁 하고 쳐주면 완전 변신을 하길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내가 어떤 특별한 행동을 취해야만 영향을 주는 건 아니었다. 단순히 그 자리에서 내담자를 온전히 믿는 마음을 가지고 받아주고 기다려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었고,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잡아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걸 통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성취감을 느끼기엔 충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건 꼭 상담 안에서 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세상과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도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게 된다면 의도의 종류와 상관없이 어긋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세상을 향한 쌓인 오해는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잘 해봐야지란 마음을 강하게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힘을 빼고 내 마음의 유연성을 갖게 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처음에 진로를 잘 못 선택했네 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바탕에 숨겨진 뜻을 읽어내지 못해 바로 원망의 마음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나를 도와주고자 하는 선생님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기존의 것들과 잘 융화시키면 또 다른 시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깐.

‘삼국유사’에서 저자는
"실수와 무지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라고 말한다. 이처럼 삶의 무지와 실수를 되돌아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또 다른 시선 하나가 내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IP *.76.248.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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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09:15:05 *.75.194.69
나도 그 글귀가 참 마음에 들었었는데 미선이의 글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네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난 지금이 바로 그 시기라고 생각해 우리 힘내자 미선아 시간될 때 나도 상담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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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3:12:46 *.205.67.118
좋은 시기에 제대로 된 기회를 우린 만난 것 같아요.^^ 
언니도 힘내요.  내가 언니의 사다리를 잡아 줄 수 있다면 언제든 잡아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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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05.09 10:15:44 *.23.188.173
사람을 대한다는 게 그렇죠,
상담이란 더 그럴 듯 해요. 무언가 도움이 되는 것들을 주고 싶은 마음들이 있잖아요.
나도 아이들을 대할 때면 그래요. 공부차원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주고 싶은 마음들이 생기죠
그런 욕심이 커지면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게 되고 자꾸만 기대하게 되고
그걸 보면서 반성하면서도 무언가 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마음 졸이고
언니가 길을 찾는 모습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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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3:08:07 *.205.67.118
정말 아이들을 대할 때도 그렇겠다. 
따라오라는 데로 오면 잘 될테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더 속상할 때도 있을 수 있겠네.
내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인해 생기는 기대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을 좀 편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우리 그 길을 한 번 찾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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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1:32:34 *.160.33.89
하루에 백 번 웃도록 해라.   그러면 글이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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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3:00:56 *.205.67.118
제가 너무 진지하기만 했나 봅니다.
백번은 좀 어려울 것도 한데
웃어서 글이 좋아질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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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3:05:20 *.166.205.132
상담공부의 구체적인 내용과 과정, 방법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일반인들이 많은것 같아.
내 아내도 디지털대학에서 상담공부를 하는데 구체적인 것에 대해서는 아직 모호한 듯해.
주변에 관심있는 사람들도 많고...
미선이는 이미 전공을 깊이 들어가고 실습과정에 있으니
현장의 이야기들과  이 글 처럼 그 과정에서
네가 알게된 것, 알아차린 마음, 변화되는 행동에 대한 글을 써나가는 것도 좋을것 같다.
내 생각이야~ 너의 길은 네가 선택하는 것이지만 참고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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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3:24:18 *.205.67.118
상담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란 마음이 잘 안 잡히는 것 처럼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여전히 마음에만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아 행동으로 생각만큼 옮겨지지가 않거든요.
뭔가 변화가 되야 좀 더 글이 풍성해 질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오빠의 조언 고마워요. 그쪽으로 글을 쓰고 싶긴 했는데 자신이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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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5.09 18:02:47 *.35.19.58
이렇게 좋은 글귀가 있었던가? "실수와 무지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미선, 지금이 바로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돌이킬 기회다.
사부님 말대로 하루에 백번씩 웃어. 하하하!!!
그럼 네 상담에도 인생에도 글에도 윤기가 흐를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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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04:47:13 *.109.82.151
그래 때론 마음에 힘도 빼고, 의도를 거두어 들이고,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하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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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11 07:56:17 *.219.84.74
마음에서 힘빼기가
자아에서 헛된 바람 같은 것을 빼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에게서 제일 어려운 것이다.
자동차 타이어에 너무 바람을 빵~~빵!!하게 넣으면 얼마 못가서 터지고 마는 것처럼
헛된 바람을 조금 빼어야 할텐데..방법적인 면에서 어렵다.
언제 나를 면담해다오. 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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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05.17 06:21:18 *.30.230.99
의도를 가지고 대화한다는 것, 얼마나 어려운지 상대방이 계속 튕겨나가기만 하는 그 느낌 너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음..^^ 사실 이런 것 때문에 나한테 영업이 어렵고 어쩌면 내 천복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기도하는듯...ㅋㅋ.

미선언니는 정말 마음의 위로를 해주는 상담선생님이 될 것 같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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