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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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할 때면 잘 해야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게 된다. 특히 상담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는 단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나의 머릿속은 바빠지곤 했었다. 어디서 상담을 하거나 상담시연이라도 하려고 하면 머릿속이 전자동으로 돌아가 버려 상대방의 말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런 반응을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이렇게 반응해 주면 될까? 자기 탐색을 할 수 있는 질문을 해줘야 하는데, 어떻게 해줘야 하지?’ 이런 생각들로 가득차 버리니 말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함에도 그것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지난주에 코칭시연 스터디를 하는데 코치 역할을 맡게 되었다. 복잡해지는 머릿속, 거기다 코치이가 말을 너무 장황하게 하니 더욱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난감해져가고 질문을 하게 되도 내 말에 내가 꼬이는 상황이 돼버렸다. 교수님이 좋은 질문을 만들어서 하려고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질문을 해보라고 하신다. 그러니 조금은 수월하게 질문이 나간다. 얼마간의 시연 끝에 이어지는 피드백들, 내 생각에 너무 몰입 되 정말로 집중해야 될 코치이에게 집중을 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코치이에게 도움이 돼 줘야 한다는 생각을 너무 강하게 가지고 있다 보니 좋은 질문을 해줘야 된다는 생각에 눌리게 돼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을 하니 교수님은 왜 해줘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냐고 하신다. 말을 해야로 바꾸니 도움은 일방적으로 가는 게 아니라고 그 안에서 코치도 받는 것이라고 하신다. 말로는 이해가 간다.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도, 코치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안에서 서로 주고 받는 것도, 나를 비워야 하는 것도 머리로는 알겠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와 닿지가 않았다.
드라마 수퍼비전이 있는 날 또 같은 것에 걸리고 만다. 선생님은 집요하다 느낄 정도로 물어보신다. 이런 저런 탐색을 하다 보니 내담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긴 했지만 거기엔 내 욕심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향력 있는 상담자가 되고 싶었다. 내담자가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영향력 있는 상담자 말이다. 내 말을 들으시더니 선생님은 영향력이 없어야 하는 게 상담자라며 나에게 대뜸 진로를 잘못 선택했네 하신다. ‘허걱’하는 마음과 함께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 간다. 지금 내가 상담공부하겠다고 여기다 투자한 시간이 얼마인데 진로를 잘못 선택했다니 괜히 선생님이 원망스러워 진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심층상담이랑 내가 가려고 하는 커리어쪽은 다르잖아 영향력을 주려고 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라고 하며 어떻게는 그 상황을 합리화하려고 하는 내가 보인다. 그래도 마음은 여전히 찝찝하다. 정말 내가 잘못 선택했냐고 재차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만 그러진 못하겠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 보신 후 다시 이어지는 질문들... 영향력이 없어야 된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면 가질수록 -그것이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내담자는 튕겨져 나갈 수 밖에 없다. 그건 그 사람을 믿어주는 것이 아니니깐. 상담에서 내담자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믿어주어야 하는데 내가 영향력을 주려고 한다는 것은 그것을 철저히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명목 하에 내 능력을 키우려고 하는데 만 집중할 뿐 내담자를 믿는 마음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건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제야 상담자의 마음을 비워내야 한다는 것이 왜 필요한지 마음으로 조금 이해가 되었다. 내 영향력으로 인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그로 인한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 사람이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씨앗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치 만화 속에서 마술을 부리는 사람처럼 내가 요술봉으로 그 사람을 몇 번 탁탁 하고 쳐주면 완전 변신을 하길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내가 어떤 특별한 행동을 취해야만 영향을 주는 건 아니었다. 단순히 그 자리에서 내담자를 온전히 믿는 마음을 가지고 받아주고 기다려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었고,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잡아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걸 통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성취감을 느끼기엔 충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건 꼭 상담 안에서 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세상과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도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게 된다면 의도의 종류와 상관없이 어긋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세상을 향한 쌓인 오해는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잘 해봐야지란 마음을 강하게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힘을 빼고 내 마음의 유연성을 갖게 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처음에 진로를 잘 못 선택했네 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바탕에 숨겨진 뜻을 읽어내지 못해 바로 원망의 마음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나를 도와주고자 하는 선생님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기존의 것들과 잘 융화시키면 또 다른 시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깐.
‘삼국유사’에서 저자는
"실수와 무지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라고 말한다. 이처럼 삶의 무지와 실수를 되돌아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또 다른 시선 하나가 내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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