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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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거침없는 사람은 한 가지 길로 나고 죽는다
- 화엄경 중에서-
아, 마음에서 일어나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토굴이나 무덤이나 매한가지.
또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법이 오직 앎이니,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나는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겠네.
-원효가 의상에게-

고창 청보리밭에서 - 청보리밭에서는 푸른 바람이 분다 from Pilgrim Soul by Sasha
잡히지는 않으나 느껴지는 바람처럼, 청보리밭 위로 쏴아 쏴아 불어오는 바람이고 싶다.
언제였는지 문득 바람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그런데 바람은 온몸으로 느껴지지만 결코 잡히지 않았다.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순간들 조차도 없이 걸리지 않고 빠져나갔다. 그저 느껴질 뿐이였다. 그래서 바람을 사진안에 가두었다. 그렇게라도 바람을 잡고 싶은 나의 욕망을 조금이나마 풀고 싶었다. 방랑이란 어쩌면 이런 잡히지 않는 욕망들로 인해 머리가 뜨거워지고 그러면 다시금 머리에 바람을 쐬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길위에서의 생각같다. 바람을 잡겠다는 허황된 욕망을 벗어나서 조금 더 훨훨 자유로울 수 있도록 스스로 바람이되고자 생각해본다. 원효대사가 옆에 있었다면 아마도 물어보지 않았을까 청보리밭에 바람이 부는지 내 마음에 바람이 불고 있는지 말이다. 잡고자하는 욕망도 결국은 마음 밖에 없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요 돌아보면 바로 이자리이거늘 그 하나를 깨닫기 위해서 방랑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원효대사의 이야기는 워낙에 유명해서 새삼 새로울 것도 없을 터인데, 삼국유사를 통해서 다시 만나는 원효대사의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라는 말은 푸른 바람이 내 손안에 흔적만 남기고 떠나듯이 보이지 않는 문신이 되어서 가슴 한켠에 남는다. 식지 않는 욕망들을 식히기 위해서 난 다시 순레자의 길을 떠났었고 이 사진 한 장을 마음에 담아 왔다. 고창 선운사 옆 청보리밭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뜨거워진 머리를 식혀주었다. 바람을 놓을 줄 알아야 비로소 바람이 느껴지는 걸까, 꼭 쥐고 놓지 못했던 주먹을 펴니 그 위로 시원한 바람이 텅빈 손바닥을 스치고 지나간다.
참 이상하다. 다시 돌아올 것인데, 떠나봐야 그 자리를 안다.
대한민국의 오월이야 어디로 떠나든 아름답기라도하지 그 옛날 영하 30도의 라다크로 순례의 길을 떠난 사람들이야 말로 무슨 용기가 나서 그러한 발걸음을 옮겼을까. 저마다 자신안의 영울을 깨우는 길이야 다르겠지만 결국 순례의 길을 선택했을 때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는 결연한 각오 정도는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 한 걸음 떼기가 어려워서 주저한다면 어짜피 가야할 그 길에서의 방랑이 조금 더 길어지는 수 밖에. 현실의 삶 속에서는 그 안에 매몰되어서 잘 보이지 않던 것도 떠나보면 내 안에 함몰되어 있던 작은 빛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바람을 잡고 싶어하던 쓸데 없는 욕망들도 덧없게 느껴지고, 그저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용기있는 시선도 생기는 것 같다. 의상과 원효의 길이 달랐듯이 둘다 거침없는 사람들이지만 그 한 길로 가는 여정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내가 원효에게 좀 더 매력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그는 매우 인간적인 면모와 성인 혹은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운기 작가가 마치 혁명가 손문의 글에서 그 고마움을 찾듯이 내 방랑의 끝에서 원효대사에게 고마움을 표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결국 그 첫 새벽을 열었던 힘은 현실의 문제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한다는 뜻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던지기란 순례자의 길을 떠나는 것 만큼이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두가 그러한 마음은 있지만 그렇고 그런 삶 속에서 타협하면서 살다가 머리가 좀 뜨거워지면 다시 식히기 위해서 방랑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살아가는 삶의 반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난 방랑과 순례의 차이를 본다. 욕망을 쥐고 있는 텅빈 주먹과 놓아버린 충만함의 차이를 본다. 이제 아는 것의 실천이 남았다. 원효처럼 현실을 밀어붙여보는 배짱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첫 새벽이 된다는 바램은 바람을 잡겠다는 허황된 욕망보다 현실적이다.
그렇지만 그 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방랑이 순례로 바뀌는 그 지점이다. 아직도 마음 밖에서 구하고 있다면 그대는 방랑중이다. 하지만 이제 돌아와 마음 밖에 법이 없음을 알고 안으로의 순례를 시작했다면 누군가의 첫 새벽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이된다. 원효는 요석공주와의 만남이라는 파계를 통해서 자신의 부정을 겪고 원효 아닌 원효로 거듭났다. 나 역시도 그러한 변증법적 정반합의 발전이 이 방랑의 끝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새로운 길은 방랑의 끝에서 시작된 순례의 길이 될 것이다. 스스로 자기다움을 찾아낼 때에 비로소 뜨거운 머리도 허황된 욕망도 푸른 바람에 고요히 잠들 것이라는 것을 난 이번 방랑의 길 끝에서 느끼고 돌아왔다. 오늘도 청보리밭에서는 쏴아쏴아 1,000년 넘은 바람이 소식을 전하고 있겠지.
바하의 칸타타 149번으로 갈무리 하고자한다.
잠들어 있는 자신의 영혼을 깨워서 그 수많은 마주침들 속에서 한 길을 보자.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을 두드리는 노래가 있어서 함께한다.
눈뜨라 부르는 소리 있도다라는 바흐의 칸타타 149번 중에서
http://www.youtube.com/watch?v=__lCZeePG48
Bach - Cantata BWV 140 - Peter Schreier - Sleepers wake
photo by sa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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