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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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와 닿는 신화 - 프로메테우스
그리스 신화에는 까마득히 높은 절벽 쇠기둥에 묶여 독수리에게 끊임없이 간을 파먹히는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간은 그 특성상 상당 부분이 잘려나가도 계속 재생되므로 독수리는 주기적으로 날아와 다시 자라난 간을 파먹는 것으로 되어 있다. 상상만 해도 몸서리 쳐지는 프로메테우스의 이미지는 그 자체가 끔찍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내다 볼 수 있으면서도 그 길을 택한 그의 <용기>에 나의 필이 꽂힌다.
프로메테우스는 티탄 신족의 이아페토스의 아들로 그 이름의 뜻이 ‘미리 아는 자’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올륌포스 신들이 티탄 신족과 전쟁을 벌였을 때 제우스 편을 들어 다른 티탄들처럼 무한지옥에 갇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예지자 프로메테우스와 ‘뒤 늦게 아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인간을 창조하고 아울러 다른 동물들에게도 제각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을 주라는 막중한 임무가 맡겨진다.
프로메테우스는 진흙으로 인간을 빚어 그늘에서 잘 말렸다. 그런데 흙덩이에 불과한 이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지혜의 여신 아테나였다. 아테나는 나비 한 마리를 잘 마른 흙 인형의 코 속으로 날아 들어가게 했고, 그로써 인간에게 영혼이 깃들게 되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이 만들어낸 인간들에 대한 애정이 두터웠다. 그래서 살아가는데 가장 유용한 것을 인간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던 프로메테우스는 고심 끝에 천상에 있는 신들의 불을 가져다 주기로 결심한다. 그는 제우스의 벼락에서 불씨를 훔쳐 회향나무 대롱 속에 감추어 가지고 내려와 인간들에게 전해주었고 이를 알게 된 제우스는 노발대발 해서 그를 코카서스 산정 절벽에 매달고 자신의 신조인 독수리를 보내 매일 간을 파먹게 해 고통을 주었다. 신족의 후손이라 죽지 않는 프로메테우스의 이 끝없는 고통은 후에 헤라클레스가 제우스의 명을 받고 독수리를 활로 쏘아 죽이고 사슬을 풀어줄 때까지 계속된다.
불 도둑 사건으로 프로메테우스를 절벽에 매단 제우스는 인간들에게도 벌을 내렸는데 그것은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진흙으로 여자를 만들어서 에피메테우스에게 선물로 보낸 것이다.
이 여자의 이름이 판도라이고 그녀는 ‘열어서는 안 되는’ 신의 금기가 담긴 상자를 제우스로부터 받게 된다. 하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한 판도라는 상자를 열게 되고, 그 속에서 온갖 죄악과 질병이 튀어나왔고, 상자를 급히 닫았을 때는 그저 ‘희망’ 하나만 달랑 남아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우리네 고난한 인생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 이다.
[나의 느낌 첫번째] 프로메테우스는 ‘예견자’이다. 제우스의 모진 고문이 닥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들에게 불을 훔쳐다 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질문에 <소명에 대한 용기>와 <자기완성>이라는 답을 생각했다. 온전한 인간의 삶을 만들어 내는 것이 본인에게 주어진 소명인 것이다. 그저 그런 숨만 쉬는 인간이 아닌 그 이상의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을 소명에 대한 탁월함으로 추구한 것이리라. 이것과 비슷한 느낌은 ‘사기열전’의 저자 사마천에게서 받은 감동과 맥을 같이 하는 듯하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서 다음 중요한 것을 포기하고 버릴 줄 아는 것이 곧 자기완성의 길이며, 그것은 진정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에서 <용기와 자기완성>이 나에게 감동을 주는 부분이다.
[느낌 두 번째]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빛’을 훔쳐다 주었지만 제우스는 거기에 판도라의 상자를 통해 ‘그림자’를 딸려 보냈다. 제우스는 광명의 신이다. 그의 빛은 가릴 것이 없는 로고스 그 자체이다.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쉬이 가질 수 없도록 제우스의 ‘그림자’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빛이 삶의 궁극에 이르게 하는 지혜라면 그림자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본성의 상징일 것이다. 그림자는 지금의 나에게 근심, 걱정, 불안이다. 징그럽게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그 그림자 뒤에 있는 것이다. 제우스의 그림자를 넘어 프로메테우스가 우리에게 전해준 빛의 비밀을 풀 것이다. 그런 상징 뒤에서 내가 취해야 할 것들을 생각한다.
[느낌 세 번째] 마지막 하나는 아테나가 나비 한 마리를 흙 인형의 코 속에 불어넣음으로써 영혼을 부여한 상징에 대한 것이다. 나비는 우리가 알다시피 끊임없이 먹어대야 하는 징그러운 애벌레로 상당한 시간을 보내야 하고, 답답한 고치 속에서 역시 오랜 시간을 견딘 후, 마침내 껍질을 벗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홀연히 날아오른다. 이런 나비의 성장 과정은 옛날 사람들에게도 인간 영혼이 나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여겨졌던 모양이다. 나의 삶에도 이런 견딤의 과정이 필요한 것은 인간 탄생의 자명한 이치인 한가지 흐름이다. 스승님께서는 견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견딤은 3가지를 포함한다. 가난, 고독, 비존재감
그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동굴 속의 곰이다.
가난하고 고독하고 비존재감 속으로 상징되는 10년 동굴 생활이 지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지게 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세상 하나. 그때 밥과 존재가 화해하여 하나가 된다.
내가 쓰는 나의 신화 : 뱀의 죽음
먼 곳, 신은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다. 로고이와 아테.
큰 아들 로고이는 열정이 넘치고 약간의 반항적인 기질을 타고 났다. 정의로운 구석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반면 아테는 스스로 엄격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혼자 생각하는 것을 즐겼다. 그는 지혜로운 구석이 있었으나 스스로 갇혀있어서 그것들을 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같은 배에서 났지만 성격은 매우 달랐다.
아버지 신은 어느 날 그들에게 이야기했다. "참다운 지혜를 얻은 자가 왕이 될 것이다." 로고이는 아버지의 이야기에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나는 왕이 되겠어. 지혜롭고 강하고 존경 받는 그런 왕이 되겠어" 하지만 아테는 웃거나 겸연쩍어 할 뿐 별다른 이야기를 표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형 로고이에 대한 질투심이 깊이 자라고 있었다. 형에 대한 열등감과 스스로 왕이 되어 보겠다는 용기가 없었을 뿐 그의 마음 속에는 세상을 다스리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잠들어 있는 어느 깊은 밤. 아테의 방에서 홀연한 연기가 피어 오르고 창문을 통해 침대 위로 흘러 드는 검은 빗물이 아테의 몸 속으로 흘러 들었다. 그리고는 머리가 둘 달린 거대한 뱀이 아테의 몸을 뚫고 나왔다. 그리고는 아테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너는 왕이 되어야 해, 너 이외에 왕이 되려는 자를 없애야 해.' 아테는 그날 밤 형 로고이를 죽인다. 왕이 되고 말겠다는 삿된 욕망과 오랜 세월 방치한 그의 열등감이 그의 지혜를 가리고 그를 더 깊은 암흑 속으로 인도한 것이다. 그의 뒤로 머리가 둘 달린 검고 커다랗고 징그러운 그림자는 꿈틀거리며 느리게 다시 아테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신은 진노했다. 하나 남은 아들이지만 용서할 수 없었다. 어버지는 그를 추방하기로 하고 신탁을 내린다. "로고이를 살려라. 그러면 너를 받아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너는 인간세상에서 고통 속에서 살다가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아테는 신의 나라에서 추방되어 인간들의 세상으로 떨어졌다. 아버지 신에 의해 아테의 모든 신성은 제거되어 떨어져 나갔지만 아테의 속에 있는 검은 그림자는 몸 속 아주 깊은 곳에 자리잡고 그를 따라왔다.
인간의 세계에 떨어진 그는 외롭고 고독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머물 곳도 없는 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측은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신의 나라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이 새삼 행복한 기억으로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그가 저질렀던 죄에 대한 후회가 밀물처럼 몰려왔다. 하지만 일순간, 그는 스스로를 방어하고 합리화 한다.
로고이를 찾을 길은 막막하고 먼 산을 보며 넋을 잃고 앉아있다. 그때 그의 머리위로 팔색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팔색조는 신의 나라에서 그의 어머니를 지키는 신조로 길을 알려주는 신물이다. 아페는 어머니를 보는 듯이 반가웠다. 팔색조의 발에는 조그마한 쪽지가 있었고, 그 쪽지에는 이런 말이 쓰여져 있다. '남쪽의 젊은 구씨를 찾아가라'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자 배려였다.
그는 팔색조와 함께 남쪽으로 여행한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아페는 지쳐가고 여행의 과정에서 그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보고, 본인 또한 육신과 정신의 극한 고통을 겪기도 했다. 여행 길에서 그는 수 많은 사람들을 비평하고 비난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신의 아들인 자신 보다 못한 구석을 집어내어야 직성이 풀렸다. 아마도 오랜 시간 형에 대한 열등감이 이곳에서도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마음 속에는 세상에 대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질투와 견제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테 본인은 정작 그것을 자기 사랑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모월모일 어느 시장에서 팔색조는 그의 어깨를 날아, 어느 칼 가는 노인의 무릎에 내려 앉는다. 칼 가는 노인은 반갑게 팔색조와 인사를 나눈다. 아페는 노인에게 물었다. "혹시 젊은 구씨를 압니까?" 그러자 노인은 "젊은 구씨는 모르겠지만 아주 먼 옛날 팔색조와의 인연으로 나는 '영구 본형'이라는 이름을 얻었지요"라고 대답한다. 아페는 그간의 일들을 소상히 이야기하고 로고이를 살리는 방법을 알려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는 아페의 요청에 답을 하는 대신에 가지고 있던 칼 중에 하나를 아페에게 건네며 "하나의 균형이 무너질 때 새로운 균형이 시작된다."라고 이야기한다.
아페는 이상한 노인이라 생각했다. 칼을 넣어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가 말한 남쪽의 젊은 구씨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는 길을 간다. 그리고 또 많은 시간이 지났다. 영구 본형을 만나기 전에도 많은 시간을 홀로 했고, 그 이후로도 혼자의 고독을 벗삼아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그가 찾고자 하는 젊은 구씨도 로고이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고난의 세월이 그를 병들게 했고, 아무런 성과도 없는 무심한 시간은 그에게서 희망이라는 끈을 놓게 했다. 아페는 죽음을 앞에 두고서 삶의 허망함을 느꼈다. 가슴 따뜻하게 할 사랑 한 조각 없는 인생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가족과 인간들에 대해서도 항상 방어하고 닫혀있는 세상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잘못 살았구나 하는 생각과 영구 본형의 말이 떠오른다. "하나의 균형이 무너질 때 새로운 균형이 시작된다." "아, 나는 너무 오랜 시간 갇혀 살았구나..." 그때 그의 주변에서 뭔가 스물 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거대한 뱀이 차가운 냉기를 뿜으며 그의 온몸을 감싸 안는다. '그런 생각은 패배자가 하는 생각이다. 태어날 때부터 너는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벗어나려 하지 말아라. 주어진 대로 살아라. 너는 나의 아들이다.' 뱀이 아페의 귀에 속삭인다. 한평생 따라다닌 지긋지긋한 어두움의 속삭임이다. 벗어나고 싶지만 아페는 가위에 눌린 듯 꼼짝할 수 없다. 그때 손 한끝에서 영구 본형이 전해 준 칼이 잡힌다. 그는 죽을 듯이 온 힘을 다해 뱀의 정수리에 칼을 꽂는다. 이 세상이 존재하면서 한번도 들어볼 수 없는 흉측한 소리와 함께 뱀은 스러진다. 아페는 이어서 뱀의 머리를 베어낸다. 숨통이 끊어진 뱀의 머리에서 이번에는 아름다운 음악이 나오고 그 음악 뒤에서 아련히 형의 모습이 보이더니 곧 사라진다.
아페는 정신이 없었다. 빨리 이 뱀을 숨겨야 했다. 이 뱀이 자신의 속에서 나온 것이란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떤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을 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 괴물은 자신의 안에서 나왔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징그러웠다. 무엇으로도 덮어지지 않았고 숨길 수도 없었다.
순간 아페는 이 괴물을 지금까지 먹여 키운 숙주가 다름아닌 자신임을 깨닫는다. 그는 죽은 괴물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측은함은 아페의 눈물로 그의 볼을 타고 흐른다. 처음으로 흘려보는 정화의 눈물이다. 아페의 눈에서 나온 눈물이 흘러 괴물의 죽은 몸을 적신다. 그러자 괴물이 죽은 자리에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일순간에 주위는 온통 꽃밭으로 변한다. 그 꽃밭 뒤에서 로고이가 걸어 나온다. 아주 또렷한 모습으로 걸어 나와 아페를 껴 안는다. 그리고는 서서히 아페의 몸 속으로 들어간다.
세상이 환해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팔색조의 무리가 하늘을 날고 아페의 몸은 하늘로 띄워져 바람처럼 아버지의 나라로 올라간다.
멀리서 영구 본형이 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며 아페를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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