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11년 5월 25일 20시 58분 등록

응애 69 - 나는 학자다 : 다시 쓰는 호랑이 철학 4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 사는 삶
   일본의 종교학자 이소마에 준이치 선생의 경우 / 수유너머 웹진에서 인용.

  1. 내가 공부를 하게 된 사연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 스님이 되려고 했다. 근데 실은 스님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나는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하숙집 바로 앞이 절이었다. 거기는 좌선을 하는 절이었는데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고, 일정한 과정을 거치면 거기서 먹고 살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절에 가서 좌선을 했다. 대학에서는 역사학을 전공 했다. 그런데 정말 재미 없었다. 그 당시 융 심리학만 막 읽고 있었다. 융을 읽고 내 꿈을 분석했다. 아마도 나를 들여다보려고 했던 것 같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학교 공부가 너무 재미없었기 때문에 학자는 되지 않겠다고 생각 했다.  

나는 문학부에 속했다. 80년대 문학 대학에 가는 사람들은 보통 선생님이 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나는 또 선생님을 싫어했다. 일본의 학교제도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권위적이였기 때문에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았던거다. 그래서 나는 취직을 못했다. 그런데 읽고 있는 것은 융이었고... 당시에 융을 하고 있는 대학은 교토대학 밖에 없었다. 교토대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입학하기 어려운 곳 이었다. 게다가 융 전공은 교육학과에 속해 있었다. 나는 융 심리학은 정신분석을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육학과에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것도 접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논문 말고, 자기 문제에 대해서 글쓰기를 한다든지 공부를 한다든지 하는 곳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왔는데, 그런데는 절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절 안에도 엄격한 위계가 존재했다. 그곳에선 절~~대로 지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절에 들어가는 것도 그만 두었다. 아르바이트 하면서 지냈다. 그래서 어떤 것을 하며 먹고살아야 하는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뭔가 능력이 필요한데 나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마침 동경 잡지사에서 편집자를 모집중이었다. 그래서 이력서를 보낼 때 내 글을 써서 같이 보냈다. 그런데 잡지사에서 ‘당신은 재능이 없어서 안 된다’고 보내왔다. 그 계기로 ‘자기 글을 쓰는 것과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정말 다르구나’ 라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지금 고민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썼는데 그것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자기 고민을 어떤 식으로 구성하고 구축해서 사람들과 공유를 하는가는 대학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제가 대학에 가서 융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그렇다면 스위스의 융 학회에 갈 수밖에 없다.” 이런 말을 들었다. 그러자면 독일어 해야지, 돈도 많이 들지... 그래서 포기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서는 자기의 고민을 작품으로 만들 수 없구나!’ 라는 것을 알았고, 또 ‘자기의 고민으로 먹고 살 수 없구나’ 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괴롭고 고민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당시 농촌에서 (이제는 한물간) 코뮨 운동이 한창이었다. 거기를 갔는데, 거기는 인간관계가 너~~무 밀착 되어 있었다. 내 성격 때문에 그런데서는 도저히 살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곳, 유기농 농업을 도제식으로 가르치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실제로 가보니 농약을 써야 된다든지... 하는 문제가 있었다.  

당시는 학교에서 나와 이제 막 자립을 해야 될 때였기에, 먹고 사는 문제와 자기의 고민을 따로 분리해야 하게 되었다. 무엇을 하면서 먹고사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나는 대학을 졸업한지 얼마 안 되서 결혼을 했다. 부모님과 관계가 안 좋아서 가족을 빨리 가지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의 계기가 돼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아이가 생겼고 아이를 먹여 살려야 된다는 문제가 생긴 거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학교의 선생님이 되었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으로 먹고 살려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고, 또 이를 통해서 인정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 일본에서 글쓰기를 해서 산다는 것은 소설가가 되거나 교수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어떻게든 교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근데 역사학보다는... 왠지 모르겠지만 종교학이 더 인간의 고민에 대해 공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종교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에 들어왔다.  

일본에서는 가장 어려운 학교가 동경대학이다. 나는 취직을 하기위해서 동경대를 목표로 잡았고 재수를 할 때 다른 대학은 안가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다. 그래서 대학교에서 월급을 받고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했다. 그러기위해서는 아까도 말했지만 학술논문을 써야만 했다. 살기 위해서 자기의 고민하고는 다른 차원에서 글을 써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자기의 고민과는 다르더라도 학교에서 출세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건, 또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나의 부모님이 중학교 밖에 졸업을 안 한 것과 관련 있다. 우리 집은 생선가게였다. 그 당시 동경대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은 모두 대학교수를 부모로 둔 아이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은 자신이 교수가 되어 편하게 사는 것이 당연했다. 그 마인드가 저와 무척 다르다고 생각을 했다. 이런 속에서 저는 누군가와 소통이 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2.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대학을 졸업한 후 2년 동안, 나는 아무 의미가 없는 삶을 살았다. 그때는 한적한 농가의 2층에 하숙하고 있었고 할 것이 없어 심심했다. 돈도 자동으로 들어오고 수업도 없고... 그때 한 것은 농가에 가서 꽃을 그리거나... 하는 따위였다. 그 와중에도 나는 ‘어? 나 제법 잘 그리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일본 속담에 헤타에 요꼬즈끼(無謀な趣味)라는 말이 있다. 쓸모없는 취미를 일컫는 말이다. 기술이 없는 사람일수록 여기 빠지기 쉽다.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은 ‘좋아함’ 그 자체만을 가지고 삶의 추동력을 만들게 된다. 남들이 보기에 하등의 쓸모가 없는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은 다 헤타에 요꼬즈끼(無謀な趣味)이다. 

나의 선생님은 항상 말씀 하셨다. 인간은 무언가를 맡아야만 살 수 있다고. 선생님은 내게 땅에 발을 붙이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그래서 첫 번째 아들의 이름을 “대지” 로 지었다. 그 의미를 저에게 각인하기 위해서였다. 가족이 있었다는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먹여 살려야하기 때문에 계속 생활을 하고 강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게 가족은 자기를 강제하고 교정하는 기제가 되었다. 그런데 그게 꼭 가족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절실한 필요를 부여하는 뭔가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리고 꼭 자기에게 힘겨운 일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나 같은 경우는 힘든 상황을 만들어야만 하니까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과 잘 지내는 사람, 즉 자기 스스로 잘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의 유형이란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그래서 다 각자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이 있다. 나는 자신과 잘 못 지내기 때문에 그 괴리감이 글쓰기의 동력이 되었다. 자신과 쉽게 화해하면 안된다. 근데 그것은 스스로 알 것이다. 자신에게 정직하면 자신이 알 것이다. 자기가 뭘 하면서 살고 싶은지 자기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너무 물어봤기 때문에 문제였다. 나는 계속 ‘나는 뭘 하고 싶은가 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했다.

3. 한 머리 좋은 교수의 대오각성 

교수가 되기 위해 동경대에 갔던 건 앞에서 이야기 했다. 내가 시즈오카대학, 그러니까... 시골에 있는 대학에 다닐 때 ‘나는 머리가 좋다’고 생각 했었다. 그러던 내가 동경대학에 가서는 같은 일본인인데도 거기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못 알아들었다. 동경대학생들은 가타카나를 많이 쓴다. 그들이 쓰는 말에는 외래어, 즉 영어나 프랑스어가 많았던거다. 집에서 동경대학까지는 두 시간, 도합 왕복 4시간 걸렸는데, 그 동안 동경대학 학생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적어놓고 사전에서 그것을 찾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내가 머리가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도 나는 의외로 나름 능력 있는 사람으로 대우를 받았다. 대학원 과정을 1년 밖에 안했는데 조교직을 맡았다. 박사 논문 쓰지도 않은 채 조교를 할 수 있었던 거다. 학비도 안냈고 오히려 장학금을 받았다. 그래서 가족을 먹여 살리면서 공부할 수 있었던거다. 동경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는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3년 지나고 나니 ‘어? 나도 괜찮지 않아?’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오라’는 제의를 받았고 나는 거절을 했었다. 그러면서 더더욱 스스로를 잘난 사람이라고 착각 하게 되었다. 그러다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출판사(이와나미)에서 책을 내고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삶을 계속 진행한다는 것에 대해서 어느 순간 의문을 느끼게 되었다. 점점 이런 식의 생활을 하다보면 감각이 마비된다. 언젠가부터 ‘나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고 있는가’, 이것을 모르게 되었다.  

일본여자대학에 취직을 해서 처음 4년은 학생들의 얼굴을 보며 수업을 한 적이 없다. 그때 나는 항상 자기 학계라던지 동경대를 의식하면서만 글을 쓰고 있었다. 입만 열면 동경대에 대한 비판이었다. 한국말로 반골 기질이라고 할까? 그때 나의 초점은 동경대교수와 나 중 누가 더 머리가 좋은가에 있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돌아 온 후로, 여자대학 학생들에게서 문득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학생들을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동경대를 비판하면서 ‘내가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 자신이 얼마나 오만한 사람이었는가 새삼 알게 되었다. 이후로 나는 학자로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반학생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어떻게 전달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교수가 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제 사회에 나가려는 사람에게 나의 지식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때 비로소 소통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거다.  

4. 소통하는 글쓰기는 어떤 것인가  

지독한 소통의 부재. 그렇게 된 데는 일본사회의 독특한 분위기도 한 몫을 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자기의 고민과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 사이에 어느 정도 접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개인의 삶과 사회의 문제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1980년 일본은 무라카미 하루끼가 데뷔한 해였다. 그는 ‘자기안의 어둠을 뚫고 나갈 때 사회가 보인다’고 썼다. 하루키는 그런식으로 자신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최초의 질문을 던졌다. 나는 하루키 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하루키는 물었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내 생각에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하지 않고는 자기를 들여다 볼 수 없다. 글을 쓸 때 이 문제는 몹시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이 공감 할 수 있도록 쓰지 않으면 자기의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없다는 말이다. 그게 ‘표현’의 중요한 부분이다. 내가 타인에게 표현을 하고 그 표현에 대해 어떤 반응이 돌아올 때, 비로소 처음 자기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대학교수들은 자기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대학 안에서의 자신에 대해서만 말이다. 이런 말을 해도 좋은지 모르겠지만, 대학논문은 아무나 쓸 수 있다. 잔머리 굴리는 걸 잘 할 수 있으면 대학논문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다. 더하기 곱하기처럼 어떤 규칙만 익히면 된다. 물론 시간은 좀 필요하겠지만. 이건 내가 동경대학 당시에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글쓰기,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써서 먹고 살기, 역시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다. 물론 개인차도 있고 당연히 더딘 사람도 있다. 그 무렵에서 어느덧 20년이 지나, 그 머리 안 좋던 내가 일본 종교학회 안에서 영어로 가장 많은 발표를 하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머리가 좋아서 곱하기 더하기 잘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도대체 어떤 글을 쓸 것이냐? 우리는 이 문제에 답해야 한다.  

5.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의 글을 써라  

그래서 중요한 것은 타인의 눈을 통해서 자기의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거기엔 미묘한 차이들이 있다. 우선, 타인의 마음에 들도록 쓰는 사람. 가령, 일본 사람들에게 ‘당신의 본성은 불교에 있다’고 쓰면 참 좋아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글일까? 근데 나는 일본인의 본성이 불교랑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글은 타인과 소통하는 게 아니라 아부하는 게 되는 거다  

저자가 자기를 들여다보고 쓴 글. 그런 글은 읽는 이 역시 스스로를 들여 보게한다. ‘이것은 나의 문제이기도 하구나’ 라는 공감을 얻는 거다. 글을 쓴 사람과 똑같은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가 자신의 문제를 의식하게 된다는 거다. 이런 글쓰기를 할 수 있을 때 글을 쓴 사람이 비로소 자기를 들여다봤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그때는 글로도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이 나의 글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글로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20년 걸렸다.      

IP *.113.130.4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52 [늑대9] 무림 고수의 꿈 [16] 강훈 2011.05.29 2303
2451 라뽀(rapport) 53 - 막걸리와 안주의 변주곡(變奏曲) file 書元 2011.05.29 2180
2450 [평범한 영웅 009] 공자와 마키아벨리 사이 [29] 김경인 2011.05.29 4796
2449 단상(斷想) 66 - Anchoring 2 file [3] 書元 2011.05.29 1957
2448 응애 72 - 일단 기본에 충실하라 : 다쓰호철 7 [2] 범해 좌경숙 2011.05.29 2160
2447 [양갱] 쓸모없음의 쓸모 file [16] 양경수 2011.05.29 3696
2446 응애 71 - 시장의 윤리 : 다쓰호철 6 범해 좌경숙 2011.05.28 2024
2445 응애 70 - 나의 진심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 다쓰호철 5 [1] 범해 좌경숙 2011.05.27 2426
2444 스마트웍의 배경과 정의, 그리고 성공 요소 희산 2011.05.27 2150
2443 길이 끝나는 동강의 가장 깊은 곳 file [3] 신진철 2011.05.26 2525
2442 하늘... 다리에 이르는 길 file 신진철 2011.05.26 2361
2441 그렇게 하늘과 구름과 산들을 담고 file 신진철 2011.05.26 2159
2440 느릅나무 이백년 살이 file 신진철 2011.05.26 2347
2439 얼른와요! 여가 장터래요! file [1] 신진철 2011.05.26 2303
2438 물길은 그냥 흐르지 않았다 file 신진철 2011.05.26 2067
2437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지나셨나 file 신진철 2011.05.26 3358
» 응애 69 - 나는 학자다 : 다시 쓰는 호랑이 철학 4 범해 좌경숙 2011.05.25 2102
2435 응애 68 - 탈렌트 코드: 다시 쓰는 호랑이 철학 3 범해 좌경숙 2011.05.25 2310
2434 스마트웍, 관리자가 먼저 변해야 한다 [2] 희산 2011.05.25 2028
2433 [호랑이 실험 15: 4-3 프리랜서들이 표범으로 가는 길] file [3] 수희향 2011.05.25 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