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인
- 조회 수 4796
- 댓글 수 29
- 추천 수 0
공자는 지나치게 마땅함에 치우쳐 있고, 마키아벨리는 지나치게 시정잡배의 위선과 욕망에 치우쳐 있다면, 우리는 그 가운데 어딘 가에도 치우치지 않는 처세의 장소를 찾아 거기에 머무르고 싶은 것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와 그 이치를 자신에게 적용할 때 성숙한 한 개인으로서 적절한 처신을 하고 싶은 것이다.
- 구본형, <사람에게서 구하라> 중에서
지난해 1월 팀내 다른 부서에 있던 J차장이 우리 부서로 발령 받아 왔다. J차장과 나는 무척이나 인연이 깊다. 입사 후 영업 현장에서 근무하던 나를 그가 본점으로 데려왔다. 그와 다른 부서에 속했지만 그와 나는 팀의 수장인 상무님을 모시고 여러 번 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오랜 시간 함께 일해 왔다. 그는 탁월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고, 상사의 의도를 잘 간파했으며,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성과를 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평소 내가 존경하던 상사가 우리 부서로 왔으니 나는 무척이나 기뻤다. 역시나 그는 나를 중용했다. 보통 과장급이 처리하는 사업계획 수립 등의 업무와 중요한 일들을 나에게 위임했다. 속된 말로 나는 그의 오른 팔이 되어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일을 처리했다. 그렇게 나는 부서의 중심이 되어 즐겁게 일을 했다.
그러던 중 그와 나 사이에 작은 틈이 벌어지는 사건이 생겼다. 그날은 정확히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와의 첫 경기를 가졌던 지난해 6월 12일 토요일이었다. 아내와 응원을 위해 극장으로 향하던 길에 아내의 할아버님께서 별세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곧장 처가 식구들과 함께 빈소가 있는 경북 울진으로 내려갔다. 내려가자마자 빈소의 손님을 맞고 음식을 나르는 일을 했다. 당시 나는 그와 함께 팀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일은 얼추 마무리가 된 상황이었고, 자료를 보기 좋게 작업하는 부수적인 일들만 남아 있었다. 그에게 '처 조부상' 소식을 전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그는 굉장히 난처해 하는 듯 하며 월요일에 휴가 없이 출근하기를 요구했다. 처가 식구들에게 민망한 인사를 하고 이튿날 나는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월요일에 출근한 나를 보고 부서 사람들은 놀라며 의아해 했다. 다들 왜 발인도 하지 않았는데 올라왔냐는 것이었다. 회사 규정에도 처 조부상도 하루 휴가를 낼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고 했다. 나는 입사 후 처음 그런 일을 치르게 된 터라 그런 규정을 알지 못했고, 상사의 지시이니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호들갑이 나를 더 자극했고, 그 길로 나는 그에게 찾아가 원망 섞인 목소리로 처가식구들에게 민망한 입장이 되어 올라온 이야기를 했다. 그는 상당히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자신도 예전에 처 조부 상 때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야 하는 줄로 알았다고 이야기 했다. 자신도 그랬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그래야 한다는 그의 일방적 논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사실 그의 억지스러운 논리보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려 받지 못한 실망감이 더 컸다. 그렇게 믿고 따르던 그와 나 사이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그 일을 즈음하여 나는 개인적으로 새벽기상을 습관화 하는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동시에 금연과 금주도 함께 시작했다. 그때까지 그와 나는 여전히 돈독한 관계였기 때문에 나는 자랑스럽게 나의 다짐을 그에게 이야기 했다. 그러나 그의 반응은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약간 실망스러웠다. 그는 "그런 결심하지 말아라. 그런 결심하는 사람들 무섭다. 그냥 생긴 대로 살아가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억지로 바꿔 가면서 살아가느냐" 라고 이야기 했다. '지키지도 못할 결심은 애초부터 하지 말아라'라는 의도를 담은 말이었다. 평소 그를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라 여겼던 나는 그런 그의 반응에 고개를 갸우뚱 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나를 걱정해서 그랬을 것이라 여기고 그에게 "개인적인 목표와 회사의 일 사이에 괴리가 생기지 않도록 정교한 각도로 잘 해보겠다" 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 나의 결심이 일시적인 것이 아님을 표현했다.
그러던 중 그와 나 사이를 가르는 결정적인 사건이 생겼다. 저녁 회식 자리에서 그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남들과 다른 독자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완곡하게 표현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마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 부족한 잠을 채우고자 함께 하던 점심식사 무리에서 빠지기 시작한 일. 그리고 평소 앓던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시도한 금연과 금주로 저녁 술자리를 함께 하지 않은 일 등을 위시한 표현 같았다. 그러나 내가 한 결심의 크기 또한 작지 않았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믿었던 상사의 완곡했지만 뼈가 있는 표현은 새로운 습관을 자리잡기 위해 한창 민감했던 내겐 강요로 느껴졌다. 1차 술자리가 끝난 후 나는 더 머물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집에 돌아오니 그로부터 "나도 어떻게 하는 게 옳은 건지 잘 모르겠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나는 이에 대해 "저는 제 문제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흔히 생길 수 있는 다름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회신했다. 그는 그의 리더십과 소통방식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내게 실망했고, 나는 관용과 배려심이 결여된 그의 일방적 리더십에 실망했다.
그 이후 그와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었다. 그런 불편한 관계의 종지부를 찍고 싶기도 했고, 한 부서에 5년 이상 머물러 있어 같은 업무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아 부서장에게 평소 염두에 두고 있었던 교육부서로의 이동을 요청했다. 이런 나의 의사표현이 그들에게 적지 않은 당혹감을 안겨주었던 모양이었다. 며칠 뒤 그로부터 장문의 메일이 왔다. 내가 감정적인 결정을 내린 것 같아 실망스럽다는 내용이었다. 그 근거로 그는 내가 얼마 전 새벽기상과 금연을 시도하며 보냈던 "개인적인 목표와 회사의 일 사이에 괴리가 생기지 않도록 정교한 각도로 잘 해보겠다"는 내용을 그대로 적어 보냈다. 그것까지는 좋았다. 그는 나에게 보내는 메일을 내가 무척 믿고 따르는 과거에 나의 멘토를 담당했던 K과장에게 참조로 보냈다. 그렇게 한 그의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개인적으로 보낸 편지를 함부로 공유하는 그의 일방적인 행동에 나는 또 한 번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곧 K과장에게 연락이 왔고, 그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지난 시간 나의 사연을 이야기 하자 그는 "J차장에 대한 네 기대가 너무 커서 생긴 일인 것 같다. 그러나 그도 감정을 가진 사람인지라 뒤끝이 있을 수도 있는 거다. 그러니 그에게 너무 대단한 기대를 하지는 말아라. 네 말과 의도는 백 번 옳지만 회사생활을 옳은 것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마음 속으로 느끼는 것을 겉으로 다 드러내며 생활 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너무 고집 부리지 말고 좀 더 영리하게 처신해라"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대화 후 K과장과 J차장과의 술자리가 마련되었고, 나는 상한 마음을 뒤로 하고 "제가 잘못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J차장은 그제야 웃으며 "진작 이렇게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이미 떠나버린 나의 마음은 되돌아 오지 않았다. 존경으로 가득 찼던 그에 대한 마음은 이미 실망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바뀐 내 시선은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그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게 했다. 직접 옆에서 그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전에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전해 들은 그의 좋지 않은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 간의 조화와 화합보다는 서로의 경쟁과 알력 관계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동기부여 시키고,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랫사람 들을 혹사시키는 모습을 보았다. 과연 이 모습이 그토록 내가 닮고자 했던 역할 모델의 모습이었나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좋을 땐 한 없이 좋아 상대방의 장점만 골라 보다, 한 번 실망을 하니 온통 상대의 부정적인 모습만 찾아보게 되는 나의 옹색함에 마음이 씁쓸해졌다.
그렇게 지속된 불편한 관계로 인하여 나는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고 행하던 똘똘한 부하직원에서 점점 일 시키기 부담스러운 부하직원이 되어갔다. 그와 동시에 부서에서 내가 담당하던 중요하고 핵심적인 일들은 조금씩 후배들에게 넘어갔고, 그로부터 독점적으로 받았던 총애 또한 이를 은근히 시샘하던 선배와 후배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불과 1년 만에 모든 상황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올해 4월 부서가 분할이 되면서, 그는 승진하여 보직을 부여 받고 부서장이 되었다. 승진하기 며칠 전, 그가 나를 불러 부서 이동을 제안했다. 표현은 완곡했고, 그 이유도 타당했지만 그 제안의 숨은 뜻을 놓칠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았다.
감독이 바뀌면 감독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선수들을 재편한다. 아무리 기량이 뛰어난 선수라고 하더라도 감독의 입맛에 맞지 않는 선수는 주전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나는 주전경쟁에서 밀렸다. 웃으며 흔쾌히 그의 제안을 수락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어떤 패배감 같은 감정이 밀려왔다. 그러나 상황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새로운 부서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기대했지만 담당 임원은 부서가 분할된 과도기적 상황이라 나의 이동을 6개월 간 보류했다. 임원의 신임은 감사했지만, 불편한 관계를 6개월 동안 더 지속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꽉 막혔다.
4월초 킥오프 한 부서의 여러 프로젝트 중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프로젝트가 내게 주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미리 준비하여 쉽사리 전개해 나갈 수 있었던 일들이 손도 대기 싫을 정도로 하기 싫어졌다. 나를 일하게 하는 유일한 힘은 프로젝트 추진 단계별 마감일의 압박감에 의지한 똥줄타기, 벼락치기의 다급함이었다. 어떤 조직에서든 중요한 사람이 되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성취하길 좋아하는 나에게 이런 상황은 하루하루 엄청난 스트레스 안겨주었다.
무엇이 나를 이곳까지 이르게 한 것일까?
나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고 있었다. K과장은 이미 J차장과의 관계에서 작은 틈이 생겼을 때 내게 필요한 훌륭한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의 조언을 받아들이기에 나는 영리하지도 못했고, 유연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당시 나는 내가 마땅히 지켜야 하는 옳은 가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고, 지나치게 일방적인 그의 리더십에 맞서고 싶었으며,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상대가 집요하게 나를 굴복시키려 할수록 나는 더 단호하게 맞섰다. 그러나 그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처참했다.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나는 고립되었고, 동료들은 홀로 단호하게 맞서는 나보다 헤게모니를 쥔 그를 따랐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나는 뭔가 큰 것을 놓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상사로 대변되는 회사의 존재 방식이었다.
스승께서는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저서 <군주론>에서 피력한 내용을 현대판 경영에 적용하여 다음과 같이 바꿔 말씀하셨다. "경영의 목적은 자선이 아니며 도덕의 구현도 아니다. 경영의 핵심은 상징과 외양이다. 성실함, 자비, 인간애와 신실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경영은 본질(what is)의 영역이 아니라 외양(what appear)의 영역에 속한다. 경영은 변화무쌍한 생성과 변화의 영역이며 현상의 영역이다. 철학적 진리나 종교적 진리를 거부한다. 경영자가 추구하는 것은 영혼의 완성이나 진리의 추구가 아니다. 경영자에게는 부의 획득이 우선적 목적이고 영광과 명예 또한 중요한데, 이것은 결국 현상과 외양의 문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정직한 이야기다. 회사는 나 한 사람의 개인적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회사는 부, 명예, 권력이라는 재화의 상대적 희소성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 각자가 추구하는 야심과 이기심이 부단히 충돌하고 변화하는 현상의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역동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J차장이 인정을 받으며 승승장구한 이유와 내가 불행해진 이유가 명백해졌다. 회사가 원하는 '상징과 외양'을 갖춘 그는 인정받았지만, '~처럼 보이는' 의도적 삶에 반기를 들고 개인적인 가치실현을 중시했던 나는 불행해졌다. 원하는 것을 주면 인정받고, 주지 않으면 내친다. 씁쓸하지만 회사라는 조직에 대한 단순하고 명쾌하며 정직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법. 그러나 밥벌이의 진중함을 아는 한 그런 충동적인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실패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내가 무너진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이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활동을 통해 나는 내 삶의 소중한 가치와 존재이유를 찾고자 했으며,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으며 평생 내 삶의 광휘를 비춰줄 천복과 그것이 직업으로 승화된 천직을 찾으려 했다. 이를 추구하는 것은 내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선택이며 올바른 행동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회사가 보기에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가치추구였을 뿐, 그들이 내게 요구하는 것들과는 큰 관련성이 없었다. 한마디로 나는 내가 추구하는 '개인적 마땅함'에 치우친 나머지 회사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다. 이런 지나친 치우침을 경계하여 공자께서는 "군자는 하늘 아래 일을 하면서 죽어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일도 없고, 또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하는 법도 없다. 다만 그 마땅함을 따를 뿐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것 아니면 저것, 모 아니면 도, 흑과 백' 이렇듯 극단에 치우친 나의 시선은 양자택일, 이른바 '선택' 패러다임에 길들여져 있음에 기인한다. 그러나 세상엔 선택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밥과 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건 곤란하다. 둘 다 살아가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스승께서는 이렇듯 본질적인 사안들 사이에 생기는 문제의 경우 '선택(or)'의 패러다임이 아닌 '동시(and) 패러다임'을 취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모순과의 상생'을 강조하셨다. 한 가지에 치우친 획일된 시선이 아닌 세상과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두 개의 시선을 갖추라는 의미다. 그렇다. 내가 회사로 상징되는 J차장과의 초기 갈등 국면에서 놓친 것은 다름 아닌 '모순적이고 대립적인 가치 사이에 존재하는 균형'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나는 과거의 실패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스스로에게 부여할 두 가지 과제를 도출한다. 하나는 그 찾기 쉽지 않은 '모순과 갈등의 접합점을 찾아내는 눈'을 갖추 것. 또 하나는 그 눈을 통해 찾아낸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그 지점을 놓치지 않고 따라다니며 중심을 잃지 않는 것. 이 두 가지야말로 회사와 내가 쿨 한 동행을 하기 위해 부단히 단련해야 하는 과제가 아닐까? 이는 마치 자전거를 배우는 일과도 같다. 처음엔 한쪽으로 치우쳐 자꾸 넘어진다. 그러나 곧 털고 일어나 다시 페달을 밟는다. 한쪽으로 치우칠라 싶으면 방향을 다른 한쪽으로 틀고, 또 그쪽으로 치우칠라 싶으면 또 다시 반대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계속해서 핸들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균형을 유지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균형에 익숙해지게 되고 이윽고 넘어지고 싶어도 넘어질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비록 이번엔 조금 세게 넘어져서 많이 아팠지만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서 페달을 밟는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공자와 마키아벨리 사이 어디쯤에 머물고 있는가?
제 이야기가 많이 치우치죠?
그런데 제가 가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넘칠 수도 없을 것이고, 넘치지 못하면 나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마치 맹자가 저를 위해 '불영과불영'을 이야기 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부님께서 책은 넘치는 걸 가지고 써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 아우는 넘치기는 커녕 깊이 패인 웅덩이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무지하게 버겁네요.
그래서 제 글은 당분간 ( 아니 훨씬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저를 비롯하여,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를 계속 써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부서진 제 편린들이 거름이 되어 비옥해진 터 위에
밝고 환하게 웃고, 부드럽고 유연한 새로운 저를 다시 한 번 빚어 보고 싶어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되, 땡 7이와 나란히 가도 웃으며 갈께요! ^^

네가 새로 부서장이 되어 팀을 이끌고 성과를 내야 하는데 그 팀에 딱 너같은 부하직원이 있으면 어떨까하고 말이야.
점심도 따로 먹고 회식도 안 오고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팀원은 팀장입장에서는 참으로 부담스러운 존재거든. 나도 팀원일 때는 경인처럼 굴었는데, 팀장이 되고 보니 J차장처럼 되더라. 사람은 상황에 따라 처신이 달라지는 것 같아. 네가 J차장의 마음을 조금만 더 이해해주면 서로 win-win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쉽지 않지. 그래서 직장 생활이 어려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