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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9일 19시 52분 등록
막걸리와 안주의 변주곡.jpg

낯선 메마른 자취방의 추억 속에서부터 나를 놓지 않았던 유형의 그란 존재. 그리고 그것과의 오랜 어울림.

 

시원한 막걸리 한잔을 가득 받아 천천히 어둠의 목구멍 저편으로 길게 들이킨다.

달콤삽싸름한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 들어온다.

오묘한 맛.

우유빛깔 몽환적인 색깔 속에 짜릿한 카타르시스의 여운을 느끼게 한다.

전경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배경이 빛나야 되듯 잔을 내려놓고 먼저 세상 두발로 우뚝 선 젓가락을 들어 올리고 척하니 신 김치를 하얀 여인네의 속살을 닮은 두부에 올린다.

그리고 오물오물 내 생존의 도구인 혀의 바닥은 그것을 들어 올리고 삼키며 천천히 음미한다.

그렇지. 그와 어울리는 오묘한 콤비중 하나는 뭐니 뭐니 해도 두부김치다.

신맛과 여백의 미의 환상적인 조합의 하모니.

 

두 번째 잔을 들이킨다.

아! 또 다른 느낌이다.

무언가 묵직한 느낌.

시장한 배를 배시시 헤집고 들어오는 그것.

짜릿한 맛이다.

인생의 또 다른 맛이다.

희한하다.

이번에는 바다에서 멀리 길어져온 과메기란 녀석을 척하니 상추에 싸서 한입을 베어 문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절묘한 브랜딩이랄까.

우적우적 입안에서의 아밀라아제 생성을 통해 그것은 또 다른 맛을 내게 한다.

묵직한 단백질 한 올 한 올이 나의 세포를 파고든다.

피가 된다. 살이 된다. 뼈가 된다.

 

세 번째 잔을 들이킨다.

원샷을 하였다. 우와! 이번엔 제대로다.

이제야 위장의 볼륨이 떡하니 부풀러 온다.

카~ 감탄사가 절로 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생성인 배출의 소리 꺽~

사람들은 흔히 그의 트림과 특유의 냄새 때문에 즐기기를 꺼려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이 그만의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

먹은 듯 안 먹은 듯 속인 듯 속이지 않은 듯 그런 얄팍한 세상 놈들의 상술이 아닌 제대로 된 진검 승부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기에 말이다.

덕분에 조금씩 체온은 달아오르고 양쪽의 볼은 새색시의 그것처럼 불그스레하게 밝아져 온다.

자극이 있으면 반응을 숨길 수 없는 것처럼.

 

부산 영업담당 매니저 시절. 싱싱한 횟감을 앞에 두고 거래처 사업자와 소장이 함께 자리를 하였다.

“이 대리님. 술은 무엇으로 드시겠습니까?”

“저요! 막걸리 한 병 시켜 주시죠.”

회와 막걸리라? 주인장은 난색을 표명한다. 구비를 하지 않기에.

결국은 슈퍼에 가서 구입을 재촉 하였다.

안되면 되게 하라.

“드셔 보세요. 회에다 그와의 술은 의의로 궁합이 어울린답니다.”

나의 꼬드김에 두 사람은 연거푸 잔을 비워 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간밤의 여파로 소장은 오후 늦게나 출근을 하였고 사업자는 장염이 걸려 새벽녘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고 말았다.

나만 혼자 영혼과 육신이 말짱한 체.

 

그의 존재가 가슴에 들어오게 된 것은 대학교 시절부터였다.

그시절 그러하였듯 학생들은 값싼 안주에 배를 푸짐하게 채울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소주는 알코올 도수라는 경계를 떠나 무언가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럴 때 그는 제격 이었다.

쫀쫀하게 소인배 작은 잔으로의 건배가 아닌 커다란 대접 혹은 막사발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나누는 일상과의 운우지정(雲雨之情).

한잔을 마시면 낯설음의 간격이 좁혀지고

두 잔을 마시면 관계의 문이 열리고

세잔을 마시면 동질감이 이어지고

네 잔을 마시면 서로의 허전한 여백이 채워지고

다섯 잔을 마시면 말이 트게 되고

여섯 잔을 마시면 공중부양의 참맛을 알게 되고

일곱 잔을 마시면 세상사 모두가 우리 것이 된다.

그리고 그다음 잔부터는 …….

 

네 번째 잔을 들이킨다.

그래도 배가 차지 않아 감자 하나를 집어 든다.

사람 얼굴이 그러하듯 감자도 그 생김의 모습이 제각각 다르다.

오돌도돌한 놈. 한쪽이 툭 틔어 나온 놈. 못생긴 놈. 미끈한 몸매를 한껏 자랑하는 놈.

나는 그중에 못생긴 놈을 선택 하였다.

물론 못생긴 소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개똥철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이끌리는 대로 마음 가는대로 선택을 하였을 뿐이다.

껍질을 벗겼다.

모든 맛난 것은 조금의 번거로운 수고가 필요하다.

사물 제대로의 본모습과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그 속과 알맹이를 보아야 하듯 껍질을 벗겨내면 겉모습과는 다른 미백의 모습이 드러난다.

화이트닝을 바른 여인의 모습처럼 백치미의 아리따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소금을 곁들인다. 감자는 소금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이다.

우리네 살아가는 세상이 혼자서 되는 일이 없듯 이 녀석들도 궁합이 맞아야 한다.

오물오물 되새기다 보면 고소한 참맛이 난다. 입 안 가득 알알이 부서지는 느낌을 가진다.

좋다.

이제야 조금씩 배가 부르다.

사람은 신기한 동물. 배가 차고 포만감이 느껴지면 그제야 자신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눈에 들어오고 인식을 하게 된다.

나와 마주한 건너편 상대방을 바라보게 되고 그 사람의 내면에 대해 마음과 정신을 연다.

그렇구나. 그래서 그러하였구나. 어쩌면 좋아. 그런 일이 있었네.

공감과 맞장구속에 경계는 허물어지고 주변인이던 우리들은 세상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올곧이 직시하게 된다.

사우나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 남정네들이 벌건 대낮에 작당을 하는 것처럼 서로를 음흉하고 야릇한 눈매로 그의 매력들을 탐닉한다.

 

다섯 번째 잔을 들이킨다.

개인적으로 업무차 전주라는 고장을 들리게 되면 찾게 되는 곳이 삼청동쪽이다.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은 말 그대로 그의 정취에 매료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농익은 여대생과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퇴근을 마치고 들어선 직장인, 세월의 연륜을 자랑하는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외국 멀리서온 낯선 코쟁이들까지 화합의 마당에 정신이 없다.

아직 그와의 만남에 익숙하지 않은 여대생은 호기 있게 한잔을 들이키더니 찡그린 표정을 짓는다.

무엇이 재미있는 듯 그 모습을 바라본 앞의 남정네는 더마시라고 부추긴다.

속셈이 무얼까. 혹시 내가 그러했듯 남정네의 발기된 호기심의 작동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닐지.

혹시 모르지. 그 수작이 때로는 서로의 살아갈 삶들에 침범하여 한평생을 회로 하는 역사로 발돋움할지.

직장인들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그 안에서의 스트레스와 상사를 안주로 씹는다.

어르신들은 살아온 날보다 짧은 아쉬운 가는 날들을 노래하고 거창한 세상사를 논한다.

코쟁이들은 마냥 신기한 듯 주위를 훔쳐본다.

서투른 젓가락질에 시뻘건 보르도를 능가하는 대한민국 와인을 호기심 있게 시음하면서.

 

이번엔 진검 안주인 삼계탕을 시식해 본다.

특이하다. 전국을 돌면서 막걸리를 시식해 보았지만 이런 안주가 나오는 것은 드문 케이스다.

그래서인지 먹는 것에 탐닉하는 나의 눈은 빛이 난다.

영계를 손가락으로 발기발기 찢어 하나를 씹어본다.

맛있다.

항암 작용을 한다는 그와 기력을 회복해 주는 닭과의 조합이라.

주인장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금상첨화.

시원한 국물과 들이키노라니 아름다운 세상이 눈에 걸린다.

 

여섯 번째 잔을 들이킨다.

이제 서서히 경직되어 있던 내 몸은 무장해제가 되면서 릴렉스를 연주한다.

모든 것이 편안하다.

근심, 걱정, 고민, 갈등, 부담 모든 것을 그와의 한잔에 쑤셔놓고 잔을 들이키며 손바닥으로 그 흔적을 지운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렇게 외쳤었던가.

‘나는 세상의 왕이다’ 라고.

그렇다. 이 시간만큼은 그 무엇이 부럽지 않다.

하지만 아쉽다. 이렇게 넓어진 후덕한 마음으로 매번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대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안으로 들어간 퇴적물들을 외부로 배출해야 하는 시간.

나는 이것을 꽃밭에 물주기로 표현한다.

채워져 있던 것을 해우소에서 외부로 천천히 배출 하노라니 야릇한 느낌이 밀려온다.

시원함, 해방감, 답답함의 배출.

그러했으면 좋겠다.

입력과 출력이 원활 하였으면 좋겠다.

들어가는 것이 있으면 나오는 게 있듯이 그런 순환의 논리가 내 생활 전반에도 제대로 작동 하였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가진다.

남이 싫은 이야기를 해도 그냥 넘겼으면 좋겠다.

남이 나에게 손가락질 하더라도 바보처럼 허허 그랬으면 좋겠다.

남이 나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그냥 그러했으면 좋겠다.

도통함은 아니더라도 깎여진 마음처럼 이제는 나도 밴댕이 속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옷을 추스르고 이제는 막잔을 들이킬 시간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현실로의 귀가를 위해 당근과 오이를 집어 된장에 찍어 먹어 본다.

서걱서걱 감도는 맛이 이제까지의 깊게 패인 걸쭉함을 청량함과 깔끔함으로 끝맺음을 맺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못 잊어 못내 그리워하는 것들을

삶이 힘들어 사무치게 살아가는 것들을

이처럼 쿨하게 맺음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동지로써 벗으로써 애인으로써 전우로써 그리도 동반자로써의 이미지로 함께 한다. 그리고 그 주변에 조화되어 있는 여러 배경과 함께.

돌아가는 길. 매캐한 서울 밤바다 하늘아래 실눈을 크게 뜨고 애써 북극성의 위치를 확인한다.

어디 있지. 이쪽이던가.

그러다 마눌 님의 서슬 퍼런 둥근 얼굴이 떠오른다. 이크. 서둘러야 되겠다.

 

이제는 영웅의 여정을 거쳤으니 지상으로의 귀환을 이루어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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