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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8일 22시 22분 등록
편지.JPG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속 울려주던 눈물 젖은 편지~

 

어니언스의 노래 가사가 생각나는 가운데 TV 프로그램에서 군대 입소한 훈련병 모습의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한 까까머리 장병이 점호전 무엇을 꺼내 읽더니 눈시울을 짓는다.

군대 와서 아버지께 받아본 첫 편지.

사랑한다 그 한마디에 아들은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부정을 느끼는 모양이다.

 

편지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초등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국군장병 아저씨들에게 보내는 위문편지 작성이 숙제로 내려 왔었다. 나는 못 쓰는 글씨나마 열심히 적었었다.

‘국군장병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는 중앙 초등학교 4학년 3반 이승호 입니다. 추운데 얼마나 노고가 많으세요.~’

그때는 몰랐다. 의무적으로 썼던 편지지만 멀리 누군가에게 전달이 되어 추운 겨울 꽁꽁 얼어져 있는 손과 발을 따뜻하게 녹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내마음속 한편에는 정리되지 않은 편지들이 존재한다.

좀 더 힘을 내라는 기죽지 마라는 잘할 수 있다는 격려의 응원가를 띄운다.

때론 소음에 때론 외로움에 때론 타인과의 비교에 때론 기억의 편린으로 잊히기도 혹은 미수신 되기도 하지만 나는 날마다 전송을 한다.

제대로 받았는지.

언제쯤 도착이 될까.

보내는 마음은 기약이 없다.

때론 들뜸에 때론 기대감에 때론 초조하게.

시간이 지난 후 답신을 기다린다.

마음과 마음이 통했을 때는 좋은 회신들이 온다.

잘 받았다는 감사하다는 보내줘서 고맙다는.

그럼에도 반응이 없는 경우도 있다.

무얼까. 다르게 해석을 한 걸까.

 

모나미 볼펜 꽁지를 끼운 몽당연필에 침을 발라 꾹꾹 눌러 쓸 때의 동심으로 하루를 채운다.

정갈한 마음으로 글을 적어 나간다. 깨끗한 빈 종이에 여백을 채워 나가는.

이런 띄어쓰기가 틀렸다. 지우개로 지워야지.

박박 때를 지우다 보니 현재인 과거가 지워지고 앞으로의 미래가 태어났다.

쓰다 보니 저절로 집중이 된다. 문명의 총아인 컴퓨터와는 또 다른 정겨운 고향이 되어버린 아날로그의 맛이다.

달짝지근한 여린 종이의 향내와 쓸 때의 정성을 담아 줄이 쳐져있는 편지지를 고이 접는다.

고이 접어 나빌 레라 하나하나의 글들은 꽃이 되어 조금씩 가슴 향해 날아오른다. 생명의 시간으로.

이젠 봉투에 집어 넣어야할 차례. 고전적인 백색 봉투에 넣을까. 아니면 꽃무늬 향내 나는 예쁘장한 봉투에 넣을까.

보내는 이와 받는 이의 주소를 적었다.

새롭다. 기분이. 등록된 이메일을 삽입해서 보내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그런데 기재를 잘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신과 발신이 바뀌어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경우도 생긴다.

이것이 내 의사와 감정을 잘 표현 했음에도 가끔 타인과의 오해를 사는 경우가 발생이 되곤 하는 이유이다.

제대로 주소를 적었는지 다이어리를 뒤적이거나 저장된 연락처를 다시금 확인하다 보니 우편번호를 모른다.

우편번호. 그랬었지. 각자가 사는 지역마다 우편 번호가 달랐었지. 우리네 각자가 태어난 날줄과 씨줄이 다르듯이.

예전에는 우체국의 책자를 뒤적였으나 이제는 간편하게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다.

다되었다.

우편함 앞에 섰다.

이젠 보내기만 하면 된다.

어느 한순간 촌티가 물씬 나는 키 작은 소년으로 돌아간 손끝은 바르르 떨리기까지 하다. 이게 도대체 얼마만이야. 그때는 무척이나 높아 보였었는데. 그때는 받침대를 디디고 섰어야 했는데.

우편함은 냉큼 자신의 속내를 열어 보인다. 나는 거기에 집어넣으면 될 뿐이다.

툭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니 여러 친구들이 있어 사연들의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야, 너는 어떤 내용이니?”

“말마. 우리 주인님이 러브레터를 보내는데 나까지 눈물이 나지 뭐니. 그녀가 어떤 응답을 해올지.”

“나는 결혼 청첩장이야. 두 사람이 함께 새롭게 세상을 살아가는 축복의 메시지를 싣고 가지. 그래서 기분이 좋아.”

“좋겠다. 나는 어느 할아버지의 부고장으로 우울하고 씁쓰레한데.”

“나를 좀 바라봐. 알록달록 반가움의 정수는 뭐니 뭐니 해도 크리스마스카드가 최고지. 징글벨 징글벨~”

편지를 쓸 때의 진심과 보내는 무게가 합쳐지면 그것은 돌아가는 순환 논리에 의해 상대방에게 배달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무언가의 전달을 받겠지.

옛날 집배원 아저씨의 ‘편지요’ 라고 외치는 목소리에 누가 보내었을까 라는 설렘은 설사 줄어들었더라도, 여전히 나에게 외치는 상대방의 울림은 마음 한가운데 감정을 전하고 있다.

 

이젠 보내고 싶다.

낯설기만 어색하기만한 그리고 답신을 바라지 않는 그 무엇으로 편지를 보낸다.

날마다의 희망찬가를 이루어줄 진심 하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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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9 10:20:40 *.238.229.208
참 아름다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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