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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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라는 TV 방송 프로그램을 빠지지 않고 본다. 진행에 대한 잡음, 투표를 통한 경쟁과 예술의 계량화에 대한 시비, 선택된 가수에 대한 이견들이 연일 인터넷에 올라오지만 그런 것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다만 내가 이 프로에 마음을 주는 것은,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은 공연하는 가수들에 대해 느끼는 '동질감' 때문이다. 그들은 정해진 기간 안에 미션으로 주어진 노래 한 곡을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 그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나 여기 살아있다'라는 생(生)의 외침을 듣는 듯하다. 나는 그들의 외침에서 그들과 나를 잇는 은밀한 동질감을 느낀다.
나는 노래를 하지 않지만 글을 쓴다. 나는 연구원이다. <구본형의 변화경영연구소>에서 마음경영, 자기경영을 모토로 스승을 모시고 선배 그리고 동기 연구원들과 생각과 마음을 나눈다. 우리는 매주 삶의 깊이를 담은 책 한 권을 읽고 그것에 대한 감상을 '북리뷰'와 '칼럼'이라는 두 가지 가락과 화음으로 자신의 삶을 노래한다. 이렇게 매주 주어진 미션으로서 내 삶의 한 곡조 노래를 하다 보면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은 좋은 목청에 음정 박자를 잘 맞추는 소리의 유창함만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느낌이 든다. 영혼이랄까, 어긋남의 미학이랄까, 삶의 진흙탕에 몸을 굴릴 때 느껴지는 해방감이랄까, 결국은 잘 안 될 지도 모른다는 생의 예감이랄까, 뭐 그런 것들이 뒤섞여 울음과 같은 혹은 존재의 외침 같은 울림이 있을 때 형언되지 않는 '아!' 하는 감탄사가 나오는 듯하다.
'나는 가수다'를 보고 있으면 '제 멋'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일곱 명의 가수가 각자의 마음을 열고 '제 멋'을 드러낸다.
얼마 전 김범수의 무대 퍼포먼스는 압권이었다. 이날 김범수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케 하는 하얀색 의상을 입고 댄서들과 무대에 올랐다. 흥겨운 리듬으로 편곡한 남진의 ‘님과 함께’를 열창한 김범수는 율동과 함께 유쾌한 무대를 완성했다. 청중 평가단은 대부분 일어선 채 김범수의 노래를 즐겼다. 개그맨 박명수 등과 함께 나서는 실험적 무대이기에 “코믹하게 장난스럽게 보일까 봐 걱정”이었다는 주변의 우려가 찬사로 바뀌었다. 노래가 끝나고 청중평가단은 일제히 “김범수”를 연호했고, 그는 “이런 연호는 처음이다”며 “아직 그 소리가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김범수는 “나는 화려한 삶을 살지 않았다. 하지만 3,4개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 받고 환호를 받은 시간이었다. 음악 하는 동안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순간일 것”이라며 ‘나는 가수다’ 무대에 선 감동을 피력했다. 그의 변신과 즐김이 자신만의 멋스러움으로 승화되는 순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제 잘난 맛에 산다. 잘난 맛을 억누르면 살맛이 없다. 살맛은 자기 표현과 자기 창조와 자기 구현에 있다. 그들의 잘난 맛은 자신들의 존재를 다함에 있어서 보는 이도 더불어 맛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제멋대로 사는 데에는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무언가가 있으며, 그것이 존재를 담고서 예상을 뛰어넘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예술이 되어 우리를 기쁘게 하는 듯하다.
연구원 생활은 과거라는 어찌 보면 죽어 있는 삶의 호흡을 깊은 들숨과 날숨으로 나에게 불어 넣는데 있다. 그런 삶의 깊은 호흡을 통하여 우리는 모두 각자의 '제 멋'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연구원은 김범수와 같이 변신과 즐김을 통해서 다양한 재치를 보여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임재범처럼 진중한 삶의 그림자를 감동으로 그려내거나, 박정현과 같이 자신만의 독특한 컬러로 기교를 예술처럼 구사한다. 이렇듯 <변경연>의 우리들은 삶의 노래를 예술처럼 부르며, 제 멋대로 사는 생을 위하여 자신만의 가락과 화음을 만들어 가고 있는 듯하다.
자신만의 가락과 화음을 만드는 것은 타인의 장단을 거부한다는 것이고, 제 멋대로 산다는 것은 이렇듯 자유의지를 담고 있다.
소로우는 월든 호수가에서 하루에 밥 한끼씩을 먹으면서 자유롭게 살았고, 켐벨은 우드스탁에서 극빈의 즐거움 속에서 자유를 누렸다. 밥 한끼, 돈 몇 푼이 문제가 아니라 제멋대로 사는 데에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소로우와 캠벨은 제멋대로 살기 위해 자신만의 들판을 거닐었다. 들판에는 사회적인 기준이나 기성의 틀이 존재하지 않는다. 발걸음 내딛는 곳에 존재가 있고 자신만의 세상이 있는 것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자기 산출이요 자기 표현인 것이다. 우리들이 추구하는 '제 멋'에는 이런 자유의 정신의 녹아 있다.
나는 나의 멋을 상상해본다. 바라는 바 나만의 자유롭고 흥겨운 퍼포먼스를 꿈꿔본다.
수면 위 백조의 우아함처럼, 그냥 살면서 밥을 먹듯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경지에 오른 장인의 손놀림처럼 무심한 듯 정교하게 짜여서 보는 이를 공감케 했으면 좋겠다. 남들이 신경 쓰지 못하고 지나치는 곳에 초점을 두는 글, 쓸데 없는 생각들은 저절로 아웃 포커스 되고, 반짝 반짝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에 집중되는 그런 글이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만의 '제 멋'이 되어 스스로를 놀라게 하고, 자신하여 "나는 작가다"하며 목놓아 부르는 자유가 있기를 원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