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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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취직을 한지 1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지난주에 회사 연찬회가 강촌에서 있어 다녀왔습니다. 직원들과 어울려 토론하고 밤늦깨까지 깨어 있었습니다. 같이 어울렸다면 밤늦게가 아닌 새벽까지 였겠죠.
둘째날 아침 숙소에서 나와 산책을 나섰습니다. 새소리가 너무 좋았고 조용해서 계속 그곳에 있었으면 했습니다. 곧있으면 아침을 먹을 테고, 그러면 또 일정대로 체육대회를 할거고,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회사로 돌아가겠죠. 그런데 그런게 그냥 강변에서 나는 소리보다 더 좋아보이지 않아요. 걷는 길에 보게 되는 나무는 싱그러운데 저는 좀 무겁습니다.
백양리역에 도착했는데 까만 아스팔트에 노란게 가득합니다. 하루살이였어요.
바람이 불어와서 멈추는 곳에 아주 많이 있어요. 가까이가서 사진 찍는데 미안했습니다. 발을 딛고 설만한 데가 별로 없었어요. 발을 옮길 때 내 발에 밝혀 바삭 으스러지는 소리 때문에 괴물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몇 놈은 아직 힘이 남아있긴 한데 곧 죽겠죠.
강변쪽 풀섶에 있는 하루살이들도 날아다니지 않고 매달려 있는데...... 요 녀석들은 살겠다 싶더라구요.
아스팔트에 있는 녀셕들은 머리서 보면 꽃잎같고, 노란 게 이쁘긴 한데 죽었거나 곧 죽어버릴 것처럼 안어울려 보이고, 풀섶에 있는 건 힘 없어 보여도 살 것 같고.
풀섶에 있는 녀석들한테는 또 하나의 하루가 주어질 것 같더라구요.
다시 취직한지 1년. 시간은 정말이지 무섭게 갑니다. 하루살이의 며칠보다 제 1년이 더 짧았을걸요. 그동안 뭐 별로 한 게 없으니까.
일하면서 하고 싶은 것과 연결하는게 아니니까. 제가 꼭 아스팔트에 앉은 하루살이같아서 미워지는데, 몸도 무겁고 마음도 무거워져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산책을 나올 때보다 훨씬 멀게 느껴졌습니다.
다시 또 1년이 가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지금 선 자리에서 하루를 바꾸는 희망을 보기 전에는, 그전에는 저를 완전히 미워하지는 않을 겁니다.
영혼이 시들어 버리는 듯한 아픔은 다시 겪고 싶지 않아요.
강변, 조용하고 좋습니다. 나무는 푸르고, 길은 좀 지루합니다.
누군가가 나의 일을, 나의 스케줄을 관리해주지 않아서 좋고, 아무 전화가 오지 않은 아침이라 좋습니다. 무거울 발걸음의 끝에 숙소가 있고, 밥을 먹고 나면 또 짜여진 일정대로 움질일 거고, 회사에 돌아가면 주간업무보고를 해야할 거고, 뭔가를 요청하는 전화를 하게될 텐데. 그래도 돌아갈겁니다. 한번 더 그 안에서 전화로 메일로 요청하는 일로 이루어진 삶이 아니라, '내 삶'을 살고 싶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