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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6일 17시 44분 등록

뚱뚱한 외모, 잠자리 테의 안경테, 느릿한 발걸음.

이런. 이 모습이 아니었는데.

내가 상상한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다시 조우한 그분은 그려왔던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 이었다.

 

가톨릭 예비자 교리반 시절. 세례를 받기전 수도원 이라는 곳을 견학 하였다,

장소는 왜관 성베네딕또 수도원이라는 곳.

모든 게 낯설었던 나에겐 이곳은 또 하나의 미지와 동경의 대상 이었다.

거기서 한사람을 만났다.

수도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지원자의 신분인 그.

같은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나는 대학생 이었고 그는 수도자였다.

검정색 수도복이 무척이나 어울리는 앳된 얼굴에 동안의 미소가 아름다웠던 분.

아! 진짜 영화에서나 봄직한 자태였다.

사뿐사뿐 걸음걸이며 말투에서 같은 남자이지만 나는 반하고 말았다.

 

“저희 수도원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양손을 수도복 사이에 집어넣더니 무언가 꺼낸다. 무얼까?

거룩한 십자가일까 아니면 기도서…….

예상과는 달리 그가 꺼낸 물건은 우리들의 허기진 배를 책임질 먹음직스러운 독일식 소시지와 레드 와인 이었다.

한가로이 쏟아지는 햇볕과 함께 잔디밭에서 유쾌하게 즐겼던 그날의 점심 만찬.

이것이 우리 인연의 시작 이었다.

 

고민 끝에 신학교에 입학 하기전 그분이 계신 수도원으로 찾아갔다.

한사람은 성직으로 한사람은 수도직으로 신께 봉사하는 삶으로써 나란히 같은 평행선을 걸으려는 나에게 그분은 축복의 기도를 해주었다.

잘살으라고.

 

신학교를 나와서 현재의 마눌 님이 될 사람과 함께 하겠다는 결심을 할 때에도 그분을 찾아갔다.

“결혼을 할 사람입니다.”

방둑을 걸으며 멋쩍게 인사를 하는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누렁이 한 마리가 졸래졸래 뒤를 따라오는 와중 축하의 기도를 해주었다.

잘살으라고.

 

시간이 흘렀다. 직장을 통해 현실 생활을 시작하며 어느 정도 조직이라는 사회를 익혀 나갈 즈음 그분에게서 통화가 왔다. 오랜만 이었다.

“승호 형제님. 어떻게 지내셨어요?”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 전화를 자주 드리지 못함이 미안했지만 사람 사는 게 다똑같지 라는 스스로의 답변으로 대답을 얼버무렸다.

“수사님은 잘 지내시죠?”

나의 되받아치는 질문에 당신은 신상의 변화를 이야기 하였다.

“이번에 보직 발령을 받아 서울 분원의 수도원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어요.”

서울로 오신다고?

 

얼마 후 나는 그분께 식사를 대접하기로 하였다.

어떤 모습이실까. 어떻게 변하셨을까. 그때의 거룩하고 영적인 모습에서 얼마나 더욱 성장을 하셨을까.

혹시나 후광이 보이지 않을까.

여러 상상을 하고 있을 즈음 약속된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그분의 풍광은 한마디로 아니올시다였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걸까. 사람 외모가 어떻게 저렇게 바뀔 수 있지.

날씬한 백조에서 지방질이 풍부한 오랑우탄으로 바뀌었다고 할까.

헛기침을 하며 인사를 드렸다.

“수사님. 서울 입성을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뱃살이 좀…….”

“그렇죠. 허허허~”

유쾌한 웃음은 여전하시다.

우리는 막걸리를 기울이면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맡고 계시는 일은 뭔가요?”

“출판 영업 이예요. 한마디로 북 세일즈라고나 할까요.”

북 세일즈라? 수도자도 세일즈를 하나?

각 수도원마다 자신들이 소명으로 삼는 업이 있는데 그분이 계신 곳은 여러 미션의 하나로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담당 하시는 일은 그곳에서 나오는 월간 잡지책과 서적 등을 각 성당 및 일반 신자들에게 홍보 및 판매를 하는 업무였다. 술이 조금씩 들어가자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그분은 당신의 고충을 간접적으로 이렇게 표현 하였다.

“서울 생활이 쉽지는 않네요. 최근에 남대문에 있는 큰 우체국을 갔었는데 얼마나 당황이 되던지. 왜관에 있을 때는 그래도 수도복을 입고 가면 아는 체를 하며 배려도 해주고 차 한 잔도 주고 그랬었거든요. 그런데 고객에게 우편물을 발송할 일이 있어 창구를 방문 했더니만 못 볼 것을 보았는지 아가씨 한사람이 저기 가서 줄서세요 라고 냉정하게 면박만 주더군요.”

씁쓰레한 웃음을 지으며 한잔을 들이키는 그분의 모습에 나의 모습이 투영 되었다.

그랬었지. 나도 사회생활 초기에 무지 많은 고충을 겪었었지.

그러면서 과연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하기만한 저분이 서울 대도시의 각박한 생활을 얼마나 견뎌 내실지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동병상련이랄까. 가끔씩 그분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주로 나의 고민이나 인생 진로에 대한 상담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이따금씩 내비치는 당신 속살의 애환도 만만치는 않아 보였다. 특히나 영업 본부장으로 승진의 직함을 부여 받고난 다음부터는 더욱 그러한 것 같았다.

“하시는 업무는 어떠세요?”

웃긴다. 수도생활 하는 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묻다니.

“승호 형제는 영업부 생활할 때 어떻게 버티셨어요. 전월 대비 금월도 매출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네요. 다달이 떨어지는 영업 목표가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고 경비가 들어갈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닌데…….”

괜히 내 마음이 아파왔다. 청소년을 좋아하고 진행 및 이벤트 쪽에 탤런트가 있으신 분이기에 그쪽 파트 쪽이면 정말 더어울린텐데. 괜히 이런 보직 쪽으로 부임을 하셔서 마음고생을 더욱 하시는 것 같아 기분이 그러하였다.

“관리 하시는 직원 분들은 어떠세요. 수사님과 호흡이 잘 맞으신지.”

말을 아끼시지만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 부리는 게 그러네요. 나는 수도자이고 직원들은 가족을 꾸리며 가정생활을 영위 하는 분들이라는 입장의 차이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일반 회사처럼 험한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한마디에 사람 관계에서 파생되는 소소한 어려움을 겪는 그분의 입장이 전해져 왔다. 그러고 보니 뱃살이 더욱 나오는 이유를 알 듯 하였다. 수도자의 신분이지만 영업 파트이기에 거래처 사람을 만나다 보면 술 한 잔도 하게 되실 거고 목적성을 띤 협상 아닌 협상도 하게 될 터이니 말이다.

 

젊디젊은 약관의 나이에서 이제는 사십 줄을 넘어선 나이까지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세월이 지났다. 참 오랫동안의 만남이다. 한사람은 수도자로 한사람은 평범한 신자이면서 세속 생활을 하는 직장인의 신분으로. 그러는 동안 위안도 주고받으며 서로 기대어 주는 사이가 되어갔다.

수도생활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두 사람이 만나 결혼생활을 영위 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신이란 존재를 쫓아가며 수도원 공동체 분들과 아옹다옹 거리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분은 항시 배가 부른 만큼의 인덕과 넉넉한 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자신의 고민 보다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마음 아파하며 기도생활로써 보답을 한다. 분명 일반 사람들처럼 업무 및 수도생활에서 겪는 어려움과 번뇌가 많을 터인데도, 내색 보다는 자신의 길을 올곧이 즐겁게 걸어 나가는 모습을 견지하려고 한다. 개인만의 성품은 아닐 듯한데 그 힘의 근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도를 많이 닦아서인지 아니면 신의 은총인지.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토로한 적이 있다. 수도자나 성직자는 공인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자리라고. 그렇구나. 내가 살아가는 행태가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어쩌면 자신만의 삶보다는, 나를 지켜보는 또 다른 이들의 모델링과 촛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분은 항시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허투루 산다는 것이 남에게는 또 다른 모습으로 인식될 수도 있기에 더욱 잘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일 것이다. 한길을 걸어간다는 것. 고독하고 힘든 만큼 도드라져 보이지 많은 않은 삶일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지금도 그분처럼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 불수호난행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하지 마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이 발자국은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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