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書元
- 조회 수 2219
- 댓글 수 2
- 추천 수 0
똑똑똑.
누구세요?
나예요.
누구시냐니까요?
알면서 왜 그러세요.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많은 인연을 만나 문을 두드리고 손님을 맞이하고 여는 과정을 반복한다.
가족, 친구, 동창, 친척, 모임, 이방인 등.
그런 가운데 나의 내면 또는 외면의 모습들이 투영이 되고 자리 잡힌다.
어떻게 형성이 되는 것일까.
어떻게 인식이 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내가 그들에게 주고자 하는 표징과 그들이 나에게 느끼는 표징이 동일 하느냐의 문제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사람들에게 우리는 선한 이미지로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기를 바란다.
상냥하고 친절하고 똑똑하고 젠틀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자라온 환경과 배경이 다르듯이 저마다 형성된 캐릭터의 모습이 이미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 무게감에 타인은 쉽게 다가서기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월요일 출근길 첫 전철을 탔다.
새벽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목적지를 향해 흔들거리는 열차를 부여잡고 나아간다.
일용직의 일터로 나가는 근로자
학교로 향하는 학생
회사로 향하는 비즈니스맨
마실을 나가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등산복 차림의 아저씨와 아줌마
까르르 웃는 아이와 엄마
와중에 잠을 청하는 분, 수다를 떠는 분, 수심에 가득한 분도 있다.
간밤의 무엇이 저들의 오늘 역사를 깨우며 나아가게 하는 것일까.
유영철이 한창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을 때 이런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그에게도 친구가 있었다는 이야기.
당연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이 말은 적잖은 생각을 가지게 하였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의 범행에 대해서 치를 떨고 살인마라고 손가락질 하는 와중에 그에게도 친구가 있었다니.
친구란 의미의 표징이 무엇인가.
그를 알고 이해해 주고 나누고 보듬는 사이가 아닌가.
누가 뭐라고 해도 친구란 그의 장점을 발견해 주고 격려해 주고 지지해 주는 존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에게서 진정한 그 무엇을 누군가는 발견 하였다는 이야기인데.
사람에게의 표징이란 그에게서 풍기는 향기와 같다.
사람이 하나만의 색채는 아니기에 여기에는 여러 가지의 색깔이 혼합 되어 있으리라.
아름다운 장미의 화려함을 보여줄 수도
들국화 향기의 그리움과 낭만의 추억을 선사할 수도
코스모스처럼 내면의 연약함을 들킬 수도
때론 다가서기 힘든 가시넝쿨과 묘한 악취를 풍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느냐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세상에 어떤 울림으로 다가 서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 주어진 세상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현재 사십대의 모습이 이러하다면 오십대의 모습에서 또 다른 어떤 형태의 매력을 보여줄 것인가.
어떤 건물을 지어 나갈 것인가.
재질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얼마나 튼튼하게 지을 것인가.
어떤 모양으로 지을 것인가.
용도는 무엇인가.
어떤 이미지로 남게 할 것인가.
기억할 것은 넘어지더라도 그것을 일으켜 세우고 부서진 것을 고치고 깨어진 것을 수리하고 보완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것을 다듬고 얼싸안고 일으키고 나아갈려는 보수과정을 끊임없이 멈추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