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몬
- 조회 수 5979
- 댓글 수 14
- 추천 수 0
시간 : 2012/3/31(토) 오후 2시~4시
장소 : 한양대학교 인문대학 40X호 정민 교수님 연구실
사람 : 이길수, 권윤정, 문윤정, 정나라, 한승욱, 최세린, 김이준, 난다님
역할 :
이길수 - 사회/진행, 겨우살이 효소와 오미자
권윤정 - 기록(올리실 예정)
문윤정 - 사진
정나라 - 빵, 꽃, 외모 담당
한승욱 - 남자 담당, 난다님 초청 연락
최세린 - 질문 정리, 프린트
김이준 - 정민 교수님과 인터뷰 일정 잡음, 어쨌거나 후기
난다님 - 팬 담당
<한시미학산책>의 저자, 정민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숙제가 발표된 날 저녁, 바로 인터뷰 의사를 밝히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메일에는 변경연에 대해 소개하면서, 우리가 열심히 했던 <한시미학산책>의 과제 게시판도 링크했습니다. 보내자마자 메일을 확인하신 교수님. 그러나 답장이 없었습니다. 만 하루 반을 조마조마 답장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전화를 해볼까 고민하고 있자니 웨버님께서 어서 하라며 격려? 하시더군요. 저는 연구소 전화번호를 눌렀습니다. 비서님이 받으실 줄 알았는데 신호음이 딱 한 번 울리고 덜컥 받으신 분이 "네 정민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순간 얼음이 되었다가 약간의 어버버와 함께 메일을 드린 사람이라고 말씀드리자, 곧 알아보셨습니다. 교수님은 우리의 글도 읽어보셨다고 하셨습니다. 변경연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시고는 만 하루 동안 마음을 정하신 듯,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 주셨습니다. 어찌나 기쁘던지! 아마 우리가 배우는 대학원생이자, 그 분을 흠모한다는 것을 알기에 응해주신 게 아닐까 합니다!
팔팔이들은 인터뷰 전날 모여서 사전 준비를 같이 하였습니다. 날짜의 제약으로 진성희님과 장재용님, 웨버님은 참석하지 못하였는데 무척 아쉬워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진성희님은 본인이 하고 싶은 질문을 정리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5기 장성우님도 인터뷰 날짜를 궁금해하시며 꼭 참석하고 싶어하셨지만 사정 상, 질문만 맡기셨습니다. 한승욱님의 연락으로 예비 8기였던 난다님도 인터뷰에 참여하기로 하였습니다.
난다님과 세린양!
교수님 연구실 문 앞에 섰는데 오, 설렜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설레네요! 똑똑 문을 의식처럼 두드리고 드디어 그 분을 만났습니다! 문을 열자 빼곡히 놓인 책들 때문에 통로가 좁았습니다. 방향을 꺾자, 채광 좋은 책상에서 일어나는 한 분의 학자가 있었습니다. 정민 교수님은 우리를 위해 병풍 뒤에서 간이 의자를 손수 꺼내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산삼수 같은 구수한 음료수를 내어주셨습니다.
활짝 웃는 팔팔이들.
길수님은 오늘 참 아름답고 정중한 옷차림을 하고 와서 멋지게 인터뷰의 운을 떼셨습니다. 한승욱님이 후에 감탄하면서 그녀의 진행을 칭찬하자, 길수님은 이걸 오늘 새벽 4시부터 준비하셨다고 하더군요.
문윤정님의 카메라 렌즈입니다. 거의 첩보영화급. 이 카메라로 정민 교수님을 1m 앞에서 찍으심.-_- 정민 교수님에게도 정말 새로운 경험이 아니었을까요?
정민 교수님과의 인터뷰 내용은 문윤정님께서 정리해서 올려주시기로 했습니다. 저는 간단하게 (제 마음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가르침을 정리하겠습니다.
1. 18세기와 21세기는 정보량이 폭증한 시대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이제는 단지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가 문제이다. 정보를 찾아내고 판별하고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2. 불과 20여년 만에 사회는 급변했지만, 우리의 삶은 달라진 바가 없다. Saving 된 시간을 더 창조적인 것에 쓰는 것이 아니라 정보에 휘둘려 살고 있다. 즉,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18세기 연암 박지원이 자아의 문제를 계속 거론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내가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 ...(연암의 눈뜬 장님의 예를 들면서) 우리(팔팔이들) 역시, 자신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 위에 있다.
3. 삶은 본질적으로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생로병사의 cycle이 변하지 않으며 욕망의 구조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갈등을 해결하는 process도 변하지 않는다. 외연만이 변할 뿐이다(우리에게 연암이나 다산과 같은 이들의 생각이 유효한 이유이다).
3. 연암은 매우 powerful하다. 3-4주만 읽어도, chaos에 빠지게 된다. 무섭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다산과 연암을 비교하며) 연암은 "질문을 던지는 법"을 알려준다. 연암은 단지 콘텐츠가 아니다. 그는 방법론과 삶의 방식의 문제를 다루었다. ... ... 연암을 알기 전과 후에 나에게 사유의 변화가 왔다.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의 경로를 바꾸는 것이다(예를 드시면서). 지금까지의 질문의 경로를 고수하면 답을 찾을 수 없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4. (연암의 문장에 대해 설명하면서) 좋은 문장은 형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유에서 나온다.
5. (정나라님의 "객관지성"에 대한 후속 질문에 대해) 쟁점에 대해 누가 봐도 합리적이고 타당한 해결을 이끌어 내는 mechanism이 객관지성이다. 그 지점에 도달하는 methology는 다 다를 수 있지만(객관 지성의 객관적 속성이 모순은 아니다).
6. (교수님의 진로에 대한 질문에 대해) 공부의 과정이 꼭 필연적이지는 않다. 우연한 계기가 turning point가 된다.
7. (고미숙씨의 연암 박지원에 대하여) 고미숙씨는 연암을 "노마디즘"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농경민보다 유목민에 가깝다. 여러분(팔팔이)도 이런 시도를 하고 있는 것처럼, 어느 순간 "나"를 결별하고 다시 떠나야 한다.
8. (연암 등이 당시대에 위정자에게 영향을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 자기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왜 남에게 영향을 줄 것을 걱정하는가?(모두들 웃음) 자신을 format해나가는 과정이다. 글을 쓰는 그 과정 제차로서 합목적적이다. 자기가 좋아서 하고, 기뻐서 하는 것이다. (연암을 인용하여) 헐뜯고 명예를 기리는 것은 남에게 달렸고, 옳고 그름은 나에게 달렸다. 중요한 것은 나의 "시비"이지 남이 받아들여주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9. (이어서 다산을 인용하며) 다산은 이/해의 기준과 시/비의 기준으로 생각했다. 각각을 엮으면 4가지 경우수가 나온다. <이 + 시>(옳으면서 나에게도 이득)인 경우가 가장 좋겠지만 드물다. 교육은 <해 + 시>와 <이 + 비>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게 하느냐의 문제이다. 나에게 손해지만 옳은 것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나에게 이득이지만 옳지 않은 것을 선택할 것이냐? 오늘날 교육은 학생들에게 전자가 아닌 후자를 추구하게 한다. "창의성"이라는 이름으로. 인성교육과 창의성 교육은 절대 같이 갈 수 없다. 나쁜 짓을 해서라도 자신에게 이득을 추구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요즘의 교육이다.
10. (<생각없는 생각>이라는 책에 대한 문윤정님의 질문) 좋은 문장이 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부분을 다 지워야 한다. 예전에 나의 스승님은 내가 번역했던 "텅빈 산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네."를, "빈 산 잎지고 비는 부슬부슬"로 고치게 하셨다. 문장을 잘라라. 습관적으로 관용어를 물고 들어가는 버릇을 버려라. 이를 위해서는 무조건 "소리 내서" 읽어야 한다. 나는 아무리 긴 글도 최소한 3번 읽는다.
11. (교수님의 파일링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다산을 인용하며) 물고기 잡는 그물에 날아가던 새가 걸리면 버릴 것이냐? 아니다. 닭도리탕(도가니탕인가?;;;)을 해먹어야 한다. 하나를 연구하면서 얻게 된 다른 자료들 역시 차곡차곡 파일링 해두어야 한다.
12. (관심사가 너무 많을 때는 어떻게 하나?) 여러 충동들은 가만 지켜보면, 일관성이 있다. 하나, 하나는 다르지만 다 동일하다. 뒤죽박죽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느 순간에 어디에 주력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13.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질문자가) 주로 남의 평가에 관심이 많으시다(질문자 = 나ㅜㅜ). 중요한 건 과정이지, 남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여기에 답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굳이 말하자면) 열심히 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교수님께서는 정말, 열성적으로 답변해주셨습니다. 설명을 보완하기 위해 직접 소장하신 중국책을 꺼내서 보여주시기도 하고,
우리가 궁금해하던 원통형 자료문집에서 자료를 꺼내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부시럭 부시럭...
우리가 <스승님의 옥편>에 대해 궁금해하자, 먼저 나서서 "옥편 보여드릴까요?"라고 하시며 옥편을 줄줄이 꺼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곤 그 옥편에서 스승님의 냄새가 난다고 하셨습니다.
스승님의 냄새를 검증 중인 팔팔이들.
흠... 스멜~~~
팔팔이들은 매우 감사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꽃과 전통차를 선물로 드리면서(길수님은 3년 동안 담근 겨우살이 효소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더더욱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교수님의 책에 붓펜으로 일일이 싸인을 받았습니다.
센스쟁이 정나라님 덕분에 교수님과 폴라로이드 사진도 찍었습니다!
저의 저 엄청나게 기뻐하는 얼굴 보이시나요? 인터뷰 후, 너무나 너무나 큰 가르침을 받고 기뻐서 활짝 핀 얼굴이랍니다. 교수님은 한 명 한 명 싸인도 해주시고 사진도 찍어주시고, 마지막에는 악수도 한 명 한 명에게 해주셨답니다.^^
여운을 체화하며.
스승을 만나고, 배움을 구하고, 그 순간을 함께 할 벗을 둔다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일인 줄 몰랐습니다.
이런 기회를 제안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살면서 이 날을 떠올릴 때마다 늘 두근두근 할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살다보면' 게시판에 가서 이준군 후기를 찾다가 여기 다시 찾아돌아왔어요.
뙇! 연구원 게시판에 쓸 수 있다고 하셨어!
질 높은 글을 올리라고 하셨어. 아니 시시한 글은 올릴 수 없다는 맘으로 하라셨지
기억이 나면서 지금 막 말해도 되나 주변을 두리번 거렸습니다.
그나마 연구원 이야기는 요 밑의 수업, 북 리뷰, 칼럼보다는 좀 느슨하고 편안한 공간이겠거니 합니다.
몇 년 동안 기웃거리던 연구원 게시판에 글을 남길 수 있다는 게 실감이 안납니다.
오! 오! 오! 어떻해!!!!!!! 어떻해!!!!!!!
외모담당 정나라, 남자담당 한승욱--> 오매 웃긴 거! 재미있어요. 이준군 ^^
나라님의 빵과 꽃은 쿠바왕에까지 갔다가 온 거지요. (그날 간 건 쿠바왕이 아니라 그냥 클럽이던가? )
참 음주가무에 능한 나라님 손에 정민교수님께 드릴 꽃과 우리 팔팔이를 멕일 빵들이 들려있다는 것이 무언가 핵심적인 상징 같아 보입니다요.
그리고 정민교수님 얼굴 옆에서 활짝 웃는 이준군 사진은 그야말로 흠~~~새로운 팬 하나 등장하신듯 하옵니다만.
그 카페 사진 오오 마음에 확 들었어요. 클럽데이 꼭 가고 싶어요. 그날 어찌나 후회를 했던지.
하늘이 날 더러 클럽데이 따라가라고 일부러 시간을 내 주었는데 너는 집에 와서 잠을 자고 있느냐? 제깍제깍 따라나서거라 한 달은 봐주마 했답니다. ㅋㅋㅋ
물관리하는 기도들한테 자리 다 찼다고 팽 당할까봐 옷차림에 신경을 쓰려고 하면 더 웃겨지겠죠? 근데 이게 걱정은 걱정
아직 인터뷰 기록한 걸 올리지 못했어요.
토요일 밤에 맨홀 구멍에 빠졌다가 오늘 아침에야 기어올라왔어요.
아, 제가 어둠에 눈 익은 지하생활자이긴 합니다만 개척 맨홀이라 이거 시간이 제법 많이 걸리네요.
어제는 월요일 댓바람부터 아그들과 빙상체험으로 아이스링크에 갔다가,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아이스 스케이트를 신고 뒤뚱거렸어요.
그 수준에 우리 아그 하나를 달고 탔더니 핫바 뚝닥 하고, 돌아오는 전세버스에서 부터 골아떨어졌고, 집에 와서는 삭신이 쑤십니다. 어구구구.
곧 올리겠습니다. 기다리는 분들께 죄송합니다.
특히 일본 출장 다녀오신 알흠다운 진성희님 (아름다운 분이 봐주세요^^;;;) ,
우리 웨버 오라버니(아 어떻해, 저는 하영목 웨버님을 이렇게 부르고 싶어요. ^^;;;; 하영목은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는 사람의 준말인가 동음이의어 놀이 하고 있어요 ), 멀리 있는 장재용님도 기다리셨을 텐데요, 아, 든든한 가이드라인 긴손가락 장성우 선배님도 질문을 보내놓고 어찌 대답을 받아왔는 지 궁금하실텐데요.
그리고 그날 늦게 간 주제에 핸펀을 묵음으로 해놓고 정민교수님 연구실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다가 다른 이들을 모두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힐 신고 사람들이 일러준 지름길 대로 오르막을 전력질주 했지 뭡니까? 한양대는 참 많이 변했던데요. @@
이준군, 세린낭자, 한젤리타 님의 빨간 부재중 전화보면서 반성 많이 했습니다.
칼럼과 독후감을 마감 5분전에 내는 슬라이딩 세이브와 요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연구원을 마치지 못하리라는 먹구름을 느꼈습니다.
이런 게 느껴지기 시작하니 맨홀에서 빠져나온 거 맞음! 오늘 올리겠습니다.
문윤정님이 보내주신 사진도 어제 열어보았어요.
어깨 빠져라 무겁게 지고 오신 겁나 대형 사진기로 찍어주신 멋진 사진까지 넣어서 얼른 쓸게요.
칼리여신님이시여, 제발 제 목을 자르지 말아주시옵소서 컹컹컹 (눈 내리 깔았습니다.)
칠전팔기함으로써 팔팔이가 되어보려는 늘보콩두 올림
^.^ 콩두 언니~!
이 댓글 엄청 재밌습니다.
아침 커피 한 잔 마시며 읽고 있는데.. 푸하하, 풉풉, 크크크 연발~!
다른 선생님들이 속으로 '재 요즘 이상해, 맛이 갔나, 봄이여서 저러나..' 이러실 겝니다.
저는 '세린낭자'가 되었군요! 맘에 듭니다. ㅎㅎ
개인적으로 어제 수첩에 적어온 정민 교수님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서
약간 아리송송 기억이 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답니다.
언니가 오늘 올려주는 글을 보면 다시 '아하!'하고 깨달음이 올 듯!
언니가 아니었으면 제가 올린다고 했을텐데..
언니가 올린다고 솔선수범하셔서
내심 '아, 시시한 글 아니고 좋은 글 올라오겠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했답니다.
기대하면서 기다립니다. ^^
'봄비 맞아?' 하면서 맞고 온 비 사이에서 만난 목련이 아른아른 거리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