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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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실에서는 정물화를 하나 그려오라고 과제를 내주었다.
그림을 보고 그리든지, 실제를 보고 그리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책에 나온 사진을 선택했다. 그림을 그리는 순서를 설명한 책이었다.
그책은 우유곽 실제사진이 있고, 그것을 수채화로 그리는 순서를 보여주고 있었다. 책을 선택한 데는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책이 설명해 주기 때문이었다.
이런 책들은 그림은 공식이라고 말한다. 공식을 알면 쉽게 풀리고, 모르면 하나하나 짚어가며 푸는 것처럼 말이다. 수학에서 2차방정식을 푸는 근의 공식을 이해하는 것은 잊은 채, '근의 공식'을 외워서 답을 기계적으로 구해내는 것처럼, 이론적으로 이러이러해야한다는 것을 그림그리는 순서를 차례를 보여준다.
그래서 나도 이책을 집어 들었다. 수채화를 그리는 순서를 보여주는 것이긴 하지만, 명암을 집어 넣는 순서를 보여주는 것이니까.
지금 화실에서 배우는 것이 그것이다.
명암.
지독하게도 지루한 것이다. 입체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지만 그리는 이에게는 무척이도 지루한 작업. (사실 이 연습은 하나도 신나지 않다.)
거친 선을 쓰는 나는 화실의 연필소묘를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같은 요구를 반복하게 만든다. 그 '거친 선' 이란 것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우유곽의 매끄러운 면을 나타내려면 차분하게 엷고 가는 선이 줄줄이 이어지는 면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썼다. 진하게 바르고 휴지로 지워서 매끄럽게 만들어 버렸다.
형태뿐만이 아니라, 명암까지 나타내서 입체감까지 나타내라는 것과 거기에 물체의 질감까지 넣으라는 요구를 다 한장에 넣으려다 보면 성질 많이 죽여야 한다. 갑갑증이 인다.
그래서, 휴식하고 싶었다.
휴식으로 그린 그림
종이 위에서 살살거리며 하는 작업에 갑갑증이 느껴져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연필중에 두껍고 진한 것에 속하는 8B를 집어들고는 박박 그러댔다.
속이 다 시원했다.
그렇게 하고 나서는 다시 연습.
실제 곰인형 보고 그리기.
연필로 형태를 잡아서 죽 그려둔 것에 명암을 넣으라는 선생님의 주문이다.
'선으로 형태를 잡은 것이 보이지 않게 하라.'
'그래.그래... 내가 연습하는 것이 그거지. 야, 그냥 한번 더 해봐라.'
이렇게 달래가며 몇시간을 엷은 선을 수도 없이 겹쳐간다. 다시 갑갑증이 도진다. 다시 달래고, 갑갑하고, 달래고 갑갑하고를 반복한다.
연습이란 이런 것일까?
마음 가는 대로 하던 것은 옆으로 잠시 밀쳐두고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것?
한편으로는 화실샘이 연습에서 요구하는 것을 마스터하고 나면, 전에 가지지 못했던 강력한 툴하나를 더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위로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이러다가 정말 그림이 싫어지는 것은 아닐까. 갑갑증이 나서 원.
연습이란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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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열심히 그리고 있구나..^^
어릴 때, 그림 그리기가 재미없어졌을 때가 떠오른다. 뭔가 즐기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따라해야 하는 것이 될 때, 내 마음의 것이 아닌, 어떤 공식 같은 것을 따라야 하는 것이 되었을 때...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공식이나 순서는 오히려 내가 나를 가두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나는 누나가 휴식으로 그린 그림이 더 마음에 들지만, 또 연습이 없다면 자신의 벽을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어려운 문제네^^;;
결국 누나가 이것 저것 시도해보면서 해결할 수 밖에 없겠다~ 그럼 열심히!!!
어릴 때, 그림 그리기가 재미없어졌을 때가 떠오른다. 뭔가 즐기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따라해야 하는 것이 될 때, 내 마음의 것이 아닌, 어떤 공식 같은 것을 따라야 하는 것이 되었을 때...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공식이나 순서는 오히려 내가 나를 가두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나는 누나가 휴식으로 그린 그림이 더 마음에 들지만, 또 연습이 없다면 자신의 벽을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어려운 문제네^^;;
결국 누나가 이것 저것 시도해보면서 해결할 수 밖에 없겠다~ 그럼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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