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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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정직은 이러한 산문적 글쓰기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이다. 자기 마음속에 일어난, 통념과는 또 다른 여러 이질적 느낌들을 감지하는 실질적 정직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면, 무엇이든 매력적인 글감이 될 수 있다. 단지 앞서 걸어가는 미녀의 종아리에 대해서도 얼마든 지 많은 것을 떠올리고 생각하고 비교하고 반성하고 상상하고 성찰할 수 있다. 단지 마을 버스를 탄 경험을 통해서도 아주 많은 관찰과 느낌과 생각과 기억과 상상을 서술해 볼 수 있다. 단지 돈 잘 쓰는 부유한 친구에게 점심 한 끼 얻어먹은 경험을 통해서도 풍요로운 서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실질적 정직의 자세를 유지하면, 특별히 공부나 지식이 대단치 않더라도 그리고 경험이나 재능이 유별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실질적 느낌과 기분, 감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만의 개성을 확보할 수 있다. 게으른 사람은 게으를 때 명멸하는 여러 느낌과 자의식에 대해서,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 특유의 감수성을 통해서, 못생긴 못생긴 사람으로 살아갈 때 교차하는 시선과 느낌들에 대해 꼼꼼하게 서술하면, 그 자체로 개성적인 글쓰기가 가능해진다.
이렇듯 실질적 정직은 글쓰기의 기본정신이다. 실질적 정직 없이는 글감 자체가 생겨나지 않는다. 반대로 실질적 정직을 유지한다면 삶의 모든 것이 글감으로 변한다. 동시에 자신만의 개성적 목소리가 가능해진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끝없이 자기 마음속에 귀 기울여야 한다. 잠을 깬 순간 밤새 꾼 꿈을 차근차근 되새김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낮 동안의 머리와 마음속에 떠오른 크고 작은 미망과 생각과 행위 하나하나까지도 , 다가오는 사물과 사람에 대한 느낌과 상상 하나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써야 한다. 36
글쓰기 지망생들 모습 또한 예외가 아니다. 말로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서, 실제로는 좋은 글을 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글을 써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말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말로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면서 사실은 연예인이나 직장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 언제나 겉멋을 내고 이런 모임 저른 모임에 기웃거린다. 말로는 언어를 잘 다루는 시인이 되고 싶다면서, 컴퓨터나 인터넷이나 MP3, 혹은 사진 찍기 따위의 기계조작에 더욱 흥미를 갖는다. 말로는 가난할지라도 자유로운 예술가의 길을 걷겠다면서, 언제나 돈과 브랜드에 민감한 채 필수불가결하지 않은 아르바이트 따위로 시간을 허비한다. 말로는 글을 쓰고 싶다면서 예술가의 감수성과 실험정신은 전무한채로, 중산층의 모럴과 예의바른 행동만을 생활의 몸범으로 삼는다.
정말이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포즈만 취하고 있다. 말로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하고, 또 실제로 의식적으로도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글은 한낱 명분이거나 핑계일뿐, 정작은 다른 욕심을 취하고 싶어한다. 마치 사랑이라는 미명을 내세워 섹스를 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처럼, 혹은 신앙을 사랑의 장소가 아니라 권력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사람처럼, 혹은 친절로써 잇속을 챙기려는 장사꾼처럼, 교묘하게도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40
'오늘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오늘 공부하면 장차 꿈을 이룬다'라는 말이 있다 . 이 구절을 , '노력하지 않으면 잠자리 꿈으로 나타나고, 노력하면 현실에서 꿈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바뀌도 무방할 것이다. 꿈은 어떤 형태로든 현현된다. 42
의식뿐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 전체로 꿈꾸는 사람이 되자. 의식과 무의식 전체로 꿈꾸는 '전념'을 실천하자. 전념을 실천해서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란 없다. 하다못해 식당 서빙을 하거나 김밤집을 시작해도 10년 내로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모든 천재들이란 자기 일에 '전념'한 사람들일 뿐이다.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천재가 드문 딱 그만큼, 우리 주변에 자기 일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희귀하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전념을 하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살펴보는 매우 간단한 테스트 방법이 있다. 앞서 소개한 성철, 산속의 선승, 김수영, 전태일 등을 응용하는 것이다. 테스트는 다음과 같다.
- 아침에 눈을 뜨면소변을 누기 전에, 물을 찾기 전에, '여기가 어디지?'파악하기 전에, 몇시나 되었지?' 알아보기 전에, 먼저 자신의 꿈과 관련된 사념을 떠올리고 있는가?
-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느라 맥없이 앉아 있거나 샤워하느라 마음을 놓고 있는 그 순간에, 자신의 꿈과 관련된 사념을 떠올리고 있는가?
- 하루를 아무리 열심히 살았더라도, 잠자리에 들려고 하면, 꿈과 관련되어 스스로의 게으름을 다그치게 만드는 어떤 아쉬움이 남아 있는가? 44
전념의 꿈은, 참으로 놀랍게도,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그 즉시 이루어진다. 꿈이란 우선 자기 마음의 어떤 상태이기 때문이다. 45
마음으로라도 밑줄 쳐 놓은 이들 문장을, 우리로 하여금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하게 만들고, 나아가 자신도 그런 글을 써 보고 싶게 만든 문장이라는 뜻에서 '동기 문장' 혹은 '씨앗 문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 '씨앗 문장'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글을 쓰게 부추기는 가장 기본적인 동인이 아닐까.
'초발심시도'라는 말이 있다. 삶의 궁극을 깨닫고자 초발심을 내어 출가를 열심한 사람이 불가의 어려운 공부와 수행을 거쳐 마침내 확연대오해서 보니, 그가 깨달은 마음 상태는 다름 아닌 바로 처음 깨닫고자 출가를 결심하던 때의 마음 상태와 같더라는 것이다. 그럴법하다. 출가까지 결심할 정도라면 그 순간 그의 마음은 얼마나 결연하고 초연했을까. 그래서 방황하는 수행승에게 곧잘 선사들은 초발심으로 돌아가라고 일렀을 것이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 역시 방향과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는 , 이와 같은 초발심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 초발심이 위치하는 곳이 바로 '씨앗 문장'이다. 글쓰기 힘이 들 때, 자신의 글쓰기가 별다른 진전 없이 자꾸만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고 느껴질 때, 혹은 지나치게 초조해질 때, 다시금 이들 '씨앗 문장'에게로 돌아가 보자. 제발 자신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초조하게 만드는 유명작가를 떠올리지 말고, 자신을 위축시키는 이유들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 재능을 의심하게 만드는 우울증에 사로잡히지 말고, 이들 '씨앗 문장'에게로 돌아가자. 자기에게 영향을 준 작가를 떠올리지도 말고, 자신에게 감동을 준 책 제목을 떠올리지도 말고, 보다 구체적으로 이들 '씨앗 문장'에게로 돌아가 보자. 79
우리는 흔히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다. 혹은 많은 지식을 갖춘 사람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혹은 많이 써 본 사람이 그만큼 더 좋은 글을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체력이 좋은 사람이 그만큼 더 잘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분적으로는 모두 옮은 말이다. 그렇지만 부분적으로는 맞지 않다. 그렇지 않은 조건에서 좋은 글을 써낸 또 다른 예외적 실례들이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이제까지 좋은 글을 써낸 모든 이들의 어김없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그가 훌륭한 작가라면, 그만큼 많은 씨앗 문장을 품은 사람이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가 쓴 책이 훌륭하다면, 그것은 그 책에 우리가 밑줄 그어 둘 만한 대목이나 문장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테니까. 그래서 심지어 글씌에 대해 이렇게 말해 두어도 조금은 비약이 아니다. 모든 글쓰기는 바야흐로 '씨앗 문장'에서 비롯되었으며 마침내 '씨앗 문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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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문장'이 핵심입니다. 책은 못써도, 씨앗문장은 모아둡니다. 저는 트위터에 저의 씨앗문장을 모아두었습니다. http://twitter.com/#!/miari3/favorit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