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id: 깔리여신
  • 조회 수 3345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3년 2월 22일 01시 31분 등록
 

행복의 충격


김화영지음/ 문학동네


저자에 대하여

1942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불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4년 《세대》에 시 「과원」, 196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육성」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으며, 그 뒤 《사계》, 《68문학》 동인으로 활동했다.

뛰어난 안목과 유려한 문체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왔으며,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서 3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정치한 문장과 깊이 있는 분석으로 탁월한 평론을 선보인 전 방위 문학인으로,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바 있다.

펜클럽 문학상, 팔봉 비평문학상, 인촌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1년에는 프랑스와의 문화 교류 및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 공로훈장 오피시에장(OFFICIER)을 받았다.

현재 문학평론가이자 예술원 회원이며,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문학 상상력의 연구』, 『프랑스문학 산책』, 『발자크와 플로베르』, 『행복의 충격』, 『미당 서정주 시에 대하여』,『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 『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 외 다수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알베르 카뮈 전집』(전 20권), 『알베르 카뮈를 찾아서』, 『프랑스 현대소설사』, 『프랑스 현대시사』, 『마담 보바리』, 『섬』, , 『노란 꼽추』, 『침묵』, 『팔월의 일요일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프라하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최초의 인간』, 『걷기예찬』, 『뒷모습』,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 『이별 잦은 시절』, 『어린 왕자』, 『나무를 심은 남자』 등 90여 권이 있다.


목차

개정판 서문

책머리에 

지중해, 나의 사상

내 청춘의 고향, 프로방스

침묵의 공간

세계 최초의 아침

토스카나의 부활절

꿈속의 죽음, 물속의 베네치아

발레아르의 영원한 봄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문장들



지중해, 나의 사상

****‘ 다른 곳’은 공간에 있어서의 미래이다. 다른 곳과 내일 속에 담겨있는 측정할 길 없는 잠재력은 모든 젊은 가슴들을 뛰게 한다. (15P)


***우리들이 참으로 떠난다는 일은 쉽지 않다. 떠나는 방법은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다. 수없이 떠나본 사람에게도 모든 떠남은 항상 최초의 경험이다. 떠나는 방법은 자기 스스로에게도 교육할 수 없는 것이다.

‘미지의 것’ ‘다른 것' '다른 곳’이 담추고 잇는 새로움은 우리들이 모든 유익하엿던 경험들을 무용하게 하는데 그 힘이 있다. 행복을 향하여 미래를 향하여 새로운 낙원을 향하여 떠나는 자는 사실 알지 못하여 것에 대한 공포, 그 공포를 지불하는 순간에 가슴을 진동시키는 놀라움을 향하여 떠나는 것이다. (17P)

***공간을 담는 기계는 생산되었으나 시간과 기간을 담는 기계가 생산되지 않은 덕분에 우리는 모두 같은 추억들을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20P)


****그러나 그 어느 풍경도, 기념관도, 이국적인 거리도, 그곳에 내리는 햇빛, 부는 바람, 괼른 시의 거대한 돔 위로 3월 하순에 내려치는 눈보라도 우리들은 소유하지 못한다. 기념사진으로도 여행기로도, 녹음기로도, 감탄사로도, 소유하지 못한다. 여권에 찍힌 입국 비자로도 소유하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소유를 버리기 위해서 우리들은 떠나지 않는가?(21P)

***그 어느 하나도 소유하기를 거부하는 여행자가 생명이 불타고 있는 한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그의 속내 이야기, 그의 내적 풍경, 그의 비밀이다. (21P)


***파리의 늦가을은 싸늘하다. 이상한 일이다. 방향감각이 혼란되면 더욱 춥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할 때 나의 눈은 보지 않는다. 사물을 보는 나의 눈은 나의 밖에 있는 사물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동시에 본다. 나의 사물과의 통재할 수 있는 거리를 우리는 이상하게도 친밀감이라고 부른다. 그때 내 몸은 그 친밀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26P)


****우리들이 기차에서 내리는 시간, 우리가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때는 항상 무엇 때문에 박명의 시간일까? 우리들의 모든 대낮은 왜 기차와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늘 새벽에나 밤에 역에 도착한다. 심지어 대낮에 도착하였던 일도 기억속에서는 항상 박명의 역에 빨려들어버리는 것만 같다. (28P)


***때때로 나는 주머니 속에서 1프랑짜리 은화를 잘랑거리면서 세잔네 정원을 찾아가 호젓한 저녁나절을 보내곤 하였다.

내 어린 시절 동네의 문중 정자의 잠긴 담을 몰래 넘어 들어갔을 때 오래 손질하지 않은 정원의 넝쿨 숲, 그 넝쿨 숲속에 열리던 은밀한 붉은 열매며 이름 모를 꽃들, 다시 반쯤 열린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텅 빈 사당 앞 깎지 않고 버려둔 잔디밭, 그때 빈 집 뜰에 가득하엿던 고요, 그리고 어린 가슴을 흔들던 야릇한 무서움과 침욱의 울림, 멀리서 들리는 대낮의 개짖는 소리, 이 모든 것을 세잔의 작은 숲은 나에게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35P)

****파리에서 누군가에게 'Aix엑스‘를 아느냐고 물으면 그는 물론 엑상프로방스를 머리에 떠올린다. 아름다운 도시, 다정한 도시 라고 대답하는 파리 사람들의 표정 속에는 꿈과 선망이 담겨잇다. 그 꿈은 어느 여름 오후를 보낸 쿠르 미라보의 카페, 그늘지고 조용한 구시가의 작은 골목에로의 산책, 벤치 위에 내리는 햇빛의 반점들, 서점에서 만난 초록빛 논의 처녀, 부활절 무렵부터 늦봄까지 피는 코클리코 붉은 야생화, 자동차로 십오분이면 항상 눈앞에 출렁거리는 지중해, 근교의 푸른 하늘을 물들일 듯한 보랏빛 라벤더의 광활한 고랑들, 언덕빼기에 자욱한 향료 텡(타임)의 그윽한 냄새, 토르네 성으로 넘어가는 언덕길, 양옆의 숲 속에 드문드문 자리잡은 하얀별장들, 작열하는 태양에 빛이 바랜 붉은 기와, 시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학생들의 이 소도시를 가득히 채우는 영원한 청춘의 설렘, 카페의 카운터 앞에 서서 낯선 사람과 어깨를 툭툭 치며 웃으면서 마시는 차디차고 독한 파스티스, 목마른 자에게 물의 정수를 맛보여주는 녹색의 박하수, 골목골목에 나직이 고요의 소리를 보태는 분수, 그리고 아 그리고 모든 것, 은밀하면서도 다정한 것들, 바쁜 관광객들에게는 쉬 내보이지 않는 비밀들, 이 모든 기억들 쪽으로 그의 꿈은 남몰래 열려있다.

그러나 엑상프로방스는 능률을 찾는 자, 시간이 바쁜 사람, 견문을 넓히려는 교양인, 소유의 노예들,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일체의 환상을 거부한다. (37~38P)


****누구나 영원한 봄, 영우너한 여름을 프로방스의 자산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햇빛이 참으로 우리들의 눈이 아니라 프로방스의 속담처럼 ‘나의 살을 노래하게 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 모든 부질없는 허영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프로방스에 내리는 각종 챗빛의 감도, 부활절 무렵 애무하는 꽃물결처럼 피부를 간질이는 햇빛, 저녀나절 가벼운 바람에 실려와서 당신의 목덜미를 쓸고가며 벌써 저 앞에 걸어가는 처녀으 갈색 머리털을 번뜩이는 햇빛, 한여름 심벌즈를 난타하는 듯 금속성을 내며 찌르릉거리는 햇빛, 가을철 분수의 물줄기를 타고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햇빛, 한겨울 론 강 골짜기를 따라 살을 에도록 미스트랄 바람이 불 때도 창 밖에서 내다보면 언제나 따뜻한 겨울의 환상을 주는 노랗고 투명한 햇빛, 베란다의 베고니아 꽃 속에 자란자란 고이는 햇빛, 작은 커피 잔 위로 플라타너스 잎새들 사이로 스며 나와 잘랑짤랑 흔들리며 요령소리를 내는 은빛 반점의 햇빛, 이 모든 햇빛, 이 도시의 문화, 이 도시의 청춘, 이 도시의 행복의 살 속에 핏속에 들어와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려면 우리들은 최초의 낯선 시간들을 견디지 않으면 안된다. 지중해안의 따뜻한 가슴, 프로방스는 완전히 절망한 사람이 올 곳은 아니다. 오직 행복한 자,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이도 이 땅위에 태어난 것이 못 견디게 기뻐하는 자들만이 올 곳이다. (39P)

**** 프로방스의 매순간이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의 축제’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였다. 죽어야 할 육체를 가진 인간의 가득한 행복만이 우리가 가진 진정한 조건, 비극의 참 의미를 가능하게 한다.

이들 삶의 축제를 관장하는 두 개의 신, 행복과 비극은 프로방스가 고대 그리스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말하고 잇다. 프로방스 사람들도 고대의 그리스인들처럼 말한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목용하지 못한다”라고.

그들은 혹은 알프레드 드 비니치럼 생각한다. ‘우리가 사랑할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여야 할 것은 지나가버리는 것이다“라고. (40P)

내 청춘의 고향, 프로방스


****막연히 나의 육체, 나의 감각은 이 고장의 나무랄데 없는 풍경과 기후에 저항을 느끼는 것이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나의 마음은 쉬 안정되지 않았다.

사철 밝은 햇빛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베란다 위에, 풀밭에, 거리에, 카페에 잘도 내리비치고, 소나무와 잡목림이 곳곳에 무성하며, 아름드리 가로수가 드넓은 포도위에 그 너그러운 그늘을  드리우고 아르크의 실개천이 엑스 시를 굽이돌며 그 빛 밝은 전원 풍경을 안고 흔들어 재우는 풍경이라고 묘사를 해놓고 보면 나의 불안한 마음은 더욱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47P)

****수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나는 그때의 얄궂은 저항감이나 불안정감은 아마도 내가 최초로 받은 행복의 충격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47P)


***무방비 상태로 도착한 나에게 프로방스는 여유를 주지 아니하였다. 여기서는 행복이 완만한 속도로 꽃향기처럼 스며나오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행복의 외침으로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이 열린 풍경, 아무 것도 감춘 것 없는 전라의 풍경 속에서 나는 오직 어리둥절했을 뿐이었다. ...지금 당장 여기서 행복한 사람, 그득하게 에누리없이 시새우며 행복한 사람의 땅, 프로방스는 그리하여 내게는 그토록 낯이 설었다. (49P)


****무엇인가를 배워야겟다는 사람, 교육을 받아 더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뜻하는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라고는 여기에 아무 것도 없다. 이 고장은 교훈이 없다. 이 고장은 무엇을 약속하는 법도 없고, 여기서 무엇을 넘겨다 볼 것도 없다. 이 고장은 다만 주는 것으로 그것도 아낌없이 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49P)


***자기 스스로를 키워가고 있는 인간들에게 저의 찬란한 아름다움과 비참을 동시에 부여하는 이 기묘한 고장! 감수성 예민한 이 고장 사람이면 다 누리고 있는 이 관능적인 풍요로움이 동시에 지극한 헐벗음과 일치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자체에 쓰디쓴 맛을 지니지 않은 진실이란 없다. (50P)

****"대지가 메마른 곳에는 가장 현명하고 가장 탁월한 영혼이 잇다“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후세인들은 ”메마른 영혼이 가장 좋은 영혼이다“라고 번역하였다. 가장 메마르고 가장 견고한 그들의 영혼을 영원 속에 새겨두기 위하여 그리스인들은 수많은 신전과 수많은 조가상들을 깎아 세웠지만 반면 그들은 이로서 그들의 그 건장하고 행복한 육체가 썩는다는 사실에 대한 가장 깊고 비통한 이해를 표현하였다. 알제의 젊은이들처럼 그리스인들도 행복이라는 도박을 그들의 육체에 걸었고, 그 도박에서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행복에는 희망이 없고 그들의 사랑에는 내일이 없고 그들의 기쁨에는 위안이 없다. 그리하여ㅕ 그들은 매순간 가득하고 에누리 없고 회한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비극적인 일생을 마치고 콜로누스에서 장님이 되어 죽어가면서 “그래서 참으로 모든 것은 좋았다”라고 결산한 오이디푸스왕자는 그리스인이었다. (54P)


***생트 빅투아산을 바라보면서, 나는 왠지 내가 사는 그 행복한 소도시 엑상프로방스는 사막의 한 가운데 세워진 오아시스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주변에 물이 없는 것도 아니고 광대한 모래와 돌자갈의 사막이 가까이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을 , 이 순간을 사는 사람들의 투철한 현재성, 뼈를 드러낸 것 같은 암석, 쥐어짜듯이 몸을 틀며 자라는 그 단단하고 강인한 올리브나무들, 건조한 땅에 자라는 소나무, 가시같은 잎을 가득히 달고 선 향초 로즈메리, 평원에 드문드문 오직 하늘을 향해 모진 가슴을 조이며 자라나는 삼목 e등 모든 요소들이 단단하고 메마른 직립의 풍경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55P)


***도시 안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소란을 피운 뒤고 보면 더욱 그러하다. 벌써 나는 쾌락으로 달떠서 빠르게 뛰는 가슴의 고동 소리며 숲의 넓고 깊은 호흡을 듣는다. 이처럼 음악도 때로는 ‘스타카토’로부터 ‘레가토’로 과도기적 과정을 뛰어넘는 수가 있다. 우리들의 사고는 곡식 단처럼 꼭 묶여 잇다가 이 지점에 오면 매듭이 풀려 기쁘게 개화한다. 어쩌면 나는 이런 순간만을 살도록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56P)


****그 음악은 마치 우리들 눈앞에 점점 더 확대되어 열리는 공간, 더 많은 빛, 항상 더 많은 빛에 잠기는 공간과도 같다. 우리는 그때 도취감에 잠겨 전진한다. 도취감 그 자체를 확신하는 도취감, 대자연과 정신이 부둥켜안게 될 때까지 목표를 햐앟여 곧바로 전진하는 도취감에 젖는다. (57P)

****정신은 많은 것을 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정신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측정하는 일분이다. 너무나 광대한 풍경은 우리들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속을 다 비워버리는 것이다. (57p)


****우리는 대장관 앞에서 눈을 감고 스스로를 그 속에 몰입시켜 자연 자체가 디고 그 영향을 얻고 싶어질 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후일 그 대장관 없이도 살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대장관은 우리들 자신이 되어버렸을 테니까.(58P)


***세계의 부조리가 어디 있는가? 이 눈부신 햇빛인가 아니면 햇빛이 없던 때의 추억인가? 기억 속에 이렇게도 많은 햇빛을 담고서 내가 어덯게 무의미에다 걸고 내기를 할 수 잇었던가? 내 주변에서는 그래서 놀란다. 나도 때로 놀란다. 바로 그 태양이 그렇게 하는데 도움이 되엇다고. 그리고 빛이 너무나 강렬해지다 보면 우주와 형상들을 캄캄한 눈부심 속에 응고시키고 마는 것이라고 남들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달리 말할 수도 있을 테지만 내게는 언제나 진리의 빛이었던 이 희고 검은 빛 앞에서 나는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남들이 마구잡이로 논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는 이 부조리에 대하여 그냥 단순하게 내 생각을 밝혀두고 싶다. 그래도 역시 부조리를 이야기하다보면 우리는 또다시 햇빛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카뮈의 산문 -수수께끼-에 재인용(59P)


****부조리가 형이상학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형언하기 어려운 어떤 감수성의 체계, 외계의 물적 현상과 인간의 육체가 직접 마주 닿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보다 직접적이고 육적인 지헤의 표현이기 쉬울것이라는 가정은 이미 <시지프 신화>, <이방인>을 수차에 걸쳐 읽은 나에게는 거의 확신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소설이나 철학적 에세이의 체게속에 편입되어 표현된 부조리보다도 한결 더 이 산문은 나의 지적 사고가 아니라 육체적 감성에 직접적으로 부딪쳐오기 때문에 나의 확신에 생명을 부여하는 듯했다. (60P)


***쉬 머무를 수 있고 쉬 떠날 수 있는 곳이 지중해이다. 과거도 묻혀버리고 미래도 계산되지 않는 것이 프로방스의 사랑이다. (61P)


******지중해의 사람들은 약속하지 않는다. 과거의 추억을 반추하지도 않는다. 떠날 때 어깨를 툭툭 치며 악수를 하면 그냥 돌아서서 간다. 수년이 지나도록 편지 한 장 없는 수가 많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어던 카페의 테라스에서 마주치면 씩 웃으면서 마치 잠시 전에 헤어졌던 사람처럼 말한다. 그동안 왜 그리 소식이 없었느냐고 물으면 변명하지 않고 “다 알잖아?”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들이 항상 지중해에서 다시 만날 것을 생명이 있는 한 다시 만날 것을 다 알지 않느냐는 확신을 뜻한다. (61~62P)


****지중해에서 사람들은 헤어지지 않는다. 지중해는 사람들이 만나는 당이다. 세게사의 한 고향 지중해에는 여원한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의 현재, 하나의 사랑이 끝나면 또 하나의 현재, 또 하나의 사랑이 항상 새로 시작한다는 확신을 가진 돈후안은 지중해의 사람이었다. (62p)


****멀리 보이는 평원에 외로이 서 있는 시프레나무의 상승, 올리브나무의 과수원들은 반 고흐를 생각하게 한다. 가장 행복하고 가장 비극적인 수 년을 프로방스에 와서 보낸 북유럽인 반 고흐의 소용돌이치는 태양, 그의 인상주의는 이 고장에서 받은 행복의 충격을 표현한 것이었다. (63P)


***카뮈는 남몰래 관중들 속에 섞여 앉아 연극을 은밀히 관람하였다. 그를 관중들 속에서 발견한 신문기자들이 찍은 사진이 그의 마지막 사진이 될 줄은 그때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1960년 1월 4일 월요일 오후 1시 55분 상스에서 파리로 가는 국도 위를 지나가던 행인은 끔찍한 소리를 들었다. 자동차 한 대가 가로수를 들이받고 부서졌고 그 차의 뒷자리에 앉았던 한 승객이 즉사했다. 그의 주머니에서 확인한 이름은 나이 마흔 다섯의 작가 알베르 카뮈였고 다른 주머니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그날의 파리행 기차표가 발견되었다. (67P)


*****헌화장식이 어지러운 묘지에는 햇빛이 가득하였고 곳곳에 시프레나무가 바람을 막고 있었다. 그 해묵은 묘석의 열(列)을 지나 왼쪽 담장 가까운 볕마른 곳에 향기로운 로즈메리가 자욱이 덮인 곳에 소박하고 평범한 묘석이 하나 옿여 있고 그 위에 ‘알베르 카뮈, 1913~1960’이라는 내용만이 비바람에 닦여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때는 햇살이 비치던 아름다운 겨울날이었다. 하늘의 푸른 빛 속에서 노랗게 빛나는 추위가 느껴지고 있었다. 묘지는 시가지를 굽어보고 있었으며 마치 젖은 입술처럼 빛을 받아 진동하는 항만 위로 아름다운 햇빛이 투명하게 내리비치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다 찾아오는 죽음, 그러나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죽음. 하여간 그렇기는 해도 역시 태양은 우리의 뼈를 따뜻하게 덥혀준다. (70P)-까뮈의 글 인용


****사방에서 세차게 부는 바람의 매질에도 굳세게 견디어왔고, 생트마리드라메르의 축제 때면 세계 각처에서 성지순례차 지나가다가 습관적으로 머무는 집시들에게 내맡겨져 유린되곤 했던 이 성이 험준하고 살기 어려운 골짜기에서 꿋꿋이 버티어 서 있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성벽 주변에는 봄마다 코글리코가 빞빛으로 낭자하고 황색 수선화도 봄마다 잊지 않고 피지만 그 후 나는 그 꽃다발을 내개 준 소년을 다시 만나지 못하였다. (71P)


***해질 녘이 되면 프로방스에서는 우주가 보인다. 둥근 세계가 보인다. 황혼 녘의 들판은 과일처럼 잘 익은 빵처럼 둥글어간다. 낮에는 늘 ‘나’만을 생각하던 우리가 저녁시간이면 나에게서 떠나 시선을 멀리 던지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가 세계를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계의 속으로 들어간다. 당신은 기억하는가. 또 하나의 프로방스인, 가장 뜨거운 열정과 사랑과 삶의 충동에 불타던 장 지오느롤?

    “하루해는 어둠의 혼란된 시각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하루해의 모양은 길지 않다. 화살이나 길이나 인간의 경주처럼 어떤 목적을 향해가는 긴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태양이나 세계나 하느님의 모양처럼 영원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가진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문명은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향하여, 어떤 머나먼 목적을 향하여 가고 있다고 설득시키고자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목적은 사는 것이며, 삶은 우리가 매일같이 항상 하고 있는 일이며 하루의 매 시각 우리가 살기만 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목적을 다 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모든 문명된 사람들은 새벽에 혹은 그보다 좀더 늦게 혹은 그보다 훨씬 늦게, 요컨대 그들이 일을 시작하는 정해진 시각에 하루가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하루가 그들이 하루종일이라고 부르는 작업시간에 걸쳐 잇으며 그들이 눈꺼풀을 잠그는 시각에 끝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잇다. 바로 그들이 날들은 길다고 말한다.

아니다, 날들은 둥글다.

  우리는 그 어떤 목적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로 모든 것을 향해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언제든 느낄 태세를 갖추고 있는 오관과 살을 가지는 그 순간에 모든 목적은 달성되었다. 날들은 과일과 같다. 우리들의 역할은 그 과일들만 먹는 일이다. 우리들 본성에 따라 부드럽게든 탐욕스럽게든 그 과일들을 먹는 일이다. 그 과일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을 섭취하여 우리의 정신적인 살을 우리의 영혼을 만드는 일, 즉 사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그 밖의 어떤 목적도 없다.”  장지오노의 글인용 (79~80P)



침묵의 공간

*****잔잔한 저녁 나절 햇빛이 가득히 고이는 프로방스의 침묵 속에 외롭게 가는 나그네의 등이 보이고 그 뒷모습 어딘가에는 반 고흐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나 붓을 잡고 화폭 앞에 앉은 고흐영감의 모습이 아니라 고통과 광기가 정신의 심연 속에서 피를 흘리는 시각의 그 눈길이다. (85P)

**** 슬픔도 공포도 심지어는 허무도 떠나버린 그런 전반적인 죽음을 말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언어, 우리들의 사고, 우리들의 의식, 우리들의 정신이 잠시 완벽한 침묵속으로 들어가 그 전반적인 죽음 속에 흡수당한다.(88P)

***의식적인 죽음이란 발 고대인들이 그들의 생이 끝나가는 자리에서 눈길을 딴 곳으로 돌리지 않고 전신으로 운명과 정대면하며 죽음의 전체를 딴 곳으로 돌리지 않고 전신으로 운명과 정대면하며 죽음의 전체를 공포없이 껴안고 청춘을 탈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전면적인 죽음의 의식만이 마지막 조약돌, 마지막 생명의 이온을 영원한 현재 속에 복귀시킨다. (90P)


****의식적인 죽음을 창조한다는 것은 나와 세계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죽음으로부터 위안받지 않는 일이다. 질병처럼 죽음에 서서히 길들지 않는 일이다. 레보드프로방스를 에워싸고 있는 평원의 저 삭막한 풍경 속에는 우리를 평소의 위안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정신의 사막이 있다. 미래로부터 혹은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지금 딕고 있는 현재의 이 얼마 안되는 내 살의 무게를 내 일생의 무게로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참다운 용기를 저 보이지 않는 사막이 일깨운다. 그 용기를 무엇이라 부르는가? (90P)


****강가의 나무에 매여 형벌을 받는 거역의 신 탄탈로스에게 물어보라. 그는 대답하리라. 우리를 삶으로 치달리게 하는 것은 물이 아니라 우리들 영혼 속에 불타고 있는 영원한 갈증임을. 생명은 부유한 자의 소유가 아니라 위로받지 않으려는 자, 영원함 속의 굶주림을 간직한 자의 것임을. (91P)


***모든 폐허는 이처럼 인간의 집념과 동시에 그이 숙명적인 종말을 증언한다. 도데의 풍차는 프로방스의 아크로폴리스이다. 아니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의 풍차다. 하나의 승리가 풍차 속에는 올빼미가 들어와 산다. (98P)

****20여 년의 세월동안 아무도 열어보지 않은 문, 죽어버린 사람들의 추억이 먼지가 되어 그 어디엔가 가득히 쌓인 채 잠겨있다.

이 집에 찾아오는 이는 오직 외로운 어린아이들. 혹은 어른들의 어린 시절, 아니면 사철 투명한 프로방스의 햇빛, 빈집에는 늘 나그네의 낯선 휴식의 꿈이 머무다가 간다.


****"침묵과 별들만이 메아리를 되돌려보내는 이름을 내가 부르며 찾아가는 집. 내 목소리속에 서 있는 이상한 집에는 바람이 살고 있다“고 쓴 피에르 에마뉘엘의 시를 나는 생각하였다. (105P)


***바람이 살고 있는 이상한 집이다. 과거의 모든 집, 기억 속의 모든 방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 집은 메아리의 기하학이라고 말할 줄 알았던 것은 또 바슐라르 할아버지였던가?(106P)


***들 앞 화단에는 봄 작약이 저 홀로 가득히 피고 해당하 잎은 저 호롤 푸르다. 그때 그 공간을 가득히 채우는 무섭고 아름다운 다려움의 사닥다리를 밟고 당신만이 홀로 아는 다락방에 올라가 보라. 오래 묵은 책들과 옛날 편지들, 무엇에 묻힌 먼지 냄새 나는 평화....그때 가만히 들어보라. 페가는 말한다. 사라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넘어서서 비현실이 현실에 스며들어 개인이 역사와 측정할 길 없는 선사의 갈림길 어디쯤에 있는 우리들 탄생의 집 주소를 가르쳐준다.

그때는 우리들이 집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속에 집이 태어난다. 우리들은 공간 속에 살고 있지만 도한 우리들 속에 더 넓고 심원하고 신비스러운 공간이 더 잘 어울리며 열리는 것을 그때 당신은 확신한다. (108P)


***그보다도 더 절실하게 갇힌 자의 이상한 불안과 초조를 달래기 어려웠다. 비어 있을 나의 바, 내가 열지 못하는 나의 빈집은 고통스럽다. 나를 ‘밖’에 가두어놓은 채 저 혼자 ‘잠긴 나의 방’은 무의식의 심층처럼 깊고 멀고 어둡다. 그 금지된 방 속에는 또 하나의 내가 저 홀로 산다. 내 모든 추억의 무게로 무거운 발을 끌며 배회한다. (108P)


****주인이 떠나간 남의 집은 또한 고통스럽다. 마치 두 개의 집이 텅 빈 채 남아있고 나 자신은 투명하게 증발하여 부재하거나 유령이 되어 허공에 떠 있는 것만 같았다. (109P)

***다만 나를 가득 채우던 그 투명한 감각, 귓속에 울리는 맑은 밤 시냇물소리, 그리고 내 몸을 춤추게 하던 가벼움, 때때로 그 어디쯤엔가 산속의 외딴 집에 나타난 호수, 그리고 교교한 달빛 속에 버려진 옛 사원의 폐허, 그 곁에 촘촘히 열을 지어 서 있던 녹슨 철십자가의 무덤, 그대 수도사들은 죽으면 세워서 매장하기 때문에 무덤 사이의 거리가 그토록 좁다고 설명해주던 푸시의 목소리, 달이 기우는 새벽 검은 호수의 물속에 던지는 돌의소리, 달밤에도 초롱초롱 잘 보이던 별들. 그 운행의 침묵의 소리. 긜고 지금도 내 몸에서 다시 살아날 것 같은 프로방스 특유의 산 향기.....(117P)

****만약 여러분들이 노천에서 밤을 새워본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들이 잠들고 있는 그 시각에 어떤 신비로운 세계가 고독과 고요 속에서 눈을 뜬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샘물도 한층 더 맑게 노래하며 연못은 작은 불꽃으 밝히게 된다. 모든 산이 정기가 오고 가며 공중에는 물질과 물질이 가볍게 스치는 소리, 들리지도 않는 작음 음향이 마치 나뭇가지가 굵어지고 풀잎이 자라는 소리처럼 들려온다. 낮아 앗아있는 것의 세상이라면 밤은 무생물의 세계이다. 거기에 익숙지 못한 사람들에겐 언제나 그것은 두려움을 가져오게 한다. (116P)


****이 영원한 공기의 집. 내 달빛의 집은 프로방스의 푸시가 지어 준 5월의 꿈의 집이다. (117P)


세계 최초의 아침

****나는 구항에 비치는 지중해 특유의 저 신선한 햇빛의 감도와 그 햇빛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미소를 다 전하지 못하는 것만큼 안타까워한다. (131P)


****삶이 희열인 사람에게 죽음은 비통하지만 그 축축한 어둠의 냄새는 나지 않는다. 죽음의 순간에까지 두고 가는 이 찬란한 세계의 모습을 전신으로 껴안고 싶어하는 자의 부러워하는 모습을 지중해 사람들의 모든 눈길 모든 목소리 속에서 나는 이해한다. (131P)


*****"아니야 페릭스, 죽음이 무섭지는 않아. 내 사실을 말할까? 죽는다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아. 그렇지만 삶을 떠난다는 것은 고통스러워.“


***인적이 끊어진 바다가 저 혼자 뒤채는 소리가 멀리서 원초적으로 밀려왔다. 새우잠에서 갠 머리맡에는 새벽 물새들이 숨죽여 걸어다녔고, 솟아오르는 햇빛이 모래 위 발자국들의 작은 모래 웅덩이들 위로 금빛을 던지고 그 작은 골짜기들마다 아침 산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빛이 솟아오름에 따라 모래 발자국, 그 미시적인 산그늘이 좁아지고 금빛이 모래를 황홀한 재화로 만들고 있었다. (144P)


****그 새벽에 본 지중해의 빛과 모래성을 허물어가던 저녁 물결의 한가운데 내 찬란한 청춘의 정오를 필사의 내 몸이 잠시 정지시킨다. 그것이 영원이 아니라면 그 박의 어떤 영원을 나의 쉬 허물어질 살은 알겠는가? (144P)


****지중해의 행복한 섬처럼 내 달뜬 가슴이 밤중에도 더러는 출렁거린다. 자정의 어둠 속에도 지중해는 항상 최조의 아침이다. 내 최초의 영원한 내 최초의 청춘이다. (145P)


토스카나의 부활절

*****한국의 가을은 우리 별에 찾아오는 가장 아름다운 가을일지 모르지만 봄은 너무 천천히 그리고 너무 경련하면서 온다. 매화꽃이 눈 속에서 피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 같은 기쁨일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해빙기의 그 질척거리는 길, 꽃시샘한다는 그 황토먼지 실린 러시아 바람은 얼굴을 할퀸다. (150P)


****삶은 침묵과 불꽃과 부동(不動)속에서 세 번 증언하는 것이라고 카뮈에게 가르쳐주었다는 토스카나의 대예술가들, 그들의 빛 밝은 땅에 내 살을 대보고 싶었다. (152P)


****서로 헤어진다는 것이 바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다수의 세계, 그리하여 부재가 았고, 거리가 있고 그로 인하여 다가가고 합일하려는 욕망도 있는 이 언어의 세게만이 우리들의 왕국이다. 그 따듯한 왕국 위에 오늘은 좋은 부활절 햇빛이 내린다. 내 눈이 보고 내 살이 느끼는 이 햇빛과 그리고 대낮과 밤의 세계 저 너머에 천국이 있는지 지옥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159P)

*****작은 돌계단을 내려가 물가에 이르니 분수를 둘러싼 돌난간에는 젊은 남녀가 가득히 앉아 웃음과 말과 몸짓의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떠드는 소리가 잠시 멎을 때의 몇 순간, 흐르는 물소리가 깊은 산골의 시냇물 소리를 낸다. 폴리 대공의 궁전 앞으로 뛰쳐나올것만 같이 보인다.

(167P)


****시시포스와 아틀라스는 모순된 조건 속에 태어난 존재의 고통, 그와 동시에 살아있는 살의 기쁨 속에서 만나는 두 형제이다.

“시시포스에게서는 오직 팽팽하게 긴장한 몸이 엄청나게 큰 돌을 들어올리고 굴려서 수없이 되풀이 하여 언덕 위로 밀어올리려는 노력만이 보인다. 뒤틀린 얼굴, 돌에 곽 붙이고 잇는 경련하는 얼굴이 보인다. 진흙으로 뒤덮인 그 돌덩어리를 떠받는 어깨의 힘, 그 돌을 고이는 한쪽 다리, 팔 끝으로 버티는 되풀이, 흙묻은 두 손의 너무나 인간적인 확신. 하늘 없는 공간과 깊이 없는 시간으로 헤아린 이 모든 노력을 통하여 목표는 달성된다. ”

이 투쟁과 경련하는 몸의 공간, 그 속에 토스카나 사람들은 신이 아니라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의 문명을 건설하였다. (177P)


***그후 나는 피렌체의 모든 곳에서 보는 모든 것 속에서 짧고 행복한 그 처녀들의 춤을 발견하였다. 산타마리아 노벨라의 사원 뜨락에 늦게 피는 장미꽃 속에서도 경쾌한 의상의 그늘 속에서 유방을 흔들며 지나가는 피렌체의 주일 아침의 입술 젖은 여자들에게서도 검고 금빛나는 아르노 강의 황혼 속에서도 이슬목구슬을 매달고 꽃들이 눈부시게 빛나는 꽃집에서도 길을 가면서 깨물어먹는 마른 빵 속에서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삶에 대한 소용돌이치는 욕망의 춤을 그 불꽃을 나의 영혼은 불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고 속삭이는 내면의 소리가 들린다. (180P)


**** “두꺼운 구름장을 열어젖히고 있는 바로 그 미풍이 거기서는 구름장을 닫고 있었다. 이같은 세계의 거대한 호흡 속에서 같은 숨결이 몇 초간의 간격으로 들락날락하면서 우주적인 규모의 푸가가 돌과 바람의 주제를 되풀이하고 잇었다. 그대마다 주제는 한 음씩 낮아졌다. 그 가락을 멀리 뒤따르면 뒤따를수록 나는 점차로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마음에 완연히 느껴지는 이 원경의 끝에 이르자. 나는 다함께 숨을 쉬면서 멀리 사라져가는 이 언덕들을 그리고 언덕과 함께 대지의 노래 같은 것을 가슴에 한눈으로 다 껴안을 수 있었다.”

이것은 바로 니체가 말한 진정한 비국이 탄생하는 장면을 그린 빼어난 묘사다.

우주 전체가 거대한 무대, 거대한 원형극장이 되고, 시프레나무와 올리브나무들이 우주적인 배역을 담당하며 바람이 그 거대한 무대의 막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대지의 푸가는 내면의 귀에만 들리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침묵의 소리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 없는 자연’의 절망적이고 영원한 아름다움이다. 이 앞에서 동양인은 허무의 품을 발견하엿고 메마른 가슴의 카뮈는 살이 흘리는 눈물과 투쟁의 의욕을 발견하였다. (182~ 183P)


꿈속의 죽음, 물속의 베네치아


배이자 간이고 관이자 배인 ‘카롱’의 통나무처럼,

삶과 죽음이 따로 없는 안개 속.

시간도 공간도, 위도 아래도 없는 몽환 속으로

곤돌라가 가고 있다.


****“빈은 그래도 좀더 조용해 보인다. 그것은 마치 ant 도시들의 한가운데 있는 처녀와도 같다. 그곳의 돌드은 3세기를 넘지 않았고 그곳의 청춘은 우수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빈은 역사와 교차로에 있다. (193P)


*****아름다움은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자가 정신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받는 사람보다 한층 더 신에게 가깝다는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전자 속에는 신이 잇지만 사랑받는 사람 속에는 신이 없다는 것이다. (194P)


*****나는 그에게 생선 한 토막을 권하엿고, 그는 나에게 포도주를 내었다. 이 우주에는 지구라는 별이 잇어 그 별위에서는 이처럼 낯선 두 생명이 그렇게 어느 지점에서 잠시 만났다 헤어지는 우연도 일어난다. 그리고 영원히 아마도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할 그 사내의 주름지고 잘 생긴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엄청나게 큰 그이 손을 잡아 악수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202P)


***그 유동적이며 형태를 거부하는 바다의 영원과 그 곁에서 형태적 아름다움과 쉬 지나가지만 생명의지를 현실로 실현하고 있는 필사의 육체는 우리들 삶과 직결된 미이식의 원천인지도 모른다. 참담한 생명의 의지, 참담한 미(美)의 의지를 바닷가의 아름다운 육체보다 더 감동적으로 증언하는 것이 어디 또 있겠는가? 최초의 여자 아프로디테는 아마도 저 형태미를 거부하는 바다로부터 솟아나는 생명이기 때문에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리라. (205p)


발레아르의 영원한 봄

****나는 읽던 바슐라르도, 카뮈도 다 접어두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좁고 단조로운 기숙사 방 속에서 두드리던 타이프라이터도 상자 속에 넣어두었다. 독 한국으로 귀국하기로 되어 있는 C를 그 기숙사 뙤약볕 찌르렁거리는 정문 앞에서 작별하였다. 사람들이 다 떠나간 여름기숙사, 그 햇볕 속의 페허와 같은 정적을 뒤에 남기고 우리는 대로로 나섰다. 가급적이면 지도를 찾아 낯선 샛길로 골라서 서쪽으로 나아갔다. 프로방스의 무성한 가로수들이 길 위에 그늘을 드리우고 그 사이로 햇빛의 반점들이 어른거리고 군데군데 복숭아와 멜론을 따다 파는 노점들이 그 달콤한 과육향으로 마음을 끌었다. (213P)


***촌사람 같은 그 부그러움이 오랜만에 내 가슴을 사춘기 같은 박자와 감동으로 두드렸다. 오직 우연만이 그렇게 만나게 하는 몇 순간의 처녀들을, 생명들을, 그리고 필연(必然)이 헤어지게 하는 그 웃음과 수줍음들을 나는 사랑한다. 어둠이 도시의 길속에 꿈의 불빛을 일깨우는 페르피냥을 떠나면서 문 앞가지 나와 전송하는 금발의 처녀, 나는 결국 그의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다. 비극 냄새가 나지 않는 헤어짐의 가벼운 슬픔을 나는 감미롭게 음미한다. 아를의 카페에서 어느 봄날 만났던 한 떼의 처녀들과도 나는 그렇게 헤어졌다. (215~216P)


****아름다운 경치를, 과목(果木)에 자욱이 열린 풋사과들을, 숲 속의 빈터에 쏟아지는 햇빛을, 사라지는 사람들의 영원히 다시 못볼 뒷모습을 평원 위의 저녁 빛 속으로 솟아오르는 사원의 첨탑을, 겨울바다의 물살을, 목덜미 위에서 바람에 떨리는 황금의 햇살과 그 햇살이 창조하고 있는 머리칼을, 덜 깬 잠 속에서 몸과 생시를 드나들며 불가능한 모든 것이 생생한 풍경으로 변하는 것을........ 그 모두를 바라보는 내 기쁨, 내 유일의 핏줄 속에는 아르르이 카페에서 흔들리던 예쁜 손들의 미소가 페르피낭의 저녁 식당 문 앞에서 금발의 처녀가 우리들에게 던지던 눈빛의 인사가 잠겨있다. (216P)


******밤늦게까지 진종일 차를 달린 우리는 피로에 지쳐서 드디어 바르셀로나에 다 이르지 못한 대로(大路)에서 조금 비켜난 바닷가의 어떤 흐름한 창고 옆에 차를 세우고 자동차 속에서 잠을 자기로 결심했다. 절벽의 저 아래는 이따금 검은 바다가 뒤채는 소리가 들렷고, 길 위로는 한참씩 요란한 빛을 번뜩이며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사나운 짐승의 포효같았다. 좁은 자동차 안에서의 그 선잠 속에서 나는 결국 고향에 다녀오지 못하였다. (217P)


****호텔을 찾아 언덕으로 오르는 동안 우리들은 각종 기념품과 가죽제품, 옷가지들을 자욱이 진열해놓은 아름답고 유쾌한 골복들을 돌아다녔고 붉은 피와 같은 즙이 흐드러지게 흐르는 특산물 오렌지들을 먹었다.

호텔은 동산 꼭대기에 잇는 아담하고 하얀 별장 같은 집이었다. 온 항구가 굽어보였다.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부르는 이탈리아 영화에서나 부르는 조형적인 화면으로 가득 찬 알랭 로브그리예의 <에덴동산 그 후>라는 영화에서 본 일이 잇는 하얀 회벽의 집들만이 언덕을 뒤덮은 항구, 그 섬은 눈부시다. (219P)


****목욕탕이 달린 그 호화로운 방은 한족이 바다로 열리고 다른 한쪽은 엄청나게 큰 무화과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뜰로 나 있었다. 호텔 옆에는 전용 나이트클럽이 숲 속에 별장처럼 잠들어 있었고 절벽 게단을 따라 내려가면 호텔 전용 해수욕장이 우람한 바위의 절벽 밑에 오목하게 나 있어서 바닷바람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었다. (220P)


***프랑스의 것보다 좀더 독한 13도가량의 스페인 포도주는 포르토의 맛이 나는 특이한 것이었는데 잘 닦은 유리잔 속의 검붉은 술빛과 그 너머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푸른 바다, 그 두 개의 도취감을 연결하는 바람과 더불어 낙원을 실감하게 한다. (220P)


****그러나 가진 것 중에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것은 튼튼한 몸,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 쉬 떠나고 쉬 머무는 역동성, 그리고 세계를 한가슴에 다 품을 수 있는 젊음이라는 듯이 허름한 블루진을 걸치고 큼지막한 입술이 가슴팍에 그려진 엷은 셔츠차림으로 언제나 밝게 웃는 그 젊은 사람들 사이에 석여 있으면 나의 마음과 몸이 해풍처럼 가벼워진다. (221P)


****낮동안 홀은 벗겨 세운 나무판자로 보호되어 잇다가 햇빛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그 판자를 치운다. 그러면 홀안은 하늘과 바다로 된 이중의 조개껍질 속에서 태어난 야릇한 초록빛으로 가득 찬다. 창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잇노라면 오직 하늘만이 그리고 실루엣의 그림자로 돌아가고 있는 춤추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나타난다. 때로는 왈츠가 연주된다. 그러면 초록빛 바탕 위에 검은 프로필들이 집요하게 마치 레코드판에 오려붙이곤 하는 실루엣이 그림들처럼 돌아간다. 밤이 쉬 찾아오고 그와 함께 불이 켜진다.

그러나 그 미묘한 시간 속에서 내가 발견하는 투명하고 미묘한 영상을 나는 그릴 수가 없다. 나는 오직 찬란하게 아름다운 키 큰 한 처녀가 그날 저녁 줄곧 춤추던 것만을 기억한다. 몸에 착 붙는 푸른 dt 위에 그 여자는 재스민 꽃목걸이를 달고 있었다. (222P)


****격렬한 충동으로 가득한 그 존재들과 그들의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그 하늘을 나는 떼어 생각할 수가 없다. 파도바니에서도 팔마에서도 이비사에서도 지중해의 청춘은 대책없이 행복하고 무작정 천진하다. 그들은 모두 하늘과 바다의 아들딸이기 때문이다. (223P)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잔솔밭에 들어가 마른나무를 잔득 해왔다. 푸른 눈의 엘렌은 몇 번이나 발레아르에는 겨울에 오는 것이 장 좋다고 말했다. 그곳의 한겨울이야말로 인적이 끊어진 세계의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봄이며 보기 드문 꽃들이 만발한다고 설명하면서 아름다움 때문에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외딴섬의 고독을 한순간에 다 사는 듯 속눈썹을 떨었다. (224P)


****1935년 여름 카뮈는 그 방파제 위에 있엇다. 그리고 거의 40년이 지난 후 나는 그곳에서 그 ‘초록색 저녁 속’에 잠겨 있엇다. ‘삶의 기븜’이라고 그는 발레아르의 시적 명상을 이름지었다. 그렇다. 바닷바람과 소금과 햇빛의 냄새가 나는 삶의 기쁨을 이제 나의 살과 나의 젊은 몸이 만끽한다. (226P)


포르멘테라의 그 외딴집에 나는 어느 겨울 꽃이 피는 날 다시 돌아가고 싶다. 따듯한 겨울, 따듯한 바닷가에 그때는 벌써 참으로 처녀같이 되었을 주느비에브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바다와 누눕신 보랏빛 꽃들은 여전히 거기 있으리라. 여원한 지중해의 봄을 남몰래 간직하면서 그때 다시 가보고 싶다. 영원히 다시 가보고 싶다. 참으로 젊은 나의 땅을, 나의 바다를 영혼 속에 다시 껴안기 위하여. (226P)


***지중해는 빛 속의 지중해는 바람 속의 올리브나무 골짜기는 모든 것의 출발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모든 것이 이르는 목적지이다. 그곳에 삶의 씨앗이 있고 r 시앗을 두꺼운 죽음이 감싼다. 모든 떠난자들은 그곳으로 돌아온다. 모든 돌아온 자들은 그곳에서 떠나보낸다. 그래서 그 햇빛, 그 바람, 그 나무, 그 돌들의 시원 지중해는 덧없고 행복한 생명들의 중심이다. 모든 중심이 그러하므로 일몰의 시각이 다가오면 지중해는 둥글게 둥글게 익는다. 붉게 뜨겁게 익는다. 그 생명의 과일이 익는 시각, 아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잇던 것을 마지막으로 그리고 비로소 배운다. (228P)


***해질 녘, 초록색의 황혼 녘, 바닷가에 서면 눈을 감아야 참으로 보이는 니의 별, 잘 익은 광일, 하루에 한 번 익은 지구가 비로소 내 가슴에 깊이깊이 들어앉는다. 내가 그 별 속에 살고 그 별이 나의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전을 시작한다.

당신은 혹시 보앗는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라나는 그 잘 익은 별을. 혹은 그 넘실거리는 바다를. 그때 나지막이 발음해보라. “청춘‘ 그 말 속에 부는 바람소리가 당신의 영혼에 폭풍을 몰고 올 때까지. (229P)


김화영씨가 <행복의 충격>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 것은  카뮈의 산문 ‘사막’이다. 카뮈의 산문집 <결혼 여름>에 실려 있는 ‘사막’을  몇 구절 옮겨본다.


*****산다는 것은 물론 표현한다는 것과는 어느 정도 반대되는 것이다. 토스카나파의 대 화가들에 의하면 산다는 것은 침묵과 불꽃과 부동 속에서 이렇게 세 번에 걸쳐 증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55P)

****화가들은 곧 육체의 소설가가 된다는 특진을 누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재라고 하는 멋지고도 덧없는 재료를 가지고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재라는 것은 언제나 몸짓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법, 화가들은 어떤 미소나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부끄러움, 후회나 기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뼈가 튀어나오고 들어간 모습과 끓는 피의 얼굴을 그린다. 영원한 선(線)들 속에 떡 고정되어버린 그 얼굴들로부터 화가들은 정신의 저주를 영원히 추방해 버린 것이다. (56P)


****사실 영혼의 불멸은 많은 건전한 정신을 소유한 사람들의 관심거리이다. 그러나 그런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유일한 진실인 육체의 진수를 모두 다 향유해보기도 전에 육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57P)


***사람이 가슴으로 호가신할 수 있는 진실이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늘이 피렌체 들판의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들을 엄청나고 말없는 슬픔으로 뒤덮어가기 시작하는 어떤 저녁, 나는 이 진실이 자명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고장의 슬픔은 아름다움에 대한 한갓 주석 만은 결코 아니다.

저녁을 가르며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나는 내 속에서 무엇인가의 응어리가 풀려가고 있는 것을 느겻다. 슬픔의 얼굴을 가진 이것이 그래도 행복이라고 불리는 것임을 오늘 내가 어지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5*P)

****땅위의 순례자처럼 무심하면서도 골똘한 모습으로 가고 있는 그 기쁨을 뒤쫓아 나도 한걸음 한걸음 따라 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 밖에 대해서는 나는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나는 나의 모든 힘을 다하여 아니라고 말했다. 무덤돌들은 그래보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인생은 ‘해와 함게 떠 올라 해와 함께 져가는 것’이라고 나에게 일러 주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까지도 나는 무용함으로 인해서 내 반항의 그 무엇이 의미 없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삶이 무용하기 때문에 반항은 더욱 의미가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다. (62P)


****한 인간이 자기 삶의 내용을 이루던 것을 포기하는 것은 절대로 절망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무모한 결심과 절망으로 해서 다른 사람들에 끌린다해도 그것은 이 땅의 교훈에 대한 떨리는 애착을 표시할 뿐이다. 그러나 명징한 정신이 어느 도에 이르면 사람은 자기 가슴이 곽 막히는 것을 느끼게 디고 그리하여 반항도 요구도 하는 법없이 지금까지 이것이 바로 ‘나의 삶이다’라고 생각했던 것 다시 말해서 번다한 몸부림으로부터 등을 돌려 버리는 경우도 있게 된다. (69P)


****랭보가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않은 채 결국 아비시니아로 가고 만 것은 모험 취미 때문도 아니고 작가이기를 포기한 행위도 아니다. 그저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이요 의식이 어느 경지에 이르면 우리는 각자의 소명에 따라 지금까지는 절대로 이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햇던 것을 달게 받아들이고 말기 때문이다. (69P)

****r 이상한 사막은 자신이 목마름을 기만하지 않은 채 사막 속에서 살아갈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아는 사막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사막에서는 행복의 서늘한 물이 여기저기 솟아나게 될 것이다. (69P)


내가 저자라면

김화영씨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아니 한때 광적으로 좋아했다. 그의 책을 필사까지 해가면서 읽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부러워했다. 김화영씨는 내가 부러워하는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첫째는 문학도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알베르트 카뮈를 깊이 연구한 사람으로서, 누구보다도 카뮈를 잘 알고 있다는 것에 질투를 느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카뮈는 단연코 김화영씨에 의해 알려지기도 했지만 카뮈에 관한한 그를 앞지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김화영씨는 거장 알베르트 카뮈를 독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김화영씨는 불문학자이기도 하지만 문학평론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의 문장은 유려하여 산문이면서도 시같이 아름답다. 소리내어 읽으면 더욱 아름다운 문장이다. 이런 문장을 뽑아내는 그가 부럽다.

  <행복의 충격>을 읽으면서 인용한 카뮈의 문장이나 김화영씨의 문장이나 비슷한 분위기임을 느겼다. 시 같은 산문, 물 흐르듯 유려한 문장들, 카뮈는 이미 그의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카뮈의 문장을 얼마나 읽고 공부했으면 문체를 닮게 되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행복의 충격>에서 보면 김화영씨는 카뮈의 문장을 여러 번 인용하고 잇지만, 그 인용의 문이 그다지 거슬리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글쓰는 기술의 한 가지이다. 적재적소에 인용문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용문이 자기의 문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자신의 문장 또한 결을 같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쓸 때 인용문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배치하는 것과 문맥이 어색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만 때로는 인용문이 도드라져 보일 때가 있다. 조심할 일이다.

그리고 김화영씨의 글이 생명력이 있는 것은 인물묘사가 뛰어나고, 사물과 풍광에 대해 세세하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는 뛰어난 관찰력을 지니고 있으며  관찰한 것을 감각적인 글쓰기가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목차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기행문 형식을 취하고 있는 책이지만 좀더 성실하게 목차를 잡아나갔으면 좋아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내가 기행문을 쓰고 어떤 문학적인 글을 쓴다 해도 김화영씨는 영원한 나의 스승이다.

  













IP *.85.249.182

프로필 이미지
id: 깔리여신
2013.02.22 01:34:52 *.85.249.182

사부님!

경주로 졸업여행 갔다가 저는 삼월 초에

서울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경주집에 컴이 없어서 미리 과제물 올려놓고 갑니다.

여행떠나기 전날 밤세워 과제물하기도

제 인생에 처음있는 일입니다.

변경연에 들어와서 여러가지로 새롭게 경험한다는 것이

너무 즐겁고 신이 납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행복의 충격-김화영산문집 [1] id: 깔리여신 2013.02.22 3345
3591 율리시즈 - 제임스 조이스 [2] [1] 콩두 2013.02.18 3308
3590 피플웨어: 정말로 일하고 싶어지는 직장 만들기 학이시습 2013.02.18 2862
3589 #42_내일의 금맥, 마크파버 [3] 서연 2013.02.18 3937
3588 # 42 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file 샐리올리브 2013.02.18 5406
3587 노자 -이강수 옮김- file 용용^^ 2013.02.18 3446
3586 인간과 상징 -칼 구스타프 융 지음 id: 깔리여신 2013.02.18 5748
3585 소설쓰기의 모든 것 2. 묘사와 배경 레몬 2013.02.17 16240
3584 42.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_구본형 지음 한젤리타 2013.02.17 4002
3583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겁니다- 폴 호프만 지음/ 신현용 옮김 file [15] 세린 2013.02.16 15589
3582 제프리 페퍼의 "권력의 경영"(두번 읽기) 학이시습 2013.02.12 4912
3581 구본형의 신화읽는 시간- 구본형 id: 깔리여신 2013.02.12 2702
3580 편집자란 무엇인가 - 김학원 콩두 2013.02.12 3346
3579 수맹(Innumeracy)- 존 앨런 파울로스 지음/ 김종수 옮김 [2] 세린 2013.02.12 4421
3578 죄수의 딜레마 - 윌리엄 파운드스톤 [4] 레몬 2013.02.12 4786
3577 # 41 한비자 - 한비 (최태응 옮김) file 샐리올리브 2013.02.12 5696
3576 #41_돈, 보도 섀퍼 서연 2013.02.12 3689
3575 41. 연금술사_파울로 코엘료 지음 한젤리타 2013.02.11 4208
3574 장자의 철학 -강신주- file 용용^^ 2013.02.11 5479
3573 우리 속에 있는 지헤의 여신들 file [4] id: 깔리여신 2013.02.04 3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