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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5일 02시 30분 등록

강의

 

신영복

 

저자에 대해서

[생애]

1941년 경남 밀양 - 2016 1 15
1963
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 졸업
1965
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1965
년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있던 중
1968
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1988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
1989
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
2006
8월 정년퇴임
2015
년까지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석좌교수

「저서」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

  • 엽서(1993년)

  • 나무야 나무야 (1996년)

  • 더불어 숲 1 (1998 6월)

  • 더불어 숲 2 (1998 7월)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증보판 (1998 8월)

  • 더불어숲-개정판 합본 (2003 4월)

  • 신영복의 엽서 (2003 12월)

  •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2004 12월)

  • 처음처럼: 신영복 서화 에세이 (2007 1월)

  • 청구회 추억: Memories of Chung-Gu Hoe (2008 7월)

  • For the First Time: 처음처럼(영문판) (2008 8)

  • 신영복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2010 12)

  • 변방을 찾아서 (2012 5)

  • 담론 (2015 4)

  • 더불어숲 - 신영복의 세계기행, 개정판 (2015 12월)

  • 처음처럼- 신영복의 언약, 개정신판 (2016 2)

    「역서」

  • 외국무역과 국민경제(1966년)

  • 사람아 아!사람아(1991년)

  • 루쉰전(1992년)

  • 중국역대시가선집(1994년)

    「수상내역」

  • 3회 임창순상(2008년)

  • 19회 만해문예대상(2015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선생님이 유명해 진 것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부터 일 것이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이 선고 된 후 이후 20여년을 감옥에 있다가 출소하면서 비로소 감옥 생활을 바탕으로 한 책을 출간하였다. 소설과도 같고 한국 현대사의 부끄러운 과거를 모두 품은 듯한 이력과 함께 선생의 깊이 있는 삶의 지혜가 함축된 책 내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내가 신영복선생님을 알게 된 것은 아마도 글씨체 때문이었던 것 같다. 평소에 캘리그라피에 관심이 많았기에 여러 번 흉내를 내보며 썼던 기억이 난다. 신영복선생님은 이른바 신영복체라고 불리는 이 글씨체는 신영복선생이 수년간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서민적 형식과 민중적 내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영복선생님은 처음 궁서체로 글을 쓰다가 화려하고 유려한 궁서체의 서민들의 삶과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어색하다고 느껴 본인이 스스로 연구한 끝에 개발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신영복선생님의 글씨체 중에서 소주 브랜드로 써 준 처음처럼도 있다. 신영복선생님은 이 글씨의 로열티로 1억원을 받았는데 그것도 다 장학금으로 기부했다고 한다.

    이 글씨체는 신영복선생님의 유지에 따라 사후 무료로 일반인에게 배포되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신영복 글씨 폰트 다운로드 à http://www.forestogether.org/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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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선생님의 아들 신지용씨

 

신영복선생님의 아들 지용씨는 고등학생 시절 제4 <전국 고교생 생활법 경시대회>에서 개인부문 대상을 받았다. 전국에서 고교생 2570명이 참가한 큰 대회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대회의 <각종 범죄 공소시효를 연장하자는 논의와 관련해 법률개정위원으로 초청받을 경우 어떻게 할지를 논하라>는 게 논술 문제였다.

이에 대해 신지용 군(당시 한국외대부속고 3, 18)의 답안은

--- 개정위원초빙을 거절한다. 공소시효연장과 같은 일련의 법 개정논의는 혜진, 예슬 양 사건 이후 상당히 감정에 치우쳐 사회의 법적 안정성을 침해할 수 있다. 범죄의 근본 예방은 사회 전체의 협력과 노력으로 이뤄져야지 처벌의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또 잔인한 범죄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가혹한 형벌을 요구한다고 해도 거대 권력인 국가는 이성적이어야 한다 ---라는 취지의 것이었다.

국민의 감정에 기반한 공소시효연장논의가 자칫 국가의 법적 안정성을 깨뜨릴 수 있다는 반대논리를 펼친 것이다국가의 안정을 우선하는 제법 보수적인(?) 논리를 편 것이다. 결과는 25점 만점에 21점이란 높은 점수를 받아 영예의 대상을 받았다. 신지용씨는 신영복 교수가 통혁당사건으로 20년 징역살이 뒤에 쉰 살에 낳은 늦둥이 외아들이다신영복 교수는 <부모의 나이가 많다보니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인 생각을 키우라고 강조해와서인지, 자연스럽게 지용이가 도서관에서 책 읽는 습관이 생겼다> 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을 드러내는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마음을 무찔러 온 글귀

 

P16 – 서론

우리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마저 갖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 유일한 탈출구를 근대화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근대 기획이 우리 사회의 목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문화와 유럽 문화를 다투어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치장하려고 하였지요. 사회의 상층부에 속하는 대학 사회와 대학 문화가 당연히 더 적극적이었고 그런점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지요. 우리의 의식을 지배했던 것이 근대화와 서구 문화였습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만 우리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마저 허락하지 않는 불행한 문화였습니다.

우리 역사의 아팠던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도 우리 것에 대해서 조금은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스러워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건 우리 문화가 우수한 반만년 역사의 자랑스런 문화다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냥 우리 문화 자체, 우리를 있게 한 역사 자체를 사랑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P19 – 서론

노촌 선생님의 삶은 어쩌면 우리의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조선 봉건 사회, 일제 식민지 사회, 전쟁, 북한 사회주의 사회 20여년의 감옥 사회 그리고 1980년대 이후의 자본주이 사회를 두루 살아오신 분입니다.

예를 들자면 노촌 선생님을 검거한 형사가 일제 때 노촌 선생님을 검거했던 바로 그 형사였다는 사실이지요.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친일파들이 오히려 반민특위를 역습하여 해체시켰던 해방 정국의 실상을 이보다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도 없지요.

가슴 아픈 우리의 과거입니다. 이제는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P21- 서론

중국 고대 문헌은 마치 현대문헌처럼 친숙하게 읽히고 있습니다. 전승과 해독에 있어서 세계 유일의 문헌입니다. 그 규모가 엄청날 수 밖에 없지요. 고전을 읽겠다는 것은 태산 준령 앞에 호미 한 자루로 마주 서는 격입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관점입니다.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22- 서론

이 시기는 흔히 축의 시대라고 하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상의 백화제방시대입니다. 처음으로 고대국가가 건설되는 시대였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최대한 담론이 쏟아져 나왔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석가도 이 시대의 사상가임은 물론입니다. 한마디로 사회와 인간에 대한 근본 담론의 시대 그리고 거대 담론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 황금기였던 것 같다. 현재의 가치관의 근본을 형성하는 거의 모든 철학적 배경이 형성된 시기였던 것 같다. 근데 정말 3천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유효하다는 것이 신기하다.

 

P24 – 서론

고전 강독은 결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닙니다. 우리의 당면 과제를 재조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오래된 미래]란 책을 알고 있지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교수가 인도 서북부 티베르 고원의 라다크에서 17년동안 라다크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 책의 부제가 라다크로부터 배운다.’입니다. [오래된 미래]라는 표현은 분명 모순어법입니다. 작은 거인이나 점보 새우와 같은 모순된 어법입니다. 그러나 이 모순된 표현 속에 대단히 중요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미래로 가는 길은 오히려 오래된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연과의 조화와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라다크의 오래된 삶의 방식에서 바로 오염과 낭비가 없는 비산업주의적 사회발전의 길을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는 그것이 잘된 것이든 그렇지 못한 것이든 우리들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 지요. 그리고 미래를 향해 우리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이지요.

 

P27- 서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를 자주 바라보게 되듯이 좋은 문장을 발견하기만 하면 어학은 자연히 습득되리라고 봅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암기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원문을 해독하고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정도면 금상첨화지요. 그러나 일단은 고전에 담겨있는 내용을 이해하고 그 뜻을 재조명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일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모든 일은 쉬워지고 아름다워집니다.

 

P30-서론

서양문화의 기본적 구도는 헬레니즘과 해브라이즘의 종합 명제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흄과 칸트의 견해입니다. 서양 근대 문명은 유럽 고대의 과학 정신과 기독교의 결합이라는 것이지요. 과학과 종교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고 기독교 신앙은 선을 추구합니다.

서양문명은 이 두개의 축이 서로 모순되고 있다는 사실이 결정적 결함이라는 것입니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모순된 구조라는 것이지요. 과학은 비종교적이며 종교 또한 비과학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과학과 종교의 모순에 관한 역사적 사례는 얼마든지 발견됩니다. 계몽주의 이전에는 기독교 교리를 벗어난 과학자들이 이단으로 박해를 받았지요. 여러분이 오히려 더 잘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생전에 지동설을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갈릴레이가 재판정에서 지동설을 포기라고 법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한 말은 지금도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과학의 압도적 우위로 말미암아 진리와 선이라는 서양 문명의 기본 구조가 와해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의 경이적인 발전이 인간적 가치를 신장하기 위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지요

서양 문명의 근간은 종교적 가치관과 과학적 가치관의 결합니다. 근데 이 두 가치관은 사실 모순된 관계이다. 오늘날에는 종교적 가치관은 그냥 신념, 개인적인 믿음으로 치부되는 것 같고 과학의 시대라 할 만하다.

 

P41-서론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인간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보는 것이지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인간입니다. 이 사회성이 바로 인성의 중심 내용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동양적 가치는 어떤 추상적인 가치나 초월적 존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속에서 구하는 그런 구조입니다. 동양사상의 핵심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인仁이 바로 그러한 내용입니다.

 

P43-서론

동양적 구성 원리에서는 그러한 모순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화와 균형에 대하여 대단히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중용이 그것입니다. 대립과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이 조화와 균형을 중시한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순 대립의 두 측면이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 또한 대단히 중요한 차이입니다.

 

P47-서론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가 쌓아가고 있는 모순과 위기 구조는 근본 담론을 더욱 절실하게 요구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금언이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다시 고전에 주목하는 이유인 것 같다. 미래는 어쩌면 과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역사와 고전에서 배워야 한다.

 

P52-오래된 시와 언

이제 [시경] 詩經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시경]은 동양고전의 입문입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우선 300여편이 넘는 시가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시의 내용이나 형식이 같지 않고 또 작시 作詩의 목적과 과정도 판이합니다.

 

P61-오래된 시와 언

맹강녀가 성벽 앞에 옷을 바치고 며칠을 엎드려 대성통곡하자 드디어 성채가 무너지고 시골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맹강녀는 시골을 거두어 묻고 나서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했다는 것이지요. 맹강녀 전설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지이요. 성채가 무너지고 시골이 나오다니 전설은 전설입니다.

동양의 신화는 소박하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신화가 사연이 있고 애절한 삶을 담고 있다.

 

P64-오래된 시와 언

시경에는 위에서 소개한 것과 같은 저항시와 노동요가 대단히 많이 실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풍영월이 시의 본령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편향된 여과 장치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전통과 선입관 때문에 우리는 매우 귀중한 정신세계가 왜곡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시의 세계와 시적정서, 나아가 시적 관점은 최고의 정신적 경지라고 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조선의 유교문화가 만들어낸 우리의 오해였다는 뜻인가?

 

P69-오래된 시와 언

그런 의미에서 중국사 있어서 기록의 의미는 휠씬 더 커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몇 천년전의 기록이 마치 며칠 전에 띄운 편지처럼 읽혀지고 있는 유일한 문명이라는 것이지요. 서경은 본래 하 夏,은 殷, 주 周의 사관이 작성한 것으로 3천 편이 있었는데 공자가 100여편으로 정리했다고 하지만 믿을 수 없습니다.

한자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자 단점 인 것 같다.

 

P71-오래된 시와 언

[무일]편에서 개진되고 있는 무일사상 無逸思想은 주나라 역사 경험의 총괄이라고 평가됩니다. 생산과 노동과 일하는 사람의 고통을 체험하고 그 어려움을 깨닫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무일]편은 주공의 사상이나 주나라 시대의 정서를 읽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 편을 통해서 가색 稼穡의 어려움, 즉 농사일이라는 노동체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생산노동과 유리된 신세대 문화의 비생산적 정서와 소비주의를 재조명하는 예시문으로 읽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P72-오래된 시와 언

한마디로 무일은 불편함이고 불편은 고통이고 불행일 뿐이지요.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라는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P75- 오래된 시와 언

나는 이 [무일]편이 무엇보다 먼저 효율성과 소비문화를 반성하는 화두로 읽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능력있고 편안한 것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을 반성하는 경구로 읽히기를 바랍니다. 노르웨이의 어부들은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를 저장하는 탱크속에 반드시 천적인 메기를 넣는 것이 관습이라고 합니다. 천적을 만난 불편함이 정어리를 살아 있게 한다는 것이지요. [무일]편을 통해 불편함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 씹어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P77- 오래된 시와 언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피식민지 의식의 전형입니다. 권력이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과거의 모습이 새롭게 각색 또는 현 시대의 맞게 조금 변형되어 오는 것 같다. 즉 과거를보면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근데 우리 인간은 그렇게 알고 있으면서도 왜 과거와 똑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게 인간의 한계이자 부족함 때문일까.

 

P78-오래된 시와 언

시경이 사실적이고 노동과 삶과 보행의 정서로 이루어진 시 시계임에 비하여 [초사]의 세계는 자유분방, 정열, 상상력, 신비, 환상 등 낭만적이고 서정적입니다. [초사]는 시는 물론 산문, 소설, 희곡에 이르기까지 중국 문학 전반에 광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굴원의 [이소][초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힙니다. [이소]는 흔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오디세이]에 비유되기도 하고 단테의 [신곡]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전쟁 영웅을 기리는 서사시이거나 인간 이성의 구법 여행을 표현한 작품이 아닙니다.

 

P88-주역

[주역]은 동양 사상의 이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주역은 물론 점치는 책입니다. 점쳤던 결과를 기록해둔 책이라 해도 좋습니다.

 

P89-주역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즉 경외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신이나 귀신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점을 치는 마음이 그런 겸손함으로 통하는 것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점치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다. 점을 치는 것 자체가 인간의 한계를 알고 오만함을 경계하는 행위라는 해석이 색다르고 흥미롭다.

 

P90-주역

그래서 점괘와 백성들의 의견과 조정 대신 그리고 임금의 뜻이 일치하는 경우를 대동 大同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대학의 축제인 대동제 大同祭가 바로 여기서 연유하는 것이지요. 하나 되자는 것이 대동제의 목적이이죠

대학축제 이름의 이런 심오한 배경이 있었다니 역시 지성인들이다.

 

P101-주역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공감이 가는 좋은 말이다. 사람은 본인의 능력에 70정도 되는 자리가 제일 적당하다. 그 이상을욕심내면 본인도 그리고 주위 사람들도 모두 불행해 지는 것이다. 오만과 과욕을 늘 경계해야 한다.  

 

P107-주역

[주역]은 사회 경제적으로 농경적 토대에 근거하고 있는 유한 공간 사상이며 사계가 분명한 곳에서 발전될 수 있는 사상이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의 반복적 경험의 축척과 시간 관념의 발달 위에서 성립할 수 있는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P110-주역

경복궁에 가본 사람은 기억할 것입니다. 교태전 交泰殿이 있습니다. 중전 마마가 거처하는 곳입니다. 흔히 중전이 교태 嬌態를 부려 임금과 침소에 드는 곳이라는 오해합니다만, 경복궁 교태전은 바로 [주역]의 지천태쾌에서 이름을 딴 것입니다. 천지교태입니다. 천과 지가 서로 교통하고 태평하다는 뜻입니다.

나도 경복궁 궁전의 이름 치고는 너무 격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보다 깊은 뜻이 있었다니 다행이다.

 

P120-주역

태쾌가 흉하고 비괘가 길하다는 길흉 도치의 독법도 가능한 것이지요. [주역]은 이처럼 어떤 괘를 그 괘만으로 규정하는 법이 없고 또 어떤 괘를 불변의 성격으로 규정하는 법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존재론적 관점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대성괘 역시 다른 대성괘와의 관계에 의하여 재해석되는 중첩적 구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역의 해석의 어려움도 이때문이 아닐까?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많다.

 

P123-주역

이 박괘는 흔히 혼돈 세상에서 사상적 순결성과 지조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으로 풀이되기도 하고 일반적으로는 어려운 때일수록 현명한 판단과 의지가 요구된다는 윤리적 차원에서 읽힙니다. 가정이 어려울 때 좋은 아내가 생각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 충신을 분별할 수 있으며, 세찬 바람이 불면 어떤 풀이 곧은 풀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박괘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희망 만들기입니다.

 

P129-주역

도로는 고속일수록 좋습니다. 오로지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도로의 개념입니다. 짧을수록 좋고 궁극적으로는 제로가 되면 자기 목적성에 최적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모순입니다. ‘은 도로와 다릅니다. 길은 길 자체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길은 코스모스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란히 걷는 동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터이기도 하고, 자기 발견의 계기이기도 하고, 자기를 남기는 역사의 현장이고도 합니다.

 

도로와 길의 차이 도로는 수단일 뿐이고 속도와 효율성을 중요시 하는 논리이고 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과정이 곧 결과이고 그 자체가 곧 목적이다.

 

P130- 주역

주역 사상을 계사전에서는 단 세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역궁즉변 변즉통 통즉구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서고금의 진리인 듯 하다. 궁하면 찾아야 하고 변화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길이 보인다. 그러다가 다시 또 막히면 다시 또 변해야 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P131-주역

우리의 삶은 매트릭스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서운 말이다. 정말 우리가 매트릭스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낮의 꿈은 아닐런지

 

P132-주역

서산대사가 묘향산 원적암에 있을 때 자신의 영정에 쓴 시입니다.

“80년전에는 저것이 나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로구나

자연과 우린 하나이다. 자연이 나요 내가 자연이다.

 

P141-논어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 時制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 시대 지배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고전을 받아드리는 방식부터 바꿔야 고전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P142-논어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서 학습이 갖는 의미는 거의 없습니다. 학습에 대한 언급이 [논어] 첫 구절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사회 변동기임을 짐작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물론 기쁘지 않라고 공자 자신의 개인적 심경의 일단을 표현하는 지극히 사적인 형식으로 개진되고 있습니다만 학습에 대한 언급은 사회 재편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P153-논어

[위정]편의 이 구절은 법가적 방법보다는 유가적 방법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입니다. 따라서 법에서 적극적 가치를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덕치주의는 법치주의에 비해 보다 근본적인 관점, 즉 인간의 삶과 그 삶의 내용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국강병이 중요한 최대 과제였던 시대에 유가는 법가와 다른 사상에 뒤쳐졌지만 결국 중국 최고의 사회 기본 사상으로 받아드려 진다. 인간과 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모습에 집중했기 때문인 것 같다.

 

P156-논어

나는 사회의 본질은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일회적인 인간관계에서는 그 다음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회란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성 자체가 붕괴된 상태라고 해야 하는 것이지요.

 

P163-논어

군자화이부동의 의미는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 소인동이불화의 의미는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면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회의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논리이면서 나아가 공존과 평화의 원리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의 논리는 지배, 흡수, 합병의 논리입니다. 동의 논리 아래에서는 단지 양적 발전만이 가능합니다. 질적 발전은 다양한 가지가 공존하는 화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 구절은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신영복선생님이 이야기한 바와 같이 근대 사회 즉 자본주의의 사회 본질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담론이라고 생각한다.

 

P164-논어

자본주의 논리가 바로 존재론의 논리이며 지배, 흡수, 합병이라는 동 同의 논리입니다. 종교와 언어까지도 동일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 논리 때문에 지금 세계의 크고 작은 분쟁이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종교의 동일성을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가장한 폭력적인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P189-논어

대중은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겸허해야 되는 이유입니다.

겸손 또 겸손하고 삶에 겸손해야 한다.

 

P193- 논어

[논어]는 앞에서도 이야기하였습니다만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의 보고입니다. 춘추전국시대는 고대국가가 출현하는 시기이며 따라서 당시의 백가 百家들은 당연히 사회론에 있어서 쟁명 爭鳴을 하였지요. [논어]는 그러한 담론 중에서 사회의 본질을 인간관계에 두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붕 朋이건 예 禮건 인 仁이건 사회는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가 근본이라는 덕치의 논리입니다. 바로 이 점이 다른 사상에 비하여 [논어]가 갖는 진보성의 근거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논어가 오늘날까지 주목받고 사랑받고 읽히는 이유인 듯 하다.

 

P200 - 논어

이상적인 교육은 놀이와 학습과 노동이 하나로 통일된 생활의 어떤 멋진 덩어리(일감)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무엇을 궁리해가며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그러한 것인 것 즐거움은 놀이이고 궁리는 학습이며 만들어내는 행위는 노동이 되는 것이지요

 

P206 – 논어

[논어]는 인간관계론의 보고입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백가 百家들이 벌였던 토론은 고대 국가 건설이라는 사회학 중심의 담론이었습니다. 굳이 [논어]의 독자적 영역이라면 숱한 사회학적 담론 중에서 사회의 본질을 인간관계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논어]의 제일 첫 장에 나타나는 친구의 이야기는 공자 사상의 핵심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있는 성공회대학교를 찾아오는 분들을 환영하는 인사에서 내가 자주 인용하는 글입니다.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

 

이 문장은 그 동안 그렇게 많이 들어왔는데 새로운 관점에서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P212 – 맹자의 의

공자의 인 仁이 맹자에 의해서 의 義의 개념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중심 사상이 인에서 의로 이동했다는 것이지요. 인과 의의 차이에 대해서 물론 논의해야 하겠지만 한마디로 의는 인의 사회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예시 문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맹자의 제 1장에서 맹자가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이 바로 의 義입니다.

 

P214 – 맹자의 의

맹자는 학자와 사상가로서 뿐만 아니라 문장가와 문학가로서도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어떠한 고전도 [맹자]만큼 힘차고, 유려하고, 논리 정연하고, 심오한 뜻을 지니고 현쟁도 그 내용이 여전히 타당하며, 사람의 정신을 분발시키는 문장들로 가득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P215 – 맹자의 의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많은 숙어들의 출전이 바로 이 [맹자]입니다. 연목구어,오십소소백보, 농단, 호연지기, 인자무적, 항산항심 등 이루 다 예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따라서 단 한 권의 고전을 택하려고 하는 경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단연 [맹자]가 천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맹자가 공자의 먼 제자로만 알고 있었다.   

 

P217- 맹자의 의

임금을 바꿀 수 있다는 맹자의 논리는 이를 테면 민에 의한 혁명의 논리입니다. 맹자의 민본 사상의 핵심입니다. 임금과 사직을 두는 목적이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맹자의 사상은 상당히 앞서있었던 사상이었다. 이 정신만 우리가 유지 발전시켰어도 민주주의와백성 중심의 세상이 조금 더 빨리 올 수 있었지 않았을까?

 

P240 – 맹자의 의

자본주의 체제에 있어서의 인간관계는 외견 상으로 볼 때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입니다. 그리고 매우 광범하게 열려 있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인간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데 있는 것이지요.

 

자본주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자본주의은 표면적으로만 평등하게 보이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점이다.

 

P245 – 맹자의 의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 앞으로 나가는 법이지요. 건너뛰는 법이 없습니다. 건너 뛸 수도 없는 것이지요. 첩경에 연연하지 말고 우직하게 정도를 고집하라는 뜻입니다. 무슨 문제가 발생하고 나면 그제야 기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원칙에 충실하라고 주문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건너뛰었다는 뜻이지요.

 

P249 – 맹자의 의

[맹자]의 극히 일부분만을 여러분과 함께 읽었습니다만 맹자의 사회주의와 민본주의는 오늘의 사회적 현실을 조명해주고 있습니다. 맹자는 그 사상이 우원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패자들에게 수용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급진적이었기 때문에 수용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맹자의 민본사상은 패권을 추구하는 당시의 군주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적인 사상이었습니다.

맹자의 사상은 지금의 시점으로 봐도 대단히 앞서간 사상이었다.

 

P253- 노자의 도와 자연

중국 사상은 지배담론인 유가 사상과 비판 담론인 노장 사상이 두개의 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사회든 지배 담론과 비판 담론이 일정한 길항 구도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유가와 노장이라는 두 축은 중국 사상사의 오랜 심층 구조라고 할 수 있으며 노자는 그 두개의 축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사상입니다.

유가가 어떻게 보면 지배계급과 사회 운영 원리의 근본을 제공하는 사상이라면 노가는 동양 생활및 사회 전반에 걸친 가치관을 제공하는 사상이 아닌가 싶다.

 

P257 – 노자의 도와 자연

현대 자본주의는 그 어떤 체제보다도 강력한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습니다. 고도의 대중 조작 체계를 장악하고 이성의 포섭뿐만 아니라 감성의 포섭까지 완성해놓고 있습니다. 엄청난 건축을 완성해두고 있는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해체주의자로서 노자가 생환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노자의 언어와 담론이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 구조를 조명해내고 자본주의 문화의 허구와 총제적 낭비 체제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노자가 생환 될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현대 자본주의의 페해와 문제점을 해결하고 치유받기 위해서 오늘날 노자의 사상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는 것 같다.

 

P271- 노자의 도와 자연

결론적으로 무의 세계든 유의 세계든 그것은 같은 것이며, 현묘한 세계입니다. 유의 세계가 가시적이기 때문에 현묘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무의 작용이며, 현상 형태이며, 그것의 통일체이기 때문에 현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아이는 단순하지 모르지만 그 어머니 때문에 복잡한 경우와 같은 것이지요.

 

P282 – 노자의 도와 자연

노자 정치학의 압권이 바로 생선 굽는이야기입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 굽듯이 해야 한다.” 는 것이지요. 생선을 구울 때 생선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집다가 부스러뜨리는 것이 우리들의 고질입니다. 생선의 비유는 일상생활의 비근한 예를 들어서 친근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P284 – 노자의 도와 자연

상선약수는 인구에 회자되는 명구입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이 경우 최고의 선은 현덕이며 도입니다. 물은 물론 현덕이 아닐뿐 아니라 도 그 자체도 아니지만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노자가 물을 최고의 선과 같다고 하는 까닭은 크게 나누어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다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는 것이지요.

 

P287 – 노자의 도와 자연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라는 최고의 철학적 체계를 완성합니다. 여기에 시대를 초월하는 [노자]의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자는 자신의 철학적 논리로 패권 경쟁을 둘러싼 일체의 행위를 반자연의 무도한 작위로 단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자의 사상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어려운 듯하면서도 쉽게 느껴지면서 다시 그뜻을 새겨보자면 심오하다.

 

P295- 노자의 도와 자연

가장 이상적인 정치 즉 태상의 정치는 백성들이 임금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ㅏ. 임금이 백성들의 삶에 간여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제력하유어아재’ “임금의 권력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할 정도로 백성들에게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경우입니다. 최고의 정치는 무치라는 것이지요.

조금은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P297-노자의 도와 자연

노자의 자연은 ‘nature’가 아닙니다. 서구적 개념의 자연은 문명 이전의 야만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고, 광물이나 목재를 얻는 자원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느 경우나 자연은 우리의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으로서의 의미를 갖습니다. 노자의 자연은 그러한 의미가 아닙니다. 굳이 영어로 표현하자면 ‘self-so’ 정도가 가장 가까운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은 그 자체로서 완성된 것이라며 다른 외부를 가지지 않은 존재입니다. 독립적인 존재입니다.

노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자연의 의미를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하겠다. 결국 자연은 인간의 간섭없이 그 자체로 완전 무결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 같다.  

 

P304 – 노자의 도와 자연

노자 사상은 마치 수학에서 ‘0’의 발견이 갖는 의미와 공헌을 중국 사상에 기여했다고 평가합니다. 노자 사상은 장자, 열자 등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계승되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유가 측에서도 [노자]를 계속 읽고 해석했다는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노자 사상은 중국 사상을 풍부하게 발전시키는 데 매우 큰 공헌을 하게 됩니다.

 

P305 – 노자의 도와 자연

노자의 철학은 귀본의 철학입니다 본은 도이며 자연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자의 철학을 유가 사상에 대한 비판 담론으로 규정하는 것은 노자를 왜소하게 읽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자 철학이야말로 동양 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 받는다.는 것이 노자의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유가보다 노자의 사상이 철학적, 사상적, 삶의 근본 가치관 측면에서 우리에게 더 영향을 많이 끼친 면이 있지 않나 싶다.

 

P309 – 장자의 소요

[장자] 외편 [추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대목이 바로 우물 안 개구리의 출전입니다. 이 우물 안 개구리의 비유는 장자 사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장자가 당시의 제자백가들을 일컫는 비유입니다. 교조에 묶인 굽은 선비들이 바로 우물안 개구리와 같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도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일갈합니다.

이 이야기가 장자의 이야기였는지 처음 알았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 아는 것에 첫 걸음이다.

 

P311 – 장자의 소요

장사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 [장자] 1편 소요유입니다. ‘소요유는 글자 그대로 아무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입니다. 소요는 보행과는 달리 목적지가 없습니다. 소요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하릴없이 거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소요는 보행보다는 오히려 무도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춤이란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동작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동작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장자]를 읽는 독법이 대체로 소요유자유측면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P319 – 장자의 소요

[장자]가 우리 시대에 갖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대안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자]가 우리들에게 펼쳐보이는 드 넓은 스케일과 드높은 관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한 스케일과 관점은 바로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깨달음은 그 자체로서 귀중한 창조적 공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가 장자의 이야기였는지 처음 알았다.

 

P325 – 장자의 소요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로 제목을 붙인 [장자] 번역서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변무]에서 따온 것입니다. 먼저 예시문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다고 하더라도 늘여주면 우환이 되고, 학의 다리가 비록 길다고 하더라도 자르면 아픔이 된다. 그러므로 본래 긴 것은 잘라서는 안 되며 본래 짧은 것은 늘여서도 안된다. 그런다고 해서 우환이 없어질 까닭이 없다. 생각건대 인의가 사람의 본성일 리 있겠는가! 저 인을 갖춘 자들이 얼마나 근심이 많겠는가

장자는 비유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이와 같은 비유의이야기가 아직까지 상징적인 카피로 전해지고 있는 것 같다.

 

P335 – 장자의 소요

자기의 문화, 자기의 생산물, 자기의 언어, 자기의 신을 강요하는 제국과 패권의 논리가 반성되지 않는 한 참다운 문명의 발전은 요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영복선생님의 일관된 가르침이자 메시지이다.

 

P343 – 장자의 소요

빈배로 흘러간다는 것이 바로 소요유입니다. 빈 배는 목적지가 있을 리 없습니다.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보행이 아닙니다. 삶이란 삶 그자체로서 최고의 것입니다. 삶이 어떤 다른 목적의 수단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이 점에서 장자는 자유의지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장자의 사상이 구본형선생님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P345 – 장자의 소요

장자를 몽접주인이라고 부른 것이 바로 이 나비의 꿈때문입니다. 장자의 사상을 대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막상 그것의 핵심적인 의미를 놓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비의 꿈은 인생의 허무함이나 무상함을 이야기하는 일장춘몽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장자의 나비 꿈은 두 개의 사실과 두 개의 꿈이 서로 중첩되어 있는 매우 함축적인 이야기입니다. 첫째는 장자가 꾸는 꿈이며 둘째는 나비가 꾸는 꿈입니다. 이 두개의 꿈은 나비와 장자의 실재가 서로 침투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것은 9만리 장공을 날고 있는 붕새의 눈으로 보면 장주와 나비는 하나라는 것이지요. 장주와 나비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개별적 사물은 미미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요. 커다란 전체의 미미한 조각에 불과한 것이지요.

유명한 나비의 꿈, 보면 볼수록 장자는 메시지꾼이다.

 

P362 –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묵가는 유가와 함께 당시에는 현학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비주류로 물러났습니다만 당시에는 가장 강력한 주류 학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자] 역시 유가라는 점에서 주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한비자]는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법가를 대표하는 사상입니다. 천하 통일을 주도한 사상이란 점에서 법가를 비주류라고 하기에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묵가], [순자],[한비자]가 중국 사상의 전체 흐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비주류에 속한다고 해야 합니다.

 

P370 –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이러한 현실 인식에 근거하여 묵자는 겸애라는 보편적 박애주의와 교리하는 상생이론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을 지침으로 하여 연대라는 실천적 방식을 통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당면의 실천적 과제로서 반전 평화의 기차를 내걸고 헌신적으로 방어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P399 –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묵가는 중국 사상사에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최초의 좌파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국시대의 패권적 질서와 지배 계층이 사상에 대하여 강력한 비판 세력으로 등장하여 기층 민중의 이상을 처음으로 제시하였습니다. 투철한 신념과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대중 속에서 설교하고 검소한 모범을 보였으며, 서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묵자가 죽은 후에도 200여년 동안 여전히 세력을 떨쳤지만 그 후 2천년이라는 긴 망각의 시대를 겪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묵가는 좌파 사상과 좌파 운동이 그 이후 장구한 역사 속에서 겪어 나갈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역사의 초기에 미리 보여준 역설적인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묵자의 이야기를 정말 우리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장자의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들이다. 오히려 이제 서야 다시 빛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P404 –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순자는 예에 의한 통치를 주장합니다. 바로 이점에서 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주관파와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주관파에서도 공자의 극기복례를 계승하여 예를 중시합니다. 그러나 순자의 예는 공자의 예와는 달리 선왕의 주례가 아니라 금왕의 제도와 법을 의미합니다.

 

P417 –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순자의 성악설도 그런 점에서 같은 구조입니다. 전국시대의 사회적 혼란의 원인을 분석하고 처방하는 논리의 일환입니다. 순자의 이론 체계는 교육이라는 후천적 훈련과 예라는 사회적 제도에 의하여 악한 성性을 교정함으로써 사회의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순자는 모든 사람은 인의와 법도를 알 수 있는 지의 바탕을 갖추고 있으며 또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선단을 갖추고 있다는 맹자의 주장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에 대한 불신이나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순자는 모든 가치 있는 문화적 소산은 인간 노력의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인문 철학자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P431 – 법가와 천하 통일

우리가 지금부터 함께 읽으려고 하는 법가는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사상입니다. 법가는 부국강병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하고 최후의 6국을 통일했습니다.

 

법가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문장인 것 같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사상

 

P461 – 법가와 천하 통일

우리가 법가 사상에서 적극적 의미로 읽어야 하는 것은 개혁성과 법치주의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상에 비하여 분명한 차별성을 갖는 법가의 특징입니다. 법가의 개혁성은 구 사회의 종법 구조가 이완되고 보수적 저항성이 약화됨으로써 형성된 새로운 공간을 충분히 향유하였습니다.

법가가 가진 역사적 의미이자 중국역사에 남긴 큰 유산이 아닌가 싶다.

 

P481 – 강의를 마치며

중국이 불교에서 받은 충격은 이러한 중화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엄청난 것입니다. 사이팔만이라는 세계 인식은 중국 이외에는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며 오만이었습니다. 중국 이외에 다른 문명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화주의적 세계관이 무너지는 충격인 것이지요. 불교철학은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세계관의 변화를 요구할 정도로 대단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전은 외부이 충격과 자기 성찰에서 온다. 지속적인 변화만이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다. 중국의 사상도 불교를 만나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 온 것이다.

 

P486 – 강의를 마치며

불교와 신유학은 도전과 응전이라는 역사의 어떤 전형을 엿보게 합니다. 역사의 매 단계에는 이러한 구도가 중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이러한 중층적 구도를 명쾌하게 드러내는 것이 역사 이해의 본령이라고 생각합니다.

 

P487 – 강의를 마치며

[대학]의 내용을 요약한다면 첫째 명덕을 밝히는 것, 둘째 백성을 친애하는 것, 셋째 최고의 선에 도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세가지를 3강령이라 합니다. 그리고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가 8조목입니다.

 

P492 – 강의를 마치며

[대학]에는 노불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그 저변에 확실하게 깔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은 와해된 사회질서를 재건하려는 당내 인텔리들의 고뇌에 찬 선언이었다고 해야 합니다.

 

P494 – 강의를 마치며

[중용]은 당시의 사회적 과제를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는 텍스트입니다. 당시를 풍미하던 해체주의적 문화와 무정부적 상황을 개변하려는 건축적 의지로 일관된 사회학적 동기이며 사명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사상은 역시 사회적 상황을 대변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회적 혼돈은 사상적 발전 측면에서 보면 좋은 계기가 되는 듯 하다.

 

P500 – 강의를 마치며

중국의 유학 사상은 이처럼 송대의 새로운 재편과 중흥을 거쳐 대단히 안정적인 체제를 확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바로 그 견고하고 안정적인 시스템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대응에 실패하게 된 것이지요. 견고한 구조는 변화에 대한 무지와 지체로 이어지고 당연히 19세기말 근대 질서의 도전을 맞아 힘겨운 대응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 나라의 경우도 조선 후기 성리학의 완고한 구조로 말미암아 사회 역량의 내부 소모와 전체 과정의 지체를 겪지 않을 수 없었음은 물론입니다.

절대적인 진리란 역시 없는 것 같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는 것은 사상체계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결국 완벽하다고 생각한 유가 사상의 체계로 인해 중국도 우리나라도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아쉽고 안타깝다.

 

P506 – 강의를 마치며

강의가 고전 독법을 관계론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점이 일관되게 관철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때로는 대단히 편의적인 관점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실천적 과제와 유리되어 진행되기도 했다는 반성을 금치 못합니다. 바로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 강의를 다시 재조명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검토와 재조명이 끊임없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바다에 이를 수 있는 것이지요. 바다로 간다는 것은 단순한 고전 독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독법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신영복선생님의 자기반성이다. 나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이다.

 

P508 – 강의를 마치며

고전 강독을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과제로 남기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창신과 관련된 것입니다. 창신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임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창신은 재조명과는 다른 창의적 사고가 요구됩니다.

신영복선생님이 우리에게 내는 과제인데 너무 어렵다. 고전강독을 통해서 우리만의 사상과 사회적 문화를 만들라니..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고전을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서론에서도 고전강독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고 서양 철학의 근간과 동양 철학의 근간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고전 중 핵심사항을 이해할 수 있는 고전으로 축약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서론 -> 오래된 시와 언 -> 주역 -> 논어 - > 맹자 -> 노자 -> 불교 -> 강의를 마치며

이정도로 소개하는 고전을 줄이고 해당 고전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서 좀 더 충실하게 다루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너무나 많은 고전을 소개하다 보니 조금은 주마간산식으로 넘어간 측면이 많은 것 같다. 많은 예문을 통해서 해당 고전을 설명하고 있으나 해당 고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힘들다. 특히 주역의 경우는 축약이어서인지 본래 주역 자체가 어려워서인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문장인지 여러 번 읽어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해당 고전들의 분량을 늘리거나 빼거나 하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봤다.

 

3. 이 책의 장점

단점과 장점은 어떤 면에서 보면 일맥 상통하는 것 같다. 이 책의 장점은 각 고전이 역사적 관점에서 해당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 역사적 의미가 오늘날 해당 고전에 어떤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논어가 그 당시 어떤 의미에서 쓰여져 있는지, 해당 시점에서 어떤 앞서가는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그 의미가 현재 시점에서 어떤 의미로 해석되고 읽어야 하는 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어서 새로운 시각에서 고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그런 측면에서 고전강독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서양의 철학과 동양의 철학, 사상적 체계를 이해함으로써 현 사태와 자본주의가 갖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너무 많은 고전을 다루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주역은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너무많다. 주역이 그 만큼 중요하기에 서술하고 있는데 그렇게 본다면 너무 축약적이지 않나 싶다. 그래서 목차에서 이야기했듯이 소개하고자 하는 고전을 조금 줄이고 논어와 노자를 위주로 해서 오히려 불교와 주자의 신유학을 다루어서 고전의 전체적인 줄기를 위주로 다루었으면 조금 더 좋았을 것 같다. 각 고전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잘 이해가 되었는데 각 고전의 내용은 사실 그 깊은 뜻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짧고 그 깊이가 버겁다.

서론에서 고전강독이 갖는 의미가 잘 설명되어 있으나 서양의 사상과 동양의 사상적 체계에 대한 조금 더 심도 있는 설명과 함께 소개되는 각 고전이 동양 사상체계에서 갖는 의미를 조금 더 보강한다면 초보자, 고전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겐 약간은 쉽게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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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 10:00:37 *.124.22.184

11장을 안봤는데 우리에게 과제를 남겨주셨군요. 그부분은 챙겨서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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