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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gum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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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5일 08시 14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말로만 들었던 신영복 선생님을 드디어 만났다. 죄송한 얘기지만 내가 선생님을 알게 된 계기는 책이나 강의가 아니라 처음처럼이란 소주를 통해서이다. 다들 알겠지만 처음처럼이란 소주가 탄생한 것은 선생님 덕분이었고, 소주병에 새겨진 글씨체가 신영복체이며, 소주에 그려진 그림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속의 책에 나오는 새 그림이었다. ‘처음처럼이 나오고 너도나도 처음처럼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가장 서민들이 많이 즐기는 대중적 술 소주에 내 글이 들어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흔쾌히 동의하시고 사용료도 전액 대학에 기부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알게 된 선생님을 이번 책을 통해 만나뵙게 되었다.

 

통혁당 사건의 무기수 신영복. 그는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4살의 나이에 숙명여대 강단에 섰던 촉망받던 젊은 경제학자였다. 그러나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던 1968년 여름, 그는 남산의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이었다.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고 그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국가보안법 제12항이 당시의 구속사유였다. 청년 신영복은 두 번의 사형 언도 끝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스물일곱의 꽃다운 나이였다. 통일혁명당사건은 158명이 검거되어 50명의 구속자를 낸 1960년대 최대의 공안사건이었다.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김종태가 전후 4차례에 걸쳐 북괴 김일성과 면담하고 통일혁명당을 결성하여 혁신정당으로 위장, 합법화하여 반정부·반미데모를 전개하는 등 대정부공격과 반정부적 소요를 유발시키려는 데 주력했다고 발표했다. 학생 동아리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나쁜 대법원 판례를 남기는 것이 좋지 않다는 변호사의 권유에 따라 상고는 포기했다. 통혁당에 가입한 적도 없고- 실제 통혁당은 그가 투옥된 이후에 조직된 것으로 북에서 발표됐다- 김질락 이외에는 통혁당 지도부인 김종태나 이문규를 만난 적도 없으면서 대표적인 통혁당 지도간부로 인식되는 무기수 신영복은 이렇게 탄생했다. 상고포기를 하여 무기징역이 확정된 것은 197055일 어린이날이었다. 재판을 죽 지켜본 호송 헌병의 호의로 남산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무기징역의 기나긴 터널로 들어가게 된다. 사형수일 때는 무기만 되어도 원이 없다고 생각했건만, 무기징역은 어떤 의미에서 사형보다 더 암담했다.

신영복 교수는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신영복의 활동은 후배들의 독서활동과 세미나를 지도해주는 학생운동 차원이었다. 훗날 신영복은 통혁당에 대해 자신은 전혀 알지 못했고 중앙정보부에 가서야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억울한 면이 있는데 20대 후반 가장 꽃다운 나이에 감옥에 수감되어 2020일을 옥중에서 보냈다.

 

그는 감옥에서 나오고 반 년 쯤 있다가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그의 나이는 49. 상대는 KBS 라디오의 클래식 프로를 맡고 있던 유영순 PD였다. 두 사람은 여섯 살 차이가 난다. 두 사람의 만남과 사랑에 대해 그동안 주변에서는 설왕설래했다. 본인은 그것에 대해 간단 명쾌하게 이렇게 설명했다.

"출감 직전에 아내를 알았어요. 감옥에서 나올 때가 거의 다 되어 가니까 주변 분들이 늙은(?)총각을 위해 소개해 줬어요. 감옥에서 나오고 나서 곧 결혼했지요. 89년 초였어요. 어머니가 오래 앓으셨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하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어머니 얘기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아직도 그리움이 담겨 있다. 그에게 결혼은 옥내 시절의 불효를 갚는 마지막 효도의 의미를 갖는 것이기도 했으리라. 신영복 교수와 유영준 PD는 결혼 이듬해에 아들을 낳았다.

그의 책 나무야 나무야에는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의 사랑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결혼과 가정에 관한 얘기가 나온 김에 신 교수에게 내처 물었다. 아름다운 사랑은 어떤 거냐고.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많이 오염됐어요. 그건 원래 '생각한다', '상대를 고려한다'는 뜻이었잖아요. 그런데 요즘엔 너무 소유만 하려는 것 같아요. 이기적인 거죠. 너무 당연한 얘기인진 모르지만, 사랑이란 신뢰와 이해가 기본이잖아요. 그런데 그 신뢰와 이해라는 것이 금방 생기는 건 아니에요. 오랜 세월 나무를 키우듯이 키워나가는 거죠. 어느 순간 만나서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다는 건 사랑이 아닐 수도 있어요. '사랑한다'는 말을 상대에게 하는 것도, 그 사랑이 튼튼하지 못하다는 반증이지요. 나무처럼 뿌리내린 사랑에서는 말이 필요가 없지요."

우리 시대 최고의 에세이스트다운 말이다. 아마 본인은 자신을 지칭하는 이 말에 대해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객관적 사실이다. 그의 팬이 의외로 많다. 지금까지 그의 책을 100만 명 가까운 독자들이 읽었다. 당연히 그를 만나고 싶어하는 이들도 많다. 서울대에서는 언젠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1위가 바로 신영복 교수였다.

 

20대 후반의 청년 신영복은 감옥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청년을 버리게 된 신영복은 이후 20년간 감옥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감옥은 나의 스승이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감옥에서 그가 개발하고 발전시킨 '어깨동무체'라고도 불리는 그의 독특한 글씨체는 한글의 형상미를 독특하게 살리면서도 획과 획, 글자와 글자가 서로 기대는 모습으로'관계'를 중시하고 흑과 백이'조화'를 이루고 있어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사상을 상징한다.

신영복 교수의 일생의 화두는 '공부' 였다. 2007년 한 강연에서 그는'무릇 대학생활은 그릇의 내용을 채우는 것이 아닌 그릇 자체의 크기를 키워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공부의 방식은 지식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깨닫는 능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또한 어리석은 듯이 보이는 꾸준한 공부가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고 보았다.

2014 희귀 피부암진단을 받았고 피부암의 악화로 인하여 2016115일 서울 목동의 자택에서 향년 76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사인은 희귀암인 흑색종암이었다. 일각에서는 햇빛이 귀한 지역에서 발생한다는 이 병이 감옥에서 20년간을 지낸 탓이라고 보기도 한다.

 

생에 많은 인터뷰를 했는데 내가 제일 관심이 가는 건 당연히 옥중에서 보낸 20년이었다. 즉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었다.

 

- 질문 : 통혁당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의 심경은 어떠했습니까. 또 감옥생활 20년을 어떤 자세로 보냈습니까?

 

"죽음은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어느 개인이 맞이하는 삶의 최종적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형을 언도받았을 당시는 젊어서 그랬습니다만, 감히 비교한다면, 해전에서의 충무공의 죽음을 그의 일관된 삶의 훌륭한 완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척박한 식민지에서 태어나 포악한 군사정권에 항거하다 총살형 당한다는 것 역시 당시의 언어로는 완결구조를 갖는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낭만적인 생각이긴 합니다만.

물론 한편으론 쓸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 공부해야 할 것이 아직 너무 많은데. 하는 아쉬움이 없을 수 없었지요.

그러나 죽음은 나 개인의 소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 형제, 친구들에게 깊은 슬픔을 남겨 함께 함몰된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그런 낭만적인 정리가 한없이 관념적이고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에 대한 각성이 그 후 오랫동안의 수형생활을 통하여 존재론에 대한 반성과 관계론에 대한 모색의 출발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관계론의 기본은 자기자신에 대한 반성과 타인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여러가지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조는 양심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 이 책에서 강조하신 관계론이 여기서 출발했구나.

양심은 한마디로 타인에 대한 이해이며 타인에 대한 관심입니다.

타인과의 생활이 적나라하고 밀착된 수형생활에서 그러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고 기억됩니다. 그리고 이념적인 사람보다 양심적인 사람이 더 강한 사람이라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양심적인 사회가 강한 사회라는 믿음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내면서

 

5. 이 책은 그동안 성공회대학교에서 고전 강독이란 강좌명으로 진행해왔던 강의를 정리한 것입니다.

 

6. 우리들이 고전을 읽는 이유가 역사를 읽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면서 동시에 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짐이기 때문에 지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을 지혜로 만드는 방법이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고전 독법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대화를 선취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월에 읽었던 신화도 삶의 의미나 목적, 방향을 알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하물며 지금까지 내려온 고전철학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1장 서론

 

나와 동양고전과의 인연

 

16. 유년 시절의 경험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층의 정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은 물론이고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한다.

 

16. 감옥에서는, 특히 독방에 앉아서는 모든 문제를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단 하루라도 있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교도소를 20년하고도 20일을 계셨다. 정말 참담한 기분이었겠지만 저자가 얘기한 것처럼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6. 우리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마저 갖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 유일한 탈출구를 근대화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근대기획이 우리 사회의 목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미국문화와 유럽 문화를 다투어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치장하려고 하였지요.

일제 식민지 잔재, 부정과 부패, 한국전쟁 후의 참담한 환경에서 탈출은 근대화밖에 없었을 것이다.

 

16. 우리의 의식을 지배했던 것이 근대화와 서구 문화였습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만 우리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마저 허락하지 않는 불행한 문화였습니다.

우리 것이 있었나?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만의 철학, 제도, 사상이 없다는 건 불행한 것이다. 경제도 마찬가지이고 삼성, 현대, LG... 독자적인 것이 있나? 전부 다 외국의 것을 가져와 거기서 가공하고 발전시켰다. 물론 이것도 대단한 능력이라고 하지만 애플, 페이스북 등 이런 고유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내 자신부터 내 고유의 것이 없는데... 반성해야 한다.

 

17. 분단과 군사 독재에 저항하면서 열정을 쏟았던 학생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그것도 무기징역이라는 긴 세월을 앞에 놓고 앉아서 나 자신의 정신적 영역을 간추려보는 지점에 동양고전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말하자면 나의 사고와 정서를 지배하고 있는 식민지 의식을 반성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연구원과정도 이와 똑같다. 비장하게 출발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나 자신에 대해 다시 너그러워지고 있다. 경계해야 할 것이다.

 

17. 이러저러한 이유로 근본적 담론 자체가 실종된 환경이라고 할수 있습니다....그 당시에는 그러한 반성적 정서가 사회 곳곳에 남아 있었다는 점에서 지금보다는 오히려 덜 절망적이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나 자체도 그렇게 아무생각없이 살았는데 오죽하겠나. 그나마 늦지 않게 깨달아서 다행일 뿐이다.

 

17.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방에 앉아서 생각한 것이 동양고전을 다시 읽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것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더 현실적인 이유였습니다만.....다른 책에 비해 동양고전은 한 권을 가지고도 오래 읽을 수 있는 책이지요.

현실적인 이유가 더 와닿네.

 

국어사전 290

 

18. 이 노촌 선생님과 내가 같은 감방에서 무려 4년 이상을 함께 지내게 됩니다. 같은 방에서 하루 24시간을 4년 이상 함께 지냈다는 것은 내게 대단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저자뿐만 아니라 이런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낸다는 건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부부지간에도 이런 시간을 같이 보내기 어렵다. 어쩌면 그래서 부부사이가 오래갈수도 있을지도.

 

19. 노촌 선생님의 삶은 어느 것 하나 당대의 절절한 애환이 깃들어 있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의 한가지를 예로 들자면 노촌 선생님을 검거한 형사가 일제 때 노촌 선생님을 검거했던 그 형사였다는 사실이지요.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친일파들이 오히려 반민특위를 역습하여 해체시켰던 해방 정국의 실상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도 없지요.

청산해야 할 과거는 과감하게 청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사회가 곪아가는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적폐청산을 외친다. 말로만 하는게 아니고 그렇게 해야 한다. 욕을 먹더라도.

 

20. 바늘을 항상 노촌 선생님께 빌려 쓰면서도 무심하다가 언젠가 왜 하필 290쪽에다 숨겨두시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290’이 바로 이구영이라고 답변하였다. 엄혹한 옥방에서 바늘 하나를 간수하시면서도 잃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여유이면서 유연함이었다.

그 속에서 이런 작은 것이라도 없어더라면 훨씬 더 삭막해졌을 것이다.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해야만 그 힘든 생활을 견딜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화두(話頭)오래된 미래

 

21. 5천년 동안 단절되지 않고 전승되어 내려오는 문명이 세계에는 없습니다. 이집트만 하더라도 고대 문자 해독이 불가능합니다. 해독에 필요한 모든 자료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피라미드가 파라오의 무덤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 고대 문헌은 마치 현대문헌처럼 친숙하게 읽히고 있습니다. 전승과 해독에 있어서 세계 유일의 문헌입니다.

그러고 보니 신기하네. 중국은 어떻게 그런 복을 가졌을까? 우리나라가 고구려나 고려때 중원으로 나아가 보는건데 너무 아쉽다. 지금의 중국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 때도 그러했을 것이다. 감히 지금이라면 중국에 대적할수 있는가.

 

21.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22. 이 시기는 흔히 축의 시대(axial era)라고 하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상의 백화제방시대입니다. 처음으로 고대국가가 건설되는 시대였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최대한의 담론이 쏟아져 나왔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석가도 이 시대의 사상가임은 물론입니다. 한마디로 사회와 인간에 대한 근본 담론의 시대 그리고 거대 담론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대에 동서양에 이렇게 위대한 인물이 나왔다는게 신기할 정도이다. 이들로 인해 성립된 중요한 사상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인류에게 영향을 끼쳤고 지금까지도 그러한 것을 끊임없이 배우려고 한다.

 

22.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과 이러한 열망을 사회화하기 위한 거대 담론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상황이라는 인식이 고전강독에 전제되어 있습니다......현대 자본주의 특히 그것이 관철하고자 하는 세계 체제와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춘추전국시대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부국강병이 최고의 목표가 되고 있는 무한 경쟁 체제라는 점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시의 담론을 통하여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 전망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과 정신은 바뀌어도 국가의 본질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다국적 기업의 경우에도 그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 결국 부국강병이니까.

 

23. 모델을 미리 설정하고 그것으로부터 실천을 받아오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교조적이거나 관념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새로운 문명과 사회 구성원리에 관해서는 앞으로 여러차례에 걸쳐서 언급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우리가 걸어놓는 화두는 관계론關係論입니다.....유럽 근대사의 구성원리가 근본에 있어 존재론存在論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존재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단위로 인식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實體性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개별적 존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운동원리를 갖습니다. 그것은 자기 증식을 운동원리로 하는 자본 운동의 표현입니다.

이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다. 서양은 존재론이고 동양은 관계론이라고. 결국 존재론은 나는 누구인가이고 그속에서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는 것 아닐까. 나는 그 사고방식이야 말로 동양적 사고방식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라니 앞으로의 전개가 재미있겠다.

 

24, 근대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자본의 운동원리가 관철되는 체계입니다. 근대사회의 사회론이란 이러한 존재론적 세계인식을 전제한 다음 개별 존재들 간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관계론적 구성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최대한 관계성을 존재의 본질로 규정하는 것이 관계론적 구성 원리라 할수 있습니다.

이 말대로라면 관계론은 존재의 본질을 넘어서는 것이 관계론이므로 결국 관계론은 존재론을 내포하는 의미로 여겨진다.

 

24. 고전 강독은 결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닙니다. 우리의 당면 과제를 재조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철학이나 사상뿐만아니라 소설등의 문학, 음악등도 고전을 알아야 한다. 거기서 배울수 있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요즘에 알게되어 아쉽다.

 

천지현황과 I am a dog

 

25. 고전 강독에서 중요한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고전으로부터 당대 사회의 과제를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사회와 인간에 대한 성찰과 모색이 담론의 중심이 됩니다.

 

26. 하루 종일 걸려서 그제야 깨닫는 그런 비능률적인 방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그 의미를 알겠다. 낭독과 낭송의 힘은 알게 난 이후부터

 

26. 과학적 방법이나 첩경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우직하게 암기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확실한 성과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지요. 나는 여러분이 마음에 드는 고전 구문을 선택해서 암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27.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는 천지와 우주의 원리를 천명하는 교과서와는 그 정신세계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천지현황과 나는 개입니다. 나는 짖습니다.”의 차이는 큽니다. 아무리 언어를 배우기 위한 어학 교재라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천지현황의 깊은 뜻을 부끄럽게도 나는 오늘 알았다. 천자문도 그냥 한자를 외우기 위한 것으로 알았는데 이런 뜻이 있었다니.

 

27.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를 자주 바라보게 되듯이 좋은 문장을 발견하기만 하면 어학은 자연히 습득되리라고 봅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은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

 

28. 무엇과 무엇의 차이를 비교하는 방식의 접근방법을 나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우선 그러한 관점은 가장 본질적인 것, 핵심적인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차이를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28. 우리가 어떤 본질에 대하여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먼저 그것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최대한 수용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엄밀한 의미에서 대등한 비교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교나 차이는 원천적으로 비대칭적입니다.

본질은 비교하면 안되는 것이다. 아이들을 볼때도 그 아이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봐야지 다른 아이들과의 차이점을 보려고 하면 안되는 것처럼

 

28.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결국 차별화로 귀착되는 것이지요.

 

29. 진정한 공존은 차이가 있듯 없든 상관없는 것이지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공존이 필요한 것이지요. 어떠한 경우든 차별화는 본질을 왜곡하게 마련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 점을 특히 경계해야 하는 것이지요.

 

29.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없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29. 동양문화와 서양문화를 비교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고전 강독의 화두인 관계론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내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교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고전 독법의 참여점(Entry point)

 

30. 서양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현대 세계의 기본적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30. 서양 문화의 기본적 구도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종합 명제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지난주 우리가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가 여기에 해당되겠지

 

30. 그러나 서양문명은 이 두 개의 축이 서로 모순되고 있다는 것이 결정적 결함이라는 것입니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모순된 구조라는 것이지요. 과학은 비종교적이며 종교 또한 비과학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뉴튼, 아인슈타인은 종교가 있었을까?

 

31. 계몽주의 이전에는 기독교 교리를 벗어난 과학자들이 이단으로 박해를 받았지요.

 

31, 과학의 압도적 우위로 말미암아 진리와 선이라는 서양문명의 기본 구조가 와해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1. 과학은 다시 자본 축적의 전략적 수단이 되어 사회 변화를 증폭하고 미래에 대한 압도적 규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높은 범죄율, 생명 경시 풍조는 종교의 역할이 무너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과학이 자신의 대립면을 상실하고 무한 질주를 거듭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과학이 희망을 주기보다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래도 어쩌겠나. 과학 덕분에 이만큼 먹고 살았고 더 편리한 세상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에 대한 부작용은 어떤식으로는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32. 서구문명의 구성원리에 대한 반성이 주목하는 것이 바로 동양적 구성원리입니다. 서구 문명이 도덕적 근거를 비종교적인 인문주의에 두었다면 그러한 모순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성이지요. 동양의 역사에는 과학과 종교의 모순이 없으며 동양 사회의 도덕적 구조는 기본적으로 인문주의적 가치가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3. 오늘날의 주류 담론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세계화 논리는 한마디로 거대 축적 자본의 사활적 공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본질적으로는 대립면을 상실한 일방적 질주에 다름 아니지요. 미국과 유럽이 주도해왔고 또 당분간 주도해갈 세계 질서 역시 동일한 모순 과정을 답습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존재론적 구성원리와 존재론적 운동형태를 지양하지 않는 한 다른 경로가 없기 때문이지요.

 

삶을 존중하고 길을 소중히 하고

 

34. 막스베버는 동양 사회의 정체가 바로 이 현실주의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막스 베버가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하는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주의는 한마디로 적게 소비하고 많이 저축하여 자본 축적을 이루어냈으며 나아가 자본주의라는 최선의 사회 제도를 가능하게 했다는 논리입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금욕주의가 바로 신의 소명(God's calling이라는 논리입니다.

 

34. 반면에 동양적 현실주의에는 바로 이 합리적 제어 장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근검절약이라면 오히려 거꾸로 된 주장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낭비 체제를 프로테스탄티즘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양 사상이 비록 윤리적 차원의 현실주의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실주의가 곧 현세에 대한 탐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요

 

35. 체면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인간관계를 내용으로 합니다. 그런 점에서 체면은 사회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내가 아닌 남을 생각하는 차원에서의 체면은 긍정적 요인이라 할수 있지 않을까.

 

36. 형식주의도 인간관계를 사회화해야 하는 경우 필연적으로 일정한 형식이 요구됩니다. 어떤 형식을 부여하여 전범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종교적 형식도 예외가 아닙니다.

 

35.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베버의 체계에는 동양 사상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관계론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36. 그것이 철학이든 도덕이든 어느 경우에나 도로와 길의 의미입니다. 도는 길처럼 일상적인 경험의 축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서양의 철학과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차원 적인 것이 꼭 철학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들이 다 철학이라는 뜻이다.

 

36. 진리가 서양에서는 형이상학적 차원의 신학적 문제임에 반하여 동양의 도는 글자 그대로 입니다. 우리 삶의 한복판에 있는 것입니다. 도재이道在邇, 즉 도는 가까운 우리의 일상속에 있는 것입니다. 동양적 사고는 삶의 결과를 간추리고 정리한 경험과학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동양 사상이 윤리적 수준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고 할 수 있지만 반면에 비종교적이며 과학과의 모순이 없습니다.

 

자연이 최고의 질서입니다.

 

38. 동양에서는 자연이 최고의 질서입니다. 최고의 질서란 그것의 상위질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자연이란 본디부터 있는 것이며 어떠한 지시나 구속을 받지 않는 스스로 그러한 것입니다.

 

39. 어떤 존재가 특별히 자기를 고집하거나, 비대하게 되면 생성과정이 무너집니다. 생기의 장이 못 되는 것이지요.....서구의 인본주의자체가 반자연적인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의 어떠한 지점도 결코 중심일 수가 없는 거지요.

 

40. 동양학에서는 자연을 생기의 장이라 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자연은 존재하고 있는 것 중의 최고, 최량의 어떤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자연의 최고의 질서입니다.

 

인간은 인간관계입니다.

 

41. 인간주의적 관점에서 규정하는 인성이란 한 개인이 맺고 있는 여러 층위의 인간관계에 의하여 구성됩니다. 인성은 개인이 자기의 개체 속에 쌓아놓은 어떤 능력, 즉 배타적으로 자신을 높여나가는 어떤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성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 사람의 인성이 어떻다고 우린 자주 얘기하는데 개인의 성격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구나.

 

41. 인간은 기본적으로 시화적 인간입니다. 이 사회성이 바로 인성의 중심 내용이 되는 것이지요.

 

41. 동양적 가치는 어떤 추상적인 가치나 초월적 존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속에서 구하는 그런 구조입니다.

여태까지 나는 서양이 더 현실적이고 동양은 형이상학적인 줄 알았는데 나의 무지를 깨달아간다.

 

41. ()은 기본적으로 인()+() 즉 이인(二人)의 의미입니다. 즉 인간관계입니다.

앞으로 한자를 해석할때는 이런 의미까지 염두해 두고 봐야겠다. 이런 깊은 뜻이 있는거구나.

 

42. 인성이란 개념은 어떤 개체나 존재의 속성으로 환원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개인이 더불어 만들어내는 장()의 개념이라고 하는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순의 조화와 균형

 

43. 모든 사상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모순구조를 내장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상은 대립, 모순, 긴장, 갈등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3. 동양 사상의 조화와 균형은 널리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의 견제입니다.

이런 두가지 사상을 가지고 조화의 균형을 얘기하는 거구나. 이제 이해가 된다. 처음에 어떻게 동양사상이 서양의 과학과 종교에 버금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유가와 도가를 가지고 하는 얘기임을 알고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44. 노장을 중심으로 하는 도가는 기본적으로 자연주의입니다.....노자는 자연을 최고의 자리에 두는 것이지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것이지요(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자연의 일부인 인간에 대하여 무위무욕할 것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만과 좌절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유가의 인본주의를 견제하고 그 좌절을 위로하는 종교적 역할을 도가가 맡고 있는 셈이다.

유가와 도가를 독립적인 사상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서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임을 알아야 한다.

 

44. 유가와 도가는 이로써 서로 견제하고, 이로써 중용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지요.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곳

 

45. 동양 사상은 과거의 사상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사상입니다.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뛰어난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45. 미래 담론은 대부분이 20세기의 지배 구조를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저의를 내면에 감추고 있습니다. 나는 21세기 담론은 그것이 진정한 새로운 담론이 되기 위해서는 근대사회의 기본적 구조를 새로운 구성원리로 바꾸어내고자 하는 담론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6.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지양을 통하여 21세기의 새로운 구성원리를 모색하고 있다는 중국 모델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앞으로 중국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이면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는 중국을 보면 새로운 구성원리가 나올 수도 있을지 모른다. 나는 부정적적이지만....

 

46. 우리나라의 통일 과정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합니다. 이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의 통일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사적 과제와 직결되는 논의이기 때문입니다.....분단과 냉전 질서의 청산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체제 극복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주 먼 얘기로 들릴수 있겠지만 준비는 철저하게...독일의 사례를 보변서

 

46. 철학적 주제로서의 에 관한 논의이기도 합니다. 은 이를테면 지배와 억압의 논리이며 흡수와 합병의 논리입니다. 돌이켜보면 이것은 근대사회의 일관된 논리이며 존재론의 논리이자 강철의 논리입니다. 이러한 의 논리를 의 논리, 즉 공존과 평화의 논리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장 오래된

 

상품미학의 허위의식으로부터 삶의 진정성으로

 

52. <시경>은 동양고전의 입문입니다....국풍의 노래가 백성들 사이에 광범하게 불려지고 또 오래도록 전승된 노래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사람이 공감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그 노래가 계속 불려지고 전승될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시경>의 국풍 부분을 읽는 이유는 시의 정수精髓sms 이 사실성에 근거한 그것의 진정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과 정서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과 생각은 지극히 관념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백성들은 거짓노래를 부르지 않으니까

 

53. <시경> 독법은 우리들의 문화적 감성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되기보다는 정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54. 방어의 꼬리가 붉다는 것은 백성이 도탄에 빠져있다는 의미입니다. 방어는 피로하면 꼬리가 붉어진다고 합니다. 방어는 백성을 상징합니다.

방어에 이런 의미가 있을 줄은...방어 회를 먹을때는 방어 꼬리를 기억하자. 피곤하면 붉어진다.

 

거짓 없는 생각이 시의 정신입니다.

 

56. 국풍은 각국의 채시관이 거리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백성들의 노래를 수집한 것입니다.

3천년 전에 이런 노래들을 수집하려고 했던 생각이 대단하다. 중국이란 나라 다시보게된다. 대국은 대국이다.

 

57. 당시에는 남녀간의 애정 표시로 과일을 던지는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전합니다.

괜찮은 생각이네. 오늘날까지 안 이어진 것이 안타깝네.

 

58. 공자는 <시경>의 시를 한마디로 평하여 사무사思無邪라 하였습니다. ‘사무사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특함이 없다는 뜻은 물론 거짓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59. <시경>의 세계가 충성의 세계가 아니라는 반증이 되기도 합니다. 거짓없는 정한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오랜시간 계승되었을 것이다. 저자가 늘 말하던 대로 진정성이 있기 때문에

 

사실이란 진실의 조각 그림입니다.

 

59. 고향을 떠난 삶이란 뿌리가 뽑힌 삶이지요.

옛날 사람에게는 그랬다. 우리나라의 유배가 큰 형벌 중에 하나인 이유를 여기서 찾을수 있다. 오랜기간 자기의 터전인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온 것이다.

 

61. 멀리 뻗어 있는 장성을 따라 시선을 던지며 그 엄청난 역사에 감탄하기도 하고 벽돌 한 장 한 장에 담겨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에 몸서리치기도 했습니다.

경주를 둘러싼 문화재를 볼때마다 경외감을 느끼는 동시에 이를 만들기 위해 죽어나간 백성들의 영혼에 몸서리처지기도 한다.

 

62. 사실이란 결국 진실을 구성하는 조각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의 조합에 의하여 비로서 진실이 창조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문학의 세계이고 시의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풀은 바람 속에서도 일어섭니다.

 

62. 물론 민간에서 불려지는 노래를 수집하는 까닭은 이러한 진실의 창조에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민심을 읽고 민심을 다스려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써 채시관들이 조직적으로 백성들의 노래를 수집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공자도 그 나라의 노래를 들으면 그 나라 정치를 알 수 있다고 하였지요.

 

62. 바람이 불면 풀은 눕지 않을 수 없지만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선다는 의지를 보이지요.

정말 대단한 표현이다. 민중은 풀이다. 이것만큼 적절한 비유가 있을까.

 

65. 시는 읽는 시간도 적게 들고 시집은 값도 비싸지 않습니다. 시를 많이 읽기 바랍니다.

그래 시들 읽어보자.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기르기 위해서.

 

기록은 무서운 규제장치입니다.

 

67. 사후의 지옥을 설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구속력이 강한 규제장치가 되고 있습니다. “죽백에 드리우다라는 말은 청사에 길이 남는다는 뜻입니다.

임금의 기록이 이렇게 대단한거구나.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도 엄청난 유산인거구나. 나는 그게 허구라는 생각을 많이 해왔고 실제로 기록하더라도 내가 임금이라도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을 보고 지울건 지우고 수정할건 수정했을텐데

 

67. 임금의 언행을 남기는 것은 물로 후왕이 그것을 거울삼아 바른 정치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이처럼 기록으로 남기는 문화 전통은 농경민족의 전통이라고 합니다.

 

68. 중국의 전통에 이러한 기록의 문화가 있다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지만 이러한 기록이 보전되고 부단히 읽히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난 후에 서적을 불사르고 학자들을 매장하는 문화적 탄압, 이른바 분서갱유를 하게 되지만 그는 무엇보다 천하통일 사업의 일환으로 중국의 문자를 통일합니다. 이 문자의 통일은 엄청난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고대 문자와 고대 기록의 해독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69. 한 사회의 고대문자 해독 능력이 인멸된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사에 있어서 기록의 의미는 훨씬 더 크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몇천 년 전의 기록이 마치 며칠 전에 띄운 편지처럼 읽혀지고 있는 유일한 문명이라는 것이지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듯 하다. 그래서 요즘 저렇게 미국이나 전세계를 향해서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낼수 있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불편함은 정신을 깨어 있게 합니다.

 

71. 생산노동과 일하는 사람의 고통을 체험하고 그 어려움을 깨닫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하방운동의 사상적 근거가 바로 이 무일無逸사상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시진핑 역시 이 하방운동에 의해 노동을 했던 장본인이다.

 

72. 한마디로 무일은 불편함이고 불편은 고통이고 불행일 뿐이지요.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 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라는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중국 최고의 정치가 주공

 

72. 주공은 저우런라이周恩來와 함께 중국 최고의 정치가로 평가됩니다.

 

74. 주공은 조선 시대의 세조와 같이 어린 조카를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고 자기가 군권을 장악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지만 끝까지 성왕을 도와 주나라의 기틀을 튼튼히 닦았습니다.

대장부로 태어나 왕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고, 능력까지 겸비한 주공이 왕을 원하지 않았을까. 그것을 억누른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미래는 과거로부터 나옵니다.

 

75. 레닌은 <우리는 어떤 유산을 거부해야 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역사공부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계승할 것인지를 준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을 피력했지요. 나는 이 <무일>편에서 오히려 우기가 역사를 읽으면서 무엇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77.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피식민지 의식의 전형입니다. 권력이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명심하자. 개인의 변화도 외부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초사>의 낭만과 자유

 

78. 굴원의 <이소離騷><초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힙니다. <이소>는 흔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오디세이>에 비유되기도 하고 단테의 <신곡>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전쟁 영웅을 기리는 서사시이거나 인간 이성의 구법 여행을 표현한 작품이 아닙니다. 실연한 여인의 장편 서사시입니다.

이게 더 어려운거 아닌가. 전쟁이나 귀환의 서사시보다 개인의 감정을 가지고 장편으로 한다는건.

 

현실과 이상의 영원한 갈등

 

81. 新沐者必彈冠신목자필탄관 新浴者必振衣신욕자필진의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의 먼지를 떤 다음 갓을 쓰는 법이며 몸을 씻은 사람은 옷의 먼지를 떤 다음 옷을 입는 법이라고 선언합니다.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을지언정 깨끗한 몸을 더럽힐까 보냐고 자신의 고고함을 선언합니다. 비타협적 기개를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82.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해야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좌경적이라는 의미는 新沐者必彈冠신목자필탄관 新浴者必振衣신욕자필진의처럼 비타협적인 원칙의 고수라고 할수 있습니다. 우경적이라는 말은 맑은 물에는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는 발을 씻는다는 현실주의와 대중노선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오래된 과제를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어려운 일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너무 많은 타협을 했다. 두 번째 인생만큼은 굴원의 태도를 가져보자

 

낭만주의와 창조적 공간

 

84. 마오쩌둥이 닉슨에게 건넨 선물이 놀랍게도 <초사>라는 사실입니다. 마오쩌둥은 <초사>를 손에서 한시도 놓은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마오쩌둥 사상이 이러한 남방적 낭만주의가 갖는 자유로움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현실에 매달리지 않고 현실의 건너편을 보는 거시적 시각과 대담함이 곧 낭만주의의 일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위대한 인물은 역시 책과 관련되어 있음을 생각하고, 현실과 거리를 두면서 현실을 보는 감각의 중요성

 

3. <주역>의 관계론

 

바닷물을 뜨는 그릇

 

87. <주역>에 담겨 있는 사상이란 말하자면 손때 묻은 오래된 그릇입니다. 수천 수만 년에 걸친 경험의 누적이 만들어낸 틀입니다. 그 반복적 경험의 누적에서 이끌어낸 법칙성 같은 것입니다.

 

90. 점괘와 백성들의 의견과 조정 대신 그리고 임금의 뜻이 일치하는 경우를 대동(大同)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대학의 축제인 대동제(大同祭)가 바로 여기서 연유한 것이지요. 하나 되자는 것.

 

()과 전()

 

91. 공자 이전 2500년은 점복의 시대라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 이후의 시기는 <주역>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시대입니다. ()은 원본 텍스트이고, ()은 그것의 해설입니다.

 

91. 우리는 공자학파의 철학적 해석 방식뿐만 아니라 경 속에 담겨 있는 관계론에 주목해야 하는 것임은 물론입니다.

 

()와 괘()

 

93. 효와 괘를 이러한 사물 또는 사물의 변화를 담지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94. 서구적 판단형식과 주역의 판단형식의 차이는 세계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과 관계론적 인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역> 읽기의 기초 개념

 

98. 남자 2대 여자 1의 구성이기 때문에 결합의 주도권은 당연히 여자가 행사하고, 결합된 2가 결정권을 행사하게 됩니다....괘의 음양을 결정하는 방법이 매우 실제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와 응()

 

99. <주역> 사상의 핵심을 관계론이라고 하는 경우 지금 설명하려는 위()와 응()의 개념이 바로 그것을 의미합니다.

 

101. 나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괴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링[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자기 힘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견 맞는 내용이지만 내 생각에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부족한 30을 채우기 위해 부단한 자기 노력을 통해 채울수 있다고 본다. 70자리에 있으면 100인 능력이 70으로 줄어들수도 있으니까

 

102. 자기의 능력을 키우려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동양학에서는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체의 능력은 개체 그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 딛고 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산된다고 하는 생각이 바로 <주역>의 사상입니다.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람의 길흉화복이 그 사물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역>의 사상입니다.

 

지천태(地天泰)

 

110. 혁명을 치르지 않은 나라가 진정한 발전을 이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혁명을 치르지 않은 사회가 두고두고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는 예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습니다.

 

116. 한 개인의 일생 또는 전위 조직이나 국가의 흥망성쇠라는 관점에서 읽었습니다.

 

천지비(天地否)

 

117. 천지비괘는 좋지 않은 괘로 예로 듭니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형상입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괘를 비괘(否卦)라 이름하고 그 뜻을 막힌 것으로 풀이합니다....천지폐쌕의 괘입니다. 하늘의 기운은 올라가고 땅은 기운은 내려가기 때문에 천지가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19. 지천태괘와 천지비괘에서 공통적인 것은, 어느 것이나 다 같이 교()와 통()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교와 통이 곧 관계입니다. 이것이 <주역>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관계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지박(山地剝)

 

121. 박괘는 64괘 가운데에서 가장 어려운 상황을 나타내고 있는 괘입니다.....세상이 온통 악으로 넘치고 단 한 개의 양효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123. 이 박괘는 흔히 혼돈 세상에서 사상적 순결성과 지조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으로 풀이되기도 하고 일반적으로는 어려운 때일수록 현명한 판단과 의지가 요구된다는 윤리적 차원에서 읽힙니다.

 

123. 박괘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희망만들기입니다. ....희망은 고난의 언어이며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25. 가을나무가 낙엽을 떨어뜨리고 나목으로 추풍 속에서 서듯이 우리 시대의 모든 허위허식을 떨어내고 우리의 실상을 대면하는 것에서부터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엽락이분본葉落而糞本, 잎은 떨어져 뿌리의 거름이 됩니다. 우리 사회의 뿌리를 튼튼히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자립성, 정치적 주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수미제火水未濟

 

125. 화수미제괘는 64괘의 제일 마지막 괘입니다. 마지막 괘라는 사실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먼저 화수미제괘는 물위에 불이 있는 모양입니다.

 

126. 5효는 양효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괘의 전체적 성격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라고 합니다. 대체로 군주의 자리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 중의 자리에 음효가 있는 것을 높에 평가한다는 사실입니다.....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 중에 음과 양을 합하여 지칭할 때 양음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음양이라 하여 음을 앞에 세우는 것도 그러한 예의 한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깊은 뜻이 있었구나. 일반적으로 음은 나쁜 것으로 생각했는데 반전이다.

 

128. 실패가 있는 미완성은 반성이며, 새로운 출발이며, 가능성이며,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완성이 보편적 상황이라면 완성이나 달성이란 개념은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성이나 목표가 관념적인 것이라면 남는 것은 결국 과정이며 과정의 연속일 뿐입니다.

 

129. “목표의 올바름을 이라고 하여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올바름을 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盡善盡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은 서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盡善하지 않으면 盡美할수 없고 진미하지 않으면 진선할수 없는 법입니다. 목적과 수단은 통일되어 있습니다. 목적은 높은 단계의 수단이며 수단은 낮은 단계의 목적입니다.

 

절제와 겸손은 관계론의 최고 형태

 

130. <주역> 사상을 계사전에서는 다 세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른 상태,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질적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질적변화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통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열린 상황은 답보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워진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구라고 할수 있습니다. 계사전에서 요약하고 있는 <주역> 사상은 한마디로 변화입니다. 변화를 읽음으로써 고난을 피하려는 피고취락의 현실적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사전주역의 난해하고 심원한 세계로 학인들을 이끌어줄 철학적이며 총론적인 성격의 글이 라고 하며 작자는 미상이다.

 

132. 절제와 겸손이란 바로 이러한 제한성로부터 도출되는 당연한 결론이라고 해야 합니다. <주역>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절제와 겸솜이라는 것이 곧 관계론의 대단히 높은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4.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춘추전국시대

 

137. <논어>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공자어록입니다. <노자>에는 노자라는 인간이 보이지 않지만 <논어>에는 공자의 인간적 면모가 도처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것이 <노자><논어>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성격과 학문의 차이에서 오는 것 아닐까. 공자는 자기의 능력을 누군가 인정해주고 써 주기를 원했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자기를 알려야 되니까.

 

140. 중국 역사에 있어서 최대의 이데올로기로 군림해온 사상이 바로 유가 사상이고 그 중심이 공자이고 <논어>입니다.

 

141.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時制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관을 이유로 들어 그를 반인원적이고 비민주적인 사상가로 매도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배움과 벗

 

143. 공자는 식읍을 봉토로 받는 대부가 되기를 원했지만 결국 그러한 신분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녹을 받는 사, 즉 피고용자에 머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은퇴하여 결국 사설 학원 원장으로 일생을 끝마치게 됩니다. “남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노엽지 않으니 어찌 군자라 하지 않겠는가

어찌보면 욕심이 있는 공자가 더 인간적이다. 자기의 재주를 인정해주고 높은 자리에 올라 자기의 이상을 펼치고자 하는 그의 뜻을 지지하는 바이다. 그리고 자기의 능력을 얼마나 높이 사고 있었을까.

 

145. 사회에 대한 이 모든 개념은 제도와 인간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제도와 인간이라는 두 개의 범주가 인간관계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사회는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라 할 수 있으며, 이 인간관계의 사회적 존재 형태가 사회 구성체의 본질을 규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가 바로 인간관계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지요.

사회제도를 이렇게 인간관계로 풀어낼수 있다니 놀랍다.

 

145. 사회 변화 역시 그것의 핵심은 바로 인간관계의 변화입니다. 인간관계의 변화야말로 사회 변화의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준거입니다.

 

옛것과 새로운 것(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가이위사의(可以爲師矣))

 

147. 영원히 지나가고 다시 오지 않는 과거는 없습니다.

나는 과거는 그냥 과거이고 다시 오지 않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연구원이 되고 난 후부터 많은 생각들이 달라지고 있다.

 

149. 그러나 이 구절은 온고보다는 지신에 무게를 두고 고를 딛고 신()으로 나아가는 뜻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릇이 되지 말아야(군자불기君子不器)

 

150. 그릇이란 각기 그 용도가 정해져서 서로 통용될수 없는 것입니다.

다용도 그릇이 있다지만 각기 그릇은 원래 용도가 있으니 그릇이 되는 것은 노예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할 것이다. 형체가 없어 그때그때 용도에 맞게 형체를 변형시킬수 있는 그릇이 제일 좋을 것이다.

 

151. 우리의 논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뛰어넘고 그것의 대안적 모색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부끄럼을 아는 사회

 

자왈子曰 도지이정道之以政 제지이형齊之以刑 민면이무치民免而無恥 도지이덕道之以德 제지이례齊之以禮 유치차격有恥且格

 

153. 이 글은 덕치주의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정명령으로 백성을 이끌어가려고 하나 형벌로써 질서를 바로 세우려 한다면 백성들은 그러한 규제를 간섭과 억압으로 인식하고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될 수 있으면 처벌받지 않으려고 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154. 두가지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첫째는 형과 예를 인간관계라는 관점에서 조명해보는 것입니다. 형은 인간관계에 잠재적 가능성을 가두는 것이며 반대로 예는 인간관계를 열어놓음으로써 그것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가능성을 키우는 구조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부끄러움에 관한 것입니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질서를 세우면 부끄러움도 알고 질서도 바로 서게 되지만, 정형(政刑)으로 다스리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할 뿐이며 설사 법을 어기더라도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사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조직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공존과 평화(자왈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160.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161.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과의 차이에 대한 인식입니다. 정체성 역시 타자와의 차이를 부각시킴으로써 비로소 드러나는 것입니다.

인식에 대해 아무생각이 없었는데 인식에 대한 관념을 알게되었다.

 

162. 동양학에서 대체로 대비의 방식을 선호하는 까닭은 동양학 그 자체가 관계론적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63. 불교가 중국에 유입되면 불학(佛學)이 되고, 마르크시즘도 중국에 유입되면 마오이즘이 되는 강력한 대륙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현대 중국은 자본주의를 소화하고 있는 중이며 동시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지양한 새로운 구성 원리를 준비하고 있는 현장이라는 것이지요.

 

164. 유럽 근대사는 존재론적 논리가 관철되는 강철의 역사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차례 이야기 했습니다.....이러한 자본주의 논리가 바로 존재론의 논리이며 지배, 흡수, 합병이라는 동의 논리입니다. 종교와 언어까지도 동일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동의 논리를 극복하는 것은 곧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과 무관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지양하고자 하는 중국적 의지에 대해서는 일단 그 역사적 의의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동의한다. 이제 중국은 미국과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한다. 어떤 사람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중국이 거대해보지만 결코 미국을 따라갈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더 강력해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도광양회를 이제 대륙굴기로 넘어서는 중국을 지켜보자. 그로 인해 우리의 정치적 판단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눈치도 봐야하고 이제 중국의 눈치도 봐야 하고. 더 힘들어진다.

 

164. 그러나 문제는 중국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새로운 문명이 근본에 있어서 또 하나의 동일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중국의 중화주의는 철저히 문화적인 것이며 결코 패권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설령 그러한 주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문화주의란 군사적 강제나 정치적, 경제적 강제를 배제한다는 의미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다른 문화, 다른가치, 그리고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관용과 공존을 존중한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근본에 있어서 얼마든지 또 하나의 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결국 국가는 똑같지 않을까. 미국이나 중국. 자국우선주의 타국 배제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것 같은데. 사드배치로 인한 중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것을 보면 알수 있다. 과연 대국이라는 중국이 우리에게 취하는 행동은 군자가 아니라 소인같다.

 

166.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는 중국과 같은 대륙적 소화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불교, 유학, 마르크시즘, 자본주의 등 어느 경우든 더욱 교조화되는 경향을 보여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슴아프고 슬프지만 정확한 통찰이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우리만의 고유한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게 철학이든 사상이든 경제든 휴대폰이든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德不孤 必有隣)

 

168.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 이 구절은 사람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169. 변혁기의 수많은 실천가들이 한결같이 경구로 삼았던 금언이 있습니다.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는 것이었지요.

홀로 죽지말고 인간관계를 잘 쌓아라. 즉 덕불고 필유인하라는 뜻일 것이다.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

 

170. 정치란 백성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며 백성들의 신뢰가 경제나 국방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천명한 구절입니다.

 

171.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설화입니다.....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능력은 그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 있으며 이 인간관계는 신뢰에 의하여 지탱되는 것이지요.

 

172.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치란 신뢰이며 신뢰를 중심으로 한 역량의 결집이라는 사실입니다.

 

참된 지()는 사람을 아는 것(“()이란 애인(愛人)이다. ()란 지인(知人)이다.”)

 

172. <논어>에서 인에 대한 공자의 답변은 여러 가지입니다. 묻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안연에게는 인이란 자기(私心)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답변하였고 중궁에게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기소불욕己所不欲물시어인勿施於人)이라고 대답하는가 하면, 사마우에게는 인이란 말을 더듬는 것이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의 의미는 특정한 의미로 한정하기가 어렵습니다.

 

173.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답변에 공통되는 점이 타인과의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는 공과 사의 관계를 이야기 하는 것이며, 기소불욕 물시어인은 나와 남의 관계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말을 더듬는 것이라고 한 까닭은 자기가 한 말을 실천하기가 어려우니 어찌 말을 더듬지 않겠는가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말은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이 역시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4. ()과 지(), 애인과 지인은 <논어>의 근본 담론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지인이란 타인에 대한 이해일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입니다. 그러한 인간을 아는 것이 지()라는 대단히 근본적인 담론을 공자는 제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174.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알려고 하는 그 사람이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그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연의 대상물과는 달리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나를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서로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그 사람역시 나를 알고 싶어해야 하는 관계임을

 

175.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사람이 팔기 위해서진력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모든 것을 파는 사회이며 팔리지 않는 것은 가차없이 폐기되고 오로지 팔리는 것에만 몰두하는 사회입니다. 상품의 가치와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체제에서 추구하는 지식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는 한 점의 인연도 없습니다. ()는 지인(知人)이라는 의미를 칼같이 읽는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는 무지한 사회입니다. 무지막지(無知莫知)한 사회일 뿐입니다.

팔기 위해서는 역시 지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팔리는 쪽만 치중하다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소외되고 제외된다는 그런 의미로 생각하자

 

정직한 방법으로 얻은 부귀

 

178. 이러한 역사의식과 이러한 사회의식이 청산되지 않는 한 한 개인의 부귀와 빈천의 온당한 의미를 읽어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사회의 관계망과 역사의 관계망, 즉 시공을 관통하는 관계망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그러한 망을 뜨개질하는 것이 근본적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등은 우리들의 천민의식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지 않는 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알 듯 모를 듯한 말들이다.

 

이론과 실천의 통일

 

179. “()하되 사()하지 않으면 어둡고, ()하되 학()하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생각이나 사색의 의미가 아니라 실천의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182. 사회적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학()과 사()를 적절히 배합하는 자세를 키워가야 합니다.

 

어리석음이 앎의 최고 형태입니다.

 

185.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지혜로웠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었다. 그 지혜로움은 (많은 사람들이) 따를 수 있지만 그 어리석음은 (감히) 따를 수 없다.”...()보다는 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사람이란 지혜롭기보다는 어리석기가 어렵습니다. 지혜를 드러내기 보다는 그것을 숨기고 어리석은 척하기가 더 어렵다는 뜻입니다.

모임이나 회의에서 한마디라도 더 할려고 하지 숨기려고 한적 있는가

 

187.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영합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법이지요. 그나마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것은 세상을 우리에게 맞추려는 우직한 노력 때문입니다.

정말 어려운 것이다. 세상에 자기를 맞추지 않고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는 것. 그게 조직이든 내가 속해 있는 단체이건. 옳지 않은 것에 대해 옳지 않다고 할 수 있는 용기.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188. 공을 숨기고 겸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욕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욕심이 없어야 겸손할 수 있으며 욕심이 없어야 지혜가 밝아질 수 있는 것이지요. 제갈공명의 명석한 판단은 무사(無私)에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하를 도모하려른 사사로운 욕심이 없었음은 물론, ‘윗사람이 되려고 하는 욕심마저도 없었지요. 이처럼 무사하기 때문에 공평할수 있고 공평하기 때문에 이치가 밝아질(地理明)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이해관계 집단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그 주장과 논리가 결국 사사로운 것이기 때문이지요.

 

189. 집단적 타자인 대중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중은 현명하다고 하는 것이지요. 대중은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겸허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을의 좋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

 

192. 만인으로부터 호감을 받는 경우와 만인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경우 둘 다 좋지 않다는 것이지요. 양극단은 실제로 없는 것입니다. 위선 또는 위악인 경우에만 상정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위선과 위악이 아니면 모두 좋아하거나 미워할수 없다는 뜻이다. 내가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는 좋을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한 개인에게 나는 지독히도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광고 카피의 약속

 

194. “바탕이 문체보다 승()하면 거칠고 문체가 바탕보다 승하면 사치스럽다. 형식과 내용이 고루 어울린 후라야 군자다.” 내용이 형식에 비하여 튀면 거칠고, 형식이 내용에 비해 튀면 사치스럽다는 의미.

 

199.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와 야() 중에서 하나를 택한다면?

당연히 야(). 내용이 중요하지 형식이 중요한가. 형식은 배부를 때 찾는 것이고 곤궁하고 어려울때는 야()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습과 놀이와 노동의 통일

 

200. 지를 대상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다면 호는 대상과 주체 간의 관계에 관한 이해입니다. 그에 비하여 낙은 대상과 주체가 혼연히 일체화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가 분석적인 것이라면 호는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낙은 주체와 대상이 원융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낙은 어떤 판단 형식이라기보다는 질서 그 자체를 의미한도 할 수 있습니다......“낙은 관계의 최고 형태인 셈입니다. 그 낙의 경지에 이르러 비로소 어떤 터득이 가능한 것이지요.

 

산과 강은 오래된 친구입니다.

 

201. 지자는 눈빛도 총명하고 사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며 특히 사물의 변화에 대하여 정확한 판단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2. 인자는 한마디로 세상의 무궁한 관계망을 깨달은 사람이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지자는 개별적인 사물들 간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자가 더 큰 개념이라는 뜻 아닌가. 지자보다는 인자가 되고 싶지 않을까. 지자는 젊은 사람, 인자는 나이 들어서.

 

5장 맹자의

 

어찌 이를 말씀하십니까?

 

212. 공자의 인()이 맹자에 의해서 의()의 개념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중심사상이 인에서 의로 이동했다는 것이지요. 인과 의의 차이에 대해서 물론 논의해야 하겠지만 한마디로 의는 인의 사회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13. 맹자는 인과 의를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만 의에 무게를 두고 있는 사상가입니다. 인과 의의 차이가 곧 공자와 맹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이 개인적 관점에서 규정한 인간관계의 원리라면 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간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3. <논어>가 선어(禪語)와 같은 함축적 글임에 비하여 <맹자>는 주장과 논리가 정연한 논설문입니다.

난 개인적으로 선어형태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야 당연히 이해가 안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공부 더하고 와라 이런식이다.

 

215. 맹자의 사상과 정책은 결국 당시 패권을 추구하던 군주들에게 채용되지 못했습니다. 맹자 사상이 공자의 인을 사회화했다고 하지만 당장의 부국강병을 국가적 목표로 하고 있던 군주들에게 사회적 정의(正義)’는 너무 우원한 사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활적 경쟁에 내몰리고 있던 군주들에게 정의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당연하다. 나라가 망하느냐의 문제에 정의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린 것에 깨끗함을 찾는 것과 같다. 그래도 이런 난국에 이런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럿이 함께하는 즐거움

 

216. 여민락(與民樂)은 백성들과 함께 즐긴다는 뜻입니다. 맹자의 민본사상이 표명되어 있는 장입니다.

임금을 바꿀 수 있다는 맹자의 논리는 이를테면 민에 의한 혁명의 논리입니다. 맹자의 민본 사상의 핵심입니다. 임금을 몰아내고 현인을 새임금으로 세울 수 있음은 물론이고 사직단도 헐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지요.....그러한 권위와 성역마저도 가차없이 헐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맹자의 민본사상입니다.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

 

227. 우선 사단四端(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치 사지四肢가 있는 것과 같은 대목입니다. 이것은 윤리적 차원의 선언이기는 하지만 만민은 평등하다는 주장과 통합됩니다. 매우 중요한 맹자 사상의 하나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윤리적 차원의 성선설보다 더 중요한 맹자의 사회사상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화살 만드는 사람과 갑옷 만드는 사람

 

229. 사람의 소위 하는 일에 따라서 그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입장에 따라서 그 생각과 정서가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인간본성의 사회적 존재 양식에 관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성선性善이란 어떤 경우에나 변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일에 따라 달리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직업의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230. 공자의 이인위미里仁爲美를 인용하여 어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진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이지요. 이인里仁이란 인에 거하는 것이라고 직역했습니다만 인을 삶 속에서 실천한다는 의미입니다.

 

232. 부중했을 경우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반구제기反求諸己의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삶의 자세와 철학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화살을 가운데 못맞히는 것을 당연히 자기의 문제로 봐야지 외부로 찾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내 탓이로다를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다.

 

소를 양으로 바꾸는 까닭

 

237. 한마디로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만남이 없는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만남이 없는 사회에 불인인지심이 있을 리 없는 것이지요. 식품에 유해색소를 넣을 수 있는 것은 생산자가 소비자를 만나지 않기 때문이지요....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얼굴없는 생산과 얼굴없는 소비로 이루어진 구조입니다....관계가 없기 때문에 서로를 배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2차대전 이후 전쟁이 더욱 잔혹해진 까닭이 바로 보지 않은 상태에서 대량 살상이 가능한 첨단 무기 때문이라 하지요.

 

239. 나는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맹자가 사단의 하나로 수오지심, 즉 치를 들었습니다만 나는 이 부끄러움은 관계가 지속적일 때 형성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모욕한 후에에 남이 모욕하는 법

 

249. 맹자의 사회주의와 민본주의는 오늘날 사회적 현실을 조명해주고 있습니다. 맹자는 그 사상이 우원迂遠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패자들에게 수용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급진적이었기 때문에 수용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49. “()을 짓밟은 자를 적()이라 하고, ()를 짓밟는 자를 잔()이라 합니다. 잔적(殘賊)한 자는 일개 사내(一夫)에 불과할 뿐입니다. 의 무왕이 일개 사내일 뿐인 주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으나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명쾌하고도 단호하게 답변하여 군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습니다.

 

6장 노자의 도와 자연

 

는 자연을 본받습니다.

 

253. 중국 사상은 지배 담론인 유가사상과 비판 담론인 노장사상이 두 개의 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사회든 지배 담론과 비판 담론이 일정한 길항구도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253. 동양 사상의 정체성은 <논어>보다는 오히려 <노자>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유가 사상은 서구사상과 마찬가지로 의 사상입니다. 인문 세계의 창조와 지속적 성장이 진의 내용이 됩니다. 인문주의, 인간주의, 인간중심주의라 할 수 있지요. 그에 비하여 노자 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254.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입니다. 노자의 귀는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이란 문명에 대한 야만의 개념이 아님은 물론이고 산천과 같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노자의 자연은 天地人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하는 가장 큰 범주의 개념입니다.

 

254. 근본주의적이라는 의미는 인간과 문화와 자연에 대한 종래의 통념을 깨트리고 전혀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법도天法道 도법자연道法自然의 논리가 그것이지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 그리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체계입니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요.

 

255. 자연을 카오스로 인식하는 여타 제자백가들과는 반대로 자연을 최고의 질서 즉 코스모스로 인식합니다. 그런 점에서 <노자>는 근본적으로 반문화적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의지에 대한 비판입니다. 계몽주의든 합리주의든, 기존의 인위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일체의 건축적 의지를 해체해야 한다는 해체론이며 바로 이점이 노자의 현대적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256. 유가 사상은 법가에 비하여 비폭력적 지배 형식을 취하고 피지배층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매우 유화적인 정치 과정을 정착시켜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권력은 본질에 있어서 폭력적 지배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진한 이후의 제도 폭력이 지배하는 역사적 조건에서 피지배 계층을 중심으로 하여 저항적 지반이 광범하게 형성된 것은 역사의 필연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체의 인위적 규제를 재앙으로 규정하고, 자연이라는 근본적 질서를 회복할 것과 진정한 인간의 자유를 주창하는 노자의 반문화사상이 지배 사상에 대한 비판 담론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비판 담론뿐만 아니라 나아가 저항담론과 대안 담론으로 그 지반을 넓혀나가게 됩니다.

 

256. 자본주의 역사는 자본 축적의 역사이고 자본 축적은 모순의 누적 과정입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이 누적된 모순으로 말미암아 축적 과정 그 자체의 작동이 불가능하게 되는 전반적 위기의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257. 문화와 의식구조에 있어서 엄청난 허구과 비인간적 논리가 구축됩니다......고도의 대중조작체계를 장악하고 이성의 포섭뿐만 아니라 감정의 포섭까지 완성해놓고 있습니다....바로 이런 맥락에서 해체주의자로서의 노자가 생환生還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노자의 언어와 담론이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구조를 조명해내고 자본주의 문화의 허구와 총체적 낭비체제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노자가 생환될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노자가 보이지 않는 <노자>

 

257. 노자의 충고는 공자의 인격을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공자는 교만한 사람이며, 탐욕적인 사람이여, 그리고 표리부동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은 공자의 인격이 아니라 오히려 사마천이 이러한 기록을 남긴 이유입니다.....<논어>에는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수 있는 것과는 달리, <노자>에는 노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259. 왕필은 <노자>를 주석한 목적이 숭본식말崇本息末에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본을 높이고 말을 종식시키기 위함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왕필이 말하는 본이란 자연을 의미하며, 말이란 유법儒法의 인위적 규제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262. 노자의 사상은 상식과 기존의 고정관념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게 하는 고도의 철학적 주제입니다....<노자>의 독법은 방금 이야기한 바와 같이 최대한의 상상력을 동원해야 합니다...<노자>의 무위와 관조라는 동양적 사유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사상일 뿐 아니라 과학, 문화, 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라고 부를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닙니다.

 

264. 노자 철학에 있어서 무는 제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다는 의미의 무입니다.....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인간의 인식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이지요. 식물의 경우 잡초가 가장 자유로운 식물이라는 것이지요. 이름이 붙여진 경우는 인간의 지배 밑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269. 도란 어떤 사물의 이름이 아니라 법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노자의 도는 윤리적인 강상의 도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인위人爲는 거짓()이다.

 

273. 노자의 사상 체계에 있어서 대립적인 것은 없습니다. 상호 전화될 수 없는 고정불변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 만물은 상대적인 것이며 상호 전화하는 것입니다. 존재론적 체계가 아니라 관계론적인 체계입니다.

 

273. 노자 사상의 기조는 대체로 유가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 서 있습니다. 인의예지란 인위적인 것이며, 그 인위적인 것이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것이지요....자연이야말로 最高, 最善, 最美의 모델이라는 것이 노자의 인식입니다.

 

274. 여기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미와 오를 반대 개념으로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선의 반대 개념도 악이 아니라 不善으로 대치하고 있는 사실입니다....아름다움은 가까이 하고 싶은 가치로 규정하고 아름다움의 반대는 꺼리는 것, 혐오스러운 것으로 규정합니다. 대단히 합리적인 생각이지요. 선의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274. 2장은 유가적 인식론과 실천론에 대한 반성입니다. 인식의 상투성을 반성하고, 나아가 실천방식에 있어서도 그러한 인위적 작풍을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 노자의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2장의 핵심개념은 인식과 실천의 반성입니다.

 

275. 인식에 있어서의 잘못된 인위적 관념을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실천에 있어서의 올바른 방법을 제시할수 있는 것이지요.

 

277. 노자는 이 장에서, 먼저 잘못된 인식을 반성한 다음 올바른 방식으로 실천하기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말없이 실천하고, 자랑하지 말고, 개입하지 말고, 유유하고 자연스럽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노자의 실천론의 요지입니다. 그겋게 할 때만이 그 성과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뼈를 튼튼히 해야

 

279. 심과 지는 비우고 낮추어야 하며 복과 골은 채우고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가 타율신경계인 데 비하여 복골은 자율신경계이기도 합니다. ‘불견가욕不見可欲의 욕이 이를테면 심지어 그룹이가고 할 수 있습니다.

 

280. 정치경제학 개념으로 이야기하자면 상부구조보다는 하부구조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것이 노자의 정치학입니다. 한 사회의 물적 토대를 튼튼히 하는 것, 이것이 정치의 근간임은 물론입니다.

 

280. 노자는 백성들이 무지무욕無智無欲하게 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지무욕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하에서는 불가능합니다.

혹시 이것이 오늘날 노자의 한계가 아닐까.

 

282. 무리하게 하려는 자는 실패하게 마련이며 잡으려 하는 자는 잃어버린다는 것이 노자의 철학입니다. 자연의 법칙을 존중하는 무위의 방식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82. 노자 정치학의 압권이 바로 생선 굽는이야기입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 굽듯이 해야 한다”. 생선을 구울 때 생선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집다가 부스러뜨리는 것이 우리들의 고질입니다.

 

283. <노자> 독법의 기본은 무위입니다. 무위는 무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무위는 그 자체가 목적이나 가치가 아니라 방법론입니다. 실천의 방식입니다. 그것이 목표로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난세의 극복입니다. 혼란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서 바다가 됩니다.

 

284. 상선약수上善若水 인구에 회자되는 명구입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이 경우 최고의 선은 현덕이며 도입니다. 물은 물론 현덕이 아닐 뿐 아니라 도 그 자체도 아니지만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가 물을 최고의 산과 같다고 하는 까닭은 크게 나누어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우로가 되어 만물을 생육하는 것이 바로 물입니다. 생명의 근원입니다. 둘째는 다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실천한다는 뜻이다. 셋째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는 것이지요.

 

288.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이유는 무엇보다 먼저 약한 사람이 그 수에 있어서 다수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강자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그가 지배하는 약한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289.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 바다입니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입니다. 낮기 때문에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바다입니다....바다가 모든 강의 으뜸이 될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더 낮추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빔이 쓰임이 됩니다.

 

292. 누구나 수레를 타고, 그릇을 사용하고, 방에서 생활하지만 그것은 수레나 그릇이나 방의 있음()에만 눈을 앗기어 막상 그 있음의 배후()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지요. 숨어있는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지요. 즉 유()의 배후로서의 무()를 드러내는 것이 노자의 철학이고 이 장의 의미입니다.

 

293. 나는 이 장이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현상의 숨겨진 구조를 주목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히기를 바랍니다.

 

스스로를 신뢰하도록

 

296. 무치가 가능하기 위해서 임금은 백성을 신뢰하고 백성은 임금을 신뢰하는 관계가 성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297. 다음으로는 자연에 관해서입니다. 노자의 자연은 ‘Nature’가 아닙니다. 굳이 영어로 표현하자면 ‘self-so’정도가 가장 가까운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은 그 자체로서 완성된 것이며 다른 외부를 가지지 않은 존재입니다. 독립적 존재입니다.

 

서툰 글씨가 명필입니다

 

300. 가장 중요한 원칙문제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있어서는 구태여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작은 일에 매달리고 그 곧음을 겉으로 드러내게 마련이지요. 어떤 분야든 최고 단계는 특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좁은 틀을 시원하게 벗어나 있게 마련이지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져야 하는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최고의 원칙을 가짐

 

302. 말을 더듬고 느리게 이야기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불일치를 조정할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것이지요. 화자가 청산유수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면 청자가 따라오지 못하게 되지요. 느리게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303. 천하의 올바름이란 바로 자연의 질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고요함이란 작위가 배제된 상태를 의미함은 물론입니다.

 

진보란 단순화입니다.

 

304. 노자의 이상국가론입니다. 규모가 작은 국가, soft-technology, 반전평화, 삶의 단순화 등이 그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에 이것은 맞지 않을수 있다. 그러면 공동체를 많이 만들어서 노자의 이념을 따라가는 공동체는 어떨까

 

305. 노자의 철학은 귀본歸本의 철학입니다. ()은 도()이며 자연(自然)입니다....노자 철학이야말로 동양 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7. 장자의 소요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310. 장자는 문제의식에 있어서 제자백가들과 분명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자가 추구하는 문제는 더 근원적인 문제였습니다. 제도 개혁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있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입니다.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 갑자기 중국이 더 크게 보인다.

 

313.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살겠다는 것이 바로 장자입니다. 부정적이기는커녕 대단히 낙천적인 세계관을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노자나 장자는 이런 사상을 펼치는 건 좋으나 왜 현실에 들어가서 실천하려 하지 않았을까. 물론 임금들이 맘에 안차는 것이 있지만 제갈공명처럼 주군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기의 사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나가야 되지 않을까.

 

호루라기를 부는 장자

 

315. 장자는 노자의 상대주의 철학 사상에 주목하고 이를 계승하고 있지만 이를 심화해가는 과정에서 노자로부터 결정적으로 멀어져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주의적인 세계, 정신의 자유로 옮겨갔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도피라고 할 수 없지만 어떻든 노자의 관념화인것만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316. 첫째는 장자와 호루라기라는 극적인 대비를 통하여 장자의 허구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장자의 무시비無是非란 결국 통치자에게 유리한 논리임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호루라기는 권력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316. 장자 철학은 기본적으로 <노자>상대주의에서 입론하고 있습니다. <노자>의 상대주의적 측면을 한층 심화하여 공간적, 시간적으로 확장해갑니다. 그러나 그렇나 과정에서 사상적 영역이 새롭게 확장된 것은 인정된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노자의 사회성과 실천성이 탈색될 수 밖에 없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높이 나는 새가 먼곳을 바라봅니다.

 

317. 장자의 세계에서 최고의 경지는 도를 터득하여 이를 실천하는 노자의 경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도와 일체가 되어 자유자재로 소요하는 경지를 의미합니다. 아무 것에도 기대지 않고, 무엇에도 거리낌 없는 경지가 장자의 절대 자유 경지라 할 수 있습니다.

 

318. 이데올로기적 환경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높은 관점에서 그것을 조감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모든 투쟁은 사상투쟁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사상투쟁으로 끝나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우리들이 갇혀 있는 우물을 깨닫는 것이 모든 실천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사고방식을 깨는 것. 이게 연구원의 출발점이다.

 

318. <장자>가 우리 시대에 갖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대안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자>가 우리들에게 펼쳐 보이는 드넓은 스케일과 드높은 관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한 스케일과 관점은 바로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깨달음은 그 자체로서 귀중한 창조적 공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바라보는 것이지요.

 

마음으로 소를 대할 뿐이다.

 

325.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는 단계가 아니라 그것을 체득하고 있는 경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326. 길다고 그것을 여분으로 여기지 않고 짧다고 그것을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 이것이 자연이며 도의 세계입니다.

 

327.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자유로운 서술 형식과 전개 방식입니다. 이러한 형식은 장자 사상과 가장 잘 조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요와 자유와 자연을 본령으로 하는 장자의 사상을 담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형식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장자>는 대단히 높은 문학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게는 제일 이해하기 쉬워서 좋네. 이런 풍부한 설명과 예시가 너무 잘 들어맞는다. 철학적 성공이면서 문학적 성공까지.

 

327. 아내가 죽었을 때 장자는 술독을 안고 노래했다는 일화가 수긍이 갑니다. 인간의 상대적인 행복은 본성의 자유로운 발휘로써 얻을 수 있지만 절대적 행복은 사물의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절대적 행복과 절대적 사유는 사물의 필연성을 이해하며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추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장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물의 필연성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즉 도의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과의 합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장자의 이리화정以理化精입니다. 도의 이치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 합일하여 소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지요....장자의 이리화정은 가슴으로 느끼는 단계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알고 있습니다.

 

부끄러워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뿐

 

330. 생산성, 경쟁력, 효율성이라는 신화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장자의 이러한 태도는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로 여겨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동양적 가치는 인성의 고양입니다. 더 많은 생산과 더 많은 소비가 아닙니다. 도의 깨달음과 도의 체득 그리고 합일입니다.....동양의 근대화란 곧 서구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장자의 체계에 있어서 기계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기계는 그 속성인 기사機事와 기심機心으로 인하여 인간을 소외시키기 때문입니다. 기계의 발명과 산업화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되는 노동문제, 노동자 문제, 노동 계급 문제 등은 장자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그러나 장자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미리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기계로 말미암아 인간이 비인간화된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333. 기계보다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효율성보다는 깨달음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를 복원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망적인 것은 우리의 현실이 그러한 반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장자가 우려했던 당시의 현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하다

 

335. 자기가 불치병이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깨닫고 자식만이라도 자기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이 참담할 정도로 가슴을 적십니다. 엄정한 자기성찰과 냉철한 문명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내가 이 구절을 좋아하는 까닭은 문명론도 문명론이지만 자기반성을 이보다 더 절절하게 표현한 구절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자기를 기준으로 남에게 잣대를 갖다 대는 한 자기반성은 불가합니다.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입니다

 

338. 세상에서 도를 얻기 위하여 책을 소중히 여겨지만 책은 말에 불과하다. 말이 소중한 것은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소중한 것은 가리키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은 그 뜻이 가리키는 바를 전할 수가 없다. 도대체 눈으로 보아서 알수 있는 것은 형과 색이요 귀로 들어서 알수 있는 것은 명과 성일 뿐이다.

그래도 읽어야지. 그 속에서 찌꺼기를 걸러내면 되는 것이다.

 

빈 배

 

343. “아까는 화내지 않고 지금은 화내는 까닭은 아까는 빈 배였고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빈 배로 흘러간다는 것이 바로 소요유입니다....삶이란 삶 그 자체로서 최고의 길입니다. 삶이 어떤 다른 목적의 수단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이 점에서 장자는 자유의지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관념적이라거나, 사회적 의미가 박약하다거나, 실천적 의미가 제거되어 있다는 비판은 <장자>를 잘못 읽거나 좁게 읽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비 꿈

 

344. 장자를 몽접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나비 꿈때문입니다. 장자 사상을 대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나비 꿈은 두 개의 사실과 두 개의 꿈이 서로 중첩되어 있는 매우 함축적인 이야기입니다. 첫째는 장자가 꾸는 꿈이며 둘째는 나비가 꾸는 꿈입니다. 이 두 개의 꿈은 나비와 장자의 실재가 서로 침투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346. ()는 하나의 체계 속으로 망라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시비와 진위를 상대적인 것으로 보고 그것을 넘어서고 망라하는 것이 제의 의미입니다. 우리의 인식이란 분별상分別相에 매달리고 있는 분별지分別智라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사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물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 조건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지요. 이것은 모순과 통일에 관한 것이며 앞서 읽은 방생지설方生之說에서 이야기한 모순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고전 독법인 관계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47. “다르면서도 같은모순과 통일의 관계에 있는 것이지요. 상호 침투하는 것이지요. 장자의 나비 꿈은 바로 이러한 세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혼돈과 일곱 구멍

 

349. 여기서 구멍을 뚫는 행위가 바로 통체적인 전체을 분()하고 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누고 가르는 것이지요....혼돈은 이러한 분석과 분별 이전의 통체적 세계를 의미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혼돈이 죽어버린다는 것은 이러한 진정한 세계상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참다운 지식

 

350. 장자는 물론 이 구절에서 하늘이 하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을 나누고, 결국 하늘에 비추어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351. 지식과 진리성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입니다. 변화를 담아내는 구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352. 최대한의 변화를 포용할 수 있는 구조에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장자의 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자의 천은 진리가 수많은 진리들로 해체되는 것을 막아주고 진리가 재, 부재의 차원으로 격하되지 않도록 해주는 최후의 보루가 되기 때문입니다.

 

352. 오늘날의 지식이 하는 일이란 대체로 이런 역할에 지나지 않아요. 정권을 유지하게 하거나, 돈을 벌게 하거나, 나쁜 짓을 하고도 그것을 그럴 듯 하게 꾸미는 일을 대행하는 일이지요.

 

고기는 잊더라도 그물은 남겨야

 

356. 고기는 이를테면 하나의 현상입니다. 반면에 그물은 모든 현상의 저변에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가 하나의 사물이라면 그물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망라하고 있는 천망(天網)인 것이지요. 고기는 잊어버리든 잃어버리든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물입니다. 모든 사물과, 모든 사건과, 모든 사태가 그 위에서 생성 변화 발전하는 거대한 관계망을 잊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지요. 한 마리의 제비를 보고 천하의 봄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관계망이지요....남는 것은 그물입니다. 그리고 그물에 관한 생각이 철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8장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여러 시내가 몸을 섞어 강이 됩니다.

 

363. 학파 간의 차이는 그 시대의 과제를 인식하는 관점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학파간의 차별화가 진행되기도 하지만 각 학파 간의 침투가 진행되는 것이 사상사의 일반적 발전 과정입니다. 여러 시내가 몸을 섞어 강이 되듯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호 침투합니다.,....<묵자>, <순자>, <한비자>등에 대해서는 그 차이에 주목하기보다는 그 강조점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모든 쓰레기까지 받아들이는 바다같이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이로운 것만 취해서 자기만의 것을 만든다.

 

묵자의 검은 얼굴

 

364. <묵자>가 대화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면모가 분명하게 보이는 까닭은 묵자는 사상과 실천에 있어서는 물론이며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차별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하층민의 이미지입니다....검은색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검은색은 노역과 노동주의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검은 노동복을 입고 전쟁을 반대하고 허례와 허식을 배격하며 근로와 절용을 주장하는 하층민이나 공인들의 집단이 묵가라는 것입니다.....반체제적 성격을 분명히 선언하는 것.

둘째로는 근검절용하며 실천궁행(實踐躬行)하는 모습입니다. 검소한 실천가의 모습입니다.

 

366. 묵가의 검소하고 실천적인 모습은 묵돌부득검墨堗不得黔이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묵자의 집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에 굴뚝에 검댕이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367. 묵자는 다른 학파들의 사람들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매우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층 민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검소한 삶을 영위하고 신명을 다하여 실천궁행하는 모습이 묵가의 이미지입니다.

 

2천년 만에 복권된 <묵자>

 

368. 일생동안 검은 옷을 입고 반전, 평화, 평등 사상을 주장하고 실천한 기층 민중 출신의 좌파 사상가로 평가되고 있다.

 

370. 현실 인식에 근거하여 묵자는 겸애兼愛라는 보편적 박애주의와 교리交利라는 상생이론을 선언합니다. 이러한 이론을 지침으로 하여 연대連帶라는 실천적 방식을 통하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당면적 실천전 과제로서 반전 평화의 기치를 내걸고 헌신적으로 방어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겸애와 반전 평화를 묵자 사상의 핵심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371. , 한 이래 사회적 격동기가 끝나고 토지 사유를 중심으로 하는 지주 관료 중심의 신분 사회가 정착되면서 묵가는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상하의 계층적 차별을 무시하는 평등주의 사상이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맹자는 이러한 겸애 사상을 비현실적이며 비인간적인 엄숙주의로 매도합니다. 무엇보다도 묵가는 그 사상의 사회적 기반이 와해되면서 함께 소멸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기층 민중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그들을 조직하여 세습 귀족 중심의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던 최초의 좌파 사상과 좌파 운동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지배 집단의 등장과 때를 같이하여 소멸하게 됩니다.

 

371.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습니다. 제자백가 중 가장 위대한 경험론자, 평등론자로 평가받으면서도 하느님 사상과 비폭력 사상 때문에 유물론과 계급투쟁의 적으로 간주됩니다. 한편 우파로부터는 세습과 상속을 반대하는 그의 평등사상 때문에 여전히 배척되는 기구한 운명을 다시 반복하게 됩니다.

자기의 사상과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가차없이 버려지는 것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375. <묵자>에는 겸애와 교리의 제도적 장치에 대해서는 보다 진전된 논의가 없습니다. 애정과 연대라는 원칙적 주장에 머무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76. 묵자의 하느님 사상은 기독교의 사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묵자가 중국에서 자취를 감춘때가 기원전 100년경이었기 때문에 아기 예수가 태어날 때 찾아온 동방박사가 망명 묵가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도 연결이 되는구나. 이게 진실이라면 진짜

 

물에 얼굴을 비추지 마라

 

379. 비공非攻, 즉 침략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사상이지요. 그런 점에서 반전 평화론이야말로 전국시대 최고의 사상이며 최상의 윤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나쁜 평화가 없듯이 좋은 전쟁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380. 몇 개의 전승국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수많은 패전 국가의 비극과 파괴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381. 묵자에게 있어서 전쟁은 국가가 근본을 잃게 되는 것이며 백성들이 그 생업을 바꾸어야 하는 일입니다.

 

382.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공격 전쟁이 이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찌하여 지백과 부차의 일을 거울로 삼지 않는가?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워야?

 

383. 1929년의 세계공황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케인스의 처방 때문이 아니라 2차 대전이라는 전시경제덕분이었다는 것이지요. 2차 대전의 엄청난 파괴가 최대의 은인이었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입니다....자본주의 발전 과정은 제국주의적 팽창과정이었으며....<묵자>의 비공편은 전쟁 일반에 대한 잘못된 의식뿐만 아니라, 한 걸을 더 나아가 우리 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들의 허의의식을 반성케 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현재성을 갖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가간의 전쟁은 진짜 여기서 얘기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경제에서 생산한 물건을 소비할 곳이 없기 때문에 이를 소비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386.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워 화재를 예방한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우면서 요란하게 불을 끈 사람은 그 공을 칭찬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인 셈이지요.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슬퍼하다

 

388. “나라도 물드는 것이다.”..인간의 행동은 욕구로부터 나오며 욕구는 후천적으로 물들여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묵자는 임금과 제후가 훌륭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훌륭한 신하들로부터 올바르게 물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389. 절용은 물건을 아껴 쓰는 검소함입니다. 절용은 밖에서 땅을 빼앗아 나라의 부를 늘리는 대신 쓸데없는 비용을 줄여서 두 배로 늘리는 것입니다. 재물의 사용에 대한 낭비가 없게 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백성을 수고롭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묵자의 사과론(辭過)입니다. 과소비를 없애는 것이지요.

 

391. 묵자의 <절용>편은 소염론, 사과론과 함께 과잉생산과 대량 소비로 귀착될 수 밖에 없는 현대 자본주의의 거대한 낭비구조를 조명하는 유력한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391. 묵가를 설명하면서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묵자 사상의 철학적 방법론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묵가의 조직과 실천에 관한 것입니다. 묵자 사상의 철학적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 삼표’, 삼표란 세가지 표준이란 의미입니다. 판단에는 표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표론은 이를테면 인식과 판단의 준거에 관한 논의입니다.

 

392. 묵자의 삼표는 첫째 역사적 경험이며, 둘째는 현실성이며, 셋째는 민주성입니다.

 

393. 자기의 국()만을 생각하고, 자기의 가()만을 생각하고, 자기의 몸()만을 생각하는 것이 존재론적 논리입니다.....묵자의 도는 근본에 있어서 관계론입니다.

 

399. 묵가의 절제는 과연 인간의 본성과 맞는 것인가? 묵가의 원칙은 너무 각박하다.....사회를 어지럽히기에는 최상이요 다스리기에는 최하이다. 묵자는 천하에 참으로 좋은 인물이다.

 

9장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하늘은 하늘일 뿐

 

404. 일반적으로 유학은 객관파와 주관파로 나누어집니다. 사회질서와 제도를 강조하는 순자계통이 객관파로 분류되고, 반대로 개인의 행위를 천리에 합치시키고자 하는, 다시 말하자면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는 맹자 계통이 주관파로 분류됩니다. 순자는 예()에 의한 통치를 주장합니다. 바로 이점에서 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주관파와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대체로 안정기에는 예가 개인의 수양과 도덕규범으로 해석되고 사회 변혁기에는 사회질서와 제도의 의미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405. 순자가 유가학파로부터 배척당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 그의 천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자의 천은 물리적 천입니다. 순자의 하늘은 그냥 하늘이뿐입니다. 인간 세상은 하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정통 유가와 결정적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바로 순자의 천론이고, 순자가 이단인 이유가 바로 천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가가 이단으로 규정하고 배척한 이유가 너무 속좁다고 해야 하나. 예와 덕을 따른다는 학파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유가가 성공한 이유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자기와 다름을 배척시키는 태도.

 

406. 천재지변이란 자연의 변화일 뿐이라는 것이 순자의 천론입니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이런 주장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텐데..

 

인간의 능동적 참여

 

408. 순자는 인간의 능동적 참여를 천명합니다. ()이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실천적 노력이라는 것이지요. 순자의 능참실천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제어하여 활용할 것을 강조합니다. ‘자연은 만물을 만들었지만 다스리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순자의 인본주의적 관점입니다. 하늘만을 하늘같이 바라보거나 하늘을 칭송하는 숙명론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운명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운명이란 인간의 실천적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순자의 사상체계입니다.

운명을 극복한다는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그만큼 적극적인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성악설의 이해와 오해

 

412. ()은 선악 이전의 개념입니다. 선과 악은 사회적 개념입니다. 따라서 성과 선악을 조합하는 개념 구성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성악설은 인성론이 아니라 순자의 사회학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417. 순자의 이론 체계는 교육이라는 후천적 훈련과 예()라는 사회적 제도에 의하여 악한성을 교정함으로써 사회의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에 대한 불신이나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

 

()란 기르는 것이다.

 

418. 순자의 예론은 사회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 이론입니다. 첫째 예란 물()을 기르는 것()이며, 둘째 그 물로써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툼과 혼란을 방지하는 것입니다...이경우의 예란 당연히 사회의 제도와 규범입니다.

 

419. 순자의 가장 큰 공헌이 바로 이 예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새롭게 정의하였기 때문입니다...예에 도덕적인 내용 이외에 강제라는 법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421. 순자의 예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를 곧 법과 제도의 의미로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순자의 예론의 기본적 내용은 법과 제도입니다. 그러나 이 법과 제도가 안정적으로 작동케 하기 위해서 교육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나무는 먹줄을 받아 바르게 됩니다.

 

423. 학습과 교화를 강조한 교육철학의 선언입니다. 곧은 나무를 휘어서 바퀴가 되게 하는 것을 유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나무를 곧게 만드는 것도 교육이며 쇠를 날카롭게 벼리는 것도 교육의 역할입니다.

 

423. 순자가 교육론을 전개하는 것은 첫째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모든 인간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424. 개인의 수양에 앞서 제도의 합리성과 사회적 정의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도덕성은 선천적인 것도 아니며 개인의 수양의 결과물도 아니며 오로지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425. 도덕성의 근원을 인간의 본성에서 찾는 맹자가 주정주의主情主義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사회 제도에서 찾는 순자는 주지주의主知主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와 악이 함께하는 까닭

 

426. 순자가 음악을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즐겁고 감동적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즐겁고 감동적인 예, 나아가서 즐겁고 감동적인 법을 전망하는 것이지요.

음악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상가이다.

 

426. 순자는 법이란 무엇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의 잠재력을 길러내는 것이며, ‘이란 글자 그대로 물이 잘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427. 순자는 법과 제도적 통제가 가져올 폐단을 경계했던 것이지요. 나아가 사회의 질서가 타율적이고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공감과 동의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지요.

 

10장 법가의 천하 통일

 

어제의 토끼를 기다리는 어리석음

 

432. 유가, 묵가, 도가는 다 같이 농본적 질서를 이상적 모델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하여 신뢰를 갖기가 쉽지 않은 것이지요. 과거의 이상적인 시대로 돌아갈 것을 주장합니다. 선왕의 정치로 돌아갈 것을 주장합니다. 여기에 비해 법가는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대응방식을 모색해 갑니다.

 

432. 세상이 변화하면 도를 행하는 방법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법가의 현실 인식입니다.

 

옥중에서 사약을 받은 한비자

 

438. 군주의 절대 권력을 옹호하고, 군주는 은밀한 술수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불릴 정도로 권모술수의 화신이라는 이미지를 떨쳐버리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유가의 이단인 순자와 인의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매도하고 있는 한비자에 대하여 부정적 평가를 따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종 권력은 유가에서 잡았으니까.

 

439. 법가의 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공개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법치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막연한 생각을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의 법치란 무엇보다 권력의 자의성을 제한하고 성문법에 근거하여 통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법제를 행함에 있어서 사사로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의 공개성이야말로 법가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인에 공인하고 약속을 지키면 누구나 그걸 따르고 믿게 되어 있는 법이니까

 

440. 신상필벌과 엄벌주의의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가장 쉬우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 그것이 국가기관이든 민간기업이든 이 원칙은 지금까지도 지켜져야 하는 것이지만 잘 안지켜진다.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도 그렇고.

 

강한 나라 약한 나라

 

444. 법의 기본 성격을 종합해보면 첫째 법의 성문화, 둘째 전국적으로 공포한 공지법, 셋째 전국적인 법의 통일성이라는 세가지 요건이 그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러한 제도화는 군주 권력의 강화이면서 동시에 군주권의 제한이기도 합니다. 군주권의 제한이라고 하는 까닭은 법이 군주보다 높을 때 비로소 지상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445. 빈번한 전쟁에서 패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동력 있는 기능과 구조를 갖춘 강력한 정부가 요청되게 됩니다. 정의나 명분보다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 요구됩니다. 치자는 더 이상 성인이거나 군자일 필요가 없으며 그 대신 탁월한 전문성을 지녀야만 합니다. 따라서 전국시대는 이러한 변법과 개혁에 대한 저항이 훨씬 줄어든 환경이었음은 물론입니다.

 

임금의 두자루 칼

 

447. 체로서의 법과 그 체의 기반 위에서 용으로서의 술을 활용함으로써 군주가 세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 한비자의 주장입니다.

 

447. 한비자의 사상은 그것이 군주 철학이라는 점에서 비판되기도 하지만, 한비자의 군주 철학은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이야말로 난세를 평정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논리입니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다섯 가지 부류

 

454. 첫째가 학자입니다. 이유는 선왕의 도를 빙자하고 인의를 빙자하며, 용모와 의복을 꾸며서 변설을 그럴듯하게 하며 법을 의심하게 하고 임금의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둘째가 언담자로서 세객입니다. 거짓으로 외력을 빌려 사복을 채운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대검자로서 위 예시문의 협객입니다. 국법을 범하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는 근어자로서 임금의 측근입니다. 뇌물로 축재하며 권세가들의 청만 들어주고, 수고하는 사람들의 노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다섯 번째는 상공지민을 들고 있습니다. 비뚤어진 그릇을 만들어, 즉 사치품을 만들어 농부의 이익을 앗아간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시대가 지나도 마찬가지다. 다섯벌레는 계속 살아남아서 국가를 좀 먹고 있다.

 

교사는 졸성보다 못한법

 

457. 아무리 교묘하게 꾸미더라도 결국 본색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거짓으로 꾸미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지요.

 

458. 백성들을 이롭게 하고 모든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지럽고 몽매한 임금의 박해를 꺼리지 않고 백성들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지혜로운 처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한몸의 화복을 생각하여 백성들의 이익을 돌보지 않는 것은 탐욕스럽고 천박한 행동입니다.

 

법가를 위한 변명

 

461. 우리가 법가사상에서 적극적 의미로 읽어야 하는 것은 개혁성과 법치주의입니다.

 

462. 하극상과 혼란이 재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가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관료에 대한 견제입니다.

 

천하통일과 이사

 

464. 이사는 주나라의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시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군현제를 통한 중앙집권 체제의 확립은 중국의 정치 제도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466. 이사 역시 함양의 거리에서 자신이 제정한 법령에 의해 허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고 죽게됩니다.

...간신 조고에게 이용당하고 결국 비명에 가고 맙니다.

 

11장 강의를 마치며

 

천지가 찬란한 꽃으로 가득 찬 세계

 

472. 불교 사상의 핵심은 연기론과 깨달음이다...불교 철학의 최고봉은 화엄사상입니다.

 

474.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한 시간과 무변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드넓은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그 순간,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저마다 찬란한 꽃이 됩니다.

 

475. 우리들이 지금까지 고전을 읽어온 기본적 관점이 바로 관계론입니다. 그런 점에서 불교 사상은 관계론의 보고입니다. 불교에서 깨닫는다는 것, 즉 각이란 이 연기의 망을 깨닫는 것입니다.

 

475. 우리의 관계론에 의하면 삼라만상은 존재가 아니라 생성입니다.

 

476. 우리가 개인적으로 갇혀 있는 우물에서 벗어나야 함은 물론이며, 나아가 우리 시대가 집단적으로 갇혀 있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체계를 깨뜨려야 하는 것입니다....자본주의에 대한 의식의 변혁없이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투쟁은 사상투쟁에서 시작한다고 하는 것이지요...깨달음은 고전 읽기의 시작이며 그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전과 응전

 

481. 신유학의 등장은 불교의 이러한 해체주의적이고 반사회적인 사상 영향으로부터 사회질서를 지키고 통일국가를 만들어가야 하는 현실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485. 불교와 신유학은 도전과 응전이라는 역사의 어떤 전형을 엿보게 합니다.

 

<대학> 독법

 

492. <대학>은 개인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논리입니다....개인과 사화, 사회와 국가, 국가와 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성의 자각과 실현이 궁극적으로는 세계평화의 기초인 동시에 한 개인의 수양의 기초가 된다는 점을 통일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용> 독법

 

494. <중용>은 당시의 사회적 과제를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는 텍스트입니다. 당시를 풍미하던 해체주의적 문화와 무정부적 상황을 개변하려는 건축적 의지로 일관된 사회학적 동기이며 사명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99. 주자가 <중용>에서 강조하려고 한 것이 천지라는 자연과학적 개념이 아니라 천하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천하는 사회적 개념입니다. 주자의 학문적 동기가 사회질서를 다시 세우려는 건축의지에 있었다고 했습니다만 우리는 주의 그러한 입장을 <중용>에서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이지요. 주자의 정신세계는 철저하리만큼 사회적 동기가 중심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학에 대한 심학의 비판

 

504. 모든 사회적 변화는 사상 투쟁에 의하여 시작되는 것이며 사회적 변화는 사상 체계의 완성으로 일단락되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연속과 단절, 계승과 비판이라느 중층적 과정을 경과하는 것이 사상가의 가장 보편적인 형식이지만 이처럼 복잡한 전개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체적 입장과 실천적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창신의 자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모든 지적 관심은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실천적 과제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고전 독법에서 문명 독법으로

 

508. 창신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임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창신은 재조명과는 다른 창의적 사고가 요구됩니다. 창의적 사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입니다. 갇히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입니다. 따라서 창신의 장에서는 개념과 논리가 아닌 가슴의 이야기와, 이성이 아닌 감성의 이야기가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가슴에 두손

 

508. 한 사람의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가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을 결정하는 것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라는 뜻입니다. 가슴을 강조하는 것은 가슴이 바로 관계론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509. 시와 산문을 읽는 것은 바로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가슴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시서화의 정신은 무엇보다 상상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3. 내가 저자라면

 

목차에 대하여

주역,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법가 등 대표적인 동양사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상가들이 살아온 순서이든 아니든 크게 의미는 없으며 순서를 바꾸어도 상관이 없을 듯하다. 소제목들도 해당 사상이나 뭘 설명하려고 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도록 잘 뽑아낸 것 같다.

 

보완이 필요한 점

각 사상들에 대한 충분하고 자세한 설명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기본적으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기본으로 하여 엮은 책이다. 한 학기 또는 1년을 기준으로 한다고 해도 이렇게 구성이 좋을 수는 없을 듯하다. 말로만 듣던 동양철학의 정수만을 뽑아 설명해준다.

 

이 책의 장점

동양철학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가와 그의 사상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서양철학의 존재론적 사고와 대비되는 동양철학의 핵심인 관계론과 그 중요성에 대해 일관되게 독자에게 알려준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문제시 되고 있는 서구의 문화에 대한 수준 높은 의견과 통찰 그리고 그에 대해 우리가 나아가야 될 방향까지 묵직하게 알려준다. 정말 학생들 눈 높이에 맞춰 어려운 고전을 설명해준다. 나도 그 동안 말로만 듣던 그런 내용을 이렇게 심도있게 그리고 폭넓게 읽어본 건 처음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사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지만 어떻게 하면 잘 설명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고민도 느껴지는 등 만족도는 수준 이상이다. 각 사상마다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논어><도덕경>을 통해서 더 채우면 되는 것이다.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동양철학은 곧 중국철학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너무 중국 일변도이다. 내 기준이지만 동양의 큰 축은 중국, 일본, 인도, 한국 등이 해당된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의 대표적 사상에 대해서 설명하는 장을 추가했을 것이다. 한국을 예로 들면 우리 고유의 사상은 없지만 중국의 영향을 받아 대체적으로 유가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유명한 사상가들로는 누가누가 있다이런 식으로 구성하면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불교의 탄생지인 인도와 우리와 애증의 관계인 일본 철학에 대해서 언급되었으면 좋겠다. 아마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의 철학을 대표적으로 수용하여 저자가 말하는 존재론적 사고로 인해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전쟁을 일으켰을 것 같은데 이런 식의 접근을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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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 09:50:50 *.124.22.184

동양고전 입문서론 딱이죠? 저도 쉽고 나름의 주관을 가지고 설명한 것도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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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6 23:47:19 *.18.218.234

역시 끝까지 꼼꼼한 리뷰. 기상씨 북리뷰로 책 한 번 더 읽는 1인입니다^^ '다시 돌아오는 과거'로서의 제 2의 인생, 타협하지 않는 굴원의 태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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