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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1일 13시 04분 등록

논어(62째주),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11기 정승훈

 

저자 연구

공자(孔子 BC 551~BC 479)

공자는 노나라 추읍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지금의 산동성 곡부 지역이다. 공자 자신의 집안 내력은 확실하지 않지만, 60이 넘은 아버지 숙량홀과 젊은 어머니 안징재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공자가 젊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야 했기에, 공자는 제대로 된 스승 밑에서 체계적인 공부를 할 기회도 갖지 못했다. 창고지기나 가축관리 등의 천한 일을 하면서도 예에 관심이 많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9세에 기관씨의 딸과 결혼을 했다고 하지만 믿을 만한 기록은 없다. 다만 자신보다 세상을 일찍 떠난 아들 리와 제자 공야장에게 시집보낸 딸이 하나 있었다.

 

어려운 생활 중에도 남들에게 배우기를 즐겼던 공자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 살에 자립했다. 서른 살 무렵에 이미 공자 주위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가 뜻을 둔 학문이란 주나라 문화와 제도의 회복을 통하여 천하의 안정을 되찾는 것이었으며, 그것이 바로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 준 사명이라고 믿었다.

 

공자는 노나라에서 벼슬도 하였고 제자들도 관직에 나아가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세 대부의 집안이 나라의 기강을 흔드는 속에서 공자는 뜻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의 나이 55세에 노나라를 떠나 여러 나라를 떠돌게 된다. 그는 여러 나라의 제후를 만나 인과 예에 입각한 자신의 사상을 현실 정치 속에서 실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생사가 걸린 세력 다툼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제후들은 공자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공자는 자신의 이상 실현을 위해 먼 길을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현실의 벽을 절감했고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결국 그는 13년간의 긴 여행을 정리하고 노나라로 돌아왔다. 이미 68세가 된 공자는 교육과 저술에 전념하였다. 공자는 이 시기에 제자들을 가르치며 [], [], [], [], [], [춘추] 등의 육경을 편찬하였다. [춘추]는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80년까지의 노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책에 기록된 시기를 춘추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공자의 사상은 지배계층의 정당성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신영복의 [강의]에선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란 사실입니다. ...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 나도 이 생각에 동의한다. 나는 고전과 역사뿐 아니라 신화까지도 포함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중국 역사에 있어서 최대의 이데올로기로 군림해온 사상이 바로 유가 사상이고 그 중심이 공자이고 [논어]입니다.” [강의] 신영복의 말처럼 [논어]는 중국 사상사에 뼈대라 할 수 있다. 이후 다른 관점과 견해에서 나온 [맹자][순자]까지 [논어]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논어]를 모르고선 중국 사상을 이해하기 힘들다.

 

[논어]는 저자가 공자로 되어있지만 공자가 쓴 것이 아니다. 제자들이 문헌에 나온 것을 모으고 논의해서 엮은 것이다. 처음 [논어]라는 책 이름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한나라 때 [예기]이니 그 이전임에는 분명하다. 처음부터 지금의 책은 아니었고 앞의 10편은 먼저 만들어지고 뒤에 10편은 나중에 덧붙여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뒤의 10편은 공자의 모습이 미화되고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한다.

 

[논어] 전체를 다 본 것은 2013년 교육학과 4학년 교육고전과목의 과제 때문이었다. 2~3장의 짧은 report였다. 북리뷰의 마음을 무찌르는 문구처럼 발췌한 몇 문장과 나의 느낌들을 쓰고 그 당시 교육에 대한 나의 생각으로 마무리 했다.

2014년 대학원 진학을 해서 동계 전공이 아니라서 인문학 중에서 선수과목으로 3과목을 들어야 했다. 첫 학기에 2과목을 들었다. 그 중 하나가 동양철학과 학부의 동아시아 철학 입문이었다. 수강생이 적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려워서 공부에 욕심이 있는 학생들이나 듣는 과목이었던 것이다. 이 수업에서 난 또 [논어]를 읽었다. 북경에서 유학하신 교수님께 고대 중국 출토 유물로 보는 사상사 계보를 듣고 [논어]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한국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게 되었다. [논어]의 문장을 직접 쓰고 해석하는 것이 중간고사였다. 물론 pass만 하면 되는 과목이었고 성적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다시 2017년 변경연 과정에서 읽게 되었다. 4년 동안 3번을 읽게 된 것이다. [논어]와 인연이 있나보다. 이번엔 또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논어]를 신영복의 [강의] 중 논어편과 같이 볼 것이며, [논어]를 통해 [주역]의 그림자를 찾아보려 한다. [주역]은 공자학파가 [주역]의 경인 원문을 해설함으로써 미신처럼 여겨지던 것이 전으로 사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논어]의 구성이 중구난방이고 좋은 글은 많으나 그냥 읽기만 하면 맥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1편 학이

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27)

[강의]에서 신영복은 학습은 그 자체가 기쁨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사회적 신분상승을 위한 것입니다. ... 우기가 간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노예제 사회에서는 학습이 의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신영복은 이를 두고 이것이 사회 변동기임을 짐작케 하는 것이라고 했다. 벗을 누구는 제자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신영복처럼 수평적 인간관계인 새로운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또한 습을 복습이 아닌 실천의 의미로 해석했다. 유명한 문구인 만큼 해석 또한 다양하다.

 

4. 증자는 말했다. “나는 날마다 다음 세 가지 점에 대해 나 자신을 반성한다. 남을 위하여 일을 꾀하면 진심을 다하지 못한 점은 없는가? 벗과 사귀면서 신의를 지키지 못한 일은 없는가? 배운 것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은 없는가? (29)

[강의]에선 마지막 부분을 전하기만 하고 행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습을 행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신영복은 관계를 중요시한다. 논어도 인간관계의 담론으로 본다.

 

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들은 집에 들어가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가서는 어른들을 공경하며, 말과 행동을 삼가고 신의를 지키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사람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 이렇게 행하고서 남은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글을 배우는 것이다. (30)

지금은 반대로 하고 있다. 글을 배우는 것이 먼저이고 효와 예는 중요시 되고 있지 않다. 너무 유교에 얽매여 형식만을 강조하던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 건 아닌가 한다. 또한 나이드신 분들의 공경 받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도 있다.

 

1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34)

 

2편 위정

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세계관을 확립하였으며, 마흔 살에는 미혹됨이 없게 되었고, 쉰 살에는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으며, 예순 살에는 무슨 일이든 듣는 대로 순조롭게 이해했고, 일흔 살에는 마음 가는 대로 따라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36)

이 말은 거의 말년에 한 말인가 보다. 73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으니. 현인은 현인이다. 그 어려운 환경에서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다니 말이다. 공자 자신이 이러했다는 것이니 그 나이에 해당하는데 그렇지 못함에 대해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 이제 하늘의 뜻을 알 나이가 되지만 어찌 하늘의 뜻을 알겠는가.

 

1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면 스승이 될 만하다.“ (39)

[강의]에선 과거 현재 미래가 각각 단절된 형태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은 사유의 차원에서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캠벨도 구본형도 신영복도 모두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1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그릇처럼 한 가지 기능에만 한정된 사람이 아니다.” (40)

[강의]에선 막스 베버의 오독을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공자는 군자의 성품에 관한 것이며 그릇은 특정한 기능의 소유자란 뜻이다. 베버는 이를 전문성의 거부로 보고 동양 사회의 비합리성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귀족은 전문가가 아니었다. 오늘날의 전문성은 노동생산성과 관련된 자본의 논리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독법이라고 신영복은 말한다. 이 짧은 글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다니 놀라울 뿐이다.

 

1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41)

소크라테스의 말과 같다. 동서양의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3편 팔일

8. 자하가 여쭈었다. “고운 웃음에 보조개가 아름답고,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또렷하니, 흰 바탕에 무늬를 더하였네! 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다음이라는 것이다.”

자하가 말하였다. “예는 나중 일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으켜 주는 자는 상이로구나! 비로소 자네와 함께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강의]에선 흰 바탕이 있은 다음소를 한 다음이라고 했다. 소의 의미는 인간적 품성을 뜻하며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로 설명한다. ‘아름다움이란 우리말의 뜻은 알 만하다는 의미한다. 옮긴이 김형찬은 논어를 100번도 더 보고 이 글을 쓰면서도 다른 책들도 참고했다고 한다. 이 구절은 전혀 다르게 보고 있어서 또 다른 해설서를 봐야겠다. 나 혼자 봤으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문구이다.

 

23. 공자께서 노나라의 태사에게 음악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음악은 배워 둘 만한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여러 소리가 합하여지고, 이어서 소리가 풀려 나오면서 조화를 이루며 음이 분명해지면서 끊임이 없이 이어져 한 곳이 완성되는 것이다.”

음악과 춤과 시를 무엇보다 위에 두고 있는 것은 동서양이 비슷하다. 고대엔 학문이 나눠져 있지 않았으니 음악을 잘 아는 것도 당연하다.

 

4편 라인

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유함과 귀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누려서는 안 된다. 가난함과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부당하게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억지로 벗어나려 해서는 안 된다. 군자가 인을 버리고 어찌 군자로서의 명성을 이루겠는가? 군자는 밥 먹는 순간에도 인을 어기지 말아야 하고, 아무리 급한 때라도 반드시 인에 근거해야 하고, 위태로운 순간일지라도 반드시 인에 근거해야 한다.” (68)

[강의]의 저자는 어는 경우든 우리가 이 글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부귀와 빈천에 대한 반성입니다. 부의 형성 과정이 정당한 것인가, 그 사람의 출세가 그 능력에 따른 정직한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물음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질문입니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귀와 빈천의 역사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과거 청산은커녕 과거가 은폐되고 있는 역사를 우리가 살고 있기도 하지요. ... 이러한 역사의식과 이러한 사회의식이 청산되지 않는 한 한 개인의 부귀와 빈천의 온당한 의미를 읽어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논어]의 원문만으로 알 수 없는 것을 [강의] 저자의 설명을 보니 이해가 잘 된다. 더불어 지금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까지 생각하니 더 값지다.

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허물은 각기 그가 어울리는 무리를 따른다. (그러므로) 허물을 보면 곧 그가 어느 정도 인한지를 알게 된다.” (59)

유유상종이라 했다. 좋은 일을 하는 곳에 가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변경연에 왔더니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

 

2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63)

[강의]에서 신영복은 이렇게 말한다. “옛 말에 쉰 살까지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은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그가 맺어온 인간관계가 안전망이 되어 그의 노후를 책임진다는 것이지요.” 변혁기의 금언으로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라고 한다.

이제 곧 쉰이다. 내가 성실하게 잘 살아왔는지 알게 된다. 고독사가 많은 현대에 어떤 인간관계를 해왔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태다.

 

5편 공야장

11. 자공이 말하였다. “저는 남이 저에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일을, 저 또한 남에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그것은 네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69)

이를 서()라고 한다. 실천하기 쉽지 않아 이렇게 이야기 한 것이다. 내가 평소 맘에 두고 있는 것 중 하나이다.

[논어] 중 제일 내가 맘에 드는 것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공자께서도 한 마디 말로 평생토록 실천할 만한 것으로 여겼다는 데 이 말도 여러 가지의 뜻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렇게 함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것. 요즘의 부모에게도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아이들에게 많은 공부를 하라고 하는 것, 과연 부모인 자신이 학창시절엔 그만큼을 할 수 있었는지, 아니 지금도 그만큼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러면서 위 대화에서 나오는 를 평생토록 실천하도록 노력해보고자 한다. - 2013년 방송대 제출한 과제물 중에서

 

20.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행해질 때 지혜롭게 행동했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는 어리석은 듯이 행동했다. 그 지혜는 누구나 따를 수 있으나 그 어리석음은 아무나 따를 수가 없다.” (72)

[강의]에서 저자는 사람은 지혜롭기보다는 어리석기가 어렵습니다. 지혜를 드러내기보다는 그것을 숨기고 어리석은 척하기가 더 어렵다는 뜻입니다. ... 세상에 영합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법이지요. 그나마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것은 세상을 우리에게 맞추려는 우직한 노력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2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열 집쯤 되는 조그만 마을에도 반드시 진실됨과 미더움이 나만한 사람은 있겠지만,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다.”

자기 입으로 이런 말을 하다니 공자도 겸손함은 부족한 거 아닐까. 나 역시 배우기를 좋아하지만 주위에 보면 배우기만 하는 것이 좋지만은 않더라. 배우는 것으로 뭔가를 채우려는 건지 실천도 없이 배우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6편 옹야

2. 애공이 물었다. “제자 중에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안회라는 사람이 배우기를 좋아해서,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사람이 없으니, 그 후로는 아직 배우기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우선, 공자가 오래 살긴 했나보다 제자가 먼저 죽었다고 하는 걸 보면.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는다는 건 자신의 감정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안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구절이다.

논어에는 많은 사람들(제자, 임금, 부자)이 공자에게 묻고 있다. 공자가 [주역]의 죽간 끈이 끊어져 세 번 묶었다고 할 정도로 본 것이 혹 사람들의 물음에 답하는 것에 도움이 돼서는 아닐까. 지금으로 치면 점쟁이?, 서른 나이 때부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니 많은 사람을 보게 됐을 거다. 논어는 제자들이 엮었을 테니 사소한 개인적인 사례는 넣지 않았겠지만 그 내용도 많을 것이다.

 

1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자반은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전투에 패하여 달아날 때는 군대의 후미에서 적을 막았고, 성문에 들어올 즈음에는 그의 말에 채찍질하면서 말하기를, ‘감히 뒤에 처지려 한 것이 아니라, 말이 나아가지를 않았소라고 하였다.” (81)

[강의]에선 제갈공명의 명석한 판단은 무사에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이처럼 무사하기 때문에 공평할 수 있고 공평하기 때문에 이치가 밝아질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이해관계 집단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그 주장과 논리가 결국은 사사로운 것이기 때문이지요. ... 대부분의 경우에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명석합니다.”라고 말한다.

 

1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바탕이 겉모습을 넘어서면 촌스럽고, 겉모습이 바탕을 넘어서면 형식적이게 된다. 겉모습과 바탕이 잘 어울린 후에야 군자다운 것이다. (81)

[강의]의 저자는 이 대목을 상품미학의 반성으로 읽어주기 바란다고 했다. “형식미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미의 끊임없는 변화에 열중하게 되고 급기야는 변화 그 자체에 탐닉하게 되는 것이 상품 사회의 문화적 상황입니다. ... 상품 문화와 상품미학의 본질이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새로운 것에 대한 가치, 그리고 변화의 신선함이라는 메시지는 실상 환상이고 착각이라고 해야 합니다. ...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도 이러합니다. 속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그저 거죽만을 스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표면만을 상대하면서 살아가지요.”

 

1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82)

[강의]에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임에 비하여 낙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로 풀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 지를 대상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다면 호는 대상과 주체 간의 관계에 관한 이해입니다. 그에 비하면 낙은 대상과 주체가 혼연히 일체화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세계 인식이 정보 형태의 파편적 분석지에 머물거나 이데올로기적 가치판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낙의 경지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지요. 지에서 호로, 호에서 낙으로, 세계와의 관계를 높여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간단하고 너무도 유명해서 그저 이 글귀로만 이해했는데 신영복은 거기서 더 나아가 관계로, 세계와의 관계까지 확대했다. 역시 다르긴 다르다.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2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인한 사람은 정적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인한 사람은 장수한다.” (83)

[강의]에선 지자는 눈빛도 총명하고 사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며 특히 사물의 변화에 대하여 정확한 판단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인자는 한마디로 세상의 무궁한 관계망을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개별적 관계나 수많은 그물코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세계를 망라하는 그물, 즉 천망의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하늘을 망라하는 그물은 성글기 그지없지만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다. 인자는 최대한의 관계성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고 했다.

난 인자와는 좀 거리가 있고 지자 정도는 될 것 같다.

 

7편 술이

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격을 수양하지 못하는 것, 배운 것을 익히지 못하는 것, 옳은 일을 듣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 잘못을 고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나의 걱정거리다.

열거한 네 가지야 말로 쉽지 않다. 두 번째는 의외다. 앞에서는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더니, 그럼 익히지 못하고 배우기만을 좋아했다는 것인지, 익힐 시간이 없어 못했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논어]가 아쉬운 점이 이것이다. 부연설명이 없으니 알 수가 없다.

 

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심하구나, 나의 노쇠함이여! 오래도록 나는 주공을 꿈에서 다시 뵙지 못하였다.”

[강의]에서 저자가 설명했었다. 주공이 어떤 사람이며 얽힌 일화와 사람 됨됨이까지, 수양대군처럼 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은 인물이다. 역시 알고 보니 [논어]도 보이는 게 많다. 두고두고 보아야 할 책이다. 교육팀에서 입문서로 [강의]를 보고 그 후에 [논어][도덕경]을 보라고 한 이유도 이것일 것이다. 또한 책을 쓴다면 인용할 만한 많은 문구가 있기 때문이다.

 

1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몇 년의 시간이 더 주어져서 쉰 살까지 역을 공부한다면, 근 허물이 없을 것이다.”

사십대에 한 말인가 보다. 주역을 인생의 책으로 삼았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간다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서 좋은 점은 가리어 본받고, 그들의 좋지 않은 점으로는 나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다.”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로 밑줄까지 쳐놓은 것임에도 실천을 못했다. 좋은 점은 부러워하거나 시기했고, 좋지 않은 점은 허물로 여기기만 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실천해보자.

[초등고전읽기혁명] 저자의 말에 의하면 초등학생들이 최고로 가장 많이 꼽는 고전이 [논어]라고 했단다. 이런 글귀 때문이다.

 

8편 태백

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를 통해 순수한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예의를 통해 도리에 맞게 살아갈 수 있게 되며, 음악을 통해 인격을 완성한다.

음악을 최고로 여겼던 것이 이 글귀에서도 볼 수 있다. 음악 하는 사람도 [논어]를 보고 음악의 의미를 다시 새길 수 있겠다.

 

1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직위에 있지 않다면, 그 직위에서 담당해야 할 일을 꾀하지 말아야 한다.”

최순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9편 자한

6. 태재가 자공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성인이신가? 어찌 그렇게 다재다능하신가?”

자공이 말하였다. “본래 하늘이 그분을 큰 성인으로 삼고자 하였으므로, 또한 다재다능하신 것입니다.”

공자께서 이를 듣고 말씀하셨다. “태재가 나를 아는가? 나는 젊었을 때 천하게 살았기 때문에 비천한 일에 여러 가지로 능한 것이다. 군자가 여러 가지 일에 능할까? 그렇지 않다.”

노가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관직에 등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재주를 익히게 되었다라고 하셨다.”

이 문구는 서로 다른 사람들과 시간에 나눈 이야기를 하나로 묶은 것 같다. 공자 스스로 군자는 아니라고 생각한 듯하다.

 

1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산을 쌓다가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그만두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그만둔 것이다. 또한 비유하자면 땅이 평평하게 하기 위해 한 삼태기의 흙을 갖다 부었어도 일이 진전되었다면 그것은 내가 진보한 것이다.

어떤 일을 다 하지 못함도 결국 자신의 책임이며, 목표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의미 있으면 됐다는 것이다. 실천을 강조하고자 한 것일까.

 

2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함께 도()로 나아갈 수는 없고, 함께 도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도 입장을 같이 할 수 없으며, 입장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른 판단을 함께 할 수는 없다.”

나와 타인이 다름을 인정하자. 어쩜 이런 다름 덕분에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다.

 

10편 향당

4. 궁궐의 큰 문에 들어가실 적에도 몸을 굽히시어, 마치 문이 작아 들어가기에 넉넉하지 못한 듯이 하셨다. 문 한가운데에는 서 있지 않으셨고 다니실 때에는 문지방을 밟지 않으셨다. (후략)

문지방을 밟지 않는 것이 어떤 이유인지 나와 있지 않다. 어른들이 문지방 위에 서면 내려서라고 하셨다. 이유를 말하지 않아 알 수가 없음에도 그냥 묻지도 않고 시키는 대로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문지방에 신령이 깃들어 있어서 문지방을 밟는 것이 그 신령을 모욕하는 것으로 여긴 듯하다. 향당편에는 공자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아마 처음 10편이었으니 마지막을 이런 내용으로 마무리 한 건가보다.

 

12. 마굿간에 불이 났었는데, 공자께서 퇴근하시어 사람이 다쳤느냐?”라고 물으시고는,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공자의 평소 사람을 어찌 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평소에 하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집에서 무언가를 깨면 깼다고 야단치지 않았다. 다치지는 않았냐고 물었다. 그래서인지 아들도 탓하는 말투가 아닌 걱정하는 말투로 묻는다.

 

11편 선진

11. 계로가 귀신 섬기는 일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감히 죽음에 대하여 여쭙겠습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삶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논어]가 맘에 든 것 중 하나는 현재의 삶에 충실한 것이다. 공자가 귀신이라는 것을 어떻게 보았는지 알 수 없다. 공자가 하지 않은 것 네 가지 중 하나가 귀신에 관해 말하는 것이었다.

 

15. 자공이 여쭈었다. “(자장)와 상(자하)은 누가 더 현명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는 지나치고 상은 부족하지.”

그러면 사가 낫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마찬가지이네.”

 

21. 자로가 좋은 말을 들으면 곧 실천해야 합니까?” 하고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형이 계시는데 어찌 듣는 대로 곧 행하겠느냐?‘

염유가 좋은 말을 들으면 곧 실천해야 합니까?“ 하고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들으면 곧 행해야 한다.“

공서화가 여쭈었다. ”유가 들으면 곧 실천해야 합니까?‘라고 여쭈었을 때는 선생님께서 부형이 계신다라고 하셨는데, 구가 들으면 곧 실천해야 합니까?‘하고 여쭈었을 때는 들으면 곧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의아하여 감히 여쭙고자 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구는 소극적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한 것이고, 유는 남을 이기려 하기 때문에 물러서도록 한 것이다.“

같은 질문에 대해 질문자에 따라 다른 답을 주는 것을 보며 현명함과 유연성을 엿볼 수 있다. 제자들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좋은 스승이다.

 

12편 안연

5. 사마우가 근심스럽게 말하였다. “남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저만이 홀로 없습니다.”

자하가 말하였다. “제가 듣건대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려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군자가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 순간도 소홀함이 없이 노력하며, 남에게 공손하고 예의를 지킨다면, 온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형제입니다. 군자가 어찌 형제 없음을 근심하겠습니까?”

 

7. 자공이 정치에 대해서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식량을 풍조하게 하는 것, 군비를 넉넉히 하는 것, 백성들이 믿도록 하는 것이다.”

자공이 말하였다. “어쩔 수 없어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군대를 버린다.”

자공이 여쭈었다. “어쩔 수 없어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식량을 버린다. 예로부터 모두에게 죽음은 있는 것이지만,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는 존립하지 못한다.” (135)

2014421일자 뉴스1 신문기사 발췌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서 10여명의 학생들을 구하다 숨진 '영웅' () 최혜정 교사의 당숙 형규씨가 경향신문에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우리는 하루 세끼 먹는 나라보단 하루 두 끼를 먹어도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며 관계당국의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2014년 논어 중간고사 준비를 하던 중에 신문기사를 보게 되었다. 세월호는 우리에게 많은 아픔과 함께 많은 고민과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탄핵이 가능했던 것도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며 느꼈던 믿음에 대한 배신이었다.

 

[강의]에서 저자는 신은 그 글자의 구성에서 보듯이 +의 회의로서 그 말을 신뢰함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정치란 신뢰이며 신뢰를 중심으로 한 역량의 결집이라는 사실입니다.”

 

18. 계강자가 도둑이 많은 것을 걱정하여 공자에게 조언을 구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선생께서 욕심을 가지지 않으시면, 비록 상을 준다고 하더라도 백성들은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너나 잘하세요.’를 점잖게 말한 거다. 맞는 말이다. 임금이 정치를 잘 못하면 살기 어려워 도둑이 많아진다. 홍길동 같은 의적도 등장한다.

 

22. 번지가 인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강의]의 저자는 인에 대한 공자의 답변은 여러 가지입니다. 묻는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른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답변에 공통되는 점이 타인과의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 모든 지식은 사람과 관계되지 않은 것이 없는 법입니다. ...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애정 없는 타자와 관계없는 대상에 대하여 알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23. 자공이 벗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된 마음으로 조언을 해주고 잘 인도하되, 그래도 할 수 없다면 그만둘 일이지, 스스로 욕을 보지는 말아라.”

부모와의 관계는 혈연관계이므로 끊을 수 없는 것이지만, 친구나 임금과의 관계는 도의로 맺어지는 관계이므로 도의에 맞지 않으면 이미 친구나 임금이 아니라는 것이 유가의 입장이다.

 

13편 자로

18. 섭공이 공자에게 말하였다. “우리 마을에는 몸가짐이 정직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그 일을 증언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숨겨 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서 숨겨 주지만, 정직함은 바로 그러는 가운데 있습니다.”

이 대화 때문에 법가의 비난을 받았다. 법가는 통일왕조를 위해 강력한 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사람들과 화합하지만 부화뇌동하지는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지만 사람들과 화합하지는 못한다.” (150)

 

24. 자공이 여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정도로는 아직 안 된다.”

마을 사라들이 모두 그를 미워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정도로는 아직 안 된다. 마을의 선한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고, 그 마을의 선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는 것만은 못한 것이다.” (151)

[강의]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논어]의 이 대화가 양극단을 좋지 않다고 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양극단은 실제로는 없는 것입니다. ... 마을의 선한 사람과 불선한 사람이라는 관점은 비록 오늘날의 계급적 관점은 아니라 하더라도 사회적 관점의 일환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 고대 사상을 오늘의 시제에서 평가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것이 당시의 사회적 조건에서 어떠한 의미로 진술된 것인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14편 헌문

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비로서 안락하게 살려는 생각을 품고 있다면, 선비가 되기에 부족하다.” (154)

진정한 도의 실현을 위해서는 안락함이나 부귀영화는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1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는 어렵지만, 부자이면서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 (157)

 

23. 자로가 임금 섬기는 데 대해서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속이지 말고, 임금의 앞에서 바른 말을 하라.” (161)

바른 말을 하는 신하를 둔 임금은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다.

 

2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 했는데,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한다.” (162)

그 유명한 위기지학, 위인지학이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한다는 뜻이다.

3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능력이 없음을 걱정하라.” (163)

 

15편 위령공

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더불어 말을 해야 할 때 더불어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하지 않아야 할 때 말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않고 말을 잃지도 않는다.

 

1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멀리 내다보며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게 된다.”

 

1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에 대해서는 스스로 엄중하게 책임을 추궁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가볍게 추궁하면, 원망을 멀리 할 수 있다.”

보통 반대로 한다. 자신에게 후하고 남에겐 박하게 한다.

 

23. 자공이 여쭈었다. “한 마디 말로 평생토록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서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175)

라인 15장에서도 나온 내용이다. 뒤에는 앞부분에 나온 내용이 반복되는 것이 보인다. 아마 나중에 추가해서 넣다보니 중복된 것도 있는 것이다.

 

2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잘못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잘못이다.” (176)

 

16편 계씨

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좋아하면 유익한 것이 세 가지가 있고 좋아하면 해로운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예악의 절도를 따르기를 좋아하고, 남의 좋은 점을 말하기를 좋아하고, 현명한 벗을 많이 사귀기를 좋아하면 유익하다. 교만하게 즐기기를 좋아하고, 방탕하게 노는 데 빠지기를 좋아하고, 주색에 싸여 음란하게 놀기를 좋아하면 해롭다.” (183)

유익한 것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잘 해도 좋은 삶이 되겠다.

 

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은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 다음이며, 곤란한 지경에 처하여 배우는 사람은 또 그 다음이고, 곤란한 지경에 처하여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백성들 중에서도 최하이다.” (184)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은 아니고 배워서 아는 사람 정도 될까.

 

12. 제나라 경공은 말을 사천 필이나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죽는 날에는 백성들 중에 그의 덕에 대해 칭찬하는 사람이 없었다.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 아래서 굶어 죽었지만,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그들을 칭송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인가? (185)

백이와 숙제는 여러 번 인용되었다. 이 문구는 누구의 말이라고 나와 있지 않아 잘못 끼어 든 말이라는 논란도 많다.

 

17편 양화

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타고난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성에 따라 서로 멀어지게 된다.” (189)

순자가 유가에선 이단이라고 했지만 이 구절의 내용과 같다. 순자는 그렇기 때문에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아, 너는 여섯 가지 덕목과 그것들을 가리는 여섯 가지 폐단에 대해 들어보았느냐?

자로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앉거라. 내가 너에게 말해 주겠다. 인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리석게 되는 것이다. 지혜로움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분수를 모르게 되는 것이다. 신의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남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곧은 것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박절하게 되는 것이다. 용기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질서를 어지럽히게 되는 것이다. 굳센 것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좌충우돌하게 되는 것이다. (191)

결국 배우기를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좋아하던 배우지 않으면 폐단이 된다. 그러니 배움을 게을리 하지 말라.

 

1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길에서 듣고서는 그것을 그대로 길에서 말하는 것은 덕을 버리는 것이다.” (193)

남에게 들은 이야기를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지도 않고 그대로 남들에게 떠들어대며 아는 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생가하고 판단은 한 아는 척 떠든 적은 많다.

 

2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가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197)

요즘 이런 말을 했다간 아무리 공자라도 악성댓글 폭탄을 맞을 거다. 갑자기 공자의 부인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18편 미자

4. 제나라 사람이 여자 가무단을 보내 오자, 계환자가 이를 받았다. 이들과 즐기느라 사흘이나 조회를 열지 않자, 공자께서는 노나라를 떠나셨다. (199)

공자가 십여 년을 떠돌았던 것은 각 나라 왕이나 실권자들이 반기지 않아서도 있지만 공자가 보기에 아니라고 여겨져서 스스로 떠난 경우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글귀다. 춘추시대에 서로 패권을 장악하고자 했던 제후들이 어떻게 군자일 수 있으며, 인을 행할 수 있었을까. 공자가 이상주의자란 말을 듣는 이유를 알겠다.

 

10. 주공이 노공에게 말하였다. “군자는 친족을 소홀히 하지 않고, 대신들로 하여금 써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게 하지 않으며, 오래도록 함께 일해 온 사람은 큰 잘못이 않는 한 버리지 않으며, 한 사람에게 모든 능력이 갖추어져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203)

군자는 각각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 사람을 쓸 뿐이지, 한 사람을 신뢰한다고 하여 중책을 맡기고는 그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당연한 것인데도 너무 한 사람에게만 과한 업무를 맡기는 경우가 있다. 그럼 그 사람은 자만에 빠져 잘못된 일을 한다.

 

19편 자장

5. 자하가 말하였다. “날마다 자신이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고, 달마다 자신이 할 수 있던 것을 잊지 않는다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205)

위 글귀대로라면 나는 그럼 배우기를 좋아하는 거다. 공자 자신이 배우기를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배움을 계속하는 것은 자고이래로 중요하다.

 

9. 자하가 말하였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변화가 있다. 그를 멀리서 바라보면 위엄이 있고, 가까이서 대해 보면 온화하며, 그의 말을 들어보면 옳고 그름이 분명하다.“ (206)

이런 사람이 있다면 강직하면서 유연한 사람일 거다. 19편은 공자의 말은 없다. 나중에 덧붙여진 것이 확실하다.

 

13. 자하가 말하였다. “벼슬하면서 여유가 있으면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하면서 여유가 있으면 벼슬을 한다.” (207)

같이 해야 한다는 거다. 배우면서 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일국의 왕이나 대통령이라도 배움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24. 숙손무숙이 공자를 헐뜯자, (이를 전해 들은) 자공이 말하였다. “그래야 소용없다. 선생님은 헐뜯을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의 현명함이란 언덕과 같은 것이라서 그래도 넘어갈 수 있지만, 선생님은 해. 달과 같으셔서 넘어갈 수가 없다. 사람들이 스스로 관계를 끊고자 한다 해도, 그것이 해.달에게 무슨 손상이 되겠는가? 다만 자신의 분수 모름을 드러낼 뿐이다.” (211)

공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해와 달처럼 가히 인간의 범주에선 논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긴다. 소크라테스나 공자 모두 제자들을 잘 둔 것인지, 스승이 대단하니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받아 대단해진 건지 알 수 없다. 아마 둘 다일 수도 있겠다.

 

20편 요왈

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세상에 당당히 나설 수 없으며,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하면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가 없다.” (215)

마지막 편이 논어의 집약판이다. 여기서 나오는 이야기가 핵심이다.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특별한 구성이 있는 목차가 아니다. 1편 학이편은 학이시습지로 시작한 구절의 앞을 따서 지은 것이다.

공자 나이 순서대로 목차를 정했으면 어떨까 한다. 아니면 학습편, 효도편 이런 식으로 주제별로 묶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제자들 이름으로 하나씩 해도 좋았을 것이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공자의 제자들이 엮은 책이니 공자의 계보를 넣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이후 사상가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도록 중국 사상사를 연표와 같이 첨부하면 좋겠다.

 

10편 이후는 나중에 추가되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중복된 것도 있고 공자보다 제자의 말도 많다. 뒷부분은 정리가 필요하다.

 

3. 이 책의 장점

유가의 사상과 공자를 잘 알 수 있다. 대화체이고 문구가 짧아 읽기 쉽다. 내용도 지금 시대에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성찰을 할 수 있다.

나이를 달리해서 읽으며 안보이던 글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초등고전읽기혁명]의 저자인 초등교사가 학교에서 고전읽기를 하고 있다면서 초등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고전이 [논어]라고 해서 놀란 기억이 난다. [논어]의 글귀를 통해 각자 나름의 수준에서 받아들인다는 것이겠지.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이 책의 저자라고 여기며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의 옮긴이라면으로 바꾸어 생각해보았다.

옮긴이라고 해도 한문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여 옮길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옮긴이라고 여길 수도 없다. 이 책은 또한 저자 자신이 쓴 책이 아니다. 제자들이 쓴 것이다.

그래서 그냥 저자라고 생각하고 다시 고민했다.

 

단순 대화로만 엮어 놓아 상황이나 맥락을 알 수가 없다. 내가 저자라면 앞에 설명을 넣겠다. “언제 누가 이런 상황에서 공자께 물었다.” 이런 내용이 없으니 후대에 해설서를 쓰는 사람들도 상황을 예상하고 해설을 한다. 그러다보니 서로 다른 해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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