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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1일 23시 46분 등록

논어 세상의 모든 인생을 위한 고전

 

무인과 무녀의 아들, 仁으로 天下를 다스리다

 

나의 부모를 말한다

나의 아버지 숙량흘은 은나라 무인이었다. 아버지는 시씨(施氏) 딸과 결혼하여 딸만 아홉을 두었기에 첩을 들여 아들 맹피(孟皮)를 낳았으나 다리가 성치 않았다 한다. 하여 당시 16세였던 어머니 안징재와 야합(野合)하여 나를 낳았다. 어머니가 이구산(尼丘山)에 치성을 드려 나를 낳았기에 나의 어릴 적 이름은 공구’(孔丘)였다. 태어날 당시 머리가 움푹 들어가서 자를 중니(仲尼)라고 하였다 한다.

 

나의 생김새를 말한다

앞서 나의 아버지는 武人이라 하였다. 내 비록 仁과 禮를 널리 알리는 유약한 이미지일 지 모르나 사실 나의 외모는 무인의 그것이라 할 만하다. 키는 9 6(大尺은 22.5cm 기준으로 2m 16cm, 小尺 18cm 기준으로 173cm)으로 어릴 적부터 기골이 장대하였다. 나와 동시대인인 武人 양호(陽虎)는 일찍이 광()이라는 곳에서 포악한 정치를 펼쳐 백성들의 원망을 샀다. 나의 모습이 양호와 비슷하여 마침 내가 천하를 주유하던 시절, 광 지방을 지나갈 때 그곳 사람들이 나를 양호로 오해하고 주변을 포위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던 적이 있다[i]. 이러한 일화로 미루어 나의 생김새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나의 태생과 외모는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나의 성장기를 말한다

사생아로 태어난 데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나의 어린 시절이 가난함과 외로움 그 자체였을 것임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신분은 사() 계급으로 위로는 귀족과 대부, 아래로는 서민의 중간에 있어 벼슬살이를 하지 않으면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생계를 위해 17세 때부터 창고를 관장하는 위리(委吏)로 일하였으며, 19세엔 송나라 계관씨의 딸과 결혼을 하고 20세에 아들 리()를 얻었다. 21세에는 승전리乘田吏가 되었는데, 나라의 가축을 기르는 낮은 관직이었다. 24세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렇듯 나는 어려서부터 미천하여 자질구레한 일을 두루 잘할 수밖에 없었고, 공부만 착실히 할 수 있는 가정환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배우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였다. 일찍부터 문자를 터득하여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게 되었던 것이다. 주경야독으로 공부하여 나의 학문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내 나이 서른이 지나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자식들을 보내 배우게 하였다. 나 역시 배움의 어려움을 겪었으므로 배우겠다는 이가 있으면 육포 한 묶음의 예만 다하면 제자로 받았다. 날로 제자는 늘어갔으나 나의 마음 한 구석은 허전하였다.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었고 그 꿈을 노나라에서 실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찰나 같은 황금시대를 말한다

벼슬 운이 없는 나에게도 찰나 같은 황금시대가 있었다. 나는 51세에 노나라의 중도재(中都宰-중도라는 지역을 다스리는 관리로 오늘날의 도지사나 시장)라는 벼슬에 올랐다. 내가 중도재가 된 지 1년 만에 다른 고을이 모두 본 받을 정도로 질서가 잡히고 예의와 윤리의 기틀이 잡혔다. 52세에는 노나라 정공과 제나라 경공이 협곡에서 회합을 할 때, 두 나라 사이에 외교상의 공을 세움으로써 그 이듬 해인 53세 때 토지와 민사를 맡아보는 사공(司空)으로 승진하였다. 54세 때는 법을 다스리는 사구(司寇-오늘 날의 대법원장 겸 법무장관에 해당)에 오르게 되는 등 나의 50대는 지천명과 더불어 이제야 나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는가 싶었다.

 

사구에까지 오르자 자신감과 탄력을 받은 나는, 노나라를 어지럽히는 삼환씨(계손씨(季孫氏), 숙손씨(叔孫氏), 맹손씨(孟孫氏) )의 세력 근거지인 세 도성을 허물기로 하였다. 이는 임금의 권위와 실권을 회복시키고자 한 조처였다. 세 도성 중 한 도성은 허물지 못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왕권은 크게 강화되었다. 이윽고 55세에는 재상의 일까지 겸하게 되는데 재상에 오르자마자 국정농단을 일삼는 난신의 대부 소정묘를 잡아 사형에 처하였다. 이 즈음 되자 이웃 제나라에서는 나로 인해 노나라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노래와 춤에 능한 미녀 80명과 말 120필을 노나라에 보냈는데 어리석은 노정공과 계환자는 제나라로부터 온 이 트로이의 목마에 혹하여 사흘이나 조회를 열지 않았다. 나는 너무나 실망하여 이들과 큰 일을 도모할 수 없음을 깨닫고 벼슬을 버리고 노나라를 떠난다. 55세에 시작된 나의 주유천하는 이렇게 시작된다.

 

나의 주유천하를 말한다-나의 이상을 실현할 나라와 임금을 찾아서
내가 꿈꾸던 세상이 무엇이었냐고? 나는 예()와 덕()과 문()이 지배하는 사회를 구현하고 싶었다. 내가 처한 춘추시대는 난세 중의 난세이다 못해 가히 말세라 할 수 있었다. 나라 안에서도 나라 사이에서도 힘의 논리가 횡행하여 온갖 전쟁과 난리가 연이어 일어나 민중들의 삶은 피폐하기가 그지 없었다. 仁의 실천, 즉 백성을 사랑하라는 것이 나의 임무라 생각했기에 그저 자연에 파묻혀 은자의 삶을 살 수는 없었다. 현실정치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모험에의 부름에 응답하고 이른 바 나의 주유천하가 시작된 것이다. 나의 이상을 실현할 나라와 임금을 찾아서 14년을 제자들과 위·송·조·정·진·태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였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현실정치의 벽은 나의 이상과 꿈을 실현하기엔 너무나 높았던 것이다. 내가 仁禮를 이야기 할 때 그들은 成敗를 이야기하였다. 14년을 떠돌며 많은 좌절과 시련, 오해와 모욕을 받았다. 그렇다, 나는 그것이 뻔히 안될 것을 알면서도 하려는 자(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였다. 결국 나는 실패했다. 하지만 나의 도덕정치철학은 당대에는 인정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시대를 넘어 동양의 역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으니 지금이라도 기쁠 뿐이다.

 

영웅의 귀환, 나의 노년을 말한다

55세에 떠난 노나라를 14년이 지난 69세에 돌아왔다. 지금의 젊은이들이여, 과연 55세에 그대들은 이상의 실현을 위해 떠날 수 있는가. 14년의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드디어 정치를 마음에서 접고 교육, 저술, 편집에 몰두하였다. 나의 이상이 꼭 당대에만 구현될 필요는 없는 것이거늘! 그리하여 후세 사람들의 교육을 위해 육경(六經)을 편정(編定)하였다(여기에서 육경은 역경(易經),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경(禮經), 악경(樂經), 춘추(春秋)를 말한다).

 

나의 사후 후대의 유학자들은 나를 사농공상의 신분질서를 옹호한 보수주의자로 덧칠하였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독서를 통해 학문을 수양한 사람, 즉 군자(君子)라면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주장한 혁명가였음을 알아주기 바란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중국 최초의 사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육예(六藝) - (), (), (), (), (), () - 를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가르쳤다. 수업료는 육포 한 묶음이면 충분했다. 배움에 있어서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은 유교무류(有敎無類)를 지향한 까닭이다. 교육자와 정치철학자로서의 나의 인생에 대해 후회는 없다. 그저 나의 가르침이 2 5백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대의 마음 속에 새겨진다면 이 역시 기쁘지 아니한가. 無道한 사회일수록 仁을 마음에 새기도록 하여라. 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서문

 

5 그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현실에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공자의 입지는 결국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이 만든 패권주의에 정면으로 맞서는 仁義의 휴머니즘으로 이어졌다.

 

6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지만 공자는 결코 굴하지 않았다. 그의 자부심은 다른 데서 온 게 아니라 온고지신’, 즉 옛 선현들의 문헌을 보며 그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다가올 미래를 인지해 나간 데서 온 것이었다.

그래도 신경이 쓰였는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라는 말을 거듭하며 추스른 모양이다.

 

6 어려서부터 논어는 늘 즐겨 공부하던 책이었다.

김원중 교수님도 인물인 듯. 어리다는 게 몇 살 때부터였을까?

 

6 다들 그렇듯이 대학 때는 주희의 논어집주를 외듯이 읽었고

다들 그렇듯이?? 다들 그렇듯이??? 다들 그렇듯이!! 외듯이 읽었고!!! 가슴을 후빈다.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난

 

8 원전이 갖는 철학적 함축과 촌철살인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9 2000여 년의 해석의 역사

해석의 역사 중에 대부분이 字句에 매달리고 지엽적으로 해석하는 소모적 시간도 많았을 거 같다.

 

9 지난 20여 년간 나는 늘 새벽 3시에 일어나 고전을 번역하고 연구해왔다. 주말과 휴일도 예외 없이 홀로 고전과 씨름해온 일은 옛 정신을 대면하는 일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새벽에 깨어나 과거의 영혼을 대면하는 사람들이 이다지도 많은데 나의 새벽은

 

해제

 

17 논어는 대부분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고 글자 수는 약 1 2천여 자로 노자의 도덕경이 5천여 자임을 감안하면 두 배 이상 되는 분량이다.

주역은 약 2 4천자. 남편은 주역을 다 외웠는데새삼 대단해 보임. 또는 미쳤음.

 

18 우리는 논어에서 철저히 비주류로 살아 간 실패한 정치인이 어떻게 위대한 사상가의 자세를 함께 견지하는지를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실패한 정치인과 위대한 사상가의 대비란.

 

20 공자의 정치적 이상은 춘추 시대라는 상황에 들어맞지 않아, 현실화 되지 못했다.

난세에 영웅난다고, 춘추라는 난세에 위대한 사상이 나온 모양. 비록 현실화는 되지 못했더라도.

 

22 노자와 만나서 충고를 들었던 공자는 고향 곡부로 돌아가 제자들을 가르치기 전의 공자이다.

 

22 군자는 때를 만나면 관리가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다북쑥처럼 떠돌이 신세가 되오.

 

25 공자는 만 13년간 긴 유랑생활을 보내고 와서 출판과 교육에 전념했다.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육경을 편찬했다.

공자의 파랑새는 정치가 아니라 교육이었던 것. 그것을 알기 위해 13년의 유랑생활이 필요했던가.

 

25 계층적 소명의식

 

28 욱한 성격에 행동이 앞서는 중유는 심하게 나무랄 때도 많았다.

 

28 공자는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만났기 때문에 논어에는 제자들 외에도 등장인물이 다양하다. 제후들은 공자를 등용하지 않았지만, 형식적으로라도 그에게 많은 정치 자문을 받았다.

정치자문을 그냥 받진 않았겠고 어느 정도의 사례는 물론 있었겠지? 컨설턴트처럼 나름 그 당시의 지식 유목민이자 프리랜서.

 

29 초나라의 미치광이 접여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29 누구도 공자가 추구한 가치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다만 누구도 시급한 것으로 추구하지 않을 뿐이다.

 

1편 학이

36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때때로 익힌다는 것, 뒤늦게 그 가치를 깨닫고 있는 매일의 힘’.

 

36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37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자왈: "교언령색, 선의인.")

()은 드물다()는 뜻인선의(仁鮮矣)를 거꾸로 한 것. 자로편(子路篇)에서는 강의목눌근인(剛毅木訥近仁)이라고 함. 옹야편(擁也篇)에서는 문질빈빈연후군자(文質彬彬然後君子)라 하였다. à 이렇게 쓰다가 내가 왜 이러고 있지?하고 정신차림. 자구해석 할 필요 없고 문법 따질 필요도 없는데.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고 다시 읽기로 함.

 

38 나는 날마다 세 번 나 자신을 반성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도모하는 데 진심을 다하지 않았는가? 벗들과 사귀면서 믿음이 없었는가?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
증자왈: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

 

41 자공, 공문의 제 2기 제자로 공문십철의 한 사람이고, 언어에 뛰어나 외교 관계 등 대외 협상에 능했다. 공자 사후 자공의 명망이 가장 높았으며, 공자가 성인이 된 데에도 그의 역할이 컸다. 말하자면 탁월한 외교가 자공은 늘 공자를 모시고 제후국을 주유했으며 공자의 마음을 잘 읽는 제자였다. 그래서 자공이 이런 질문을 받았다. 자공은 공자의 제자 중에서는 당대에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거부가 되었는데, 사두마차를 타고 기마 행렬을 거느리며 비단을 폐백으로 들고 제후들을 찾아 다녔으므로 가는 곳마다 왕들이 몸소 뜰까지 내려와 대등한 예로 맞이했다. 그런 그도 스승에게는 말만 앞세운다는 핀잔을 자주 들었다.

 

43 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으로, 공자에게는 이상적인 지배 질서이자 한 나라의 근본 원리였다. 사마천은 사기 예서 첫머리에서 예란,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망이 있어,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면 원망이 없을 수 없으며, 원망하는데도 절제가 없으면 다투게 되는데, 다투게 되면 혼란스럽게 된다. 선왕은 그처럼 어지러워지는 것을 싫어했으므로 예의를 제정하여 사람들의 욕망을 길러주고,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욕구로 하여금 사물에 대하여 고갈됨이 없게 하고, 사물은 욕망에서 굴복됨이 없도록 하여, 두 가지가 서로 기대어 성장하는 것, 이것이 예가 일어난 바이다라고 하여 그 의미를 정확히 부여했다.

 

44 군자는 먹음에 배부름을 추구하지 않고, 거처함에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일을 처리함에 신속하고 말하는 데는 신중하며, 도가 있는 곳에 나아가 스스로를 바로 잡는다. (그렇다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2편 위정

 

47 그가 13년여를 주유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이상론을 현실에 곧바로 적응하려 한 순진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반문해본다.

天下에 道가 없으니까 내가 나서야지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천하주유는 그 시작은 순진함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으나 무려 13여 년이라는 세월을 주유할 수 있었던 동력은 강한 신념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고집, 오기, 미련, 집착 등도 있었던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주유할 수 있었던 체력, 경제력과 더불어 자기 확신은 부러운 면이긴 하다.

 

50 나는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이 되어서는 자립했으며, 마흔이 되어서는 미혹되지 않았고, 쉰이 되어서는 천명을 알게 되었으며, 예순이 되어서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이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10년 단위로 이렇게 자신 인생을 간단명료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니. 나는 딱히 이야기 할 것이 없으나 그래도 적어 본다면, 나의 10대는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었고, 20대도 별 생각 없이 살았으며, 30대 초중반은 경제적 독립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았던 체력과 경제력의 균형을 이룬 전성기였다.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은 결혼과 출산을 통해 가족을 일굼으로써 자유는 줄었으나 안정을 찾은 시기이기도 했다. 또한 나와 가족을 넘어 지역사회에도 나눔과 베품을 실천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렇게 10년을 단위로 되돌아 보자니 배움이 한참이어야 할 때 열심히 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갱년기를 갱신기로 여기고 남은 40대를 다시 배움과 수련의 시기로 삼아 50대를 비롯한 삶의 마디를 준비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그리하여 마지막 숨을 뱉을 때 40대부터의 인생을 표현함에 있어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자. 공자가 친구인 원영더러 표현한 無述焉(무술언: 달리 거론할 것이 없고)이 되지 않도록.

 

50 공자는 노나라에서 알려진 뒤 천하를 주유했다. 34세에 그는 주의 도읍지인 낙양에 도착하여 왕실도서관 하급관리로 있던 노자에게 예를 물었다가 훈계를 들었으며 이듬해에는 제나라고 갔지만 제나라 경공은 자리를 마련해주기 힘들다고 말했다. 물론 노자와 공자의 만남에 대해 이론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공자는 잠깐 동안 노나라를 떠났고, 노나라로 돌아온 뒤에는 맡겨진 관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미혹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주변의 이런 상황에 흔들림 없이 학문에 전념했다는 사실이다. 공자가 열국을 주유한 시기는 대략 35세부터 50세 사이일 것으로 추정되니 그 중간이 바로 마흔이다.

예나 지금이나 마흔은 흔들리기 쉬운 시기인가보다. 마흔에 이름을 날리지 않으면 끝이고, 마흔에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끝이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공자 스스로도 마흔에 마음이 많이 힘들었나.

 

50 천명이란 사물에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이치 혹은 하늘이 부여한 사명으로 해석한 주희의 설이 타당하다. 말하자면, 자기의 역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하도록 운명 지어졌는지 등을 아는 것이며 공자가 51세에 관직에 나간 것과 관련되는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나도 지천명 하고 싶네. 무엇을 하도록 운명 지어졌는지를 알고 싶다. 그래서 올 한 해는(하반기) 나에 대해 알아보는 것으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고자 한다. 이 핑계로 혼자 여행을 한번 떠나야겠다.

 

50 55세에서 68세까지 공자는 중국 북쪽의 나라들을 돌아다녔고 곤경과 좌절의 나날을 보내며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는 길에서 만난 초나라 광인 접여, 장저, 걸익 등이 빈정대고 풍자하는 말을 모두 귀담아 들었다. 심지어는 정나라에 이르렀을 때 성의 문지기가 공자의 외관을 보고 집 잃은 개와 같다고 하는 말마저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3편 팔일

 

65 예는 사치스럽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고, 상례는 일사천리로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슬퍼하는 것이 낫다.

 

77 여러분은 (어찌 관직이) 없는 것을 걱정합니까?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으므로 하늘은 선생님을 (세상의) 목탁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공자의 주유 중에 공자에게는 많은 이들의 메시지가 있었구나. 덕이 쇠한 봉황(접여), 그것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하려는 자(문지기), 상가집 개(또 문지기) 등의 소리를 듣던 와중에 세상의 목탁이라는 비교적 공자의 천명에 가까운 표현을 듣게 된다.

 

4편 이인

 

82 인하지 못한 사람은 오랫동안 가난에 머물지 못하고, 오랫동안 즐거움에 머물지도 못한다. 인한 사람은 인 자체를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 자체를 이롭게 여긴다.

주는 게 남는 장사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면 마음이야 편하긴 한데 가끔은 얄미운 사람들이 있어 작은 것에 利를 따지게 된다. 나는 군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사람 봐가며 仁하고 싶은데, 그러면 이미 仁이 아닌가.

 

85 군자는 천하에 대하여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없고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없어서, 의로움만을 함께 할 뿐이다.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
자왈: "군자지어천하야, 무적야, 무막야, 의지여비.")

이 점에선 나도 군자인데? 꼭 해내고 말겠다는 것도 없고 절대 하지 말자는 것도 없다. 다만 이런 심드렁함이 늙고 있다는 표시인가 싶어 애써 열심히 하고자 할 뿐이다. 1월부터 시작한 필사와 4월부터 시작한 변경연 과정이 그러하다.

 

85 공자는 절대적인 긍정을 취하거나 꼭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일 없이 시대의 추이를 봐가면서 임기응변하며 살아간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원칙주의자인 거 같지는 않고 때로는 화도 내고 때로는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없으며 마뜩치 않은 자도 필요하면 만났던 것도 같고, 그로 인한 딴지에 변명도 하는 등 인간미가 있어서 친근하긴 하더라.

 

87 지위가 없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능력을 근심하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알아줄 만하도록 되는 것을 추구하라.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자왈: "불환무위, 환소이립; 불환막기지, 구위가지야.")

타인의 시선과 인정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다행히 나는 타인의 시선엔 그닥 연연해하지 않는 편. 다만 나에게 어울리는 위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열매를 맺고 싶다는 욕망은 있다.

 

89 부모님이 살아 계시면 멀리 놀러 가지 않고, 놀러 가면 반드시 (가는) (방향)이 있어야만 한다.

子曰: "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 (자왈: "부모재, 불원유, 유필유방.")

세계여행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아빠가 병 중이라 여행 중 고국으로 돌아가서 간병을 했다. 아마 본인도 답답했을 거고, 그걸 지켜보는 아빠도 안타까웠는지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아빠가 그냥 다시 여행 떠나라고 했단다. 그렇게 여행을 떠나고 결국 아빠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는데. 나의 정서로는 꼭 그래야 했나 싶지만 어떻게 보면 딸을 잘 아는 아빠가 그렇게 딸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독려했고 딸도 아빠의 뜻을 따른 것. 개인의 과 부모에 대한 라는 측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 일이었다.

 

89 부모의 나이는 알고 있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오래 사시는 것에)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노쇠하시는 것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子曰: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자왈: "부모지년, 불가불지야. 일즉이희, 일즉이구.")

나이라는 게 숫자에만 불과한 게 아닌 게 맥락 상 품고 있는 의미가 많은 까닭이다. 아이들의 나이를 보면 커가는 게 대견한반면, 그만큼 나는 나이 들고 있다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이 생기고, 부모님의 연세를 보면 계속 연세를 잡수고 있는 상황이 죽음으로의 카운트다운이라는 생각이 들어 두려운 마음이 든다.

 

90 군자는 말에서는 어눌하고 행동에서는 민첩하려고 한다.

子曰: "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자왈: "군자욕눌어언이민어행.")

 

90 덕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子曰: "德不孤, 必有隣." (자왈: "덕불고, 필유린.")

요새는 덕불고, 필유린이 아니라 부불고, 필유린(富不孤, 必有隣)이 아닌가 싶긴 한데.

 

90 군주를 섬기는 데 (간언을) 일삼으면 곧 모욕을 당하게 되고, 친구에게 (간언을) 일삼으면 곧 소원해 질 것이다.

子游曰: "事君數, 斯辱矣; 朋友數, 斯疏矣." (자유왈: "사군삭, 사욕의; 붕우삭, 사소의.")

조언 했다고 소원해질 친구라면 관계가 탄탄하지 않거나 조언에 진정성이 없는 경우일 거고. 다만 관계가 시작단계인 경우의 지인이라면 조언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일단은 그냥 칭찬하거나 동의해주거나 듣고 싶은 이야기 해주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컨디션 좋지 않을 때 직설적으로 말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내가 고쳐야 할 점.

 

91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신이 할 말과 안 할 말을 잘 가려서 현명한 처세를 하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나는 말과 행동이 앞서는 편이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현명하게. 그러자면 말을 줄이는 게 좋다. 말이 많아지면 말썽도 많아진다.

 

5편 공야장

 

94 특히 자로를 들볶았으며 자공에 대해서도 늘 비판이 스며 있었다. 재여가 낮잠을 자자,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다는 식으로 화를 내기도 했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다는 표현도 참 대단하다. 요새로 치면 오디션 프로그램 독설담당. 자로를 들볶을 땐 내가 볶이는 것 같더라. 공자 제자들 중 나는 자로랑 닮아 있는 것 같다.

 

104 안영,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긴장을 풀지 않았으며 30년간 단벌로 생활할 만큼 검소했고 밥상에 고기반찬을 두 가지 이상 놓지 못하게 하고 첩에게는 비단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30년 간 단벌로 살았던 사람이 첩은 두어야 했는지, 기왕 첩을 두었다면 비단옷은 왜 못입게 했는지. 당시의 재상이었으니 지금의 잣대로 딴지 걸 건 아니다만 뭔가 좀 매끄럽진 않다.

 

106 사실 공자는 계문자가 이해관계에 너무 밝았기 때문에 그 계산의 정도가 줄어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세상 물정에 깊이 빠져 들어 사욕을 채우기 위한 생각은 적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108 참고로 사마천도 사기 태사공자서에서 옛날 서백(주나라 문왕)유리에 갇혀 있었으므로 주역을 풀이했고,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곤란을 겪었기 때문에 춘추를 지었으며, 굴원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이소를 지었고, 좌구명은 눈이 멀어 국어를 남겼다고고 했다.

갇혀 있고, 곤란 겪고, 쫓겨 나고, 눈이 멀어야 책이 나오려나. 절박함과 간절함을 찾아보자.

 

110 노인을 편안하게 해주고, 벗들에게는 믿음을 주고, 젊은이들은 품어주고자 한다.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나는 지금 노인을 편안하게 해드리지 못하고 있다. 노력하자. 위로는 어르신들을 아래로는 아이들을, 좌우로는 남편과 친구들, 지인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품어주자.

 

6편 옹야

 

115 공자는 지식 습득보다는 도덕적인 면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자세 등을 호학의 기본 정신으로 보고 있다.

 

119 민자건, 저는 사양하겠다는 뜻을 잘 전해주십시오. 만약 다시 저를 찾아온다면 저는 분명히 문수가로 달아나 있을 것입니다.

어디로 달아날 지 이렇게 분명히 알려줄 필요가. 거기로 찾으러 오라는 건지.

 

120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중도에 그만둔다. 지금 너는 (미리) 선을 긋고 (한계를 짓고) 있다.

子曰: "力不足者中道而廢, 今女畵." (자왈: "력불족자중도이폐, 금녀획)

금녀획. 너는 지금 선을 긋고 있다. 역부족이야, 관둬야겠어 라는 생각이 들 때면 딱 3자만 이야기하자. //.

 

120 군자의 즐거움은 천명을 실천하는 데 있고, 소인의 즐거움은 욕망을 충족하는 데 있다.

 

120 공자의 제자 염구가 자신은 스승의 도를 늘 따라하고 싶어도 끈기가 부족하다며 걱정하자 공자가 다그치면서 한 말이다. 능력의 부족이 아니고 의욕과 집념의 문제라는 것이다. 100리의 절반은 90라는 말이 있다. 마무리를 어떻게 하는가가 대단히 중요하다. 마무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취하겠다는 오기가 있어야 함을 공자는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오기가 있어 13여 년을 주유할 수 있었나 보다. 100리의 절반은 90리라는 말 좋다. 끝을 보며 시작하자. 마무리를 생각하며 의욕을 다져야겠다. 나도 끈기와 근성이 부족한 인간인지라 이 말이 와닿는다.

 

123 바탕이 꾸밈을 이기면 촌스럽고, 꾸밈이 바탕을 이기면 텅 빈 듯 하다. 꾸밈과 바탕이 고르게 조화를 이루고 난 뒤에야 군자인 것이다.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
자왈: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빈빈, 연후군자.")

 

127 내가 (예에 어긋나는) 부당한 짓을 저질렀다면,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
자견남자, 자로불열, 부자시지왈: "여소비자, 천염지! 천염지!")

이중부정은 강한 부정이라는데 괜히 찔리신 건 아닌지(물론 워낙 두 번 반복하는 말 습관인 거 같긴 하다만). 남자는 왜 만나셔가지고. 그래도 자로가 제법 입바른 소리 하는 역할을 맡은 듯.

 

128 仁은 자기보다 먼저 남을 이루어주는 것이지만, 聖은 거기서 더 나아가 모든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공자는 성을 인보다 더 높은 가치로 보았다.

 

7편 술이

 

131 발분하지 않는 자는 내친다는 것도 강조했다. 여전히 자로에 대한 불만 섞인 훈계가 있는데, 선생이 죽지도 않았음에도 장례 준비를 서두른 제자(자로)를 보면서 공자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자로도 진짜 성질 급한 사람인 듯. 장비를 보는 듯 한데 괜히 정이 간다.

 

132 묵묵히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배우는 데 싫증 내지 않고, 남을 가르치는 데 게을리 하지 않는 것, (이 세 가지가) 나에게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子曰: "默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
(
자왈: "묵이지지, 학이불염, 회인불권, 하유어아재.")

가르침에 확실히 재능과 재미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132 미래 사회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연장선 위에 있으므로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흐름의 변화를 파악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미지의 세계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을 테고, 그에 대한 대처 방안도 정확히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信而好古라는 말도 한 것이다.

과거를 현재로 끌어당기듯, 미래도 현재로 끌어당기는 것, 그 스킬을 익혀야 한다. 과거의 정신을 대면하는 것이 책과 역사공부라면 미래를 현재로 끌어당기는 것은? 조만간 컨택트라는 영화를 봐야겠다. 그 영화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제가 함께 공존하는 언어가 나온다던데. 또는 그러한 언어습관을 통해 미래의 기억을 갖고 올 수 있을까?

 

132 공자는 평등한 교육 기회도 중시했다. 귀족은 단 두 명밖에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부분의 제자는 공부하러 찾아온 백성 자제들이었다.

 

135 (배울 때)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고, 애태우지 않으면 발휘하도록 말해주지 않는다. 한 귀퉁이를 들어 보였을 때 (다른) 세 귀퉁이로써 반응하지 않으면 (더 이상) 반복해서 가르치지 않는다.

子曰: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
자왈: "불분불계, 불비불발. 거일우불이삼우반, 즉불부야.")

 

135 일방적인 지식 전달보다는 피교육자인 제자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는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오늘날의 자기주도 학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거일반삼에는 하나를 배우면 다른 것까지도 유추해서 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논어 공야장편을 보면 공자의 제자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고 해서 문일지십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그 반대는 우이독경이다.

 

136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으려 하고 맨몸으로 강물을 건너려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사람이라면, 나는 (그런 사람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함께 할 자는) 반드시 일에 임해서는 두려워할 줄 알고 계획을 잘 세워 성공하는 (그런) 사람이다.

子謂顔淵曰: "用之則行, 舍之則藏, 惟我與爾有是夫!" 子路曰: "子行三軍, 則誰與?"

子曰: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이것도 결국 자로더러 들으라 한 말이지? 나는 계획이라곤 안세우는 사람인데, 습관을 좀 들여봐야 하나. 일단 착수부터 해야 창의적인 뭔가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일부러 계획, 기획을 멀리한 경향이 있었는데.

 

136 공자가 생각하는 군자는 마음에 어떠한 집착도 갖지 않고 자기 고집이 없이 전체 상황에 맞추어 무심히 처하는 인물이다. 자기를 알아주는 이에게 등용되면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고, 등용되지 못하면 때를 기다릴 뿐이다. 공자는 이처럼 집착 없이 무심히 살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안연뿐이라고 생각했다.

 

139 거친 밥을 먹고 (차가운)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그것을 베개로 삼으면 즐거움도 그 속에 있다. 의롭지 못하면서 잘살고 귀하게 되는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만 같은 것이다.

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
자왈: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락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140 너는 어찌하여 그 분은 사람됨이 분을 일으켜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도를) 즐거워하며 근심을 잊어, 늙음이 장차 다가오는 것마저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
자왈: "녀해불왈: '기위인야, 발분망식, 락이망우, 부지로지장지운이'?")

불쌍한 자로.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에 대해 물었는데 대답하지 않았다고 하니 저렇게 또 닥달하는 공자. 자로는 왜 공자 곁에 붙어 있었을까. 그나저나 발분망식, 분을 일으켜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는 말은 어떤 맥락에서 한 말인가. 화를 다스리지 못한다는 말을 아닐 것이고 의분할 때 분인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여 먹는 것도 잊는다 뭐 그런 뜻?

 

140 공자가 나이 오십에 을 배운 것과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도 주역을 읽다 보면 천명을 알게 될까? 아니면 나도 천하주유를 해야 하는지.

 

141 공자는 귀신과 같은 불가사의한 존재에 의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현실 세계에서의 도덕적 성숙과 인간성을 갖추는 것을 중시했다. 공자는 평생 군신, 부자, 부부 등을 중심으로 한 윤리 도덕을 역설했다.

공자 스스로는 부모, 부부, 부자 관계를 충분히 겪을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던 거 같다. 아버지와는 물론이고 어머니와도 20여 년. 아내와는 금방 끝난 거 같고, 아들도 멀리한 거 같은데.

 

8편 태백

 

154 몸을 움직일 때는 조급함과 게으름을 멀리하고,

動容貌, 斯遠暴慢矣. (동용모, 사원폭만의)

어쩜 내가 다 갖고 있는 거다. 조급함과 게으름. 마음은 느긋하게 가지고 몸은 부지런히 움직이자.

 

154 능력이 있으면서도 능력 없는 사람에게 묻고,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적게 아는 사람에게 물으며, 있으면서도 없는 듯이 행동하고, 가득 차 있으면서도 빈 듯하며, (다른 사람이) 나를 속일지라도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으니 예전에 나의 벗이 일찍이 이렇게 실천했다.

曾子曰: "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 昔者吾友嘗從事於斯矣."
(
증자왈: "이능문어불능, 이다문어과, 유약무, 실약허, 범이불교, 석자오우상종사어사의.")

 

9편 자한

 

163 인생이란 마흔에서 쉰 이전에 무엇인가 성취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뭐든 때가 있는 것이고 그 마지막 때 또는 기회가 마흔에서 쉰 사이임은 경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겠지. 나로서도 무언가를 도모할 마지막 기회이다.

 

167 태재가 나를 알겠는가? 나는 젊어서 비천하였으므로 다방면의 비루한 일에 능한 것이다. 군자는 (재능이) 많을 필요가 있겠는가? 많을 필요가 없다.

吾少也賤, 故多能鄙事. 君子多乎哉? 不多也.

(오소야천, 고다능비사. 군자다호재? 불다야)

간만에 겸손모드. 젊어서 비천하여 이것저것 다 해봤다는 것을 시사하는 거라 애잔하기도 하다. 그런데 재능이 많기도 많았던 모양.

 

170 공자의 말처럼 그는 제자의 손에서 죽었다. 그가 죽기 직전에 달려온 제자는 자공이었다. 자공에게 왜 늦게 왔냐고 힐책한 뒤 공자는 태산이 무너지는가! 들보와 기둥이 무너지는가! 철인이 시드는가!”라고 한탄했다. 그러고는 자공에게 일러 말했다. “천하게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아무도 나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나의 조상은 은나라 사람이었다

마지막까지도 제자를 힐책하는 공자. 삶과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였다기보다는 한을 품은 채 떠난 거 같아 안타깝지만 마지막까지 자신의 이상을 펼치고자 노력한 모습은 인간승리이자 정신승리인 거 같다. 나의 조상은 은나라 사람이라는 말은 마지막에 어떤 의미로 한 걸까? 나의 증조할머니도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의 출신을 재차 이야기 하셨다. 나는 마지막에 어떤 말을 할까.

 

174 (그러나) 마흔이나 쉰이 되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으면 이 또한 두려워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

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
자왈: "후생가외, 언지래자지불여금야? 사십오십이무문언, 사역불족외야이.")

20대 학생들 사이에서 청강할 때, 교수님이 아무 생각 없이 공자의 이 말을 언급하셔서 40대였던 내가 뜨끔했던 기억이 있다. 원문을 찾아보려고 해도 찾지 못하던 중에 2년 후에 이렇게 찾게 되었네. 기억해놔야지. 사십오십이무문언, 사역불족외야이. 나름 한 영역에서 무언가를 이룬 친구들은 40대에 여기 저기서 이름이 들리긴 하더라. 그들은 내 이름 듣기나 했으려나 모르겠다. 못들었겠지, 못들었겠지.

 

177 그 사람을 경험하거나 대해보지 않고는 그 사람을 논하지 말라는 뜻이다. 함부로 남을 비평하지 말고 그 사람과 더불어 경험하고 세월을 보내야만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의 참모습은 역경을 겪으면서 드러나는 법이다.

 

178 “산앵두나무 꽃이 팔랑이다가 뒤집히고 있네. 어찌 그대를 그리워하지 않으리. 그대의 집이 멀 뿐이다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리워하지 않는 것일 테지, 무엇이 멀리 있다는 것인가?”

"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 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
("
당체지화, 편기반이! 기불이사? 실시원이!" 자왈: "미지사야, 부하원지유?")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와 대비되는 내용인 거 같다. 그대의 집이 먼 것이 아니라 그리워하지 않는 것이지.

 

 

11편 선진

 

196 아니 공자가 몇 번 벼슬에 나아가기는 했지만, 차라리 이렇게 제자들과 담소하면서 세상사와 자신의 문제를 담화할 때가 가장 행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치면서 미소를 머금게 한다.

 

203 자구대로 자로가 천수를 다하지 못할까 걱정된다는 의미다. 자로에 대한 공자의 이 말은 사실 그의 성격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자로는 결국 위나라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그가 죽었을 때 공자는 저민 고기를 내다버리고 먹지 않았다고 한다.

 

204 (자로)가 거문고를 어찌하여 내 집 문 앞에서 타느냐?

(그 뒤로) 문인들이 자로를 공경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는 당(대청)까지는 올라섰지만, (방 안)까지는 들어오지 못했다.

자로를 너무 구박한 거 아닌가? 문 앞에서 거문고 타는 것 갖고도 난리야. 악이 중요하다고 해놓고선 거문고도 못타게 하고.

 

204 거친 성격의 자로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을 공자는 듣기조차 싫어했는데 그 이유인즉 북쪽 변방의 살벌한 소리가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거문고 타고 있는데 니가 타는 거문고에서는 변방의 살벌한 소리가 스며들어 있다라고 평하면 참공자도 너무한다. 성격이 까탈스러워서 부인이 도망간 듯.  

 

206 (안회)는 거의 도를 터득했지만, 자주 (쌀통이) 빌 정도였고, (자공)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물을 불려나갔는데, (그가 시세를) 예측하면 자주 적중했다.

 

206 자공, 원래는 노나라의 상인이었다. 언어를 잘하기로 유명했으며, 공자보다 31살 어리다. 공주가 열국을 주유할 때도 늘 모시고 다녔으며 공자가 좌절을 거듭하고 나서 노나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노나라에서 벼슬을 하며 외교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12편 안연

 

216 자기를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하루라도 자기를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에 돌아갈 것이다. 인을 행하는 방법은 자기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 (어찌) 다른 사람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겠는가?

모든 변화와 혁명과 행복과 불행이 다 자기에게서 시작되는 것. 그런데 자기를 이겨낸다는 것과 자기를 포기한다는 것, 자기를 죽인다는 것 사이의 차이가 뭘까. 마냥 자기를 죽이고 희생하고 예로 돌아가 인자가 되고 싶진 않은데. 역시 수양을 해봐야 알겠지.

 

226 군자는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이루게 하고,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을 이루어주지 않는다. 소인은 이와 반대이다.

나는 지적질을 하는 편이지. 소인이다.

 

230 군자는 글을 통해 벗을 모으고, 벗을 통해 인을 돕는다.

曾子曰: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 (증자왈: "군자이문회우, 이우보인.")

그런 뜻은 아니겠지만, 번역된 것을 봤을 땐 스토리 펀딩이 이런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글을 통해 사람들을 모으고, 후원금이 모여 仁이 쌓인다. 쓰고 나니 뭔가 아이디어가 생각날 거 같은데, 글이 끌어당기는() , 文과 仁.

 

13편 자로

 

243 정치, 가까이 있는 사람은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은 찾아오는 것입니다.

 

247 군자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만 (부화)뇌동하지는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지만 조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247 군자는 남을 자기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남과 조화를 이루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므로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이익을 좇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익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행동하지만 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공명정대한 명분이나 사리 판단보다는 이해관계에 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249 강직함, 의연함, 질박함, 어눌함은 인에 가깝다.

子曰: "剛毅木訥, 近仁." (자왈: "강의목눌, 근인.")

 

14편 헌문

 

253 관중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인격적인 완성은 낮게 봄으로써 엄격히 구분했던 것이다.

 

253 배움이란 결국 자기 수양이지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빠뜨리지 않는다.

 

253 “나를 알아주는 이는 하늘뿐이라는 독백에 이르면 우리는 어느덧 당세를 험난하게 살다간 지식인의 고뇌와 함께하게 된다.

 

260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랜 제약이 있더라도 평소의 말을 잊지 않는다면 또한 완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63 관중이 환공을 도와 제후들의 우두머리로 만들고 단숨에 천하를 바로잡았으며, 백성들은 오늘날까지 그의 은혜를 입고 있다. 관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었을 것이다. 어찌 보통의 남자와 여자가 작은 신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도랑에서 목을 매어 죽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되는 일을 만들겠는가?

 

266 군자는 위(고상한 곳 혹은 인의)로 통하고, 소인은 아래(천박한 곳 혹은 이익)로 통한다.

 

267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 했는데, 오늘날 배우는 자들은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한다.

2500여 년 전에도 그랬구나. 지금도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배움이 많은 것 같다.

 

269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이 능력 없음을 걱정하라.

그래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 자기의 백락. 공자를 따르는 제자들이 공자를 알아주는 사람이었고 정치보다는 교육이 그의 파랑새였거늘 공자도 그걸 뒤늦게야 안 것일 것, 아니면 천하주유는 그것을 깨닫기 위한 필수적 과정이었을까.

 

271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고, 아래로 (소소한 것들을) 배우고 위로는 (심오한 이치에) 통달했는데, 나를 알아주는 자는 아마도 하늘일 것이다.

 

272 현명한 사람은 (혼란한) 세상을 피하고, 그 다음 부류는 (어지러운) 지역을 피하며, 그 다음 부류는 표정이 좋지 않은 사람을 피하고, 그 다음은 (나쁜) 말을 피한다.

 

273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려고 하는 그 사람(공자를 가리킴) 말입니까?

子路宿於石門,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 :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
(
자로숙어석문, 신문왈: "해자?" 자로왈: "자공씨." : "시지기불가이위지자여?")

문지기한테 이런 소리를 들어야 했던 공자가 애잔하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표현 자체가 공자에 대한 멋진 평같기도 하다. 이 말이 마쓰모토 레이지의 캡틴 하록의 대사와 연결된다고 한다. “남자는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가야만 할 때가 있어. 그게 남자라는 존재다

 

273 비루하구나, 쩡쩡거리는 소리여!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둘 따름이니, 물이 깊으면 (하의를) 벗고 건너고, 물이 얕으면 (옷을) 걷어올리고 건너야 한다.

아까는 문지기, 이번엔 삼태기 메고 지나가는 사람이 한 말이라니 공자도 여러 험한 소리 많이 들었던 모양인데 멘탈이 대단했던 것 같다.

 

275 자신을 수양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어라. 자신을 수양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요임금이나 순임금도 오히려 어려워했던 일이다.

修己以安百姓 (수기이안백성)

수기이안백성수기이안가족으로 할 수도 있겠다. 나를 다스려야 가족의 마음이 편안할 터인데. 요새 내가 여럿 마음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 나이 44세에 이다지도 수양이 안되었으니 한심하다.

 

276 어려서는 불손하고 우애가 없었고, 자라서는 이렇다 거론할 만한 것도 없었으며, 늙어서는 죽지도 않으니 이는 도적이다.

原壤夷俟, 子曰: "幼而不孫弟, 長而無述焉, 老而不死, 是爲賊." 以杖叩其脛.
(
원양이사, 자왈: "유이불손제, 장이무술언, 로이불사, 시위적." 이장고기경.)

장이무술언’, 커서는 할 말이 없고, ‘로이불사’, 늙어서는 죽지도 않으니, ‘시위적’, 이게 도적일세. ‘장이무술언’, ‘로이불사는 나한테도 해당되는 말일 수 있기에 정신 똑바로 차리기로. 언제 공자가 내 정강이를 내리칠 지 모른다. 그나저나 친구 정강이 내리치는 공자도 어지간하다.

 

276 그의 생몰년은 미상인데, 공자와는 오랜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다/ 원양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가 관 위에서 노래를 불러 공자의 마음을 언짢게 했으나 공자는 그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공자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자 공자는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다시 나이 들어 공자를 만났는데 예를 갖추지 않고 제멋대로 다리를 펴고 있어서 공자가 그의 정강이를 두드리며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15편 위령공

 

279 죽고 나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말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는 공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명예욕이 있으신 듯. 죽고 나면 다 무슨 소용. 어쨌든 공자는 죽은 후 2500여 년이 흘러도 그 이름과 언행이 회자되고 있으니 생전의 두려움은 해소된 셈.

 

283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에 나아가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재능을) 접고 (은둔하여) 그것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우리 나라에도 도가 있어서 은둔하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 같다. 기존엔 어쩌면 그런 벌레같은 사람들이 다 기어 나왔는지. 도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

 

283 뜻 있는 선비와 인한 사람은 삶에 연연하여 인을 손상시키지 않고, () 몸을 희생해서라도 인을 이룬다.

 

285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 근심이 있다.

 

286 자신에 대해서는 엄중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가볍게 책망하면 원망을 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엔간하면 남에게는 책망이니 충고니 안하는 걸로. 나만 잘하면 된다.

 

286 온종일 함께 지내면서 말은 의로운 일을 언급하지 않고, 사소한 지혜를 자랑하는 것만을 좋아한다면 (이런 사람은) 곤란한 사람이다.

뭐 이 나이 되어서까지 사소한 지혜를 자랑할 일도 없고 그런 지혜도 없다.

 

287 군자는 죽고 나서도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인가 싶긴 하던데, 내 장례식 때 사람 많이 오지 않아도 된다. 죽은 후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다. 역시 군자는 아닌 모양. 다만 죽을 때까지의 과정이 인간적이고 품위가 있었으면 좋겠다.

 

290 모두가 그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고, 모두가 그를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293 가르칠 때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

子曰: "有敎無類." (자왈: "유교무류.")

 

16편 계씨

 

299 (재화가) 적은 것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못한 것을 근심하며, 가난을 근심하지 않고 안정되지 못함을 근심한다/ 이와 같으므로 먼 곳의 있는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문덕을 닦아 그들을 오게 한다.

 

301 천하에 도가 있으면 일반 백성들이 (정치 문제를) 논의하지 않는다.

 

301 춘추 시대에 들어서면서 요순우탕으로 대변되는 천자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패권을 추구하는 제후들에 의해 나라가 다스려짐을 우려한 것이니, 이는 곧 추구하는 대상이 추구하는 자를 망치는 일을 경계한 것이다.

 

302 견문이 많은 사람을 벗하면, 이롭다/ 말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사귀면 손해다.

 

302 유익한 즐거움이 세 가지이고, 해로운 즐거움이 세 가지이다. 예악으로 절제하는 것을 즐기는 것, 다른 사람의 장점 말하기를 즐기는 것, 현명한 친구를 많이 사귀기를 좋아하는 것은 유익하다. 교만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고, 빈둥거리며 노는 것을 즐기며, 주색에 빠져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면 해롭다.

다 괜찮은데 빈둥거리며 노는 것을 즐기는 것이 문제. 그래도 매일의 힘으로 빈둥거림은 많이 줄여지고 있다. 樂節禮樂(요절예악)은 현대적으로 어떻게 해석/적용하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못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303 군자에게는 세 가지 경계해야 하는 것이 있다. 젊어서는 혈기가 안정되지 않았으므로 여색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장년이 되어서는 혈기가 막 왕성해지므로 싸움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사그라졌으므로 탐욕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혈기가 사그러 들면 탐욕에 빠지나? 여색(으로 표현되는 여타의 것)과 탐욕에는 빠지지 않는데 싸움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혈기가 아직도 왕성한갑다.

 

303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문장이다.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젊어서는 아무 때나 불끈하며 성질을 부리기 쉽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고, 그 핵심은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 다른 사람 말은 듣지 않고, 몸은 젊지 않거늘 기질은 젊을 때처럼 아직도 발끈하니 이건 진짜 최악의 조합이다. 물론 요새는 그렇게 발끈하지는 않지만 그 불씨가 남아 있긴 하다. 평상심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끌어낼 수 있는 거라는 접근이 신선하다. 논어를 읽는 이번 주, 옹졸한 생각을 품었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자. 방금도 전화해서 얼마 전 화를 낸 대상에게 사과했다.

 

304 과거와 달리 넘치는 정보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지식을 듣고 배워 익히고, 그런 다름에 실천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305 화가 치밀면 어떤 후환이 생길까를 생각하고, 얻을 것을 보면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한다.

화가 치밀면 후환을 생각해야 하는데 앞뒤를 생각하고 화를 내니 다혈질이지. 얼마 전에도 앞뒤 생각 없이 성질을 낸 게 있어서 마음이 좋지 않다. 오늘 꼭 전화해서 사과해야지(사과했다). 얻을 것을 보면 의로운 것인가는 항상 생각하는 편인데 이 역시 최근에 좀 흔들린 적이 있었다. 과정을 추적하면 그 어느 것 하나 정의로울 거 없는 시대이지만(먹거리조차) 그래도 의식할 수 있는 선에서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의미 있다고 본다.

 

307 시를 들었고, 예를 들었으며, 또 군자가 그의 자식을 멀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7편 양화

 

311 서른 살 이후 이미 여러 제후국에 명성이 자자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벼슬길에는 오르지는 못한 데 따른 것이다.

 

311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의 좌절과 갈등은 공자 말년에 더욱 심해졌다.

그러한 좌절과 갈등을 말년까지 갖고 갔다는 것도 대단하다. 보통은 일찌감치 현실에 타협했을 터인데, 가족부양에 대한 부담이 없었던 것도 한 몫 한 건가?

 

311 공자의 분노와 시대를 향한 외침이 많다.

 

312 이러한 균열은 뜻을 펼치길 갈망하면서도 쓰이지 못하는 모든 지식인의 서글픈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313 공자께 (삶은) 돼지를 (선물로) 보냈다. 공자께서는 그가 없을 때를 기다렸다가 그에게 사례하러 갔는데 (돌아오는)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313 (정사에) 종사하는 것을 좋아하면서 자주 때를 놓치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313 당시 그다지 평이 좋지 않았는데 공자에 대해서는 대단한 호의를 보였다. 그가 공자로 하여금 벼슬에 나오도록 부추겼고 공자는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공자는 어찌되었든 벼슬을 하고자 했으니 말이다.

 

313 과거에 있었던 이런 일도 공자가 양화와의 만남을 거부한 이유가 된 듯 하다. 뒤에 이어 나오듯이, 양화 또한 공자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선물을 보낸 것이다.

 

314 오직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만 변화시킬 수 없다.

자기 고집이 그래서 무섭다. 너무 똑똑해도 너무 어리석어도 고집이 세다. 변화가 틈 탈 수 있는 공백과 여백이 있어야 한다.

 

314 (타고난)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성은 서로 멀어지게 된다.

비슷하게 태어나더라도 끝을 차이 짓는 것은 습성이란 것인가? 매일의 힘, 좋은 습관을 길러야겠다.

 

316 가실 곳이 없으면 그만이지, 어찌하여 꼭 공산씨에게 가려고 하십니까?

갈 데 없으면 말 것이지 부른다고 가냐는 뉘앙스. 자로 마음에 든다. 직설적이다.

 

316 만약 나를 써주는 사람만 있다면 나는 그곳(노나라의 비읍)을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

애잔하다.

 

317 그래.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그런데 견고하다고 하지 않았더냐? 갈아도 닳지 않는다고 말이다. 희다고 하지 않았더냐? 검게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고 말이다. 내가 무슨 썩은 조롱박이더냐? 어찌 매달아놓기만 하고 (물 한잔 떠서) 먹을 수도 없단 말이냐?

자신의 단단함과 깨끗함에 대한 대단한 자신감이라고 해야 하나? 근데 왜 화를 내시는지. 성격 괴팍해 보이심. 자로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 지 난감했을 듯.

 

318 너희는 어찌하여 아무도 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화제를) 이끌어낼 수 있고, (사회를) 관찰할 수 있고, (사람들을) 모을 수 있고, (사회의 병폐를) 원망할 수 있다. 가까이로는 부모를 섬길 수 있고, 멀리로는 임금을 모실 수 있으며,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기억하게 된다.

小子何莫學夫詩.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소자하막학부시. 시가이흥, 가이관, 가이군, 가이원. 이지사부, 원지사군, 다식어조수초목지명)

 

이 말 좋다.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기억하게 된다(알게 된다). 여기서는 시경을 이야기 하는 것이겠으나 어떤 시여도 상관 없겠지. 나도 시를 읽고 외우기로 했다.

322 옛날의 광인(자유분방한 사람)거침없이 살았지만, 오늘날의 광인은 방탕하다. 옛날의 자긍심을 가진 사람은 정중했지만, 오늘날 자긍심을 가진 사람은 화를 낸다.

거침없이 미친 사람처럼 살아야 하는데, 자긍심도 없이 화만 낸다.

 

323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란 말이냐? 그래도 네 계절이 운행되고 만물이 생겨나지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란 말이냐?

子曰: "予欲無言." 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
자왈: "여욕무언." 자공왈: "자여불언, 칙소자하술언." 자왈: "천하언재? 사시행언, 백물생언, 천하언재?")

여욕무언(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이라고 했을 때엔 공자가 죽기 몇 달 전이었다고 한다. 입을 닫고자 했을 때엔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그 이후 진짜 말을 안하셨을까? 그 이후의 어록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름 하고 싶은 또는 해야만 하는 말만 하셨을 거 같은데.

 

323 명을 전하는 사람이 문을 나서자 슬을 가져와 노래를 불러 그로 하여금 그 소리를 듣도록 했다. (자신이 집 안에 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인상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군자라고 하기에는 다소 유치한 면이 있으시네.  

 

325 배부르게 먹는 것을 온종일 하고 마음 쓰는 데가 아무것도 없다면 곤란하구나.

밥 값을 해야지. 나의 마음이 쓰이는 곳은 어디일까. 키워드, 화두를 찾아야 한다. 올 해 안에는 찾도록.

 

327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미움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끝이다.

子曰: "年四十而見惡焉, 其終也已." (자왈: "년사십이견악언, 기종야이.")

난 끝인가. 미움을 받는지의 여부는 모르겠는데, 내가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고,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미워하는 마음이 있고 용서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야말로 끝이다.

 

18편 미자

 

329 벼슬에 대한 공자의 미련

나름의 근성과 고집과 오기 또는 믿음이 대단했던 것 같다.

 

331 나는 계씨처럼 대우해줄 수는 없고, 계씨와 맹씨의 중간으로 대우하겠소.

당시에도 이렇게 연봉협상을 했구나

 

332 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찌 그토록 (당신의) 덕이 쇠락했는가. 지나간 것은 (도리어) 간언할 수 없고, 오는 것은 오히려 좇아갈 수 있네. 그만두시게, 그만두시게. 지금 정치를 따르는 자들은 위태롭다네.

말 그대로 시가 공자에게 왔다. 지나가는 광인이 이렇게 시로 조언을 주다니 그 장면이 아름답다.

 

334 새나 짐승들과 함께 무리를 이룰 수는 없다. 내가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지 않고 누구와 더불어 산단 말인가?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나는 바꾸지 않는 일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天下有道, 丘不與易也 (천하유도, 구불여역야)

Voice(남을 것인가) Exit(떠날 것인가) 화두의 공자버전이라 하겠다. 살기 싫은 나라 그냥 이민을 가고 말 것인가, 남아서 목소리를 내어 살기 좋은 곳으로 바꿀 것인가. ‘도가 있으면 나도 자연과 벗하며 살겠지, 도가 없으니 내가 이러고 있는 거 아니냐는 공자의 말에서 참여의 덕을 보게 된다.

 

335 사지를 부지런히 움직이지도 않고, 오곡도 가려내지 못하거늘, 누가 선생이란 말이오?

 

19편 자장

 

341 공자는 제자들의 됨됨이에 맞게 사안을 설명하거나 교육했지만 그 과정에서 저마다 들은 것이 달랐다.

인재시교(因材施敎). 공자가 자로한테 한 말이 나한테 와 닿더라. 가르침의 메시지 자체에 매달리기보다는 가르침의 대상과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345 군자는 신뢰를 얻은 다음에 그의 백성들을 수고롭게 하는 것이니, 신뢰받지 못하면 (백성들은) 자신들을 학대한다고 생각한다. 신뢰를 얻고 난 다음 간언하는 것이니 신뢰받지 못하면 (군주는) 자신을 비방한다고 생각한다.

친구나 지인 간에도 충고를 하게 될 때에는 신뢰가 깔린 후에야 가능한 것. 같은 충고라도 하는 사람에 따라 기분이 나쁠 때가 있고 감사할 때가 있다. 내가 충고를 했을 때 발끈하는 이가 있다면 그에 대한 나의 신뢰가 부족한 것. 자리 보고 누워야 한다.

 

351 그러지 말거라. 중니를 험담할 수 없다. 사람들 가운데 현명한 이들은 구릉과 같아서 오히려 넘을 수 있지만, 중니는 해와 달과 같아서 넘어설 수 없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해와 달을) 끊으려 해도 어찌 해와 달에 손상이 가겠는가? 대부분 자신이 분수를 알지 못하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

연예인 외모 까는 악플러들 볼 때의 느낌.

 

20편 요왈

 

358 군자는 은혜를 베풀면서도 낭비하지 않고, 수고롭더라도 원망하지 않으며, 욕망은 있어도 탐욕은 없고, 느긋하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은 것이다.

子曰: 君子惠而不費, 勞而不怨, 欲而不貪, 泰而不驕, 威而不猛.

(자왈: 군자혜이불비, 노이불원, 욕이불탐, 태이불교, 위이불맹)

은혜를 베풀 때에는 바라지 말고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는 낭비하지 않고라고 했는데 과하게 하지 말라는 소리일까. 과하게 베풀다 보면 베푼 대상에게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게 인간의 마음이긴 하더라. 나도 그랬었다(역시 난 군자는 아님).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은 스킬도 배우고 싶다. 마냥 좋아 보이면 만만해 보이는 것 같으니 화를 내게 되곤 한다. 다섯 가지 미덕 중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은 그나마 하나, ‘욕망은 있어도 탐욕은 없다는 것.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독자의 눈으로 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 분석)

논어의 원래 20편의 순서는 건드릴 수 없는 목차이니 뭐라 언급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다. 다만 논어를 읽기 전에 논어를 읽는 가이드가 추가되면 좋겠다. 주희가 말한 논어의 독서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읽고 뜻을 알 수 없거든 생각을 해보아라. 생각해도 뜻이 밝혀지지 않으면 다시 읽어보아라. 둘째, 한꺼번에 너무 많이 읽지 않도록 조심하라. 조금씩 읽어라. 그렇게 해서 전체에 다다르게 된다. 셋째, 원문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의 일이다. 그 의미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은 또 하나의 일이다. 그런데 책에 들어 있는 좋은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 껍질만 알고 지나가는 것은 독자가 흔히 빠지기 쉬운 폐단이다.

 

2 보완이 필요한 점(독자의 눈으로 이런 내용은 아쉬웠다.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이 책은 번역과 각주로 구성되어 있어 행간을 읽기보다는 字句에 매달려 읽게 되기 쉽다. 물론 각 편을 시작함에 있어 배경설명과 요약, 그리고 역자의 생각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부족한 감이 있다. 어느 정도의 배경설명과 등장인물 설명, 공자가 한 말의 현대적 해석이 곁들여져 있었다면 좋았겠다. 번역본, 원문, 각주로만 되어 있으니 다소 딱딱하고 읽는 이 역시 字句에 연연하며 읽게 되어 생활에의 적용과 소화를 위해서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덧붙여 독음이 병행되었으면 좋았겠다.  

 

3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각 편에 앞서 역자의 설명이 있는 것이 좋았다. 주석 역시 역자만의 설명이 아니라 다른 학자들의 견해도 함께 설명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판단할 수 있도록 한 배려가 좋았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역자의 말대로 논어는 원전에 맞게읽는 것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인이 제대로 그 맥락과 행간을 파악하여 실생활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나라면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처럼 논어가 지금을 살고 있는 개인에게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 등의 설명을 곁들일 것이다. 각기 다른 배경과 직업을 가진 20명을 선정하여 (물론 논어를 읽은) 논어의 20편 중 한 편씩 맡아, 가장 인상 깊게 마음에 새긴 구절을 중심으로 그 구절의 설명 및 본인의 해석과 실생활에의 적용 등을 곁들인다면 이 책의 부제처럼 가히 세상의 모든 인생을 위한 고전에 어울리는 내용이 될 것이다. ()

 



[i] 논어, 김원중 역, p. 166 참고하여 재구성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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