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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3일 11시 48분 등록

저자 연구

지은이: 윌 듀런트 (1885.11.05~1981.11.07)

미국 작가, 역사학자, 철학가이다.

그의 부모는 프렌치 캐나다인으로 프랑스의 퀘백에서 거주하다가 미국으로 이주 후에 그를 낳았다. 독실한 가톨릭 가정으로 그의 엄마는 아들이 성직자가 되기를 바라서 신학교에 보냈지만 신학교에 다니던 중에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읽은 후 깨달은 바가 있어 신학교를 그만두고 컬럼비아 대학교로 옮긴 뒤 철학을 전공한다.

이후 Ferrer Modern School이라는 학교에서 노동자들에게 철학을 가르쳤는데, 이 때 만난 15세 소녀와 사랑에 빠져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이 후 그녀와 1935년부터 1977년에 <나폴레옹 시대>에 이르기까지 11권에 이르는 <문명이야기>를 편찬한다. 이 책은 2500년에 걸친 동양 문명과 서양 문명을 커버하는데 윌 듀런트는 이 책의 한 권인 <루소와 혁명>으로 1967년에 퓰리처 상을 받았다.


 

옮긴이: 정영목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이화여자대학교 번역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9년 제3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역서로는 <사람과 상징>, <마르크스>, <신의 가면 III: 서양신화>, <프로이트>, <>, <엘디스트> 등이 있다.

 

5장  볼테르와 프랑스 계몽주의

1.     파리: <오이디푸스>

273 드 메스트르(1753~1821, 프랑스의 정치 철학자)는 볼테르가 지옥의 악마가 그 손에 모든 힘을 쥐어준사람이라고 말했다. 호감을 주지 못하고, 추하고, 허영심 많고, 경솔하고, 외설적이고, 비양심적이고, 심지어 때로는 부정직하기도 했던 볼테르는 그 시대와 장소의 결함을 거의 빠짐없이 갖춘 사람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볼테르는 변함없이 친절하고, 사려 깊고, 자신의 에너지와 돈을 베푸는 데 인색하지 않고, 적을 무너뜨리는 일만큼이나 친구를 돕는데 정성을 다하고, 펜을 한번 휘둘러 죽일 수도 있으면서 화해를 청해오면 바로 무장을 해제했다. 그렇게 모순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좋은 나쁘든 이 모든 특질은 볼테르에게는 부차적인 것으로, 본질이 아니었다. 그에게 놀랍고도 기본적인 것은 그의 정신의 가없는 생산성과 광채였다.

호감을 주지 못하고, 추하고, 허영심 많고등의 비호감 성향과 친절하고, 사려 깊고, 자신의 에너지와 돈에 인색하지 않고등 정반대인 호감의 성향을 동시에 다 갖추는 것이 가능할까? 이렇게 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내 안의 모순된 성향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잘 되면 반전 매력이 넘치는 사람, 안 되면 자기 맘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좋았다 나빴다 하는 최악의 인간일 것 같다. 그 모든 게 다 부차적이고 사실은 가없는 생산성과 광채를 지닌 정신의 천재라고 하니, 실제로 보면 더 얄미울 것 같다.

 

274 “내 직업은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생각한 것을 늘 말로 잘 표현했으며, 그가 생각한 것은 늘 말할 가치가 있었다.

 

274 그는 당대 다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많은 것을 성취했다. “일에 몰두하지 않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똑 같은 것이다.” 볼테르는 말했다. “게으른 사람만 빼면 모든 사람은 선하다.” ~ “이 세상에서 삶을 지탱하려면 최대한 몰두해야 한다. … 나이가 들수록 일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삶의 환각들을 대신하여 가장 큰 기쁨이 되는 것은 일이다.”

자살하지 않으려면 늘 뭔가 할 일이 있어야 한다.” 볼테르가 늘 일을 했던 것을 보면 계속 자살의 유혹을 느꼈던 것이 틀림없다.

요즘의 나는 일에 몰두하지 않고, 게으른 사람이다. 매우 찔린다. 존재하지 않는 것과 똑같다니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자살의 유혹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바쁘게 지냈다는 걸 보면 존재감 없는 나의 지금의 삶이 훨씬 나은 것도 같다.

 

275 “볼테르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은 18세기 전체의 특징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에 르네상스가 있었고 독일에 종교개혁이 있었다면, 프랑스에는 볼테르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나라에서 르네상스인 동시에 종교개혁이었으며, 혁명의 반이었다.

 

276 볼테르는 말했다. “책은 세상을 지배한다. 적어도 글이 있는 나라는 지배한다. ~” “교육만큼 자유를 주는 것은 없다.” 그는 프랑스에 자유를 주기 시작했다.

책과 글과 교육이 세상을 지배한다. 볼테르가 살던 당시에는 맞는 말 같은데, 요즘에도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교육은 받을 만큼 받았으니 책과 글을 나의 편으로 만들어 보면 알 수 있겠다.

 

279 그의 늙은 아버지는 아들을 질책하러 왔다가 특별석에 앉아서 멋진 대사가 나올 때마다 , 이 녀석! 이 녀석!”하는 투덜거림으로 기쁨을 위장했다.

직접적으로 하는 칭찬이 아니라 이렇게 간접적으로 하는 칭찬이 더 기쁠 때도 있다. 나의 엄마도 직접적으로는 안 하셨지만 사촌 동생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간접적으로 칭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나는 주변인을 직접적으로 칭찬하려고 한다.

 

280 그는 그 모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수입을 얻는 기술만이 아니라 그 수입을 계속 굴리는 기술을 잃지 않았다. 그는 철학을 하기 전에 우선 살고 봐야 한다는 고전적 격언을 존중했다. ~ 그러나 그는 돈을 모을수록 관대해졌다.

 

2.     런던: <영국 통신>

284 “~ 우리가 숭배하는 사람은 폭력으로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자가 아니라, 진리의 힘으로 우리 정신을 정복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3.     시레: <로망스>

286 “자연이 우리를 약간 경박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무척 비참하게 살아갈 것이다. 사람은 경박해질 수 있기에 목을 매달지 않는 것이다.” ~ ”때로는 멍청해지는 것이 좋습니다(Dulece est desipere in loco). 웃음으로 주름살을 펴지 못하는 철학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나는 엄숙을 병으로 봅니다.”

재미없고 우울하고 (당당하게) 비참한 삶을 살던 쇼펜하우어나 칸트 등과는 좀 다른 철학가다. 워낙에 천재라 가능했던 것 같다.

 

4.     포츠담과 프리드리히

292 이 편지는 볼테르를 프랑스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자 언어에 명예를 베푸는 사람이라고 일컫고 있다. “저는 선생님과 같은 탁월한 성취를 이룬 분과 한 시대에 태어난 것을 제 삶의 가장 큰 명예로 꼽습니다. …… 정신이 웃음으르 터뜨리게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 어떤 쾌락이 정신의 쾌락을 능가할 수 있겠습니까?”

 

294 그러나 1749년 뒤 샤틀레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그녀의 남편과 볼테르와 생랑베르가 임종 자리에서 만나 서로 한마디도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공동의 상실 때문에 친구가 된 것은 그 시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한 예였다.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이 허용되었다고 하니 현재, 한국 사회의 잣대로 평가하고 비난하면 안 되겠지만 세 사람 모두 참 쿨했던 것 같다. 아니면 샤틀레가 뭔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던가.

 

295 “~ 재능만 있고 질투심은 없는 문인”(대단한 상상력이다!) “서너 명과 함께 살면서 서로 사랑하고, 조용하게 생활하고, 각자의 예술을 계발하고, 그 예술에 관해 이야기하고, 서로 일깨워준다면 얼마나 즐겁겠는가! 언젠가 이런 작은 낙원에서 살 날을 그려본다.” 이제 그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297 볼테르는 격분하여 그자의 따귀를 때렸다. 그러자 볼테르의 비서 콜리니가 그 남자를 위로했다. “보시오, 당신은 방금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에게서 따귀를 맞은 것이오.”

 

5.     레델리스: <도덕론>

300 그러나 이런 자료 수집은 예비 단계에 불과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료를 선택하고 배치하는 새로운 방법이었다. 사실만으로는 의미가 없었다. – 드문 일이었지만, 설사 그것이 사실이었다 해도. “아무런 의미 없는 세세한 사실들과 역사의 관계는 병참과 군대의 관계와 같다. 방해물일 뿐이다. 우리는 넓은 범위에서 사물을 보아야 한다. 인간 정신은 아주 작아서 세세한 것들의 무게에 가라앉아버린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연대기 편자는 사실들을 수집해야 하고, 이것을 일종의 역사 사전에 배열해야 한다. ~

그는 자신의 역사는 왕들이 아니라 운동, , 대중을 다루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족이 아니라 인류를 다루고, 전쟁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행군을 다루여야 했다.

 

6.     페르네: <캉디드>

302 “이제 지상에서 진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다 보았으므로, 앞으로는 나의 집만 보기로 했다. ~”

이렇게까지는 아니지만 여행을 많이 하다보면 자연이나 인간의 창작품의 아름다움이나 웅장함에 더 이상 놀라거나 감탄하지 않게 된다. 물론 나는 앞으로도 집에만 있지는 않겠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할 것 같다.

 

304 나는 선생의 시에 감탄하고, 선생의 산문을 사랑합니다. …… 선생 전의 어떤 작가도 그렇게 날카로운 재치, 그렇게 확고하고 섬세한 취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선생은 대화에서 매혹적입니다. 즐거움을 주면서 가르치는 방법을 아시지요. 선생은 내가 아는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원하기만 하면 온 세상의 사랑을 받을 능력이 있습니다. 선생의 정신은 정말 매력적이기 때문에 선생을 아는 사람을 불쾌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너그럽게 용서받을 수 있지요. 요컨데 선생은 인간만 아니라면 완벽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인간만 아니면 완벽하다니앞에 언급된 모순된 성향의 부정적인 면이 크게 부각된 케이스인가 보다. 인간이 아니라면 뭐여야 하나.

 

309 “나는 백번이나 자살하려 했지만, 삶을 너무 사랑했습니다. 이 우스꽝스러운 약점은 아마 우리의 가장 치명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언제라도 버릴 수 잇는 짐을 계속 지고 가고 싶어하는 것보다 터무니없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310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 최선인 이 세계에서는 사건들이 연결되네. 자네가 웅장한 성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종교재판소에 끌려가지 않았다면, 아메리카로 건너가지 않았다면, 금을 다 잃지 않았다면…… 자네는 여기에서 절인 레몬과 피스타치오 열매를 먹고 있지 않을 걸세.”

개인의 역사에도 가정은 가장 쓸데 없는 짓이다. 내가 그 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살 수도 있겠지만 시간을 되 돌리는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미래를 바꾸기 위해 매번 다른 선택을 해도 결국은 같은 결과로 귀결되더라. 그 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다른 갈림길에서 비슷한 선택을 해서 결국은 같은 결과가 될 수 밖에 없다고들 말한다. 나는 어떨까? 그 때 1년 더 준비를 해서 방송국에 PD로 입사했더라면…, 안티구아를 가지 않고 그냥 한국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안티구아나 지브롤타,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결국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 같다. 후회하지 말자.

 

7.     <백과전서> <철학 사전>

312 인간이 최고의 지능을 갖춘 것은 인간이 원하는 것이 가장 크고 가장 넓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욕구가 없으면 정신도 없다.”

 

312 돌바크는 말한다.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면, 무지와 공포가 신들을 창조했다는 것, 상상.의욕.기만이 신들을 장식하거나 왜곡했다는 것, 허약함 때문에 신들을 숭배했다는 것, 쉽게 믿는 태도 때문에 신들이 보존되었다는 것, 인간의 맹목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관습이 신들을 존중하고 압제가 신들을 지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디드로는 신에 대한 믿음이 독재에 굴복하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둘은 함께 일어서고 함께 쓰러진다. ~ 하늘이 파괴될 때 땅은 자기 발로 설 것이다.

 

315 “불과 50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 아무 생각 없이 만족하며 살아가는 늙은 자동인형이 있는데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그 말이 맞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나도 속으로 내가 저 늙은 이웃처럼 무지하다면 행복할 거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바라는 행복이 아닙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만족하며 고민없이 사는 사람보다 자살하기 싫어서 본인을 바쁘게 하며 일에 묻혀 사는 사람이 더 행복할까?

 

8.     파렴치를 박살 내라

318 볼테르는 평생 거의 처음으로 철두철미하게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 ”지금은 농담할 때가 아니네. 재치는 학살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네. …… 이곳이 철학과 쾌락의 나라인가? 이곳은 오히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의 나라라고 할 수 있네.” ~ 그는 이제 단순한 문인을 넘어서서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전쟁을 위하여 철학을 옆으로 밀어놓았다. 아니, 자신의 철학을 가차 없는 다이너마이트로 바꾸었다. “이 시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만 지어도 범죄를 저지른 양 자신을 책망했다.” 이 무렵 그는 파렴치를 박살 내라(Ecrasez l’infame)’는 유명한 좌우명을 채택하고, 교회의 권력 남용에 맞서 프랑스의 영혼을 흔들어 깨웠다. 그는 지적인 지옥의 불을 퍼부어 주교관과 홀을 녹이고, 프랑스에서 사제의 권력을 부수었으며, 왕좌를 뒤집어 엎는 데 일조했다. ~ “~ 광신도와 무뢰한을 압도하고, 재미없는 선언, 가련한 궤변, 거짓말하는 역사 …… 수많은 부조리를 부수어라. 분별력 있는 사람이 분별력 없는 사람에게 굴복하게 하지 마라. 지금 태어나고 있는 세대는 우리 덕분에 이성과 자유를 얻으리라.”

 

319 무슨 권리로 자유롭게 창조된 한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처럼 생각하도록 강요할 수 있을까? ~ 사회적 건강을 향한 첫걸음은 불관용이 뿌리내린 교회 권력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320 “나는 아주 명료하게 나 자신을 표현한다. 나는 깊이가 없기 때문에 투명한 작은 책과 같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를 읽었다. 곧 모두가, 심지어 성직자들도 그의 소책자를 읽었다. ~ 엘베싱스가 말했듯이, 볼테르는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 앞에 섰다.

 

323 “우연이라는 통치자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진정한 기도는 자연법칙을 어기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을 신의 변함없는 의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제대로 기도하고 제대로 신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나도 신에게 말도 안 되는 기도를 하곤 한다. 반성한다.

 

326 신은 모든 민족이 이해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반면, 민족들은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신에게는 베이징에서 카옌에 이르기까지 형제들이 있으며, 모든 현자를 자신의 동료로 여긴다. ~ 선을 실행하는 것이 그를 섬기는 것이며, 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그의 교의다. ~ 신은 로레트와 메카를 보고 웃음을 터뜨린다. 그 대신 가난한 자를 구원하고 억압당하는 자를 보호한다.

 

9.     볼테르와 루소

326 “싸구려 글을 써대며 세상을 다스리는 이 입법자들은 …… 부인이나 집안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세계를 통제하는 데서 큰 기쁨을 느낀다.

 

327 볼테르는 부자여서 보수주의로 기우는데, 이것은 굶주린 자가 변화를 요구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그의 만병통치약은 소유의 확산이다. 소유는 인격을 부여하고 자부심을 높여준다. “소유의 기운은 사람의 힘들 두배로 들려준다. 토지 소유자는 당연히 남의 토지보다 자신이 물려받은 것을 더 열심히 경작하 것이다.”

 

328 그는 여행에 익숙한 사람답게 국적에도 거의 무관심하다. 그에게는 일반적인 의미의 애국심이 없다. ~ 자기 나라가 번영하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다른 나라를 희생시키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면, 그는 똑똑한 애국자인 동시에 세계시민이다. ~

그는 무엇보다도 전쟁을 싫어한다. “전쟁은 최악의 범죄다. 그러나 공격하는 나라치고 자신의 범죄를 정의로 채색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329 “평등이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인 동시에 키메라에 가장 근접한 것이기도 하다. 권리에 국한되면 자연스럽지만, 물자와 권력을 고르게 나누려고 시도하면 부자연스러워진다.” “모든 시민이 똑같이 강해질 수는 없다. 그러나 똑같이 자유로워질 수는 있다. ~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법에만 복종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고 할 때 평등의 의미는 물자와 권력과 재능의 의미일 거다. 모든 사람이 재능과 환경을 평등하게 갖고 태어나고 성장할 수는 없다. 인정한다. 그래서 불평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마 전세계적으로 본다면 나는 그야말로 0.1% 안에 들 수도 있는 행운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똑같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말은 인정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330 과거를 문으로 몰아내면 창문으로 다시 들어온다. 문제는 어떤 변화로 우리가 실제로 사는 세상에서 곤궁과 불의를 줄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331 볼테르는 늘 이성을 믿었다. “우리는 말과 펜으로 인간을 계몽시킬 수 있고 더 낫게 만들 수 있다.” 루소는 이성을 거의 믿지 않았다. 그는 행동을 바랐다. 혁명의 위험에 겁먹지 않았다. 낡은 습관이 뿌리 뽑히고 혼란 속에서 뿔뿔이 흩어진 사회적 요소들을 형재애라는 감정이 재결합해줄 거라고 믿었다. 법을 제거하라 그러면 인간은 평등과 정의의 영역으로 들어갈 것이다.

 

331 볼테르는 자신의 유명한 원칙네가 하는 말에는 한마디도 동의할 수 없지만, 네가 그 말을 할 권리는 목숨을 걸고 지켜줄 것라는 원칙에 따라 루소의 책을 불태운 스위스 당국을 공격했다.

 

10.  대단원

334 그는 가벼운 죄를 저지른 가난한 사람들을 특별히 돌보았다. 그들의 사면을 받아낸 뒤 정직하게 일할 수 있는 자리로 보내, 그들을 감독하고 그들에게 조언을 했다.

이런 면을 보면 매우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사람 갖다. 반전 매력이 있는 천재라고 해야겠다.

 

334 “내가 베푸는 작은 선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 나는 공격을 당하면 악마처럼 싸운다. 나는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밑바탕은 선한 악마이며, 웃음으로 끝을 맺는다.”

 

335 “자네를 보기 위해 죽다 말고 왔네.”

 

335 “나는 신을 사랑하고, 친구들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미신을 혐오하며 죽는다.”

 

336 그는 이제 지쳤음을, 자연이 아마도 그 이전의 누구에게 준 것보다 많이 주었을 그 거칠고 경이로운 에너지를 한껏 사용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생명이 자신에게서 뜯겨 나가는 것을 느끼고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죽음은 볼테르에게도 승리를 거두었다. 마지막은 1778 5 30일에 찾아왔다.

자연 또는 신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도 제대로 못 쓰고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처럼 많이 못 받았다고 불평하지 말고 내가 받은 것이나 제대로 좀 써 보자.

 

337 장례차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그는 인간 정신에 큰 힘을 주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자유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묘비에는 오직 세 단어만 필요했다.

여기 볼테르 눕다.

 

6장  이마누엘 칸트와 독일 관념론

1.     칸트로 가는 길

341 스피노자에 대해 헤겔이 한 말을 조금 바꾸어 표현하자면, 철학자가 되려면 우선 칸트주의자가 되어야만 한다.

 

1 볼테르에서 칸트로

343 이 길은 종교적 믿음이 없는 이론적 추론에서 이론적 추론이 없는 종교적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344 삼단논법으로 수천년에 걸친 수백만 명의 믿음을 파괴하겠다고 나선 이 지성이란 무엇인가? 거기에는 오류가 없는가? 아니면 지성 또한 다른 모든 인간기관과 마찬가지로, 그 기능과 능력에 엄격한 제한이 따르는 한 기관에 불과한가? 이제 이 재판관을 재판하고, 모든 오래된 희망을 그렇게 거침없이 죽여버린 이 무자비한 혁명재판소를 조사할 때가 되었다. 이성을 비판할 때가 온 것이다.

 

2 로크에서 칸트로

345 그는 모든 지식은 경험으로부터 오고, 우리 감각을 통해서 온다고, “감각에 먼저 존재하지 않은 것은 정신에도 존재할 수 없다라고 조용히 선언했다. 정신은 태어날 때는 백지(tabula rasa). 감각 경험이 그 위에 수많은 방법으로 기록되어, 마침내 감각된 것이 기억을 낳고, 기억이 관념을 낳는다.

 

3 루소에서 칸트로

348 사실 우리 인간의 연약하고 기만적인 이성이 최근 들어 구축한 것에 불과한 논리학의 명령에 의해 우리 본성의 요구들이 짓눌려야 한다고 생각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다. ~ 그러나 인생의 큰 위기에서, 행동과 믿음이라는 큰 문제에서, 우리는 도식보다는 느낌을 신뢰한다. 만일 이성이 종교에 반대한다면, 바로 그 점이 이성을 더욱더 신뢰할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역시 철학은 쉽지 않다. 말 자체가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번역체라 더 어려운 것 같다.

 

349 “나는 생각하는 상태는 본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또 생각하는 사람(요즘 같으면 지식인이라고 부를 것이다)은 타락한 동물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지성의 지나치게 빠른 발달이 아니라, 마음과 애정의 훈련을 목표로 삼는 편이 나을 것이다. 교육은 사람을 선하게 만들지는 못하고 영리하게 만들 뿐이다. 게다가 대개는 못된 짓에 영리해진다. 본능과 감정은 이성보다 믿음직하다.

동의할 수 없다. 나는 루소보다는 볼테르나 로크의 주장에 더 공감이 간다.

 

350 이제 마침내 조롱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을 모두 흩어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논거의 실들을 한데 모으는 것, 버클리와 흄의 사상을 루소의 감정들과 결합하는 것, 이성에서 종교를 구해내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회의주의에서 과학을 구해내는 것 이것이 이마누엘 칸트의 사명이었다.

 

2.     칸트 자신

354 키는 150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하고, 겸손하고, 몸을 움츠리지만, 그럼에도 근대 철학에서 가장 폭넓은 혁명이 그 머릿속에 담겨 있었다. 아니, 거기에서 탄생하고 있었다. ~

일어나고,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식사를 하고, 걷는다.” 하이네는 이렇게 말했다. “각각에는 정해진 시간이 있었다. 이마누엘 칸트가 회색 코트를 입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자신의 집 문간에 나타나, 지금도 여전히 철학자의 산책로라고 불리는, 보리수들이 늘어선 좁은 길을 향해 걸어가면, 이웃들은 이때가 정각 세 시 삼십 분임을 알았다.

정확한 시간에 산책 등 칸트에 대한 일화는 매우 유명하고 친근하게 느끼게 한다. 그런데 키가 150CM도 안 되는 줄은 몰랐다. 그 작은 키도 움츠리고 지팡이를 들고 매일 똑 같은 시간에 산책을 했다고 하니인간적인 매력을 찾기는 좀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355 “결혼한 사람은 돈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하기 마련이다.” ~ 칸트는 스물 두 살에 전능한 젊음이 지닌 훌륭한 열망을 듬뿍 담아 이렇게 썼다. “나는 이미 지키고자 결심한 노선에 마음을 고정시켰다. 나는 나의 길로 들어설 것이며, 무엇도 내가 그 길을 좇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동의한다. 그래서 나는 가톨릭 성직자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식 등 가족을 갖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결혼한 남자가 아내와 자식을 부양할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 남편, 가장으로서의 미덕과 성직자로서의 미덕은 양립하기 어렵다. 좋은 남편이나 아빠 VS 좋은 성직자,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55 그는 가난과 무명의 세월을 살며 거의 15년 동안 자신의 걸작을 스케치하고 쓰고 다시 썼다. 그는 이것을 1781년 쉰일곱 살이 되어서야 마무리했다. 이렇게 느리게 성숙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이 이렇게 철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적도 없었다.

 

3.     순수이성비판

356 <순수이성비판>은 사고를 연구하는 세밀한 생물학, 개념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조사, 타고난 정신 구조의 분석이다. 칸트는 이것이 형이상학의 문제 전체라고 믿는다. “이 책에서 나는 주로 완전함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감히 여기에서 해결되지 않는, 적어도 해결의 열쇠를 제공하지 않는 형이상학의 문제가 단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청동보다 오래 지속될 기념비를 세웠다! (Exegi monumentum aere perennius!) 자연은 이런 자부심으로 우리를 자극하여 창조로 나아가게 한다.

<순수이성비판>은 즉시 핵심으로 들어간다. “우리의 오성을 결코 경험의 영역에만 한정될 수 없다. 경험은 무엇이라는 말은 해주지만, 반드시 다른 것이 아니라 무엇이어야 한다는 말은 해주지 않는다. 진정으로 일반적인 진리는 절대 주지 않는다. ~ 내적 필연성이라는 특징도 갖고 있는 일반적 진리는 경험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즉 그 자체로 분명하고 확실해야 한다. ~ 이런 진리는 우리 정신의 내적 구조로부터, 우리 정신이 작동하는 자연적이고 불가피한 방식으로부터 그 필연적 성격을 끌어온다. 인간의 정신 (여기에서 마침내 칸트의 위대한 명제가 등장한다)은 경험과 감각이 절대적이면서도 변덕스러운 의지를 기록하는 수동적 밀랍이 아니며, 일련의 또는 일군의 정신적 상태에 붙여놓은 한낱 추상적 이름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정신은 감각 결과를 관념으로 만들고 조정하는 적극적 기관,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하나 경험을 질서 있게 통일된 사고로 변형하는 기관이다.

 

1 선험적 감성론

358 정신에 내재한 구조 또는 타고난 사고의 법칙을 연구하려는 노력이 칸트의 선험적 철학이다. 이것은 감각 경험을 초월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상보다는 우리의 선험적 대상 개념” – 우리가 경험을 인식과 관련시키는 양식 관여하는 인식을 선험적이라고 부른다.”

 

360 감각이나 사고는 하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부름을 기다리며, 우리가 요구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이들을 선별하고 지휘하는 작용이 바로 이들을 사용하는 주인인 것이다. 감각 경험과 관념 위에 정신이 있는 것이다. ~

공간과 시간은 선험적이다. 모든 질서 잡힌 경험이 그것들과 관련되고 그것들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공간과 시간이 없으면, 감각은 절대지각으로 자라날 수가 없다. 공간과 시간은 선험적이다.

감각이나 사고를 하인으로 부르는 우리는 누구지?

 

2 선험적 분석론

362 정신은 경험의 조정인 것이다. ~

감각 경험은 조직되지 않은 자극이고, 지각은 조직된 감각 경험이며, 개념은 조직된 지각이고, 과학은 조직된 지식이며, 지혜는 조직된 삶이다. 뒤로 갈수록 질서, 순서, 통일성의 등급이 높다.

 

363 세상에는 저절로 질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인식하는 사고 자체가 질서를 잡기 때문에 세상에 질서가 생기는 것이다.

 

3 선험적 변증론

364 결국 과학은 순진한 것이다. 사물 자체를 순수하게 외적이고 부패하지 않는 현실성 속에서 다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학은 그보다 약간 세련되어서, 과학의 모든 자료가 사물이라기보다는 감각, 지각, 개념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칸트의 가장 큰 장점은 현상과 물자체를 구분한 것이다.”

 

366 이 책이 한 일은 무엇인가? 이 책은 과학의 순진한 세계를 파괴했고, 과학의 수준까지는 아니라 해도 그 범위는 틀림없이 제한했다. 즉 단순한 표면과 겉모습의 세계만 다루도록 분명하게 제한했으며, 그 너머로 가면 우스꽝스러운 이율배반만 낳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런 식으로 과학을 구제한 것이다! ~

하이네에 따르면 칸트는 신을 죽였고, 신학의 가장 귀중한 논거들을 파괴했다.

니체가 신을 죽였는 줄 알았는데, 니체 이전에 이미 칸트가 있었다.

 

367 “ ~ 쾨니히스베르크의 시민들이 이 생각의 전체적 의미를 짐작했다면, 그저 사람을 죽일 뿐인 처형자보다 이 사람 앞에서 더 큰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선량한 사람들은 이 사람에게서 그저 철학 교수를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그가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면 친근하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고 시계를 맞추었을 뿐이다.”

 

4.     실천이성비판

367 신앙은 이성의 범위나 영역 너머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종교의 도덕적 기초는 절대적이어야 한다. ~ 우리가 원하는 종교의 기초는 절대적이고 정언적인 명령이어야 한다.

 

368 하나의 행동이 선한 것은 그것이 선한 결과를 낳았거나 지혜롭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내적인 의무감에, 우리의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전제적으로, 선험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행동에 대한 법률을 정하는 이런 도덕법칙에 복종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조건 없이 선한 것은 선한 의지, 즉 자신의 이익이나 손해에 관계없이 도덕법칙을 따르려는 의지뿐이다. ~ “본디 도덕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행복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건가? 철할을 공부한 사람만이 행복해질 가치가 있다고 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371 우리의 이성은 물자체의 배후에 정의로운 신이 존재한다고 자유롭게 믿도록 허락하며, 우리의 도덕 의식은 우리에게 그것을 믿으라고 명령한다. 루소가 옳았다. 심장의 느낌은 머리의 논리보다 위에 있다. 파스칼이 옳았다. 심장은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고, 머리는 이것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5.     종교와 이성에 관하여

372 교회와 교조는 인류의 도덕적 발달을 도울 때만 가치가 있다. 종교의 시험대로서 단순한 신조나 제의가 도덕적 우수성보다 우선권을 갖게 되면서 종교는 사라졌다. 진짜 교회는 아무리 흩어지고 나뉘어 있더라도 공동의 도덕적 법칙에 대한 헌신으로 통일되어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그리스도가 살고 죽은 것은 그런 공동체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가 바리새인의 교회주의와 대립하며 내세웠던 것이 이런 진짜 교회였다. ~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더 가까이 가져왔다. 그러나 그는 오해받았다. 그 결과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 대신 사제의 나라가 세워졌다.”

현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 온다면 어떤 취급을 받을지 생각도 해보고 토론도 많이 했었다. 결론은 사기꾼 취급 받고 2000년 전보다 더 심하게 배척 받았을 것 같다.

 

6.     정치와 영구 평화에 관하여

375 “이제 나는 시므온처럼 말할 수 있네. ‘주님, 이제 주께서는 이 종이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375 만일 사람들이 완전히 사회적이라면 인간은 정체할 것이다. 인간 종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와 경쟁이 어느 정도 섞여야 한다. “비사회적 특징이 없다면 …… 사람들은 완전한 조화, 만족, 서로에 대한 사랑 속에서 전원적인 목자 생활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경우 그들의 모든 재능은 영원히 맹아 상태로 감추어질 것이다.” ~ “따라서 이런 비사회적인 면, 이런 질투심과 허영심, 소유와 권력에 대한 이런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준 자연에게 감사해야 한다. …… 인간은 일치를 바란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 종에게 무엇이 좋은지 더 잘 알며,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힘을 새롭게 발휘하고, 타고난 능력을 더 계발할 수 있도록 불화를 일으킨다.

 

378 “모든 국가의 시민적 정체는 공화제가 되어야 하며, 선전포고는 국민투표로만 결정할 수 있다.” 전투를 직접 담당하는 사람들이 전쟁과 평화를 결정할 권리를 갖게 된다면, 이제 역사를 피로 쓰지 않을 수 있다.

매우 공감한다. 전쟁을 주장하고,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하는 나이든 사람들. 본인들이 직접 전쟁에 참여하라고 해도 그렇게 말할까?

 

7.     비판과 평가

381 칸트의 위대한 업적은, 외적 세계는 오직 감각의 결과로만 우리에게 알려진다는 것, 정신은 단순히 무력한 백지(tabula rasa), 감각 경험의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힘, 경험이 도달하는 대로 선별하고 재구성하는 경험임을 최종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382 도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도덕은 대체로 우연히 발전하는, 집단 생존을 위한 행동 규약이며, 집단의 본질이나 조건에 따라 변한다. ~ 칸트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어떤 행동도 그 자체로 선한 것은 아니다.

 

383 칸트의 철학에서 놀라운 점은 첫번째 비판에서 파괴된 것으로 보였던 신, 자유, 불멸 같은 종교적 관념들이 두번째 비판에서 힘차게 소생한다는 사실이다. 니체의 친구, 파울 레(1849~1901, 독일의 철학자)는 말한다. “칸트의 저작은 마치 시골 장터 같은 느낌이다. 칸트에게서는 의지의 자유와 속박, 관념론과 반()관념론, 무신론과 선한 주님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살 수 있다. 텅 빈 모자에서 뭔가를 꺼내는 마법사처럼 칸트는 의무의 개념으로부터 신, 불멸, 자유를 꺼내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한다.”

 

384 “내가 많은 것들에 아주 분명히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사실입니다. ... 다만 나에게는 그것을 이야기할 용기가 절대 없지요. 하지만 내가 확신하지 않는 것 또한 절대 말하지 않겠습니다.”

 

385 그의 영향은 19세기의 철학 사상 전체가 그의 생각을 중심으로 돌아갔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칸트 이후로 독일 전체가 형이상학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실러와 괴테는 그를 공부했다. 베토벤은 찬탄하는 마음으로 삶의 두 가지 경이, 머리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에 관한 유명한 말을 인용했다. 피히테, 셰링, 헤겔, 쇼펜하우어는 이 늙은 쾨니히스베르크의 현자가 제시한 관념론에 기초를 발전시킨 위대한 사상 체계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칸트가 위대한 철학가인 것은 알았지만 철학 외에 문학과 음악에도 영향을 끼쳤는 지는 몰랐다. 문학이나 음악도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것을철학을 너무 철학이라는 학문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8.     헤겔에 관한 메모

389 이 때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는 괴테가 문학계를 지배하고 베토벤이 음악계를 지배했듯이, 논란의 여지없이 철학계를 지배했다. 그의 생일은 괴테의 생일 다음 날이었는데, 이들을 자랑하는 독일은 이들을 기려 이 두 날을 공휴일로 정했다.

헤겔과 괴테가 위대한 사람들인 건 알겠는데, 두 사람의 생일을, 더구나 이틀 연속으로 공휴일로 지낸다니너무 부럽다.

 

391 셰링이 옳았다 밑바닥에는 대립물의 동일성이 있다. 피히테가 옳았다. – , , 합이 모든 발전과 실재의 공식이자 비밀이다.

사고만 이런 변증법적 운동에 따라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도 그렇게 발전하고 진화하기 때문이다. 일의 모든 조건에는 모순이 포함되어 있으며, 진화가 이루어지면서 그 둘을 화해시키는 통일에 의해 모순을 해결한다.

 

391 논리학과 형이상학은 하나다. 정신은 이런 변증법적 과정, 이런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지각하는 데 불가결한 기관이다. 정신의 기능과 철학의 임무는 다양성 속에 잠재해 있는 통일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윤리학의 과제는 성격과 행동을 통일하는 것이다. 정치학의 과제는 개인을 국가에 통합하는 것이다. 종교의 과제는 절대자에 이르고 그것을 느끼는 것인데, 이 절대자 속에서는 모든 대립물이 통일로 해소된다.

 

392 갈등은 성장의 법칙이다. 성격은 세상의 폭풍과 압박 속에서 구축된다. 사람은 강제, 책임, 고통을 통해서만 완전하게 성장한다. 심지어 고통에도 이유가 있다. 그것은 생명의 표시이자 재건의 자극제다. 감정 또한 만물의 존재 이유 속에서 자기 자리를 갖는다. “세상의 위대한 것들 가운데 감정 없이 완성되는 것은 없다.” ~ 삶은 행복이 아닌 성취를 위한 것이다. “세상의 역사는 행복의 무대가 아니다. 행복의 시기는 역사의 공백이다. 그때는 조화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 역사는 오직 현실의 모순들이 성장으로 해소되어, 젊음의 주저와 어색함이 성숙의 평안과 질서로 넘어갈 때 만들어진다. ~ 위인들은 미래를 낳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산파다. 산모는 시대정신이다. 천재는 다른 사람들이 쌓아 놓은 돌무더기 위에 돌 하나를 얹을 뿐이다. “운 좋게도 그는 마지막에 올 뿐이며, 마침 그가 돌을 얹었을 때 아치가 자기 힘으로 서게 된 것뿐이다.” “그런 개인은 자신들이 일반 관념을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 시대의 요구에 대한 통찰은 있다. 무엇이 곧 발전할 만큼 무르익은 상태인지 아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시대, 그들의 세계에서는 바로 진리다. 말하자면 다음에 나타날 종()은 이미 시대의 자궁 안에 형성되어 있다.

삶은 행복이 아닌 성취를 위한 것이다”, 역시 철학자의 말답다. 특히 어느 분야든 평범하지 않고 천재성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자의든 타의든 행복한 삶보다는 성취를 위한 삶을 살게 된다. 나도 성취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성취보다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천재가 아니라서 다행인 것 같다.

 

393 “40년간의 전쟁과 측량할 수 없는 혼란 뒤에 늙은 심장은 마침내 그 모든 것이 끝나고 평화로운 만족의 시기가 시작되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예순 살쯤 되면 평화를 요구할 권리가 있는 법이다. ~

그럼에도 모순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헤겔의 사상은 평화를 누릴 수 없었다. 다음 세대에서 그의 추종자들은 변증법적 숙명에 따라 헤겔 우파헤겔 좌파로 나뉘었다.

 

395 나폴레옹, 베토벤, 헤겔이 1년 사이에 태어났듯이, 1827년에서 1832년 사이에 독일은 괴테, 헤겔, 베토벤을 잃었다. 독일의 가장 위대한 시대의 마지막 훌륭한 노력이 마무리되면서 한 시대도 끝이 났다.

 

7장  쇼펜하우어

1.     시대

399 위대한 시대는 끝났다. 괴테는 말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끝장난 세계에서 내가 젊지 않다는 것을 신에게 감사한다.”

전 세대를 위대한 시대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젊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보다 젊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402 유럽의 혼돈은 우주의 혼돈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며, 어차피 신의 질서는 없고 천국의 희망도 없으며, 만일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눈이 멀었으며 지구는 악으로 덮여 있다는 것이었다. 바이런, 하이네, 레르몬토프, 레오파르디, 그리고 우리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그렇게 생각했다.

 

2.     인간

404 그는 자신의 위대성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거의 편집증적으로 의식했다. 성공과 명성을 놓치자, 그는 안으로 파고들어 자신의 영혼을 물어뜯었다. ~ “그는 철저하게 혼자였으며, 친구 한 명 없었다. 하나라도 있는 것과 하나도 없는 것 사이에는 무한한 차이가 있다.”

본인의 천재성, 위대함을 본인만 알고 남들이 몰라줄 때 얼마나 불행할까? 그가 비관주의로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겠다. 그런데 그에게 친구가 있었다면 그런 작품, 연구 결과 등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개인에게는 불행하지만 인류에게는 다행이라고 할까? 천재들의 저주, 숙명인 것 같다.

 

404 그는 그의 걸작이 될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모든 시간과 힘을 쏟았다. 이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며 그는 이 원고는 낡은 관념들을 고쳐 말한 것이 아니라 독창적 사상의 매우 일관된 구조물로서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힘이 넘치며, 아름다움도 없지 않다라고 한껏 자랑했다. ~

이런 작품들은 거울과 같다. 바보가 들여다보는데 천사가 내다보지는 않는다.”

 

3.     표상으로서의 세계

408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펼치는 순간, 즉시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그 문체다. ~ 모든 것이 명료하고 질서가 잡혀 있다. 모든 것이 의지로서의 세계라는 중심 개념, 따라서 투쟁의 세계이고, 따라서 비참한 세계라는 중심 개념으로 감탄할 만하게 집중되어 있다. 단도직입적일 정도로 정직하고, 기분이 상쾌할 정도로 힘차고, 비타협적일 만큼 직접적이다! ~ 쇼펜하우어는 상인의 아들답게 구체성이 풍부하고, 예가 풍부하고, 응용이 풍부하고, 심지어 유머도 풍부하다.

 

410 “겸손이란 위선적 자기비하에 불과하며, 질투로 가득 찬 세상에서 탁월함과 장점이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서 용서를 얻고자 하는 수단이다.” “겸손이 미덕이 된다면 그것은 바보에게 아주 유리한 상황임이 틀림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모두 자기가 바보인 것처럼 이야기를 할 테니 말이다.”

나 역시 겸손이 큰 미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없는 것, 못 하는 것을 잘한다고 과장해서는 안 되겠지만 잘 하는 것, 특히 할 수 있는 것들은 솔직하게 말하고 커뮤니티에 본인의 재능이나 물질을 공헌하고 남들과 나누는 사람이 더 좋다.

 

412 “우리는 바깥으로부터는 사물의 진정한 본질에 결코 이를 수 없다. ~” 그 안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 정신의 궁극적 본질을 찾아낼 수 있다면, 외적 세계를 여는 열쇠도 손에 넣을지 모른다.

 

4.     의지로서의 세계

1 살려는 의지

413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형이상학적 동물이라고 부른다. 다른 동물들은 형이상학 없이 욕망을 갖기 때문이다.

 

414 “사람은 겉으로 보면 앞에서 끄니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뒤에서 미니까 움직이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 이끌려 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느끼는 것에 의해, 반은 그 작용을 의식하지도 못하는 본능에 의해 떠밀려 간다는 것이다.

 

416 생명은 잠에 대한 투쟁이다. 처음에는 우리가 잠에서 영토를 빼앗지만, 결국은 잠이 도로 찾아간다. 잠은 죽음의 일부를 빌려와 생명 가운데 낮에 소진한 부분을 갱신하여 유지하는 것이다.” 잠은 우리의 영원한 적이다. 깨어 있을 대도 잠은 우리를 부분적으로 점령하고 있다. ~ 머리의 가장 지혜로운 부분은 매일 밤 가장 이상하고 가장 말이 안 되는 꿈이 나타나는 현장이고, 꿈에서 깨어난 뒤에야 다시 명상을 이어가는데.

이렇게 매주 일요일 밤, 밤을 새워서 북리뷰를 쓰고 칼럼을 마치다 보면 삶이 잠에 대한 투쟁이라는 말이 매우 실감된다.

 

418 의지는 살려는 의지이며, 그 영원한 적은 죽음이다.

혹시 이 의지가 죽음조차 물리칠 수 있을까?

볼테르와 마찬가지로 쇼펜하우어도 죽음-자살의 유혹을 느꼈던 걸까? 다시 한번 평범한 나의 삶에 감사한다.

 

2 재생산의 의지

418 재생산은 모든 유기체의 궁극적 목적이자 가장 강한 본능이다. 그렇게 해야만 의지가 죽음을 정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정복하기 위해 재생산의 의지는 지식이나 사고가 거의 통제할 수 없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심지어 철학자도 가끔 자식을 둔다.

하지만 요즘에는 더 이상 재생산의 의지가 인간의 가장 강한 본능은 아닌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인간이 이런 세상에 자식을 낳아서 키워야겠다는 의지가 없다. 그런데 철학자들은 왜 재생산의 의지가 약했던 걸까?

 

424 모든 사람은 심지어 개별적 행동을 할 때도 자신이 선험적으로 (a priori) 완벽하게 자유롭다고 믿으며, 매 순간 다른 방식의 삶을 시작할 수 잇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곧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서 (a posteriori) 자신이 자유롭지 않고 필연성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 자신의 모든 결단과 사유에도 불구하고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 태어날 대부터 죽을 때까지 스스로 비난하는 바로 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 다시 말해서 마지막까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연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란다.

 

5.     악으로서의 세계

424 의지는 늘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보다 큰 것을 쥐려 하기 때문이다. 충족되는 소망이 하나라면, 충족되지 않는 소망은 열이다. 욕망은 무한하며, 충족은 제한적이다.

 

425 아리스토텔레스가 옳다. 지혜로운 사람은 쾌락을 구하려 하는 대신 걱정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426 우리는 성공을 거둘수록 지겨워진다. “결핍이 민중의 변치 않는 천벌이듯, 권태는 상류사회의 천벌이다. 중간계급의 삶에서 권태는 일요일로 상징되고, 결핍은 주중의 나날로 상징된다.

특히 어린 나이에 성공을 거뒀거나 부자 부모를 둔 사람이 권태를 넘어 타락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런 의미에서 인생은 공평한 것일 수도

 

426 인식이 명료해지는 것에 비례하여, 의식이 상승하는 것에 비례하여 고통도 증가하며, 결국 인간에게서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한다. 또 인간의 경우도 인식이 명료할수록, 지능이 높을수록 고통도 커진다. 천재가 가장 큰 고난을 겪는다.

 

427 심지어 기억과 선견지명도 인간을 더 비참하게 할 뿐이다. 우리의 고난 대부분은 돌이켜보거나 기대하는 데서 오기 때문이다. 사실 고통 자체는 짧다.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생각하는 데서 훨씬 큰 고통이 생기는 법이다!

 

428 삶의 전모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똑바로 보기도 힘들다. 삶은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에 유지된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너무 본인의 케이스만 생각하고 인생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 죽음이 가까워진 사람도 의연하고 담대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죽기 직전 단 며칠 정도라도 정신을 잃어서 곧 죽을 거라는 걸 모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428 우리는 혼자일 때 불행하고, 함께일 때 불행하다. 우리는 온기를 얻으려고 함께 웅크린 고슴도치들 같아서, 너무 빽빽하게 모여 있으면 불편하고 떨어져 있으면 비참하다. 아주 우스꽝스럽다. “모든 개인의 삶은 전체로서 살펴보면 …… 그리고 그 가장 중요한 특징만 강조하면 사실 늘 비극이다. 하지만 자세히 파고들면 희극의 특징이 있다.” 잘 생각해보라.

 

430 행복해지려면 아이처럼 무지해야 한다. 아이는 의지를 갖고 노력하는 것이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피곤함, 충족의 보람 없음을 아직 알지 못한다. 아직 좌절의 불가피함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431 신학이 죽음에서 벗어나는 피난처이듯이, 광기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피난처다. “광기는 고난의 기억을 피하는 방법으로서 찾아 온다.” 광기는 의식이라는 실을 끊어 구원을 얻는 것이다. 어떤 경험이나 두려움은 오직 그것을 잊을 때에만 살아남을 수 있다.

 

6.     삶의 지혜

1 철학

433 “~ 그러나 돈만은 모든 소망의 추상적 만족이기에……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다.” 그럼에도 부를 기쁨으로 전환할 방법을 모른다면 부를 얻는 데 헌신하는 삶은 의미가 없다. 사실 이것은 교양과 지혜가 필요한 기술이다. 계속 감각적인 것만 추구하면 결코 오랜 만족을 얻지 못한다. 재산을 모으는 기술만이 아니라 삶의 목적도 이해해야 한다.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보다는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행복에 더 기여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사람들은 교양을 얻는 것보다는 부자가 되는 것에 훨씬 집중한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돈이 모든 소망의 추상적 만족이고,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라는 말은 좀 과장된 것 같다. 건강, 행복, 사랑, 일부 성취 등 돈으로 추구되지 않는 소망도 있다.

 

434 “우리가 열정을 깊이 알면, 열정은 우리를 통제하지 못한다. “우리 자신에 대한 통제만큼 외적 강제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복종하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이성에 복종하라. 가장 경이로운 사람은 세상을 정복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정복한 사람이다.

 

435 우리가 어떤 주제에 관해 스스로 생각하기 전에 그 주제에 관해 읽는 것은 위험하다. …… 읽을 때는 다른 사람이 우리 대신 생각한다. 우리는 그의 정신적 과정을 되풀이할 뿐이다. …… 따라서 어떤 사람이 거의 온종일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 점차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 세상 경험은 일종의 텍스트로 볼 수 있으며, 생각과 지식은 주석을 이룬다. 생각과 지식은 많은데 경험이 거의 없을 경우, 그 결과는 페이지마다 본문은 두 줄인데 주석은 마흔 줄 달려 있는 책과 같다.

 

435 “다른 사람들의 머리는 진정한 행복의 거처로 삼기에는 한심한 곳이다.”

본인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 보인다. 정말 본인의 지능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했던 것 같다.

 

436 끝없는 의지라는 악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지적인 눈으로 삶을 바라보고,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위대한 인물의 성취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2 천재

437 “천재는 우리에게 마법의 거울을 보여주는데, 거기에는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이 가장 맑은 빛 속에 한데 모여 자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우연적이고 이질적인 것은 배제된다.” 햇빛이 구름을 뚫듯 생각이 열정을 꿰뚫어 사물의 핵심을 드러낸다. 생각은 개인적이고 특수한 것을 넘어 플라톤적 이데아’, 즉 개별적 형태의 보편적 본질에 이른다. ~ 개인은 그 특질과 실재를 드러내는 상징과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천재의 비밀은 객관적이고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공평무사하고 명료하게 인식하는 데 있다.

 

438 “철학, 정치, , 예술에서 뛰어난 사람들은 모두 기질이 우울한 것처럼 보인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역시 옳다. ~ “지성과 관련하여 천재는 본성적으로 아주 귀족적이다. 지성에 따른 구별은 어떤 나라에서건 출생. 지위. . 계급에 따른 구별보다 크다.”

다시 한번 천재가 아닌 평범한 삶에 감사한다. 그런데 지성에 따른 차별이 출생, 지위, , 계급에 따른 차별보다 크다는 말은 요즘 우리 사회에는 아주 딱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지성이 있는 것이 없는 것 보다는 훨씬 좋다.

 

3 예술

439 인식을 의지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해주고, 이렇게 개인적 자아와 그 물질적 이해관계를 잊게 해주고, 이렇게 정신을 의지 없이 진리를 명상하는 수준으로 고양하는 것이 예술의 기능이다.

 

439 예술 작품은 예술이 표현하는 대상이 속한 집단의 플라톤적 이데아, 즉 보편적인 것을 보여주는 만큼 성공을 거둔다. 따라서 한 인물의 초상은 사진처럼 충실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그 인물을 통해 인간의 어떤 핵심적이거나 보편적인 특질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 과학은 재능과 더불어 나아가지만, 예술은 천재를 요구한다.

 

440 우리를 의지들의 다툼 위로 고양해주는 예술의 이런 힘은 무엇보다도 음악이 소유하고 있다. “음악은 다른 예술들과는 완전히 달라서 이념을, 즉 사물의 본질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 자체를 복제한다.” 음악은 영원히 움직이고 다투고 배회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늘 자신에게로 돌아와 새로 다투기 시작한다. “그래서 음악의 효과가 다른 예술보다 강력하고 예리한 것이다. 다른 예술은 그림자만 이야기하는 반면, 음악은 사물 자체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미술보다 음악에 재능과 관심이 커서 그렇기도 하지만, 음악에 이런 힘이 있다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4 종교

442 기독교는 세속적 사치와 권력의 한가운데서 싸우기를 거부하고 개인적 의지를 절대적으로 극복한 성자의 이상, 즉 그리스도안의 바보를 내세웠다.

불교는 기독교보다 심오하다. 의지의 파괴가 종교의 모든 것이며, 니르바나가 모든 개인 발달의 목표라고 설교하기 때문이다. 힌두교도는 유럽의 사상가들보다 생각이 깊다. 그들의 세계 해석이 외적이고 지적이지 않고 내적이고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

궁극적 지혜는 니르바나다. 자신의 자아를 욕망과 의지가 최소한인 상태로 줄이는 것이다. 세계 의지는 우리 의지보다 강하다. 따라서 즉시 항복하자. “의지를 자극하지 않을수록 고난도 줄어든다.”

 

443 “~ 모든 이성을 넘어선 평화, 정신의 완벽한 고요, 깊은 안식,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과 고요…… 가 완전하고도 확실한 복음이다. 오직 인식만 남고 의지는 사라진 상태다.”

 

7.     죽음의 지혜

443 물론 의지의 최종적이고 근본적인 정복은 오직 생명의 원천, 즉 재생산의 의지를 막는 데 있을 수밖에 없다. “재생산 충동의 충족은 삶에 대한 욕구의 가장 강한 긍정이기에 본질적으로, 철저하게 비난할 만하다.” 이 어린아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태어나야 한단 말인가?

위에 언급한 대로 나는 재생산의 의지가 없다. 오히려 이 어린아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태어나야 한단 말인가?’라는 말에 공감한다. 아마 재생산의 의지가 없는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마음일 것 같다.

 

444 자연은 여자들에게 몇 년 동안 큰 아름다움과 매력을 아낌없이 선물로 주는데, 그 대가는 여자들의 나머지 인생이다.

다소 과장된 면이 있기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446 의지에 맞서 도전하는 용기, 삶의 아름다움은 거짓이고 가장 큰 은혜는 죽음이라고 말할 용기를 우리는 언제쯤에나 가질 수 있을까?

 

8.     비판

447 자연의 외적인 의지를 인간의 의지보다 훨씬 강한 것으로 보고, 기꺼이 체념과 절망의 가르침에 다가가는 것이 동양의 특징이다.

 

447 비관주의자가 되려면 여가가 있어야 한다. 활동적인 생활은 거의 언제나 몸과 마음에 좋은 기분을 가져온다. ~ 쇼펜하우어에게는 계속 여가를 누릴 만한 돈이 있었으며, 그는 지속적인 여가가 지속적인 일보다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철학자들의 우울해지는 경향은 앉아 있는 직업의 부자연스러움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 대한 공격은 단순히 배설의 기술을 잃어버린 병의 증상에 불과한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환경에도 감사해야겠다.

 

448 “적에게 감추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친구에게 말하지 마라.”

동감. 다소 씁쓸하긴 하지만 맞는 말이다. 말이 많다는 것 자체가 별로 좋을 게 없는 것 같다.

 

448 존재에 대한 거만한 혐오는 어쩌면 우리 자신에 대한 은밀한 혐오의 위장인지도 모른다. 삶을 망치거나 실수를 해놓고 자신을 방어할 혀가 없는 환경이나 세상에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삶의 자연스러운 한계를 받아들인다. 섭리가 자신에게 좋은 쪽으로 구부러지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448 사실 세상은 우리 편도 아니고 적도 아니다. 우리 손에 쥐어진 원료일 뿐이며, 우리가 하는 바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

젊음은 세상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 비관주의는 낙관주의가 지나가고 난 뒤의 아침이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것도 없다는 의미에서의 비관주의는 괜찮을 것도 같다.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말자. 너무 크게 실망하지 않도록

 

449 쇼펜하우어는 싸우다 지는 것이 전혀 싸우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450 오랜 가르침이 말하듯, 행복은 소유나 충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취에 있다. 건강한 사람은 행복을 구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구한다. 이 자유와 이 능력에 고통의 형벌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면 즐겁게 벌금을 낸다. 그렇게 큰 대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우리의 힘을 벼르고 성장을 자극할 장애물이 필요하다. 비극 없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

 

450 볼테르는 당연히 시골 여자의 행복한 무지보다 브라만의 불행한지혜를 선호했다. 우리는 고통이라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강렬하고 심오하게 삶을 경험하고 싶어한다.

 

451 죽음이 무섭다는 것은 물론 여전히 진실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 그 공포의 많은 부분은 사라진다. 따라서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의 최대 화두인 것 같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잘 살아 보세.

 

452 그는 사랑에서 인류를 위한 개인의 희생만 보며, 본능이 그러한 희생을 보상하는 기쁨은 무시한다 이 기쁨이 너무 커서 세상 대부분의 시가 거기에서 영감을 얻는데도!

좀 안 됐다는 생각도 든다. 혹시 나는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은 지 돌아봐야겠다.

 

454 결국 쇼펜하우어는 심리학자들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본능의 힘과 그 포착하기 힘든 깊이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었다. 지성주의 인간이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동물로서, 이성적으로 선택한 목적에 의식적으로 수단을 맞춘다는 개념 는 루소에서 병이 들어, 칸트에서 자리에 눕고, 쇼펜하우어에서 죽음에 이르렀다. 철학은 200년에 걸친 내성적 분석 끝에 생각 뒤에서 욕망을 발견했고, 지성 뒤에서 본능을 발견했다.

 

454 마지막으로 쇼펜하우어는 과장은 있었지만 천재의 필요성과 예술의 가치를 우리에게 다시 가르쳐 주었다. 그는 궁극적 선은 아름다움이며, 궁극적 기쁨은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임을 알았다. ~ 그리고 그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웅들의 명단에 또 하나의 이름을 보탰다.

 

8장  허버트 스펜서

1.     콩트와 다윈

457 회의주의를 전공으로 삼은 프랑스인들이 실증주의운동의 창건자 (모든 발상에 유서 깊은 역사가 있는 철학에 그런 인물이 존재한다면)를 배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459 형이상학은 발달이 정지된 단계다. 따라서 이제 유년기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콩트는 말한다. 그에게 철학은 과학과 다르지 않다. 철학은 인간 생활의 개선을 목표로 모든 과학을 조정하는 것이다.

 

461 스펜서가 이런 사상적 물결의 정점에 올라선 것은 진화의 개념을 모든 연구 영역에 적용하자고 제안한 명석한 정신, 그리고 거의 모든 지식이 그의 이론에 경의를 표하게 만든 폭넓은 정신 때문이었다.

 

461 각각의 경우에 획기적인 관념은 한 개인의 단편적 생산물이었으며, 대체로 모호했다. 이런 관념들은 그것을 조정하고 명료하게 밝힌 사람들의 것이 된다.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지도를 그렸다는 이유로 신세계에 그의 이름이 붙여진 것과 마찬가지다. 하버트 스펜서는 다윈 시대의 베스푸치였으며, 동시에 콜럼버스와 비슷한 면도 있었다.

다윈의 이름을 철학책에서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철학과 과학. 완전히 동떨어진 다른 학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책을 읽을수록 나의 무식함을 깨닫게 된다.

 

2.     스펜서의 발전

464 스펜서는 어디에서 그의 수많은 주장을 뒷받침할 그 무수한 사실들을 찾아낸 것일까? 대부분 독서보다는 직접적인 관찰로 손에 넣었다”. “그의 호기심은 늘 깨어 있었으며, 그는 늘 그때까지는 혼자만 관찰하고 있던…… 주목할 만한 현상을 이야기하여 함께 잇는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 책에서 배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교양도 없지만, 그럼에도 일하고 살면서 배우는 사람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지식을 갖춘 정신이었다.

 

465 그런 시도에 대한 찬반 이유를 나란히 늘어 놓고 각 이유에 점수를 매긴 것도 스펜서다운 행동이었다. 영국에 남을 이유가 얻은 점수의 합계는 110이고 이민 갈 이유의 점수 합계는 301이었지만, 그는 영국에 남았다.

그의 성격에는 그 장점에 수반되는 결함이 있었다. 단호한 현실주의와 실용적 감각에 대한 대가로 시와 예술 쪽의 감각과 열의는 부족했다.

완전 내 얘기다. 나도 중요한 일을 선택하게 될 때 스펜서처럼 pros & cons 리스트를 만들고 각각에 중요도를 부여해서 점수를 매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는 좀 더 마음이 가는 쪽을 선택한다.

 

468 스펜서는 마흔 살에 이렇게 썼다. “오늘날까지 나의 인생은 잡다했다고 말하면 적절할 것이다.”

이 또한 내 얘기 같다.

 

3.     1 원리들

1 알 수 없는 것들

473 과학자는 인간 지성의 위대함과 하찮음을 동시에 알게 된다. 경험의 범위 내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다루는 데는 힘을 발휘하지만, 경험을 넘어선 모든 것을 다루는 데는 무능하기 때문이다.

 

474 과학이 신을 부정하거나 유물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그만두게 하자. 정신과 물질 또한 상대적 현상이며, 본질을 알 수 없는 궁극적 원인의 이중의 결과일 뿐이다. 이 헤아릴 수 없는 힘에 대한 인식이 모든 종교에서 진리의 핵심이며, 모든 철학의 시작이다.

 

2 진화

475 “진화는 물질의 통합과 거기에 따르는 운동의 소실이다. 이 과정에서 물질은 정의할 수 없고 일관성도 없는 동질성으로부터 한정되고 일관성 있는 이질성으로 넘어간다. 또 이 과정에서 유지되는 운동도 유사한 변화를 겪는다.”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저자가 이렇게 쓴 걸 보면, 번역을 어렵게 해서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닌가 보다.

 

477 무엇이든 확산에서 통합과 통일로 가는 것, 동질적 단순성에서 분화된 복잡성으로 가는 것(1600~1900년 미국 참조)은 진화의 흐름 안에 있다. 무엇이든 통합에서 확산으로 가는 것, 복잡성에서 단순성으로 가는 것(200~600년 유럽 참조)은 사멸의 썰물을 타고 있다.

 

479 우리는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죽음은 저절로 처리될 문제이기에 우리는 생명을 생각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 성공을 거둔 인생을 마감할 무렵, 스펜서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너무 멀리 내다보는 바람에 존재의 작고 유쾌한 형태와 색채가 깡그리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가버리는 철학자의 병을 앓았던 것이다.

죽음은 걱정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만 겪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겪게 되는, 어쩌면 유일하게 평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걱정하지 말고 잘 죽기 위해 잘 살자.

 

480 지혜로운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믿음을 존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보는 최고의 진리를 두려움 없이 말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결과가 오든 자신이 세상에서 올바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이 목표로 삼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해도 그 또한 좋다는 것, 비록 전자의 경우만큼 좋지는 않아도 그래도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4.     생물학: 생명의 진화

481 재생산율은 개체가 발달하고 능력이 향상되면서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조직 수준이 낮아 외적 위험과 다툴 능력이 적을 경우에는 그로 인한 사망률을 보상하기 위해 번식력이 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종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타고난 것이 많아 자기보존 능력이 뛰어날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여 번식 수준이 낮아질 수박에 없다.” 그래야 증가율이 먹이 공급을 넘어서지 않기 때문이다.

 

5.     심리학: 정신의 진화

485 본능과 이성 사이에는 벌어진 틈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 내적 관계가 외적 관계에 적응한 것이며, 유일한 차이는 정도의 차이다. 본능이 반응하는 관계는 비교적 판에 박힌 단순한 것인 반면, 이성이 대응하는 관계는 비교적 새롭고 복잡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성적인 행동이란 단지 어떤 상황에서 다른 본능적 반응들과 싸워서 살아남은 특정한 본능적 반응들에 불과하다. ‘숙고란 경쟁하는 충동들이 서로 죽이는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밑바닥에서는 이성과 본능, 정신과 생명이 하나다.

 

6.     사회학: 사회의 진화

487 “프랑스 사람이 영국에 3주간 머물면서 영국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했다. 그는 석 달을 보내고도 아직 책을 쓸 준비가 안 되었음을 깨달았다. 3년이 지나자 자신이 영국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사람은 이제 사회학 연구를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특정 지역에 2~3년 정도 살고 그 곳에서의 특별한 경험이나 삶, 만난 사람 등에 대해 책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겨우 2~3년 살고 어떻게 책을 쓸까 싶은데, 오래 산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닌 법. 그렇다면 한국에 30년이 넘게 산 나는 한국에 대해서 전문가의 입장에서 책을 쓸 수 있을까? 책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관심과 애정을 가졌는가, 그리고 처음부터 책을 쓸 의도가 있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심과 애정을 갖자!

 

489 종교는 원시인의 삶에서 중심적 요소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삶이 너무 위태롭고 초라해서 그들의 영혼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 이루어진 현실보다는 다가올 것들에 대한 희망 속에서 산다.

 

490 실제로 서구 사회의 전체 역사에서 벌어진 가장 큰 변화는 군사 정권이 산업 정권으로 점진적으로 바뀐 일이다. 국가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사회를 그 통치 형태가 군주제냐, 귀족제냐, 민주제냐에 따라 분류한다. 그러나 이것은 피상적인 구분이다. 가장 큰 구분선은 군사적 사회와 산업적 사회, 전쟁으로 먹고사는 나라와 일해서 먹고사는 나라를 나누는 것이다.

 

491 애국심은 다른 모든 나라에 대한 증오라기 보다는 자신의 조국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 조국의 평화는 번영의 첫 번째 조건이 되며, 자본이 국제화하고 수많은 투자가 모든 국경을 넘으면서 국제적 평화도 필수 요소가 된다. 외국과의 전쟁이 줄면서 국내의 야만적 행위도 감소한다.

 

491 군국주의 사회와 산업 사회 사이의 차이는 개인들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이 국가가 개인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전환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개인의 이익이 국가나 조직을 위해서 희생하는 걸 어느 정도 당연히 여기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전환 중인가?

 

493 사회는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에는 가장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 어떤 기능들이 큰 보상을 받는다면, 그것은 특별한 위험이나 수고를 무릅써야 하는 일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상태의 인간은 강제적 평등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저절로 변화된 환경이 저절로 인간의 성격을 바꾸기 전에 인공적 변화를 시도하는 법률은 점성술만큼이나 쓸모가 없을 것이다.

 

494 “우리는 고용하는 계급이 한때 자행했던 불의에 필적할 만한 불의를 고용된 계급이 자행하는 광경을 곧 보게 될 것이다.”

이미 봤던 것 같다.

 

494 “높은 수준의 사회 유형으로 가게 되면 노동에 대한 규제는 강제성이 약해진다. 협동조합에서 우리는 연합된 행동과 양립할 만큼 강제성이 줄어든 형태에 이르게 된다. 각 구성원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는 자신의 주인이다. 구성원 다수가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만큼 세워놓은 규칙에만 복종한다. 이렇게 군국주의의 강제 협동에서 산업주의의 자발적 협동으로의 이행이 완성된다.” ~ 산업적 유형과 거기서부터 진화해 나아갈 유형 사이의 차이는 일을 위해 산다는 믿음이, 살기 위해 일한다는 믿음으로 전환되는 데에서 드러난다.

 

7.     윤리학: 도덕의 진화

496 보통 쾌감은 생물학적으로 유용한 행동의 표시고, 통증은 생물학적을 위험한 행동의 표시다.

 

501 즉 생명, 자유, 그리고 평등한 조건 속에서 만인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다. 이런 경제적 권리 외에 정치적 권리들은 중요하지도 않고 비현실적이다. 경제적 삶이 자유롭지 못한 곳에서 통치 형태의 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자유방임적 군주제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보다 훨씬 낫다. ~ 평등이 완전히 실현된 산업적 유형의 사회에 어울리는 국가의 정체(政體)는 물론 개인이 아니라 이해관계를 대표해야 한다. …… 산업적 유형의 사회는 어쩌면 협동조합 조직의 발전에 따라, 현재는 실제로 그렇지 않지만 이론적으로는 고용자와 패고용자의 구별을 없애게 되며, 이에 따라 적대적인 계급 이해관계가 존재하지 않거나 상황을 심각하게 만들지 않을 만큼 완화된 사회적 협약을 내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8.     비판

1 1 원리

504 “베르그송의 말에 따르면 스펜서는 다시 짜맞추기만 할 뿐 설명하지는 않는다. 스펜서는 그 자신도 마지막에 인식하듯이 세상에서 생명이라는 요소를 놓치고 있다.

다시 짜맞추는 것도 큰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스펜서는 흩어져 있던 사실들을 모아서 분류하고 짜맞추는 일을 했다. 물론 생명까지 부여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다음 사람에게 넘겨준 게 아니었을까?

 

505 스펜서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명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선험적이고 후천적인, 귀납적이고 연역적인 논거를 전개할 수 있는 바닥을 모르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 자신의 이론에 유리하지 않은 자료와 마주치면 그것이 환영할 만한 사실보다 쉽게 기억에서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서둘러 메모를 해놓았던 다윈의 방식과 비교해보라!

 

2 생물학과 심리학

506 그는 생물학 이론의 주요한 결함은 그가 라마르크에게 의지하는 바람에 역동적인 생명 개념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생명을 물리화학적 맥락에서 생각할 수 없다라고 고백하는데, “이 고백은 그의 진화 공식, 생명 규정, 종합 철학의 일관성에 치명적이다.”

다윈도 그렇지만 라마르크의 이름을 철학책에서 보게 될줄이야내가 철학을 너무 좁게 생각했었다.

 

3 사회학과 윤리학

509 스펜서는 지칠 줄 모르고 국가 간섭에 반대하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국가가 재정을 부담하는 교육이나 정부가 사기 금융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행위에 반대했다. 한번은 전쟁 관리를 국가의 일이 아니라 사적인 일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스펜서는 웰스의 말대로, “위엄 있는 국가 정책은 공권력의 약화이기를바랐다. ~ 그는 강렬한 개성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짜증을 부릴 정도로 남의 간섭을 싫어했다.

나도 남의 간섭, 정부 간섭 싫어하지만 어떻게 전쟁 관리를 국가의 일이 아니라 사적인 일로 다룰 수 있을까? 뭐라고 주장했는지 읽어보고 싶어졌다.

 

9.     결론

510 “어떤 사람도 그가 쓴 책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의 정신적 활동의 가장 좋은 결과물은 책으로 들어간다.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는 열등한 결과물과 섞이지만 책에서는 분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굳이 그를 만나러 오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자신의 귀에 귀마개를 집어넣고 평온하게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척했다.

귀마개를 끼고 손님들의 대화를 듣는 고집 센 늙은 철학자. 웃기기도 하고, 왠지 예전에 읽었던 고집쟁이 노인 동화책이 떠오른다.

 

511 그는 대책 없을 정도로 진지했으며, 모든 주제에 관해 솔직히 이야기하여 모든 집단의 비위를 거슬렀다. 노동자들에게 고용주들로부터 피해를 보는 사람이라고 공감을 표명한 뒤, 지위가 역전되면 노동자들이 권력을 휘두를 거라고 덧붙였다. 남자에게 피해를 당한다고 여자에게 공감한 뒤, 여자는 기회가 생기면 남자에게 피해를 준다고 어김없이 덧붙였다. 그는 외롭게 늙어갔다.

 

9장  프리드리히 니체

1.     니체의 혈통

515 니체는 다윈의 자식이고 비스마르크의 형제다.

 

516 똑똑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은 곧 모든 시대의 가장 심오한 정신들이 알고 있던 바를 인식했다.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이 전투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이 아니라 힘이며, 겸손이 아니라 자부심이며, 이타주의가 아니라 단호한 지성이라는 것, 평등과 민주주의는 선택과 생존이라는 결을 거스른다는 것, 대중이 아니라 천재가 진화의 목표라는 것, ‘정의가 아니라 권력이 모든 차이와 모든 운명의 중재자라는 것.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렇게 보았다. ~

새로운 독일의 성장하는 군사적. 산업적 힘에는 그것을 대변할 목소리가 필요했다. 전쟁을 통한 문제 해결에는 그것을 정당화할 철학이 필요했다. ~ 니체에게는 그런 대담함이 있었고, 그래서 그 목소리가 되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세상을 이런 눈으로 본다면 너무 삭막해서 별로 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철학가들이 우울하고 비관적이고 자살 충동에 시달렸나?

 

2.     청년 시절

517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그의 부모 양쪽의 조상에는 성직자들이 즐비했다. ~ 니체는 아마 참담한 결과를 낳은 한 번의 예외를 제외하면, 마지막까지 경건하고 청교도적이었으며, 조각상처럼 순결했을 것이다. ~ 이 구제불능의 성자는 죄인이 되기를 얼마나 갈망했던가!

매우 아이러니 하지만 한편 이해가 된다. 모범생일수록 일탈의 욕구가 큰 것 같다.

 

518 “내가 아닌 것, 그것이 나에게는 신이자 미덕이다.”

 

520 그는 건강 문제로 군인이 될 수 없었기에 군인을 숭배했다. ~ 그는 별나게도 이렇게 앉아서 하는 일, 곧 영웅과는 거리가 먼 일을 택한 것을 후회했다. ~ 그는 피아니스트 비슷한 존재가 되었고, 소나타도 섰다.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실수일 것입니다.” 니체는 그렇게 말했다.

 

521 사실 그는 너무 예민하고 민감하여 간호 일에도 적당치 않았다. 피만 보아도 몸이 아팠다. ~ 전사의 갑옷을 입은 소녀의 영혼이었던 것이다.

 

3.     니체와 바그너

522 그리스 드라마가 지닌 가장 심오한 특징은 디오니소스가 예술의 힘으로 비관주의를 정복한 점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우리가 근대의 열광적인 찬양에서 만나는 모습과는 달리, 명랑하고 낙관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삶의 아픈 면들을 깊이 알고 있었으며, 또 그 삶이 비극적으로 짧다는 점도 알았다. ~ “ ~ 최선의 운명은 얻을 수 없는 것, 즉 태어나지 않는 것, 무의 상태로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좋은 운명은 일찍 죽는 것이다.” ~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환멸로 인한 우울을 찬란한 예술로 극복했다. ~ “숭고함은 두려운 것을 예술로 정복하는 것이다.”

재생산의 의지는 없지만 최선의 운명이 태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찍 죽는 것이 좋은 운명이라고도뭐가 이렇게 그들을 비관적으로 만들었을까? 문득 2년 반 전 아테네 여행 때에 봤던 그리스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화가 잔뜩 난 것 같고 우울해 보이던 아테네 시민들.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이 불쾌감이 가득한 얼굴들. 그 때는 경제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가보다고 생각했었는데, 2000년 전에도 그리스 사람들은 환멸로 인한 우울로 가득했구나. 예술로 극복했다니 다행이란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아테네는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526 이 에세이들 가운데 가장 의욕적인 것은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이 에세이는 바구너가 두려움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지크프리트이며, 모든 예술을 하나의 커다란 미적 종합체로 융합하려는 첫 번째 인물이기에 진정으로 유일한 예술의 창건자라고 찬양한다.

 

528 “나는 그 자신을 향한 솔직함과 진지함이 결합되지 않은 위대성을 인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 점이 눈에 띄는 순간, 그 사람의 성취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그는 반역자 지크프리트가 성자 파르지팔보다 좋았으며, 바그너가 기독교에서 그 신학적 결함을 훌쩍 뛰어넘는 도덕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본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529 니체는 말년의 광기에서 정신이 맑아지는 순간이면 오래전에 죽은 바그너의 사진을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을 나는 무척 사랑했다.”

바그너의 이름을 철학책에서 볼 거라고도 생각 못 했었다. 더욱이 니체와 이런 인연이 있었다니어느 분야에서든 천재들은 서로 알아보고 존경심이 포함된 사랑을 하는 것 같다.

 

4.     차라투스트라의 노래

531 니체는 갑자기 사라에 빠져버렸다. 그러나 루 살로메는 그를 사랑해주지 않았다. ~ 니체는 절망하여 달아나면서 여자를 비판하는 경구를 썼다. 사실 그는 순진하고 열광적이고 낭만적이고 단순하다고 할 만큼 부드러웠다. 그런 그가 부드러움과 전쟁을 벌인 것은 자신을 씁쓸한 기만과 치유되지 않는 상차로 이끈 미덕을 떨쳐내려는 시도였다.

 

531 나는 그곳에 앉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았다. 선과 악을 넘어서서 가끔은 빛을, 또 가끔은 어둠을 즐겼다. 오직 낮, 호수, 정오, 끝없는 시간만 있었다. 나의 친구여, 그때 갑자기 하나가 둘이 되었고, 차라투스트라가 내 옆을 지나갔다.

이제 그의 영혼이 치솟아 가장자리까지 흘러넘쳤다.” 그는 조로아스터라는 새로운 스승, 초인이라는 새로운 신, 영겁회귀라는 새로운 종교를 발견했다.

 

532 모든 위대한 영혼의 영()과 선()을 다 모은다 해도, 그 전체로도 차라투스트라의 말 가운데 단 한마디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536 “네 능력을 넘어선 것은 바라지 마라. …… 네 능력을 넘어선 덕을 가지려 하지 마라. 너 자신에게 있을 수 없는 것을 요구하지 마라.” 오직 초인만이 아는 행복은 우리 것이 아니다. ~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짓을 오래전에 중단했다. 지금 나는 나의 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능력을 넘어선 것은 바랄 때 인생이 불행해진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나의 일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다.

 

5.     영웅 도덕

539 굴종은 자기 비하, 무력감을 낳고 이타주의를 낳는다 이타주의는 결국 도와달라는 호소다. 이런 무리의 도덕에서 위험과 힘에 대한 사랑은 안정과 평화에 대한 사랑에 자리를 내준다. 힘은 교활함으로 바뀌고, 공개적 복수는 은밀한 복수로 바뀌고, 엄격함은 동정으로 바뀌고, 창의성은 모방으로 바뀌고, 명예에 대한 자부심은 양심의 채찍으로 바뀐다.

 

539 연민은 사람을 마비시키는 정신적 사치이며, 대책 없을 정도로 망가진 자, 무능한 자, 정신장애자, 타락한 자, 비난받을 병자, 돌이킬 수 없는 범죄자를 가엾게 여기는 쓸모 없는 감정이다. 연민에는 야비함과 주제넘음이 있다. 예를 들어 문병에서 우리는 이웃의 무력함을 바라보며 우월감의 절정을 맛본다.

 

540 “ ~ 사랑은 모든 감정 가운데 가장 이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장애에 부딪히면 가장 인색해진다.” 진리에 대한 사랑에도 그것을 소유하려는 욕망, 어쩌면 그 첫 소유자가 되려는, 그것을 처녀 상태로 발견하려는 욕망이 있다. 겸손은 권력의지의 보호색이다.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랑은 모든 감정 가운데 가장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어쩌면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서 그럴 것 같다.

 

542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은 강한 의지, 힘차게 지속되는 열정이다. 열정이 없으면 사람은 행동하지 못하는 유액에 지나지 않는다. 탐욕, 질투, 심지어 증오도 투쟁에서, 선택과 생존에서 불가결한 항목이다. 선에게 악은 유전의 변이와 같으며, 관습의 혁신이나 실험과 같다. ~ 악하지 않다면 선은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선한 것에 주의해야 한다. “인간은 더 선해지고 더 악해져야 한다.”

 

6.     초인

543 도덕이 친절이 아니라 힘에 있듯이, 인간 노력의 목표도 만인의 고양이 아니라 더 훌륭하고 강한 개인의 계발이 되어야 한다. “인류가 아니라 초인이 목표다.”

 

544 자연은 자신이 낳은 가장 훌륭한 생산물에게 매우 잔인하다. 자연은 오히려 평균적이고 평범한 것을 사랑하고 보호한다. ~ 초인은 인간 선택, 우생학적 선견지명, 귀족 교육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다.

 

547 “단순히 대중의 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자신에게 관대하지만 않으면 된다.” 남들에게도 가혹하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가혹할 수 있는 목표를 가지기만 하면 된다. 친구를 배신하는 것 외에 거의 어떤 짓이든 하겠다고 결심할 만한 목표를 가지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고귀함의 궁극적 표지이며, 초인의 최종적 공식이다.

나는 남에게도 나에게도 가혹한 목표를 갖고 싶지 않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 나의 능력을 넘어선 것을 바라지 말고, 가혹한 목표를 갖지 말고 즐길 수 있는 목표를 갖고 만족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살려고 한다.

 

7.     퇴폐

551 알피에리가 자랑했듯이 이탈리아에서는 인간이라는 식물이 가장 힘차게 자란다. 가장 저급한 이탈리아인에게서도 남자다운 태도, 귀족적 자부심을 찾아볼 수 있다. “가난한 베네치아의 곤돌라 사공이 베를린의 추밀 고문관보다 인물이 나으며, 사실 인간도 낫다.”

 

8.     귀족주의

555 돈이 있는 인간이 그렇게 엄청난 숭배와 질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19세기 문화가 열등하다는 표시다. 그러나 이 사업가 또한 노예, 판에 박힌 일의 꼭두각시이고, 바쁜 생활의 피해자다. 그들은 새로운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생각은 금기이며, 지성의 기쁨은 그들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그래서 그들은 불안하여 늘 행복을 찾지만, 그들의 큰 집은 결코 가정이 아니고, 그들의 천박한 사치품에는 취향이 없으며, 그들이 수집한 진품그림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고, 그들의 관능적 오락은 정신을 자극하여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뎌지게 한다. “이 과잉을 보라! 그들은 부를 얻지만 그 때문에 더 가난해진다.” 그들은 귀족주의의 모든 제약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보상해주는, 정신의 나라에 다가갈 권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558 완벽한 인간은 몇 세대의 선택과 준비 끝에야 나온다. “어떤 사람의 현재 모습은 그의 조상들이 대가를 치른 결과다.”

 

9.     비판

560 “내 문체는 춤을 춘다.” 그는 말한다. ~ 나의 언어는 유연하고, 힘차고 예민하다. ~ 그러나 그를 다시 읽다보면 이런 반짝거림 가운데 일부는 과장에서 기인하고, 흥미롭기는 하지만 결국은 신경증적인 자기 중심주의 때문이고, 모든 개념을 너무 손쉽게 뒤집고 모든 미덕을 조롱하고 모든 악덕을 찬양하는 태도 탓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가 미숙한 사람처럼 충격을 주는 데서 기쁨을 맛본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도덕에 우호적인 태도를 버리면 흥미를 끌기가 아주 쉽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니체는 춤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나 문체와 글만 춤을 추고 실제로 몸을 이용해서 춤을 추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실제로 춤을 추는 삶을 살았더라면 좀 더 행복했을 것 같은데그랬더라면 이런 연구를 하지 못했을까?

 

562 “작품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저자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러나 니체는 자신을 전혀 감추지 않으며, 곧바로 모든 페이지에 일인칭으로 달려든다. ~ 바그너가 그 시대의 음악에서 그랬듯이, 그는 그 시대의 철학에서 낭만주의 운동의 정점이자 낭만주의 물줄기에서 가장 높이 솟은 파도였다. 그는 ~ 쇼펜하우어의 의지천재를 모든 사회적 제약에서 해방하고 찬양했다. 그는 루소의 혈통을 이은 마지막 위대한 상속자였다.

 

564 또 이따금씩 겸손을 냉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선량한 회색 시인(월트 휘트먼을 가리킨다)도 말하듯이 우리는 비하와 굽신거림은 할 만큼 했다.” 그러나 현대인의 인격에서 이런 자질이 지나치게 많이 관찰되지는 않는다. 이 점에서 니체는 그 자신이 철학에 그렇게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는 역사 감각이 부족하다.

 

565 전체적으로 니체는 사회적 본능의 자리와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이기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충동들이 철학으로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565 사랑을 탐색하다 좌절한 니체는 철학자답지 못한, 그리고 남자에게는 부자연스러운 원한에 사로잡혀 여자를 공격했다. 부모자식 관계를 놓치고 우정을 잃은 니체는 삶의 가장 좋은 순간들이 지배와 전쟁보다는 상호성과 동지애에서 온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다. 그는 설익은 진실을 지혜로 성숙시킬 만큼 오래, 또 폭넓게 살지 못했다. 더 오래 살았다면 그의 삐걱거리는 혼돈을 조화로운 철학으로 바꿀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그는 너무 일찍 죽었다.” 더 성숙한 나이에 이르렀다면 스스로 자신의 가르침을 철회했을 것이다. 그는 실로 철회할 수 있을 만큼 고상했다.”

좀 더 오래 못 살았던 건 아쉽지만 그가 좀 더 살았더라면 진짜 스스로 자신의 가르침을 철회했을까? 오히려 더 고집쟁이 노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역사에 가정은 제일 쓸 데 없는 짓이다.

 

568 유럽 철학의 공기는 니체의 글 덕분에 맑아지고 신선해졌다.

 

10.  피날레

569 “자기 시대의 도덕 체계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늘 끔찍한 일로 확인되곤 했다. 그렇게 하면 …… 안으로부터, 또 밖으로부터…… 복수를 당한다.”

 

571 니체는 1900년에 죽었다. 자신의 천재성에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른 사람도 드물 것이다.

 

10장 현대 유럽 철학자들

1.     앙리 베르그송

1 유물론에 대한 반발

577 유물론이라는 골리앗을 이길 운명을 타고난 다윗, 베르그송이 젊은 시절에는 열렬한 스펜서 지지자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너무 많이 알면 회의주의에 빠지기 마련이다. 젊은 시절 독실했던 사람은 배교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젊은 시절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늙어서 성자가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배신자가 되어 뒤통수를 칠 가능성이 높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슬프지만똑똑한 천재들이 또 철학자들이 우울할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

 

578 베르그송이 그렇게 빨리 명성을 얻은 것은 그가 의심 많은 사람들조차 경건하게 믿던 대목을 의심할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2 정신과 뇌

578 시간은 축적이기에 미래는 결코 과거와 같을 수 없다. 새로운 축적이 매 단계마다 일어나기 때문이다. “각 순간은 새로운 어떤 것일 뿐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어떤 것이다. ……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근본적이다.” ~ 적어도 의식적인 존재에게 존재하는 것은 변하는 것이며, 변하는 것은 성숙하는 것이고, 성숙하는 것은 자신의 자아를 끝없이 계속 창조하는 것이다.”

 

580 선택은 부담스럽고, 노력이 들어가며, 결단이 필요한 것으로, 충동이나 습관이나 나태라는 정신적 인력 작용에 맞서 인격의 힘을 들어 올리는 것이다. 선택은 창조이며, 창조는 노력이다.

 

3 창조적 진화

588 “우리는 기계론과 숙명론이라는 두 관점 모두가 그 본질에서는 인간 정신이 인간 활동을 고려하여 다다른 관점들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 생명은 노력하는 것, 위로 밖으로 계속 밀고 나아가는 것이다. “언제나 늘 변함없이 세계의 다산 충동이다.” 생명은 타성의 대립물이며 우연의 대립물이다. 성장에는 스스로 추진하는 방향이 있다.

재생산의 의지, 그런데 살아남을 수 있는 좋은 방향으로의 발전의 의미인 것 같다.

 

591 생명이 마침내 숙적인 물질에 최고의 승리를 거두어 필멸의 운명마저 벗어나게 될는지 누가 알겠는가? 열린 마음을 갖자. 심지어 우리의 희망에도 시간이 관대하다면 생명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 이들은 온갖 저항을 누르고 모든 완강한 방해물, 어쩌면 심지어 죽음까지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4 비판

593 베르그송의 웅변적인 도전이 지성주의의 과잉을 저지한 것은 건강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고의 자리에 직관을 놓은 것은 어린 시절의 동화로 청년 시절의 공상을 교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혜롭지 못한 일이었다. ~ 인간은 본능에 의해 존재하지만, 지성에 의해 진보한다.

 

595 베르그송은 인간의 가슴에서 영원히 솟아오르는 희망을 방어하러 나섰기 때문에 일찌감치 크나큰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은 철학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도 불멸과 신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쁘고 감사했다. ~ 그러나 이런 갑작스런 인기는 대가를 요구했다. 베르그송 지지에서 나타난 그런 모순적 성격 탓에 추종자들은 흩어졌다. 어쩌면 베르그송도 스펜서와 마찬가지로 살아서 자신의 평판이 묻히는 광경을 보는 운명을 겪을지도 모른다.

Easy comes, easy goes.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 법. 쉽게 가려고 하지 말자.

 

2.     베네데토 크로체

1 인간

596 베르그송은 자신의 비전을 언뜻 명료해 보이는 언어로 번역해내는 신비주의자다. 반면 크로체는 거의 독일적인 모호함을 재능으로 타고난 회의주의자다.

 

597 1866년 라퀼라 현의 작은 도시에서 부유하고 보수적인 가톨릭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난 크로체는 가톨릭 신학 훈련을 철저하게 받는 바람에 결국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무신론자가 되었다. ~ 베네데토는 처음에는 아주 독실하여 종교의 모든 국면을 연구하겠다고 고집하다가 마침내 종교의 철학과 인류학에 이르렀다.

 

598 그는 평생 연구자로 살았고 글과 여가를 사랑했다.

생산적인, 경제적인 일에 종사하지 않아도 되는 삶. 돈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한편 부럽기도 하다.

 

2 정신의 철학

599 “이렇게 마르크스주의 문헌과 교류하고, 한동안 열심히 독일과 이탈리아의 사회주의 출판물을 좇는 과정에서 나의 존재가 통째로 흔들렸으며, 처음으로 내 안에서 어떤 정치적 열망의 느낌이 깨어났고, 새로운 것을 찾는 이상한 취향이 생겨났다. 나는 마치 젊음에서 벗어난 시기에 처음으로 사랑에 빠져 내부에서 새로운 정열이 생겨나는 신비한 과정을 관찰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600 크로체는 관념론자였고, 헤겔 철학 이후로는 어떤 철학도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현실은 관념이다. 우리는 감각이나 사고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601 그는 종교를 거부한다. 그는 의지의 자유를 믿지만, 영혼의 불멸은 믿지 않는다. 미의 숭배와 교양 있는 삶이 그에게는 종교를 대신한다. “원시 민족들에게는 종교가 지적 유산의 전부였다. 우리에게는 지적 유산이 종교다. 종교를 인간의 이론적 활동, 인간의 예술, 인간의 비평, 인간의 철학과 나란히 놓으려는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려는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

 

603 크로체는 시제 과거를 찾아내는 일의 어려움을 인정하며, 역사는 수많은 거짓말 가운데 진실과 가장 닮은 것을 골라내는 기술이라는 루소의 정의를 인용한다.

 

3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603 그는 형이상학이나 과학보다 예술을 좋아한다. 과학은 우리에게 공리는 주지만 예술은 아름다움을 준다. ~ 예술은 우리를 특수한 인간과 유일무이한 사실로, 구체적 개별성이라는 형태로 직관된 철학적 보편성으로 곧바로 데려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과학보다는 예술을 좋아하나 보다. 책 첫 부분에 언급된 미학과 관련된 것 같은데책이 다 끝나가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604 “사람은 손이 아니라 뇌로 그림을 그린다.” 미켈란젤로는 그렇게 말했다. 또 레오나르도는 이렇게 썼다. “고귀한 천재의 정신은 외적인 것과 거리가 먼 일을 할 때 창의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인다.” ~ 미학적 활동의 핵심은 염두에 둔 주제를 표현할 완벽한 이미지를 생각하기 위해 예술가가 이렇게 가만히 기울이는 노력에 있다.

 

605 크로체는 아름다움이란 인식된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는 이미지(또는 일련의 이미지들)를 정신적으로 형성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역시 아름다움은 내적 이미지가 구현된 외적 형태보다는 내적이ㄴ 이미지 자체에 속하는 것이다.

 

4 비판

606 인간은 이미지를 형성하는 순간, 예술가가 되는 것일까? 예술의 본질은 외화가 아니라 잉태에만 있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말보다 아름다운 생각이나 감정을 가진 적이 없는가? 예술가의 정신 속에 어떤 내적인 이미지가 들었는지, 또는 우리가 감탄하는 작품이 그 관념을 실현하는 것인지, 아니면 놓치는 것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까?

 

607 어쩌면 우리도 언젠가는 가장 어두운 진실에서도 빛나는 아름다움을 볼 만큼 영혼이 강하고 맑아지는 날이 올 것이다.

 

3.     버트런드 러셀

1 논리학자

608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인 그때, 이 마음 여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철학자는 가장 문명화된 대륙이 야만으로 타락하는 꼴을 지켜보며 충격 속에서 괴로워했다.

 

610 러셀은 명료함에 대한 열망 탓에 불가피하게 수학으로 떠밀려 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귀족적 과학의 차분한 정확성에 전율을 느꼈다. “제대로 보면 수학에는 진리만이 아니라 최고의 아름다움도 있다. 이 아름다운 조각처럼 차갑고 꾸밈없는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약한 본성 어느 곳에도 호소하지 않고 회화나 음악 같은 화려한 치장도 없지만, 그럼에도 숭고하고 순수하며, 오직 가장 위대한 예술만이 보여줄 수 잇는 엄격한 완벽성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

 

611 러셀이 수학에 끌리는 것은 그 엄격한 비인격성과 객관성 때문이다. 여기, 오직 여기에만 영원한 진리, 절대적 지식이 있다. 이 선험적 정리들이 플라톤의 이데아이고, 스피노자의 영원한 질서이고 세계의 실체다.

 

613 ‘자유인은 유치한 희망과 인격화된 실들로부터 위로받을 수 없다. 결국에는 자신도 죽을 수 밖에 없고 만물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만, 용기를 내야만 한다. 굴복하지는 않는다. 이길 수는 없다 해도 최소한 싸움을 즐길 수는 있다. ~ 그는 실패에 맞서 계속 투쟁하고, 조각되고 그려진 것들의 연약한 아름다움을 적어도 수백 년 동안은 양육하고, 파르테논의 웅장한 폐허를 기리는 내부의 창조적 힘들을 섬긴다.

 

2 개혁가

614 순수 지성이 되고자 하던 머트런드 러셀은 사실 감정들로 이루어진 사람이었고, 제국의 이해관계가 젊은 생명을 대가로 치를 만큼 가치 있다고 보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당당하게 행진한 뒤 결국 죽이고 죽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홀로코스트의 원인을 색출하는 작업에 착수한 그는 그 병의 원인을 밝혀주는 동시에 유일한 치료법을 암시하는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분석을 사회주의에서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그 원인은 사적 소유였으며, 그 치료법은 공산주의였다.

 

616 학교와 대학이라는 우리의 훌륭한 조직이 제대로 발달하고 제대로 사람을 받아들여 지혜롭게 인류의 성격을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인간은 못할 일이 없다. ~ 인간은 성장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 덕분에 다른 모든 생명 형태를 통제할 수 있었다. 따라서 거기에 시간을 더 들이고, 또 그 시간을 더 지혜롭게 보낸다면, 심지어 자신을 통제하고 다시 만들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학교는 유토피아의 문을 여는 열쇠다.

 

3 에필로그

617 예술은 부에서 자라는 꽃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술이 부를 대체할 수는 없다. 메디치 가문이 등장한 뒤에야 미켈란젤로가 나타났다.

 

618 영국에서 미국으로, 거기에서 러시아로, 거기에서 다시 인도와 중국으로 옮겨가면서도 사회철학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세상은 자신이 그의 공식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크다고, 또 어쩌면 그의 마음이 바라는 대로 빠르게 움직이기에는 너무 크고 너무 무겁다고 버트런드 러셀을 설득했다. 세상에는 많은 마음이 있고, 서로 다른 욕망이 아주 많이 있으니까!

 

619 그는 궁정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분명히 학자이고 신사이며, 입으로만 떠드는 사람들보다 나은 기독교인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아직 젊고 기운이 넘치며 그의 안에서는 생명의 불길이 환하게 타오르고 있다. 그가 다음 10년간 환멸에서 벗어나 지혜로 진입하고, ‘철학의 고요한 형제단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지 누가 알랴.

 

11장 현대 미국 철학자들

머리말

623 다른 미국은 미국적이다. ~ 그들의 태도, 관념, 이상은 토착적 형성물이다. ~ 이곳 사람들은 원시적 환경과 과제에 의해 신체적으로는 억세고 정신적으로는 직접적이고 단순하게 빚어져 있다. 이것이 링컨과 소로와 휘트먼과 마크 트웨인을 생산한 미국이다.

 

1.     조지 산타야나

1 전기적 사실

그의 수업은 시처럼 복잡하게 완성되어 있었고 예언처럼 의미심장했다. 그는 어쩐 일인지 듣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신하여 말했으며, 그들의 본성 깊은 곳을 흔들고 그들의 정신을 괴롭혔다. 마치 신탁 같았다. 그에게는 신비감과 존경심이 따라다녔고,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면서도 매력적이었으며, 큰 감동을 주면서도 자신은 정작 덤덤했다.

 

626 그의 시인적 기질은 풍부한 비유로, 그의 예술가적 기질은 끌로 다듬은 문단으로 말했다. 기분 좋게도 미국은 아름다움의 유혹과 진리의 부름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2 회의주의와 동물적 신념

628 관념론은 옳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관념을 통해서만 세계를 안다는 것은 사실이다. ~ 생명이 어떤 삼단 논법보다 낫기 때문이다.

 

629 철학은 왕의 궁정에서 잠시 비단 바지를 입고 노동당 간부처럼 여전히 인식론적 드레스를 입고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언젠가 중세가 정말로 끝이 나면, 철학은 이 구름들로부터 내려와 인간사를 다룰 것이다.

 

3 과학의 이성

630 그는 범신론이라는 호사를 누릴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무신론의 위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연을 신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자연에 보태질 것은 없다. “자연이라는 말만으로도 충분히 시적이다. 그 말은 내가 사는 세계의, 만들어내고 통제하는 기능, 끝없는 활력, 변화무쌍한 질서를 충분히 암시한다.”

 

4 종교의 이성

634 산타야나는 이런 은밀한 사랑 덕분에, 이 신앙적 불신앙 덕분에 회의적인 페이지들을 부드러운 슬픔으로 채우고, 가톨릭교의 아름다움에서 그것을 여전히 사랑하 많은 이유를 찾아내는 걸작, <종교의 이성>을 쓸 수 있었다. 물론 그는 전통적인 정통, 즉 우주가 인간이나 인간 정신을 위하여 존재하며, 선하게 존재한다는 믿음에 웃음을 짓는다. ~ 어쨌든 어느 곳에서나 인간에게 종교가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현상 아닌가. 따라서 종교를 이해하지 않고 어떻게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636 산타야나는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독교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인은 기독교를 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 뒤로 독일에서 기독교 정통의 해체는 불가피했다.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고대의 교조 가운데 몇 가지, 예를 들어 죄 없는 자가 받는 저주라든가, 전능한 자비로 창조된 세계에 존재하는 악 같은 교조만큼 부조리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5 사회의 이성

638 사람들이 이 둘 가운데 언 한쪽 철학에 맞게 형성될 수 있다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진정으로 합리적인 도덕이나 사회적인 처방이 존재한 적이 없으며, 그런 것을 찾는 일도 거의 없다.” 그것은 언제나 철학자들의 사치품으로 남는다. ~ 철학자는 진리에 기쁨을 느끼며, 이 삶의 현장을 즐기든 떠나든 똑같이 대비가 되어있다.

 

639 쇼펜하우어가 주장했듯이 사랑은 종족이 개인에게 실행하는 기만으로, “사랑의 원인 가운데 10분의 9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고, 10분의 1은 사랑받는 대상에게 있을 것일며, 사랑은 영혼을 다시 비개인적인 맹목적 흐름 속에 합칠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에는 보상이 있다. 이 가장 큰 희생에서 인간은 가장 행복한 성취를 얻는다.

 

642 문명은 이제까지 특권을 가진 중심에서 발생하는 습관의 확산과 희석으로 이루어져왔다. ~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그는 평등이라는 이상을 싫어하여, 불평등한 사람들의 평등은 불평등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그는 귀족주의로 완전히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는 역사가 귀족주의를 실험해본 결과, 거기에서 장점 못지않은 결함들을 확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643 혁명은 모호한 것이다. 혁명의 성공은 일반적으로 적응 능력, 그들 내부에서 그들이 맞서 싸우는 것을 다시 흡수하는 능력에 비례한다. 수많은 개혁이 있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부패한 상태다. 각각의 성공적 개혁은 새로운 제도를 건설했고, 이런 제도는 자기에게 맞는 새로운 남용을 낳았기 때문이다.

 

644 우리에게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 없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좋은 것에 맞추어 살 용기만 필요할 뿐이다.

 

6 논평

645 어쩌면 이렇게 늘 죽음을 잊지 않는 자세가 기쁨에 조종을 울릴지도 모른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는 죽음보다 삼을 기억해야 한다. 멀고 완벽한 희망만이 아니라 즉각적이고 실제적인 것을 끌어안아야 한다.

 

2.     윌리엄 제임스

1 개인적인 이야기

648 윌리엄 제임스는 목소리와 말, 그리고 표현 방식에서 미국적이다. ~ 그는 산타야나나 헨리 제임스처럼 귀족적으로 과묵하게 이야기하는 대신 팔팔하나 일상어로 힘차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며, 디 때문에 그의 실용주의비축 에너지의 철학은 실용적이고 정력적인루스벨트의 정신적 상관물이 되었다. ~

윌리엄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마음이 젊고 기회와 희망이 풍부한 나라의 자극을 받으며, 자신의 시대와 장소의 정신을 잘 포착하여 시대정신의 날개를 타고 다른 어떤 미국 철학자도 누리지 못했던 독보적인 인기의 산꼬대기로 올라갔다.

 

2 실용주의

651 제임스는 직접적이고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것에 대한 이런 열정을 바탕으로 실용주의로 나아갔다. 명료함을 내세우는 프랑스 학파에서 성장한 제임스는 독일 형이상학의 모호함과 현학적 용어를 혐오했다.

 

652 스콜라 철학은 묻는다. 사물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궤변 속에서 길을 잃는다. 다위주의는 묻는다. 기원은 무엇인가? 그리고 성운 속에서 길을 잃는다. 실용주의는 묻는다. 결과는 무엇인가? 그리고 사고의 방향을 행동과 미래로 튼다.

 

3 다원론

653 인간 지성은 논리적 단순성과 대칭성 때문에 되풀이하여 그 철학을 제안하지만, 삶은 그것을 무시하고 그 위로 흘러 지나간다.

 

656 일원적 세계와 비교할 때 다원적 세계가 지닌 가치는 교차하는 흐름과 서로 싸우는 힘들이 있는 곳에서 우리 자신의 힘과 의지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세계에서는 그 무엇도 확정되어 있지 않고, 모든 작용이 중요하다.

 

4 논평

659 제임스의 사고 방식은 구체적으로 또 독특하게 미국적이었다. – 그 내용은 그렇지 않다 해도. ~ 휴네커는 그것을 속물을 위한 철학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이 철학에서는 왠지 영업 사원의 냄새가 난다. 제임스는 물질주의적 정신을 가진 소비자에게 낙관주의적 광고의 모든 장치를 동원하여 상품을 소개하듯이 신을 이야기한다. 또 마치 아무것도 잃지 않고 (다른) 모든 세계를 얻을 수 잇는 고수익 장기 투자를 추천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믿으라고 조언한다. 이것은 유럽 형이상학과 과학에 맞서는 젊은 미국의 방어적 반작용이었다.

 

660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책상에 놓인 종이에는 그의 마지막이자, 어쩌면 가장 그다운 것일지도 모르는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결론은 없다. 우리가 그와 관련하여 결론을 내릴 수도 잇다고 누가 결론을 내려주었는가? 점을 쳐줄 것도 없고 조언 해줄 것도 없다. 안녕.”

 

3.     존 듀이

1 교육

662 아마 그의 책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민주주의와 교육>일 것이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철학의 다양한 요소들을 요령 있게 설명하면서 그 모든 것을 더 나은 세대를 키우는 과제에 집중시킨다. ~ 듀이는 교육에서 과학은 늘리고 문학은 줄이라는 스펜서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학도 책으로 배울 것이 아니라 쓸모 있는 직업의 실습을 통해 학생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2 도구주의

664 듀이는 베이컨과 홉스와 스펜서와 밀의 혈통의 상속자로서 훌륭한 실증주의자답게 형이상학이 신학의 메아리 또는 위장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거부한다. 철학이 가진 문제는 철학의 사안들이 늘 종교 문제와 혼동되었다는 점이다. ~ 독일 철학은 종교적 문제에 관심을 쏟느라 철학적 발전 경로에서 이탈했다. 반면 영국 철학에서는 사회적 관심이 초자연적 관심을 눌렀다.

 

666 우리는 불변의 인간 본성과 전능한 환경에 관한 우리의 관념을 잊어야 한다. 변화나 성장에 알려진 한계는 없다. 어쩌면 불가능은 없을지 모른다. 다만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3 과학과 정치

666 선하다는 것은 단지 복종적이고 해를 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능력 없이 선한 것은 절름발이다. 지성이 없다면 세상의 어떤 덕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무지는 행복이 아니라 자각 없이 예속되는 것이다. 오직 지성이 있어야만 운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할 수 있다.

 

667 대부분의 철학자들과는 달리 듀이는 그 결함을 알면서도 민주주의를 받아들인다. 정치적 질서의 목적은 개인이 완전히 발달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각자가 자신의 능력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자기 집단의 정책과 운명을 결정할 때에만 이룰 수 있다.

 

맺음말

671 하지만 우리는 부유해졌고, 부는 예술의 서곡이다. 물을 준 기름진 땅에서 식물이 자라듯이, 수백 년에 걸쳐 물리적 노력을 기울여 사치와 여가를 위한 수단을 축적한 나라에서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문화가 뒤따랐다. ~ 우리가 부만이 아니라 자유까지 숭배할 때, 우리 또한 우리의 르네상스를 누릴 것이다.

 

 

내가 저자라면

 

l  목차에 대하여

이 책의 목차는 철학의 역사,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철학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의 시간 순서이다. 각 인물 안의 소제목도 적절히 분류해서 읽기에 불편없이 좋다. 다만 그 인물에 영향을 끼쳤거나 영향을 준 인물이 조금씩 나오는데 이 부분은 따로 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l  보완이 필요한 점

인물별로 정리하다 보니 시대사조나 철학 흐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독자는 따라가기 어렵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간혹 있다. 어차피 제대로 철학 교육을 받지 못한 성인을 위해 이해사기 쉽게 쓴 철학사 이야기라면 철학 사조 등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앞 부분에 배치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l  이 책의 장점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철학자들의 사상 및 배경, 그리고 인물간의 관계 등을 쉽게 알 수 있게 정리해서 좋다. 나처럼 철학을 어려워하고 관심이 없는 사람도 볼테르, 스펜서 등의 철학가는 관심이 가고 그들의 저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l  내가 저자라면 

저자가 서문에서 인물별로 정리하는 이유에 대해서 밝히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저자라면 인물 별 정리가 아니라 철학의 역사 및 중요한 사상의 흐름을 정리하며 필요한 경우에 인물을 배치하는 구조로 썼을 것 같다. 그리고 각 나라별로 따로 정리했을 것 같다. 물론 마지막 장의 미국 철학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철학자가 유럽 국가의 철학자들이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 등으로 섞여서 등장해서 다소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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