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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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생
박정대
오늘은 파리 노트르담대성당의 첨탑이 불타고 내일은 불붙은 전 세계의 지붕이 주저앉겠지만 바람이 물고 가는 불씨는 그대 가슴의 대양 어디쯤에서 꺼질 게요
우리의 일부가 불탔다고 하지만 우리는 항상 불타오르고 있었고 언젠가는 꺼지는 것이오
꺼진 영혼들이 허공의 골목길을 떠돌다 모여드는 곳이 그림자들의 블랙홀이오
어두운 기억의 저편에는 떠도는 그림자들의 거대한 블랙홀이 있소
블랙홀은 하나의 기억이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적극적 망각의 통로. 물질들의 영혼이 영혼이라는 물질을 운반하는 환승역에서 또 다른 밀생이 이어지는 것이오
태양은 태양의 자리에서 불타오르고 인간은 태양을 바라보던 자리에서 그렇게 불타오르다가 언젠가는 꺼지는 것이오
태양이 꺼지는 순간이 오면 우리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오
점점 희미해져가는 태양의 기억이 그대 가슴에 닿을 때쯤이면 모든 게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오
오늘은 성모마리아의 아름다운 첨탑이 불타고 내일은 바람이 불어 강원도의 거대한 숲을 태우겠지만 세상의 모든 불씨는 그대 가슴 어디쯤으로 날아가 꺼질 게요
그대 가슴속 블랙홀 속으로 세상의 불탄 모든 것들이 사라져가는 밤이오
그러나 아직 태양은 꺼지지 않았으니
그대를 통과한 모든 것들이 이토록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또 다른 아름다운 밀생을 꿈꿀 수 있기를
*
- 중 략 -
박정대 시집, 『불란서 고아의 지도』, 현대문학,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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