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좋은

함께

여러분들이

  • 김연주
  • 조회 수 5555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0년 3월 1일 03시 25분 등록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1. ‘저자에 대하여’

내가 저자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2007년 여름 Swing 동호회에서 만난 K군을 통해서였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나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인생선배로서의 조언을 해주곤 했는데, 30대를 갓 넘긴 초조함에 방황을 하던 우리에게 처음 권해준 책인 구본형 선생님의 책이었다. 그는 꿈벗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구본형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의 책이 지금 자신의 삶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선배의 얼굴에서 진심으로 구본형 선생님을 존경하는 것이 느껴졌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사람을 만날 때 까다로울 것 같아 보이는 선배가 인정하는 걸까 궁금했다. 그때 추천을 받은 책이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선 곳에서의 아침>, <사람에게서 구하라>였다.

내가 구본형 선생님을 만난 첫 책은 <사람에게서 구하라>이다. 구본형 선생님의 첫 책인 <익숙한 것과의 결별>과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먼저 만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그때 개정판이 나오기 직전이라 새 책으로 구하기 힘들어서 당시 가장 신간에 속했던 <사람에게서 구하라>를 먼저 읽게 되었다. 당시 교육청에서 ‘교사는 리더가 되어야 하며 리더를 길러내야 한다.’는 지침을 일선학교에 전달하여, 교사의 리더십과 관련된 연수들이 많이 생기던 때였다. 평소 리더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하던 차에 리더쉽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으면서 나도 리더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즈음이었다. 그 때 읽은 <사람에게서 구하라>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한문을 전공한 나에게는 고전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활용해 다양한 리더십의 유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고전 속 인물의 리더십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리더들의 모습과 연관시켜 둘 사이의 공통된 리더십의 양상을 찾아내는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고전에 등장하는 리더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어 현재에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문이 학생들에게 과거의 고리타분한 유물이 아닌 현재의 실용적인 학문으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시도했었지만, 이 책만큼 확실하게 고전의 필요성을 느끼고 공부를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책은 드물었다. 한문이라는 고전을 전공한 사람으로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구본형 선생님이 대신 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한문이라는 학문에 대한 편견으로 자칫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고 느끼는 학생들을 위해 고전이 현재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미래의 리더가 될 아이들에게 이 책의 내용을 참고하여 가르쳐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2008년 새해를 맞이하여 개정판을 낸 <익숙한 것과의 결별>과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읽게 된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저자의 자기경영 이야기를 적은 이 책들은 나에게 지금 바로, 당장 변화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나는 나의 욕망을 위해 일관되게 매일매일 시간을 활용하지 못했다. 그것은 산발적이었고 즉흥적이었으며 연속적이지 못했다. 세상을 보는 확실한 방법을 가지지도 못했고, 한 가지 일을 아주 잘하지도 못했다. 그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다른 삶의 내 삶을 묻어왔다. 나는 나에게서 존경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는 구절에서는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을 묘사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읽으며 자기혁명을 위한 저항 극복방법을 실천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중에 단식을 이용해서 자신의 하루를 개편하는 시발점으로 삼는 작업인 7일간의 개혁을 직접 해보면서는, 단식을 1달 이상을 했다는 구본형선생님의 일화를 떠올리면서 진정으로 절실했던 자기혁명의 욕구를 느껴볼 수 있다.

이후에 구본형선생님의 다른 책들을 읽고 변화에 대한 욕구는 키워갔으나 여전히 그것을 명쾌하게 해결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08년 여름 모닝페이지를 쓰게 되었고,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 중 변경연의 연구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간간히 듣게 되는 구본형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덕분에 한 번도 번 적이 없는 사람에게 친근함과 존경심이 생겼다. 특히 그들은 구본형선생님을 사부님이라고 불렀는데 그게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내가 보기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 보이는 다 큰 어른들이 사부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어떤 분일까 생각해보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구본형선생님의 책을 읽고 상상해보는 것밖에는 없었다. 누군가를 사부(師父)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곧 자기 삶의 멘토이며, 그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바탕하기 때문일 것이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개정판 서문>

p.6 미래는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딛고 이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과거의 온갖 흔적, 그 영욕을 묻어 깊이 썩혀두면 우리는 지혜를 얻게 된다. 그것이 앞길을 밝히는 불빛이 된다.

나는 아름다운 미래를 ‘회고’할 수 있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회고’, 이것이 개인사를 정리하면서 내 마음을 무찔러 들어온 생각이다. 나는 10년 앞으로 달려나가. 그곳에서 거꾸로 10년 동안 펼쳐지게 될 내 인생 최고의 장면들을 되돌아보았다. 시간적 도치가 주는 장점은 ‘계획을 이미 발생한 실천 결과’로 치환시켜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앞으로 10년을 잘 살게 ‘되었’다. 과거의 기록이 건강한 미래를 계획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p.7 나는 나의 문화사, 이 개인의 실록을 통해 내가 넘어서고 극복해야 할 나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는다.’는 나의 비전은 먼저 이렇게 나에게 적용되었다. 내가 내 직업의 첫 번째 고객인 것이다.

 

<책을 펴내며>

p.9 역사는 기록된다.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진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나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평범한 개인에게 있어 개인사의 편찬은 본인의 과제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이 책은 바로 그 프로젝트이다.

p.10 '나에 대한 이야기(me-story)'는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기록이다. 즉 내 인생의 다음 장면을 그려보기 위한 시도이다.

p.11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자신의 세계도 없다. 기록의 형태는 일기여도 좋고, 메모여도 좋고, 홈페이지여도 좋고, 사진첩이어도 좋고, 이 책 같은 자서전이어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에 의해 편찬되어야 한다. 이것이 군중 속에서, 군중으로, 흔적 없이 매몰되는 자신을 잊지 않는 길이다.

사라진 문명이 되지 않는 것, 나아가 남은 시간을 찬란한 문명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 프로젝트(Me-story Project)'가 절실한 이유이다.

 

<일러두기>

p.14 어떤 일이든 그것을 이끄는 정신적 물결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잃으면 배도 띄울 수도, 춤을 출 수도 없다.

 

<프롤로그>

p.15 모든 좋은 것들은 웃는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서는 자는 춤을 춘다. - 니체

p.17 과거는 늘 엄격하고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 감옥이기도 했다. 과거가 날 만들었으니, 과거를 버리고 벗어나는 것이 또한 내 미래의 과제다.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였다. 살면서 나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번 다시 태어나야 한다.

 

<1장 지난 10년>

p.26 불면을 즐기는 방법으로 거대한 프로젝트 하나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인생 전체를 놓고 이루어야 하는 이미지에 대해 그려보기로 했다.

지식은 지식에 적용됨으로써 증식된다. 그리고 지식을 자신에게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체험한다.

p.30 사랑은 늘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사랑은 그 자체로 증식되는 능력이다.

p.31 훌륭한 작품은 그것이 어떤 표현 방식을 가졌든 인생에 대한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현실보다 극적이고, 현실보다 교훈적이며,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현실만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때려주고 싶다. 그들이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 그것 역시 한때의 꿈보다 더 영속적이지 못한다. 인생은 결국 짧은 꿈이었다는 것을 모든 죽어가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p.35 과거와의 연결, 심지어 미래와의 연결로 가끔 끊어버리고, 이 돌연한 시간적 격리를 휴가로 즐길 수 없다면 바보이다. 나와 나의 불일치, 시간적 흐름에 대한 일탈과 소거는 아주 유쾌한 지구 탈출 같은 것이다.

p.36 나는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 곧잘 낙관적인 정신적 전환에 성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 이것이 나의 강점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문제에 끌려다니는 것을 더욱 싫어한다. 나는 문제를 일상에 던져진 예기치 않은 모험과 도전으로 인식하곤 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면 새로운 단면과 만날 수 있다. 최선의 해결책에 도달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문제가 던져주는 여러 상징을 해석하고 가능한 여러 해결 방법 가운데서 내게 적합한 방법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니까. 물론 모든 문제가 다 풀리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안고 살면 되는 거지.

 

<2장 마흔 살>

p.44 일밖에 없는 일꾼은 성공한 실패자가 되고, 부유한 노예가 되고, 가족에게 미안한 가장이 되고, 늘 바쁜 아비가 되어 무자비한 사다리의 꼭대기를 향해 질주한다.

p.47 지금 있는 곳의 위치를 알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우선 내가 있는 이곳을 객관화할 수 있는 지도 같은 것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마흔 살에 대해 적어놓은 마법의 책을 펼쳐보았다.

p.49 이상과 비전으로 상징되는 젊음의 마법이 사라진 후에 다가오는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다. 일만이 생산적인 것이고, 지루한 일상을 견딜 수 있는 탈출구이다. 이리하여 일은 일상과 실제의 삶이 된다.

p.51 사람마다 인생의 시간표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이미 30대에 마흔 살의 조짐이 나타난다. 반면에 마흔을 지나 한창 인생이 익어가는데도 마법의 환상에 빠져 젊은 중년도 있게 마련이다. 꽃이 다 진 가을에 봄꽃을 피우는, 시기를 놓친 꽃들도 있다. 요즈음에는 그런 꽃들이 더 많이 늘어난다.

p.52 마흔이 넘으면 사람들은 외부를 변화시키는 것에 무력해진다. 그들은 자신을 믿는 대신 더 힘이 센 다른 사람과 제도의 힘에 의존하게 된다. 타인에게 의존함으로써 노예가 된다. 그러나 마흔이 넘어서는 여성들은 이때 깨어난다. 여성의 마흔 살은 남자와는 성격이 다르다. 남자는 마치 지는 해처럼 시들지만 여자들은 뜨는 보름달처럼 절정을 향해 달린다.

p.54 서른 살 이전에는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젊은이들의 창조성은 ‘발작적인 불꽃’같다. 그들의 창조성의 99퍼센트는 영감에 의한 것이다. 모차르트의 창조성과 동일한 재로로 만들어져 있다. 자유롭고 미친 듯하며 순수하고 유치하고 경박한 뜨거운 창조성이다. 그러나 마흔이 넘어 나타나는 창조성은 ‘발작적 불꽃’이 진화하고 성숙하여 하나의 습관과 태도를 변한 일정의 믿음직한 기술로 바뀌게 된다.

마흔의 나이에는 철학조차 실용적인 것이 된다. 이때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삶의 지혜다. 지혜란 ‘숭고하고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삶을 위해 필요한 실제적인 통찰력을 의미한다.

p.56 젊은 시절에 정체성을 찾기 위해 사용했던 이분법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삶의 전체 모습을 해석할 유연하고 더욱 복잡한 새로운 지혜를 모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호전적인 도덕성을 들어 공격하면 그들은 비껴간다. 고귀하고 능숙하게 비껴가는 방법 가운데 최고의 것은 유머이다. 유모는 일정의 여유와 휴식이다.

p.58 이상과 현실의 사이, 제3의 지점,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자리, 스스로를 놀릴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혁은 마음을 변형시키는 것이다. 마흔 살의 문제는 결국 가슴과 영혼의 문제다.

p.59 마흔 살은 게임의 후반부나 연극의 2막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마흔 살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막연히 한 번 더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의미한다. 똑같은 실력을 가지고 후반전을 뛰어본들 또 한 번의 고배와 비웃음을 자초할 뿐이다.

p.61 내게 마흔은 각성의 시기였다. 나는 40대의 10년 사이에 이루어지는 위대한 종결과, 똑같이 위대한 새로운 인생에 대해 말하고 싶다. 40대는 사회적 폐기물이 된 자신을 구해내어 빛나는 삶으로 창조하는 시간이다.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이 가능한 시기다. 어쩌면 반전만이 이 시기를 사는 교훈일지 모른다. 전환과 변곡, 이 두 단어야말로 40대를 묘사하는 가장 적합한 언어이다.

p.62 위대한 하루가 없이는 위대한 인생도 없건만 하루하루는 잃어도 아까울 것없는 푼돈처럼 낭비되었다.

마흔 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내 지론이다. 다만 내가 거는 것은 돈이 아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나 자신을 건다. 나는 이 길을 택했다.

p.63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바로 이 자리가 내가 죽어야 하는 자리라는 점이다. 한 세상이 어둠에 싸이게 될 때 하나의 새로운 세상은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빛으로 빛난다.

 

<3장 직장생활>

p.70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지고 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가지고 평가하게 마련이다.

p.71 나는 혁명사를 전공하고 싶은 역사학도 였다. 왜 혁명사를 전공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혁명이라는 단어는 내게 감동과 전율을 주었다.

p.78-80 어느 조직도 필요한 사람은 떠나보내지 않는다. 어려울 때 일수록 잡아두고 싶은 사람이 이런 사람들이다. 이것이 ‘필요의 원칙’이다. 필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 처신에 특별한 공유점이 있다. 온갖 종류의 구조 조정에도 상관없이 한 조직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 성장하고 싶다면 알아둘 필요가 있다.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둘째, 그들은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셋째, 그들은 늘 학습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와 경쟁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세상의 흐름에 대한 대략을 알고 있다. 또 그들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새로운 단추를 끼울 수 있다.

p.84-85 나는 수동성을 강점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말하자면 수동성을 적극적 수동성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은 꽤 재미있었다. 적극적 수동성, 즉 유혹은 늘 설득의 강력한 수단이 되어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경영학은 ‘유혹’이라는 싱싱한 단어를 즉은 단어, 즉 마케팅이라고 불러왔다.

p.85 마케팅은 유혹이다. 달콤해야 하고, 향기로워야 하며, 엄청난 새로움에 대한 약속을 흘려야 한다. 유혹은 올가미고 덫이다.

유혹은 설득 이전에 이미 설득당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설득이란 언제나 스스로 이미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 설득할 수 있다. 이것이 설득의 제1의 법칙이다. 설득은 늘 미리 이루어진다. 미리 이루어진 설득, 무너진 자기방어를 유혹이라고 부른다.

모든 위대한 리더는 유혹에 능한 사람들이다.

p.86 매력이 없는 리더란 없다. 리더는 반드시 자신의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유혹은 매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매력은 가장 자기다운 것에서 발산되는 페로몬이다.

p.88 나는 내 것을 가지고 싶었다. 박사라는 사회적 인증의 과정과 틀은 내게 아무런 흥분도 주지 못했다. 전문가는 학위와 자격증에 의해 증명되지 않는다. 전문가는 과거에 의해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며, 오직 끊임없는 자기학습에 의해 날마다 새로워질 뿐이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p.89 나는 내가 ‘경계선을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배움을 멈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학위와 자격증은 과거의 영과의 흔적일 뿐이다. 미래를 평가의 잣대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믿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실험하는 사람뿐이다. 무엇을 하든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사람들만이 전문가로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p.90 회사가 나에 대해 지루해할 때쯤, 그리고 내가 회사에 대해 지루해할 때쯤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그리고 마흔을 넘어서는 그 위험한 시기에 나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는 사는 듯싶게 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다 바칠 만한 것을 찾고 싶었다. 관성에 따라 굴러가는 하루 말고, 전혀 새로운 Em거운 하루를 가지고 싶었다.

p.91 이유도 없는 우연한 흐름이 곧잘 필연적 운명으로 이어지곤했다. 이제 나의 20년 과거는 죽었다. 나는 그 과거를 차디찬 물 속에 버리고 그 과거가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제의 나는 꽃처럼 낙엽처럼 죽어 흘러가고 사라졌다. 나무들은 가장 추울 때 그렇게 서 있다. 죽지 않고 새로워지는 것은 없다. 죽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새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

 

<4장 얼굴 - 페르소나>

p.100 생각은 머리를 통해 눈에 나타난다. 눈은 엄밀히 말하면 두뇌가 밖으로 나온 기관이다.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눈에 표현되게 된다. 눈이 인상을 결정하기도 한다.

p.103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길들게 마련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서로에게’라는 말이다. ‘나에게 길들게’하면, 그것이 목적이 되면, 함께 살 수 없다.

p.107 정신이 육체를 키우는지, 육체가 정신적 특징을 반영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코에 자신이 있다. 자기를 구성하고 있는 것 가운데 이렇게 애착을 가진 부위가 있다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p.113 욕망은 부숴뜨려 땅에 묻어야 하는 끔찍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힘과 에너지다.

p.114 단식이라는 상징은 내게 참으로 적절한 출발점이었다. 그것은 나를 가볍게 해주었다. 모든 속박은 ‘먹고사는 것’으로부터 왔다.

p.115 개인은 각자 그 안에 자신의 역사를 안고 산다. 부끄러움도 있고 후회도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도 있고 당당하고 장엄한 순간도 있게 마련이다. 산다는 것은 자신을 재료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p,.116 생명은 내면에 있다. 우리의 내면은 늘 신과 만나는 장소이다.

p.117 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다운 것에 천착하고 매달렸다. 니체가 말한 파토스를 추구했다. 이것은 차이에 대한 열정이었다. 차이는 다름이다. 그것은 다른 것, 다른 사람의 것을 자신의 것과 구별짓는 다름에 대한 열정이다.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은 어설픔과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러움과 긍정의 표상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달라야 한다. 자기경영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실천의 철학이다 바로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p.118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은 ‘오랜 세월과 수많은 공간’을 지나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도 되고 저런 사람도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여기에 왔다.

 

<5장 가족>

p.123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 하나를 만드는 것, 이것이 몇 년 전부터 내 삶의 의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가 되었다.

p.124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이탁오

아비 역시 스승과 친구의 역할을 모두 해야 하는 것 같았다.

부모로서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가르침 너머 함께 즐기고 어울리며 공유하는 친구로서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내게 ‘적절함’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또 ‘적절한 표현’에 대한 생각도 하게 했다.

p.125 나는 갈등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갈등은 마음이 스스로의 길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나침반이 북쪽을 찾고, 그곳을 가리키는 순간 부르르 떨리는 것, 이것을 나는 갈등이라고 부른다. 갈등 없는 판단이란 반복하여 익숙해진 거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새로운 것에는 갈등이 따라다닌다. 흥분과 두려움 속에서, 세상의 기대와 자신의 기대 사이에서, 이익과 마땅함 사이에서, 꿈과 현실 사이에서, 욕망과 절제 사이에서, 편함과 배려 사이에서 우리는 늘 망설이게 된다.

p.135 그녀는 늘 내 옆에 있었다. 내 고민의 옆에, 내 실패의 옆에, 그리고 내 성공의 옆에는 늘 그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죽음 옆에도 있어줄 것이다. 그녀는 늘 내 옆에 있다. 덩굴장미가 여기저기 타고 오르는 나지막한 하얀색 나무 울타리처럼 그녀는 그렇게 늘 내 정원이 되어 곁에 있어주었다.

우리는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러니 부딪치는 때가 많다. 그러나 싸운 후 다시 웃고 떠드는 데까지 가는 시간은 10분을 넘지 않는다.

p.137 나는 마음껏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p.138 나는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데, 이 시간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간대를 선택했다. 나는 시간의 불모지를 내게 불하했다. 그리고 가장 귀중한 나만의 시간대로 만들었다. 마치 모두가 버린 시간의 밭을 일궈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찾아내지 못했다면 영원히 잠 속에 묻혀버릴 뻔한 보물같은 땅이었다. 하루시간의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두시간이 거의 변하지 않는 내 작업시간이다. 이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늘 가족과 친구들에게 우선적으로 열려 있다.

p.143 여행은 우리가 서로 싸우는 것보다는 서로 인생을 즐기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p.145 집은 좋은 곳이다. 떠날 대와 마찬가지로 정겨운 모습으로 늘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우린 유목민에서 다시 정착민으로 돌아온다. 자유롭고 신선한 공기로부터 아늑하고 따뜻한 공기 속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환기를 하듯 다시 그 자유를 찾아나서곤 했다.

p.147 삶의 어둠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 각자에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것의 무게가 있고 나눌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혼자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함께 있으면 훨씬 낫다.

즐거움 역시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야 한다. 즐거움은 그래야 커진다. 즐거움에는 무게가 없다. 그것은 깃털 같아서 하늘을 날 수 있다. 즐거움은 우리가 지고 가는 삶의 무게를 덜어준다.

p.148 평생 가고 싶으면 늘 반갑고 그리운 관계가 되도록 애써야 한다.

따질 것도 계산할 것도 없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함께 가는 것이 친구들이다. 친구란 함께 어울림이다. 서로에 대한 애정없이는 그 어울림이 빛날 수 없다.

 

<6장 자연>

p.157 언어의 표현 방식을 넘어 교류되는 정신적인 교감은 자연이 우리의 마음을 여는 방식이다.

마흔이 넘게 살아온 긴 세월이 참으로 잠깐이고 꿈이 아니더냐. 다행이 아직 꿈이 끝난 것은 아니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p.158 가끔 느닷없는 통찰력이 번개같이 머리를 후려쳐 무언가를 깨닫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늘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지루한 일이다.

얼마전 작고한 이오덕 선생이 늘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우리가 이미 일어버린 것들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p.160 우리가 왜 변화해야 하느냐고?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변화 자체가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다. 생명이 주어진 순간 삶은 시작되고, 삶이 주어진 순간 죽음의 시계도 카운트되기 시작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왜 변화해야 하는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p.161 사랑은 가장 극적이고 가장 드라마틱하며 가장 빠져들기 쉽고 가장 상처받기 쉬운 것이기도 하다. 그게 사라의 매력이다. 사라의 개념은 불변하는 것이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천변만화의 격정이다.

사랑 자체가 온갖 변화를 다 껴안고 있는 복잡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이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고 삶이다.

왜 변해야 하느냐고? 흐르는 강물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하늘의 구름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바다의 물결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존재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p.163 자연은 내게 내가 그 일부라는 것을 늘 일깨워준다. 자연은 훌륭한 조언자였다. 날마다 그 이치를 자상한 몸짓으로 일깨워준다.

p.164 때때로 나는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그때가 가장 마음이 편한 때다. 어떤 조화로움이 나를 밀고 여울처럼 가슴으로 퍼져오는데, 그때 평화를 느끼게 된다.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노자의 말은 곧 나의 말이다.

모든 꽃은 ‘그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피어난다.

p.169 나무는 또한 해마다 새로운 자신을 분만시킨다. 수없이 자신을 탄생시킨다. 사는 범은 죽는 법에 있다. 자라는 방법은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탄생하는 과정이다. 죽지 못하면 다시 태어남도 없다. 죽음과 삶을 반복하는 것이다. 파괴와 생성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장이다. 이것이 나이테다. 그 외의 방법은 없다. 늘 자신의 시체를 내다버릴 수 있어야 한다. 나무는 그 일을 아주 아름답게 해내고 있다.

나도 죽어야 한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죽어야 한다. 나무가 죽을 때 나도 죽어야 한다.

p.172 식물에게서 배운 또 다른 교훈은 바로 번영하는 방법이다.

p.173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하나의 씨앗처럼 날려보내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생각인지, 나의 생각을 가장한 다른 사람의 생각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오리진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한 진실은 나의 것이 된 생각들, 즉 이미 ‘내게 귀화한 생각’들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진보는 ‘사고의 혁명’에 의해 이루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변화에 대한 생각들’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날려 보내는 일이다.

p.174 그리하여 그들 역시 아주 특별한 인간으로 스스로를 탄생시키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배우게 마련이다.

훌륭한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여,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고,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로댕의 말을 잊지 말라.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 그 삶은 매혹적인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p.175 세상의 유행에 따르지 말라. 자연의 맛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가진 품종을 만들어내라.

 

<7장 건강>

p.183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면 제자가 스승을 어떻게 빛나게 하는지 알 수 있다. 영원히 스승의 빛에 가려진 제자는 결국 스승을 욕보이게 한다. 뒷물이 앞물을 뛰어넘으려고 해야 비로소 강물이 힘차게 흐를 수 있다. 제자가 잘나야 스승이 위대해진다.

p.184 죽음은 생명과 함께 시작된다. 또한 생명은 죽음과 함께 시작한다. 이것이 생명의 순환이다. 죽음 없이는 생명도 없다. 마치 변하지 않는 것이 없이는 변하는 것도 없고, 어둠 없이는 밝음도 없는 것과 같다. 어둠은 늘 생명이 자신을 준비하는 참으로 비옥한 토양이다. 초라하고 아무 것도 아니며 썩는 것들만이 자신을 땅에 버릴 수 있다. 땅에 버려져아 ‘무엇’이 될 수 있다.

p.185 몸이 수십억 개의 세포를 만들고 채 활동하기도 전에 죽게 만드는 것은 자연이 ‘최선’을 선별하는 방식이다.

‘좋은 브레이크는 좋은 액셀레이터만큼 중요한 것’이다.

p.187 역사가 인류의 시간적 기록이듯이 개인의 역사 역시 그 삶의 시간적 기록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개인적 역사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개인의 삶은 다양하지만 개인의 역사는 늘 자연과 문명의 갈등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때로는 한쪽에 치우치고 때때로는 반전하고 이윽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적절한 융합과 균형을 잡아가기도 한다.

p.199 마흔은 죽음이 삶과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영적인 나이의 시작이다. 인간관계를 따르지 않는 또 다른 방식의 이해력이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게 되는 시기라는 뜻이다.

p.201 아름다운 봄날은 빨리 지나간다. 모두 그리워하고 섭섭해한다. 그러나 가을 또한 곱게 온다. 나이 먹음은 가을을 즐기는 것이다. 그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릴케처럼 말한다면 아무 이렇게 될 것이다. “신이여, 우리 각자에게 합당한 삶을 주소서.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 삶에 걸맞은 ‘합당한 죽음’을 주소서”

 

<8장 길에서>

p.207 내 말은 미래의 꿈 그 자체가 믿음을 통해 추억만큼 분명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갇히는 것만큼 미래에 갇힌다. 추억으로서의 역사와 꿈이라는 소설은 둘 다 인생에 중요한 것이다.

p.208-209 나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과거시제로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일을 과거시제로 쓰는 순간 내게 이미 일어난 일이 된다. 미래를 과거로 인식하는 것은 정신적 작업의 하나이다. 나는 나를 ‘정신적 여행자’라는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날개 같은 것이다. 시간이라는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활동한다.

p.209 내 인생의 결말, 그것은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졌다. 그것이 무엇이든 꿈꾸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꿈꾸지 못한 것들만이 내 인생이 아니다. 꿈꾸지 못한 것 가운데 더 아름다운 인생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된다.

p.210 추억과 꿈은 같은 것이다. 하나는 일어났다고 믿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꿈이다. 하나는 이미 깨어난 꿈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꿀 꿈이다. 둘 다 지금이라는 현실을 속박한다. 또는 지금을 구원해준다. 때때로 그 역할을 바꾸기도 한다.

p.211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 그들은 상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상상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산다. 그것이 생활의 일부이기도 하다.

p.212 꿈은 또한 목적지다. ‘지금’이란 늘 그것에 가는 길 위의 어느 지검이다. 정신적 여행자에게 현재란 과거(추억)를 떠나 미래(꿈)로 가는 길 위의 어느 곳이다. 구도(救道? ⇒求道)라는 말이 생각났다. 길을 찾는다는 말이다. 나 역시 길을 찾고 있다. 한 현실에서 또 다른 현실로 이어지는 길, 지금의 나에게 미래의 나로 가는 길, 추억에서 꿈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 그 길은 시간의 통로이다.

p.215 나는 그곳에 도착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끝나는 여행도 위대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10년 동안 내 길을 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알게 된 평범한 깨달음이었다. 길 위에서 죽은 여행자처럼 완벽한 여행작가가 어디 있겠는가!

p.216 항해 자체가 인생이다.

p.217 지나간 것들 속에 내 인생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위대한 순간들의 주인이며 또한 그 초라한 순간들의 책임자였다. 이것이 정말 하루하루의 진짜 인생이었다.

p,218 삶은 그렇게 공을 들이고 잠시 즐기고 다시 깨끗하게 복원하여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제는 나를 다른 사람과 바꾸고 싶지 않다. 수십년을 다시 길들이며 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주어진 나를 즐기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p.219 깨달음이 없으면 인생의 반전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p.220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행복한 사람이 드문 것은 행복해지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p.221 무엇인가를 할 때 다른 것을 계획하지 않고, 어떤 것을 계획할 때 다른 행위를 하지 않으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다. 그리고 몰입된 순간순간을 살 수 있으면 행복하다.

p.222 아, 내가 세상에 남기고 가는 것은 세월이 지나면 희미해질 내 삶의 발자국이고, 내가 가지고 가는 것은 꿈과 추억이다. 누구에게나 맞는 객관적인 삶의 의미란 없다. 나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삶, 이 유일무이한 구체성이 바로 내 삶이고, 따라서 그 의미 역시 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것이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 안에 죽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 속에서 죽는다.‘ - 플루타르크

p.223 길은 없다. 이것이 길이다. 하루가 길이다. 하루가 늘 새로운 여정이다. 오늘 새롭게 주어진 하루가 또 하나의 멋진 세상이 되지 못한다면 어디에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변화란 불행한 자의 행복 찾기 아니겠는가.

 

<9장 집, 공간>

p.229 나는 늘 책이 가득한 서가가 있는 서재 속에 앉아 있는 나를 그리워했다.

p.231 서재는 꿈을 꾸기에 좋은 곳이다. 그 속에서 동서고금의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 이야기 속에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

내게 독서와 꿈과 쓰기는 책 속의 경험을 배워 원래 내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던 근본을 이해하는 학습이다.

아주 작은 골방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무 바닥에 벽은 전투 황토로 만든 방이면 좋겠다. 작은 나무 책상 하나에 나무 의자 하나, 그리고 바닥에 놓은 꽤 큰 방석 하나가 이 방을 채운 소품의 전부이다. 나는 이 방을 ‘삶의 방’이라고 부르고 싶다.

살다보면 관성을 이기지 못하는 때도 있다. 이 방은 어제와 결별하는 방이며 특별한 오늘을 부여받는 곳이다. 매일 이 방에 들어와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p.232 이방에서 나는 늘 나와 만나고 싶다. 이것이 오랫동안 내가 바라던 집이라는 공간이다.

p.233 내가 배운 최고의 교훈은 집은 다시 지을 수 있지만 터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터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p.239 스스로 체득한다는 것의 기쁨은 이런 것이다. 아무 이용 가치도 없는 순순한 배움의 즐거움, 이런 즐거움 없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맞고 틀림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그저 추론의 과정일 뿐이다.

p.242 오직 하나의 욕망이 자랄 수 있도록. 하나의 욕망....가장 나다운 내가 되는 것, 그저 생긴 대로 자라 가장 아름다운 내가 되는 것.

p,243 어떤 경우든 식물은 한 번은 전성기에 이르는 것 같다. 일찍 시작한 놈은 봄, 여름에 빛을 내고, 조금 늦게 시작한 놈은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남아 멋을 부린다,. 다 제 때가 있다.

공간이 인간을 만든다는 말은 맞다. 이곳에서 나는 인간의 마음에 흡착되는 자연의 아음을 익히게 되었다.

p.249 우리는 증거를 필요로 하는 존재다. 일을 하면 한 티가 나야 그 기쁨이 배가 된다. 정원 일을 하는 것은 즐거운 노동이다.

p.253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 그 울타리 안이 우리의 세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루를 지내는 일사의 작은 공간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유목의 세계 속의 고향이고 내가 뿌리 내린 비옥한 공간이다.

우리의 육체가 거리낌없이 쉴 수 있는 곳이 집이다.

p.254 명상은 나를 즐기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괴로움으로 가득찬 현실에 갇힌 내가 아니라, 원래 있었던 아름다운 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명상은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외부에서, 다른 사람에게서 평화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평화를 건져내는 것이다.

 

<10장 학습>

p.263 의무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의무란 재미없는 것이다. 의무감이란 일상화되는 것이고, 지겨운 것이며, 반복되는 것이고, 아무런 생명도 살 수 없는 무덤이기 때문이다.

p.263-264 나는 읽고 쓰는 것이 의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으며. 이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되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취미가 여전히 취미일 수 있도록 애를 썼다. 취미가 직업으로 바뀌면서 순수한 호기심과 재미를 잃어버린 전문가들을 너무 많이 봐 왔기 때문에 경계해야 했다.

p.264 나는 놀이가 가진 위대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논다는 것은 순수하며 아무런 이해를 따지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놀이를 찾아내려 했다.

나는 나를 찾아오는 어떠한 것들과도 가능한 한 싸우지 않으려고 애쓴다.

p.267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p.269 미래는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은 세계다. 그저 내적으로 감응하는 나침반 하나 달랑 들고 떠난다. 이때는 내 발자국이 곧 지도이다. 완성될 수 없는 지도, 때때로 잘못된 지도, 방황과 위험이 도처에 숨어 있는 지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내가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을 지적 탐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성의 뒤에 숨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나를 잡아 끄는 다른 힘들을 느끼곤 한다. 간혹 어떤 직관이 나를 나아가게 하고, 어떤 감정이 나를 휩싸기도 한다. 그리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해준다. 학습은 온몸으로 이루어진다. 온몸이 다 배움을 위한 촉수이며 성감대다. 나는 천천히 배워갔다. 한 번에 조금밖에 배우지 못하는 더딘 깨달음이 이제 부끄럽지 않았다. 어쨌든 나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는가!

p.270 나는 읽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질긴다. 그들의 지식은 나라는 특별한 여과기를 거쳐 새로운 표현법을 얻게 된다.

독자는 작가와 같다. 그들 역시 책을 읽으면서 자신들의 책을 쓴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험과 사유의 한계 속에서만 저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 권의 책이 릭힐 때마다 다시 한 권의 책이 독자에 의해 쓰여’진다. 책은 그 독자 수만큼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모든 독자는 자신이 읽은 책의 또 다른 저자이기도 하다.

p.271 학습은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이란 ‘어떻게 배우는 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지적은 옳다. 학습이란 지식의 습득한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학습의 하위기능일 뿐이다. 학습의 핵심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 답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답은 이 탐험의 끝에 나타나는 보물이다.

p.273 나는 배움이란, 이해와 인식으로부터 시작할지 모르지만, 그 너머에 있는 다른 차원의 무엇인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274 학습은 어느 순간 이질적인 삶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같다.

나는 모든 배움을 삶의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누구의 이야기가 되었든, ‘우리가 결국 한 작품 속에서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한 인간의 삶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가능성’이라는 에리히아우어바흐의 지적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p.275 좋아하는 일이 즐거움이 되려면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하여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질문하고 대답하고 싶다. 이때 지적 작업은 즐거운 산책이 된다. 그리고 깨달음의 과정이 된다.

p.276 망연히 어둠 속에 서 있던 덕산은 어둠 속에서 찬연히 빛나는 별빛을 보게 된다. 그리고 깨우친다. 이성의 작은 촛불을 끄지 않고는 대우주의 별빛을 볼 수 없다. 가까운 작은 산이 먼 큰 산을 가리고 있듯이 작은 지식은 늘 큰 지혜를 가리고 있다.

스승은 등불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불을 끄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별이 쏟아지는 것을 보게 되길 바란다. 제자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별빛을 보게 하는 스승만이 위대한 스승이다.

p.281 배움은 결국 삶의 실천에 의해 가장 잘 얻어진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게 배움이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p.282 학습이란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혁명은 늘 하루를 바꿔줌으로써 스스로를 실현한다.

p.283 깨달음이 하루의 일상으로 쳐들어와 하루를 바꾸어놓지 못하면 실천되지 않은 것이다.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p.283-284 ‘새로운 장르의 일상적 삶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실천적 개혁이고 혁명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의미있는 신호를 보낼 수 있으려면, 내가 새로운 일상을 하나 만들어냈다는 사실 때문이어야 한다. 그 새로운 일상이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대안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때, 내 삶은 그들에게 의미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새로 받은 하루이다.

p.285 청중을 통과한 것들은 살아남는다. 그러나 청중의 반응을 얼지 못한 것들은 새로운 언어로 고쳐지거나 버려진다.

하루는 실험장이다. 실험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실험장. 실험이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린 실험....내겐 이것이 하루이다.

학습의 문화 속으로 자신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좋은 전문가의 필수적인 수련 과정이다.

p.288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아경영철학‘. 이것이 바로 내 학습의 중요한 테마 가운데 한 줄기를 이룬다. 또 하나의 줄기는 ’변화의 기술‘이다.

p.288-289 나는 내가 어둠과 빛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도전이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번 다른 실패를 딛고 나일 수밖에 없는 길로 운명적으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첫 번째 도전은 실패를 이기는 것이다. 두 번째 도전은 실패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도전은 매일 실험을 즐기는 것이다, 이때는 이미 실패도 성공도 사라진다. 여행을 즐기는 자는 끝없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계에 탐닉하다. 그들은 춤추듯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11장 일>

p.294 내가 하는 일의 첫 번째 고객은 나이다. 내가 내 일의 가장 최우선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내 일은 반드시 나를 만족시켜야 한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소명은 나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깨워 스스로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p.295 하루가 내 연구의 기본 단위다. 나는 날마다 무수한 반복보다 무수한 변화를 원한다. 그러므로 내 일은 반복을 거부하는 것이다. 수없는 반복을 통한 훈련이 아니라 수없는 변화를 통한 훈련이 내 방식이다. 나는 물결에게서 이 방식을 배웠다. 물결은 무수한 반복이 아니라 무수한 변화이다.

p.296 일은 삶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일이 품삯이어서도 안 되고, 삶의 다른 요소들을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

p.297 인생을 파괴하지 않는 직업, 삶을 빛내는 직업만이 훌륭한 직업이다,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인가는 무의미한 질문이다. 눈부신 삶을 살게 하는 일, 그 일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는 일, 그것이 위대한 직업이다.

어떤 이론도 어떤 조언도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설득하기는 어렵다. 변화는 오직 스스로 시작할 때만 효과적이며 그때에만 비로소 행복한 전환이 이루어진다. 변환경영이라는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스스로의 변화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자격 요건이다. 이것이 내가 깨달은 통렬한 아픔이었다. 변화경영전문가로서 나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규율을 만들었다.

p.298 나를 변화시켰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내 하루가 바뀌었는지를 물으면 확실해진다. 오늘을 놓치면 삶을 놓치는 것이다. 하루를 즐길 수 있으면 훌륭한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나의 물결로서,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내가 나에게 바라는 목적이다.

p.299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p.301 세상을 사며 그것이 보내는 신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을 중요한 일이다.

p.302 배움과 학습은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고 ‘자아경영’은 터득한 지식과 경험을 나를 위해서 먼저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나아지는 수련이다. 그 다음에 비로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p.303 기회의 선점만큼 강력한 브랜드 전략은 없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라는 재능과 변화경영이라는 전문 경력을 결합시켜 이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만들었다.

p.304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 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있는 때 비로소 일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일사의 이야기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다.

p.306 나는 개인에게 있어 ‘변화라는 것은 본래의 자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본래의 자기란 무엇일까?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과 기질을 이해하고 그 강점을 계발하여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기다움으로 돌아가는 좋은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p.310 성공에는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에 적힌 대로 끊임없이 익히는 것일 뿐이다. 손에 익고 머리와 가슴 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이 자연스러운 강줄기가 흘러갈 때 우리의 것이 된다. 그 때 성공은 우리의 특정이 된다.

p.312 유일한 사람이 되는 길은 신의 쪽지, 즉 ‘자신에 대한 기록’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자신만이 유일함의 원천이다. 자신을 활용하지 않고는 유일함에 도달할 수 없다.

p.317 가슴이 뛰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가슴이 뛰지 않으면 이미 사랑이 아니다. 일이 사랑이 되지 않으면 그 일은 내 일이 아니다.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그러므로 늘 새롭게 사랑하는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p.322 느낌을 전달하지 못하는 강연은 죽은 것이다.

p.328 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갈채하는 강연을 하고 싶었다. 그들은 감동시킬 수 있으면 좋은 강연을 한 셈이다. 나는 관중은 호흡을 같이한다. 그들은 나를 응시하고 내가 하는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고, 내 마음은 고조된다. 강연은 콘서트가 되고 리사이틀이 된다. 우리는 쉽게 하나가 된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강연이었다.

p.337 사랑만큼 우리를 달라지게 하는 것도 없다. 사랑에 빠지면 눈조차 멀게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랑이야말로 많은 흥분과 미움과 증오와 눈물로 짜여진 옷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변화는 자신에 대한 치열한 사랑이다. 치열하지 않으면 근본적 변화가 아니다.

그 길은 어려운 길이다. 그 길은 껍데기를 버리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붙잡고 일어서야만 하는 자기존중과 애정이 필요한 대장정이다.

p.340 어제의 진실은 오늘의 진실이 아니다. 늘 새롭게 태어나지 못하는 정신은 죽은 것이다.

p.343 꽃씨와 불씨가 되는 것......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하는 비즈니스이다. 내가 자연으로부터 배운 방식이다.

 

세 개의 에필로그

p.348 내 일을 찾을 것이고 매일 그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은 햇빛같이 눈부신 생각이었다.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처럼 이 생각은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날 나는 그 무수한 반복속에서 차마 실천하지 못했던 그 특별한 삶을 획책했다. 그리고 그 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부드러운 소리를 들었다.

p.349 당장 하루를 구성하는 시간을 재편했다. 나는 계호기적인 사람이 아니다. 시간표를 만들고 시간표대로 사는 것을 숨막혀 하는 사람이다. 내 방법은 삶의 모든 전선에 퍼져 있는 실핏줄 같은 시간을 불러모아 커다란 주류를 가진 시간의 강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세 가지 종류의 시간의 강줄기를 만들어냈다.

하나는 나를 위해 흐르는 시간의 강이다.

또 하나의 시간의 강줄기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세 번째 시간의 강줄기는 세상과 내가 만나는 시간이다.

p.353 모든 위대한 것이 다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에 나에게 고정된 우상은 없다, 나는 더 이상 선택하지 않는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문제는 이미 죽어버린 고민이다. 나는 배치하고 연결한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본다. 또는 이것과 저것을 함께 접속하여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모든 것은 실험이다. 나를 실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험이고 탐험이다.

p.356 나는 삶이 일종의 예술이길 바란다. 나의 일상은 안정과 질서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미래를 정하고 계획에 따라 엄격하게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나는 그 일을 아주 잘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나를 실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p.357 지는 해는 반드시 져야 한다. 그 대신 다른 곳에서 떠올라야 한다.

p.361 오늘 새로 받은 또 한 번의 아름다운 선물로 여기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결과와 목적을 늘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그러나 정말 나의 목적은 하루를 잘 사는 것이다. 하루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각성과 준비의 제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하루답게 사는 것이다...하루 자체를 빛냄으로써 인생 전체를 빛나게 하고 싶었다. 이것이 목적이다. 내겐 좋은 하루 그 자체가 목적이다.

p.363 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나 가난 때문이 아니다. 즐길 수 있는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p.364 언젠가 한번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스스로 설계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아름다운 그날 하루를 내 삶의 국경일로 정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아름다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결국 자신의 주인을 닮게 되어 있다.

<평설>

p,370 구본형이 한때 우리처럼 평범한 직장인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그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전범이 될 수 있는 요인이다. 그의 방법론은 모두 체험으로 검증된 것이라 신뢰를 준다. 언행일치가 그의 가장 큰 덕목이다. 이로써 그는 단순한 저술가에서 멘토로 거듭난다. 그는 열할 모델이 사라진 척박한 이 시대에 스승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젊은 연구원들은 구본형을 사부라고 부른다. 주변에 신뢰할 만한 역할 모델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3. ‘내가 저자라면’

<구본형의 자아 경영 프로젝트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라>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저자 스스로가 자신에게 시도한 자아 경영 프로젝트에 대한 실험 보고서이자, 40대의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자서전이다.

이 책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개인의 역사로 인식하여, 40대까지의 개인사를 기록한 자서전이다. 우리가 흔히 자서전이라고 하면 타인이 사회적으로 큰 획을 그었다고 인정해주거나 개인이 사회적으로 자신의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저술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평범한 사람이 자서전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또한 자서전에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특별한 개인의 비범한 일상에 대한 기술과 삶에서 이루어 낸 승리를 기록되어진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깨고 탈피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자신의 일상을 소재로 하여 자서전의 내용을 구성하고, 누구라도 자신의 일상에 애정을 갖고 관찰하여 표현할 수 있다면 자서전을 쓸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이 책은 “이야기를 기술하는 방식은 역사와 소설의 중간 형태를 취하기로 했다. ‘무릇 심오함을 가장하는 자들은 가면을 좋아하기 때문’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매우 솔직하게 드러내며 자유롭게 기술하고 있다. 내용의 솔직함과 형식의 자유로움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저자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게다가 주제별로 그 안에 세분화된 일상에서 누구나 경험 가능한 소재로 삶의 통찰을 이끌어 내어,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면 어떤 이라도 저자의 깨달음에 친근함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껴봄직한 일상의 소재를 통해 자신만의 삶의 통찰을 얻고, 스스로 체득한 깨달음의 내용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여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정말 탁월하다.

이 책은 “나는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 곧잘 낙관적인 정신적 전화에 성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문제를 일상에 던져진 예기치 않은 모험과 도전으로 인식하곤 했다.” 언급한 부분에서도 드러나듯이 저자의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 40대에 접어들어 생기게 된 ‘불면증, 건망증’과 더불어 잘 지내는 방법을 알아내고 즐기게 되었다는 저자는 자기사랑을 바탕으로 어떤 상황이 자신에게 주어지든지 상관없이 항상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글을 읽는 내내 삶에 대한 저자의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받는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은 ‘1장 지난 10년, 2장 마흔 살, 3장 직장생활, 4장 얼굴-페르소나, 5장 가족, 6장 자연, 7장 건강, 8장 길에서, 9장 집, 공간, 10장 학습, 11장 일’의 11가지 주제를 통해 변화경영전문가인 저자가 자기 자신에게 자아경영을 시도한 실험 보고서이다. 저자는 자신의 하루를 경영할 수 있어야 자기를 경영할 수 있고 그것이 결국 자신의 삶 전체를 경영하는 것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의 구성도 마찬가지이다. 1장부터 9장까지는 저자의 일상에 대한 기술로 개인이 일상을 경영하는 방법을 저자 자신의 경험과 실천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1장부터 9장까지 일상의 자아경영이 필요한 궁극적인 목적은 ‘10장 학습과 11장 일’에서 이야기 하듯 자신에게 알맞은 학습을 통해 놀이하며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일을 찾아내는 것에 있다. 결국 이 책은 저자의 실천적 자아경영 프로젝트를 통해 개인이 자기 사랑을 통해 개인의 혁명을 이루어 내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궁극적으로 평생학습을 통해 평생 즐겁게 일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보완점>

이 책은 각 장이 시작되기 전에 소설을 실어 놓았다. 저자가 의도한 ‘자전적 소설’ 또는 ‘소설적 자선’일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것을 각장의 앞에 배치할 필요가 있어나 생각해 본다. ‘자전적 소설’ 또는 ‘소설적 자전’의 내용과 각장의 개인 역사 기술에 대한 내용이 연결될 것을 의도하였을지 모르겠으나, 11개의 각장에서 소설적 내용과 역사적 내용이 일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소설적 내용이 11부분으로 나눠 제시되다보니 읽다가 흐름이 끊기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므로 1장부터 11장의 역사적 내용을 기술한 후에 그것을 꿰뚫고 통합하여 볼 수 있게 12장에 ‘자전적 소설’ 또는 ‘소설적 자전’에 대한 내용을 배치하였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스스로도 자신을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저자를 평가한 것을 보면 평범한 직장인인 저자의 자아 경영 성공기에 대한 극찬인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 보면 ‘과연 저자가 평범한 직장인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평범과 비범의 기준이 상당히 주관적일 수 있다. 하지만 책에서는 평범에 대한 기준을 정확하게 제시한 적이 없으므로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대기업에서 20년간 직장생활을 한 저자의 삶이 과연 평범했냐하는 것이다. 저자는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변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그 주제에 대해 탐구하면서 ‘변화경영’에 대한 커리어를 쌓아왔다. 당시 일반적으로 기업에서 관심이 없는 변화라는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평범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20년간 탐구한 ‘변화경영’이라는 주제에 20년간의 노하우가 쌓이게 되었는데, 이는 자신의 삶의 철학이 분명하게 서있어 미래에 대한 통찰이 가능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결과이며 이는 비범한 삶의 태도를 지닌 사람이 갈고 닦은 노력의 성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IP *.251.122.20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북리뷰 안보이시는 분들 일단 파일첨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4] 관리자 2009.03.09 106490
358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Review [1] 최우성 2010.03.08 5839
357 북리뷰4주차-기억 꿈 사상 file 이은주 2010.03.08 4789
356 4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1] 신진철 2010.03.08 5549
355 기억, 꿈, 사상 (카를 융) [3] 김용빈 2010.03.08 6171
354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을 읽고 - 김영숙 김영숙 2010.03.08 5680
353 북리뷰 4.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file 박상현 2010.03.08 5622
352 카를 융 자서전 narara 2010.03.07 5534
351 4. 카를 융 자서전 –기억 꿈 사상 미나 2010.03.07 5576
350 4. 카를 융 기억 꿈 사상(노미선) 별빛 2010.03.07 5573
349 4. 기억 꿈 사상(융) 불가능은 없다. 생각의 차이와 한계... 윤인희 2010.03.07 5539
348 어쩌면 좋아.... [3] 맑은 김인건 2010.03.07 5519
347 4. 기억 꿈 사상 박미옥 2010.03.06 6040
346 북리뷰 4. <기억 꿈 사상> [2] 이선형 2010.03.04 5742
345 디지털 혁명의 미래_고든벨, 짐겜멜 맑은 김인건 2010.03.02 5492
344 세번째 북리뷰_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1] 김혜영 2010.03.01 5955
343 3.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노미선) 별빛 2010.03.01 5548
342 북 리뷰3.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2] 박상현 2010.03.01 5995
»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김연주 2010.03.01 5555
340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김용빈 2010.03.01 5739
339 리뷰 3주차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윤인희 2010.03.01 5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