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r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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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하여,
카를 융은 정신의학자로 ‘융 심리학’ 이라 알려진 분석심리학의 개척자이다. 그는 1875년 스위스의 바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 나의 인생은 나의 정신의 작업이다.” 이라고 자서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는 평생을 ‘숙명적으로’ 인간의 정신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융은 인간의 정신은 ‘본래 종교적’이라고 언급한 최초의 현대 심리학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기이할 정도의 꿈과 환상이 그에게 평생의 과제를 던져주었다. 목사 집안의 종교적인 환경과 어머니의 정신질환 ,유년 시절의 외로움이 내향적인 성격의 그가 하느님, 신, 선과 악 같은 종교적이면서도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다가가게 만들었을 것이다. 한편, 그는 선천적으로 감각과 지각 능력이 뛰어나거나 보통사람과는 다른 특이한 정신적 영성이 있었을 것이다. 불과 두서너 살 때의 꿈을 형상, 색깔, 주변의 환경까지 자세히 묘사하며 기억해내고, 그가 꾼 꿈들이 실제와 관련되어 연상되고 구체화 되는 것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정신 의학이 그가 “사방으로 찾아 헤매었으나 발견하지 못했던”, “생물학적 사실과 정신적 사실에 관한 공동경험의 장“이며 ”자연과 정신의 충돌이 실제 사건이 되는 결정적인 분야“임을 확신하게 되고, 정신 의학자로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900년 취리히 대학 부설 부르크 휠츨리 정신 병원에 근무하면서 연상검사를 성공적으로 응용하여, 정신병 환자들의 자극어에 대한 독특하고 비논리적 반응을 연구하여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그의 정신 분석 연구가 명성을 얻으면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와의 관계가 시작되었으며 한때 프로이트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도 했으나 1912년에 <무의식의 심리학>을 발표하면서 뚜렷해진 프로이트와의 견해 차이로 헤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프로이트는 그의 연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융의 첫 번째 업적은 태도의 유형에 따라 사람들을 외향성과 내향성의 두 부류로 나눈 데 있다. 융은 자신의 꿈과 경험을 자세히 기록하면서 이를 과학적으로 연구하였다. 후에 그는
이러한 경험이 정신영역에서 나온다는 이론을 발전시켰으며 그 영역을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갖고 있는 ‘집단 무의식’이라 하였다.
융은 1903 년 결혼하여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노년에 아내 엠마와 같이 볼링겐의 호숫가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살았다. 융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이는 그가 자서전에서 썼듯이 그러한 ‘외적 사건’들은 그에게는 공허하거나 실제적이지 않고 무가치하게 생각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융은 1961 년 85세의 나이로 죽었다.
융은 많은 저작을 남겼다. 그의 작품집은 총 19권으로 되어있으며, 아직도 많은 작품이 (영어로)번역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무의식의 심리학>(1912)과 <심리적 유형>(1921)이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p 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에 따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고 한다.
(중략)
내적 견지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영원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신화는 훨씬 개인적이며, 과학보다 더욱 정확하게 삶을 말해준다. 과학은 평균 개념들을 자기고 연구하는 것으로, 그 개념들은 각 개인의 생애가 지니고 있는 주관적 다양성을 제대로 다루기에는 너무나 일반적이다.
p 13
언제나 나에게 인생은 뿌리를 통하여 살아가는 식물처럼 생각되었다. 식물의 고유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지상에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단지 여름 동안만 버틴다. 그러다가 시들고 마는데 하루살이같이 덧없는 현상이다.(중략)
하지만 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도 살아서 존속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 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있다.
p 14
내 생애의 외적 사실들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희미해졌거나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다른 실체와의 만남, 즉 무의식과의 충돌은 나의 기억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거기는 항상 충만하고 풍성하여 다른 모든 것은 그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중략)
나는 외적 사건들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에게는 공허하거나 실제적이지 않은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p 30
이러한 불길한 유추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주 예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예수는 크고 다정하고 자비로운 새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검은 프록코트와 높은 모자에 광택 나는 검정 구두를 신고 검은 상자를 나르는 음울한 사람들과 연관되었다.
p 50
이와 같이 비밀을 소유한다는 것은 당시 나의 성격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것을 내 이른 소년 시절의 본질적인 요소, 즉 내게는 가장 뜻 깊은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p 59
'주 예수‘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차츰 불가능해지기는 했지만, 열한 살 때부터 신의 관념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나는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p 68
한 순간 갑자기,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의식과 함께,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안개의 벽 같은 것이 나의 등 뒤에 있었고, 그 벽 너머에는 아직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 ‘나에게 내가’생겨났다. 이전에도 내가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모든 일이 단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내’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대단히 중요하고 새로운 것으로 여겨졌다. 나의 내부에 ‘권위자’가 자리 잡았다.
p 85
돌이 온갖 의혹에서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내가 돌이라고 생각하자 갈등은 멈췄다. ‘돌은 불확실한 것도 없고 자기를 알려서 전하려는 욕구도 없다. 돌은 영원하며 수 천 년 동안 살아 있다.’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이에 반해’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p 95
그 무렵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하며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가 나에게 제기되었다. 그런데, 누가 그 문제를 제기했는가?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 나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그 해답을 나 자신의 고유한 내면으로부터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단독자이며 하나님만이 이와 같은 무서운 일을 나에게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부터 나는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내 생애에서 그것은 실현해야만 될 것처럼 여겨졌다.
나로서는 결코 증명할 수 없었던 어떤 내적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내게 증명되었다. 내가 바라는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라는 것을 행하도록 정해져있다는 확신을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었다.
p 109
내가 가지고 있던 교회와 인간적인 주위세계와의 일치감은 내가 아는 바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나는 생애에서 가장 큰 패배를 경험한 듯이 여겨졌다. 종교를 전체와의 유일하고 의미
있는 관계로 여겼던 나의 종교관은 붕괴되고 말았다. 다시 말해 나는 더 이상 일반적인 신앙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p 111
종교란 ‘인간이 하느님과 자립적인 관계를 맺는 영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 112
나는 비더만의 <하느님의 본질>이라는 장에서, 하느님은 ‘인간 자아와 유사하게 상상될 수있는 인격’으로서, 그리고 또한 ‘세계를 포괄하면서 세계를 전적으로 초월하는 고유의 자아’로서 스스로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략)
나는 나 자신의 자아와 유사한 하나님을 상상하는 것에 대해 자못 심하게 반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직접적인 신성 모독은 아닐지라도 지나친 오만이라고 여겨졌다. ‘자아’라는 것은 나로서는 어쨌든 파악하기 어려운 사실로 보여 졌다.
p 120
하나님의 존재는 우리의 증명 여하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하느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는가?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 나에게 가능한 한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나 사실은 나는 아무 것도 믿을 수 없었다. 그 어느 것도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런 것들로부터 나의 관념이 나온 것이 아니었다. (중략)
어떻게 하느님이 나에게 자명한 것이 되었을까? 하느님의 존재는 머리 위에 떨어지는 벽돌같이 분명한데도, 이 철학자들은 어찌하여 하느님은 일종의 관념이며 자기들이 만들어 낼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임의적인 가설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그 무렵 나는 하나님은 적어도 나에게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경험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p 131
식물들은 무엇을 의도하는 일도 없고 이탈하지도 않으면서 신의 세계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표현했다. 나무들은 특히 신비로웠으며 나에게는 생명의 불가해한 의미를 직접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숲은 사람들이 생명의 심오한 의미와 그 경이로운 작용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p 132
기독교적 스콜라 철학은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고, 성토마스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주지주의는 나에게 사막보다 더 생명력이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생각했다. 이들은 모두 자기들이 받아들이지도 않고 진정으로 알고 있지도 않은 것을 논리의 곡예로써 억지로 꾸미려 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사실은 체험이 문제인 것이다!’
p 138
‘신의 세계’라는 표현이 어떤 사람에게는 감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모든 초인간적인 것들, 눈부신 빛, 심연의 어두움, 시공의 무한성이 지닌 차가운 무감정, 비합리적인 우연세계의 으스스한 괴기성 등이 ‘신의 세계’에 속했다. ‘신’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다만 ‘교화적’ 인 것만은 아니었다.
p 141
몇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불쌍한 아버지가 내적인 의혹으로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으로부터 도피하여 맹목적인 믿음만을 주장했다. 그는 믿음을 쟁취해야만 했고 필사적인 노력으로 강요하려고 했다.
p 151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성자인 남편과 아버지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가 나에게 특히 사랑스럽게 여겨진 것은 바로 그의 결점과 부족함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p 158
식물도 나의 관심을 끌긴 했으나 그건 과학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식물은 뽑아서 말라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은 살아있는 존재로서 오직 성장하여 꽃을 피우는데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숨겨진 비밀스러운 의미, 일종의 신의 뜻이었다. 식물은 외경심을 가지고 대해야하며 철학적인 경탄을 가지고 바라보아야만 했다.
p 171
나는 자문해 보았다. “어디서 이런 꿈이 오는 것인가?”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꿈들은 당연히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보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진정한 문제는 왜 이런 과정이 일어났으며 왜 그것이 의식을 뚫고 나왔는가 하는 점이다. 의식적으로는 그와 같은 발전을 촉진시키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나는 다른 방면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배후에서 비밀리에 작용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중략) 제 2의 인격이 꿈의 생성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p 175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p 176
서양 종교는 분명히 말해 이러한 내적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2천 년 전부터 내적 인간을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려 그 인격의 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진지하게 노력해왔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
p 192
대학에서 첫 해가 지나는 동안 나는 자연과학이 엄청난 분량의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지만 통찰은 아주 빈약한데, 그것도 주로 전문적인 성질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철학 강의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중략)
이렇게도 저렇게도 들릴 수 있는 철학적인 사색만이 있을 뿐이었다.
p 202
나는 이전보다 더 경험주의로 치우치게 되었다. 나는 철학자들을 좋지 않게 여겼다. 철학자들은 온통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만 말을 늘어놓고, 정작 사실들을 가지고 답변해야 할 때는 침묵해버리기 일쑤였다.
p 210
저자는 정신병을 ‘인격의 병’이라 일컫고 있었다. (중략) 나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나에게 정신의학 외에는 다른 목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전격적으로 계시처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정신의학에서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흐름이 합류하여 그 합해진 물의 힘으로 스스로 물길을 내어 흘러갈 수 있을 것이었다. 여기에 내가 사방으로 찾아 헤매었으나 발견하지 못했던, 생물학적 사실과 정신적 사실에 관한 공동경험의 장이 있었다. 정신의학은 자연과 정신의 충돌이 실제 사건이 되는 결정적인 분야인 셈이었다.
p 211
나는 아무도 따라오려고 하지 않고 따라 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결심은 섰고 그것은 숙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p 213
나의 첫 저서는 조발성 치매(정신분열증)의 심리학에 헌정되었다. (중략)
정신의학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병든 정신과 ‘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정신간의 대화이며, ‘병든’ 인격과 치료자 인격 간의 대결이다.
p 249
1909년에 나는 이미 잠재적 정신병의 상징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신화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p 250
마음은 정말 신체보다도 더욱 복잡하고 접근하기 어렵다. 마음은 이를테면 세계의 절반으로, 우리가 그것을 의식할 때에만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은 단순히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제이며, 정신과 의사는 전체 세계에 관여해아 한다. (중략)
그런데 정신치료자는 단지 환자만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의사 자신이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환자의 치료는 말하자면 의사로부터 시작된다.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p 253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persona)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p 264
나는 사람들이 인생문제들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사람들은 지위, 결혼, 명성, 외적인 성공, 재물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신경증을 앓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지낸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 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p 272
나의 환자들과 피분석자들은 나를 인간적 삶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여, 그것에 관한 본질적인 것들을 체험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심리적 수준이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로서는 유명 인사들과의 단편적인 대화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었다. 나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성과가 있었던 대화들은 이름 없는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p 278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신경증이 성적 억압이나 성적 외상으로 인해 생긴다는 그의 주장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p 279
프로이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 당시의 내 경험으로는 그 어떤 사람도 프로이트에 견줄 수 없었다. (중략)
그의 성 이론이 그에게는 개인적으로나 철학적인 의미에서나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는 하였으나, 나로서는 그러한 성에 대한 단호한 평가가 그의 주관적 전제와 어느 정도로 연관되어 있는지, 그의 성 이론이 입증 가능한 경험과 어느 정도까지 연관되어 있는지 분명치 않았다.
p 295
“하지만 나의 권위를 위태롭게 할 수는 없어!” 그 순간 그는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때의 그 말이 나의 기억에서 영 잊혀 지지 않았다. 그 말 속에서 이미 우리 관계의 종말이 예시된 셈이었다. 프로이트는 개인적인 권위를 진리보다 더 내세웠다.
p 300
나는 꿈을 배후에 그 의미를 숨기고 있는 ‘가면’으로 이해하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중략) 나에게 꿈이란 자연의 일부로서 속이려는 의도를 품고 있지 않았다.
p 301
프로이트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나는 무의식과 무의식의 직접적인 표현인 꿈을 자연의 과정으로 여겼다. 이 과정에는 무엇보다 요술이나 속임수, 그리고 어떤 자의적인 것도 끼어들 수 없다. 나는 의식의 잔꾀가 무의식의 자연과정에도 확대된다는 가정을 믿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와 반대로 나날의 경험을 통해 오히려 무의식이 의식의 경향에 대해 얼마나 강하게 저항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p 311
프로이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아마도 신경증 환자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들의 독특한 개인적인 심리를 파고들어간 데 있을 것이다. (중략)
그가 우리에게 준 충격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꿈을 무의식과정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인정함으로써, 잃어버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 가치를 과거와 망각으로부터 되찾아 왔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무의식적 정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p 327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환상을 붙잡기 위해서는, 이를테면 나 자신을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해야만 했다. 거기에 대해 나는 저항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무척 불안하기도 했다. 자기 제어력을 잃어버리고 무의식의 제물이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p 344
나에게 현실이란 과학적인 이해를 의미했다. 무의식이 내게 가져다준 통찰을 통해 나는 구체적인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인생과제의 요점이 되었다.
p 346
니체는 내면의 사상세계 외에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의 발판을 잃어버렸다. 사실 그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소유한다기보다 오히려 내면세계가 그를 소유한 셈이었다. 그는 뿌리가 뽑혀 땅 위를 떠돌아다녔다. 그리하여 그는 과장하는 습성이 생기고 비현실적성에 빠졌다.
p 349
무의식은 신화적인 죽음의 나라, 즉 조상의 나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환상 속에서 영혼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영혼이 무의식 또는 죽음의 나라로 되돌아간 셈이 된다. 이것은 원시종족에서 비교적 자주 몰 수 있는 소위 ‘영혼의 분실’ 현상과 일치한다.
p 350
오늘날 내가 과거를 돌이켜보고 환상에 관해 작업하던 시절의 체험을 생각해보면, 그 작업이 소명과도 같이 나를 압도하며 다가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p 351
나의 저작, 즉 내가 정신적으로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은 다 초기의 명상과 꿈에서 나온 것이다. 1912년에 그러한 명상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거의 50 년이나 되었다. 인생 후반기에 내가 이루어놓은 것은 모두 초기의 체험 속에 이미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감정이나 이미지의 형태로 있었지만 말이다.
p 365
나는 인생 후반기가 시작되면서 무의식과의 대면을 시도 했다. 무의식에 관한 나의 작업은 오랜 기간이 걸렸다. 20 년쯤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내 환상의 내용을 약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p 372
나는 곧 분석심리학이 연금술과 기묘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금술사들의 경험은 나의 경험이었고, 그들의 세계는 어떤 의미로는 나의 세계였다. 이것으로 내 무의식의 심리학은 역사에서 대응물을 만나게 된 셈이었다.(중략)
원초적 이미지와 원형의 본체가 내 연구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고, 역사 없이는 심리학, 특히 무의식의 심리학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 397
나의 생애는 내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이것들은 하나하나 떼어놓을 수가 없다. 나의 모든 저술은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부과된 과제인 셈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강요로 이루어졌다. 내가 쓴 것은 내부로부터 나에게 엄습해 온 것들이다. 나는 나를 층동질하는 영혼으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허용했다. 나는 나의 저술에 대해서 어떤 뜨거운 공감을 기대한 적이 없다. 그 글들은 내가 살아온 동시대 세계에 대한 보상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누구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연구 초기에는 완전히 외톨이가 된 느낌을 자주 받았다. 나는 사람들이 싫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날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일찍이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이토록 성공을 거둔 것이 무척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내가 말했던 것이 말해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가능하면 더 훌륭하게 해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p 420
우리의 마음은 신체와 마찬가지로 조상대대로 이미 존재해온 요소들로 이루어져있다.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에서 ‘새로운 것’이란 아득한 옛날의 구성요소들이 끊임없이 변화하여 재결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체나 마음은 현저하게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새로운 것, 즉 방금 생겨난 것 속에서는 알맞은 자리를 찾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조상의 특징들은 그 속에서 단지 부분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p 423
우리의 내적인 평안과 만족은, 개체를 통하여 인격화된 역사적 가족이 우리 현재의 덧없는 상황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거의 대부분 좌우된다.
p 430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오래전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확신하지만, 그들이 그 기간에 어떤 존재가 되어버렸는지는 아직 모르고 있다. 시계라는 것은 소위 중세 이래로 시간과 그 동의어인 진보가 유럽인에게 슬며시 들어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그들로부터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짐을 가볍게 하고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 점점 더 속력을 올리며 여행을 재촉하고 있다. 그들은 중량의 상실과 이에 따른 공허를 열차, 기차, 항공기, 로켓과 같은 성과물의 환상으로 보상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빠른 속력으로 인해 유럽인으로부터 존재의 지속성을 더욱더 빼앗아가고, 더 나아가 유럽인을 속도와 폭발적인 가속도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다른 현실로 옮겨 놓는다. 우리가 사하라로 들어갈수록 나는 시간이 점점 느려지는 느낌을 받았고, 심지어 시간이 거꾸로 가도록 위협당하고 있는 듯했다.
p 434
나는 늘 동시에 두 개의 영역에서 사는데 익수해져 있었다. 하나는 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싶으나 이해할 수 없었고, 또 하나는 무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꿈의 형태 이외로는 더 잘 표현할 길이 없었다.
p 438
많은 부분에서 합리적인 특성을 가진 유럽인에게 인간적인 것은 무척 낯설다. 유럽인은 합리적인 특성을 꽤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이 생의 열정을 희생하고 얻은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원시적인 인격 부분이 국부적인 지하존재로 떨어지는 운명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p 439
살아있는 정신구조에서는 단순히 기계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관리되며 전체와의 관계성 속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특정한 목적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의식은 전체에 대한 조망이 없으므로 대개 이러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사실 확인으로 그쳐야하며, ‘자기의 그림자’와의 충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회답은 앞으로 진전되는 미래의 연구에 맡겨두어야 할 것이다.
p 452
인간의 제의적 행위는 신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응답이며 반응이다.(중략)
인간이 신의 압도적인 작용에 충분히 응답할 수 있으며 반대로 신에게조차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 개인을 형이상학적 요소를 지닌 위엄에 이르도록 고양하는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무의식적인 암시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신과 우리’라는 이러한 동등한 관계가 인디언들의 저 부러워할 만한 의젓함의 근거가 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한 인간은 문자 그대로, 참으로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이다.
p 489
내가 인도에서 주로 몰두한 것은 악의 심리학적 성질에 관한 물음이었다. 이 문제가 어떻게 인도의 정신생활에 의해 통합되는가 하는 것은 내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에 관해 새로운 이해를 얻게 되었다. 동양 사람들에게는 도덕덕인 문제가 우리의 경우에서처럼 우선적인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들에게 선과 악은 의미상으로 본성에 포함되어 있어서 사실은 유사한 것으로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p 490
나는 인간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지도 않으며 나로부터도 자연으로부터도 그러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내개는 형언할 수 없는 경이이기 때문이다. 자연, 영혼, 그리고 인생은 나에게 활짝 피어난 신성처럼 여겨진다.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에게 존재의 최고 의미는 오직 그것이 존재한다는 데 있지, 그것이 원래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하는 데 있지 않다. 나에게 해방이란 것이 없다. (중략)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p 495
나는 부처의 삶을 개인의 인생 전체를 통해 스스로를 주장한 ‘자기’의 실현으로 이해했다. 부처에게 ‘자기’는 모든 신을 넘어서, 특히 인간 실존과 세계의 정수를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로서 존재 자체의 측면뿐 아니라 세계에 의미를 부어하는 그의 인식도 함께 포괄하고 있다. 부처는 인간 의식의 우주진화론적인 위엄을 파악하고 이해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는 만약 누군가가 의식의 빛을 꺼버린다면 세계는 ‘무’로 빠져들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 역시 부처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구현자다. 하지만 전혀 다른 뜻에서 그러하다. 둘 다 세상을 극복한 자들이다. 부처는 이를테면 이성적 통찰로써, 그리스도는 숙명적인 희생으로써 그 일을 이루었다. 기독교에서는 더 많이 고통을 겪는 데 주안점을 두고, 불교에서는 더 많이 깨닫고 행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중략)부처는 역사적 인격체이므로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역사적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이므로 파악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p 519
삶과 모든 세계가 나에게는 감옥처럼 보였고 내가 다시 건강해지리라는 사실에 무척 화가 났다. 모든 것이 마침내 자신으로부터 떨어져나갔다면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금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실에 매달린 채 작은 상자 속에 들어가 있는 것에 익숙해 질 것이다.
p 526
병을 앓은 후에 나에게는 왕성한 연구시기가 시작되었다. 나의 많은 주요저작이 그 후에 비로소 출간되었다. 만물의 종말에 관한 인식 내지는 직관으로,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이제는 나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려고 애쓰지 않고 생각의 흐름에 나를 맡겼다. 그리하여 문제들이 하나하나 차례로 나에게 다가와 무르익으면서 형상화되었다. 그런데 나는 병을 통하여 또 다른 것을 얻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었다. 주관적인 반론 없이 말이다. 현존재의 조건을 내가 보는 그대로, 내가 이해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병을 앓은 후에 비로소 나는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자아는 굴복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참아내며 진리를 견디며 세계와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패배에서도 승리를 체험하게 된다. 밖에서든 안에서든 아무 것에도 방해를 받지 않는다. 자신의 고유한 연속성이 인생과 시간의 흐름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이 숙명의 의도를 주제넘게 간섭하지 않을 경우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법이다.
p 551
엄밀히 말해 내 저작들은 이승과 저승의 조화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려는 늘 새로워지는 시도였다.(중략)
나는 우리에게 사후의 삶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아니요, 바라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생각들을 키워가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원하지도 행동하지도 않는데도 그런 종류의 생각들이 내 안에서 맴돌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 밝히지 않을 수 없다.
p 534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인생이 현존을 넘어서 무한정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훨씬 더 이성적으로 잘 살며 더욱 편안해질 것이다. 사람은 수백 년을, 상상할 수 없는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와 같이 헛되니 분주하기만 한가?
p 535
우리가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지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을 단념해야 한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 우주만물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문제를 학문적이거나 지적인 문제에서 제외시켜야만 한다.
p 536
이성은 우리로 하여금 매우 좁은 한계에 매여 있도록 하며, 오직 이미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이미 알고 있는 삶을 살도록 요구한다. 마치 사람들이 삶의 진정한 범위를 알고 있기나 한 적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는 매일매일 우리 의식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인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과대평가된 이성은, 그것이 지배하면 개인이 궁핍해진다는 면에서 독재국가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p 565
노년에 인간은 그의 내면의 눈으로 추억들을 펼쳐보며 과거의 내적 외적 이미지들 속에서 자신을 생각하면서 인식하기 시작한다.
p 571
무의식의 표상들은 의식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 고유의 현실과 자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들을 단지 일종의 주면현상들로만 보고 있다. (중략)
‘다른 쪽’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의 무의식적 존재가 참다운 존재이며 우리의 의식세계는 일종의 환각이거나 일정한 목적을 위해 세워진 하나의 가상적 현실임을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그 속에 있는 동안만 현실로 여겨지는 꿈과 같은 것이다.
p 572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시금석이다.(중략)
인간이 그릇된 소유를 고집할수록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덜 느끼게 될수록 그의 삶은 더욱더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중략)
우리가 이생에서 무한한 것에 접속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느낄 때 우리의 욕구와 자세가 달라진다. 결국 인간이 가치 있는 것은 오직 본질적인 것 때문에 그러하다. 우리가 그것을 갖지 않는다면 인생은 헛된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무한한 것이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적인 것이다.
p 580
윤리적 행위의 판단 기준은 사람들이 ‘선’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정언적 명령의 성격을 띠고 있고, 이른바 악은 무조건 피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에 이제는 더 이상 기초할 수 없다. 악의 현실성을 인정하게 되면 선은 당연히 두 대극의 한쪽으로 상대화 된다. 악도 마찬가지이다. 그 둘이 합하여 하나의 역설적인 전체를 이루게 된다. 이것은 사실상 선악이 그 절대적인 성질을 잃는다는 것을 뜻한다.
p 591
과학적 인식은 ‘무의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럼으로써 과학은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각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다. 과학은 정신의 실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다만 정신을 수단으로 사용해야만 인식을 할 수 있을 뿐이다.
p 597
어떤 학문도 신화를 대체하지 못하고 어떤 학문으로도 신화를 만들어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신’이 아니라 신화가 인간 안에 있는 신적인 삶을 계시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을 고안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일종의 ‘신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p 623
사람들이 나를 현명하다거나 ‘지자’라고 한다면 나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떤 사람이 강에서 한 번 모자로 물을 가득 퍼냈다고 하자.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그 강물이 아니다. 아는 강가에 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벚나무 줄기가 자라도록 돌봐야 할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거기 서서 자연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고 경탄할 뿐이다.
p 624
다른 대부분의 사람과 나의 차이점은, 내게는 ‘칸막이 벽’들이 투명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고유한 특성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벽들이 너무 두꺼워서 그 뒤를 보지 못하므로 거기에는 전혀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느 정도 그 배후의 과정을 인지하는 편이어서 내적 확신을 가지고 있다. (중략)
나로 하여금 삶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무의식 그 자체일 것이다. 어쩌면 어릴 적 꿈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내 삶의 방향을 처음부터 결정해버렸다.(중략) 그것은 이미 나의 소년 시절에 형성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중략)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나의 고독은 어릴 적 꿈의 체험과 함께 시작되었고, 내가 무의식에 대한 연구를 할 시기에 최고조에 달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이 알게 되면 그는 고독해 지는 법이다.
p 628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내 인생은 풍성했으며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어떻던 내가 그토록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 동안 일어났던 것들은 그야말로 기대 밖의 일들이었다. 나 자신이 달라졌더라면 많은 일이 다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대로 그렇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p 629
나이가 들수록 나는 그만큼 더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인식하지 못하게 되며 알지 못한다. 나는 나 자신에 관해 놀라고 실망하고 기뻐한다. 나는 슬퍼하고 낙심하고 열광한다. 또한 나는 그 모든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합을 계산할 수는 없다. 나는 어떤 결정적인 가치나 무가치를 확증할 입장이 못 된다. 나는 나 자신과 내 인생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나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확신을 결코 갖고 있지 않다. 나는 단지 내가 태어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어디에 실려 다니는 것과도 같았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의 토대 위에 존재하고 있다.
p 630
노년이란 그런 것이면서 또한 하나의 제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많다. 식물, 동물, 구름, 낮과 밤, 그리고 인간 속에 있는 영원한 것 등이다. 내가 자신에 관해 불확실해질수록 온갖 사물과의 친화성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끝)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56년에 기획되어 5년여에 걸쳐 착실히 기획된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우선 편집자의 글은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동기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책의 전체적 방향성을 짐작케 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처음 몇 장의 전개가 저자의 ‘내적 사건’들의 발생과 경험을 따르게 됨으로써 사건들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게 됨은 독자로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는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 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 ‘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고 저자가 밝힌 만큼 감수해야하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13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장의 순서가 표시되어있지는 않지만).
나는 이를 크게 3개의 PART로(이 단어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편의상 이렇게 부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PART는, 일생을 사로잡은 꿈/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 아름다운 시간들 의 3 개의 장이다. 각각 저자의 유년 시절 , 학창 시절, 대학 시절의 부제를 붙여줌으로써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의 체험과 꿈, 의문과 생각들의 단계적 발전과 성숙 과정을 서술하며 숙명적으로 심리학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번째 PART는, 상처 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프로이트와의 만남/......../여행의 6 개의 장이다. 환자의 치료에 의한 임상적 경험과 연구 다른 학자와 저자의 저술 등을 접하고 여행을 통해 이문화와 종교를 경험하면서 그의 정신 분석학이 종교와 철학 역사 문화를 넘어 깊이와 폭을 더해가는 과정을 서술한다.
세 번째 PART는, 환상들/ 사후의 삶에 관하여/만년의 사상/ 회고의 4 개의 장이다.
병을 앓은 후 그는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면서 왕성한 연구 저술 활동을 한다. 죽음에 다가서면서 80여년에 걸친 삶의 회고와 정리를 서술하고 있다.
아무래도 나에게는 마지막 세 번째 PART의 장절들이 감명 깊다. 이렇듯 특이하고 개성적인 삶을 산 세계적인 노학자는 그의 80 평생의 삶을 어떻게 회고할까?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내 인생은 풍성했으며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어떻던 내가 그토록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 동안 일어났던 것들은 그야말로 기대 밖의 일들이었다. 나 자신이 달라졌더라면 많은 일이 다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대로 그렇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그만큼 더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인식하지 못하게 되며 알지 못한다. 나는 나 자신에 관해 놀라고 실망하고 기뻐한다. 나는 슬퍼하고 낙심하고 열광한다. 또한 나는 그 모든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합을 계산할 수는 없다. 나는 어떤 결정적인 가치나 무가치를 확증할 입장이 못 된다. 나는 나 자신과 내 인생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나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확신을 결코 갖고 있지 않다. 나는 단지 내가 태어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어디에 실려 다니는 것과도 같았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의 토대 위에 존재하고 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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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북리뷰 안보이시는 분들 일단 파일첨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4] | 관리자 | 2009.03.09 | 106500 |
358 |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Review [1] | 최우성 | 2010.03.08 | 5840 |
357 | 북리뷰4주차-기억 꿈 사상 | 이은주 | 2010.03.08 | 4790 |
356 | 4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1] | 신진철 | 2010.03.08 | 5549 |
355 | 기억, 꿈, 사상 (카를 융) [3] | 김용빈 | 2010.03.08 | 6172 |
354 |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을 읽고 - 김영숙 | 김영숙 | 2010.03.08 | 5682 |
353 | 북리뷰 4.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박상현 | 2010.03.08 | 5623 |
» | 카를 융 자서전 | narara | 2010.03.07 | 5535 |
351 | 4. 카를 융 자서전 –기억 꿈 사상 | 미나 | 2010.03.07 | 5577 |
350 | 4. 카를 융 기억 꿈 사상(노미선) | 별빛 | 2010.03.07 | 5576 |
349 | 4. 기억 꿈 사상(융) 불가능은 없다. 생각의 차이와 한계... | 윤인희 | 2010.03.07 | 5540 |
348 | 어쩌면 좋아.... [3] | 맑은 김인건 | 2010.03.07 | 5519 |
347 | 4. 기억 꿈 사상 | 박미옥 | 2010.03.06 | 6041 |
346 | 북리뷰 4. <기억 꿈 사상> [2] | 이선형 | 2010.03.04 | 5743 |
345 | 디지털 혁명의 미래_고든벨, 짐겜멜 | 맑은 김인건 | 2010.03.02 | 5493 |
344 | 세번째 북리뷰_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1] | 김혜영 | 2010.03.01 | 5955 |
343 | 3.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노미선) | 별빛 | 2010.03.01 | 5549 |
342 | 북 리뷰3.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2] | 박상현 | 2010.03.01 | 5995 |
341 |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 김연주 | 2010.03.01 | 5556 |
340 |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 김용빈 | 2010.03.01 | 5743 |
339 | 리뷰 3주차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 윤인희 | 2010.03.01 | 57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