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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8일 04시 38분 등록

1.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1) 저자에 대한 기록 : 카를 구스타프 융 (1875~1961)

 칼 구스타프 융은 정신이상 환자를 치료했던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였으며, 사람의 심리를 폭넓게 연구한 심리학자였다. 또한 심리학을 뛰어넘어 인문사상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상가 였다. 오늘날 우리가 사람의 성격을 구분하는 데 일상적으로 쓰는 표현인 ‘내향’,‘외향’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융의 이론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으며 건장했다. 등산가였고 능숙한 선원이었으며, 정원을 직접 가꾸고, 장작을 패고, 돌 조각을 했으며, 집을 짓기도 하는 등 직접 손으로 하는 것을 즐겼다. 스포츠도 즐겼고, 식욕도 왕성했으며, 와인을 마시고, 시가와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그는 활동적이고 원기왕성한 건강한 사나이여서, 특히 여성들의 호감을 샀으며, 21세에 16세이던 엠마를 만나 7년 만에 결혼을 했다. 자서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융과 함께 일했던 안토니아 울프는 융의 애인이었다. 복잡한 삼각관계에서 융이 둘러댄 말이 재미있다.“남자는 밥 해줄 여자와 지성을 자극할 여자, 이렇게 두 여자가 필요하다.” ..사실 융은 치유 불가능한 여성편력자로 염문을 뿌리고 살았다고 한다.  

융의 심리학이 프로이트를 비롯한 기존의 심리학과의 관계에서 갖는 차별성은 그 영적인 특징에 있다. 그는 이성의 시대의 돌입과 함께 잊혀져 가던 신화와 고고학, 점성술과 연금술에 몰입하며 자신의 이론과의 연계점을 찾으려 노력했고, 이를 통해 개개인의 영혼을 넘어 인류 전체가 가진 영혼의 공통된 진리를 얻어내려 했다. 그 결과 ‘집단 무의식’, ‘원형’,‘자기’,‘개성화 과정’과 같은 새로운 개념을 창출, 인간 정신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에 그 깊이를 더해 갔다 

융의 연구는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모든 사상과 분야를 넘나들었다. 초과학이나 신비에 대한 관심은 고대 종교로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서양인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기독교에 대한 연구는 그를 불교와 힌두교같은 동양 종교뿐만 아니라 ‘주역’까지 통달하게 만들었다.  

2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다작 작가였으며 의사, 정신의학자, 정신분석가, 교수, 학자, 저술가, 사회비평가 등 융은 이 모두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빈틈없는 정신 연구가였고 탁월한 심리학자였다. 융은 어떤 단일 학문 분야보다 폭이 넓었으며, 정상적인 경계선 밖에 있는 진리를 추구해 나갔다. 그의 관심사는 정신의학과 그것의 임상적 적용뿐만 아니라, 가장 폭넓은 삶의 의미의 가능성 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 라고 말했던 그는 “인간 존재의 유일한 목적은 단순한 존재의 암흑 속에서 한 가닥 등불을 밝히는 것”이라고 갈파한다.  

그의 자서전에도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의 죽음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융은 1961년 잠시 병을 앓다가 죽었는데,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특이하게도 거센 폭풍우가 뒤따랐고, 그가 좋아하던 호숫가의 포플러 나무가 번개에 맞아 쓰러졌다고 한다. 과연, 그 다운 죽음이다. 

2) 저자에 대한 생각  

감동적인 영화를 보거나, 좋은 음악을 듣게 되면, 영화감독의 제작의도나 작곡가의 창작의지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마초의 원형(?)으로 불리는 김훈의 소설은 재미있지만, 그가 쓴 소설보다 그의 에서이 ‘바다의 기별’이 더 재미있었다. 그의 일상과 사유의 근거를 일부나마 엿볼 수 있어서였다. 공지영이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소설보다, 그들의 자전적 에세이가 더 재미있다고 느낀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는 고독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자가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고독..이 책은 고독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융의 고백이고 회상록이다. 또한 인간의 정신에 대한 탁월한 통찰과 성과를 이끌어 낸 그가 어떻게 그의 사상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하고, 인식의 배후에 있는 주관적 체험을 보고하며, 독자를 연구자의 정신세계로 인도하는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카를 융의 책을 읽으면서, 드디어, 말로만 듣고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던, 이 양반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내심‘기쁘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 (효과가 별로 좋지 않은) 두꺼운 책을 넘겼다.  

호기심이 많고 감탄이 많은 유년시절의 아이, 아무리 일생을 사로잡은 꿈이라 하지만 자신의 꿈을 그렇게 꾸고 기억해내고, 꿈을 통찰하며 해석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라는 기본적인 의문과 함께, 돌탑을 만들고, 지구 위에서 지구를 바라보기도 하는 등 4차원을 훌쩍 뛰어넘는, 16차원의 정신세계를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초자연적인 현상들, 정신이상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이면서도, 스스로 정신의 건강영역과 불건강 영역을 넘나드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천재는 다른 것일까?) 

무의식이라는 용어에 대해 프로이트 학파와 융 학파는 정의하는 바가 다르다. 프로이트는 최초에 자아의식이 있고 그것을 억압당함으로서 무의식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생존에 위험하거나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생각, 감정, 욕망 등이 숨겨지거나 떨어져 나가 쌓이는 것을 무의식이라고 했다. 융은 무의식을 인격형성의 모체라고 여겼다. 넓고 깊은 바다 같은 무의식이 있고 그 무의식에서 자아의식이 싹터 차츰 현실세계를 의식하면서 영토를 넓혀 간다고 보았다. 그리고 프로이트식 무의식에는 그림자, (아나미,아니무스), 콤플렉스 등의 이름을 붙였다.  

무의식의 엄밀한 의미가 무엇이든, 개인의 내면에는 본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독립적인 세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융이 강조한 것은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무의식속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것, 이것이 우리를 개성화의 길로 다가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사람이 심리적 위기에 직면하면, 그 사람이 평소 가지고 있던 의식의 편향된 태도를 수정하기 위해서, 무의식이 자동적으로 활동한다고 믿었다. 

진정한 해결책은 자기 내면에서 나온다. 왜냐하면 진정한 해결책은 스스로의 태도를 바꿀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1935년 런던에서 의사들을 상대로 강연 시, 융은 ‘신경증의 정의’를 묻는 의사들에게 이렇게 답한다. “신경증은 진실로 자기를 치유하려는 시도입니다. 그것은 심리적 시스템이 균형을 회복하려는 자기조정 과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경증은 꿈이 가지고 있는 기능과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신경증이 꿈보다 강력하고 격렬하다는 것 뿐입니다.” 

그는‘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그것이 자신의 존재의미라고 했다. 존재의 의미? 나도 역시 세계가 주는 대답으로, 내가 해야 할 대답을 대체하고 싶지는 않다. 갑자기, 내 인생이 과연, 나에게 어떤 물음을 가지고 있는지, 몹시 궁금해진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프롤로그

(p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p13) 나에게 인생은 뿌리를 통하여 살아가는 식물처럼 생각되었다. 식물의 고유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p14)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외적인 상황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유년시절] 

(p31)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초의 꿈을 우연히 꾸었다. 그 꿈은 이를테면 일생 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그때 나는 서너 살이었다.  

(p33) 오랜 후에야 비로소 그 기이한 형상이 일종의 남근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p42) 이런 어린이답지 않은 행동은 예민한 감수성과 상처받기 쉬운 성격과 연관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유년시절의 깊은 고독감과도 연관이 있었다. 

(p46) 나는 일곱 살에서 아홉 살 사이의 그 시기에 볼놀이를 즐겨 했던 것을 기억한다. 오직 나의 불만이 살아 있는 불이었고 확실히 신성한 여운이 감돌고 있었다. /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내가 돌이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단 말인가? 

(p52) 그때 비로소 무의식이 그 작품에 이름을 부여해 주었다. 그것은 ‘아투마빅투’즉 ‘생명의 숨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학창시절] 

(p55) 나는 놀라움과 은밀하고 지독한 부러움을 안은 채 그들이 방학동안에 알프스, 그러니까 취리히 근처 저 ‘불타오르는 눈덮인 산들’에 다녀 온 이야기를 들었다. 

(p61) 아무도 나에게 수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못했고, 나는 그러한 의문을 조리있게 말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나의 어려움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p64) 얻어맞는 순간, 번개같이 한 생각이 떠올랐다.‘이제 너는 더 이상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

(p66) 모든 속임수는 끝이 났다! 여기서 나는 신경증(Neurose) 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p67) 신경증은 나를 결국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했다./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p70) ‘나’는 단지 성장한 인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인물이며, 권위자요, 직위와 위엄을 갖춘 사람이며, 나이 든 남자요,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p73) 나는 무언가를 배우려고 학교에 간 것이지, 쓸모없고 의미없는 곡예는 하고 싶지 않았다.  

(p78) 하느님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이러한 곤경으로 밀어넣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채 방치했다.  

(p80) 나는 엄청난 안도감과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저주를 예상했는데 그 대신 은총이 나에게 임하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이 임했다. 나는 행복감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울었다. 내가 하느님의 가차없는 준엄함에 쓰러져 복종하자 하느님의 지혜와 선이 나에게 드러났다.  

(p81) 아버지는 살아서 직접 임하시는 하느님, 성서와 교회를 넘어서 전능하고 자유로운 하느님, 당신의 자유를 인간이 누리도록 촉구하고, 당신의 요청을 무조건 실현하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견해와 신념들을 버리도록 강요할 수도 있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 

(p87) “아, 이런! 너는 항상 생각하려고만 하는구나. 사람은 생각해서는 안 되고 믿어야 해.”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사람은 체험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알아야 한다.’그러나 말로는 “나에게 그런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했다. 

(p89) 나는 나 자신이 잘못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잘못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속으로는 언제나 나 자신이 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p95) 그 무렵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며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가 나에게 제기되었다.  

(p96) 하느님 앞에서 나는 단독자이며 하느님만이 이와 같은 무서운 일을 나에게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p97) 그녀는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는데 그 말투는 활달하게 철썩거리는 물소리 같았다. / 그녀의 무의식적인 인격이 갑자기 돌출하곤 했다. 그 인격은 예상 외로 강력했으며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닌 어둡고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p100) 그녀는 낮에는 사랑스러운 어머니였으나 밤에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듯 했다.  

(p101) ‘진정한 인식’은 본능에서 비롯되거나 타인과의 신비로운 교제에 기인한다. 그것은 비개인적인 관조행위를 통해 보는 ‘배후의 눈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p107)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걷잡을 수 없는 회의라든가 압도적인 감동, 나로서는 하느님의 본질을 이루는 것으로 여겨지는 은총들을 보지 못했다.  

(p109) 하느님은 자비로우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존재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위대한 위험’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쓴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라는 한쪽 면에만 매달려 유혹자와 파괴자의 손아귀에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예수도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p110) 나는 교회로부터 굴러 떨어졌다. 그것이 나를 슬픔으로 가득 차게 했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줄곧 마음을 어둡게 했다.  

(p111) 종교란‘인간이 하느님과 자립적인 관계를 맺는 영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17) 드디어 여기에 악마를 진지하게 다루고, 완전한 세계를 창조하려는 하느님의 의도를 방해하는 힘을 가진 적대자와 피로 계약을 맺기까지 한 자가 있구나.  

(p120) 하느님의 존재는 머리 위에 떨어지는 벽돌과도 같이 너무나 분명한데도 이 철학자들은 어찌하여 하느님은 일종의 관념이며 자기들이 만들어낼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임의적인 가설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p125) 그것은 주목을 받지 않으려는 나의 일반적인 성향과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p128)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마치 별들과 끝없는 우주의 장엄한 세계의 숨결이 나에게 닿은 것 같았으며, 또한 오래전에 죽었으나 아직도 영겁의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의 영혼이 보이지 않게 몰래 방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p135) 지성은 인간 마음의 기능으로, 마치 한 아이가 태양의 눈이 멀기를 기대하면서 태양을 향해 들고 있는 지극히 작은 거울 한 조각과도 같다.  

(p136)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p139) 나로서 서운한 점은, 자연과학에서는 의미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었고, 종교학에서는 경험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었다. 자연과학은 제1의 인격의 정신적 욕구에 아주 잘 부합하였고, 그에 반해서 인문학이나 역사과목은 제 2의 인격을 위한 일종의 유익한 시청각수업인 셈이었다.  

(p149) 그래, 이것이야말로 세계다. 나의 세계, 고유한 세계요, 그 비밀이다. 이곳에는 선생도, 학교도,해답 없는 문제도 없다. 사람들이 질문을 하지 않고도 있는 곳이다.  

(p155) 거기에는 알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찾아볼 수 있는 무척 매력적인 도서관이 있었다.  

아름다운 시간들 [대학시절] 

(p164) “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나 자신이 무엇을 할지는 모르고 있어.”/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이 결정을 앞두고 갈등하고 있을 때 나는 두 개의 꿈을 꾸었다.  

(p166) ‘결코 따라해서는 안 된다.’이것이 나의 신조였다.  

(p170) 나는 제1의 인격이 빛을 운반하는 자이며 제2의 인격은 그림자처럼 제1의 인격을 따라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p175)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무대에서 주로 대사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 크다.  

(p179) 아버지는 누군가와 말다툼을 해야만 했으며 가족과 자기 자신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왜 그는 그런 싸움을 모든 피조물의 비밀스러운 창조자이며 세계의 고통에 대해 실제로 책임이 있는 단 한 분인 하느님과 하지 않았을까? 

(p186) 나는 궁핍한 시절을 굳이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시절에는 하찮은 물건까지도 아끼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나는 언젠가 여송연 한 통을 선물로 받은 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p198) 나는 나 자신이 니체를 닮을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불안을 느끼며 주춤했던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니체가 내적인 체험과 통찰을 가지고 불행하게도 그것들에 관해 말하고자 했으나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p199) 니체는 인생 후반, 그러니까 중년을 넘기고서야 제 2의 인격을 비로소 발견했으나, 거기에 반해 나는 제2의 인격을 이미 소년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p202) 나는 철학자들을 좋지 않게 여겼다. 철학자들은 온통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만 말을 늘어놓고, 정작 사실들을 가지고 답변해야 할 때는 침묵해버리기 일쑤였다.  

(p204) 그때 갑자기 권총이 발사된 듯 폭음이 들렸다. / 식탁판이 한가운데를 지나서까지 갈라져 있었다. 갈라진 데는 완전 통나무판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70년 동안 마를 대로 마른 통나무판이, 이 여름날에 어떻게 갈라진단 말인가? /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2의 인격의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그래. 뭔가 뜻이 있을거야”나는 내키지 않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화가 나기도 했다. 

(p210)“정신의학 교과서들이 다소 주관적인 특색을 띠는 것은 아마도 그 분야의 특이성과 학문 형성의 불완전성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정신병을 '인격의 병‘이라 일컫고 있었다. 

(p211) 결심은 섰고 그것은 숙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나의 확신을 흩뜨려 놓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강물이 합류하여 세차게 흘러가면서 먼 목적지로 나를 가차없이 실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통합된 이중성’이라는 고양된 감정에 힘입어 나는 마법의 파도를 탄 것처럼 시험을 치러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p213) 정신의학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병든 정신과‘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의사의 정신 간의 대화이며,‘병든’인격과 치료자 인격 간의 대결이다.  

(p216) 정신의학은 정신병이 생겼을 때 이른바 건전한 정신을 엄습하는 생물학적 반응을 조리있게 표현한 것이라고 여겨졌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p222) 프로이트의 견해는 나에게 개별적인 사례들에 대한 보다 폭넓은 연구와 이해의 길을 열어주었다. 프로이트 자신은 정신의학자가 아니고 신경학자였지만 심리적인 문제를 정신의학에 도입했다.  

(p226)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p229) 영웅의 어머니가 되고 싶은 그녀의 야심적인 갈망이 나에게 고착된 것이었다. 그녀는 이를테면 나를 양자로 삼아 자신의 기적적인 치유를 세상에 널리 선전했다.  

(p231)음주는 괴로운 상황을 잊기 위해 자신을 마취시키려는 절망적인 시도였다.  

(p238)그 구두수선공 같은 동작은 연인과의 동일시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녀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 것이었다.  

(p240) 다른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치유되기를 기대할 수 없는 가운데 죽음에 이르기까지 동행해 주어야 하는 환자들이 있었다. 
 

(p240) 피해망상과 환각이 일종의 의미의 핵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 하나의 인생사, 하나의 욕망이 그 배후에 있었다.

(p243) 겉으로 보게 되면, 정신병 환자에게서는 비극적인 붕괴만이 보인다. 하지만 감추어져 있는 환자 영혼의 다른 측면의 삶을 보는 일은 드물다. 우리는 자주 환자의 외관에 속는다. 

(p248) 정신치료와 분석은 인간 개체가 그러하듯 다양한 법이다. 나는 환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모두 개별적으로 다루는 편이다.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원칙은 다만 최소한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심리적인 진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반대로 뒤집을수도 있을 때에만 타당한 것이 된다. 나로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해결책도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바로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p250) 오늘날에는 예전과는 달리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위험이 자연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즉 각 개인과 다수의 마음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정신의 변이는 위험하다.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이 제대로 기능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만일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제정신을 잃어버리면 수소폭탄이 터질 수도 있다.  

(p253)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상처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그러나 의사가 체면(Persona)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p254) 당신은 분석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우선 당신 자신을 알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신자신이 치료의 도구입니다. 당신이 올바르지 않다면, 어떻게 환자를 확신시킬 수 있겠습니까? 당신 자신이 진정한 재료가 되어야만 합니다.  

(p264) 나는 사람들이 인생문제들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사람들은 지위,결혼,명성,외적인 성공, 재물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신경증을 앓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지낸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 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p270) 우리 시대에 이와같이 마음의 분열로 희생된 자들은 단지 ‘스스로 택한 신경증 환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표면적인 증상은 자아와 무의식 사이에 벌어져 있는 틈이 메워지는 순간 사라진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p276) 그는 억압의 원인을 성적 외상(Trauma) 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나로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의 치료과정에서는 신경증의 많은 사례에서 성욕의 문제는 부차적인 역할을 할 뿐이고 다른 요인들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사회적응, 비극적인 삶의 정황으로 인한 억압, 체면 차리기 등의 문제들이었다.  

(p279) 그의 태도에는 진부함이 전혀 없었다. 그는 무척 총명하고 예리하며 어느 면에서나 괄목할만한 사람이었다.  

(p284) 그것은 신랄함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그의 신랄함이 두드러져 보였다. 내가 그 신랄함을 성욕에 대한 그의 태도와 연관시켜 바라볼 수 있기까지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한 채로 있었다.  

(p288) 모든 것은 지나간다. 어제의 진리가 오늘은 허위가 되며, 그저께 잘못된 결론으로 간주되던 것이 내일은 하나의 계시가 될 수도 있다.

(p294) 나는 진리탐구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개인적인 명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p295) “하지만 나의 권위를 위태롭게 할 수는 없어!”그 순간 그는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때의 그말이 나의 기억에서 영 잊혀지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개인적 권위를 진리보다 더 내세웠다.  

(p300) 나는 꿈을 배후에 그 의미를 숨기고 있는 ‘가면’으로 이해하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의미는 이미 인식된 바 있으나 소위 악의적으로 의식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p310) 나는 고독해질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소위 친구들의 반응에 대해서도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미리 곰곰이 따져본 점이었다. 나는 여기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는 것과 나의 확신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p311) 프로이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아마도 신경증 환자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들의 독특한 개인적인 심리를 파고 들어간 데 있을 것이다. 그는 환자의 사례가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개별적인 환자의 심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말하자면 환자의 눈으로 관찰했으며, 그 결과 병에 대하여 그때까지 가능했던 것보다 한층 더 깊은 이해에 도달했다. 이 점에서 그는 불편성과 용기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럼으로써 많은 선입견을 극복해나갔다.  

내 안의 여인 아니마 

(p315)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꿈과 환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나는 단지 질문만을 던졌다. “당신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여깁니까?”“그것은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p321) 이 순간이 내 운명의 전환점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마침내 그 놀이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아이의 놀이를 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을 때 크나 큰 체념과 굴욕감이 고통이 따랐다.  

(p331) 만일 네가 이 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너는 너 자신을 총으로 쏘아야 한다. 

(p337)“그는 수백 년 전에 죽은 베다의 주석가 아닙니까? 내가 말했다.”네, 그렇습니다. 그의 대답에 나는 크게 놀랐다.“그럼 영혼을 말하는 것입니까?”내가 물었다.“물론 그의 영혼이었습니다.”그가 시인했다. “영혼의 구루도 있습니다.”그가 이어서 말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사람을 구루로 삼지만, 늘 영혼을 구루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p339) 환상을 기록하는 동안 나는 한번 이렇게 자문해 보았다. “도데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것은 확실히 과학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럼 이것은 무엇인가? 이때 내 안에 어떤 소리가 있었다.‘이것은 예술이에요.”나는 매우 놀랐다. 나의 환상이 예술과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p342) 그가 좌절한 원인은? 그는 자신의 평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의 평가에 의해 살았다. 이것은 위험한 일이다.  

(p345)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가는 불확실한 길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위험한 실험이나 수상한 모험으로까지 여겨진다. 그것은 오류와 불확실이 길, 그리고 오해의 길이라고 간주된다. 나는 괴테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생각한다.“외람되게도 저 문을 열어젖혀라. 사람마다 통과하기를 주저하는 저 문을...” 

(p357)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 ‘자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p361) 젊은이로서 나의 목표는 학문에서 뭔가를 성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그 용암의 흐름을 만났고, 그 불길의 열정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p368) 그것은 내게 속해 있으나 내가 아직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p372) 분석심리학이 연금술과 기묘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금술사들의 경험은 나의 경험이었고, 그들의 세계는 어떤 의미로는 나의 세계였다.  

(p382) 많은 곳에서 그리스도 재림의 가능성과 거기에 대한 희망이 이미 활발하게 논의되고 환상을 보았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는데, 그것은 구원을 기대하는 마음의 표현인 셈이다. 

(p389) 나는 그 문제가 나에게 달려든 방식대로, 즉 감정을 억제하지 않은 채 체험한 그대로 써내려갔다.  

(p397) 나의 저술들은 내 생애의 정류장이라 여겨질 만하다. 그것들은 나의 내적 발달의 표현이다.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생애는 내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나의 모든 저술은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부과된 과제인 셈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강요로 이루어졌다. 내가 쓴 것은 내부로부터 나에게 엄습해온 것들이다. 나는 나를 충돌질하는 영혼으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허용했다.  

아,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p404) 탑은 나에게 성숙의 장소였다. 즉, 그 안에서 내가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미래의 나로 다시 존재할 수 있는 자궁, 모성적 이미지의 장소였다. 

(p405) 수도도 없어 나는 펌프로 직접 물을 긷는다. 장작을 패고 음식을 요리한다. 이런 단순한 일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런데 단순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p418) 처음에는 인격의 이분화를 당연히 나 개인의 문제이며 책임으로 여겼다. 파우스트가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고 나에게 구원과도 같은 말을 하긴 했지만, 그런 이분성의 원인을 규명해주지는 않았다.  

(p420) 둘로 나뉘어 있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텔레스가 합해져 나 자신 속으로 들어와 하나의 사람이 되었고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p421) 우리에게는 중세와 고대, 원시시대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우리는 발전의 분류로 휘말려들어가 거친 폭력으로 미래를 향해 밀려가고 있으며,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우리의 뿌리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된다. / 사람들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미래의 약속에 의지하여 살고 있으며, 현재의 빛 속에서 살지 않고 미래의 어둠속에서 사고 있다. 사람들은 그 어둠속에서 적절한 때에 해가 솟아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p422) 묘안을 통한 개혁은 지금 당장은 확실하겠지만 길게 볼 때는 의심스러우며 어떤 경우에도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예를 들면 시간을 단축하는 조치들은 아주 불쾌한 방식으로 속도만 빠르게 하여 이전보다 더 시간이 부족하도록 만들고 있다.  

여행 

(p433) 이 사람들은 자신의 격정으로 살고 있다. 다시 말해 그 격정에 의해 그들의 생이 영위되고 있다.  

(p437) 어린이나 원시인을 보게 되면 성숙한 문화인의 마음속에, 채우지 못한 욕구와 필요로 말미암은 갈망이 일어난다. 이것은 적응상태, 즉 페르소나 (Persona : 자아가 외부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세계가 바라는 대로 보여주는 모습)를 위하여 인간의 전체상에서 떨어져 나간 인격부분에 해당된다.  

(p441) 비평의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대상의 외부에 관점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를 밖에서 볼 기회를 한 번도 갖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나라의 특성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p443) “우리는 그들이 넋이 나간 사람들이라고 확신하오” 나는 그에게 왜 백인이 모두 넋이 나간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그들은 머리로 생각한 것을 말하오”나는 놀라서 물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당신은 어디서 생각하오?”“우리는 여기서 생각하오”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p455) 그것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낯선 모습이었으나 동시에 강렬한 ‘기시감(旣視感)’을 주었다. 즉, 내가 마치 이런 순간을 이미 한번 경험했고, 시간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으나 그 세계를 언제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p457) 연금술에서는 “자연이 불완전하게 둔 것을 예술이 완전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p470) 나와 나의 여행 동반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깊은 고통을 동시에 지닌 아프리카 원시세계를 문이 닫히기 전에 체험하는 행운을 누렸다.  

(p475) 우리도 또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밝힌다든지 부활절 달걀을 숨긴다든지 할 때처럼,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의식을 수행하는 경우가 있다.  

(p484) 싸움터의 병사들은 전쟁에 관한 꿈보다는 고향 꿈을 훨씬 더 많이 꾸었다. 정신과 군의관들은 어떤 병사가 전쟁장면 꿈을 너무 많이 꾸면 그를 전선에서 떠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그는 외부의 인상들에 대한 정신적 저항력을 더 이상 갖고 있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p491) 나에게는 해방이란 것이 없다. 내가 소유하지 않고 내가 행하거나 체험하지 않은 그 어떤 것들로부터도 나를 해방시킬 수 없다.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p495) 그리스도 역시 부처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구현자다. 둘 다 세상을 극복한 자들이다. 부처는 이성적 통찰로써, 그리스도는 숙명적인 희생으로써 그 일을 이루었다. 기독교에서는 더 많이 고통을 겪는 데 주안점을 두고, 불교에서는 더 많이 깨닫고 행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p503) 인도는 어떤 자취도 없이 나를 스쳐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영원에서 다른 영원으로 옮겨가는 자취들을 나에게 남겨놓았다.  

환상들 

(p514) 나는 내가 지구에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p517) 내가 살아온 인생은 자꾸만 시작도 끝도 없는 역사처럼 여겨졌다. 나는 나 자신이 하나의 역사적 단편, 앞서거나 뒤따르는 본문도 없이 책에서 잘려진 장(章)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의 인생은 긴 사슬에서 가위로 잘려진 것처럼 보였고, 많은 물음은 해답이 없는 채로 남았다.  

(p518) 내가 지구를 떠나려고 하는 데 대해 항의가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구를 떠나서는 안되고 돌아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 통지를 받는 순간, 나의 환상은 끝나고 말았다.  

사후의 삶에 관하여 

(p533) 신화적인 인간은‘그 너머로 나가기’를 갈망하지만 학문적인 책임을 고려하는 인간은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p536)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과대평가된 이성은 그것이 지배하면 개인이 궁핍해진다는 면에서 독재국가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무의식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때때로 전해 줄 수 있다.  

(p541) 죽은 자들은 모두 죽음 직후에 그들 인생의 종합적인 경험을 보고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죽은 자들은 죽은 사람이 가지고 오는 인생경험에 큰 관심을 보였다.  

(p551) 신화는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는, 의식적 인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간단계다. 무의식이 의식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그것은 특별한 종류의 앎으로 영원 속의 앎, 대개‘지금 여기’와 관계가 없고 우리의 지적 언어도 고려하지 않는 앎이다. 오직 우리가 무의식으로 하여금 스스로 확충하여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때에만,그것이 우리 이해의 범위 안에 들어오게 되고 새로운 측면이 우리에게 지각된다.  

(p560) 서양인은 외향적인 경향이 강하고 동양인은 내향적인 경향이 강한 듯하다. 서양인은 의미를 투사하여 객체에 의미가 있는 듯이 추정한다. 동양인은 그 의미를 자신 속에서 느낀다. 그런데 의미는 밖에도 있고 안에도 있는 법이다.  

(p562) 나의 존재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p572)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그렇지 않느냐?”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시금석이다. 무한한 것이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 때에야 비로소 나는 결정적인 의미가 없는 하찮은 일에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p574) 인간실존의 유일한 의미는 존재 그 자체의 어둠속에 빛을 밝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무의식이 우리에게 작용하듯 우리 의식의 증가가 무의식에 작용한다는 사실까지도 추정해볼 수 있다. 

만년의 사상 

(p579) 빛에는 창조주의 다른 측면인 그림자가 따른다. 

(p581) 도덕적인 선이라고 알려진 것을 경우에 따라 피하고 악하다고 인정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선악의 대극에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p583) 타고난 순진성으로 어느 정치가가 선언하기를, 자기는 ‘악의 상상’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정말 참다운 진실은 우리가 악의 상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악의 상상이 우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p597) 어떤 학문도 신화를 대체하지 못하고 어떤 학문으로도 신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왜냐하면‘신’이 아니라 신화가 인간 안에 있는 신적인 삶을 계시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을 고안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일종의‘신의말씀’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영감’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착상’이 우리가 궁리해낸 결과가 아니라 그런 생각이 어떤 식으로든지‘다른 곳에서’우리에게로 스며들어왔다는 것을 안다. 

(p600) 공동의 비밀은 결속을 위한 시멘트 역할을 해준다.

(p601) 다리가 불편한 자를 위한 지팡이,실망하고 방황하는 자와 지친 순례자를 위한 열렬하고 찬란한 목표... 

(p613) 정신은 자신을 뛰어넘을 수 없다. 

회고 

(p624)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p626) 나는 언제나 내적인 법칙을 따라야 했다. 나에게 부과된 그 법칙은 내게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았다. 

(p629) 나는 내 고집으로 말미암이 일어났던 어리석은 많은 일을 후회한다. 하지만 내가 그런 어리석음을 갖지 않았다면 나의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실망하면서도 실망하지 않는다. 나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확신을 결코 갖고 있지 않다. 나는 단지 내가 태어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의 토대 위에 존재하고 있다. 온갖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존의 견고함과 내 존재양식의 연속성을 느끼고 있다.

(p630) 인생은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가지고 있지 않기도 하다. 나는 의미가 우세하여 전투에서 이겼으면 하고 마음 졸이며 희망하고 있다. / 내가 나 자신에 관해 불확실해질수록 온갖 사물과의 친화성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 그렇다. 마치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놓았던 저 생소함이 나의 내면세계로 옮겨와서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 않은 낯설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3. 내가 저자라면 

칼 융이 개인 비서인 아니엘라 야폐(Aniela Jaffe) 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전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여든 두 살 때인 1957년 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객관적인 설명을 해주는 대신, 주관적이거나 내면적인 내용, 꿈과 환상의 세계, 영적인 경험을 분석하고 묘사했다.  

이 책은 13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유년시절과 학창시절, 대학시절에 대한 장을 통해 그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성장기의 삶과 발전되어 연결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여든 살 노인의 꿈과 기억, 자신의 사상을 세워가는 과정이 놀랍도록 세밀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책의 전체적 구성은 평이해 보인다. 그리고 구성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도 않는다. (적어도 자서전에서는...) 

콤플렉스라는 말이 우리의 일상용어가 된 것은 융 때문이다. 융이 관찰한 콤플렉스는 그의 환자들의 것이었다. 분석치료의 목표는 콤플렉스를 해소하고 그 포악한 지배 상태에서 환자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의 내용물이 되는 원형 등 정신분석을 통해 그가 인류에 끼친 공로는 그가 그의 환자들과 그 자신의 내면을 통해 추출한 위대한 성과다. 

그는 정신적인 장애나 신경 장애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도 보다 균형있게 자아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으며 사람의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정신의 지도를 제공하려고 했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정신병 환자를 바라보는 그의 태도와 치료에 대한 가치관이었다. 그는 정신의학을 병든 인격과 치료자 인격간의 대결로 보았으며,‘상처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정신병 환자에게서 영혼에 감추어진 다른 측면의 삶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다.  

분명, 그는 정신치료에 심리학을 도입하여 인간의 삶을 치유한 영혼의 의사! 였다. 그런 그를 보면서 프로이트가 한 말이 재미있다. “보시오, 융, 당신이 이 환자에게서 발견한 사실은 정말 흥미롭소. 하지만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이토록 추한 여성과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함께 지내는 일을 참아낼 수 있었단 말이오?”(p242) 

■ 특히 감동적이었던 구절 

(p175)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무대에서 주로 대사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 크다.  

(p337)“그는 수백 년 전에 죽은 베다의 주석가 아닙니까? 내가 말했다.”네, 그렇습니다. 그의 대답에 나는 크게 놀랐다.“그럼 영혼을 말하는 것입니까?”내가 물었다.“물론 그의 영혼이었습니다.”그가 시인했다. “영혼의 구루도 있습니다.”그가 이어서 말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사람을 구루로 삼지만, 늘 영혼을 구루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p562) 나의 존재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p574) 인간실존의 유일한 의미는 존재 그 자체의 어둠속에 빛을 밝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무의식이 우리에게 작용하듯 우리 의식의 증가가 무의식에 작용한다는 사실까지도 추정해볼 수 있다. 

(p624)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p628)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내 인생은 풍성했으며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나 자신이 달라졌더라면 많은 일이 다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대로 그렇게 되었다.  

(p629) 나는 내 고집으로 말미암이 일어났던 어리석은 많은 일을 후회한다. 하지만 내가 그런 어리석음을 갖지 않았다면 나의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실망하면서도 실망하지 않는다. 나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확신을 결코 갖고 있지 않다. 나는 단지 내가 태어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의 토대 위에 존재하고 있다. 온갖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존의 견고함과 내 존재양식의 연속성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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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8 07:26:53 *.201.223.15
고생하셨습니다..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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