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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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2일 11시 23분 등록

1.     1. 저자소개

 

구본형은 변화경영사상가이다. 1954년 생으로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역사학과 경영학을 배웠다. 1980년부터 20년간 IBM에서 경영혁신을 총괄하는 현장 전문가로 일했다. 2000, 회사를 그만두고 1인기업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를 설립하여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들을 돕습니다’ 라는 글귀처럼 변화하려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였다. 그는 한편의 시처럼 살기를 원했고 매일 새벽 일어나 두시간 동안 글을 쓰고 그 글들을 엮여 매년 한권을 책을 내었다.

 

인문학과 경영학을 접목하여, 변화와 자기경영에 대한 17권의 책을 썼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선 곳에서의 아침>, <사람에게서 구하다>, <깊은 인생>, <마지막 편지>등이 있다. 2005년부터 변화경영연구소를 통하여 개인대학원인 연구원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꿈벗들과 동행하며 ‘나’ 답게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스승이자 롤모델의 역할을 하였다. 변화와 성장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즐기며 열심히 책쓰기와 강연을 병행하였고 시처럼 살다가 2013 4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는 그의 첫번 째 자서전이다. 10년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자서전을 쓰기로 결심한 그는 개인의 미시사를 유실되는 것은 자기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으며 개인사를 쓰는 것을 Me-Story라 이름 붙였다.

 

나는 한번도 구본형선생님을 만난적이 없지만, 이 책을 통해 그의 얼굴, 그의 하루 그리고 그의 삶을 상세히 만나 볼 수 있었다. 새벽의 두시간을 지칠 때까지 글을 쓰며 하루를 열고, 북한산을 오르며 자연을 즐기거나 여행을 떠나기를 즐기며, 가족들과의 시간에 정성어린 애정을 쏟고 강연과 연구소 활동을 통해 누군가의 인생에 우연한 쏘시개 불꽃이 되어 변화경영의 씨앗을 흩날리는 나무. 이 변화를 통해 그 나무는 미시적 인간들의 삶이 신화가 되기를 소망하는 큰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사실 구본형 선생님에 대해 책도 읽고 이야기도 많이 들어 왔지만 이렇게 연구원 레이스를 하고 있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스승님이라 부르며 그의 생각, 그의 삶에 대해 말하고 그가 남긴 것을 기억하고 지키려 애쓰며 실천하는 것을 본다. 마치 신처럼 육신은 사라졌으나 그 존재는 영원히 살아있는 것 같은 한 인물의 영혼, 에너지, 그리고 그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연구원들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남긴 마음의 불꽃은 그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그들의 가슴속에 타올라 여전히 연구소를 통해 그리고 그 연구원들이 쓴 책들을 통해 다른 누군가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불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그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넘어 구본형선생님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끊임 없이 우연한 쏘시개 불꽃’으로 살고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10. ‘나에 대한 이야기(me-story)’는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기록이다. 즉 내 인생의 다음 장면을 그려보기 위한 시도이다. 자신에 대해 쓰다 보면, 해보지 못해 안타까운 일들이 밝혀지고 절실해진다. 이때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은 그 일들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기회로 전환된다.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기 경영’은 바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신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 변경연 지원서를 쓰기 위해 개인사를 쓸 때의 경험과 맞닿아 있다. 개인사를 쓰면서 나의 과거를 쭈욱 돌아보는 일은 나에게 엄청난 깨달음을 가져다 준 시간이었다. “그동안 내가 했던 가장 큰 성취 3가지를 꼽아보시오라는 질문에 답을 하면서, 그저 더듬 더듬 시간을 되돌아 찾아낸 세 가지 경험들. 그 세 가지 경험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니 내가 원하는 삶, 그리고 내가 가장 뿌듯하고 행복할 수 있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손에 잡힐 듯이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에 대한 이야기(me-story)가 어떻게 과거를 넘어 나의 미래를 향한 기록인지 어떻게 내 인생의 다음 장면을 보여주는지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11. …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인생을 한 개인의 역사라고 인식했으면 한다. 평범한 개인의 미시사는 본인이 남기지 않으면 유실된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자신의 세계도 없다.

- 한가지 덧붙여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 보여진다는 사실 또한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일기를 쓸 때도 누군가가 읽는다는 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깨어 있지 않은 채로 막연하고 불분명하게 글이 웅얼거림에 그치는 때가 많은 것 같다.

 

15. 모든 좋은 것들은 웃는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서는 자는 춤을 춘다.

 

17.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였다. 살면서 나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번 다시 태어나야 한다.

 

22. 육체는 쉽게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힘줄처럼 질기다. 그러나 육체 역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안으로부터 비대해지고 느슨해진다. 모든 것의 궤멸은 늘 내부로부터 온다.

- 초심을 잃지 않는 것. 늘 원하던 일을 막상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매너리즘에 빠지고 일이 많음에 불평한다. 그리고 전심을 다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초심을 잃는 그 순간이 궤멸이었다. 쉬고 싶고 게으르고 싶은 마음. 혹은 스스로를 의심하는 마음이 그 궤멸의 시작이다.

 

30. 그러나 사랑은 다른 애인을 찾아냄으로써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감정으로 위장된 반복 속에서 소모될 뿐이다. 사랑은 늘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사랑은 그 자체로 증식되는 능력이다.

 

32.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속절없이 질수는 없기 때문에… 그러나 마흔조차 흘러간다. 무엇을 했단 말인가! 무엇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흔 살의 성취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라는 점이다.

 

*36. 나는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 곧잘 낙관적인 정신적 전환에 성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 이것이 나의 강점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문제에 끌려다니는 것을 더욱 싫어한다. 나는 문제를 일상에 던져진 예기치 않은 모험과 도전으로 인식하곤 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면 새로운 단면과 만날 수 있다. 최선의 해결책에 도달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 구본형 선생님은 스스로가 수동적이라 말하셨지만 안그래 보인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하고 실행하는 일을 수동적인 태도로 어떻게 해낼 수 있겠는가.

 

37. 40대의 10년 가운데 어딘가에서 버려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너무 쉽게 버려졌고, 성장의 문턱에서 거부되었으며, 완성한 상태에서 퇴출되었다.

 

42. 천천히 침몰하던 나는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을 받았다. 다행이다. 익사는 면했구나.

 

43- 44. 내 인생에 중요한 일이 벌어진 위대한 젊은 날을 과장하지 못한다면, 지금 이 허무를 견딜 수 없다는 것을 너희는 모르지.

 

47. 작업을 통해 이루어야 할 내면적 발전이 없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나는 이미 중년이 되고 있었다. 육체적으로는 아직 활력이 넘쳤지만, 인생 깊숙이 자리 잡은 피로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마흔 살은 늙지도 젊지도 않다. 대부분 결혼을 했으며 살기 위해 일한다. 마흔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지치게 된다. 일상의 걱정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어 가장 필요한 내적 성찰이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52. 마흔이 넘으면 사람들은 외부를 변화시키는 것에 무력해진다. 그들은 자신을 믿는 대신 더 힘이 센 다른 사람과 제도의 힘에 의존하게 된다. 타인에게 의존함으로써 노예가 된다. 그러나 마흔이 넘어서는 여성들은 이때 깨어난다. 여성의 마흔 살은 남자와는 성격이 다르다. 남자는 마치 지는 해처럼 시들지만 여자들은 뜨는 보름달처럼 절정을 향해 달린다.

 

53. 여성은 현명해지고 다소 교활해지며 강해진다. 그동안 여성은 억압받고 수동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중년이 되어 남자가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때, 여성들은 숨어 있는 자신의 힘과 재능을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의지하여 일어선다.

 

그러나 모든 여성이 사회화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기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면 정신적 에너지를 자기 안의 대상을 공격하는 데 쓰게 됨에 따라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 자기 안의 대상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나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에 쓰여지는 에너지를 일에 대한 에너지로 전환시킨다. 나는 내가 얼마나 별로인지 자꾸 곱씹는데 쓸 시간과 에너지가 없다.

 

54. 마흔이 넘으면 불운과 실수에 대하여 스스로를 용서하게 된다. 실패와 무능력과 비겁함은 비난받아야 할 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 한계와 비극의 문제로 전환된다. … 마흔 살은 융통성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동시에 어두운 곳에서 밝음을 보는 긍정적 지혜가 위로가 되는 시절이다.

-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지치고 힘이들 때 주저 앉거나 더 나락으로 가라 앉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나와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다지는 것. 스스로와의 관계에 좀 더 친절하고 따뜻한 것.

 

55. 젊은 사람들은 추상적이고 객관적이며 장엄한 절대진리에 쉽게 빠져든다. 그러나 나이와 함께 성숙하면서 실리적이고 일상적인 정서적 지식과 자신의 이해에 따른 주관적 판단에 익숙해진다. 마흔의 나이에는 철학조차 실용적인 것이 된다.

 

57. 싸울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을 때 유머는 가장 적절한 해결책이다.

 

58. 젊었을 때 사람들이 너무 희망적이었다면, 마흔 살이 되어서는 모든 믿음을 쉽게 버리는 함정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저 두 개의 시선, 자신을 바깥에서 보는 시선과 안에서 보는 시선을 공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59. 마흔 살은 게임의 후반부나 연극의 2막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마흔 살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막연히 한 번 더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의미한다. 똑같은 실력을 가지고 후반전을 뛰어본들 또 한 번의 고배와 비웃음을 자초할 뿐이다.

- 완전히 새로운 인생

 

마흔 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연극의 지루한 2막이 아니다. 오히려 연극을 끝내고 진짜 현실로 되돌아 오는 것이다. 파괴와 창조, 죽음과 재생이라는 이미지와 직결되며, 죽어야 살 수 있다. 이 치열한 반전을 사람들은 일부러 잊으려고 하는 것인가?

 

61. 내게 마흔은 각성의 시기였다. 나는 40대의 10년 사이에 이루어지는 위대한 종결과, 똑같이 위대한 새로운 인생에 대해 말하고 싶다. 40대는 사회적 폐기물이 된 자신을 구해내어 빛나는 삶으로 창조하는 시간이다.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이 가능한 시기다. 어쩌면 반전만이 이 시기를 사는 교훈일지 모른다. 전환과 변곡, 이 두 단어야말로 40대를 묘사하는 가장 적합한 언어이다.

 

62. 마흔 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내 지론이다. 다만 내가 거는 것은 돈이 아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나 자신을 건다. 나는 이 길을 택했다. 내가 도박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길밖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흔이 익어가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계획했다. 나는 비장했다. 나의 40대는 죽음과 친근해진 10년이었다.

-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과연 할 수 있을까? 가진 것을 다 걸어서 무언가를 향해 달리는 것. 솔직히 말하면 죽을 만큼 그렇게 집중해서 무언가를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늘 빠져나갈 뒷문을 조금은 열어두지 않았었나. 4년전 일에 매진할 때 열심히 했었으나 오히려 그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단지 무턱대고 열심히가 아닌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전환의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여기에 포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내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연습이 되어야 한다.

 

63.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바로 이 자리가 내가 죽어야 하는 자리라는 점이었다.

 

69. 그러나 나는 결코 세일즈맨이 될 수 없었다. 어쩌면 세일즈맨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내 유전자 속에는 그 코드가 없었기 때문에, 20년 세월 속에 16년을 변화경영실에서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개인적으로 너무나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을 드러내고 홍보하는 세일즈맨으로써의 자질은 회사원에게도, 의사에게도, 작가에게도, 농부에게도, 화가에게도 요구된다.

 

*71. 나도 돈과 승진을 찾아 떠나는 그 골드러시의 물결을 타고 싶은 욕망에 흽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없는 나를 싫어하기도 했다. 좋은 성과를 낸 직업들이 단상에 올라 명예를 얻고 돈을 받으며 서서히 승진의 길을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할 일이란 초라하고 어두운 객석에 앉아 박수를 치는 일밖에 없다는 것이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 길은 나보다 훨씬 더 외향적이고 친화력 있으며 영리한 처세술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의 영역이었을 뿐이다. 승진과 돈은 매력적인 것이지만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열등감이나 고통까지도 수용하는 것의 힘. 구본형 선생님은 그 고통에 흽싸여 좌절하고 불평하거나 자포자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결핍의 긍정적인 역할을 발견해내고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

 

72. 옹색한 땅과 준엄한 바위가 오히려 개화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결핍이 꽃을 아름다운 꿈 안으로 몰아넣어 준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75. 임시성과 비정규성은 방법이 아니라 우시 시대의 특성이 되고 있었다. 모든 신뢰의 수명이 단축되고 있었다. 단기적 전망과 사고가 변화와 돌변의 시대를 이해하는 경제적 키워드였다.

 

*76. 그들의 애환을 잘 아는 나는 왜 밖에서 작지만 독립된 회사의 경영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부가가치가 낮은 지금의 일을 싫어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싫은 일조차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지금의 하기 싫은 일을 버리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일을 잃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직장 속에는 그런 사람들이 적어도 80퍼센트는 되어 보였다.

 

79. 첫째,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자신의 특별함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고 일을 처리하는 자신만의 좋은 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유능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그들은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 폐쇄회로를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 누구와도 연결이 가능하다. …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열린 관계가 유지되도록 적과 동지 사이의 제3의 꼭지점을 찾아내어 그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 늘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처럼 빼내기 어려운 자리에 있다. 이것은 소극적이거나 내향적인 사람도 잘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장점을 읽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휴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 익숙하다. 셋째, 그들은 늘 학습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와 경쟁한다.

 

81. 떠남 자체가 목적인 때도 있는데 이때가 바로 그랬다.

- 7년전 독일로 떠날 때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모든 것을 홀로 결정하고 책임지기로 하고 그 발자국을 내딛던 때. 그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떠났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미 나와의 오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었다.

 

83. 나 역시 앞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굉장한 여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긴 여행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양식을 챙겨 떠난다 하더라도 곧 바닥이 날 것이었다. 결국 나는 여행을 하며 양식을 조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불안은 오히려 나를 흥분시켰다.

 

84. 나는 그들보다도 걸음이 느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을 무척 부끄러워했다.

 

나는 세일즈 대신 나를 마케팅할 방법을 모색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찾아내는 방법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수동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를 과장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설득했다. 수동성을 능동성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쉽게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효과적인 일이 아니다. 유전자는 바뀌지 않는다.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은 괴로운 과정에 비해 지극히 평범한 성과를 돌려줄 뿐이다.

- 이 문장이 얼마나 나에게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비난하고 그로 인해 스스로 작아지는 경험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를 과장하거나 몰아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의 모습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수동성이다. 나는 능동성이라는 유전자 코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수동성을 강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말하자면 수동성을 적극적 수동성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86. 매력이 없는 리더란 없다. 리더는 반드시 자신의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유혹은 매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매력은 가장 자기다운 것에서 발산되는 페로몬이다.

 

기회는 아주 우연히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 파도를 높이 탔다.

 

87. 나는 기계적으로 일어나 해야 할 일이 없었다. 하루는 아무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나를 찾아왔다. 하루하루를 낭비하고 있었다.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었다. 나는 좌절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오랫동안 바라왔던 것, 즉 변화경영에 대한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나는 기뻤다. 내게 천둥처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88. 한때는 공부를 더 해볼까도 고려했지만 그만두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해놓은 것들을 읽고 분석하며 해석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것을 가지고 싶었다. 박사라는 사회적 인증의 과정과 틀은 내게 아무런 흥분도 주지 못했다.

 

89. 나는 내가 ‘경계선을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배움을 멈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학위와 자격증은 과거의 영광의 흔적일 뿐이다.

 

90. 그리고 마흔을 넘어서는 그 위험한 시기에 나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는 사는 듯싶게 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다 바칠 만한 것을 찾고 싶었다. 관성에 따라 굴러가는 하루 말고, 전혀 새로운 뜨거운 하루를 가지고 싶었다.

 

*91. 평범함과 군중의 품을 떠나면서 외로워졌다. 이제 스스로의 작은 나라를 세워야 했다. 내 안에서 ‘군주적 본능’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나의 나라, 나의 세계, 나의 꽃을 피워야 했다. 그것은 겨울보다 더 추운 봄이었다. 그러나 꽃 터지는 봄은 왔다. 피워야 할 꽃, 만들어야 할 세계가 생긴 것이다.

- 철저하게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시간. 나의 성장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고 나 자신이 동지가 되어주는 전쟁이다.

 

103.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길들게 마련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서로에게’라는 말이다. ‘나에게 길들게’하면, 그것이 목적이 되면, 함께 살 수 없다.

 

113. 욕망이 자신을 충족해가는 것은 개인 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욕망은 부숴뜨려 땅에 묻어야 하는 끔찍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힘과 에너지다.

 

그러나 두려움이 결국 불꽃으로 하여금 무엇인가 하게 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불꽃은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불꽃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아주 적게 먹고도 살 수 있다. 요만큼만 있어도 먹고살 수 있다.’그러고 나서 집게 손가락 한 끝의 반을 보여주었다.

- 지금 더비움을 하면서 느끼는 것. 막연하게 그게 무엇이든, 잠이든 밥이든 휴식이든 여행이든 나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무언가를 절제해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 큰 두려움이었다. 사실 절대적으로 그런 절제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본 적도 없었는데 어디에서 그런 두려움이 생겨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막상 더비움을 일주일 하면서 느낀 것은 배고픔이라는 느낌이 나를 어찌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배가 고프다는 감정이 잠깐 올라오면 두렵긴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다보면 그 느낌에 익숙해지면서 몸이 어느새 적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배고픔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빠져나와 막상 별것 아니네 하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단식이라는 상징은 내게 참으로 적절한 출발점이었다. 그것은 나를 가볍게 해주었다. 모든 속박은 ‘먹고 사는 것’으로부터 왔다. 움직인다는 것은 자유의 한 표현인데 인형의 자유는 모두 묶어놓은 실에서 온다. 인형의 자유는, 그러므로 아이러니 하게도 속박으로부터 온다. 실을 끊으면 인형은 움직일 수 없다.

 

115. 그저 ‘태어나 먹고살기 위해 애쓰다 아파트 한 채를 남기고 일흔 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라고 기록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116. 사회적 기대가 존재하는 곳에는 늘 인형을 움직이는 끈으로 가득하다. ‘어떤 행위가 칭찬받게 될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그 무엇이라도 성취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기대로부터 자유롭기가 어렵다.

 

117. 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다운 것에 천착하고 매달렸다. 니체가 말한 ‘거리에 대한 파토스’를 추구했다. 이것은 차이에 대한 열정이었다. 차이는 다름이다. 그것은 다른 것, 다른 사람의 것을 자신의 것과 구별짓는 다름에 대한 열정이다.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은 어설픔과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러움과 긍정의 표상이다.

- 내가 다른 사람들, 혹은 일반적 사회의 기대와 다르다는 것을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생각해보면, 나는 사람들의 차이와 다름을 수용하고 매력을 발견하곤 하는데 유독 나 스스로에 대해서는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었던 것 같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잣대가 과연 나의 잣대인가, 누가 금그어 놓은 잣대인가에 대해 면면히 의심해 보아야 한다.

 

나는 슬그머니 나를 묶고 있는 줄 하나를 끊어냈다. … 책임이 더 이상 구속이 되지 않도록, 일이 더 이상 밥벌이가 되지 않도록, 자유가 더 이상 방황이 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

 

129. 이 아이의 가장 큰 특성은 숯불처럼 늘 불씨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아이의 불길은 늘 살아난다. 지치고 처져 있다가도 늘 다시 살아난다. 이 아이는 자신을 그렸다가 지우고 또다시 그리면서 자신을 키워간다. 실수도 많고 실패도 많지만 자신의 길을 찾아 장대한 모험을 온몸을 다해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아이의 운명적인 장점이다.

 

130. 우스운 일이었지만, 나는 그런 일들을 즐겼다. 인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쁨을 위해 산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행복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쁨과 나의 기쁨은 늘 섞여 있었다.

 

138. 노는 것은 내게 힘을 주었다. 적어도 내가 내 인생을 마음대로 즐기고 있다는 자부심을 주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그런 생각이 주는 무기력이 내게 불어넣었던 어두운 불안과 스트레스를 데려가버리곤 했다.

- 일의 무게, 일로부터의 스트레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런 감정들은 일을 즐기지 못하게 한다. 노는 마음을 유지하며 일을 즐기는 것을 할 수 있다면 인생이 즐거운 일이 되고 일이 즐거운 인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데, 이 시간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간대를 선택했다. 나는 시간의 불모지를 내게 불하했다. 그리고 가장 귀중한 나만의 시간대로 만들었다.

- 내가 나에게 이런 불모지의 시간을 불하한다면 나는 무엇으로 그 소중한 시간을 채울 것인가? 하루하루 시간이 이렇게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내가 무언가 계획을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 시간은 금과도 같다. 밤의 시간과 낮의 시간의 경계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내어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한 나만의 시간을 만드는 것. 강연을 가야 하거나 그를 찾는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시간. 구본형 선생님이 그 시간을 지켜낸 방법이다.

 

140. 에머슨의 말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관이 그 사람의 성격임을 종종 잊고 지내는 것’같다. 누구의 삶이든 그것은 늘 그 주인을 닮게 마련이다.

 

147. 삶의 어두움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 각자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있고 나눌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혼자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함께 있으면 훨씬 낫다.

- 외로움과의 싸움에 에너지를 쏟지 말라.

 

164. G.K체스터턴의 말대로 참으로 이 세상에서 부족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감탄이다. 기쁨은 도처에 있고 ‘늘 활동중’이다.

 

165. 나는 그때 치유가 필요했다. 내가 보낸 20년을 돌아보고 다시 새로운 인생 20년을 기획해야 하는 시기에 들어서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가져야 했다. 여기서 새로운 전환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나는 근본적인 변화 지점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 내가 보낸 20년을 돌아보고 다시 새로운 인생 20년을 기획하다. 정말 의미있는 전환점을 겪고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숫자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적어두고 보니 그 시간의 길이가 느껴진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을까? 현재 인간의 평균 정도의 수명을 운 좋게 건강히 살 수 있다면, 20년정도 더 일할 수 있을테고, 그 다음 20년은 노후의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 그렇다면 나는 지금 왕성하게 일할 수 있는 내 40년 중의 절반. 그 한가운데 와있다. 전환을 원한다면, 진정 그것은 근본적인 변화여야 한다. 총체적으로 새로운 시선이어야 한다. 낡은 방식을 반복하는 것은 지난 20년으로 충분했다.

 

166.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인생을 오래된 방식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하는 것도 수없이 보아왔다.

-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방식, 삶 전반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강조하신다.

 

나는 수동적인 사람이다. 어쩌면 나무의 DNA를 조금 나누어 가졌는지도 모른다.

 

167. 나는 나무와 같다. 스스로의 그늘을 만들고 열매를 키워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고 찾아 오게 하는 것이 훨씬 나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무를 통해 자연 속에서 하나의 자연이 된, 나에 대한 가장 유사한 상징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나무다. 스스로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땅이지만 가야 할 곳은 하늘이다. 나는 땅에서 하늘로 간다. 몸이 땅에서 나와 영혼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듯, 땅을 움켜쥐고 온몸을 던져 하늘을 향해 자란다. 나의 모든 힘은 어두운 내면으로부터 온다. 어두운 곳은 언제나 비옥한 토지였다. 나의 내면은 땅과 같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두렵고 위대한 힘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하고 무궁무진한 자산은 땅이다. 나는 땅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나는 나를 이용하고 활용한다. 가장 먼저 나의 모든 가능성을 탐사하고 이용해야 한다.

 

169. 늘 자신의 시체를 내다버릴 수 있어야 한다. 나무는 그 일을 아주 아름답게 해내고 있다. 낙엽은 나무의 지혜다. 혹독한 겨울에 살아남기 위한 창조적 해결책이 바로 버리는 것이다. 죽음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이 나무의 멋이다.

- 죽음, 그리고 새로 태어남

 

173. 인간의 진보는 ‘사고의 혁명’에 의해 이루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변화에 대한 생각들’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날려보내는 일이다.

 

174.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좋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며,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고,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175. 이것이 자연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일년에 적어도 책 한 권은 써라. 이것이 열심히 일을 한 기준이다. 세상을 향해 많은 시그널을 보내야 누군가 대답하게 된다. 씨앗이 적절한 곳에서 쉽게 발아할 수 있도록 늘 더 나은 방법을 연구하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싹이 나고 푸른 잎을 단 아름다운 줄기로 자라나도록 늘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라. 그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이 행동할 수 있게 하며, 그들이 실천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유행에 따르지 말라. 자연의 맛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가진 품종을 만들어내라.

- 오늘 더 비움을 7일째 하면서 토마토의 맛이 새롭게 느껴졌다. 마침 꿀이 떨어져서 꿀없는 토마토 쥬스를 만들면서 , 단맛이 없어 먹기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왠걸 토마토만의 맛이 그렇게 신선하고 좋게 느껴질 수 없었다. 단맛, 짠맛 그리고 매운 양념들에 길들여져서 고유한 자연의 맛을 잊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한 번도 그 천연의 맛을 경험한 적 없었을 지도 모른다. 세상의 기준과 요구,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지지 않은 나의 고유한 맛은 무엇일까? 아직 맛보지 못해 알지 못하는 나의 그 천연의 맛은 무엇일까? 

 

190. 그대의 교만과 끊임없는 욕망을 버려라. 자부심과 야망을 버려라. 이런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210. 나에게는 내 꿈에 대한 믿음이 있다. 다만 훌륭한 상상과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할 ‘지금의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종종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을 때가 있다. 모르기 때문에 그 일을 지금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강박관념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이다.

- 꿈을 이루기 위해서 현실적인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치열해야 하고 전략적이어야 한다는 것. 지금의 일들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새긴다.

 

211. 꿈은 시간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역사적이다. 꿈을 만들어내는 것은 욕망이다. 욕망을 버리는 것이 꿈이기도 하지만, ‘욕망을 버리는 것’ 역시 욕망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 욕망의 특별한 모습이라고 부를 수 있다.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

 

212. 나에게 책이란 꿈과 현실을 잇는 통로이다. 매일 조금씩 책을 쓰는 것은 나의 이상이며 현실이다. 책을 쓰며 상상하는 모든 것 역시 나의 일상이라는 점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화되었든, 아직 생각으로 남아 있든, 저술가에게 생각과 상상은 이미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분명한 현실이다.

 

215. 인생은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공하고 싶었다. 내가 계획한 어딘가에 반드시 도착하고 싶었다. 도착하는 것이 곧 성공이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도착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끝나는 여행도 위대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10년 동안 내 길을 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알게 된 평범한 깨달음이었다.   위에서 죽은 여행자처럼 완벽한 여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216. 때때로 또 갈림길 앞에 서서 망설일 것이다. 어쩌면 길인지조차 분명치 않은 희미한 길 앞에서 되돌아가야 한다는 어둠속의 속삭임 때문에 당황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마다 끝없이 항해하는 오디세우스처럼 외칠 것이다.

‘나의 영혼이여, 그대의 항해는 그대가 태어난 땅이니라.-니코스 카잔차키스, <오디세이아>

- 길 위에 있음.

 

항해 자체가 인생이다. 그것이야말로 비옥한 정신적 토양이다. 사는 동안 생명을 모두 소모하므로 죽음이 찾아왔을 때 완전히 비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죽음은 나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아갈 수 없으리라.

 

217. 그러나 정말 내 인생은 그 책들이 아니라 그 책에서 표현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내 하루하루였다. 나의 하루들은 책으로 표현되기도 했지만, 대개는 물처럼 흘러갔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생각하고 낭비되면서 그렇게 지나갔다. 지나간 것들 속에 내 인생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위대한 순간들의 주인이며, 또한 그 초라한 순간들의 책임자였다. 이것이 정말 하루하루의 진짜 인생이었다.

 

218. 나는 산만하고, 꿈과 현실을 혼동하며, 모호한 은유 속에 나와 인생을 놓아 두는 것을 즐기는 취향이다. 예전에는 그런 나를 싫어했던 것 같다. 좀더 분명하고 정확하기를 바랐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제는 나를 다른 사람과 바꾸고 싶지 않다. 수십 년을 다시 길들이며 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주어진 나를 즐기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20.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많은 착오를 범하고 싶다. 지금 살았던 것보다 더 어리석게 행동하고 싶다. 사실 인생을 살며 심각한 일이 어디 그렇게 많겠는가? 그러니 더 미친 척 행동하고 싶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질 것이며, 더 많은 여행을 할 것이며, 더 많은 산을 오르고 더 많은 강을 건널 것이다. …’

 

우리는 불행을 만들며 산다. 누가 불행을 원할까마는 결국 우리의 불행은 우리가 만든 것일 뿐이다. …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고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참지 못하고, 그리하여 세상을 원망한다.

 

221. 맑은 날 들판을 산책하듯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어려운 일을 당하여 그 일의 밝은 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과거 속에서 아름다운 순간을 늘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 무엇인가를 할 때 다른 것을 계획하지 않고, 어떤 것을 계획할 때 다른 행위를 하지 않으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다. 그리고 몰입된 순간 순간을 살 수 있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이란 결국 왜곡된 거울에 불과하다. 늘 자신에게 비추어 자신을 발견하려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 타인의 인정이 너무나 중요했던 시간들.

 

222. 사소한 일이 주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면 언제나 행복할 수 있다. 인생의 대부분은 아주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자신을 용서하고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증오로부터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241. 아무것이나 자라도록 방치된 밭은 게으른 농부, 더 이상 농부라 불릴 수 없는 사람들의 직무 태만의 결과이다. 이것이 재배의 의미다. 밭을 재배한다는 것은 자신이 심고 싶은 것을 심는 것이다. 심고 싶은 것, 즉 욕망을 따른다는 점에서 자연스럽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에서 자라난 또 다른 욕망들을 뽑아낸다는 점에서 반자연적이다.

- 삶을 계획하고 목표에 따라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는 개념을 가지고 살지 못했다.

 

유사한 욕망들로 점령된 밭을 묵정밭이라고 하고, 그 밭의 소유자를 게으른 농부라고 말한다. 키우려고 한 것 외에는 모두 잡초이다. 이것이 기준이다. 나는 왜 하나의 욕망의 그렇게 중요한지, 동시에 왜 다른 욕망들은 절제할 수 있어야 하는지, 뜨거운 날 잡초를 뽑으면서 생각해보았다.

 

242. 하나의 욕망…. 가장 나다운 내가 되는 것, 그저 생긴 대로 자라 가장 아름다운 내가 되는 것. 내가 만일 소나무라면 아름다운 소나무로 자라는 것. 만일 느티나무라면 아주 정정한 느티나무가 되는 것. 이것이 내 욕망이었다.

 

243. 특별한 인생을 살고 싶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 무엇인지 정체를 잘 모르는 식물이 자라나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자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처럼, 나도 잎만 가지고는 내가 어떤 나무인지 판별하기가 어려웠다. 이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246. 나는 조용한 사람이고 무거운 사람이며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고 진지한 사람 가운데 하나이지만, 세상을 밝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무거움의 대칭점에 서 있는 벚꽃의 화사함을 좋아하나 보다.

-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

 

254. 명상은 나를 즐기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괴로움으로 가득찬 현실에 갇힌 내가 아니라, 원래 있었던 아름다운 나를 찾아 내는 것이다. 명상은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외부에서, 다른 사람에게서 평화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평화를 건져내는 것이다.

 

259. 책을 통해서만 사상을 더듬는 일당들. 책을 짓눌러서 무언가를 얻어낼는 일당들. 머리를 종이 위에 처박고 있는 일당들. 부디 ‘문 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우시라. 그리하여 ‘진리의 노예’가 되지 말고, ‘지혜의 친구’가 되시라. – 니체 + &

-밖으로 나아가서 부딫혀야만 한다.

 

260. 자유는 또한 불안이고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할 일을 찾아야 하는 부담을 안겨주었다.

 

책을 읽다가 “두려움은 곧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랴.”라는 칼릴 지브란의 글을 발견했다.

 

261. 두려움은 서서히 옥죄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두려움은 또한 강렬한 힘으로 작동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지금 열심히 일하도록 했다. 계속 책을 쓰도록 했고, 계속 읽게 했으며, 그저 빈둥거리며 사는 것을 불편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비약을 즐긴다. 약한 자가 최고의 고수가 되고 불쌍한 자가 가장 존경받는 자가 된다. 담을 차고 지붕을 뛰어넘는 주인공들은 현실이라는 울타리를 쉽게 벗어나는 영웅들이었다.

- 이런 면에서 개인의 변화는 단지 개개인만의 변화가 아니다. 약한자가 고수가 되고 불쌍한 자가 가장 존경받는 자가 되는 것은 한 개인사에서는 한 인생의 변화이지만, 보다 넓은 시선으로 보면 한 사회가 바뀌는 것이다. 이 시대의 그리고 이 사회의 변화이다.

 

262. 놀이로서의 학습-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나는 어느 정도 성공한 삶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내 책을 사보고, 내 강연을 듣고 싶어한다. 그것이 훨씬 더 나를 두렵게 했다. 성공에서 물러나는 것에 대한 무서움 때문일 수도 있다.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성공은 채찍이다. 쉬지 못하게 날카롭게 살을 파고들어 찢어놓는 주마가편의 바로 그 채찍이다. 채찍을 잊은 성공은 반복과 진부함 속에서 퇴락하게 된다.

- 채찍을 잊어서도 안되고, 채찍에 대한 공포에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나는 사라지는 것들에 내 성공을 의존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믿었다.

- 이제야 왜 사람들이 한번의 성공과 실패에 왜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말이 더 깊이 이해가 된다. 매일 매일 내가 그 길을 향해 가고 있으며 하루하루를 내가 만족할 만큼 성공하고 있다면, 외부적인 성공과 실패가 나의 성공을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학습은 성공을 오랫동안 빛나게 해준다. 나는 학습이 의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은 작가들에게 하나의 의무이다.  이 짐을 견디지 못하면 더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짐을 견딘다고 해서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무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의무란 재미없는 것이다. 의무감이랑 일상화되는 것이고, 지겨운 것이며, 반복되는 것이고, 아무런 생명도 살 수 없는 무덤이기 때문이다.

- 일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아야 한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성취에 대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할 때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예술가 장벽Artist block을 겪게 된다. 학습이 의무가 되지 않게 아마츄어의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일의 즐거움과 창의력을 동시에 유지하게 하는 비결이다.

 

나는 읽고 쓰는 것이 의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으며, 이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되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취미가 여전히 취미일 수 있도록 애를 썼다. 취미가 직업으로 바뀌면서 순수한 호기심과 재미를 잃어버린 전문가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경계해야 했다.

 

264. 나는 한 가지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을 자제했다. 읽기 싫으면 읽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썼다. 매일 쓰는 것은 다행히 아주 즐거운 놀이였다. … 그것은 늘 살아 있다는 느낌을 선사했다. 나는 놀이가 가진 위대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 드로잉, 내가 하루 2시간씩 아침마다 나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내 속에서  일어나는 조급함에 그 이유 없음을 질타하곤 했다. 이유 없는 조급함에 대해서는 늘 한 호흡을 더 쉬곤 했다. 나는 나를 찾아오는 어떠한 것들과도 가능한 한 싸우지 않으려고 애쓴다.

 

 

268. 나는 어떠한 줄거리도 없이 쓰기 시작한다. 그저 방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책을 구성하는 지도 같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 창작의 과정에 스스로에게 준 열려있음의 자유

 

지도가 있으면 좋다. 그러나 정말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은 지도에 없는 곳이다. 대체로 나는 나침반만 가지고 집을 나서는 경우가 많다.

 

269. 나는 천천히 배워갔다. 한 번에 조금밖에 배우지 못하는 더딘 깨달음이 이제 부끄럽지 않았다. 어쨌든 나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는가!

 

아침에 일어나 책을 쓰기 시작한 지 8년이 되었다. 책을 쓰는 일은 내가 가장 잘 배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275. 좋아하는 일이 즐거움이 되려면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보기 싫은 책은 보지 않는다. 독후감 숙제를 하기 위한 독서 같은 것은 없다. 오직 마음이 가는 대로 읽는다. 글을 쓰는 스타일도 자유롭다. 논문처럼 형식을 갖추어야 하는 글쓰기를 싫어한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하여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질문하고 대답하고 싶다. 이때 지적 작업은 즐거운 산책이 된다. 그리고 깨달음의 과정이 된다.

 

276. 망연히 어둠 속에 서 있던 덕산은 어둠 속에서 찬연히 빛나는 별빛을 보게 된다. 그리고 깨우친다. 이성의 작은 촛불을 끄지 않고는 대우주의 별빛을 볼 수 없다. 가까운 작은 산이 먼 큰 산을 가리고 있듯이 작은 지식은 늘 큰 지혜를 가리고 있다.

 

277. 그에게 있어 완성에 이르는 길은 살인적인 자기파괴와 가지고 있던 믿음의 상실, 자기해체로부터 생겨났다. ‘자기처형’없이는 새로운 자기가 있을 수 없다. 단순한 자기변화로부터 스스로에게 반대하고 자신의 적이 되려는 데서 그의 기쁨이 생겨났다.

- 자기 비난과 자기 처형은 다른 말일테다. 완전히 새로운 나가 된다는 전제 아래 자기 해체와 자기 처형을 할 수 있다. 자기 비난은 여전히 과거의 나의 모습을 버리지 못할 때 그 과거를 껴안고 실체와 욕망의 괴리를 드러낸 불평일 뿐이다.

 

279. ‘니체의 뒤를 덮쳐 사생아를 만들어내려고 하니까, 어느새 니체가 자신을 덮치더라.”고 했다. … 삶은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접속되고 연결되며 내재화되고 확장되는 것이다. 이것이 학습의 즐거움 아닐까?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은 니체를 주목할 수 밖에 없다. 그는 변신의 힘이며, 가장 극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라는 단호한 유혹에 따라 늘 ‘떠나야 할 곳은 알지만 도착할 곳을 모르는 배’를 타고 있었다. 그는 한 번도 니체로 남은 적이 없다. … 그에게 자신을 찾는 일은 ‘항상 자신을 잃어버리고 부정함으로써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었다.

 

280. 니체라는 이름은 어떤 정체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스스로를 불지르고 그 재 위에서 새로워지려고 한 사람이었다.

 

281. 배움은 결국 삶의 실천에 의해 가장 잘 얻어진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기’때문이다.

 

삶을 살면서 삶 속에 녹아버렸으면…. 탐닉하고 오직 삶이 되어 삶 속에서 노닐 수 있었으면…. 조금씩 조금씩 빠져들어 마침내 삶이 되었으면.

 

삶의 형식을 바꾸는 혁명- 내게 배움이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예술로서의 철학 또는 자기 경영은 가능할까?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기경영 철학은 가능할까?

 

282. 그곳에 도달하기 위하여,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기 위하여, 떠나야 할 곳에서 떠나기 위하여, 황홀함이 없는 곳을 지나야 한다.

 

학습이란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불가에서의 선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 혁명은 늘 하루를 바꿔줌으로써 스스로를 실현한다. 속인의 일상을 버리고 스님의 일상을 취하는 것이 출가이다. 이것은 일종의 개인 혁명이다.

 

*283. … 초심을 지키는 발심의 끊임없는 자기개혁이 구도자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 깨달음이 하루의 일상으로 쳐들어와 하루를 바꾸어놓지 못하면 실천되지 않은 것이다.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새로운 장르의 일상적 삶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실천적 개혁이고 혁명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의미있는 신호를 보낼 수 있으려면, 내가 새로운 일상을 하나 만들어냈다는 사실 때문이어야 한다.

 

284. 나는 늘 새벽에 일어난다. 그리고 새벽에 쓴다. 두 시간쯤 쓰면 지친다. 이 피곤이 나를 살게 해준다.

 

어제 읽던 책을 끝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보게 되면 보는 것이고, 오늘 못보면 언젠가 보면 되는 것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는 나만의 방식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새로 받은 하루이다. 나이가 들면 잊는 게 더 많다. 자주 잊기 때문에, 어제를 잊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는 듯한 기분이 든다.

 

285. 하루는 실험장이다. 실험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실험장 실험이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린 실험… 내겐 이것이 하루이다. 학습의 문화 속으로 자신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좋은 전문가의 필수적인 수련과정이다. 학습은 종종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 냉정하고 감정이 배제될 때 잘 배우는 영역이 있다. 목욕탕의 냉탕과 같다. 그러나 학습의 또 하나의 얼굴은 뜨겁다. 혼이라든가 열정, 몰입, 감성, 직관 같은 단어들이 중요한 개념이 되기도 한다. 학습은 뜨거운 무엇이고,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것이며, 인문학적인 감수성을 건드려야 하는 것이다.

- 작업에 대한 글쓰기. 나의 새벽 두시간은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가? 나는 무엇으로 나를 만나고 싶은가? 무엇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가?

 

288. 자신을 닦는 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나를 닦아 선비와 같고 무사와 같아진다면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수신의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다. 자제와 절제라는 방법보다는 내 마음이 흐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Let it go! Let it go!  둑을 세워 마음의 흐름을 모아두지 않고 그것이 흐르도록 하고 싶었다. 나는 선하고 아직 그 선함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생겨나는 열정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그 커다란 파도 같은 힘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 절제하고 훈련하고 억지로 무언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생겨나는 마음의 흐름을 믿고 그 마음의 흐름을 지지할때 생겨나는 열정의 힘으로 나아가는 것.

 

나는 내가 어둠과 빛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도전이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번 다른 실패를 딛고 나일 수밖에 없는 길로 운명적으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첫 번째 도전은 실패를 이기는 것이다. 두 번째 도전은 실패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도전은 매일 실험을 즐기는 것이다. 이때는 이미 실패도 성공도 사라진다. 여행을 즐기는 자는 끝없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계에 탐닉한다. 그들은 춤추듯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294. 하루가 내 연구의 기본 단위다.

 

297. 인생을 파괴하지 않는 직업, 삶을 빛내는 직업만이 훌륭한 직업이다.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인가는 무의미한 질문이다. 눈부신 삶을 살게 하는 일, 그 일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는 일, 그것이 위대한 직업이다.

 

299. 글쓰기는 우선 모방이다. 많은 글을 읽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고는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사업을 어떻게 하는지 두루두루 알아보는 것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사업가들은 그것을 정보를 얻는다고 표현하고 글쓰는 사람들은 그것을 책읽기라고 부를 뿐이다.

- 인풋이 없이 아웃풋만 있을 수는 없다. 내 분야에서는 이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300. 열정과 가슴의 힘 없이는 현장의 바람에 대항할 수 없다. 설득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설득은 감정의 폭우를 필요로 한다. 감정을 담지 못하면 설득에 성공하기 어렵다. 열정을 가진 사람처럼 믿어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 일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외부의 저항들과 내부의 의심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열정이 필요하다.

 

글쓰기는 또한 혁명이다. 모방만 가지고는 좋은 글쓰기로 완성되지 않는다. 가지고 있던 것을 버리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연결해야 한다. 창조성이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창의적 발상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었다. 죽어 있는 정신을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흥미가 살아나고 열정이 살아나며 삶이 살아난다. 그리고 끊임없이 실험하게 된다.

 

301. 인간이 하는 일들은 바로 그 인간이라는 주체 때문에 종류와 관계없이 서로 닮았다.

 

304.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 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강점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기질이다.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른 재능의 배합을 가지고 있듯이 기질 역시 다르다. 이것도 타고난다. 나는 매우 내향적이며 직관적 기질에 가깝다.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느끼는 것이 우선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판단보다는 인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의미와 내저인 조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많다.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며 믿음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진력을 다한다. 감수성이 강하고 사려가 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데 능란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그러나 세계를 함께할 사람을 고르는 데 까다롭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냉담하고 무관심하게 보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혼자서 조용히 사색을 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겨한다.

 

306. 본래의 자기란 무엇일까?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과 기질을 이해하고 그 강점을 계발하여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기다움으로 돌아가는 좋은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307. 자신의 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를 키워준 것은 오히려 약한 마음이 늘 얻어오는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은 치유력이었다. 갈등이 나를 키워주었다. 마음속의 싸움을 통해, 비록 더듬거리기는 했지만 내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고통과 상처를 성장의 동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부정적인 상황에서 긍정적인 점들을 찾아내고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요건일 것이다.

 

309.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비결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싶어 한다. 그 비밀은 니체가 ‘아곤적 행동’이라고 말한 경쟁의 행동에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선조들과 경쟁하며, 심지어 자기 자신과 경쟁한다. 그리스인들은 이 경쟁의 힘을 덕이라고 불렀다.

- 자기 스스로와의 경쟁. 타인과의 경쟁에 거부감이 들때, 그들을 롤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질투심이 생기거나 경쟁하는 마음이 들때 그 부정적인 마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러운 부분을 배워 내 것으로 만드는 것.

 

310. 성공에는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에 적힌 대로 끊임없이 익히는 것일 뿐이다. 손에 읽고 머리와 가슴 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이 자연스러운 강줄기가 흘러갈 때 우리의 것이 된다. 그때 성공은 우리의 특징이 된다.

 

311. 기름진 얼굴과 거대한 뱃살 뒤에는 거대한 식탁이 있듯이, 성공 뒤에는 성공을 향한 탐욕이 있었다. 경쟁에 대한 에너지, 시기와 질투와 원망이 있었다. 그것들이 끊임없이 모방하게 하고 배우게 하며 연습하게 하고 익히게 했다.

 

“유일한 사람이 되어라. 이것은 최고가 된다는 뜻이다. 유일한 자만이 최고로서 칭송받을 자격이 있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을 모두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312. 유일한 사람이 되는 길을 신의 쪽지, 즉 ‘자신에 대한 기록’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자신만이 유일함의 원천이다. 자신을 활용하지 않고는 유일함에 도달할 수 없다.

 

313. 누구든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인물을 얻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자신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살려내지 않고는 내면에 숨어 있는 영웅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는 것, 이것이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이다.

 

*314. 나는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이다. 분노는 억제된 불길이다. 나는 때때로 침울해 보이거나 무거워 보였다. 분노를 적의 없는 상태로 감출 수 있는 방식이 바로 스스로에게 물기를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제대로 타오를 수 없었다. 가득한 연기에 시달리다가 결국 불문을 열고 굴뚝을 달아 불길이 훨훨 타오르도록 했다. 이것이 나를 살려주었다. 그들의 방식이 아니라 나의 방식대로 살 수 있도록 분노를 자극했다. 나의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분노를 키웠다. 이것이 내가 내 속의 분노를 길들이는 방식이었다. 내 속의 욕망이라는 불길이 잘 타오르는 동안 나는 마음의 평화를 즐길 수 있다. 그 불길의 주위에 자리를 펴고 누워 타오름을 즐기는 것은 벽난로의 아득함이었다.

- 내가 나에게 물기를 뒤집어 씌우고 그 연기에 괴로워하던 것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인다. 나 자신의 분노를 활활 태워야 한다.

 

315. 내가 찾아나서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내가 거기 서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식물적 특성을 고안해두었다. 세일즈와 달리 마케팅은 아주 적극적인 수동성이다.

 

나는 마음이 여리고 소심하다. 늘 쉽게 상처 입는 편이다. 예민하기 때문에 대상을 잘 골라야 했다. 나는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대신 책으로부터 배우는 방식을 구했다.

 

*316. 내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했던 소심한 자아는, 밖으로 나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사람의 작은 영웅이 되고 싶어했다.

 

‘유일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숙달해야 한다. 손과 머리 사이에 자연스러운 교감과 조화가 이루어지면 익숙해진 것이다. 그러나 최고는 늘 기계적 익숙함에 다시 한 번 저항한다.

 

317. 열정이란 심장과 감정과 창자로부터 생겨난다. 참다운 자신이 되는 자유는 ‘자유로운 공기를 들이켠 허파의 외침’이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감동이며 환성인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 속에서 위대한 힘을 감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318.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는 가능한 꿈을 꾸어야 한다. 가능한 꿈을 꾸는 현실주의자, 나는 이것을 희망적 현실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꿈으로 가는 길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내 앞에 놓인 냉혹한 현실을 망각하지도 않는다.

 

* 새로 만들어진 그들은 자신에 대한 존중감으로 가득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만, 늘 스스로 새롭게 생성되는 사람들이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자신을 탄생시키지 못하는 불임을 극복하는 사람들이며 자신에게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다.

 

 

319. 강연은 쏟아내는 작업이다. 쏟아내는 것이 들어오는 것보다 많으면 이내 밑천이 딸리게 마련이다. 이것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지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너무 바쁘면 안 된다.

 

321.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지없이 부서지며 다시 어제의 관성으로 합류되는 사람들을 보며 자괴감이 많았다.

 

329. ‘아티스트들은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아요. 내 음악으로 관객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확신, 그런 허영 없이는 무엇으로 움직이겠어요? … 아티스트들은 그래서 항상 젊어야 하고 섹시해야 하고 신선해야 해요.

 

331. ‘모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그 것이 유일한 목표여서는 안 된다. 내 목표는 그 이상이다.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 그것은 반드시 청중 속의 누군가를 움직여 스스로 자신의 고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334. 불행한 사람들만이 변화에 관심이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지금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행복을 가장한 사람들 역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도 때때로 변화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뼛속 깊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지금이 지루하고 반복적이며 별 의미와 보람도 없는 불안과 무력감에 시달리는 일상이라고 엄살을 떠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인생은 그런 것이려니 하는 사람들이다.

- 그래서 아마도 바닥을 친 것 같은 느낌. 무언가 인생에서 잘못된 듯한 느낌이 점점 커져 더이상 감당할 수 없는 그 상태에 도달해야만 변화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 것인가 보다. 아직 그럭저럭 견딜만 할 때는 그 상태에 불만족하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한다.

 

335. 나는 먼저 그들이 그럭저럭 봉합시켜놓은 일상에 대한 만족을 헤집어놓는다. 마음속에 숨어 있는 불안한 불길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펴놓는다. 불길이 타오르면 그들의 욕망은 여기저기 묶여 있는 봉합선을 뜯고 분출된다. 그들은 더 불행해지고 불편해진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바로 내가 내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다.

 

336. 변화는 달콤한 과정만으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변화 속에는 늘 피의 냄새가 난다.

 

337. 진정한 변화는 자신에 대한 치열한 사랑이다. 치열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다.

 

나는 변화의 대상이 되면 필연적으로 공격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변화의 주체가 되는 것, 상황의 먹이가 되어 쫒기기 전에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는 주인이 된다는 것이 변화의 요결임을 강조한다. 그 길은 어려운 길이다. 그 길은 껍데기를 버리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붙잡고 일어서야만 하는 자기 존중과 애정이 필요한 대장정이다.

 

340. 정신적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늘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자신의 정신을 새롭게 닦아 놓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 인간은 모두 다 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밀리면 정신적 타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 그러나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실수하거나 마음에 차지 않으면 매우 불쾌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이 때 자신의 분야가 나를 찌르는 비수가 된다. 그러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학습의 중요성

 

342. 내가 하는 일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아직 방향을 잡을 수 없을 때 잠시 ‘우연한 쏘시개 불꽃’이 되는 일이다. 누구든 자신의 길을 갈 때는 내면의 등불을 밝히고 가야 한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등불이나 등대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가는 여행은 우리 속으로의 여행이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 수록 오직 자신을 태우는 등불로 길을 밝혀야 한다.

 

348. 나의 하루, 나의 역사, 이것이 바로 그 물결이었다. 이제 누구도 내게 명령하지 못하게 하리라. 다시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것이다. 이것이 내 첫 번째 계획이었다. 그리고 유일한 계획이었다.

 

349. 당장 하루를 구성하는 시간을 재편했다. … 내 방법은 삶의 모든 전선에 퍼져 있는 실핏줄같은 시간을 불러모아 커다란 주류를 가진 시간의 강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350. 그는 어린 나이에 포도주에 취해 책을 읽곤 했다. 아마 그게 그를 키운 고독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352. 변화는 마흔 세살이 되던 해 하루 동안에 일어났다. 나를 이루고 있던 ‘어떤 특성의 한 조각’이 우연히 밖으로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내 운명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순간 내가 오래도록 바라왔던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353. 나는 인생을 참아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자신에게 분노하며 늘 긴 여행을 선망했다.

 

모든 위대한 것이 다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에 나에게 고정된 우상은 없다. … 모든 것은 실험이다. 나를 실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험이고 탐험이다.

 

354. 끝없는 새로움으로 아침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내 목적이기 때문이다. 내 하루는 한 개의 꽃이다. 새벽에 망울을 달고 이내 만개하여 밤이 되면 떨어지는 하루 꽃, 아주 새로운 하나의 유혹.

 

하루는 그 실험을 하기에 적합한 시간이다. 내 하루들은 바로 그 거북의 새끼들이었다. 어느 하루도 무의미한 하루는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시도 자체가 삶이었기 때문이다.

 

356. 글을 쓸 때 나는 고통과 무료함과 분노와 초라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은 흥분이고 노래고 춤이다. 지칠때까지 일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일에 대해 늘 ‘아니오’라고 말할 자세가 되어 있다. 일은 늘 내일 해도 좋은 것이다. … 나의 일상은 안정과 질서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미래를 정하고 계획에 따라 엄격하게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나는 그 일을 아주 잘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나를 실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58. 현실이란 결국 ‘주어진 상황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다. 나의 의견을 말하라. 나의 의견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라.

 

360.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은 채, 든든한 밥그릇 하나 챙겨두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그 쩨쩨함의 끝을 묻고 싶었다. 새로운 인생을 건설해야 하는 시점에서 여전히 망설이기만 하는 나에게 무엇을 더 기다리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대신 오늘을 새로 받은 또 한 번의 아름다운 선물로 여기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361. 가끔 이룸에 대한 집착이 내 삶을 깨는 것을 보곤 했다. 예를 들어 일 년에 한 권씩 책을 쓰는 것은 내 목표가 아니었다. 그건 그저 즐거움의 결과였다. 목적을 가진 야심작이 아니라 내가 하루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 그러니까 하루의 흔적이다.

- 하루가 인생이다.

 

결과와 목적을 늘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그러나 정말 나의 목적은 하루를 잘 사는 것이다. 하루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각성과 준비의 제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하루답게 사는 것이다. 어떤  하루도 목적- 그런 것이 있다면-을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하루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희생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 자체를 빛냄으로써 인생 전체를 빛나게 하고 싶었다. 이것이 못적이다. 내겐 좋은 하루 그 자체가 목적이다.

 

363. 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나 가난 때문이 아니다. 즐길수 있는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364.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세상은 즐길 만한 곳이다. 내게 마흔은 세상을 즐길 수 있게 해준 나이였다. … 헛된 기대 대신, 직접 살아본 경험의 혓바닥으로 날마다 인생의 삶 맛을 핥아볼 수 있는 나이였다.

 

373. 나는 ‘나의 이야기’의 효능을 믿는다. 아니, 신봉한다. 내 경우에는 연구원 과제로 나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처음 20쪽에서 시작해서 50쪽까지 늘려 나갔다. … 친구와 사랑, 가족관계와 사업 모두가 객관이 되었다. 나의 꼬락서니가 여실히 드러났다. 얼마나 즉흥적이고 단순하게 살았는지 기가 막혔다.

- 개인사를 쓰면서 겪었던 감정. 얼마나 아무런 계획없이 그저 안개속을 헤치듯 살았는지, 목표도 비젼도 없이 학습도 탐험도 없이 살았는지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대면하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를 다 쓰고 난 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난 일이 오래된 영화처럼 죽 밀려가고, 미래에 대한 의지가 솟아올랐다. 오류투성이의 삶이지만, 생긴 대로 살자, 더욱 나답게 살자는 결론도 나왔다. 나의 특성으로 승부를 보자.

 

574. 50쪽을 쓰고 나니 글을 쓴다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글쓰기는 내향적인 나에게 좋은 표현 도구였다. … 첫 번째 인생은 멋모르고 살았지만, 아직 창창하게 남아 있는 두 번째 인생을 자축하고 싶었다.

 

375. 너 자신을 위해서 하루에 두 시간을 써라. 그 두 시간 동안 온전히 너 자신을 위해 집중하라. 10권의 책을 너의 이론으로 정리하고, 10명의 사우를 만들어라. 너의 책을 써라. 무엇을 알기 때문에 책을 쓰는 것이 아니다. 모르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쓴다는 것은 배우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책을 통해 지금의 너를 구원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을 구원하라. 10년 후 너의 생업이 되게 하라.

 

나는 비로소 구본형의 방법론을 내면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따라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이야기를 쓴 다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377. 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다. 나의 마음이 가고, 열정이 가는 일을 하고 싶었다. 상식적이고 안정적인 생활인의 세계에 의미를 두지 못해 오랫동안 외로웠다. 미운 오리새끼로 빙빙 돌다 보니 시간이 얼추 고갈되었다. 더 이상 시행착오를 할 시간이 없는 내게 그는 훌륭한 역할모델이다. 시작이 늦은 나는 그가 걸었던 길을 따라 똑바로 걷기만 하면 된다. 늘 힘써 배우는 원칙적인 자세로부터 시시콜콜한 조언까지 그의 안에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378. 여기 구본형이 자신의 기질을 묘사한 내용이 있다. 누군가 이것과 흡사한 기질을 갖고 있다면, 더욱더 그의 방법론을 따라 해볼 당위성이 커진다. 자신과 같은 유형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은 바로 지금의 자신처럼 사는 것이라고 구본형이 단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원하는 대로 되었노라고.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철저하게 구본형 선생님 자신의 자전적인 글이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삶을 빌어 이야기하는 삶의 변화는 동시에 우리 모두의 삶을 비춘다. 자전적으로 자신을 집요하게 아주 가까이서 그리고 또 조금은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자신과의 거리가 흥미롭다. 매일 두시간씩 새벽의 시간에 글을 쓰고 일년의 양을 묶어 책을 내셨다는 것이 이해가 간다. 하루 이틀 큰 칼로 휙휙 베어 만든 글이 아니다. 조물 조물 조물 매일 매일 오랜 시간 바라보며 조금씩 살을 붙여 만들어간 글이라는 느낌이다.

 

지난 10년의 삶, 마흔이라는 나이에 대하여, 직장 생활, 본인이 가진 얼굴과 그에 대한 페르소나, 그리고 가족, 그와 자연과의 관계, 건강, 길에 대해 부여한 의미, 집과 공간, 학습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일. 이렇게 11개의 장으로 책은 구성된다. 자신의 삶을 구체적이고도 낱낱히, 그리고 깊이 있게 11개의 각기 다른 면면에 대해 느릿하고 집요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가 40대에 겪게 되는 변화라는 키워드로 관통해내는 그 구성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각 장의 첫 부분에 나뉘어 초록 바탕 위에 실린 과거의 죽음에 대한 글도 신비롭게 전체의 구성을 한데 묶어준다.

 

1장 – 지난 10

2장 – 마흔 살

3장 – 직장생활

4장 – 얼굴- 페르소나

5장 – 가족

6장 – 자연

7장 – 건강

8장 – 길에서

9장 – 집, 공간

10장 – 학습

11장 – 일

 

나는 <학습><>장에서 많은 울림을 받았다. 사실 <얼굴><가족>, <>에 대한 장은 흔히 읽는 자기 계발서나 무언가를 이룬 사람의 자서전에서 찾아보기에는 상대적으로 무척이나 개인적인 부분이 많다. 코의 생김에 대해서 머리카락에 대해서 눈매가 처진 것에 대해서 이렇게 오래 생각하고 글을 쓰시다니, 근데 이걸 굳이 공유하시는 이유가 뭘까? 이런 생각을 처음에 했던것 같다. 하지만 책 전체를 읽으면서, 이 모든 자신의 면면에 대한 차별 없는 관찰과 이해가 스스로에 대한 통찰을 이룰 수 있었던 힘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학습> <>이라는 성취의 측면에만 매몰되어 있지 않고 삶의 전반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넓은 시야가 있기에,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며 자신만의 길을 닦을 수 있는게 아닐까? 이것이 책의 구성을 보면서 나에게 할 수 있었던 질문이었다.  

 

 나는 매우 내향적이며 직관적 기질에 가깝다.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느끼는 것이 우선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판단보다는 인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의미와 내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많다.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며 믿음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진력을 다한다. 감수성이 강하고 사려가 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데 능란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그러나 세계를 함께할 사람을 고르는 데 까다롭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냉담하고 무관심하게 보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혼자서 조용히 사색을 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겨한다.’

 

모든 사람이 다 변화를 필요로 할까? 태어나 한번도 위기를 겪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떨까? 내가 하는 일, 하는 말, 삶의 방식에 대해 늘 만족이 가득하다면 어떠할까? 나는 이 책에서 실용적이고 현실적으로 내 삶에 적용해야 할 변화의 방식에 대해 많은 영감을 얻얻지만 동시에 무엇보다 큰 위로를 얻었다. 그 위로는 구본형 선생님이 자신의 기질에 대해 길고도 상세한 설명을 했던 부분에서 였다. 조용하게 자신을 관찰하고 부족한 부분을 수용하고 어떻게 그 부분을 강점으로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하고 실험하고 실행해 나간 그의 삶의 궤적. 그 궤적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조용하고 수동적인 사람도 세일즈맨과는 거리가 먼 사람도 사교적이지 못한 사람도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잘 살 수 있구나. 그렇게 자기에게 맞는 삶을 살면서도 이 세상에 의미가 되고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 수 있구나. 그리고 그 내향적이고 수동적 특성은 사회적으로 단지 고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모색하면 하나씩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 찾아지는 것이구나…’ 이 사실이 나에게는 큰 위로를 주고 용기를 가져다 주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극히 선생님 본인의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관점을 통해 그 사례를 써낸 것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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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2 11:51:22 *.94.171.90

저 역시도 구본형 선생님의 삶의 궤적을 쫓아서, 공유가 된다는 것이 많은 깨달음이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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