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서 언제 웃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코미디의 유머의 질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웃음소리에 따라 반응하게 된다. 진정한 유머 없이‘하하’라는 가짜 웃음소리만 가지고도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도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_로버트 치알디니,《 설득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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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무한도전〉을 보는 이유는
월요일 아침 회의 시간에 사람들과의 대화에 끼기 위해서이다.
〈개그 콘서트〉를 챙겨 보는 이유는
사람들이 웃는 지점에서 같이 따라 웃기 위해서이다.
웃기지 않는 유행어를 반복해 외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억지웃음과 같은 긴장된 명랑함이 느껴진다.


규칙은 딱 하나. 나만의 웃음 코드를 찾아낼 것

4995a9e427987웃음에도 개성이 있다.〈 개그 콘서트〉나〈웃찾사〉를 재미있어하는 사람도 있고〈남자 셋 여자 셋〉이나〈거침없이 하이킥〉같은 시트콤을 재미있어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것을 보면서도 이해하는 바가 다르다. 우스운 지점도 제각각이다.
요즘의 우리는 웃음에 개성을 잃어버렸다. 조금 우스운 일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웃지 않으면 모른 척하고, 그저 유행어라면 뜻 모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는다. 모든 것들을 같이 느끼고 같이 즐기길 요구받는 것이다. 어쩜 그렇게 일제히 웃음을 터트리고 똑같은 모습으로 즐거워하는 것인지. 즐거워하고 웃는 것까지 단체 활동이 되어버렸다. 내 웃음에 개성을 잃어버렸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웃을 일이 많은 세상이 되었다. 즐거운 일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관찰하지 않아도 된다. 가짜 웃음이라도 뚱한 것보다는 나으니 웃을 일 없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웃을 일들을 만들어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큼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속웃음은 잃어버렸다. 튀어 보일까 봐, 괜히 엉뚱한 지점에서 웃음을 터뜨려 민망할까 봐, 웃는 일까지 눈치를 봐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박장대소 뒤에는 이유 모를 공허함이 존재하고 있다. 웃을 일은 많아졌지만, 유쾌한 느낌은 줄어들었다. 많이 웃고 있지만 누군가에 의해 조종된 웃음을 짓고 있는 슬픈 피에로 같다. 그들이 의도한 대로 나를 웃기기 위해 준비된 쇼 앞에서만 웃어 보일 수 있다. 준비된 감동에만 내 마음은 반응한다.
스스로 찾아낸 일로 웃고 싶다. “자, 웃어주세요”라는 신호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속에서 쿡 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즐기고 싶다. 박장대소가 아니라도 내 느낌으로 웃으며 만족하고 싶다. 작더라도 내 가슴에서 만들어낸 웃음으로 유쾌해지고 싶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하지만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내 속웃음을 찾고 싶다. 내 일상의 웃음들을 찾고 싶다. 사람들에게 설명되지 못할, 혼자 웃고 말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잊고 지냈다. 텔레비전의 자막을 빠르게 따라가지 않더라도, 마빡이의 이름으로 다리와 머리를 박자에 맞춰 번갈아 치지 않더라도 우리는 웃을 거리를 많이 찾아낼 수 있다.
내 마음이 반응하는 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어떤 작은 일에 내 마음이 감동을 받는지, 떨림을 일으키는지, 예쁜 무늬를 만들어내는지, 움직이는지 끊임없이 관찰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관심을 두고 이상한 코드로 해석하며 웃을 거리를 찾아다녔다. 그리하여 내가 찾아낸 몇 개의 지점들, 나 혼자만 알아차릴 수 있는 유머 주파수, 그저 혼자 웃고 말 유머 코드가 존재하는 곳을 드디어 찾았다. 사람들의 뒷모습을 관찰하는 일, 모든 일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일상을 시트콤처럼 해석하는 일, 지하철에 무심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는 일, 일상의 손길이 닿지 않을 만한 일상적인 지점을 관찰하는 일, 나와 닮은 사람과 닮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해보는 일, 일상처럼 살아가는 시간들 속에 묻혀 있는 습관들, 그것들을 관찰하고 혼자 속으로 웃어보는 일은 500만 원을 줘도 안 바꿀 거다.

 지하철 풍경
4995a9e49688a회사가 강남에서 홍대로 이사 왔다. 같은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서식지를 옮겼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다. 아침 출근길을 다시 탐색해야 하고, 점심시간에 갈 만한 밥집을 찾아야 한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왕복 네 시간으로 늘어난 출퇴근 시간에 할 만한 일을 발견하는 것이다. 자리 잡고 앉아 졸기에도 민망하게 긴 출퇴근 시간이다. PMP로 영화를 보는 일도 며칠 하고 나니 목이 뻐근하고, 책을 보고 있자니 눈이 점점 나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는 일로 때우기에도 너무 긴 시간이다. 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거리가 필요했다. 다른 사람들은 뭘 하며 출근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관찰하기 시작했다. 신문을 보는 사람, 졸고 있는 사람, 걸어가는 사람, 자리 찾아 눈에 불을 켜는 사람, 핸드폰에 빠진 사람, DMB로 아침 드라마 보는 사람……. 가만히 보다 보니 이들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신문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골라내어 관찰해보면 신문을 들고 있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신문을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워 넣는 사람,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넣는 사람, 접지 않고 읽는 사람. 그러다가 침을 묻히며 신문을 넘기는 아저씨를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쿡 하고 웃음이 튀어 나왔다. 요즘은 어떤 신발이 유행하나 관찰하다가 여름 샌들 사이로 삐져나온 엄지발가락을 만났을 때, 그 아가씨의 발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혼자 웃었다. 운동화끈 매는 방법을 관찰하다가 나랑 똑같은 방식으로 끈을 묶은 학생을 만났을 때는 혼자 반가웠다. 아무 일이 없을 때에는 반대편에 앉아 있는 일곱 명의 얼굴을 두고 무표정 대마왕을 뽑기도 했다. 하철 한 줄에 남자 일곱 명이 앉았을 때의 빽빽함과 여자 일곱 명이 앉았을 때의 헐렁함을 비교하기 위해 타이밍을 기다리기도 했다. 일상에 묻어 있는 작은 관들에 웃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을 내 습관들을 가만가만 되짚어보기도 했다. 지하철은 내 방식대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나만의 기준으로 일상을 보게 해준다. 지하철은 눈동자만 굴리면 어떤 영화보다도 스팩터클하고, 어떤 코미디보다도 재미있는 풍경들이 많은 삶의 현장이다. 출근 시간이 즐겁다.


 뒷 모 습 ,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표정
4995a9e4d8b7b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제각각 카메라에 담아온 사진들을 카페에 올렸다. 한 친구의 사진을 보고 있으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사진이 모두 사람들의 뒷모습만 담고 있었다. 그리고 짧은 후기. 우연히 찍힌 뒷모습에서 너무도 솔직한 모습이 보여서 뒷모습만 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무리로 걸어갈 때에는 항상 가장 뒤에서 걸으면서 우리의 모습을 한꺼번에 담았다. 자신이 찍히는 줄 모르고 제멋대로 걸어가는 걸음걸이며, 다정한 어깨동무며, 사람 사이의 거리가 모두 보였다. 시선이 앞을 향해 있어 뒷모습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못한 티가 났다. 섬뜩할 정도로 솔직한 모습들이었다. 뒤통수, 구두굽, 걸음걸이, 접힌 바지선, 구겨진 치마까지. 뒷모습은 무방비 상태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 뒷모습만 봐도 그 사람의 표정이 대략 짐작이 됐다. 나도 그때부터 뒷모습이 담긴 특별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포즈를 취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진. 뒷모습은 항상 가장 솔직한 모습을 담아낸다.

 엉뚱 황당한 일상의 시트콤
시트콤의 매력은 엉뚱함에서 오는 즐거움이다. 슬픈 일이 있더라도 시트콤처럼 받아들이면 한결 가벼워진다. 그게 내가 별로 웃을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을 견뎌내는 방식이다. 더러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상황도 벌어지지만, 뭐 어떤가. 혼자 재미있게 웃으면 그만이지. 코미디언 전유성은 버스를 타고 가면서“만약 이 세상에 이 버스에 있는 사람만 남는다면 나는 누구와 짝을 할까?”라는 상상을 한다고 한다. 일상 속에서 항상 유머의 소재를 찾고 다양한 상상을 즐기는 것이다. 나는 말짱하게 지나가는 남자를 바라보면서‘저 남자가 나에게 프러포즈를 한다면 나는 오케이를 할까 노를 할까? 저 사람이 내 남자로 적절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혼자 웃는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지나가는 사람 모두 가 유머의 대상이다. 일상적이지 않은 이런 상상들로 내 생활이 즐거워질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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