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소란과 안달은 왜일까?
왜 이리도 절박하고 어수선하고 번민하고 고군분투하는 걸까?
그런 하찮은 것이 왜 이다지도 중요해진 걸까?
_쇼펜하우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멀리서 누군가 달려온다.
무시하고 닫힘 버튼을 반복해 누른다.
달려온 그 사람이 가까스로 엘리베이터 문을 연다.
아는 사람이다.
나인 줄 알면서도 엘리베이터 문을 닫은 거지?
조급증 때문에 아침부터 민망함에 몸 둘 바를 모른다.
규칙은 딱 하나. 가끔은 시간을 먼저 보낼 것우리를 태운 지구는 너무 빠른 속도로 돌아간다. 옛날엔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요즘엔 하루 만에 산이 엎어지고 바다가 갈라지는 세상이다. 가만히 있어도 어지러운 속도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 속도에 맞춰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어다녀야 한다. 한번에 하나씩 처리하면 뒤처지는 거라며 멀티플레이어로서의 기능을 요구하기도 한다.
모든 도시적인 것들은 내 마음을 급하게 한다. 아무리 시간이 남아도 지하철 계단에서는 뛰어야만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 망상은 조급증의 초기 증상이다. 지하철 개찰구에서 카드를 한번에 찍어내지 못하고“카드를 한 장만 대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나오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는 자동으로 문이 닫히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닫힘 버튼을 두 번씩 반복해서 누른다. 길어봐야 10초도 안 되는 시간들을 절약해서 어디다 쓰려는 건지. 혼자 중얼거려보지만 같은 상황이 되면 또 조급증이 발동되어 똑같이 한다.
모든 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은 내가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할 만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는 멀미 나는 속도에 적응해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꾸역꾸역 생각을 정리한다. 이젠

됐어. 내 이야기를 시작해야지 하고 호루라기를 불면 이미 화제는 다른 것으로 넘어가 있다. 하려던 이야기는 나 혼자 씹어 삼켜야 한다. 혹은 혼자서 뒷북을 치며 생쇼를 하든가. 세상의 호흡을 따라가지 못하고 타이밍을 놓치는 게 어디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뿐이랴. 그럴수록 더욱 급해지고 자꾸 헛발질은 늘어난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항상 모든 일에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들을 자꾸 놓치고 엇박자 시추에이션을 만들어낸다. 내가 느리다기보다는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는 탓이다. 조급증은 몸이 피곤한 만큼 감정과 감각을 피곤하게 한다.
모든 생각을 멈추는 순간을 갖기로 했다. 삶의, 숨 가쁜 이동 속에서 나는 모든 생각을 멈춘다. 5초 단위로 생각이 휙휙 바뀌면서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마구 넘나드는 생활에 지쳤다. 모든 일에 천천히 천천히를 붙였다. 게으름과는 다른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빠르게 움직이던 생각들을 원래의 속도로 조정하는 작업이다. 몸과 머리의 속도로 따라가느라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 있는 마음을 비우는 속도이다.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빨라 어지러운 순간 모든 것을 멈춰놔야 한다. 함께하면 마음이 침착해져오는 나만의 진정제가 필요하다.
샤워부스에서의 자유 
잘 넘어지고 잘 부딪친다. 팔이며 다리는 멍 때문에 말짱할 날이 없다. 문틈에 손톱이 자주 끼이고 발가락은 문과 바닥 사이에 자주 끼인다. 앞서 가는 사람의 구둣발에 발등이 밟히기도 한다. 마음만 급해 앞서 가다 보니 몸이 따라가지 못해 자꾸 부딪친다. 내가 특히 자주 넘어지는 곳은 욕실이다. 욕실에 다 들어서기도 전에 문을 닫아버려 발이 끼이기도 하고, 선반 위에 칫솔을 올려놓다가 세면대에 손가락을 부딪치기도 한다. 그리 급할 일도 없는데 유난히 욕실에만 들어서면 마음이 급해진다. 폼클렌징도 충분한 거품을 내지 않은 채 얼굴을 씻기도 한다.
머리를 감으면서 중간에 양치질을 한다. 발은 대충대충 씻는 날이 많다. 어느 날 퇴근 후 샤워를 하다가 정신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성급하게 굴지?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바쁜 아침 시간도 아닌데.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최대한 빨리 씻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모든 일에 제 시간을 들이려 노력했다. 노래를 하며 샤워를 하니 샤워하는 게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동요도 부르고 트로트도 부른다. 큰 소리로 부를 필요는 없다. 혼자서 흥얼거리며 리듬과 박자만 타면 된다. 가끔은 지르박 스텝을 밟기도 한다. 이제는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볼 여유도 생겼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움직이지 마!”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노랫가락에 맞춰 움직이거나 멈춰 서 있던 어린 시절의 놀이는 가끔 나를 미쳐버리기 직전에서 구출해준다. 신나게 돌아가던 음악이 멈춘 것처럼 정신없이 흘러가던 내 시간을 딱 멈추게 해주니까.
수행이니 뭐니 너무 어렵다. 요가라는 것도 작정하고 며칠 하다가 집어치우게 되고, 운동도 체조도 불편하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모든 감각을 닫은 것도 아니고 연 것도 아닌 진공 상태에 나를 한동안 놓아둔다. 멍하게 있다고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활동하는 세상에서 자기 성찰을 위해 잠깐 멈춰 서는 귀한 기회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세상이 어지럽고 복잡했던 이유가 내 밖의 어지러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 마음이 어지러워 무엇 하나 담을 수 없어서이기도 했다. 이젠 그걸 알겠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가기 위해 두 손에 꼭 붙들고 있던 것들이 놓아진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신을 견뎌낼 수 있는 능력, 아주 빠르고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자기 안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헛발질하는 날에는 언젠가 제주도에 놀러온 친구가 바다를 보며 말했다. 제주도는 이래서 답답하다고. 어디를 가든 바다가 보이니, 어디를 가든 한계가 보인다고.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어디를 가든 바다가 보이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가능성이 보인다.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바다에 대한 생각은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넓고 푸른 바다일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거친 파도가 이는 공포의 바다일 것이다. 바다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느껴진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상관없다. 바다에 가면 항상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볼 수 있다. 바다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바다는 깊은 사색의 시간으로 우리를 몰고 간다. 성급하던 마음도 진정이 된다. 파도가 들어오고 나가는 무한 반복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친구와 같이 가도 좋고, 혼자 가도 좋다. 자동차도 좋고, 전철을 타도 좋다. 어쨌든 바다는 나를 조용한 사색의 시간으로 이끌어줄 테니까. 서해의 작은 섬에서 만났던, 저녁노을이 지는 서해의 바다도 좋았고, 나란히 앉은 사람들을 각자의 생각에 빠져들게 했던 동해의 바다도 좋았고, 크리스마스의 제주 바다도 좋았다. 아직 손님 맞을 준비를 마치지 못해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6월의 동해 바다도 좋았고, 벚꽃이 어우러져 주름살 하나 없이 젊었던, 잔잔한 늦봄의 남해 바다도 좋았고,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10월의 서해 해수욕장도 외롭지는 않았다. 어디든 좋다. 성급함에 헛발질이 계속되는 날에는 바다로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