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2일자 조선일보 신간코너에 소개된 졸저 [늦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나이 든다는 것은 낯선 경험입니다. 20대에서 30대, 30대에서 40대...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나이의 실체를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생생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요? 무슨 얘기인고 하니 서른이나 마흔이 된 것을 가르쳐주는 것은 나의 자의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닐까 싶어서요.
내면의 자기인식은 그렇게 빠른 속도로 변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몇 년 전의 정체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수가 많습니다. 나는 아직 철부지 같은데 결혼 언제 하느냐는 소리를 수없이 듣고, 기분은 젊을 때와 똑같은데 어르신 대접을 받아가며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나이를 내면화합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화상보다는 외부에서 쏘아주는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거지요. 그것을 보고 ‘사회화’ 과정이라고 하는지는 몰라도, 중년에 이르면 이 문제는 조금 심각해집니다.
20대에는 자아를 찾아가는 방황과 모색이 공인되고, 30대에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가정의 기반을 이루어야 한다는 식의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데 비해, 중년에는 사회적으로 성취해야 할 문화적 각본이 없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거나 돌보기 위한 책임만 당연시될 뿐, 자연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욕구와 성취에 대한 논의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여기에 젊음만이 칭송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중년은 개성 없고 몰염치한 캐릭터로 희화화되기 일쑤다가 명퇴로 확인사살 됩니다.
저는 40대까지는 자영업 해 가며 아이들 키우느라 이런 문제에 아무런 의식이 없었는데, 연구원 생활을 통해 집중적인 독서를 하게 되면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우선은 성장한 아이들에게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지 않다는 느낌이 충격으로 다가왔고, 은근히 무시하고 제쳐놓는 주변의 시선에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어떻게 나이 들어 갈 것인가. 저는 이 질문에 대답을 얻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중년에 놀랄 만큼 역동적인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과 규범을 수용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전반전에 비해, 인생의 후반전은 그 동안의 삶을 통해 발견한 자아에 의해 스스로 선택한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그 전환기인 중년이 사춘기 못지않은 격랑의 시기가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기인식과 사회인식, 가치관의 우선순위가 근본부터 흔들리게 되니까요. ‘중년’하면 으례껏 ‘위기’라는 말이 따라오게 된 것은, 전환기에 피할 수 없는 혼란 만을 주목한 결과겠지요, 하지만 이 시기에 성공적으로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목표를 수립하게 되면 폭발적인 창의성이 대두된다고 합니다. 중년에 놀라운 성취를 한 수많은 사례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듯이요. 그런 사례는 제 책에도 수없이 나옵니다. 누가 세어보니 120명에 이른다고 하네요.^^
수명이 길어져서 아직도 살아가야 할 날은 많습니다. 더구나 인생 전반전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아주 지혜로워졌습니다. 우선 나에 대해 잘 알게 되었고, 사람, 시간, 돈 같은 인생의 중요한 소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언제까지나 널널할 줄 알았던 시간이 실제로 사라지는 자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보다 진중해지고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삶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서 넘치는 혈기를 어디에 쓸 줄 몰라 출렁대던 젊은 날에 비하면 그야말로 알짜배기 진짜 인생이 열린 것입니다. 중년은, 젊은 사람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이미지를 받아들여 지레 늙어가기에는 너무 귀한 인생의 절정입니다.
게다가 중년을 '복권'시키는 일은 우리 삶을 좀 더 온전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토록 오랜 준비를 거쳐 사회에 진입했는데, 젊은 시기만을 전성기로 여기는 것은 크나큰 손실이지요. 이 길어진 중장년에 서서히 쇠퇴만 하라는 것도 어불성설이구요.
저는 우선 ‘중년이 진짜 인생’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구요, 이 ‘진짜 인생’을 어떻게 향유하고 만들어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파고들어 보았습니다. 제 중간결론은 ‘창조와 커뮤니티’입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과 연결되어 공부도 하고, 실험도 하면서 재미나게 ‘나이듦’이라는 신천지를 탐험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