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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콜라주 '세월' --이렇게 유치한 그림판놀이도 정서안정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
창조는 최고의 생존방식이다.

 


‘사랑은 가장 이기적인 행위’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에 가슴깊이 동의합니다. 사랑으로 해서 얻게 되는 생의 환희가 고스란히 ‘나’에게로 귀속되기 때문입니다. 먼지 낀 유리창처럼 구태의연하던 일상이 돌연 반짝이를 뿌려놓은 동화 속 세상처럼 변하는 마법, 사랑! 사랑이 주는 희열뿐만 아니라 고통조차도 나를 크게 합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내면과 관계성을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드러내주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랑을 제대로 하면 ‘대박성장’이 이루어진다구요.


나이가 들면 이 ‘사랑’이라는 것을 그저 남녀 간의 사랑에 한정짓지 않게 됩니다. 삶이 저물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더욱 밀도있게 살고 싶어지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나이가 들면 ‘공동체에의 회귀’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말 역시 경험에 의해 가슴깊이 동의합니다. 무엇이 되었든 살아오면서 내가 얻은 것을 가지고 가겠습니까? 그냥 아무 데나 버리고 갈까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겠지요.  그것이 바로 사랑이고 ‘공동체에의 회귀’일 것입니다. 저는 세상이 아무리 험해져도 사랑이나 이타심이 쉽사리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본성이라고 여겨지는 ‘이기심’에 기초한 행위니까요.


이제껏 살면서 제가 얻은 것은 약간의 깨달음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좋은 삶을 이루는 요건이 ‘창조와 커뮤니티’라는 것인데요, 저는 이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파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나’를 위해서요,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의미이고,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이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다면 제 인생은 성공한 것이 되겠지요.


서두가 길었는데요, 저는 ‘창조’야말로 가장 좋은 생존법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가장 좋은 이유는,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오직 외부의 확인에 의해서만 내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타인의 관심 여부에 따라 내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는 것은 주객이 바뀌는 것이고, 타인의 관심에 연연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나’를 규정짓고, 바로 세우는 힘은 언제나 ‘나’에게서 나와야 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의 실체를 알아보고, ‘나’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만들어내는 것이 최고입니다. 육아가 인생 최고의 프로젝트인 것을 돌이켜 보십시오. 아기를 낳는 것 즉 생명을 창조하는 것은, 인간이 神의 전능에 육박할 정도로 신비한 일이었지요.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출산에 버금가는 신비한 행위입니다. 사진과 그림, 요리, 디자인, 건축, 뜨개질, 도예... 무엇이 되었든 나의 시간과 정성과 감각을 쏟아 창조한 것은 내게 기쁨과 자신감을 줍니다. 아주 작은 성과물 하나에도 나의 전존재적인 가치가 실립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나의 ‘분신’이 됩니다.


예술의 기초가 되기도 할 모든 창조적인 행위에는 모두 그만한 가치가 있겠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글쓰기에는 특유의 고유성이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 ‘늦지 않았다’에 이렇게 썼습니다.


글쓰기는 가장 직접적으로 자기 자신을 노출시키는 표현방법이다. 회화, 음악, 무용, 영화 등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직접적으로 개인적인 사고와 감성을 노출시킨다. 뿐만 아니라 글쓰기는 모든 예술 장르의 기본이기도 하다. 어떤 예술이든지 말을 가지고 구상하고, 정리하고, 공유하고, 유포하고, 평가해야 하는데, 글은 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화나 음악, 영화를 하는 전문가 중에서도 글쓰기를 병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늦지 않았다’ 187쪽-


그러니 다른 표현도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글쓰기를 경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글쓰기'를 발견한 것은 제 인생의 백미입니다. 저는 제가 깨달은 글쓰기의 맛과 멋과 힘을 전파하는 ‘글쓰기 전도사’로 살아갈 생각입니다. 물론 꾸준히 글을 쓰는 ‘행복한 글쟁이’도 겸해야겠지요. 마음을 다 해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참 좋습니다.^^



글쓰기는 완벽한 대화상대를 가정하고 하는 혼잣말이다.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누군가 나의 언어를 온전히 이해해주리라는 턱없는 기대 속에 온갖 속내를 다 풀어낸다. ‘말하고 싶다’, ‘소통하고 싶다’, ‘이해받고 싶다’는 욕구는 쓰는 것만으로도 반쯤은 해소된다. 그래서 글쓰기는 세상에 대한 연애편지이고, 배설행위이고, 카타르시스이고, 오르가즘이다. 나는 글쓰기라는 새로운 목표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꿈꾸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실수투성이의 과거를 자산으로 여길 만한 여유와 다시 출발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늦지 않았다’ 60쪽-



@ 덧글
출발은 늦었어도 결코 꿈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발견한 글쓰기의 맛과 멋과 힘을 나누는 방법을 다양하게 실험해볼 생각인데요,
우선 1월, 3월, 5월... 홀수달마다 4주 간의 글쓰기 강좌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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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 카페 http://cafe.naver.com/writingsu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