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의식의 실체를 충실히 파악하기 위하여 컬럼 작성중에 의지적 사고를 가급적 자제하였음을 밝혀
둡니다.
산 등성이에 안긴 공원묘지에 부산한 하루를 정리하는 땅거미가 내리고, 한달 전에 내린 눈은 추운 날씨 탓인지 눌러앉은 시어머니마냥 봉분 건초에 달라붙어 유세를 부리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일들을 처리하고 구정 전날 오후 4시경 성묘길에 나섰다. 감기 걸린 아이들과 아내를 집에 남기고 도착하니 5시가 다 되었다. 어머니를 모신 봉분은 오른편으로 보이는 모퉁이가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대략 10번째. 봉분 두 세 개를 지나가니 61년생 그분의 사진을 붙인 화강암 봉분석이 여지없이 나타난다. 학사모를 쓴 망자의 앨범사진과 자녀의 초등학교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인지 교문 앞에 망자 부부와 아이 둘이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묘비명을 본 기억에 그는 1961년 生~2003년 卒이다. 그러고 보니 그 모두가 卒의 연작이다. 그를 눈 여겨 보게 된 건 순전히 망자의 사진과 생일 때문이었다. 무슨 사연으로 그는 40대 초반에 생을 마쳤을까. 사진으로 봐서 남은 가족들은 그의 부재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마음으로는 아직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았다. 하긴 나 또한 그렇지 않은가. 사별한지 만 6년이 지났지만 그 자리에 서면 막내아들 서러운 땡깡이 목덜미를 누른다. 어머니의 묘비명은 ‘성도 OOO님 이 곳에 잠들다’ 이다. 부활을 믿는 형이 훗날을 기약하며 정한 글귀다. 같은 신앙을 가진 입장에서 卒 보다는 잠들다가 덜 아쉽기는 하다.
육체가 다한다는 것은 생명이 끝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기억에서 소멸되어가는 것이다. 61년생 그분의 사진을 보다가 졸업을 ‘업(카르마)을 다하다’라는 불교용어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졸업은 윤회의 사슬을 끊고 해탈의 경지인 니르바나(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죽음을 통하여 일체의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고, 결국에는 이승사람의 상념으로부터도 잊혀져 완전한 평화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영화 <아바타>를 떠오르게 하는 융의 자서전 구절, “그가 하나의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나다. 그가 깨어난다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를 충실히 따른다면 나의 어머니는 아직 열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신 것 같다. 융의 말처럼 나는 여전히 존재의 의미를 찾고 있으니 말이다.
산자는 망자를 찾아 그가 세상에 없을 뿐만 아니라 기억에서 덧없이 사라짐을 애통해 한다. 망자앞에서 엄숙한 생활의 선서를 하고 돌아온 산자는 행복하기 위해 고민하고 부지런을 떨지만, 행복이 꼭 노력순은 아닌 것 같고 관계는 순풍에도 깃털처럼 흩날리곤 한다. 산자에게는 불안이 형벌이다.
마흔살이 넘으니 사람관계에 있어서 인과율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질량보존의 법칙이 자주 의식된다. 내가 열을 하면 열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열을 얻은만큼 어느 부분에서는 열이 비는 경우도 생기는 것 같다. 무의식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과 관계없이 세계에 대응하는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데 어떤 불편함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면 무의식에 걸린 내용을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무의식을 탐험하기 위해 흘러가는 대로 글쓰기를 컨셉으로 잡기는 했지만 글쓰기에는 역시 무의식속에서 의미를 정제할 수 있는 의식의 체가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불편하다.
ㅋㅋ 전 매번 의지적 사고를 묶어놓고 시작했는데..
그 의지란 놈, 피곤했던지 묶인 채로 잘도 쉬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