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몬트 칼리지스의 사례에서 이들은 인문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알수 있었다. 클레몬트 칼리지스가 지키고자 했던 인문학의 힘이 아름답게 적용된 사례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정신적인 삶, 인문학

빈민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얼 쇼리스 씨의 ‘스승’은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처럼 그는 일방적 강의 대신 질문을 통해 학생들이 자기 속에 있는 답을 스스로 찾도록 돕는다. 인문학이 가르치려는 아름다움은 이미 그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가 빈민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클레먼트코스를 창설하게 된 계기는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빈곤에 대한 책을 쓰기위해 뉴욕의 한 교도소에서 살인사건으로 복역 중이 여죄수와 마주 앉았다.
“사람들은 왜 가난할까요?”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인 삶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죠.”
“정신적인 삶? 그게 뭐죠?”
“극장과 연주회, 박물관, 강연 같은 거 말예요.”
여죄수의 대답에 작가는 깜짝 놀랐다. “아, 그러니까 인문학을 말하는 거군요!” 깜짝 놀라는 작가를 여죄수는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대꾸했다. “그래요. 인문학.”

클레멘트 코스는 현재 북미, 호주, 아시아 3개 대륙 5개 도시에서 53개 코스가 운영된다. 11년간 전 세계에서 빈민 4,000여 명이 그의 코스를 졸업했다. 최근엔 한해 신입생이 1,200여 명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노숙자 다시서기 지원센터’가 클레멘트 코스를 도입해 2005년부터 노숙인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성프란시스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학기엔 17명의 노숙자가 수료했다.

하지만 뉴욕에서 첫 코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의 시도는 ‘미친 짓’으로 불렸다. 재단들에 후원을 요청할 때마다 “빈민들에게 인문학 교육이라니, 말도 안 된다”는 응답이 돌아왔다. 사재를 털어 문학 역사 등을 가르칠 교수들의 강의료를 마련한 쇼리스씨는 약물중독자 재활센터 등을 돌며 약물중독자 매춘부 노숙자 등 31명의 학생을 모았다.

새롭게 시작하기

“겨우 글만 읽을 줄 알던 학생들이 함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었습니다.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를 읽을 때 학생들은 가족과 전통의 법도와 국가의 법이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보다 더 잘 이해했습니다. 나를 포함한 교수들이 더 많이 배웠습니다.”

첫 1년 코스가 끝났을 때 31명 중 17명이 수료증을 받았고 그중 14명은 뉴욕 바드대의 심사를 거쳐 학점을 취득했다. 이들 중 2명은 나중에 치과의사가 됐고, 전과자인 한 여성은 약물중독자 재활센터의 상담실장이 됐다. 그보다 귀한 것은 "난생 처음으로 누군가가 우리들의 의견에 귀기울여주었다"는 경험과 성찰적 사고였다.  쇼리스씨의 기억에 가장 남는 사람은 12년 전 정말 구제불능이었던 한 여성이다.

“그녀는 코스를 다 마치지 못했습니다. 노숙자 쉼터에 있는 자신의 방문을 닫고 불을 지르는 소동을 벌인 뒤 우리를 떠났습니다. 끔찍했습니다. 그때 저는 실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이름을 바로 눈치 채지 못했었는데, 바로 그 여성이었습니다. 편지에서 그녀는 우리를 떠난 뒤 어떤 식의 공부도 하지 않았지만, 가끔 코스에서 배웠던 개념들이 생각났다고 고백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반 고흐와 키츠가 그녀를 떠나지 않았고 그녀도 그들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대학에 입시 원서를 내 합격했습니다. 인문학의 힘이 얼마나 끈질깁니까? 그리고 우리 학생들도 역시 훌륭합니다.”

쇼리스 씨는 빈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교수들의 강의를 녹화해 뉴욕의 교도소에서 방영했다. 시카고에서는 노숙자 쉼터에서 신문 범죄기사를 즐겨 읽는 여성들에게 헤밍웨이의 소설 ‘살인청부업자’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게 했다.

“빈민은 열악한 환경과 불운이라는 포위망에 둘러싸인 사람들입니다. 포위망에 갇히면 할 수 있는 일이란 생존을 위한 즉각적 대응밖에 없습니다. 즉각적 대응 대신 반성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삶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인문학을 통해 반성적 사고를 시작하고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목표입니다.”

11년간이나 해온 일이지만 쇼리스 씨는 학생들이 도중에 그만둘 때의 괴로움엔 익숙하지 않다. 학생들의 중도 탈락률은 평균 45%이다. 주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을 비롯한 질병 때문이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하도록 만든 여죄수 비니스 워커도 감옥에서 에이즈와 싸우며 석사과정까지 마쳤지만 끝내 숨졌다.

질병과 고통이 여전하다면 인문학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회의에 시달리면서도 쇼리스 씨는 멈출 수 없다. 그 까닭은 인문학은 ‘시작하기를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자유로워지기, 일상을 새롭게 생각해보기, 과거에 짓눌리지 않기를 시작하도록 사람을 이끌어 줍니다. 법학 같은 학문은 옛날부터 해온 일을 반복할 뿐이지만, 인문학은 항상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오늘 시 한 편을 읽는다면, 그 시는 어제와 같은 시가 아닙니다. 인문학을 배우는 사람은 영원히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 학생이 후에 직업교육을 받고 경영학이나 과학이나 법학을 공부하면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태도가 삶의 방식이 된다면 사람들과 자유롭게 관계 맺고 민주주의가 삶의 윤리로 정착되는 것이 가능해지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