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틱 타이거, 아일랜드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일랜드(Ireland)는 ‘유럽의 고아’, ‘유럽의 지진아’, ‘슬픈 민족’ ‘서유럽의 병자(sick man)’와 같이 어두운 호칭으로 불렸다. 이 기사가 실린지 10년이 안 되어 아일랜드는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 ‘라피강의 기적’ ‘살기 좋은 나라 1위’ ‘유럽 최고 부자나라’ ‘유럽의 모범생’.
아일랜드는 두 기사의 시차인 10년 동안 의미 있는 변신을 이뤄냈다. 경상수지는 흑자로 돌아섰고 실업률은 극적으로 감소했으며 국가재정도 흑자로 전환됐다. ‘놀라운 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일랜드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연평균 8% 이상의 경제성장을 지속하여 세계에서 가장 부자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2001년에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 1천 달러를 넘어 자국을 수없이 수탈해온 인접국 영국(2만 4천 달러)을 가뿐히 앞질렀다. 아일랜드는 ‘켈틱 타이거(Celtic Tiger)’란 별명까지 얻었다. 이 말은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아일랜드의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아시아의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네 마리 용’에 비유한 데서 유래한다.
시장을 움직이는 소프트 파워, 사람
정부는 외국기업에 대한 진입장벽을 과감히 허물었다. 유럽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나라로서,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gateway to Europe)'이란 이미지를 앞세워 대대적인 해외홍보 활동을 전개했다. 홍보와 외자유치 실무에서는 IDA가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IDA는 유치 대상 기업을 선정하면 장기간의 연구 분석을 통해 대상 기업의 필요를 파악한다. 이를 통해 해당기업들의 요구를 최대한 충족시키는 패키지를 마련하여 투자를 유치한다. 이는 기업이 자사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수행하는 마케팅 전략과 같다. 초기에 아일랜드가 ‘가격 경쟁력’인 저렴한 법인세와 노동력으로 승부하였다면, 최근에는 본격적인 ‘차별화’인 맞춤 상품으로 승부하고 있다. 아일랜드가 자랑하는 가장 큰 ‘맞춤 상품‘은 ’맞춤 인력‘이다. 아일랜드는 투자기업의 인력 수요를 미리 파악하는데 역점을 둔다. 이를 만족 시킬 수 있는 대학교육 과정 및 훈련 제도를 수립하여 기업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국가발전’과 이민을 막기 위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전략이다.
최고를 잡으면 나머지는 따라온다
이런 노력으로 외국 기업이 속속 아일랜드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외국 투자라고 무턱대고 받아드린 것은 아니다. 엄격한 국가발전전략을 세웠고, 그 전략에 따라 투자를 유치했다. 현재 집중 투자하는 분야는 전자통신(IT), 제약, 보건, 소프트웨어 분야이다. 원래 아일랜드의 제조업 가운데 굴뚝산업은 자본, 시설, 노동력 전반에 걸쳐 기반이 취약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을 하려면 이미 다른 나라에서 한물 간 산업으로는 따라잡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질러가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산업과 대상 투자자를 선택할 때 ‘최고’를 잡는 전략을 활용하였다. 산업을 선정 할 때는 아일랜드의 현실을 반영하여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 중 수출이 가능하고 물류비용이 적게 들며 우수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을 선택하였다. 전자, 소프트웨어, 건강의료 산업, 금융, 기업지원 서비스 등이 선정되었다.
대상 산업에서 투자자를 물색할 때도 그 분야의 ‘최고’인 대표기업(Flagship Investors)을 우선 접촉하였다. 전자기업의 인텔(Intel), 의료기업인 화이자(Pfizer), 씨티은행(Citibank)등이 그 대상이다. 최고를 유치 할 수 있으면 다른 투자자들도 따라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러한 예측은 정확히 일치했다. 이러한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자 다른 기업들도 하나 둘씩 아일랜드 투자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최고의 기업들을 유치하는 것은 모든 외자유치 국가가 동일하게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아일랜드에서 제공하는 ‘니치 시장’을 통한 ‘맞춤 상품’이다. 강대국이나 기존 국가와 직접적으로 경쟁하기 보다는 이런 국가에서 제공하지 않거나, 기존 산업을 지원하는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전략이다. 이것은 전자, 소프트웨어 산업과 금융 산업에서 특히 잘 나타나고 있다.
천 번을 전화하고 백번을 만나다
IDA 사무실에 들어서면 “우리 없이 어떻게 일합니까(How do you manage without us)?”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아일랜드가 외자유치에 뛰어든 초창기부터 투자청의 직원들은 철저한 사명감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직원들은 외국 기업으로부터 투자 유치를 해내야만 낙후된 아일랜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각오로 움직이며 뛰어다녔다. IDA 직원들은 소사장처럼 총리도 수시로 만날 수 있고, 다른 부처에 직접적인 업무지시도 내릴 수 있었다.
“1990년대 아일랜드에 공장을 하나 세우려고 IDA 직원을 만났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편의를 봐주더군요. 얼마나 권한이 센지 식당에 줄서서 기다려도 앞에 가서 ‘나는 IDA 직원’이라고 말하면 줄을 길게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양보를 해줍니다. 교통위반에 걸려 교통경찰과 시비가 벌어졌을 때 IDA 직원이 신분증을 보여주니까 교통경찰이 ‘얼른 가라’고 할 정도였다니까요.”
IDA 청장을 지낸 맥케온 전 청장은 한 인터뷰에서 IDA의 이러한 사례는 외국인 투자유치 초기의 일이긴 하나,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일랜드 국민 모두가 외국인 직접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투자 유치를 전담하는 기관을 설립하고 막강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외자유치에 성공한 강소국(싱가포르, 벨기에, 네덜란드 등)의 공통점이다.
IDA 직원들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어다닌다. 한건의 투자 유치를 위하여 평균 1,000회의 전화통화, 100회 이상의 미팅, 10번 이상의 현장 방문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번에 2~3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한다. 정보통신과 건강관리 산업을 주력 산업으로 정한 이후에는 정보통신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미국의 실리콘 벨리와 보스턴에서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신문에 광고를 실은 것은 물론이고 언론홍보, 전화 마케팅, 방송 출연 등 아일랜드를 알리기 위한 다방면 노력을 하였다.
관계를 이루면 거래는 따라온다
아일랜드에 투자했던 새한미디어의 한 직원은 IDA의 서비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IDA의 공무원들은 자신의 일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모든 업무에 성의를 다했다. 투자가 결정된 이후에도 건설 과정을 일일이 챙기고 조업이 시작된 이후에도 애프터서비스가 철저하다. 새한미디어가 1987년 아일랜드에 진출했을 때 당시 한국 직원이 현지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 IDA 담당자가 면허시험장까지 따라와 도움을 주었다. 직원들이 출퇴근에 불편을 겪자 ‘미니버스를 개조하여 좌석 수를 늘리면 두 번 왕복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직접 차량 판매회사에 문의하고 개조 절차까지 확인해 주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현재 아일랜드의 외국인 투자 가운데 60% 이상이 기존 투자 기업의 추가 투자이다. 신규 기업의 투자규모인 40%를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IDA의 브렌던 할핀(Brendan Halpin) 이사는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해 주었다.
"고객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사실 신규 투자의 절반 이상은 기존 투자자가 한다. 그들에 대한 애프터서비스가 매우 중요하다. ‘아일랜드가 좋으니 이리로 오라’고 막연히 떠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대신 ‘복잡한 연구개발 과정과 비스니스 협상을 할 때 아일랜드만이 이렇게 저렇게 구체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고 밝혀야 한다. 이것이 IDA가 지향하는 목표다."
Service는 Survival과 직결되어야 한다
진정한 서비스의 구현이 가능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서울대학교 문용린 교수는 인터뷰에서, 공익분야에 서비스를 구현하는 방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하였다.
“서비스라는 개념이 유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비스라는 것이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이론에 따르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속합니다. Service 전에 Survive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Survive하려는 사람에게는 Service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많은 공공기관은 이 살아남는 것과 서비스가 어떠한 연관관계도 없습니다. 서비스라는 것이 우리 조직이 살아남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 그 때 바로 진정한 서비스가 가능한 것입니다. 백화점이 서비스가 좋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서비스를 잘해야 살아남기 때문입니다. 기업에 있어서도 진정한 서비스는 그것을 잘하지 못할 때 기업이 죽는다는 그런 생각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대다수의 공무원 조직이나 공익집단은 서비스와 서바이벌이 연계가 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서비스는 형식적이고 입발림이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됩니다. 생존과 서비스를 연결 할 수 있는 연계 고리를 찾아주어야 합니다. 서비스를 잘하지 못하면 서바이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개인의 도덕심에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서비스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그런 정신이 필요합니다.
미국 도서관에서는 사서가 불친절하면 쫓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서가 불친절하면 고객들은 다른 도서관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도서관의 이용자와 직원의 비율이 예를 들어 100명의 직원이면 150만 명의 이용자를 수용해야 하는데 이용자가 그 이하로 떨어지면 예산이 감축되어 사서들의 수도 줄어드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성격이나 도덕심, 봉사심과는 상관없이 이렇게 서비스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관의 업무 성과와 서비스가 그 기관의 존속, 개인의 존속이 연결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