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첫 책을 선물하라.
- 1 편 : 나는 어떻게 첫 책을 썼는가 -
문 요한 (정신과 전문의/ 정신경영아카데미www.mentalacademy.org 대표)
내가 책을 쓴 이유
2004년도에 나는 정신과의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의원 운영은 안정적이었지만 나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것은 단지 바쁘다거나 육체적인 고단함 때문이 아니라 일에서 생계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 황폐함 때문이었다. ‘오늘은 몇 명 진료했지?’ ‘오늘은 얼마 벌었지?’라는 셈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내 피는 점점 차가워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피는 한 번도 뜨거운 적이 없었다. 그냥 시키는 대로 주어진 일만 하고 살았을 뿐,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본 적이 없는 느낌이었다. 마흔을 얼마 남겨두지 않아서였는지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절실함은 강했지만 어떻게 살고 싶다는 대안은 잘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방향을 찾아야 했다.
우선 병원을 정리했다. 그리고 두 달여 동안 자신과 대면하며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였다. 고민 끝에 세운 삶의 방향은 상담과 자기계발을 통합하는 새로운 영역의 일을 하는 것이었다. 방향이 서자 내적 질서가 잡혔다. 깊은 안식과 용기가 생겨났다. 그러나 경험은 일천했고 그런 결심을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현실은 엄중했고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 몇 년이 될지 모르는 고생은 기꺼이 감수하기로 했다. 차근차근 하나씩 준비하기로 했다. 관련 프로그램을 쫓아다니고, 해당분야의 사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나라는 존재를 알릴 필요가 절실해졌다. 그 탁월한 수단이 책임을 알고 있었다. 이는 ‘격려하는 글쓰기’라는 나의 강점과도 잘 부합되는 일이었다. 그러한 의지를 다지고 새로운 리더십 프로그램을 체계화하기 위한 네트워크가 절실했다. 그때 영화처럼 내 앞에 나타난 곳이 구 본형 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 과정이었다. 그 시작이 2005년 3월이었다. 이 1년여의 시간동안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칼럼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 훈련에 들어갔다. 읽을 당시에는 재미도 없고 나의 관심사와 무관한 것 같아 읽기 싫은 책도 많았다. 하지만 폭 넓은 독서로 인해 정신 내적인 문제만을 미시적으로 바라보던 좁은 시야가 새의 눈처럼 넓어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을 쓸 것인가
책을 쓰려면 가장 먼저 주제를 선정해야 한다. 1년여의 연구원 생활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각자 쓸 책에 대하여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다. 이 부분이 나에게는 무척 어려웠다. 주제의 빈곤이 아니라 과잉이 문제였다. 새로운 삶의 방향이 잡히자 관련 주제에 대해 넘쳐나는 관심을 다스릴 길이 없었다. 이 주제도 써보고 싶고, 저 주제도 써보고 싶었다. 주제를 정하지 못하고 변덕이 죽 끓고 있던 그 때 구 본형 소장님의 충고가 마음에 와 닿았다. ‘자신의 살아있는 경험이 담겨있지 않는 책은 좋은 책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듣자 혼란이 잦아들었다. ‘나의 살아있는 경험이라?’ 나는 이내 게으름이라는 주제를 떠올렸다. 나의 문제이기도 하고 많은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 문제를 통해 자기계발과 상담을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볼수록 이 주제는 좋은 주제였다. 나의 경험과 고민이 잘 들어가 있는데다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쩌지 못하고 안고 있는 대중적인 주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책을 써 내려갔다
이렇게 2005년도 말에 주제가 정해졌다. 다음으로 책과 자료를 살펴보았다. 관련도서와 자료를 2~3개월에 걸쳐 읽어가면서 어떻게 책을 쓸지를 고민했다. 내 나름의 개념과 원칙을 잡고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두 가지 정도의 원칙을 생각했다. 첫째, ‘게으르지 말자!’는 빤한 내용보다는 게으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자고 생각했다. 둘째, 게으름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러한 원칙이 있었기에 게으름을 비틀어도 보고, 오문오감 변화일기와 같은 새로운 실천지침을 제시할 수 있었다고 본다. 다음으로 목차를 잡았다. 목차는 건물로 치면 뼈대에 해당한다. 쓰고자 하는 책의 주제와 핵심 개념이 목차에 잘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목차를 쓰고 나니 마치 책의 절반을 쓴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글쓰기 작업은 지지부진했다. 본격적으로 살을 붙여가지 못했다. 당시 병원에 취직하여 일을 하고 있던 터라 덩어리 시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글을 쓸 준비가 갖추어지면 일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쓸 생각이었기 때문에 병원을 그만두었다. 그것이 2006년 8월이었다.
우선 책을 쓸 공간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어렸기에 집에서 책을 쓰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고심 끝에 집 앞 고시원 방을 얻었다. 집과 고시원을 오가면서 책을 썼다. 어떤 책을 쓸지에 대한 밑그림이 잘 그려져서인지 3주 만에 초고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막상 써놓고 보니 이것은 도저히 책이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논문 수준이었다. 용어부터 문체까지 천년 먹은 거북 등껍질처럼 딱딱하기만 했다. 평소 친한 사람들도 한결 같은 반응이었다. 너무 딱딱해서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무언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했다. 하지만 한 번 완성된 글을 해체하고 다시 글을 쓴다는 것은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글이 고쳐지지도 않았고 부드러워지지도 않았다. 시간이 마냥 지나가버렸다. 그대로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 아닌가! 예서 말수는 없었다. 그때 문득 친구가 떠올랐다. 학창시절에도 여러 차례 격려의 편지를 나누었던 막역한 사이였다. 당시 그 친구는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사춘기처럼 방황을 겪고 있었다. 나는 이 친구에게 다시 한 번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학창시절에 편지를 써내려가는 심정으로 그 친구를 생각하며 글을 써내려갔다. 글은 훨씬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졌다. 드디어 글을 쓰기로 결심한 지 3개월여 만에 원고를 마쳤다. 몇 군데의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고 그 중에 흔쾌히 출판의사를 보여 온 <더난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 2007년 2월, 드디어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세상에 선을 보였다. 늘 심상을 통해 그 모습을 떠올려서 둔감해졌던 것일까? 기뻤지만 생각처럼 기쁘지는 않았다. 구 본형 선생님을 포함한 주위 분들이 오히려 더욱 기뻐해주셨다.
첫 책이 나오고 나서
첫 책은 예상을 뛰어넘고 매체와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게으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정신과 의사의 임상경험이 잘 배어있다는 평을 받았다. 책이 나오기 전부터 나는 정신훈련 교육기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책 덕분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응원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쁜 순간들은 책을 읽고 나서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변화의 소식이었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삶에 새로운 에너지가 되어 삶의 방향을 바꾸는 동력이 된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었다. 첫 책이 나온 당시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보람과 희열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정말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정말이지 첫 책은 내 인생에서 날개가 되어주었다. 책이라는 날개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만일 당신이 원하는 곳이 있는데 날개가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지금 책을 써라. 그래도 당신이 망설인다면 나는 헨리 나우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쓸수록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흔히 우리가 글을 쓰지 않는 이유를 말할 때, “나에게는 그다지 새로운 얘깃거리가 없어.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것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얘기한 것들이야...”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글을 쓰지 않는 적당한 핑계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독특한 그리고 고유한 존재로서, 그 어느 누구도 우리와 똑같은 인생을 산 사람은 없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우리의 생애를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이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창조적이며 용기를 주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얘기가 다른 사람들이 들을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면 잘할수록 우리는 보다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헨리 나우웬(Henri J. Nouwen 1032~1996)의 영혼의 양식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