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책 '대한민국 개발자 희망보고서'는 설을 지나고 2007년 2월에 출간되었다.
일을 하면서 책을 쓰느라 거의 일년동안 땅굴을 팠다.
사실 내가 일하는 IT 분야의 개발자(프로그래머)의 경력개발에 관한 책이지만, 가급적이면 범용적으로 쉽게 쓰려고 애를 썼다.
기술서적은 절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길...
책 중에서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내용으로 연재를 시작한다.
중간중간에 삽화가 들어가는 대목이 있는데 이 삽화는 본인 죽마고우의 작품임을 밝혀둔다.
초과근무 시간 증가는 생산성 감소 기법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은 머리가 빨리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 톰 디마르코(Tom Demarco)

‘월화수목금금금’은 주말에도 평일처럼 열심히 일한다는 뜻으로 일주일 내내 일해야 하는 서글픈 현실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이 말은 원래 제조업쪽에서 생겨난 것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기계를 점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계속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저런 사고가 없을 수가 없다.
비단 이런 현상은 제조업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발 현실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A사의 물류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를 하던 때였다. 당시 시스템 오픈이 얼마 남지 않아 프로젝트 팀원들은 계속되는 초과근무로 인해 심신이 지쳐 있었다. 내 아내는 첫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런 아내에게조차 마음을 쓰지 못해 미안했다. 새해 첫 날 밤 아내가 출산했을 때도 나는 계속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만 했다. 나는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프로젝트에 전념해야만 하는 현실에 비애와 함께 분노를 느꼈다.
또 얼마 전 아주 성실한 직원 하나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에 퇴사를 했다. 개발자의 길을 천직처럼 여기던 그가 갑자기 퇴사를 결정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노총각인 그는 어렵게 만난 애인과 결혼하고 싶어했지만 데이트할 시간이 없어서 애인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다. 그는 적잖은 고민을 했고 급기야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물론 우리 주위에는 불철주야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동기야 어찌 되었든 간에 기계가 아닌 이상 휴식은 필요하다. 또한 우리는 일 이외에도 가족, 친구, 애인, 자기계발, 취미 등에 충분한 관심을 주어야 한다. 일과 일 이외의 것에서 양자택일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현실은 초과근무 한 가지에만 집착하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일이 급박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일을 처리하기 위한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어느 특정 시점에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일이 초과근무로 인해 진행이 된다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일 자체가 문제인 까닭이다.
초과근무에 집착하는 이유는 일에 대한 잘못된 관념에서 기인한다. 일은 오로지 오랫동안 열심히 해야만 잘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면 맞는 말이다. 세상에는 궁둥이 살에 물집이 잡혀야 잘하게 되는 일도 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은 내가 하고 싶어하고 잘 하는 일에 지속적으로 매진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단지 초과근무 등 시간을 많이 투입하는 것과 일을 잘하는 것에는 특별한 인과관계가 없어 보인다. 과연 일은 쉼 없이 계속해야 잘하게 되는 걸까? 위의 말이 사실이라면 체력이 제일 좋은 사람이 일을 잘한다는 결론이 유추된다.
초과근무에 몰두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소 끔찍한 생각이지만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를 대비한 보호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종의 면죄부인 셈이다. 현명하지 못한 관리자는 직원들이 사생활을 희생해서라도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해야 일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성과 위주로 직원을 평가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직원은 자신에게 부여된 감당할 수 없는 과업을 초과근무를 통해 해결하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하다. 그렇지만 관리자는 그가 초과근무를 지속적으로 했다는 이유로 기꺼이 면죄부를 부여한다. 반면에 자신의 과업을 훌륭히 달성하고 초과근무를 거부하는 직원은 이기적인 직원으로 낙인을 찍는다.
초과근무에 집착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초과근무는 먹고 살기 문제가 절박했을 시절에 있어서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7,80년대의 산업화 시대에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변해 먹고 살기 위해 참는 곳이 직장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직장이라면 스트레스와 피로가 누적되어 제대로 된 제품과 서비스가 나올 수 없다. 결국 그런 회사의 비즈니스는 고객 만족을 이끌어 내지 못해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초과근무가 생산성을 꼭 높이지는 않는다. 현대적인 의미의 생산성은 투입 노동력에 비해 얼마나 많은 이윤과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단순히 근무시간을 따지기 보다는 일에 집중한 시간(flow time)을 중시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초과근무를 불가피한 것으로 여긴다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일을 더 많이 하기보다는 일을 늘리려는 경향이 강하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 해 보았을 것이다. “어차피 야근할텐데 천천히 저녁 먹고 와서 해야지”
셋째, 초과근무는 단거리에는 적합할 수 있지만 장거리에는 부적합하다. 프로젝트는 마라톤과 비슷하다. 초반부터 전력질주를 한다면 막상 중요한 시점에 도달했을 때 제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B사의 ERP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이 프로젝트는 회사의 모든 부문을 대상으로 시스템을 개발하기 때문에 1년 이상이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였다. 이런 프로젝트의 경우 기간이 길어서 근무자세가 해이해질 수 있으므로 초반부터 관리자는 팀원들을 다그쳤다. 시작부터 10시 이전에 퇴근하기 어려웠고,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 강도도 더욱 높아져 육체적 피로와 심리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탈진하는 상황이 되고야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퇴사하겠다는 직원도 속출하여 프로젝트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큰 손실은 물론, 재개발을 해야 하는 비운을 맞았다.
그렇다면 초과근무를 가능한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수반한다. 첫째, 이제 일은 열심히 일하기(Work Hard)에서 현명하게 일하기(Work Smart)로 변화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지식 근로자의 경우에 ‘현명하게 일하기’는 일의 생산성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과 같은 지적 노동의 경우에는 일의 질과 시간이 비례하지 않는다. 일 잘하는 사람은 먼저 일에 대해 생각하고, 스마트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관행을 타파하는데 주력한다. 절대 주어진 일의 테두리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둘째, 직원들이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일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들이 모색되어야 한다. 일에 대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동기부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큼 좋은 동기부여는 없다. 공자는 논어에서,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고 말했다. 일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 초과근무는 큰 의미가 없다. 직원들의 강점과 연결된 직무를 배치하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경력개발이 보장되고, 성과위주로 평가 보상하는 등의 제도가 실행되어야 한다.
셋째, 일에 대한 재충전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자신을 천천히 되돌아 볼 시간을 갖고 주기적인 휴식을 취해야만, 신선한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재충전하고 일의 가속도를 높일 수 있다. 일본의 유명한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의 공장에서는 3무(3無)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여기서 말하는 3무란 무다(無馱), 무리(無理), 무라(無斑) 세 가지를 이르는 말로, ‘무다’는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고, ‘무리’는 말 그대로 ‘무리하지 말라’, ‘무라’는 ‘균질하지 않은 품질을 없애라’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리하지 말라는 ‘무리’에 유념해야 한다.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가 휴식할 줄 모르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바쁘다는 것은 일의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바쁨 속에서 우리는 일의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월화수목금금금’의 방식보다는 직원들의 창의성과 협력을 최대한 북돋우면서 성장하는 그런 회사를 꿈꿔본다.

언제 어디서든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멈춤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