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단군의

/

300일+

단군의

병진님께서 20116140555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3개월만의 출근, 어제도 이 길을 걸었다. 어제와 달라진 점은 발걸음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그 지하철을 놓치지 않으려면 지금쯤이면 도착할 거 같은 마을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짜여진 시간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12시간 전보다 모든 것이 빨라져야 했다. 발걸음은 기본이고 화장실, 양치, 키보드 위의 손….. 가장 불편한 건 밥먹는 속도다. 이른 점심시간임에도 밥까지 빨리 먹어야 하는 고충이 더해지니 10년은 늙어버렸다.

 

벌써 지친다. 긍정적인 변화보다는 막장으로 흐르는 기운도 그렇고, 선배 대접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옆집 아저씨가 사무실에 온 것처럼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남에게는 관심도 없는(남과 님은 점 하나 정말 차이인가?), 허접한 사파리에 다시 돌아왔다.

 

회식 자리에서 내 외투(하나밖에 없는)와 내 지갑을 잃어버리고 되찾으려 간 자리는 떠돌이 아이들의 수금시간이었고, 간신히 찾은 지갑을 빼앗으니 불쌍한 아이들은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 나에게 덤빈다. 있는 힘껏 발길질을 해봐도 우리 딸보다 작은 아이들은 쓰러지지 않고 나에게 계속 달려든다. 내 지갑을 가지고 있던 녀석의 아빠가 이 도둑질 소년들의 우두머리인지 아빠 나와보세요라고 하는 소리에 겁을 먹은 나는 가장 작은 여자아이의 목덜미를 붙잡아 인질로 쓸 요량으로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다가 이 이야기는 끝이 났다.

 

복귀 기념 악몽의 기억들이 사라지기 전에 털어버리려 작성한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상관없다. 내가 잘 써봐야 얼마나 쓰겠나. 잘 쓰려고 해도 안 되는 실력에 잘 써보려고 하는 게 더 웃기다. 노력과는 다른 행위로 느껴진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